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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5 · 이중난수

꽃 핀 무덤

"꽃줄기를 빨아먹는 진딧물이, 자신이 잘못했다 생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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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브레멘.

플로라 연구소 산하 화원.

RPK16

으음~ 향기 좋네요~

AK12

설마 너랑 한 조를 짜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RPK16

인간과 대화해야 하는 임무인데, 에르빈이랑 안티아는 서투르잖아요.

저나 당신처럼 말주변이 좋은 인형이 적임이죠.

AK12

말주변 좋은 건 나 하나로 충분하거든?

넌 지금 권총도 안 챙겨 왔잖아, 싸움이라도 나면 그냥 짐짝이지.

RPK16

이 임무는 총 쓸 일도 없는데 들고 와봤자 거추장스러운걸요, 그래서 에르빈의 케이스에 넣어 뒀죠.

그리고 믿음직한 우리 루치아 선배가 있는데, 제가 빈손이어도 아무 문제 없을 텐데요 뭐.

AK12

말 나와서 말인데, 왜 내가 네 선배야?

너, 나보다 얼마나 늦게 출고됐길래 그래?

RPK16

언제나 존경스럽고 믿음직한 대장이잖아요, 에르빈한테서 자주 들었어요.

셋이서 함께 훈련하던 이야기를요... 정말 부럽더라니까요.

AK12

걔가 그런 걸 추억이랍시고 이야기할 리가 없는데...

아니, 애당초 걔가 잡담을 할 리가 없잖아.

대체 그건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어?

RPK16

글쎄요, 과연 어떨까요?

어쩌면 제가 에르빈한테 들려 달라 졸랐을 수도 있고, 저희 둘이 선배의 생각보다 훨씬 돈독한 관계일 수도 있죠.

또 어쩌면 에르빈은 전혀 말한 적 없고, 제가 단순히 망상을 지껄였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AK12

아무래도 좋지만 표정 관리는 좀 하지?

너 웃는 거 진짜 징그럽거든.

RPK16

네에? 너무하시네요, 전 최대한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는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AK12

싫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생존 방식을 선택했잖아.

그럼 당연히 타인에게 배척받을 각오도 했겠지?

RPK16

"이런 생존 방식"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는 제 스타일에 문제 있다고 느낀 적 없어서요.

꽃줄기를 빨아먹는 진딧물이, 자신이 잘못했다 생각할까요?

AK12

...그럼 그냥 터놓고 말하지 뭐.

너한테선 항상 위험한 냄새밖에 안 나.

너와 잘 어울릴 수 있겠다 싶은 사람도 있기는 있겠지만...

나한테 너는 맹독 범벅인 캣닙으로 밖에 안 보여.

RPK16

헤에...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선배도 비유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화법이 마음에 드나요?

전 그런 인간의 화법이 참 좋아요.

어떤 일을 다른 일에 비유해 돌려 말하는 것.

마치 제가 세상을 얼마나 아는지 시험하는 기분이에요.

AK12

그냥 어쩌다 나온 소리야.

그리고 비유법도 내가 너보다 잘 써.

RPK16

저쪽에 누가 있네요.

잡담은 이쯤 해야겠네요.

가서 인사해봐야죠.

꽃농부

으음?

아이고, 정말 예쁜 아가씨들이네요.

RPK16

어머나, 칭찬 고마워요.

그런데 처음 보는 여성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호색한 이탈리아인인 줄 알걸요?

꽃농부

하하하, 죄송합니다.

여기선 아리따운 여성을 볼 일이 드물어서 말이죠.

두 분은 이런 곳에 무슨 일이신가요?

AK12

그냥 구경하러 왔어요.

미녀와 꽃, 잘 어울리잖아요?

꽃향기도 좋은 걸 보니, 당신 같은 분들이 정성들여 키운 덕분이겠네요.

꽃농부

아, 그러시군요...

<color=#A9A9A9>자기 입으로 미녀라 하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color>

RPK16

자기 입으로 미녀라니, 과연 선배네요.

AK12

왜, 틀린 말도 아니잖아. 그쵸?

꽃농부

어우, 아무렴요!

<color=#A9A9A9>그걸 대놓고 토다는 사람까지 있네!</color>

RPK16

저 꽃밭이 다 플로라 연구소에 예속된 거라면서요?

굉장하네요, 이렇게 직접 보니 사진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커서 깜짝 놀랐어요.

꽃농부

그야 물론입죠! 자랑은 아닙니다만, 이 나라 어디를 둘러봐도 이렇게 큰 화초 재배지는 또 없을 겁니다!

AK12

저렇게 많은 꽃을, 플로라 연구소가 다 연구에 쓰나요?

꽃농부

하하하, 설마요.

대략 5~6할 정도 납품합니다.

RPK16

5~6할이라... 그래도 엄청난 양이네요.

그걸 다 어디다 쓴대요?

꽃농부

그거야 저도 모르죠.

솔직히 관심도 없고요! 그걸 무침으로 만들어 먹는다더라도 저희랑 무슨 상관입니까?

RPK16

고생해서 기른 아이들일 텐데, 매정하시군요.

AK12

그럼 나머지는요? 다 버리나요?

꽃농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깝게스리.

다 다른 데다 팔죠. 꽃집이나 예식장처럼 꽃이 잔뜩 필요한 데다가요.

플로라 연구소 산하긴 하지만, 단순한 계약 관계거든요.

그러니 그쪽의 요구량만 채우고 나면 나머진 저희 마음대로 해도 된답니다.

AK12&RPK16

......

두 인형은 잠깐 시선을 교환했다.

AK12

그러고 보니까...

???

이봐요.

꽃농부

억, 과, 관리자님!

관리자?

일하다 말고 웬 농땡인가요 아저씨...

여기서 농땡이 부려도 되는 건 저뿐이라고요.

수확에 지장 생겨도 몰라요... 어라? 누군가요 이 예쁘장한 아가씨들은. 아저씨가 데려온 꽃 판매원인가요?

RPK16

와아, 저 사람 어쩜 저렇게 선배보다 말을 예쁘게 할 수 있죠?

저 사람 입을 좀 더 크게 벌려 줘도 괜찮을까요?

AK12

마음대로 해.

관리자

오우, 아름다운 여인이 입술을 만져 주신다니 과분한 포상인데요.

RPK16

우와아... 저마저도 깜짝 놀랄 정도로 징그러운 사람이에요.

AK12

당신이 이 분들의 상사신가요?

관리자

네, 제가 이곳의 관리자입니다.

...그렇죠, 아저씨?

꽃농부

어...

그, 그야 물론입죠!

플로라에서 파견 나온 관리자십니다.

관리자

들으셨죠?

그렇대요.

AK12

왠지 모르게 얼빵한 사람이네.

관리자

아까 전부터 옆에서 지켜봤는데 말이죠...

두 분 뭡니까? 느닷없이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설마, 산업 스파이인가요?

꽃농부

그런 거였어요!?

RPK16

아까 전부터 훔쳐봤다고요?

정말 변태같네요.

AK12

관리자분께서 켕기는 게 없으시다면, 당당하게 말을 걸지 그러셨어요.

RPK16

슬금슬금, 저희가 뭘 물어보나 궁금하신 것처럼.

산업 스파이는 사실 당신 아니에요?

관리자

네에? 제가요?

에이, 그럴 리가요... 하하하...

AK12

꽤 많은 걸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잠깐 예쁜 아가씨들이랑 얘기 좀 나누실래요?

RPK16

조금 신경쓰여서 말이에요.

이 아저씨가 참 재밌는 말을 했거든요.

여성의 부탁을 거절하진 않으시겠죠?

꽃농부

저, 전 아무것도 안 말했습니다!

그, 그럼 이만 실례할게요!

기괴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듯, 농부는 부리나케 도망갔다.

AK12

버리고 갔네요.

관리자

저기 잠깐만요!

저 아저씨 너무하네, 친해진 줄 알았더니만!

RPK16

거짓말은 그만하시죠, 관리자 씨?

저 아저씨들이랑 안 익숙하죠?

딱 봐도 낯설어하던데, 서로 알게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겠죠?

관리자

...아.

AK12

어때요, 관리자 씨?

당신이 아는 걸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을까요?

관리자

이야아...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네.

그럼 두 분, 따라오시죠.

관리자

여기입니다... 들어가시죠.

AK12

...음?

RPK16

어머나.

두 인형이 방 안으로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뒤에서 문이 쾅 닫혔다.

관리자

미리 경고했잖습니까.

여긴 아가씨들 같은 사람이 올 곳이 아니라고요.

AK12

어머나, 속았네.

RPK16

이런, 함정이었군요.

안의 완전무장한 병사들을 보면서, 두 인형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