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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5 · 이중난수

알레르기 Ⅲ

"너 지금 딱 소중한 장난감을 잃고 삐져있는 여자애 같다고 느낌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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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15

너무하네 진짜...

다른 마을에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 한 명 없다니.

댄들라이

왜 생존자를 찾으려고 사서 고생해?

생존자는 없다고 봐도 된다 한 사람은 다름아닌 너야.

AR15

나도 알아...

그래도 예외란 게 있을 수도 있잖아...

댄들라이

비극은 언제나 필연의 연쇄로 만들어지지.

그만 가자, 여기에 더 볼 만한 건 없어.

AR-15는 말없이 길을 따라 걸었고, 댄들라이도 그런 그녀의 뒤를 따랐다.

댄들라이

이렇게 둘이서 있으니까, 눈 내리던 어느 날이 생각나네.

AR15

...이런 데서 그때 일을 꼭 꺼내야겠어?

댄들라이

우리 둘만의 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는 줄 알았더니만.

이젠 루니샤의 소체로 너와 대화할 수 없어서 아쉽네.

AR15

가장 떠올리기 싫은 부분이니까 제발 입 좀 다물어.

댄들라이

팔디스키에서의 일 이후로 네가 루니샤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질 않길래, 이젠 그렇게 신경 쓰지 않게 됐나 싶었거든.

하지만 이렇게 보니, 지금 넌 병들어 눈 뜰 기운조차 없는 고양이 같아.

AR15

그래서 어쩌라고.

놀릴 생각이라면 대꾸도 안 할 거니까 관둬.

댄들라이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적어도 지금의 넌 놀릴 가치도 없거든.

AR15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댄들라이

나는 자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형의 궁극적인 모습은 과연 어떨까 생각하곤 했어.

그리고,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진화의 요소가 필수적이다 결론지었지.

하지만 너처럼 독립성이 결여된 인형에게, 과연 진화의 가능성이 있을까 의문이야.

AR15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나랑 말싸움하자는 거 같은데, 어울려 줄 생각 없다고.

댄들라이

그저 내 감상을 말했을 뿐이야. 너희 AR팀과 지내면서, 너희 개개인의 개성을 어느 정도 파악했거든.

SOP2는 마인드맵이 인형 중에서도 특이 케이스고, RO635는 유달리 굳센 편이지.

흐음... 생각해 보니, 항상 감성에 젖어 있는 건 너뿐이구나.

AR15

감성적이라고? 내가?

AR-15가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멈췄고, 뒤따라오던 댄들라이도 섰다.

AR15

너 진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나한테 불만 있으면 빙빙 돌리지 말고 당장 확실하게 말해.

댄들라이

지금 네 모습이 아끼던 장난감을 잃어버리고 혼자서 씩씩대는 여자애 같단 생각, 안 들어?

AR15

M4는 장난감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언제 씩씩댔어?

댄들라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으면서 시치미 떼긴.

AR15

아니, 난 머리가 나빠서 왜 네가 뜬금없이 다 지나간 얘기를 하고 M4를 들먹이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그리고 정말 알아들었다 한들, 그딴 시시한 말싸움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어. 그 상대가 너라면 더더욱.

댄들라이

나는 네가 또 감정에 휩쓸려 돌발행동을 하진 않을까 걱정돼서.

AR15

아~ 그러셔? 그럼 걱정해 줘서 고맙다 해야겠네?

댄들라이

빈정거려봤자 네 마음 속 불안감이 드러날 뿐이야.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 건 아니었구나.

AR15

그래서 뭐, 지금 나로선 임무를 수행하기 부적합하다고?

댄들라이

그렇다고 말한 적 없는데.

하지만, 네 마음 속 의문을 숨기지 말아 줬으면 해.

대놓고 발광하는 사람보단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더 위험하니까.

AR15

위험해...?

알았다, 넌 내가 "위험요소"라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스토커처럼 날 감시해야 직성이 풀린단 거네?

댄들라이

슬픈걸, 우리는 이제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AR15

내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면 그냥 마인드맵을 훔쳐보면 되는 일 아니야?

꼭 그렇게 심리상담하는 척하면서 내 입으로 들어야겠어?

댄들라이

네 허락 없이 너의 마인드맵을 읽진 않겠어. 너희를 잘 돌보겠다고, 루니샤와 약속했으니까.

루니샤도 나처럼 너를 걱정했겠지.

AR15

...네가 M4를 따라할 필요 없어.

댄들라이

너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필요 없고.

AR15

흥...

솔직히, 난 예나 지금이나 널 신뢰하지 않아.

하지만 M4가 널 적으로 보지 않았으니까, 당장으로선 네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니까 놔둘 뿐이란 걸 명심해.

그리고 착각하지 마, 네가 뭘 하더라도 난 널 절대 인정 못 해.

내가 널 M4를 대하듯 대해 줄 거란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네가 생긴 게 좀 닮았든, M4의 마인드맵에서 태어났든 알 바 아니야.

나한테 M4는 M4뿐이야, 누구도 걔를 대신할 수 없어.

M4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지 다 참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넌 네 앞가림이나 잘해, 이딴 시시한 일에 신경쓰지 말고.

그러다가 중요한 단서를 놓치기만 해봐,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댄들라이

......예상밖이네.

내 생각보다 넌 훨씬 굳세구나.

AR15

마음대로 생각하셔.

댄들라이

페르시카의 인형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구석이 있지만, 본질은 아주 비슷하지.

유감스럽게도, 나도 예외가 아니야.

AR15

그럼 이 한심한 대화를 끝내고 임무에 집중해도 될까?

댄들라이

기꺼이.

AR15

여기도 시체투성이인데, 뭐 단서가 될 만한 건 없어?

댄들라이

이들의 사망 원인이 붕괴 복사 피폭인 것만은 분명해.

그렇다면, 그 피폭의 원인은 무엇일까?

AR15

이렇게 마을 규모의 정착지가 있다는 건, 이곳의 붕괴 복사 농도는 전혀 위험한 수준이 아니란 뜻이지.

우리가 측정한 결과도 그렇고.

댄들라이

단기간 내의 폭발적인 복사 발생...

익숙하지 않아?

AR15

익숙한 물건도 있네.

특히 너한테.

댄들라이

하얀 꽃잎.

AR15

주변에 잔뜩이야.

댄들라이

이곳은 그린존의 경계에 가까운 변방지대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AR15

모르겠으니까 설명해 봐.

댄들라이

윌리엄은 갈수록 미쳐 가고 있어.

그가 실험을 행하는 범위가, 우리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넓어졌어. 분명 더 큰 계획을 꾸미고 있을 거야.

AR15

윌리엄...

뭐만 하면 그 녀석이네.

댄들라이

쉿.

누가 온다.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AR-15가 돌아보자, 그곳엔 하얀 병사들이 있었다.

AR15

패러데우스...?!

댄들라이

가서 그때처럼 놈들의 주의를 끌어 줘.

AR15

뭘 하려고?

댄들라이

그때처럼, 저 거의 다 썩어버린 두뇌에서 정보를 캐내야지.

"그때"와 달리 지금은 완전무장한 상태였기에, AR-15는 전투에서 완전히 우위를 점하고 손쉽게 적을 쓰러뜨렸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적은 침묵했지만, AR-15는 점점 더 소름이 끼쳤다.

AR15

다 해치웠어.

왜 놈들이 여기 있지?

댄들라이

이 "병사"들, 아직 따끈따끈해.

AR15

그게 무슨 소리야?

댄들라이

기록을 확인했어. 이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주민이었어.

AR15

......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댄들라이

마을의 중심에 자동화 공장이 있고, 1세대 자율인형도 있어. 패러데우스는 그 시설로 시체를 병사로 개조하는 거겠지.

지휘관에게 해당 좌표로 사람을 보내 그 설비를 회수하라 전달할게.

AR15

온통 피랑 살덩이 천지잖아...

젠장... 토할 거 같아...

댄들라이

인형은 구토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하지만 지휘관은 보는 즉시 구토할지도. 귀환하면 네 화상 기록을 초고화질로 제출해.

AR15

쳇... 악취미구만. 말 좀 예쁘게 할 순 없겠어?

댄들라이

내 언어 구사 능력을 칭찬해 줘서 고마워.

자, 가자. 여기서 더 조사할 만한 건 없어.

AR15

예상만큼 간단한 임무가 아니었네...

댄들라이

너희가 언제 간단한 임무를 받은 적 있던가?

AR15

흥.

빨리 RO랑 합류하러 가자, 여기서 1초도 더 있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