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공세·끝
"사물이든 인간이든, 다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지."
난민 거주구, B 구역.
흐아아――어우...
이 방, 냄새 진짜 지독하네요... 오기 전까지만 해도 단체가 홍보한 대로 "화창"할 줄 알았더니...
소위 포장의 "조리 예시"를 믿는 타입이시군요?
과대 포장이라도 어느 정도 알맹이가 있어야죠, 이렇게 차이가 클 줄은 몰랐어요...
사물이든 인간이든, 다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지.
......
그나저나 여기의 인사 처리 서류, 재밌는 내용이 꽤 많네요.
일부 난민이 화이트존에 직장을 구했는데, 다 농부가 됐다네요? 1,400명이 넘는 난민들이 죄다 그 식물 연구소에 꽃 키우는 농부로 취직했어요.
네에? 그 연구소에 그렇게 많은 일자리는 없어 보이던데요?
재정 장부에 적힌 것도 똑같아. 정말 우연찮게도, 영수증에 적힌 수하인도 전부 파월이군.
고아원과 식물 연구소를 잇는 단서야.
역시 자독당은 패러데우스와 협력 관계였군요.
십중팔구 그렇겠지. 하지만 좀 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해. 이것만 가지곤 당장 울릭이 놈들 면상을 후려쳐도 꿈쩍도 않을 거야.
루치아, 주변 상황 어때?
난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
그 사이에 전혀 난민 같지 않은 녀석들도 섞였고.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겠군.
레나테, 상황 보고해.
......?
레나테?
RPK-16의 응답이 없던 그때, A 구역 방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소리를 들은 홉스가 즉시 가로막았지만, 안젤리아는 묵묵히 그를 피해 창밖을 내다봤다.
폭발로 인한 충격파와 폭음으로, 안 그래도 어수선하던 거리의 난민들이 더욱 많아졌다.
방금 소리 뭐예요?!
적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안젤리아, A 구역에서 원인불명의 폭발이 일어났다. 저 폭발에 자극받았는지 난민이 더 많아지고 있어. 상황이 좋지 않다.
신호탄 같은 거군. 누구신진 몰라도 강하게 나올 셈이야.
레나테와도 연락이...
안젤리아, 레나테와 에르빈과 연락이 두절됐다.
방금 폭발 때문인가?
AK-12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보가 거주구의 하늘에 울려 퍼지면서 "정적"을 깨뜨렸다.
얼씨구, 이번엔 또 뭐야?
삐익.
나다. ......뭐? 그럼 우린 이제 어떡하지?
...알았다, 이쪽에서 방법을 물색해보지.
무슨 일이야?
관문 초소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격리벽의 무기를 가동했는지, 움직이는 건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합니다.
네!? 그, 그럼 벽 근처의 난민들이...!
...그건 포착하는 모든 목표를 공격할 겁니다. 우리든, 난민이든, 지나가던 생쥐 한 마리든.
난민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킬 작정이군. 하긴, 혼란을 일으키면 움직이기도 쉬워질 테니.
음... 우리가 빠져나갈 구멍이 다 막혀 버렸어.
이젠 그 헬기가 유일한 희망이야.
지금 엄청 심각한 상황 아닙니까!?
뭘 그렇게 "아아, 오늘 아침은 식빵뿐이네" 같은 투로 말해요?!
따지고 보면 별반 차이 없지 뭐.
루치아, 합류할 수 있어?
옥상으로 진입할게.
AK-12가 창밖으로 몸을 내민 순간, AN-94가 황급히 그녀를 다시 안으로 잡아당겼다.
어디선가 날아든 총탄이 창문을 박살냈고, 두 인형은 몸을 낮추고 이동하면서 적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다.
안젤리아! 공격받았어!
그쪽에서 보여?
총소리 들었어. 빌어먹을, 저건 또 뭐야?
어디선가 나타난 방패를 든 로봇들이, 일렬 횡대로 늘어서 성당을 향해 접근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 손에 들린 기관단총이 불을 뿜어댔다.
성당 주변의 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지만, 벌써 많은 이들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저건 격리벽 방위군의 폭동 진압 인형입니다! 자동화 부대까지 탈취된 건가!?
과연 탈취일까.
네, 무리네요. 저런 인형은 권총으론 턱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어요!
루치아, 저것들 침투 가능해?
벌써 시도해봤는데, 원격 제어가 아니야.
모든 연결 포트를 폐쇄했어.
우릴 아주 잘 아는 놈이 준비했겠군.
무기 사용을 허가한다. 진압 인형들을 섬멸하고 우리와 합류해.
여기서 이탈한다.
라저.
안티아, 총 꺼내.
알았다.
하지만 탄약을 넉넉히 챙기지 않았다. 신중하게 사격해야 한다.
AK-12는 우선 간단히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적의 화력이 매서워, 공중으로 성당에 뛰어들긴 불가능했다.
차선책으로, 그녀와 AN-94는 서둘러 1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진압 인형들이 벌써 성당 정면으로 돌격하는 것을 본 두 인형은, 동시에 점사를 퍼부어 가까운 진압 인형 몇 기를 무력화했다.
AK-12는 탄창을 교체하면서 몸을 낮춘 채로 귀퉁이에서 나와, 곧장 성당으로 달렸다.
더 먼 위치의 진압 인형들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몸을 돌려 공격했고, AN-94도 그에 맞서 제압사격을 가했다. 한편, AK-12는 한 난민의 시체 뒤에 엎드려 시신을 거치대 삼아 반격했다.
반응이 굼뜬데? 성가시진 않아서 다행이네.
루치아! 위험해!
그때, AK-12의 눈앞에서 쓰러진 진압 인형 하나가 갑자기 폭발했다.
심상찮음을 느낀 그녀는 바로 일어나 다시 성당으로 달려갔다.
그 뒤를 AN-94가 폭발의 연기구름에 숨으면서 따랐고, 금세 성당의 외벽에 다다랐다.
안젤리아! 당장 밖으로 나와!
저 진압 인형들 안에 폭약이 잔뜩 채워졌어! 건물이 낡아서 충격을 못 견딜 거야!
이런 민간인 살해도 모자라서 저놈들이 미쳤나! 모두 창문으로 나가! 어서!!
더 많은 진압 인형들이 폭발의 엄호를 받으며 성당으로 접근해 왔다. AK-12의 정밀한 점사도 끝이 없는 그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점점 더 가까워져 가는 폭발은 8세기에 세워진 성당을 흔들었고, 오랜 세월을 견뎌 온 벽돌들도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다.
안젤리아는 성당 2층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부수면서 뛰어내렸고, 다른 일행들도 뒤이어 지면에 착지했다.
저렇게 많은 폭약은 다 어디서 난 거지?
저 자식들, 대체 무슨 속셈이야?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격리벽 쪽으로 철수합시다!
저 기총에 벌집이 되자고?
아무튼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몰리도, 너 달리기는 하지?
어, 어느 정도는요...?
날 따라 멈추지 말고 전속력으로 달려!
J! 정 안 되면 네가 업어서라도 데려와!
알겠습니다!
안젤리아, 빨리!
우리 탄약도 얼마 안 남았어!
그럼 여긴 맡긴다!
안젤리아 일행은 거주구 방향으로 달렸고, 남은 두 인형은 온힘을 다해 그들을 엄호했다.
...우리도 철수해야 한다.
아니, 조금만 더 기다려.
하지만 탄약이 거의 바닥났다. 저들을 멈추는 건 불가능해.
AN-94, 나를 믿어. 안젤리아를 믿어. 그리고 그 왕재수 이인조도 믿어 봐.
우린 여기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워야 해.
......
알았다. 모두를 믿겠다.
......!
진압 인형 몇 기가 달려들었지만, AK-12와 AN-94의 정확한 사격에 차례차례 쓰러져 갔다.
쳇, 총알 다 떨어졌어!
루치아!!
제압 사격이 멎었고, 진압 인형이 드디어 성당의 정문에 도달했다. AN-94의 마지막 총알이 그 인형의 급소를 맞췄지만, 고꾸라진 그 인형은 진흙투성이인 바닥에 넘어져 건물 근처까지 미끄러졌다.
그 순간, 눈부신 섬광이 성당 건물 옆에서 터졌다. 그 충격파로,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던 건물은 마침내 무너져내렸다.
잠시 후 붕괴된 잔해의 먼지구름과 폭발의 연기는 흩어졌지만, AK-12와 AN-94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그리고 약 100m가량 떨어진 폐가 안에서, 누군가가 망원경을 내려놨다.
지휘부에 보고. 목표의 군용 전술인형 2기의 파괴를 확인.
지휘부 수신. 저들에겐 더 이상 전술인형의 지원이 없다. 목표는 고립됐다.
나머지 두 인형은 어떻게 됐지?
행방불명이다. 15분 전, A 구역에서 폭발 후 정찰팀과 작전팀과의 연락이 두절됐지만 그들 간의 통신도 없없다.
그 인형들에게 당했겠군.
하지만 이상한데. 겨우 두 명에 폭발물을 사용하진 않았을 터다. 설마..?
제기랄, 그 자식들이다. 역시 놈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어.
지상팀은 아직 준비 안 됐나?
잠시 기다려라, 확인하겠다. ......준비 완료.
그럼 이제 불을 지필 때가 왔군. 일할 시간이다, 형제들이여!
알았다. "비둘기"에게 전달할 사항은 없나?
없다. 알아서 처리하라 해.
그 시각, 거주구 B 구역의 구 브레멘 미술관. 건물의 2층에서, 우수한 장비로 무장하고 복면을 쓴 인원들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명령이 내려졌다. 작전 준비.
드디어 때가 왔다.
판은 이미 깔렸으니, 우리도 인정사정 볼 것 없어.
그 사이비들이 벌써 판돈을 쓸어담을 셈인가 본데, 우리가 한 수 앞섰다는 건 예상 못했겠지.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그들이 믿는 신 곁으로 보내 줘라!
예!
안젤리아 일행은 주위를 경계하면서 거리를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저 멀리서, 거리의 쓰레기와 타이어가 불타는 시커먼 연기가 잇따라 피어올랐다. 곧 혼돈이 찾아온다는 신호였다.
안젤리아가 다급히 약간 높은 건물의 문을 발로 차 열고, 일행들과 함께 안으로 숨었다.
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밖을 살펴보니, 멀리서부터 인파가 몰려오는 동시에 소름끼치는 울음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멀리서 또 다시 폭발이 일어나자, 안젤리아 곁의 몰리도는 난색을 표했다.
그녀는 안젤리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의연한 태도인 안젤리아에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다니...
이렇게 보니, 자독당 놈들뿐만 아니라 파월도 내부에서 휘젓고 다니는 모양이네요. 그놈, 영향력이 상당한데요?
민중의 혼란을 일으킨 뒤, 그 틈을 타 저희를 자연스럽게 "실종"시키려 들겠죠.
이런 상황도 예상한 바입니까, 안젤리아 씨?
물론 예상했지. 철저하게 원칙적이라 오히려 무서울 정도야.
고작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일을 이렇게까지 키운 건 확실히 내 예상 밖이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야. 파월을 붙잡을 기회는 아직 있어.
미쳤습니까!?
바깥이 저렇게 돌아가는 와중에 어떻게 그자를 잡겠다는 겁니까!
지금은 헬기가 도착할 때까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야 합니다!
내 인형들이 파월의 마지막 좌표를 보내줬어.
그놈을 잡기 전까진 난 떠날 생각 없어. 바깥의 혼란이 그렇게 무서우면, 여기서 몰리도나 지키고 있어.
네?! 여기 남으라고요!?
그, 그럴 바에야 저도 안젤리아 씨랑 같이 갈래요!
다들 제정신입니까?!
저 혼자선 저렇게 많은 수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숙녀분들의 안전은 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드릴 테니까요~
진짜 말 한번 징그럽게 하네. K도 그렇고, 너네 독일 남자들은 어떻게 말을 좀 정상적으로 하는 녀석이 없냐?
그래도, 동의해 줘서 고맙다.
홉스, 그래도 싫으면 너 혼자 여기 남던가.
치잇...!
그럼 서둘러야 할 겁니다.
파월을 찾아낼 방법은 있습니까?
방법이야 항상 있지.
그런데 잠깐 기다려 봐, 아래쪽이 어째 심상치가 않아.
아까 그 이상한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엄청... 소름 끼치던데...
무언가 떠오른 안젤리아가 황급히 다시 창밖을 살펴봤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 같지 않은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역시 여기다도 손을 댔군.
슬슬 네놈의 꼬리를 끄집어내 주겠어... 윌리엄.
전체 대사 보기 (106줄)
난민 거주구, B 구역.
흐아아――어우...
이 방, 냄새 진짜 지독하네요... 오기 전까지만 해도 단체가 홍보한 대로 "화창"할 줄 알았더니...
소위 포장의 "조리 예시"를 믿는 타입이시군요?
과대 포장이라도 어느 정도 알맹이가 있어야죠, 이렇게 차이가 클 줄은 몰랐어요...
사물이든 인간이든, 다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지.
......
그나저나 여기의 인사 처리 서류, 재밌는 내용이 꽤 많네요.
일부 난민이 화이트존에 직장을 구했는데, 다 농부가 됐다네요? 1,400명이 넘는 난민들이 죄다 그 식물 연구소에 꽃 키우는 농부로 취직했어요.
네에? 그 연구소에 그렇게 많은 일자리는 없어 보이던데요?
재정 장부에 적힌 것도 똑같아. 정말 우연찮게도, 영수증에 적힌 수하인도 전부 파월이군.
고아원과 식물 연구소를 잇는 단서야.
역시 자독당은 패러데우스와 협력 관계였군요.
십중팔구 그렇겠지. 하지만 좀 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해. 이것만 가지곤 당장 울릭이 놈들 면상을 후려쳐도 꿈쩍도 않을 거야.
루치아, 주변 상황 어때?
<color=#00CCFF>난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color>
<color=#00CCFF>그 사이에 전혀 난민 같지 않은 녀석들도 섞였고.</color>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겠군.
레나테, 상황 보고해.
......?
레나테?
RPK-16의 응답이 없던 그때, A 구역 방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소리를 들은 홉스가 즉시 가로막았지만, 안젤리아는 묵묵히 그를 피해 창밖을 내다봤다.
폭발로 인한 충격파와 폭음으로, 안 그래도 어수선하던 거리의 난민들이 더욱 많아졌다.
방금 소리 뭐예요?!
적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color=#00CCFF>안젤리아, A 구역에서 원인불명의 폭발이 일어났다. 저 폭발에 자극받았는지 난민이 더 많아지고 있어. 상황이 좋지 않다.</color>
신호탄 같은 거군. 누구신진 몰라도 강하게 나올 셈이야.
<color=#00CCFF>레나테와도 연락이...</color>
<color=#00CCFF>안젤리아, 레나테와 에르빈과 연락이 두절됐다.</color>
<color=#00CCFF>방금 폭발 때문인가?</color>
AK-12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보가 거주구의 하늘에 울려 퍼지면서 "정적"을 깨뜨렸다.
얼씨구, 이번엔 또 뭐야?
삐익.
나다. ......뭐? 그럼 우린 이제 어떡하지?
...알았다, 이쪽에서 방법을 물색해보지.
무슨 일이야?
관문 초소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격리벽의 무기를 가동했는지, 움직이는 건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합니다.
네!? 그, 그럼 벽 근처의 난민들이...!
...그건 포착하는 모든 목표를 공격할 겁니다. 우리든, 난민이든, 지나가던 생쥐 한 마리든.
난민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킬 작정이군. 하긴, 혼란을 일으키면 움직이기도 쉬워질 테니.
음... 우리가 빠져나갈 구멍이 다 막혀 버렸어.
이젠 그 헬기가 유일한 희망이야.
지금 엄청 심각한 상황 아닙니까!?
뭘 그렇게 "아아, 오늘 아침은 식빵뿐이네" 같은 투로 말해요?!
따지고 보면 별반 차이 없지 뭐.
루치아, 합류할 수 있어?
<color=#00CCFF>옥상으로 진입할게.</color>
AK-12가 창밖으로 몸을 내민 순간, AN-94가 황급히 그녀를 다시 안으로 잡아당겼다.
어디선가 날아든 총탄이 창문을 박살냈고, 두 인형은 몸을 낮추고 이동하면서 적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다.
<color=#00CCFF>안젤리아! 공격받았어!</color>
<color=#00CCFF>그쪽에서 보여?</color>
총소리 들었어. 빌어먹을, 저건 또 뭐야?
어디선가 나타난 방패를 든 로봇들이, 일렬 횡대로 늘어서 성당을 향해 접근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 손에 들린 기관단총이 불을 뿜어댔다.
성당 주변의 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지만, 벌써 많은 이들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저건 격리벽 방위군의 폭동 진압 인형입니다! 자동화 부대까지 탈취된 건가!?
과연 탈취일까.
네, 무리네요. 저런 인형은 권총으론 턱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어요!
루치아, 저것들 침투 가능해?
<color=#00CCFF>벌써 시도해봤는데, 원격 제어가 아니야.</color>
<color=#00CCFF>모든 연결 포트를 폐쇄했어.</color>
우릴 아주 잘 아는 놈이 준비했겠군.
무기 사용을 허가한다. 진압 인형들을 섬멸하고 우리와 합류해.
여기서 이탈한다.
<color=#00CCFF>라저.</color>
<color=#00CCFF>안티아, 총 꺼내.</color>
<color=#00CCFF>알았다.</color>
<color=#00CCFF>하지만 탄약을 넉넉히 챙기지 않았다. 신중하게 사격해야 한다.</color>
AK-12는 우선 간단히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적의 화력이 매서워, 공중으로 성당에 뛰어들긴 불가능했다.
차선책으로, 그녀와 AN-94는 서둘러 1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진압 인형들이 벌써 성당 정면으로 돌격하는 것을 본 두 인형은, 동시에 점사를 퍼부어 가까운 진압 인형 몇 기를 무력화했다.
AK-12는 탄창을 교체하면서 몸을 낮춘 채로 귀퉁이에서 나와, 곧장 성당으로 달렸다.
더 먼 위치의 진압 인형들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몸을 돌려 공격했고, AN-94도 그에 맞서 제압사격을 가했다. 한편, AK-12는 한 난민의 시체 뒤에 엎드려 시신을 거치대 삼아 반격했다.
<color=#00CCFF>반응이 굼뜬데? 성가시진 않아서 다행이네.</color>
<color=#00CCFF>루치아! 위험해!</color>
그때, AK-12의 눈앞에서 쓰러진 진압 인형 하나가 갑자기 폭발했다.
심상찮음을 느낀 그녀는 바로 일어나 다시 성당으로 달려갔다.
그 뒤를 AN-94가 폭발의 연기구름에 숨으면서 따랐고, 금세 성당의 외벽에 다다랐다.
<color=#00CCFF>안젤리아! 당장 밖으로 나와!</color>
<color=#00CCFF>저 진압 인형들 안에 폭약이 잔뜩 채워졌어! 건물이 낡아서 충격을 못 견딜 거야!</color>
이런 민간인 살해도 모자라서 저놈들이 미쳤나! 모두 창문으로 나가! 어서!!
더 많은 진압 인형들이 폭발의 엄호를 받으며 성당으로 접근해 왔다. AK-12의 정밀한 점사도 끝이 없는 그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점점 더 가까워져 가는 폭발은 8세기에 세워진 성당을 흔들었고, 오랜 세월을 견뎌 온 벽돌들도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다.
안젤리아는 성당 2층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부수면서 뛰어내렸고, 다른 일행들도 뒤이어 지면에 착지했다.
저렇게 많은 폭약은 다 어디서 난 거지?
저 자식들, 대체 무슨 속셈이야?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격리벽 쪽으로 철수합시다!
저 기총에 벌집이 되자고?
아무튼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몰리도, 너 달리기는 하지?
어, 어느 정도는요...?
날 따라 멈추지 말고 전속력으로 달려!
J! 정 안 되면 네가 업어서라도 데려와!
알겠습니다!
<color=#00CCFF>안젤리아, 빨리!</color>
<color=#00CCFF>우리 탄약도 얼마 안 남았어!</color>
그럼 여긴 맡긴다!
안젤리아 일행은 거주구 방향으로 달렸고, 남은 두 인형은 온힘을 다해 그들을 엄호했다.
...우리도 철수해야 한다.
아니, 조금만 더 기다려.
하지만 탄약이 거의 바닥났다. 저들을 멈추는 건 불가능해.
AN-94, 나를 믿어. 안젤리아를 믿어. 그리고 그 왕재수 이인조도 믿어 봐.
우린 여기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워야 해.
......
알았다. 모두를 믿겠다.
......!
진압 인형 몇 기가 달려들었지만, AK-12와 AN-94의 정확한 사격에 차례차례 쓰러져 갔다.
쳇, 총알 다 떨어졌어!
루치아!!
제압 사격이 멎었고, 진압 인형이 드디어 성당의 정문에 도달했다. AN-94의 마지막 총알이 그 인형의 급소를 맞췄지만, 고꾸라진 그 인형은 진흙투성이인 바닥에 넘어져 건물 근처까지 미끄러졌다.
그 순간, 눈부신 섬광이 성당 건물 옆에서 터졌다. 그 충격파로,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던 건물은 마침내 무너져내렸다.
잠시 후 붕괴된 잔해의 먼지구름과 폭발의 연기는 흩어졌지만, AK-12와 AN-94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그리고 약 100m가량 떨어진 폐가 안에서, 누군가가 망원경을 내려놨다.
지휘부에 보고. 목표의 군용 전술인형 2기의 파괴를 확인.
<color=#00CCFF>지휘부 수신. 저들에겐 더 이상 전술인형의 지원이 없다. 목표는 고립됐다.</color>
나머지 두 인형은 어떻게 됐지?
<color=#00CCFF>행방불명이다. 15분 전, A 구역에서 폭발 후 정찰팀과 작전팀과의 연락이 두절됐지만 그들 간의 통신도 없없다.</color>
그 인형들에게 당했겠군.
하지만 이상한데. 겨우 두 명에 폭발물을 사용하진 않았을 터다. 설마..?
제기랄, 그 자식들이다. 역시 놈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어.
지상팀은 아직 준비 안 됐나?
<color=#00CCFF>잠시 기다려라, 확인하겠다. ......준비 완료.</color>
그럼 이제 불을 지필 때가 왔군. 일할 시간이다, 형제들이여!
<color=#00CCFF>알았다. "비둘기"에게 전달할 사항은 없나?</color>
없다. 알아서 처리하라 해.
그 시각, 거주구 B 구역의 구 브레멘 미술관. 건물의 2층에서, 우수한 장비로 무장하고 복면을 쓴 인원들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명령이 내려졌다. 작전 준비.
드디어 때가 왔다.
판은 이미 깔렸으니, 우리도 인정사정 볼 것 없어.
그 사이비들이 벌써 판돈을 쓸어담을 셈인가 본데, 우리가 한 수 앞섰다는 건 예상 못했겠지.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그들이 믿는 신 곁으로 보내 줘라!
예!
안젤리아 일행은 주위를 경계하면서 거리를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저 멀리서, 거리의 쓰레기와 타이어가 불타는 시커먼 연기가 잇따라 피어올랐다. 곧 혼돈이 찾아온다는 신호였다.
안젤리아가 다급히 약간 높은 건물의 문을 발로 차 열고, 일행들과 함께 안으로 숨었다.
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밖을 살펴보니, 멀리서부터 인파가 몰려오는 동시에 소름끼치는 울음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멀리서 또 다시 폭발이 일어나자, 안젤리아 곁의 몰리도는 난색을 표했다.
그녀는 안젤리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의연한 태도인 안젤리아에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다니...
이렇게 보니, 자독당 놈들뿐만 아니라 파월도 내부에서 휘젓고 다니는 모양이네요. 그놈, 영향력이 상당한데요?
민중의 혼란을 일으킨 뒤, 그 틈을 타 저희를 자연스럽게 "실종"시키려 들겠죠.
이런 상황도 예상한 바입니까, 안젤리아 씨?
물론 예상했지. 철저하게 원칙적이라 오히려 무서울 정도야.
고작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일을 이렇게까지 키운 건 확실히 내 예상 밖이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야. 파월을 붙잡을 기회는 아직 있어.
미쳤습니까!?
바깥이 저렇게 돌아가는 와중에 어떻게 그자를 잡겠다는 겁니까!
지금은 헬기가 도착할 때까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야 합니다!
내 인형들이 파월의 마지막 좌표를 보내줬어.
그놈을 잡기 전까진 난 떠날 생각 없어. 바깥의 혼란이 그렇게 무서우면, 여기서 몰리도나 지키고 있어.
네?! 여기 남으라고요!?
그, 그럴 바에야 저도 안젤리아 씨랑 같이 갈래요!
다들 제정신입니까?!
저 혼자선 저렇게 많은 수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숙녀분들의 안전은 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드릴 테니까요~
진짜 말 한번 징그럽게 하네. K도 그렇고, 너네 독일 남자들은 어떻게 말을 좀 정상적으로 하는 녀석이 없냐?
그래도, 동의해 줘서 고맙다.
홉스, 그래도 싫으면 너 혼자 여기 남던가.
치잇...!
그럼 서둘러야 할 겁니다.
파월을 찾아낼 방법은 있습니까?
방법이야 항상 있지.
그런데 잠깐 기다려 봐, 아래쪽이 어째 심상치가 않아.
아까 그 이상한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엄청... 소름 끼치던데...
무언가 떠오른 안젤리아가 황급히 다시 창밖을 살펴봤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 같지 않은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역시 여기다도 손을 댔군.
슬슬 네놈의 꼬리를 끄집어내 주겠어... 윌리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