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난수
EP.13.25 · 이중난수

망설임 금물 Ⅳ

"별거 없어, 세계 평화야.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전쟁과 두려움 속에서 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해."

-41-5-4First

1 / 142
전체 대사 보기 (138줄)

난민 거주구 B 구역.

난민 A

연락됐어?!

난민 B

아니, 어떻게 해도 연락이 안 돼...

난민 A

신호는 분명 멀쩡한데 왜...

난민 B

우... 우리, 파월 씨한테 버려진 거 아니야?

난민 A

우리가 무능한 탓에 일을 그르쳐서...

그때, 천장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난민 A

뭐야!? 놈들이 여길 찾아냈나?!

난민 B

쉬잇, 빨리 도망쳐!

???

목표 확인. 처리한다.

타타타탕!!

난민 A

으...윽...

우리... 이제... 자유인 거지...?

???

그래, 축하한다 쓰레기들. 너희는 이제 자유다.

타앙!

난민 거주구의 어느 골목길.

미약한 힘으로 밀어봤자, 밀려오는 해일을 막을 순 없다.

적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도망치는 파월은 자신을 향해 위협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확실히 느꼈다.

수행원

파월 씨, 위험――으악!!

파월의 심복이 그의 앞을 막아섰고,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그를 맞혔다.

하지만 파월은 애도할 여유가 없었다. 이리저리 부딪힌 끝에, 그는 마침내 난민 구호 센터 지하의 오래된 술 창고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살아남은 그의 호위는, 이제 단 두 명밖에 없었다.

???

항복하시죠, 파월 씨.

술 창고 밖에서 그를 쫓는 사냥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이곳을 포위한 것이었다.

???

여기에 뭐가 숨겨져 있는진 알 바 아닙니다만, 이제 당신은 끝입니다.

더는 도망칠 구석도 없으니, 얌전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십시오.

당신이 여기서 죽는 걸 원친 않습니다. 그래도 친구 사이잖습니까.

파월

친구는 무슨, 써먹을 가치가 있으니까겠지!

???

틀린 말은 아니죠. 그렇게 이해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 필욘 없었잖습니까. 저희에게 잘 협조하면 됐을 것을.

파월

네놈들이 날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너희가 날 버림패 취급하는 걸 모를 줄 알았나! 내가 얌전히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어!?

???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로 기운 낭비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부하들한테 얌전히 있으라고 하세요. 허튼짓을 하면 수류탄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호위

파월 씨, 이제 어쩌죠?

남은 심복 중 하나가 간절한 눈빛으로 파월에게 물었다. 하지만 파월은 대답하지 않고, 지하실로 들어오는 유일한 입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파월

자네들... 우리의 이상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나?

그가 소리를 낮춰 심복들에게 질문했다.

호위

무, 물론입니다. 파월 씨 아니었으면 저희는 진작에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파월

그럼 총 내려.

호위

네!?

파월

내 말 믿고, 총 내려.

잠시 후, 완전무장한 무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파월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파월

내 부하들이 억울하게 죽었다 하진 않겠어. 그런데 설마, 당신이 직접 행차할 줄이야...

버틀러 중위, 방위군의 장교씩이나 되는 몸이 나 하나 잡겠다고 친히 나섰어? 너무 후한 대접 아닌가?

무장인원

공부가 부족한 모양이군. 오늘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잘 알 텐데?

파월

지금 수수께끼할 시간 없잖아, 원하는 게 뭐야?

무장인원

그것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 네 장부 말이다.

파월

아하... 우리가 손을 잡았단 증거를 인멸할 속셈이구만.

...그럼, 내가 그걸 건네주면, 날 살려주기라도 할 건가?

무장인원

확답은 못하지만, 네게 다른 선택지는 없지.

스스로 내놓던가, 아님 우리가 네 시체에서 찾게 하던가다.

파월

......

파월

......

그래그래, 그럼 줄 수밖에 없겠군...

파월은 양손으로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이더니, 오른손을 번쩍 들며 소리질렀다.

파월

쏴라!

그의 두 심복이 바로 무기를 들었다.

타타타탕!!

물론, 그런 기습이 군인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그 둘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집이 되었다.

그러나 파월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왼손의 방독면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오른손에 쥔 것을 바닥에 내던졌다.

순식간에, 노란 안개가 창고에 퍼졌다.

건장한 성인일지라도 이 정도로 짙은 농도라면 1분도 채 못 버틴다는 것을, 파월은 잘 알았다.

그러니 방독면을 쓴 자신은 안개가 흩어지기 전에 도망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파월은 술 창고의 벽을 향해 내달렸다.

타앙!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총알 한 발이 노란 안개를 뚫고 날아와, 그의 종아리를 꿰뚫었다. 격통과 함께, 파월은 몇 년의 역사를 지녔을 참나무 술통 앞에 넘어졌다.

그리고 그 노란 안개 속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한 인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왔다.

머리에는 녹색 형광빛을 뿜는 열화상 관측기와, 얼굴엔 산소통이 결합된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무장인원

우릴 얕봐도 너무 얕봤군. 그 시답잖은 환각제에 대비를 안 했다고 생각했나?

군을 너무 만만하게 봤어, 파월.

효과가 약한 거 같은데, 방독면을 벗고 직접 품질 테스트나 하지 그래?

파월

으으... 의리도 없는 놈들!

무장인원

말이 너무 심한걸? 우린 서로 상부상조하던 관계였잖나.

그저, 그런 것도 다 언젠가는 끝나는 날이 있을 뿐이야.

파월

하하하... 네놈들, 이게 뭔지 정말 모르는군?

뭐, 이제 와서 알아봤자 늦었지만...

품질 테스트라 했나...? 아주 잘 듣는데, 뒤나 한번 돌아보시지!

그 순간, 그들 뒤에서 소름끼치는 괴물의 비명이 들렸다.

무장인원들이 식겁하며 뒤를 돌아보니, 거기엔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분명 총알 세례를 맞고 즉사했을 파월의 호위들이, 다시 일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괴물이 되었다.

그들의 옷은 관절 부위에서 튀어나온 규소 결정으로 찢어져, 예전부터 붕괴 감염으로 인해 변질된 살갗이 드러났다.

하지만 가장 소름끼치는 것은, 몸의 총알 구멍에서부터 결정화되어 가는 피부였다.

지금 이 자리에 유적기술 전문가가 있었다면, 저들이 무엇으로 변했는지 단번에 알아채고 그 이름을 외쳤을 것이다.

급성 붕괴 복사 감염자, 통칭 ELID.

무장인원

파월 이 자식...!

하지만 파월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저 두 ELID와 술 창고 안에 갇힌 건, 그들뿐이었다.

브레멘 술 창고의 비밀 밀실에, 엘레베이터가 도착했다.

높게 쌓아 올려진 중세의 술통들 뒤에 엘레베이터가 숨겨져 있다는 건 극소수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그리고 파월은 이 비밀 덕분에 또 다시 목숨을 건졌다.

파월은 비틀거리며 엘레베이터에서 나와, 밀실의 탁상에 기댔다.

파월

빌어먹을, 결국 한 방 맞았잖아...

빨리 지혈해야...

???

자, 여기 붕대.

파월

아, 고맙...?!!

그 순간 파월은 식은땀을 흘렸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탁상 옆에 이미 누군가 있었다.

그 여자는 붕대가 아닌 권총으로 파월을 겨누고 있었다.

자기소개가 없어도, 둘은 서로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안젤리아

드디어 잡았다, 파월.

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산더미야.

파월

그... 그럴 리가... 여긴 어떻게... 여긴 다른 문도 없는데!?

안젤리아

이상할 게 어딨어, 여긴 예전에 나라의 고위 인사가 쓰던 대피소였는데.

마침 우리 일행에 그런 고위 인사의 수행 비서가 있어서 말이지.

안젤리아는 말하면서 뒤를 가리켰다.

가리킨 뒤편의 또 다른 여성은, 매우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파월

우리가 서로 싸우는 틈을 타... 내 형제들은 어떻게 따돌렸지?

안젤리아

지금쯤이라면 그 진압 인형들에게 전멸되기 직전이겠지. 설마, 겨우 총 몇 자루 가지고 완전무장한 군부대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냐?

물론, 확실히 도움은 됐어. 네 "형제들"이 부패 경찰들을 견제해 줬으니까. 결과적으로, 너희 둘 다 Win-Win이었단 거지.

파월

이 비겁한...!

안젤리아

마음대로 지껄이셔. 자, 아직 밑이 싸우느라 정신없는 동안에 편한 곳으로 가자고.

J, 이 자식 포박해.

안젤리아

......?

J? 뭐해?

홉스

당분간은 대답이 없을 겁니다, 안젤리아 씨.

안젤리아

...?!

홉스가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흠씬 얻어맞고 기절한 J를 질질 끌고 오다, 바닥에 휙 내던졌다.

홉스

물론 저항했습니다만, 보다시피 소용은 없었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탄약이 얼마 없으실 테니, 허튼 짓 말고 총을 내려놓으십시오.

미래의 협력 파트너에게 상해를 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기절시킨 채로 제가 업어다 드릴 순 있죠.

몰리도는 겁에 질려 안젤리아 곁에 붙었고, 안젤리아는 하는 수 없이 총을 바닥에 내려놨다.

홉스

올바른 판단입니다. 이제 저 돼지놈을 포박해 주십시오.

안젤리아는 수갑을 꺼내 파월에게 채우고,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안젤리아

그래...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셨군, 민족주의자 씨.

우리 행동이 여태까지 계속 누출됐는데, 내통자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했지.

몰리도

홉스 씨!

너무해요, 당신을 믿었는데!

홉스

계집애는 닥쳐. 어른의 대화에 끼어들지 마라.

...네, 바로 저였습니다.

하지만 진작부터 의심하고 계셨겠죠?

안젤리아

난 나랑 우리 아가씨들 외엔 다 의심하는 성격이라.

그럼 얘기나 해 주실까? 자독당의 일원이 무슨 연유로 상호협조 위원회에 간첩으로 들어갔는지.

홉스

그런 건 이젠 아무래도 좋지 않습니까?

안젤리아

나랑 협력하고 싶다며.

그럼 먼저 성의를 보여야지.

이유가 꽤 궁금해서 말이야. 일단 돈 때문은 아니겠지. 네 경력이라면 어디서든 받아 줄 테니.

복수를 위해서도 아니야. 넌 연방군 중에서도 드물게 정치 심사를 통과한 놈에, 통일당 정부도 네 심기를 건드리진 않았을 테니까.

홉스

참 자세히도 뒷조사를 하셨군요.

안젤리아

그래서 더 궁금하단 말이야...

범유럽 연맹과 소련이 손을 잡는 추세가 갈수록 현저해지는 이 국면에서, 너희 자독당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홉스

......

안젤리아

대답해, 구 연방 국방군 KSK 선임원사, 볼프강 홉스.

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나? 말해 봐, 왜 자독당 같은 졸렬한 민족주의 극우 쓰레기들이 주장하는 미래를 지지하는지 말이야.

아, 말투가 더러운 건 이해해. 누가 뭐래도 협력 관계를 맺으려면 멀리 바라봐야 하는 법이라서.

홉스

...배짱이 정말 대단하군. 그런 직위인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좋습니다, 대답해드리죠. 첫 번째로, 제 본명은 프란츠 사렉입니다. 전쟁 당시엔 분명히 KSK 제2돌격중대의 정찰소대장이었습니다만, 이놈들...

흡스는 바닥의 J를 한번 더 걷어차고 말을 이었다.

홉스

...슈타지도 몰랐던 사실로, 저는 동시에 연방헌법수호청의 정보장교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제가 왜 이러느냐... 당연히, 이 나라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섭니다!

안젤리아

뭔... 아예 2차대전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라도 한 거야?

홉스

푸하하하핫!!

자독당은 그저 이름만 번지르르한 간판에 불과합니다! 생활에 불만 있는 파리들과 쓰다 버릴 생쥐들을 끌어들이기에 딱인 간판!

그런 것보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시죠.

어째서 범유럽 상호협조 위원회 주석의 경호원직에까지 침투했나, 어째서 슈타지마저 신분을 알아내지 못했나, 어째서 오늘 우리가 이곳의 폭도들을 일거에 청소했나를 말입니다.

"홉스"가 말하던 도중, 다시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무장인원들이 내렸다.

다들 상처를 입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무장인원

대장님? 계시면 미리 말씀해 주십쇼, 당하신 줄 알았습니다.

홉스

아래 상황은?

무장인원

폭도들은 모조리 해치웠습니다만, 형제 셋이 희생됐습니다.

망할 놈들, 환각제에 고농도 붕괴 복사 분진까지 섞다니. 보호 장비 덕분에 살았지, 하마터면 저희까지 감염될 뻔했습니다!

무장인원들의 리더는 파월의 총상을 콱 짓밟았다.

파월

으악!!

무장인원

입 다물어 이 돼지 자식아!

홉스

그럼 계속할까요. 지난 전쟁에서, 우린 패배했습니다. 도이칠란트의 피와 땅, 그리고 연약한 민족공동체를 수호하는 싸움에서, 우린 패배했습니다. 바로 당신들에게 말입니다.

물론, 패자에게 발언권이 없음은 압니다.

하지만 저와 제 동지들이 목숨 바쳐 지킨 나라가 이상에 홀린 루크사트주의자들과 시체나 숭배하는 오염지대의 사이비 놈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결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용납하지 않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힘은 당신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제군들, 우리가 누구인가!

무장인원 일동

독일 경찰 제9변방대대입니다!

안젤리아

......

홉스

당신의 질문엔 대답해드렸습니다. 그럼, 제가 질문할 차례입니다.

안젤리아 씨,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안젤리아

별거 없어, 세계 평화야.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전쟁과 두려움 속에서 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해.

홉스

...안젤리아 씨는 참으로 농담을 좋아하시는군요.

안젤리아

이런 직장에서 구르는데, 유머 감각이라도 없으면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거든.

홉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세계 평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도 묻고 싶습니다만.

안젤리아

내가 겉보기보단 단순한 사람이라서 말이지... 이상을 위해 목숨까지 던질 생각은 없어.

나한텐 그냥 돈이랑 안락한 삶만 있으면 돼. 허구한 날 돈 달라는 알바생들을 데리고 사는 건 정말 힘들다고.

홉스

당신 정도의 인물이라면 상당한 걸 요구할 줄 알았습니다만... 돈과 자유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죠. 솔직히 너무 싱거울 정도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만 얻는다면, 저 난민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당신을 건들지 못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야말로, 이곳의 진정한 지배자입니다.

안젤리아

말은 거창하게 잘하는데, 지금 고작 저 난민 구역만 가지고 왕국이라 자랑하는 건 아니지?

홉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다른 것은 좀 더 안전한 곳에 가서 보여드리도록 하죠.

그럼 얌전히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젤리아 씨. 말씀드렸듯, 미래의 협력 파트너에게 무력을 동원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장인원들이 안젤리아에게 다가왔다.

몰리도

안젤리아 씨...

홉스

이런, 깜빡할 뻔했군.

너는 필요 없어.

시꺼먼 총구가 몰리도를 향했다.

홉스

정말 유감입니다, 부지런한 비서가 이런곳에 목숨을 잃었다니.

안심하십시오, 울릭 주석껜 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직장 동료로서 함께 일해,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몰리도

아... 안 돼요... 제발...!

그녀는 겁에 질린듯 겨우 입밖으로 소리를 내며 애원했다.

하지만 몰리도의 눈빛에선 두려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홉스를 노려보며 마치 시위를 당긴 활처럼 몸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저 한손을 등으로 향한, 더없이 숙달된 자세...

목숨이 경각에 달한 것 같은 그녀가 사실은 운명의 카드를 쥐고 있었다.

안젤리아

잠깐! 요구 하나 더 추가한다!

홉스

벌써 정이라도 드셨습니까? 이 여자를 살려 달라고요?

안젤리아

아니, 걘 됐어. 그보다, 너도 그 옛날 얘기 알지? 닭이랑 고양이랑 개랑 당나귀가 꾸린 음악대 이야기 말이야.

그 "브레멘 음악대" 공연 티켓 한 장...

아니, 5장 구해 줘. 내 애들이랑 같이 보러 가게.

홉스

지금은 농담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봅니다만.

안젤리아

누가 농담이래?

콰아앙!!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무너지는 벽을 향했다. 그리고 벽을 뚫고 들어온 훤칠한 형체의 발차기에 무장인원 한 명이 날아갔다.

AK15

제가 늦었습니까?

안젤리아

다신 지각하지 마, 이딴 썰렁한 농담으로 시간 끌긴 질색이라고.

홉스

넌...! 어째서 살아있는 거지?!

안젤리아

내가 여길 그냥 직감으로 알아낸 줄 알았냐, 이 얼간아!

무장인원

대장님, 뒤에도 매복이!

홉스

뭐라고?!

RPK16

오늘은 참 스펙타클한 날이네요. 여기저기 불타고 폭발하고, 인간들은 모두 나방처럼 불속에서 팔락이니 말이에요.

홉스

너도 그때 그 인형...!

대체 어느 틈에?!

RPK16

스스로를 불사르는 게, 어쩌면 나방의 천성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