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박스·시작
"좋은 꿈을 판다는 장사꾼들은 절대 믿지 마."
폭풍우가 내리는 밤, 어떤 그림자가 다급히 방을 뒤졌다.
제길, 왜 하필 이런 때에!
밤하늘을 가로지른 번개가 방을 대낮처럼 밝혔고, 창가엔 생기 없는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그 섬광에 남자는 뭔가 눈치챘는지, 어질러질 대로 어질러진 서류 더미 위를 밟았다.
네가 우릴 배신해? 하지만 절대 마음대로 하게 두진 않겠――
우레 소리와 함께, 책상 위 탁상시계의 분침이 정각을 가리키며 소리를 내었다.
......
부우웅...
끼이이익!!
달리던 차량이 급정거하는 소리가 안젤리아의 생각을 끊었다.
저 XX 개XX가 갑자기 튀어나오고 XX이야!
휴우... 푸흡, 그래도 개라서 다행이네요.
응?
몰리도가 안젤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놀라셨죠? 최근 들어 이 주변에서 방랑자들이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와서 강도질을 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운전기사님도 엄청 긴장하셨어요.
방랑자...?
일부 난민들이 규정을 어기고 난민 수용 구역 밖으로 나와, 인적이 드문 교외를 돌아다니거든요.
주거지 무단 침입 및 금품 갈취, 심지어는 살인 사건까지 벌써 여러 건 발생했어요. 당연히 현지 법률은 깡그리 무시하고요.
말씀드린대로 방랑자들이 무리를 지어서 차량을 가로막는 사건도 여럿이라, 다들 시내를 벗어나면 예민해져요.
그 고아원도 이렇게 외딴곳에 있는데, 위험하지 않나?
고아원의 경비원은 총기 소지 허가를받았어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상황이 안 좋아져서, 벌써 도둑이 몇 번 들었다네요.
예감이 안 좋은걸. 얼마나 더 가야 해?
버얼 고아원, 버얼 고아원... 아직 30분은 더 가야 해요.
벌써 예정 시각보다 30분 늦었군.
그런 데는 밤 8시에 방문하는 것 자체로도 엄청난 실례인데.
어쩔 수 없죠 뭐... 갑자기 비가 이렇게 내렸잖아요.
교통사고로 길이 그렇게 막힐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리고 갑자기 그 고아원을 방문해야겠다 한 사람은 안젤리아 씨잖아요.
어쩌겠어, 오늘 막 정보를 입수했는데.
어휴 참...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으니, 정 늦었다 싶으시면 제가 연락해서 다른 시간을 잡아볼게요.
아니, 더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
플로라에서 리오니를 체포한 지 벌써 일주일인데, 녀석은 아무것도 토해낸 게 없어.
K는 리오니가 현지의 어떤 테러리스트 집단과 연관 있는 것 같다던데... 그러니까... "자독당"이랬나?
아, "독일자유독립당" 말씀이시군요.
영향력이 꽤 큰 극우 단체예요. 최근 몇 년 동안 강력 범죄에 연루되어 범죄 조직으로 지정됐죠.
명의 상으론 그린존과 화이트존의 생활 수요를 우선시할 것을 요구하고 난민 수용 정책과 오염지대 재개발을 반대하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민족우월주의자죠.
브레멘에 난민 수용 구역을 세워진 직후부터 난민을 노린 살인 사건이 급증했는데, 경찰 수사 결과 모든 증거가 자독당을 지목했어요.
식물이나 숭배하는 과학자가 무슨 일로 자독당이랑 엮인 거지?
글쎄요... 자독당의 자금줄의 흐름은 항상 이상하거든요. 플로라는 어쩌면 자금 세탁을 위한 중계소였을 수도 있어요.
지금이야 범죄 조직 딱지가 붙었지만, 물밑으론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는 기관이 다수 존재해요. 몰래 그들을 도와주는 민간인도 꽤 되고요.
예상이랑 전혀 다르군...
정말 기분 나빠.
그 자독당이란 놈들은 우리가 조사하는 문제랑 아직 별 관계가 없지만...
지금으로선 유일한 단서가 리오니의 휴대전화 통신 기록뿐이니 원.
그녀의 관계자를 통해 범위를 좁히는 거군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연락처들 중에서 왜 이 버얼 고아원의 원장을 콕 집으셨어요?
누구한테서 소식을 들었거든.
그 소식 때문에 고아원을 의심하신다고요?
고아원의 원장이 리오니와 한패일 것 같다니...
아무리 그래도 조금 억지 아닌가요? 식물을 연구하는 사이비교도랑 아이를 돌보는 고아원의 원장이라니...
둘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수상한 거지.
그 원장이 괜찮은 답을 제공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그렇네요, 만나보면 알 수 있겠죠!
원장 이자벨라 씨는 현지에서도 명망 높은 분이라니, 분명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이번에는 큰 진척이 있을 거란 예감이 들어요!
우리 직감이 정확했으면 좋겠네.
아, 도착했어요. 9시 10분... 너무 늦진 않았네요.
네가 계산한 것보다 10분 더 늦었잖아...
고아원으로 들어서자, 차창 밖 멀리 어린이 수십 명이 어깨를 나란히 두 줄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이끄는 하얗게 센 머리의 우아한 여인이, 차를 향해 손짓했다.
하나, 둘!
우리의 꿈... 고독하여 모든 두려움을 물리쳐 주네...
우리의 꿈... 진실되어 우리에게 날개를 일깨워 주네...
차에서 내린 안젤리아와 몰리도는 함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옅은 색의 머리카락들 사이에, 진한 머리색을 가진 아이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자매들의 미소를 영원토록 잊지 않으리...
더는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불변토록 그 말을 바위에 새겨넣으니...
새로운 생명은 희망을 품고 태어나리라...
라 라랄랄라 라 라랄랄라...
은발의 여인이 오른손으로 허공에 반원을 그리자, 아이들이 바로 노래를 멈추었다.
우와아,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의 노래라니, 정말 멋져요! 감사합니다 클로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서 약속 시간보다 늦어졌어요.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라요.
과찬이십니다, 몰리도 씨!
상호협조 위원회의 조사단분들이 이렇게 누추한 저희 고아원을 방문해 주시다니 저희야말로 영광이죠!
이 애들 모두 위원회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될 텐데요, 아주 잠깐 더 기다렸을 뿐이니 괘념치 마세요.
그렇게 말해 주시니 정말 감사드려요.
얘들아 안녕? 우리는 울릭 주석님께서 보내신 상호협조 위원회의 조사단이란다. 난 주석님의 비서 몰리도고, 이쪽은 안젤리아 씨야.
주석님께 부탁을 받아서, 이렇게 너희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어. 부족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면 걱정 말고 언제든지 말해 주렴!
하지만 아이들은 다들 피곤한 모양인지 영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이를 눈치챈 클로네 선생도 과장스럽게 손짓하며 말을 계속했다.
아하하하, 아이들이 어려서 아직 예절 교육이 더 필요하답니다!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여러분 모두 험한 길을 오셨을 테죠? 원장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몰리도 씨, 안젤리아 씨,이쪽으로.
클로네 선생은 홱 얼굴을 돌려, 아이들에게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일락, 카린, 모두를 데리고 교실로 돌아가렴.
손 등에 지고, 뛰어! 릴리안, 울지 말고!
우에엥... 원장 선생님 보고 싶어요...
에이, 릴리안 또 우네.
울보래요, 맨날 원장 선생님만 찾고. 창피하다 창피해.
"릴리안"이란 이름의 키 작은 여자애는, 선생이 꾸짖자 더 크게 울었다. 그 때문에 옆의 아이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요오오옹!! 릴리안, 손님들 앞에서 떼쓰면 안 되지. 이리온, 같이 원장 선생님 뵈러 가자꾸나.
...이거 부끄러운 꼴을 보여드렸군요. 릴리안은 아직 어려서, 원장님께서 특별히 더 잘 보살펴 달라 부탁하신 아이입니다.
아뇨 아뇨, 아직 많이 어리니 더 신경 써 줘야 하는 건 당연하죠.
면목없습니다.
아담, 아담! 어디 있습니까?
네 클로네 선생님, 무슨 일이시죠?
앤드류와 함께 순찰을 돌아 주세요.
네에? 하지만 전 경비원도 아니고 그냥 아르바이트인데요...?
조사단분들께서 오셨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요!
또 도둑이라도 들면 어떡할 겁니까!
가자, 아담. 그만 투덜대.
하아... 왜 자꾸 계약서 밖의 일까지 시키냐고...
경비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십니까?
마침 저희도 경호원이 있으니 정문을 지키도록 하죠.
이거 정말 실례가 많습니다, 안젤리아 씨.
요 며칠간 틈만 나면 난민들이 몰래 들어와서 먹을걸 훔쳐가서 말이죠...
아직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만약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요.
게다가 오늘은 귀한 손님들까지 오셨는데...
확실히, 아이들을 위해선 안전이 매우 중요하죠.
홉스, 수행원들 데리고 저 두 경비원과 함께 정문과 건물 입구를 지켜.
분부대로.
안티아랑 에르빈도 여기 경비원과 함께 주위를 순찰하면서 위험요소는 없는지 확인해.
루치아랑 레나테는 따라오고.
알았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둘이서 순찰이요...?
저기, 혹시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근방에서 난민들이 모여 만든 범죄 패거리는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해요.
특히나 여자라면... 단순히 강도질로 안 끝난다고요.
걱정 마세요, 모두 훈련으로 단련된 몸이니까요.
당신 정도라면 열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방랑자들이 이 고아원에 얼씬도 못할 겁니다.
그렇다시잖습니까, 당신도 괜한 걱정 마세요.
아... 네...
고아원 사람들, 저분들이 인형인 걸 몰라보는 것 같네요?
꼼꼼히 화장했으니, 일반인은 어지간해선 구분 못해.
이번엔 조사차 나왔으니 일반인과의 소통이 많겠지.
그럼 역시 정체를 숨기는 편이 나아.
오오... 또 하나 배웠네요.
여러분, 절 따라오시죠.
네, 안내 잘 부탁합니다.
......
많이 어두우니 발밑 조심하십시오.
원장 선생님께서 정말 목이 빠져라 여러분을 기다리셨답니다. 어젯밤부터 말씀하시길, 저희 버얼 고아원의 미래는 다 여러분께 달렸다고 하셨죠.
네, 울릭 주석님도 저희가 도울 일은 없나 확인하시고자 저희를 파견하셨어요.
이자벨라 선생님께서 이 고아원으로 불우한 아이들에게 비바람을 피할 곳을 마련해 주신 건, 요즘 같은 시대에 흔치 않은 위업이에요.
선생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면 정말 기뻐하시겠군요. 자, 이쪽입니다.
몰리도와 클로네 선생은 서로 인사치레를 주고받으며, 원장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사무실의 문이 살짝 열려있었지만, 클로네 선생은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고, 뒤따라온 릴리안이 갑자기 클로네 선생의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원장님, 계십니까? 조사단분들이 오셨습니다――!?
선생이 말하면서 문을 열었고, 눈앞의 광경에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원장 선생님?!!
중년 여성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보아, 사망한 지 한참은 된 것 같았다.
꺄아아아악!!!
모두 당장 방에서 나가!
루치아, 시신 검사해.
레나테는 방 안을 살펴보고.
전부 영상 기록으로 남겨.
라저.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질식사. 사망 시각은... 일러도 저녁 6시 이후로 보여.
싸움이 발생한 흔적도 있네요. 서랍과 책장 모두 누군가 뒤졌고요.
방 안의 값진 물건도 전부 사라졌으니, 그냥 봐선 강도 살인 사건이네요.
겉보기엔, 말이지...
클로네 선생님, 여기에 감시 카메라 있습니까?
아... 아뇨... 없습니다...
예산이 빠듯해서... 보, 보안 설비를 구입할 수가 없어서...
알겠습니다.
몰리도, 부검의와 경찰에게 연락해. 긴급 상황이니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하고.
으으...
빨리 안 가고 뭐해!?
앗... 네, 네!
모두를 진정시킨 뒤, 안젤리아도 직접 방 안을 조사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인 건, 바닥에 잔뜩 흩뿌려진 서류 더미였다.
그리고 창문 한 짝이 덜 닫혀 그 틈새로 바람이 들어와, 탁상 위의 종이들이 팔랑거렸다.
안젤리아는 바닥의 시신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강도 살인이라...
타이밍이 너무 좋은데.
......
안젤리아 씨, 원장 선생님은... 어떠신...
이미 숨이 멎었습니다.
아아...
어떻게 이런 일이...
그때, 몰리도에게 소식을 들은 홉스가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몰리도에게 원장이 방에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됐다 들었습니다. 강도 살인입니까?
겉보기엔. 아직 확실치 않아...
즉시 고아원 봉쇄하고, 새 한 마리 못 드나들게 해.
즉시 실행하겠습니다.
강도라니...
원장님께 왜 그런 잔인한 짓을...!
언제나 성심성의껏 좋은 일을 해 오신 분에게 왜!
설마, 도둑질하러 왔던 난민일까요?
분명 그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 했는데, 왜 원장 선생님을 해친 거야, 왜!
저 난민들은 당신이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왔는지 아무 관심 없습니다. 그들에게 현지인은 그저 순진한 양일 뿐이죠.
안티아, 아직 밖이지?
그렇다.
주변 상태 자세하게 검사해. 누가 고아원에 침입했다면 분명 외부에도 흔적이 있을 거야.
알았다, 에르빈과 단서를 찾아보겠다.
으아앙―― 원장 선생님! 엄마아아아!
봉제 인형을 끌어안은 릴리안이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릴리안 너 또 언제 나왔니?! 빨리 돌아가렴! 여기 있으면 원장 선생님이 이놈해요!
거짓말이야!
어서 돌아가! 떼쓰지 말고!
으아앙! 떼쓰는 거 아니야!
클로네에게 억지로 끌려가던 릴리안이 품의 인형을 떨어뜨렸다.
안젤리아가 다가가 그 인형을 주웠다.
어설픈 솜씨로 꿰맨 우스꽝스러운 봉제 인형은, 집어 들고 보니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돌려주세요!
엄마가 만들어 주신 거예요!
엄마가 나한테 주신 거예요!
안젤리아는 릴리안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인형을 돌려주었다.
릴리안은 바로 인형을 꼭 껴안았다.
미안해.
엄청 소중한 인형인가 보구나.
릴리안은 안젤리아를 힐끗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안젤리아 씨, 바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안젤리아가 릴리안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때, 그 아이의 눈빛이 살짝 다른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뭔가 말하기도 전에, 클로네는 릴리안을 데리고 방에서 나가 문을 쿵 하고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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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내리는 밤, 어떤 그림자가 다급히 방을 뒤졌다.
제길, 왜 하필 이런 때에!
밤하늘을 가로지른 번개가 방을 대낮처럼 밝혔고, 창가엔 생기 없는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그 섬광에 남자는 뭔가 눈치챘는지, 어질러질 대로 어질러진 서류 더미 위를 밟았다.
네가 우릴 배신해? 하지만 절대 마음대로 하게 두진 않겠――
우레 소리와 함께, 책상 위 탁상시계의 분침이 정각을 가리키며 소리를 내었다.
......
부우웅...
끼이이익!!
달리던 차량이 급정거하는 소리가 안젤리아의 생각을 끊었다.
저 XX 개XX가 갑자기 튀어나오고 XX이야!
휴우... 푸흡, 그래도 개라서 다행이네요.
응?
몰리도가 안젤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놀라셨죠? 최근 들어 이 주변에서 방랑자들이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와서 강도질을 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운전기사님도 엄청 긴장하셨어요.
방랑자...?
일부 난민들이 규정을 어기고 난민 수용 구역 밖으로 나와, 인적이 드문 교외를 돌아다니거든요.
주거지 무단 침입 및 금품 갈취, 심지어는 살인 사건까지 벌써 여러 건 발생했어요. 당연히 현지 법률은 깡그리 무시하고요.
말씀드린대로 방랑자들이 무리를 지어서 차량을 가로막는 사건도 여럿이라, 다들 시내를 벗어나면 예민해져요.
그 고아원도 이렇게 외딴곳에 있는데, 위험하지 않나?
고아원의 경비원은 총기 소지 허가를받았어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상황이 안 좋아져서, 벌써 도둑이 몇 번 들었다네요.
예감이 안 좋은걸. 얼마나 더 가야 해?
버얼 고아원, 버얼 고아원... 아직 30분은 더 가야 해요.
벌써 예정 시각보다 30분 늦었군.
그런 데는 밤 8시에 방문하는 것 자체로도 엄청난 실례인데.
어쩔 수 없죠 뭐... 갑자기 비가 이렇게 내렸잖아요.
교통사고로 길이 그렇게 막힐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리고 갑자기 그 고아원을 방문해야겠다 한 사람은 안젤리아 씨잖아요.
어쩌겠어, 오늘 막 정보를 입수했는데.
어휴 참...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으니, 정 늦었다 싶으시면 제가 연락해서 다른 시간을 잡아볼게요.
아니, 더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
플로라에서 리오니를 체포한 지 벌써 일주일인데, 녀석은 아무것도 토해낸 게 없어.
K는 리오니가 현지의 어떤 테러리스트 집단과 연관 있는 것 같다던데... 그러니까... "자독당"이랬나?
아, "독일자유독립당" 말씀이시군요.
영향력이 꽤 큰 극우 단체예요. 최근 몇 년 동안 강력 범죄에 연루되어 범죄 조직으로 지정됐죠.
명의 상으론 그린존과 화이트존의 생활 수요를 우선시할 것을 요구하고 난민 수용 정책과 오염지대 재개발을 반대하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민족우월주의자죠.
브레멘에 난민 수용 구역을 세워진 직후부터 난민을 노린 살인 사건이 급증했는데, 경찰 수사 결과 모든 증거가 자독당을 지목했어요.
식물이나 숭배하는 과학자가 무슨 일로 자독당이랑 엮인 거지?
글쎄요... 자독당의 자금줄의 흐름은 항상 이상하거든요. 플로라는 어쩌면 자금 세탁을 위한 중계소였을 수도 있어요.
지금이야 범죄 조직 딱지가 붙었지만, 물밑으론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는 기관이 다수 존재해요. 몰래 그들을 도와주는 민간인도 꽤 되고요.
예상이랑 전혀 다르군...
정말 기분 나빠.
그 자독당이란 놈들은 우리가 조사하는 문제랑 아직 별 관계가 없지만...
지금으로선 유일한 단서가 리오니의 휴대전화 통신 기록뿐이니 원.
그녀의 관계자를 통해 범위를 좁히는 거군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연락처들 중에서 왜 이 버얼 고아원의 원장을 콕 집으셨어요?
누구한테서 소식을 들었거든.
그 소식 때문에 고아원을 의심하신다고요?
고아원의 원장이 리오니와 한패일 것 같다니...
아무리 그래도 조금 억지 아닌가요? 식물을 연구하는 사이비교도랑 아이를 돌보는 고아원의 원장이라니...
둘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수상한 거지.
그 원장이 괜찮은 답을 제공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그렇네요, 만나보면 알 수 있겠죠!
원장 이자벨라 씨는 현지에서도 명망 높은 분이라니, 분명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이번에는 큰 진척이 있을 거란 예감이 들어요!
우리 직감이 정확했으면 좋겠네.
아, 도착했어요. 9시 10분... 너무 늦진 않았네요.
네가 계산한 것보다 10분 더 늦었잖아...
고아원으로 들어서자, 차창 밖 멀리 어린이 수십 명이 어깨를 나란히 두 줄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이끄는 하얗게 센 머리의 우아한 여인이, 차를 향해 손짓했다.
하나, 둘!
우리의 꿈... 고독하여 모든 두려움을 물리쳐 주네...
우리의 꿈... 진실되어 우리에게 날개를 일깨워 주네...
차에서 내린 안젤리아와 몰리도는 함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옅은 색의 머리카락들 사이에, 진한 머리색을 가진 아이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자매들의 미소를 영원토록 잊지 않으리...
더는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불변토록 그 말을 바위에 새겨넣으니...
새로운 생명은 희망을 품고 태어나리라...
라 라랄랄라 라 라랄랄라...
은발의 여인이 오른손으로 허공에 반원을 그리자, 아이들이 바로 노래를 멈추었다.
우와아,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의 노래라니, 정말 멋져요! 감사합니다 클로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서 약속 시간보다 늦어졌어요.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라요.
과찬이십니다, 몰리도 씨!
상호협조 위원회의 조사단분들이 이렇게 누추한 저희 고아원을 방문해 주시다니 저희야말로 영광이죠!
이 애들 모두 위원회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될 텐데요, 아주 잠깐 더 기다렸을 뿐이니 괘념치 마세요.
그렇게 말해 주시니 정말 감사드려요.
얘들아 안녕? 우리는 울릭 주석님께서 보내신 상호협조 위원회의 조사단이란다. 난 주석님의 비서 몰리도고, 이쪽은 안젤리아 씨야.
주석님께 부탁을 받아서, 이렇게 너희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어. 부족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면 걱정 말고 언제든지 말해 주렴!
하지만 아이들은 다들 피곤한 모양인지 영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이를 눈치챈 클로네 선생도 과장스럽게 손짓하며 말을 계속했다.
아하하하, 아이들이 어려서 아직 예절 교육이 더 필요하답니다!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여러분 모두 험한 길을 오셨을 테죠? 원장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몰리도 씨, 안젤리아 씨,이쪽으로.
클로네 선생은 홱 얼굴을 돌려, 아이들에게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일락, 카린, 모두를 데리고 교실로 돌아가렴.
손 등에 지고, 뛰어! 릴리안, 울지 말고!
우에엥... 원장 선생님 보고 싶어요...
에이, 릴리안 또 우네.
울보래요, 맨날 원장 선생님만 찾고. 창피하다 창피해.
"릴리안"이란 이름의 키 작은 여자애는, 선생이 꾸짖자 더 크게 울었다. 그 때문에 옆의 아이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요오오옹!! 릴리안, 손님들 앞에서 떼쓰면 안 되지. 이리온, 같이 원장 선생님 뵈러 가자꾸나.
...이거 부끄러운 꼴을 보여드렸군요. 릴리안은 아직 어려서, 원장님께서 특별히 더 잘 보살펴 달라 부탁하신 아이입니다.
아뇨 아뇨, 아직 많이 어리니 더 신경 써 줘야 하는 건 당연하죠.
면목없습니다.
아담, 아담! 어디 있습니까?
네 클로네 선생님, 무슨 일이시죠?
앤드류와 함께 순찰을 돌아 주세요.
네에? 하지만 전 경비원도 아니고 그냥 아르바이트인데요...?
조사단분들께서 오셨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요!
또 도둑이라도 들면 어떡할 겁니까!
가자, 아담. 그만 투덜대.
하아... 왜 자꾸 계약서 밖의 일까지 시키냐고...
경비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십니까?
마침 저희도 경호원이 있으니 정문을 지키도록 하죠.
이거 정말 실례가 많습니다, 안젤리아 씨.
요 며칠간 틈만 나면 난민들이 몰래 들어와서 먹을걸 훔쳐가서 말이죠...
아직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만약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요.
게다가 오늘은 귀한 손님들까지 오셨는데...
확실히, 아이들을 위해선 안전이 매우 중요하죠.
홉스, 수행원들 데리고 저 두 경비원과 함께 정문과 건물 입구를 지켜.
분부대로.
안티아랑 에르빈도 여기 경비원과 함께 주위를 순찰하면서 위험요소는 없는지 확인해.
루치아랑 레나테는 따라오고.
알았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둘이서 순찰이요...?
저기, 혹시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근방에서 난민들이 모여 만든 범죄 패거리는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해요.
특히나 여자라면... 단순히 강도질로 안 끝난다고요.
걱정 마세요, 모두 훈련으로 단련된 몸이니까요.
당신 정도라면 열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방랑자들이 이 고아원에 얼씬도 못할 겁니다.
그렇다시잖습니까, 당신도 괜한 걱정 마세요.
아... 네...
<color=#A9A9A9>고아원 사람들, 저분들이 인형인 걸 몰라보는 것 같네요?</color>
<color=#A9A9A9>꼼꼼히 화장했으니, 일반인은 어지간해선 구분 못해.</color>
<color=#A9A9A9>이번엔 조사차 나왔으니 일반인과의 소통이 많겠지.</color>
<color=#A9A9A9>그럼 역시 정체를 숨기는 편이 나아.</color>
<color=#A9A9A9>오오... 또 하나 배웠네요.</color>
여러분, 절 따라오시죠.
네, 안내 잘 부탁합니다.
......
많이 어두우니 발밑 조심하십시오.
원장 선생님께서 정말 목이 빠져라 여러분을 기다리셨답니다. 어젯밤부터 말씀하시길, 저희 버얼 고아원의 미래는 다 여러분께 달렸다고 하셨죠.
네, 울릭 주석님도 저희가 도울 일은 없나 확인하시고자 저희를 파견하셨어요.
이자벨라 선생님께서 이 고아원으로 불우한 아이들에게 비바람을 피할 곳을 마련해 주신 건, 요즘 같은 시대에 흔치 않은 위업이에요.
선생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면 정말 기뻐하시겠군요. 자, 이쪽입니다.
몰리도와 클로네 선생은 서로 인사치레를 주고받으며, 원장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사무실의 문이 살짝 열려있었지만, 클로네 선생은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고, 뒤따라온 릴리안이 갑자기 클로네 선생의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원장님, 계십니까? 조사단분들이 오셨습니다――!?
선생이 말하면서 문을 열었고, 눈앞의 광경에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원장 선생님?!!
중년 여성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보아, 사망한 지 한참은 된 것 같았다.
꺄아아아악!!!
모두 당장 방에서 나가!
루치아, 시신 검사해.
레나테는 방 안을 살펴보고.
전부 영상 기록으로 남겨.
라저.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질식사. 사망 시각은... 일러도 저녁 6시 이후로 보여.
싸움이 발생한 흔적도 있네요. 서랍과 책장 모두 누군가 뒤졌고요.
방 안의 값진 물건도 전부 사라졌으니, 그냥 봐선 강도 살인 사건이네요.
겉보기엔, 말이지...
클로네 선생님, 여기에 감시 카메라 있습니까?
아... 아뇨... 없습니다...
예산이 빠듯해서... 보, 보안 설비를 구입할 수가 없어서...
알겠습니다.
몰리도, 부검의와 경찰에게 연락해. 긴급 상황이니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하고.
으으...
빨리 안 가고 뭐해!?
앗... 네, 네!
모두를 진정시킨 뒤, 안젤리아도 직접 방 안을 조사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인 건, 바닥에 잔뜩 흩뿌려진 서류 더미였다.
그리고 창문 한 짝이 덜 닫혀 그 틈새로 바람이 들어와, 탁상 위의 종이들이 팔랑거렸다.
안젤리아는 바닥의 시신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강도 살인이라...
타이밍이 너무 좋은데.
......
안젤리아 씨, 원장 선생님은... 어떠신...
이미 숨이 멎었습니다.
아아...
어떻게 이런 일이...
그때, 몰리도에게 소식을 들은 홉스가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몰리도에게 원장이 방에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됐다 들었습니다. 강도 살인입니까?
겉보기엔. 아직 확실치 않아...
즉시 고아원 봉쇄하고, 새 한 마리 못 드나들게 해.
즉시 실행하겠습니다.
강도라니...
원장님께 왜 그런 잔인한 짓을...!
언제나 성심성의껏 좋은 일을 해 오신 분에게 왜!
설마, 도둑질하러 왔던 난민일까요?
분명 그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 했는데, 왜 원장 선생님을 해친 거야, 왜!
저 난민들은 당신이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왔는지 아무 관심 없습니다. 그들에게 현지인은 그저 순진한 양일 뿐이죠.
안티아, 아직 밖이지?
<color=#00CCFF>그렇다.</color>
주변 상태 자세하게 검사해. 누가 고아원에 침입했다면 분명 외부에도 흔적이 있을 거야.
<color=#00CCFF>알았다, 에르빈과 단서를 찾아보겠다.</color>
으아앙―― 원장 선생님! 엄마아아아!
봉제 인형을 끌어안은 릴리안이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릴리안 너 또 언제 나왔니?! 빨리 돌아가렴! 여기 있으면 원장 선생님이 이놈해요!
거짓말이야!
어서 돌아가! 떼쓰지 말고!
으아앙! 떼쓰는 거 아니야!
클로네에게 억지로 끌려가던 릴리안이 품의 인형을 떨어뜨렸다.
안젤리아가 다가가 그 인형을 주웠다.
어설픈 솜씨로 꿰맨 우스꽝스러운 봉제 인형은, 집어 들고 보니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돌려주세요!
엄마가 만들어 주신 거예요!
엄마가 나한테 주신 거예요!
안젤리아는 릴리안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인형을 돌려주었다.
릴리안은 바로 인형을 꼭 껴안았다.
미안해.
엄청 소중한 인형인가 보구나.
릴리안은 안젤리아를 힐끗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안젤리아 씨, 바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안젤리아가 릴리안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때, 그 아이의 눈빛이 살짝 다른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뭔가 말하기도 전에, 클로네는 릴리안을 데리고 방에서 나가 문을 쿵 하고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