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과 엮여 Ⅱ
"자네는 세 번째 부류일세, 지휘관. 싸우는 이유를 아는 자."
M200가 세이프하우스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여기는 M200, 인질과 합류에 성공!
오오 드디어 왔구나!
여기는 SL8! 상태 양호, 언제든지 작전 참여 가능!
가면서 말해요!
울란을 따돌리긴 했지만, 글래디에이터와 이성질체 한 명이 아직 따라오고 있어서 상황이 좋지 않아요!
알았어, 그런데 다른 애들은?
글래디에이터를 상대로 유격 중이에요!
돌아가서 지원하자.
네? 하지만 VHS 씨가 우리보고 먼저...
저 앞에 적이 있잖아.
어차피 우리 둘만으론 돌파 못――
그렇게 말씨름하던 두 인형은 어느 순간 생각이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각... 또각... 또각... 구두굽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눈에 초점 없는 이성질체들이 그들 곁을 지나 멀리 사라졌고, 뒤이어 온 낡은 외장의 하얀 기갑이 소리없이 그들을 덮쳐, 보이는 모든 것을 뜯고 부쉈다.
인형 5명 전원 소실.
제8차 모의전... 경과 시간 18분... 시스템 평가 등급 - B.
이렇게 빨리 인질과 합류할 수 있다는 건, 퍼즐 소대도 훈련을 완수할 능력이 충분하단 뜻이야.
일시 정지. 작전을 다시 한번 검토해보렴.
작전 회의를 위해 다시 모이는 인형들에게 조언을 해 주려던 그때, 뒤에서 누가 살며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휘관,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더 시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시죠.
자세한 사항은 크루거 님께서 직접 전달하실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옹기종기 모인 퍼즐 소대를 마지막으로 한번 뒤돌아 본 뒤, 나는 별 수 없이 한숨을 쉬며 헬리안 씨를 따라 나섰다.
잠시 후, 크루거 씨의 사무실.
오랜만에 들어와 보니, 정말 감개무량한 느낌이 마치 그리폰에 처음 입사했을 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더없이 듬직한 모습의 그분은, 들어온 나에게 손에 든 술잔을 들었다.
한잔하겠나, 지휘관?
업무 중엔 음주를 안 하시는 분이라 생각했습니다만.
그렇네만, 오늘은 좀 특별해서 말이지.
정말 안 마실 건가? 꽤 고급인데.
크루거 씨는 술병을 들어, 투명한 술잔에 맑은 술을 따랐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는 그분의 맞은편에 앉아, 공손히 술잔을 받았다.
지난번에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서도 꽤 시간이 흘렀군.
한동안은 아주 평온한 나날이었어.
확실히,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허,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사람이나 할 소릴 하는군.
여태까지 고생을 많이 해서 빨리 늙었나 봅니다.
하하하, 자넨 전술지휘관으로서의 실력만이 아니라 상사한테 푸념하는 방식도 독특하구만.
어...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내가 가볍게 웃자, 크루거 씨도 또 코웃음을 쳤다.
내 솔직히 말하네만, 자네가 팔디스키에서 살아 돌아올 줄은 몰랐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밖의 일이었지.
......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뜨겁게 달궈진 살갗, 사방에 잔뜩 널브러진 인형들의 잔해, 카리나의 절망적인 눈빛...
나는 말없이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마치 그날처럼, 뱃속이 타들어갔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신경쓰지 말고 해 주십시오.
...본디, 자네의 임무는 철혈을 제압하는 것뿐이었네.
군과 패러데우스에 비하면, 그동안 우리를 괴롭혀 왔던 철혈은 개미 수준이지.
원래대로라면 자네가 맡아선 안 될 적들이었네만, 자네는 아주 훌륭하게 이겨냈어.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네.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이제 "하지만"이 나올 차례겠죠?
흠, 그래... 하지만, 그 기지에서 철혈의 엘더 브레인은 물론 M4A1, M16A1까지 사라지고 말았어.
게다가 군의 위협은 당분간 없겠지만, 뒤에서 그들을 돕던 자는 아직도 저 밖 어딘가에 숨어 있고.
결코 자네의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네만, 대국적으로 본다면 우리의 일은 새발의 피에 불과해.
그럼, 이제부터 저희가 그 배후의 흑막을 끄집어내는 겁니까?
적절한 인선이 필요하네.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일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할 테니.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나도 오래전엔 군인이었어서,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만을 믿는다네.
그런데, 전장에서 생환한 사람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뉘지.
첫째는 아침에 드리우는 햇살마저도 적의 공습으로 착각하는, 평생을 공포에 떨며 사는 사람.
둘째는 살육과 폭력에 심취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쾌락으로 삼는 사람.
그리고 셋째는... 바로 자네 같은 사람일세, 지휘관.
저 같은 사람이라니, 어떤...?
어째서 싸우는 것인지를 깨달은 사람.
신념을 지니게 되어 더욱 기민하고, 용감하며, 또 다른 전장도 능히 헤쳐나갈 줄 아는 사람.
...저는 그저, 제가 지킬 수 있는 것을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자네가 추구하는 그것이 바로 평화일세. 그리고 지금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나?
그 도리는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도 알게 되더군요.
그래도 자넨 위축되지 않았어. 목적을 이룰 어떤 기회도, 앞으로도 자네는 포기하지 않을 테지.
아무래도 제게 내리실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는 말씀이신 것 같군요.
설마... 단서가 나왔습니까?
안젤리아는 항상 신속정확하다니까.
젤린스키가 그녀를 총애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
그녀가 브레멘에서 벌인 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도 어느 정도 들었습니다.
다만 그녀가 브레멘의 난민촌을 떠나고선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아직은 자네가 그녀를 걱정할 필요는 없네, 지휘관.
그리고, 언제까지고 그녀의 꽁무니만 쫓아 다니는 것도 싫겠지?
가끔은 추월할 줄도 알아야지.
저를... 독일로 파견하시겠다고요?
크루거 씨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할 때까지, 난 어안이 벙벙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방금 말했듯, 자네가 팔디스키에서 보인 활약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네.
크루거 씨가 한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봉랍...?
서류 봉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귀함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내가 아는 한, 크루거 씨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분이시다.
붉은 봉랍에 찍힌 봉인은 날쌘 환수 그리폰이, 불굴의 도전자처럼 발톱을 세운 형상이었다.
그리폰... 이건 저희 회사의 로고 아닙니까?
정식 명칭이 무엇인지, 기억하나?
정식 명칭?
..."그리폰&크루거"입니다.
크루거 씨도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우리는 그를 "훈작사"라 부르지.
자네도 그리 부르도록 하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서류 봉투를 열어보려 했다.
하지만 크루거 씨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비행기에 타면 보게나.
...알겠습니다.
언제 출발합니까?
지금 당장.
지금 당장이요!?
하, 하지만 아직 카리나는 입원 중에...
기지의 인형들도 백업 복구 작업이――
안 좋은 시기라는 거 나도 아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페르시카의 인형들과 함께 가게. 그들의 능력은 어쩌면, 우리의 예상을 아득히 넘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오가스와 관련된 이성질체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묻진 않겠네만... 그녀도 데려가기를 제안하지.
정말로 제안일 뿐입니까?
전선은 기다려 주지 않네, 지휘관.
얼른 출발할 준비를 하게.
......
열중쉬어 자세로 둔 손이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홀스터를 쥐었다. 느껴지는 익숙한 촉감이, 크루거 씨가 주신 권총이 아직 제자리에 있음을 말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
크루거 씨는 입을 다물고 술잔을 다시 채웠지만, 바로 마시지 않았다.
그저 술잔을 천천히 흔들며, 무색투명한 액체가 술잔 속에서 파도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자네에겐, 불공평한 처사란 거 아네.
하지만 대업이든 사업이든,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야.
이미 제게 선택할 기회를 주셨잖습니까.
그리고 저도 선택을 했고요.
......
그 말에 크루거 씨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탁상에 술잔을 툭툭 쳤다.
난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루거 씨가 내게 건배를 권하는 것이었다.
......
잠깐 머뭇했지만, 난 그분께 각오한 눈빛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그분의 눈빛을 받으며 단숨에 비웠다.
자넨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걸세, 그러리라 난 확신해.
하지만, 충고 한마디 하지.
...그 누구도 믿지 말게나.
크루거 씨와... 그 "훈작사"를 포함해서 말입니까?
그래, 특히 그자를 조심하도록.
잠시 후, 그리폰 기지의 탑승 대기실.
내가 대기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준비를 마친 AR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휘관! 이번 임무는 뭐야?
우리가 여태껏 받아본 적 없는 유형의 임무야.
엥? 그거 설마...
나는 임무 목표의 사진을 대기실 테이블 위에 놓았다.
뭐야, 이 여자는?
이건...?
이번 조사 대상인가요, 보호 대상인가요?
둘 다 아니야.
우리의 이번 임무는 독일 베를린의 "본"이란 이름의 마을에 잠입, 목표인 이 인물을 찾아 지정 위치까지 데려가는 거야.
즉, 납치로군요. 확실히 처음이라면 처음인 유형입니다.
목표를 확보하면 우릴 마중나올 사람도 있다고 해.
매번 그럴 거라 통보받으면서도, 결국엔 저희 스스로 해결해야 하지 않았습니까?
......
저희 임무인데 얘는 왜 따라왔죠?
너희의 임무 외에 나도 나대로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그리고 이번 임무도 패러데우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 댄들라이가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댄들라이는 AR팀의 뒤에 서서, AR-15의 싸늘한 눈초리를 일부러 무시했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마침 통신기가 울렸다.
잠시만.
네.
잠깐 자리를 바꾸고 통신기를 켜 보니, 카리나가 입원한 병원에서 보낸 통지였다.
나는 그 내용을 빠르게 넘기다, 마지막의 결론 항목에 시선이 고정됐다.
"가벼운 광역성 저복사 감염증으로 의심되어, 정밀 검사를 진행 중."
......
나는 떨리는 손으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뚜루루... 뚜루루...
안녕하세요, 카리나입니다!
카――
죄송해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급한 용무가 있으시다면 헬리안 씨께 연락해 주시고, 아니라면 삐 소리가 난 후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삐——
......
금방 돌아올게.
비행기의 점검이 끝나, 탑승 준비가 완료되었다.
난 통신기를 끄고 AR팀에게 돌아갔다.
오늘의 하늘은 티끌없이 맑은 푸른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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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0가 세이프하우스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여기는 M200, 인질과 합류에 성공!
오오 드디어 왔구나!
여기는 SL8! 상태 양호, 언제든지 작전 참여 가능!
가면서 말해요!
울란을 따돌리긴 했지만, 글래디에이터와 이성질체 한 명이 아직 따라오고 있어서 상황이 좋지 않아요!
알았어, 그런데 다른 애들은?
글래디에이터를 상대로 유격 중이에요!
돌아가서 지원하자.
네? 하지만 VHS 씨가 우리보고 먼저...
저 앞에 적이 있잖아.
어차피 우리 둘만으론 돌파 못――
그렇게 말씨름하던 두 인형은 어느 순간 생각이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각... 또각... 또각... 구두굽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눈에 초점 없는 이성질체들이 그들 곁을 지나 멀리 사라졌고, 뒤이어 온 낡은 외장의 하얀 기갑이 소리없이 그들을 덮쳐, 보이는 모든 것을 뜯고 부쉈다.
<color=#FFFF00>인형 5명 전원 소실.</color>
<color=#FFFF00>제8차 모의전... 경과 시간 18분... 시스템 평가 등급 - B.</color>
이렇게 빨리 인질과 합류할 수 있다는 건, 퍼즐 소대도 훈련을 완수할 능력이 충분하단 뜻이야.
일시 정지. 작전을 다시 한번 검토해보렴.
작전 회의를 위해 다시 모이는 인형들에게 조언을 해 주려던 그때, 뒤에서 누가 살며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휘관,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더 시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시죠.
자세한 사항은 크루거 님께서 직접 전달하실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옹기종기 모인 퍼즐 소대를 마지막으로 한번 뒤돌아 본 뒤, 나는 별 수 없이 한숨을 쉬며 헬리안 씨를 따라 나섰다.
잠시 후, 크루거 씨의 사무실.
오랜만에 들어와 보니, 정말 감개무량한 느낌이 마치 그리폰에 처음 입사했을 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더없이 듬직한 모습의 그분은, 들어온 나에게 손에 든 술잔을 들었다.
한잔하겠나, 지휘관?
업무 중엔 음주를 안 하시는 분이라 생각했습니다만.
그렇네만, 오늘은 좀 특별해서 말이지.
정말 안 마실 건가? 꽤 고급인데.
크루거 씨는 술병을 들어, 투명한 술잔에 맑은 술을 따랐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는 그분의 맞은편에 앉아, 공손히 술잔을 받았다.
지난번에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서도 꽤 시간이 흘렀군.
한동안은 아주 평온한 나날이었어.
확실히,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허,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사람이나 할 소릴 하는군.
여태까지 고생을 많이 해서 빨리 늙었나 봅니다.
하하하, 자넨 전술지휘관으로서의 실력만이 아니라 상사한테 푸념하는 방식도 독특하구만.
어...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내가 가볍게 웃자, 크루거 씨도 또 코웃음을 쳤다.
내 솔직히 말하네만, 자네가 팔디스키에서 살아 돌아올 줄은 몰랐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밖의 일이었지.
......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뜨겁게 달궈진 살갗, 사방에 잔뜩 널브러진 인형들의 잔해, 카리나의 절망적인 눈빛...
나는 말없이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마치 그날처럼, 뱃속이 타들어갔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신경쓰지 말고 해 주십시오.
...본디, 자네의 임무는 철혈을 제압하는 것뿐이었네.
군과 패러데우스에 비하면, 그동안 우리를 괴롭혀 왔던 철혈은 개미 수준이지.
원래대로라면 자네가 맡아선 안 될 적들이었네만, 자네는 아주 훌륭하게 이겨냈어.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네.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이제 "하지만"이 나올 차례겠죠?
흠, 그래... 하지만, 그 기지에서 철혈의 엘더 브레인은 물론 M4A1, M16A1까지 사라지고 말았어.
게다가 군의 위협은 당분간 없겠지만, 뒤에서 그들을 돕던 자는 아직도 저 밖 어딘가에 숨어 있고.
결코 자네의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네만, 대국적으로 본다면 우리의 일은 새발의 피에 불과해.
그럼, 이제부터 저희가 그 배후의 흑막을 끄집어내는 겁니까?
적절한 인선이 필요하네.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일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할 테니.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나도 오래전엔 군인이었어서,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만을 믿는다네.
그런데, 전장에서 생환한 사람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뉘지.
첫째는 아침에 드리우는 햇살마저도 적의 공습으로 착각하는, 평생을 공포에 떨며 사는 사람.
둘째는 살육과 폭력에 심취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쾌락으로 삼는 사람.
그리고 셋째는... 바로 자네 같은 사람일세, 지휘관.
저 같은 사람이라니, 어떤...?
어째서 싸우는 것인지를 깨달은 사람.
신념을 지니게 되어 더욱 기민하고, 용감하며, 또 다른 전장도 능히 헤쳐나갈 줄 아는 사람.
...저는 그저, 제가 지킬 수 있는 것을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자네가 추구하는 그것이 바로 평화일세. 그리고 지금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나?
그 도리는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도 알게 되더군요.
그래도 자넨 위축되지 않았어. 목적을 이룰 어떤 기회도, 앞으로도 자네는 포기하지 않을 테지.
아무래도 제게 내리실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는 말씀이신 것 같군요.
설마... 단서가 나왔습니까?
안젤리아는 항상 신속정확하다니까.
젤린스키가 그녀를 총애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
그녀가 브레멘에서 벌인 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도 어느 정도 들었습니다.
다만 그녀가 브레멘의 난민촌을 떠나고선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아직은 자네가 그녀를 걱정할 필요는 없네, 지휘관.
그리고, 언제까지고 그녀의 꽁무니만 쫓아 다니는 것도 싫겠지?
가끔은 추월할 줄도 알아야지.
저를... 독일로 파견하시겠다고요?
크루거 씨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할 때까지, 난 어안이 벙벙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방금 말했듯, 자네가 팔디스키에서 보인 활약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네.
크루거 씨가 한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봉랍...?
서류 봉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귀함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내가 아는 한, 크루거 씨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분이시다.
붉은 봉랍에 찍힌 봉인은 날쌘 환수 그리폰이, 불굴의 도전자처럼 발톱을 세운 형상이었다.
그리폰... 이건 저희 회사의 로고 아닙니까?
정식 명칭이 무엇인지, 기억하나?
정식 명칭?
..."그리폰&크루거"입니다.
크루거 씨도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우리는 그를 "훈작사"라 부르지.
자네도 그리 부르도록 하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서류 봉투를 열어보려 했다.
하지만 크루거 씨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비행기에 타면 보게나.
...알겠습니다.
언제 출발합니까?
지금 당장.
지금 당장이요!?
하, 하지만 아직 카리나는 입원 중에...
기지의 인형들도 백업 복구 작업이――
안 좋은 시기라는 거 나도 아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페르시카의 인형들과 함께 가게. 그들의 능력은 어쩌면, 우리의 예상을 아득히 넘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오가스와 관련된 이성질체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묻진 않겠네만... 그녀도 데려가기를 <color=#CE0000>제안</color>하지.
정말로 제안일 뿐입니까?
전선은 기다려 주지 않네, 지휘관.
얼른 출발할 준비를 하게.
......
열중쉬어 자세로 둔 손이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홀스터를 쥐었다. 느껴지는 익숙한 촉감이, 크루거 씨가 주신 권총이 아직 제자리에 있음을 말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
크루거 씨는 입을 다물고 술잔을 다시 채웠지만, 바로 마시지 않았다.
그저 술잔을 천천히 흔들며, 무색투명한 액체가 술잔 속에서 파도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자네에겐, 불공평한 처사란 거 아네.
하지만 대업이든 사업이든,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야.
이미 제게 선택할 기회를 주셨잖습니까.
그리고 저도 선택을 했고요.
......
그 말에 크루거 씨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탁상에 술잔을 툭툭 쳤다.
난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루거 씨가 내게 건배를 권하는 것이었다.
......
잠깐 머뭇했지만, 난 그분께 각오한 눈빛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그분의 눈빛을 받으며 단숨에 비웠다.
자넨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걸세, 그러리라 난 확신해.
하지만, 충고 한마디 하지.
...그 누구도 믿지 말게나.
크루거 씨와... 그 "훈작사"를 포함해서 말입니까?
그래, 특히 그자를 조심하도록.
잠시 후, 그리폰 기지의 탑승 대기실.
내가 대기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준비를 마친 AR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휘관! 이번 임무는 뭐야?
우리가 여태껏 받아본 적 없는 유형의 임무야.
엥? 그거 설마...
나는 임무 목표의 사진을 대기실 테이블 위에 놓았다.
뭐야, 이 여자는?
이건...?
이번 조사 대상인가요, 보호 대상인가요?
둘 다 아니야.
우리의 이번 임무는 독일 베를린의 "본"이란 이름의 마을에 잠입, 목표인 이 인물을 찾아 지정 위치까지 데려가는 거야.
즉, 납치로군요. 확실히 처음이라면 처음인 유형입니다.
목표를 확보하면 우릴 마중나올 사람도 있다고 해.
매번 그럴 거라 통보받으면서도, 결국엔 저희 스스로 해결해야 하지 않았습니까?
......
저희 임무인데 얘는 왜 따라왔죠?
너희의 임무 외에 나도 나대로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그리고 이번 임무도 패러데우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 댄들라이가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댄들라이는 AR팀의 뒤에 서서, AR-15의 싸늘한 눈초리를 일부러 무시했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마침 통신기가 울렸다.
잠시만.
네.
잠깐 자리를 바꾸고 통신기를 켜 보니, 카리나가 입원한 병원에서 보낸 통지였다.
나는 그 내용을 빠르게 넘기다, 마지막의 결론 항목에 시선이 고정됐다.
"가벼운 광역성 저복사 감염증으로 의심되어, 정밀 검사를 진행 중."
......
나는 떨리는 손으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뚜루루... 뚜루루...
<color=#00CCFF>안녕하세요, 카리나입니다!</color>
카――
<color=#00CCFF>죄송해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color>
<color=#00CCFF>급한 용무가 있으시다면 헬리안 씨께 연락해 주시고, 아니라면 삐 소리가 난 후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color>
삐——
......
금방 돌아올게.
비행기의 점검이 끝나, 탑승 준비가 완료되었다.
난 통신기를 끄고 AR팀에게 돌아갔다.
오늘의 하늘은 티끌없이 맑은 푸른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