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네의 꿈
"작년 이날 이 마당에서 서로 복숭아 꽃을 보며 얼굴을 붉혔네."
심야, 그리폰 기지의 지휘관 사무실.
문밖에는 각 부서의 담당자가 업무 배정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하벨 씨가 제공한 보급 물자 덕분에 기지의 인형 보충률이 약 50%에 도달해, 기본적인 운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 앞에는 아직도 처리해야 할 업무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지휘관님, 저희가 방금 확인한 재고 물자와 목록을 대조한 보고서예요. 메일과 시스템에 모두 전송했습니다.
수고했어, 바로 확인할게.
정말 쉬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안색이 안 좋으신데...
괜찮아, 괜찮아.
스프링필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망설이다, 결국 사무실을 나섰다.
주인님, 식당의 식재료 주문 목록과 예산 신청 모두 제출했습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
수고했어, 바로 확인할게.
G36은 무너져 내린 서류 더미를 다시 쌓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지휘관, IOP에서 저번 물자의 수령 확인을 재촉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도 목록 대조가 안 끝났습니까?
아, 잠시만요, 스프링필드가 방금 목록을 두고 갔는데...
난 산더미 같은 서류 더미를 뒤져야 했다.
카리나, 스프링필드가 가져온 검수표 어디로 보냈는지 물어봐.
조용한 사무실엔 내가 서류를 뒤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카리나? 또 무슨 할인 행사 광고라도 찾아보니?
나중에 하고 좀 도와!
배시시 웃으며 대답해야 할 사람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카리나?
나는 뒤를 돌아보고서야 아무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
이 넓은 사무실엔 처리되기를 기다리는 서류 더미와, 순간 넋을 잃은 나밖에 없었다.
아... 카리나는 휴가지 참...
탁상 위의 서류 너머로 손을 뻗어 커피잔을 한모금 마시려 했다.
하지만 잔은 텅 비었고, 바닥에는 그저께... 아니, 그끄저께 마시고 남은 커피의 말라붙은 찌꺼기뿐이었다.
......
며칠 전, 그리폰 기지의 인간 직원 정기 신체검사일.
지휘관님! 검사 안 받은 사람 이제 저희 둘밖에 안 남았어요!
아아, 정기 검사일이구나...
지금 처리하던 거만 끝내고 갈게.
아이 참, 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윽, 콜록콜록...
나보단 네 몸상태가 더 걱정인걸.
요즘 들어 계속 기침하던데, 잠수함 기지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그러지 않았어?
저, 전 괜찮아요, 그냥 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 그래요.
...아, 또 은근슬쩍 말 돌리려 하지 마세요! 자, 빨리 같이 검사 받으러 가요!
하지만 아직 일이 잔뜩 남았는데...
저도 있잖아요? 같이 도와드릴 테니까 어서요!
자 자, 어서 검사받으러 가요! 시간 많이 걸리는 일도 아닌데요!
카리나의 손에 이끌려, 난 싫은 티를 내면서도 신체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렇게 2시간 후, 검사가 종료됐다.
거 봐, 양호하다잖아. 그래서 굳이 검사 안 받아도 된다 했는데. 이럴 시간에 서류를 몇 장이나 더 처리했을――
......
나보다 먼저 검사를 마친 카리나는 대기실의 작은 의자 방석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카리나?
......
잠들었나?
잠든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것을 본 나는 코트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도 잠들고...
며칠 내내 일해서 피곤했나 보네.
카리나는 깊이 잠든 듯했다.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 카리나의 앞머리를 손으로 넘기려 했는데, 손끝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열이야...? 빨리 의사한테――
주사... 주사 맞기 싫어...
저... 일해야...
얘가 자면서도 억지를 부리네.
카리나의 잠꼬대를 무시하고, 나는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 들어 진료실로 뛰어갔다.
벌써 몇 번째일까, 나는 다시 한번 카리나의 진단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오랜 시간 지속된 고열로 인해 몸 상태가 악화된 정황이, 수치로 내 뇌리에 박혔다.
자책감, 미안함, 후회...
복잡한 감정들이 한데 뭉쳐 내 마음을 짓누르고, 개미처럼 심장을 갉아먹었다.
분명 괜찮아질 거야...
의사도 더 악화되지만 않으면 치료받고 금방 퇴원할 수 있다 했어...
그래... 그렇게 씩씩한 녀석인데, 겨우 이 정도 병에 질 리가 없지...
똑똑똑.
뒤에서 정중하게 탁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과로로 쓰러진 줄 알았습니다, 지휘관. 왜 통신을 받지 않았죠?
아... 눈치 못 챘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황급히 진단 보고서를 서랍 깊숙이 쑤셔넣었다.
무슨 일이시죠? 급한 용무십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방금 말했던 물자 검수표를 서둘러 제출해 주세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철혈 전용 훈련장의 일정을 전부 취소했습니다.
네? 철혈 훈련장을요? 이유가 뭐죠?
카리나의 업무 일정 기록을 보니 자리가 부족하여, 철혈의 훈련장을 잠시 대 패러데우스 전투 훈련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대 패러데우스전 훈련...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당신도 몸조심하시길.
헬리안 씨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살피고선, 한숨을 쉬고 돌아갔다.
......
한참 뒤, 카리나의 탁상에서 그녀가 휴가를 내기 전까지 작성 중이던 대 패러데우스 전투 훈련 계획서를 찾아냈다.
계획의 사전 준비는 거의 다 완료된 상태였고, 수집된 데이터의 교정을 진행할 차례였다.
카리나... 다 낫고 돌아오면, 네가 있을 때처럼 질서정연하게 잘 돌아가는 기지를 보여 줄게.
나는 손에 든 계획서를 꼬옥 쥐었다. 탁상의 사진 속 카리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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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그리폰 기지의 지휘관 사무실.
문밖에는 각 부서의 담당자가 업무 배정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하벨 씨가 제공한 보급 물자 덕분에 기지의 인형 보충률이 약 50%에 도달해, 기본적인 운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 앞에는 아직도 처리해야 할 업무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지휘관님, 저희가 방금 확인한 재고 물자와 목록을 대조한 보고서예요. 메일과 시스템에 모두 전송했습니다.
수고했어, 바로 확인할게.
정말 쉬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안색이 안 좋으신데...
괜찮아, 괜찮아.
스프링필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망설이다, 결국 사무실을 나섰다.
주인님, 식당의 식재료 주문 목록과 예산 신청 모두 제출했습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
수고했어, 바로 확인할게.
G36은 무너져 내린 서류 더미를 다시 쌓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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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시만요, 스프링필드가 방금 목록을 두고 갔는데...
난 산더미 같은 서류 더미를 뒤져야 했다.
카리나, 스프링필드가 가져온 검수표 어디로 보냈는지 물어봐.
조용한 사무실엔 내가 서류를 뒤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카리나? 또 무슨 할인 행사 광고라도 찾아보니?
나중에 하고 좀 도와!
배시시 웃으며 대답해야 할 사람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카리나?
나는 뒤를 돌아보고서야 아무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
이 넓은 사무실엔 처리되기를 기다리는 서류 더미와, 순간 넋을 잃은 나밖에 없었다.
아... 카리나는 휴가지 참...
탁상 위의 서류 너머로 손을 뻗어 커피잔을 한모금 마시려 했다.
하지만 잔은 텅 비었고, 바닥에는 그저께... 아니, 그끄저께 마시고 남은 커피의 말라붙은 찌꺼기뿐이었다.
......
며칠 전, 그리폰 기지의 인간 직원 정기 신체검사일.
지휘관님! 검사 안 받은 사람 이제 저희 둘밖에 안 남았어요!
아아, 정기 검사일이구나...
지금 처리하던 거만 끝내고 갈게.
아이 참, 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윽, 콜록콜록...
나보단 네 몸상태가 더 걱정인걸.
요즘 들어 계속 기침하던데, 잠수함 기지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그러지 않았어?
저, 전 괜찮아요, 그냥 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 그래요.
...아, 또 은근슬쩍 말 돌리려 하지 마세요! 자, 빨리 같이 검사 받으러 가요!
하지만 아직 일이 잔뜩 남았는데...
저도 있잖아요? 같이 도와드릴 테니까 어서요!
자 자, 어서 검사받으러 가요! 시간 많이 걸리는 일도 아닌데요!
카리나의 손에 이끌려, 난 싫은 티를 내면서도 신체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렇게 2시간 후, 검사가 종료됐다.
거 봐, 양호하다잖아. 그래서 굳이 검사 안 받아도 된다 했는데. 이럴 시간에 서류를 몇 장이나 더 처리했을――
......
나보다 먼저 검사를 마친 카리나는 대기실의 작은 의자 방석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카리나?
......
잠들었나?
잠든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것을 본 나는 코트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도 잠들고...
며칠 내내 일해서 피곤했나 보네.
카리나는 깊이 잠든 듯했다.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 카리나의 앞머리를 손으로 넘기려 했는데, 손끝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열이야...? 빨리 의사한테――
주사... 주사 맞기 싫어...
저... 일해야...
얘가 자면서도 억지를 부리네.
카리나의 잠꼬대를 무시하고, 나는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 들어 진료실로 뛰어갔다.
벌써 몇 번째일까, 나는 다시 한번 카리나의 진단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오랜 시간 지속된 고열로 인해 몸 상태가 악화된 정황이, 수치로 내 뇌리에 박혔다.
자책감, 미안함, 후회...
복잡한 감정들이 한데 뭉쳐 내 마음을 짓누르고, 개미처럼 심장을 갉아먹었다.
분명 괜찮아질 거야...
의사도 더 악화되지만 않으면 치료받고 금방 퇴원할 수 있다 했어...
그래... 그렇게 씩씩한 녀석인데, 겨우 이 정도 병에 질 리가 없지...
똑똑똑.
뒤에서 정중하게 탁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과로로 쓰러진 줄 알았습니다, 지휘관. 왜 통신을 받지 않았죠?
아... 눈치 못 챘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황급히 진단 보고서를 서랍 깊숙이 쑤셔넣었다.
무슨 일이시죠? 급한 용무십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방금 말했던 물자 검수표를 서둘러 제출해 주세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철혈 전용 훈련장의 일정을 전부 취소했습니다.
네? 철혈 훈련장을요? 이유가 뭐죠?
카리나의 업무 일정 기록을 보니 자리가 부족하여, 철혈의 훈련장을 잠시 대 패러데우스 전투 훈련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대 패러데우스전 훈련...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당신도 몸조심하시길.
헬리안 씨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살피고선, 한숨을 쉬고 돌아갔다.
......
한참 뒤, 카리나의 탁상에서 그녀가 휴가를 내기 전까지 작성 중이던 대 패러데우스 전투 훈련 계획서를 찾아냈다.
계획의 사전 준비는 거의 다 완료된 상태였고, 수집된 데이터의 교정을 진행할 차례였다.
카리나... 다 낫고 돌아오면, 네가 있을 때처럼 질서정연하게 잘 돌아가는 기지를 보여 줄게.
나는 손에 든 계획서를 꼬옥 쥐었다. 탁상의 사진 속 카리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