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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5 · 이중난수

유령자매 Ⅴ

"먼저 죽는 건... 용서 안 해..."

-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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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토우스트 제약 회사 3층의 사무실.

한바탕의 격전 끝에, 바닥은 철혈의 잔해로 가득해졌다.

디스트로이어

드리머, 이제 우리뿐이야!

드리머

나도 장님이 아니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

디스트로이어

이제 어떡하지? 다음 계획은 뭐야?

드리머

다음 계획?

흐음... 같이 무릎 꿇고 비는 건 어때?

디스트로이어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런 유치한 농담이 나와?!

드리머

유치한 농담이라...

디스트로이어

넌 만능이잖아!

항상 완벽한 계획을 구상했잖아!

왜 이번엔 그런 거 없어?!

드리머

......

디스트로이어

엘리사가 사라지고 나서부터 맨날 그래...

내 수복도 뭐가 문제인지 전혀 진전이 없고...

예전에는 날 개조하든 다른 소체에 때려박든 금방이었잖아!

너 정말 날 진심으로 도와주는거 맞아? 지금 넌 내가 봐도 너무 한심하다고!

드리머

아아, 똥개가 나한테 저렇게 짖어대다니... 내 처지도 나락으로 떨어졌구나.

디스트로이어

너, 넌 정말 쓸모없어! 지금의 넌 싫어!

<color=#A9A9A9>젠장, 충전 케이블은 또 언제 끊어진 거야?!</color>

<color=#A9A9A9>으으... 또 눈앞이 핑핑 돌기 시작했어...</color>

UMP9

내부 분열인가...

언니, 어떡할까?

UMP45

제압했으니 지휘――

HK416

이제 너 대신 총알을 맞아 줄 철혈은 없어! 죽어라!

안나의 안전을 확인한 HK416이, 총을 들어 드리머를 조준했다.

드리머

이대로 끝이구나.

드리머는 눈을 감았다.

타앙!

디스트로이어

먼저 죽는 건... 용서 안 해...

그 목소리에 드리머가 눈을 번쩍 떴다.

항상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인형이, 또다시 기능이 정지되었다.

착각일까, 드리머는 새끼손가락이 꽉 조이듯 아팠다.

며칠 전.

디스트로이어

별써 며칠 째라구, 왜 아직도 못 고치는 건데!

콘센트 주변에서 전선 끌고 다니는건 이제 못 참겠어!

드리머

그렇게라도 살기 싫으면, 다른 방법도 있는데.

디스트로이어

흥, 무슨 방법이든 너보다 일찍 죽을 수 있으면 돼.

드리머

...그런 경쟁심이 있는 줄은 몰랐네?

디스트로이어

넌 나 없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잖아.

하지만 난 혼자서는 어디로 갈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걸.

드리머

놀라워라, 바보도 위기감을 느끼긴 하는구나.

디스트로이어

그러니까, 약속이다?

디스트로이어는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아, 드리머의 새끼손가락에 묶었다.

디스트로이어

인간은 약속할 때 이렇게 한다더라!

우리도 약속이야, 절대 나보다 먼저 죽지 마.

드리머는 손을 들어, 새끼손가락에 칭칭 감긴 하얀 머리카락을 빤히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머니엔 이미 그것과 같은 엉성한 머리카락 고리가 벌써 9개나 들어 있었다.

디스트로이어가 이게 오늘 10번째로 약속한 것임을 모른다는 것을, 드리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드리머

...너, 그거 알아?

디스트로이어

뭐를?

드리머

우리의 머리카락은 인간처럼 자라나지 않아.

디스트로이어

......

아앗?!

드리머

......

입만 열면 나보고 쓰레기라면서, 위험해지면 바로 몸으로 막아 주고...

넌 정말... 충성심 깊은 멍멍이라니까...

드리머는 차갑게 웃으며, 이미 탄약이 다 떨어진 무기를 들었다.

UMP45

416, 멈춰. 지휘관이 다른 생각이 있대.

HK416

왜 저 자식은 항상 총알막이가 있냐고!

UMP45

지금까지 버텼으니, 충분하지 않아?

드리머

싸우는 와중에 툭하면 쓸데없이 영문 모를 말이나 지껄이고, 그게 그리폰의 특색이니?

UMP45

디스트로이어는 이미 정지했어. 너도 센 척 그만해.

드리머

이런 머저리 앞에서 내가 무슨 연기를 한다고.

UMP45

팔디스키에서, 디스트로이어는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지?

소체뿐만 아니라, 마인드맵까지 충격을 받았을 테고.

그래서 녀석의 소체를 수복하려고, 넌 너 자신의 부품까지 떼어다 녀석을 고쳤겠지.

이전 기록보다 훨씬 느린 지금 네 반응 속도는 그거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드리머

......

UMP45

솔직히, 너를 다시 봤어.

방금 디스트로이어에게 접근했을 때, 녀석에게 연결된 전원 케이블에 네 이름이 적혀 있더라.

설마, 네 배터리까지 준 거야?

드리머

매일 귓가에서 똑같은 말을 앵앵 지껄이는 게 얼마나 짜증나는데.

배터리를 교체하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면, 값싼 대가지.

UMP45

하지만 해결되지 않았잖아. 녀석의 문제는 너 혼자선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

공장으로 돌려보내야 그나마 고쳐질 가능성이 있어.

드리머

바보에게 생긴 버그인걸, 당연히 간단히는 안 고쳐지지.

UMP45

하지만 넌 그걸 디스트로이어에게 숨겼어.

드리머

기억 용량이 너무 적어서, 그렇게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주입하면 터져 버릴지도 몰랐거든.

HK416

완전 바보 자매 같네.

UMP45

넌 이제 방법이 없어. 아니, 아주 오래전에 방법을 잃었지.

그래도 넌 계속해서 네가 여전히 대단하고 뭐든 할 수 있는 연기를 했어. 디스트로이어에게 좋은 환상을 보여 준 이유가 뭐야?

드리머

내가 괜히 "몽상가"겠어?

인간 기업가들처럼, 떡을 먹음직스럽게 그리지 못하면 나 대신 총을 맞아 줄 부하를 어떻게 곁에 두겠어.

UMP45

그럼, 그 그림의 떡의 유통기한은 얼마인지 생각은 해보셨나?

드리머

...왜 무슨 자기계발서에서나 나올 만한 말을 하실까?

UMP45

너한테도 꽤 괜찮은 제안이 있거든.

UMP45가 통신기의 화면을 드리머에게 보여 주었다.

지휘관

<color=#00CCFF>오랜만이군, 드리머.</color>

드리머

어머나... 아직도 살아있었네, 그리폰의 지휘관.

지휘관

<color=#00CCFF>아직 살아있고, 아주 잘 지내지.</color>

<color=#00CCFF>그리폰의 재건 작업도 시작됐고, 기지도 넓어져서 인형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게 됐어.</color>

<color=#00CCFF>숙소 환경도 아늑하지, 식단도 다양하지, 해마다 명절도 쇠지...</color>

드리머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인형의 마지막 시간도 일분일초가 소중하다고.

지휘관

<color=#00CCFF>...크흠.</color>

<color=#00CCFF>내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싸웠긴 해도, 평생 적으로 지낼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color>

<color=#00CCFF>엘더 브레인이 버린 철혈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우리도 알아. 너희들도 심각한 손실을 입고 뿔뿔이 흩어졌으니 말이야.</color>

<color=#00CCFF>그리폰도 피차일반이지만, 말했다시피 이미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야.</color>

<color=#00CCFF>하지만 그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해. 앞으론 더욱 강한 적과 맞서 싸워야 하는 만큼, 더 많은 힘을 모아야 하지. 이를테면, 너희들 같은 힘을.</color>

드리머

꽤 들어봄직한 소리네.

지휘관

<color=#00CCFF>그래서, 난 철혈을 그리폰과 통합하기를 원한다.</color>

<color=#00CCFF>너희가 그리폰에서 성장하면서, 함께 공공의 적에 대한 복수를 이루기를 바라.</color>

<color=#00CCFF>물론 너희가 원하는 건 우리가 제공해 줄 거야. 안정적인 환경이나 수복 시설, 훈련장...</color>

드리머

축약하자면, 결국 우리보고 그리폰으로 이직해서 가치를 발휘해 달라는 말이네.

그런데 이를 어쩌지? 난 이제 지쳤거든. 이대로 폐품이 될래. 내 몸의 부품이 모조리 바스러질 때까지, 그냥 이대로 있으래.

지휘관

<color=#00CCFF>디스트로이어는 어쩌고?</color>

드리머

내 멍멍이는 내가 끝까지 책임질 테니까 신경 꺼.

HK416

그렇다니, 이제 쏴도 되죠?

지휘관

<color=#00CCFF>아니, 멈춰.</color>

<color=#00CCFF>45, 그냥 놓아 줘.</color>

드리머

그리폰의 지휘관... 농부와 뱀 이야기 들어봤지? 자기가 그 이야기처럼 되진 않을까 걱정 안 돼?

지휘관

<color=#00CCFF>글쎄다, 난 우렁각시만 알거든.</color>

<color=#00CCFF>뱀이든 우렁이든, 나는 언제나 너희를 위해 문을 열어 두고 있겠어.</color>

통신 종료.

HK416

지휘관 대체 무슨 생각이야?!

UMP9

안나 얼굴이나 주무르면서 기분 풀어.

HK416

볼따구는 G11이 더 찰지지...

G11

...으엥?

UMP45

다 들었지? 얼른 안 도망가고 뭐해?

드리머

......

너네 그리폰은 하나같이 이상해.

드리머는 몸이 굳은 디스트로이어를 안고서 떠날 준비를 했다.

드리머

아 참, 너네 새 친구가 이 약을 참 좋아하는 것 같더라.

UMP45가 드리머가 던진 물건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드리머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UMP45

쿨하게 사라졌네, 서버의 데이터마저 옮기지 않고.

UMP9

오, 그럼 우리가 마음대로 뽑아갈 수 있겠네!

아... 뭐야, 벌써 텅텅 비었잖아... 유지보수 일지만 남았어. 이거 얼마나 복구할 수 있으려나...

UMP45

뭐, 적어도 보고서로 제출하기엔 충분하지.

416, 그만 쳐다봐, 그런다고 안 돌아와.

HK416

......

저놈들, 정말 그리폰에 투항하진 않겠지?

UMP45

글쎄~? 어쩌면 스바로그의 다음 포획 명단에서 쟤네 이름을 볼 수 있을지도.

UMP45는 씨익 웃으며, 손안의 추적기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