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금물 Ⅴ
"오늘은 정말이지, 엄청 긴 하루였어요... 이제 다 끝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난민 거주구의 성당.
바닥엔 시체가 즐비했고, 방금까지 끓어오르던 피는 서서히 식어 갔다.
바닥에 제압된 홉스는 비록 상처는 가벼웠지만, 표정만큼은 저 시체들처럼 차가웠다.
이런 경건한 곳에서 살육이라니, 그야말로 신성모독이네요...
두 분이 제때 와 주신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레나테 씨, 에르빈 씨.
제게 감사할 것 없습니다. 전부 안젤리아의 계획입니다.
홉스 씨, 제가 묶은 매듭 마음에 드시나요?
그리고 파월 씨, 처음 뵙는데 인사 안 해주시나요?
......
......
홉스는 입을 꾹 다물었고, 파월은 AK-15가 벽을 뚫고 들어오던 순간 놀라 실신한 상태였다.
안젤리아는 J에게 다가가, 쪼그려앉아 그를 살펴봤다.
야, 일어나지?
.....
J 씨, 자꾸 그렇게 죽은 척하시면 에르빈이 이번엔 당신 옆의 벽을 부술 거예요.
......
어머, 정말 기절했나 봐요.
...맥박은 안정적이네. 죽진 않겠다.
그거 참 나쁜 소식이네요.
그러게. 그래도 그나마 나은 소식도 왔군.
AK-15가 뚫고 들어온 구멍 너머로, 경찰차와 구급차, 그리고 무장 헬기의 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려왔다.
안젤리아, 5분이면 도착한다. 상황 정리했나?
파월 붙잡았고, 자독당의 간첩도 잡았다. 홉스였어.
J가 얻어터진 거 빼고 나머진 다 괜찮아.
그래?
제자리서 대기해라, 이제 3분이면 도착하겠군.
통신 종료.
J가 어떤 꼴인지 보고 싶어서 안달 났구만.
안젤리아 씨... 홉스 씨는...
걱정 마, 녀석이 울릭 주석한테까지 누가 되진 않게 할 테니까.
K한테 맡기면 차라리 감옥이 낫다고 생각하겠지.
어... 그건 좀 심하지 않을까요?
내숭떨지 마라, 위선자 놈들.
지금 뭐라고...
시치미 떼지 마라. 2053년, 넌 어디서 뭘 하고 있었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2058년에는?
잔말 많은 녀석은 질색이니까 똑바로 말해.
내가 어째서 이러느냐 물었지?
눈앞의 난민 구역을 보고 그 이유를 생각해 봐라.
의회는 국민과 사회를 위해 싸우겠다 약속했기에, 우리도 모든 것을 이 땅에 바쳤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뭐지? 놈들이 우리 독일에게 무얼 했는지 보란 말이다! 저런 난민 따위를 먹여 살리느라, 지켜야 할 국민까지 착취하고 있다!
네년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의심한 자독당마저도, 놈들이 규졍한 최저임금과 시간당 7마르크 34페니 추가수당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단 말이다!
하, 결국엔 돈 때문이네.
뭐, 그것도 괜찮지. 적어도 내가 예전에 알던 누구보단 현실적인 이유니.
현실 속에서 사는 사람이어야 동정받을 자격도 있는 법이거든.
뭘 안다고 지껄이냐!
우리 부대의 정예도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위원회라는 것들은 엄한 돈을 이런 쓰레기촌을 만들어서 거지들이나 기르고 있어!
우리는 이딴 걸 바라고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이 아니다!
듣다 못한 안젤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홉스를 두고 자리를 떴다.
저 인생 낭비에 대한 변론에 어울려 줄 줄 알았는데요.
예전에 알던 그 녀석 덕분에, 저런 것들은 뭘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거든.
설령 된다 해도, 난 그런 거 잘 못 해. 어느 영감탱이가 더 잘하겠지.
이런 귀찮은 일을 떠맡긴 사람이 바로 그 영감님이잖아요?
이번에 멍청이들은 머릿속이 다 비슷비슷하단 걸 알았으니까 됐어.
울릭 주석과의 통화를 마친 몰리도가 안젤리아에게 왔다.
안젤리아 씨, 방금 주석님과 통화했어요.
아주 중요한 말이 있으시다면서,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으시대요.
아까 호출했던 헬기가 곧 오는데, 괜찮다면 같이 가시겠어요?
음... 그러지.
여기 일 다 처리하고 주석을 만나러 갈게. 만나는 김에 지난 며칠 간의 성과도 보고해야지.
한편, 어딘가에서.
실패했습니다.
홉스도 놈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는 굳센 자다. 놈들이 바라는 건 아무것도 실토하지 않을 테지.
우린 어떡하죠?
타라. 지금은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는 한, 패배는 아니다.
독일의 각 세력의 개입으로, 난민 격리 구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동은 빠르게 진압됐다.
홉스와 파월은 연행됐고, K도 지원군과 함께 도착했다.
J는 어딨지?
나랑 몰리도가 괜찮은지부터 살펴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보이는군. 그래서 어딨어?
저기 구석에 엎어져 있는 거.
K는 의료진을 데리고 쏜살같이 J에게 달려갔다.
와아, K 씨랑 J 씨 엄청 친한 사이였군요? 분명 J 씨가 걱정돼――
갑자기 터져나온 K의 폭소가, 몰리도의 말을 끊었다.
......
K 씨가 저렇게 해맑게 웃는 건 처음 들어봐요...
나도 저렇게 징그럽게 웃는 놈은 처음이다... 아 맞다, 에르빈.
네.
레나테랑 먼저 정비하러 가.
나중에 은신처에서 보자.
알겠습니다.
다른 두 인형분들은요?
성당에서 파괴됐어.
괜찮아, 진작에 백업해 뒀으니까. 은신처로 돌아가서 예비 소체로 깨우면 돼.
우린 주석이나 보러 가자고. 말할 게 잔뜩이야.
네, 수송기도 마침 도착했어요.
어디 있는데?
성당 앞의 광장이요.
응, 알았어.
몰리도 씨, 가시게요...?
뭐야, 벌써 깼어?
후후후... 수천만 소녀의 꿈을 품은 몸인데, 쉽게 쓰러질 순 없죠...
어우...
괜찮으신지 보고 가려던 참이었는데, 그럴 필요 없겠네요.
아이고오오, 사실 엄청 아파 죽겠어요...
그런데, 몰리도 씨가 절 그렇게 걱정해 주시다니...
아뇨, 당신이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감상하려던 거예요.
예쁜 아가씨일수록 사람을 잘 속인다니까요.
히히히.
일 다 끝나면 같이 커피라도 한잔하시겠어요?
아라비아 원두 어때요? 제가 좋은 가게 하나 아는데.
아라비아...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요. 좋아요!
......
자리 비켜 줘야 하나?
얼레, 계셨습니까?
J, 뭘 또 작업 걸어? 구급차에 얌전히 누워나 있어.
예이 예이.
그럼 약속입니다 몰리도 씨!
네에~!
그리고 안젤리아 씨?
응?
무슨 말 할지 아시죠?
뭐 대충. 커피 얘기지?
하하아야야야... 네, 커피 얘깁니다! 잊지 말아 주세요.
금방 또 만날 거란 예감이 들어서 말입니다.
제발 빗나가길 빌지.
하하하하.
J는 들것에 실려갔다.
수송기 착륙 수속부터 해야 하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알았어.
안젤리아, 잠깐 얘기 좀 하자.
...구석진 곳.
너도 눈치챘나 보군.
그래, 브레멘 시 전체가 사전에 준비된 함정 같다.
매번 우리보다 한발 앞섰어.
예상보다 적이 더 깊은 곳까지 침투한 상태란 뜻이지.
홉스 말인가?
아니, 자독당한테 이렇게 큰 규모로 일을 벌일 능력은 없어. 다른 놈들이 있는 거지.
오늘 일어난 사건은 너무 복잡해. 놈들뿐이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어.
이렇게 난민 구역 곳곳에 매복한 것만 해도 놈들의 한계야.
확실히... 자독당뿐이라면, 플로라 연구소에까지 미리 잠복했을 수가 없지.
게다가 연구소에선 누군가가 우리가 오기 훨씬 전에 미리 자료를 모조리 삭제했어.
그 정도로 높은 권한을 가진 인물인데, 리오니는 알지도 못했고.
뭐, 그 사람은 애초부터 쓰다 버릴 장기말이긴 했지만.
플로라 연구소에서 확보한 자료는 현재 복구를 시도 중이다.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길 바라야지.
고아원도 수상해. 정보에 따르면, 그 아이들 모두 실험체로 끌려간 거야.
그런데 애들의 상태를 봐선, 학대는 물론 차별당한 흔적도 없었어.
실험용 생쥐를 정성들여 보살폈다...?
파월은 말 그대로 "연결책"에 불과할지도 몰라. 그 눈에 띄는 수송 과정을 은폐하기 위해 양아치들의 손을 빌렸다면 아귀가 맞아.
그놈은 자독당 명의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을 패러데우스에게 넘겼어.
그 "배송업"이 난민 구역에서만 진행됐으니 추적은 까다롭겠지만...
결론만 따지면, 놈은 패러데우스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을 것 같아.
윌리엄의 직속 부하도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여전히 어딘가에 은밀히 숨어 있겠지.
홉스도 딱히 아는 게 없을 테고.
고아원 원장과 파월의 거래가 왜 이뤄졌는지도 모를걸?
홉스는 내가 직접 심문하지.
마지막으로, 이 난민 구역 말인데...
초기 정찰 중 거리에서 발견한 분말을 분석팀에게 보냈다. 아직 결과는 안 나왔어.
안젤리아는 자신이 주웠던 탄피를 K에게 건넸다.
처음 봤을 땐 붕괴 오염 물질로 만든 더티밤 같은 거라 생각했거든? 하지만 여기서 나타난 ELID는 성질이 전혀 달라. 아예 차원이 다른 물건이야.
지금 생각난 건데, 어쩌면 플로라 연구소의 화초와 관계 있지 않을까?
......
이 탄피의 출처도 조사하지.
안젤리아 씨! 안젤리아 씨!
여기 있어.
수송기 도착했어요!
알았어, 금방 갈게.
네가 울릭 주석을 뵙고 온 뒤에 다시 얘기하지.
그래, 넌 내 인형들이나 다 고쳐놔.
갔다 오면 대충 답이 나왔겠지.
수송기 안에서.
죄송해요 안젤리아 씨, 여객기에 비해선 엄청 불편하죠...?
괜찮아.
저기... 안젤리아 씨 어깨 좀 빌려도 될까요?
그래.
헤헤헤, 고마워요.
오늘 하루 종일 달려서, 엄청 피곤해요...
푹 쉬어.
안젤리아는 어깨에 기댄 몰리도의 머리를 톡톡 다독였다.
잠시 후, 맹렬한 엔진소리와 함께 수송기가 이륙했다.
오늘은 정말이지, 엄청 긴 하루였어요... 이제 다 끝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
안젤리아는 더는 난민 구역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대충 상상은 되었다.
저물어 가는 석양 아래, 타오르던 불길은 사그라들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저녁 안개에 녹아들고 있을 것이다.
정말 이 세상에 신이란 게 존재해 지금 그곳을 내려다본다면, 아마 아직 희망이 가득한 폐허를 떠올릴 것이라고, 안젤리아는 생각했다.
전체 대사 보기 (129줄)
난민 거주구의 성당.
바닥엔 시체가 즐비했고, 방금까지 끓어오르던 피는 서서히 식어 갔다.
바닥에 제압된 홉스는 비록 상처는 가벼웠지만, 표정만큼은 저 시체들처럼 차가웠다.
이런 경건한 곳에서 살육이라니, 그야말로 신성모독이네요...
두 분이 제때 와 주신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레나테 씨, 에르빈 씨.
제게 감사할 것 없습니다. 전부 안젤리아의 계획입니다.
홉스 씨, 제가 묶은 매듭 마음에 드시나요?
그리고 파월 씨, 처음 뵙는데 인사 안 해주시나요?
......
......
홉스는 입을 꾹 다물었고, 파월은 AK-15가 벽을 뚫고 들어오던 순간 놀라 실신한 상태였다.
안젤리아는 J에게 다가가, 쪼그려앉아 그를 살펴봤다.
야, 일어나지?
.....
J 씨, 자꾸 그렇게 죽은 척하시면 에르빈이 이번엔 당신 옆의 벽을 부술 거예요.
......
어머, 정말 기절했나 봐요.
...맥박은 안정적이네. 죽진 않겠다.
그거 참 나쁜 소식이네요.
그러게. 그래도 그나마 나은 소식도 왔군.
AK-15가 뚫고 들어온 구멍 너머로, 경찰차와 구급차, 그리고 무장 헬기의 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려왔다.
<color=#00CCFF>안젤리아, 5분이면 도착한다. 상황 정리했나?</color>
파월 붙잡았고, 자독당의 간첩도 잡았다. 홉스였어.
J가 얻어터진 거 빼고 나머진 다 괜찮아.
<color=#00CCFF>그래?</color>
<color=#00CCFF>제자리서 대기해라, 이제 3분이면 도착하겠군.</color>
통신 종료.
J가 어떤 꼴인지 보고 싶어서 안달 났구만.
안젤리아 씨... 홉스 씨는...
걱정 마, 녀석이 울릭 주석한테까지 누가 되진 않게 할 테니까.
K한테 맡기면 차라리 감옥이 낫다고 생각하겠지.
어... 그건 좀 심하지 않을까요?
내숭떨지 마라, 위선자 놈들.
지금 뭐라고...
시치미 떼지 마라. 2053년, 넌 어디서 뭘 하고 있었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2058년에는?
잔말 많은 녀석은 질색이니까 똑바로 말해.
내가 어째서 이러느냐 물었지?
눈앞의 난민 구역을 보고 그 이유를 생각해 봐라.
의회는 국민과 사회를 위해 싸우겠다 약속했기에, 우리도 모든 것을 이 땅에 바쳤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뭐지? 놈들이 우리 독일에게 무얼 했는지 보란 말이다! 저런 난민 따위를 먹여 살리느라, 지켜야 할 국민까지 착취하고 있다!
네년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의심한 자독당마저도, 놈들이 규졍한 최저임금과 시간당 7마르크 34페니 추가수당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단 말이다!
하, 결국엔 돈 때문이네.
뭐, 그것도 괜찮지. 적어도 내가 예전에 알던 누구보단 현실적인 이유니.
현실 속에서 사는 사람이어야 동정받을 자격도 있는 법이거든.
뭘 안다고 지껄이냐!
우리 부대의 정예도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위원회라는 것들은 엄한 돈을 이런 쓰레기촌을 만들어서 거지들이나 기르고 있어!
우리는 이딴 걸 바라고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이 아니다!
듣다 못한 안젤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홉스를 두고 자리를 떴다.
저 인생 낭비에 대한 변론에 어울려 줄 줄 알았는데요.
예전에 알던 그 녀석 덕분에, 저런 것들은 뭘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거든.
설령 된다 해도, 난 그런 거 잘 못 해. 어느 영감탱이가 더 잘하겠지.
이런 귀찮은 일을 떠맡긴 사람이 바로 그 영감님이잖아요?
이번에 멍청이들은 머릿속이 다 비슷비슷하단 걸 알았으니까 됐어.
울릭 주석과의 통화를 마친 몰리도가 안젤리아에게 왔다.
안젤리아 씨, 방금 주석님과 통화했어요.
아주 중요한 말이 있으시다면서,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으시대요.
아까 호출했던 헬기가 곧 오는데, 괜찮다면 같이 가시겠어요?
음... 그러지.
여기 일 다 처리하고 주석을 만나러 갈게. 만나는 김에 지난 며칠 간의 성과도 보고해야지.
한편, 어딘가에서.
실패했습니다.
홉스도 놈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는 굳센 자다. 놈들이 바라는 건 아무것도 실토하지 않을 테지.
우린 어떡하죠?
타라. 지금은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는 한, 패배는 아니다.
독일의 각 세력의 개입으로, 난민 격리 구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동은 빠르게 진압됐다.
홉스와 파월은 연행됐고, K도 지원군과 함께 도착했다.
J는 어딨지?
나랑 몰리도가 괜찮은지부터 살펴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보이는군. 그래서 어딨어?
저기 구석에 엎어져 있는 거.
K는 의료진을 데리고 쏜살같이 J에게 달려갔다.
와아, K 씨랑 J 씨 엄청 친한 사이였군요? 분명 J 씨가 걱정돼――
갑자기 터져나온 K의 폭소가, 몰리도의 말을 끊었다.
......
K 씨가 저렇게 해맑게 웃는 건 처음 들어봐요...
나도 저렇게 징그럽게 웃는 놈은 처음이다... 아 맞다, 에르빈.
네.
레나테랑 먼저 정비하러 가.
나중에 은신처에서 보자.
알겠습니다.
다른 두 인형분들은요?
성당에서 파괴됐어.
괜찮아, 진작에 백업해 뒀으니까. 은신처로 돌아가서 예비 소체로 깨우면 돼.
우린 주석이나 보러 가자고. 말할 게 잔뜩이야.
네, 수송기도 마침 도착했어요.
어디 있는데?
성당 앞의 광장이요.
응, 알았어.
몰리도 씨, 가시게요...?
뭐야, 벌써 깼어?
후후후... 수천만 소녀의 꿈을 품은 몸인데, 쉽게 쓰러질 순 없죠...
어우...
괜찮으신지 보고 가려던 참이었는데, 그럴 필요 없겠네요.
아이고오오, 사실 엄청 아파 죽겠어요...
그런데, 몰리도 씨가 절 그렇게 걱정해 주시다니...
아뇨, 당신이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감상하려던 거예요.
예쁜 아가씨일수록 사람을 잘 속인다니까요.
히히히.
일 다 끝나면 같이 커피라도 한잔하시겠어요?
아라비아 원두 어때요? 제가 좋은 가게 하나 아는데.
아라비아...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요. 좋아요!
......
자리 비켜 줘야 하나?
얼레, 계셨습니까?
J, 뭘 또 작업 걸어? 구급차에 얌전히 누워나 있어.
예이 예이.
그럼 약속입니다 몰리도 씨!
네에~!
그리고 안젤리아 씨?
응?
무슨 말 할지 아시죠?
뭐 대충. 커피 얘기지?
하하아야야야... 네, 커피 얘깁니다! 잊지 말아 주세요.
금방 또 만날 거란 예감이 들어서 말입니다.
제발 빗나가길 빌지.
하하하하.
J는 들것에 실려갔다.
수송기 착륙 수속부터 해야 하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알았어.
안젤리아, 잠깐 얘기 좀 하자.
...구석진 곳.
너도 눈치챘나 보군.
그래, 브레멘 시 전체가 사전에 준비된 함정 같다.
매번 우리보다 한발 앞섰어.
예상보다 적이 더 깊은 곳까지 침투한 상태란 뜻이지.
홉스 말인가?
아니, 자독당한테 이렇게 큰 규모로 일을 벌일 능력은 없어. 다른 놈들이 있는 거지.
오늘 일어난 사건은 너무 복잡해. 놈들뿐이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어.
이렇게 난민 구역 곳곳에 매복한 것만 해도 놈들의 한계야.
확실히... 자독당뿐이라면, 플로라 연구소에까지 미리 잠복했을 수가 없지.
게다가 연구소에선 누군가가 우리가 오기 훨씬 전에 미리 자료를 모조리 삭제했어.
그 정도로 높은 권한을 가진 인물인데, 리오니는 알지도 못했고.
뭐, 그 사람은 애초부터 쓰다 버릴 장기말이긴 했지만.
플로라 연구소에서 확보한 자료는 현재 복구를 시도 중이다.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길 바라야지.
고아원도 수상해. 정보에 따르면, 그 아이들 모두 실험체로 끌려간 거야.
그런데 애들의 상태를 봐선, 학대는 물론 차별당한 흔적도 없었어.
실험용 생쥐를 정성들여 보살폈다...?
파월은 말 그대로 "연결책"에 불과할지도 몰라. 그 눈에 띄는 수송 과정을 은폐하기 위해 양아치들의 손을 빌렸다면 아귀가 맞아.
그놈은 자독당 명의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을 패러데우스에게 넘겼어.
그 "배송업"이 난민 구역에서만 진행됐으니 추적은 까다롭겠지만...
결론만 따지면, 놈은 패러데우스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을 것 같아.
윌리엄의 직속 부하도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여전히 어딘가에 은밀히 숨어 있겠지.
홉스도 딱히 아는 게 없을 테고.
고아원 원장과 파월의 거래가 왜 이뤄졌는지도 모를걸?
홉스는 내가 직접 심문하지.
마지막으로, 이 난민 구역 말인데...
초기 정찰 중 거리에서 발견한 분말을 분석팀에게 보냈다. 아직 결과는 안 나왔어.
안젤리아는 자신이 주웠던 탄피를 K에게 건넸다.
처음 봤을 땐 붕괴 오염 물질로 만든 더티밤 같은 거라 생각했거든? 하지만 여기서 나타난 ELID는 성질이 전혀 달라. 아예 차원이 다른 물건이야.
지금 생각난 건데, 어쩌면 플로라 연구소의 화초와 관계 있지 않을까?
......
이 탄피의 출처도 조사하지.
안젤리아 씨! 안젤리아 씨!
여기 있어.
수송기 도착했어요!
알았어, 금방 갈게.
네가 울릭 주석을 뵙고 온 뒤에 다시 얘기하지.
그래, 넌 내 인형들이나 다 고쳐놔.
갔다 오면 대충 답이 나왔겠지.
수송기 안에서.
죄송해요 안젤리아 씨, 여객기에 비해선 엄청 불편하죠...?
괜찮아.
저기... 안젤리아 씨 어깨 좀 빌려도 될까요?
그래.
헤헤헤, 고마워요.
오늘 하루 종일 달려서, 엄청 피곤해요...
푹 쉬어.
안젤리아는 어깨에 기댄 몰리도의 머리를 톡톡 다독였다.
잠시 후, 맹렬한 엔진소리와 함께 수송기가 이륙했다.
오늘은 정말이지, 엄청 긴 하루였어요... 이제 다 끝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
안젤리아는 더는 난민 구역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대충 상상은 되었다.
저물어 가는 석양 아래, 타오르던 불길은 사그라들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저녁 안개에 녹아들고 있을 것이다.
정말 이 세상에 신이란 게 존재해 지금 그곳을 내려다본다면, 아마 아직 희망이 가득한 폐허를 떠올릴 것이라고, 안젤리아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