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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 거울단계

잠복

"믿고 따르는 자, 누구나 행복과 안녕을 누릴지어다. 불신하고 거역하는 자, 재난과 심판을 받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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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교외, 본 마을 인근.

AR팀과 댄들라이는 근방의 모든 신호를 면밀히 확인했다.

RO635

이 마을... 패러데우스가 엄청 많이 숨어 있네요.

M4 SOPMOD II

이런 난민 마을에 대체 왜?

AR15

낸들 알아.

난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AR팀을 바라봤다.

지휘관

저 안에 패러데우스가 있다면, 너희는 들어가는 순간 발각되겠지?

댄들라이

그렇겠죠, 정찰 유닛도 상당수 감지됩니다.

AR15

......

지휘관

그럼 내가 직접 들어가보는 수밖에 없겠는걸.

RO635

네?! 안 돼요, 너무 위험합니다!

M4 SOPMOD II

맞아 맞아, 내가 같이 갈게!

지휘관

걱정 마, 확신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나는 망원경을 들어, 다시 마을 안을 유유히 걸어다니는 난민들을 관찰했다.

본 마을.

난민으로 위장한 나는 심사를 통과해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지휘관

계속 도와줘서 고맙구나. 그러고 보니, 아직 네 이름을 묻지 않았네?

???

괜찮아, 새로 온 친구는 당연히 도와줘야지!

난 엘사야, 넌 이름이 뭐야?

지휘관

어... 난 로빈이라고 해.

엘사

로빈? 기억했어!

그럼 이제 로빈한테 마을을 안내해 줄게!

지휘관

잘 부탁해.

손가락으로 초소형 통신기를 톡톡 두드려, AR팀에게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이 발랄한 여자아이와 함께, 이 수수께끼인 마을 안으로 발을 옮겼다.

다음날의 이른 아침, 난 창가에 기대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AR팀과 임무의 진척 상황을 확인했다.

RO635

<color=#00CCFF>지휘관님, 아직 의심되는 목표는 찾지 못했습니다.</color>

지휘관

으음... 온 지 이제 24시간이 채 안 됐으니 급할 것 없겠지.

RO635

<color=#00CCFF>네, 계속해서 수색하겠습니다.</color>

<color=#00CCFF>맞다, 내일 본 마을에서 대외 개방식이 거행된다는 정보를 입수해, 댄들라이가 시스템을 해킹해 자신에게 위조 신분증과 초대장을 만들었습니다.</color>

<color=#00CCFF>이러면 내부에서도 지휘관님을 지원 가능합니다.</color>

지휘관

알았다.

나도 내일이 이 마을의 창립 기념일 축제라고 들었... 이런, 끊는다.

계단에서 활기찬 발소리가 들려, 나는 급히 통신을 종료했다.

엘사

로빈 또 여기서 멍때리고 있었구나? 얼른 밥 먹으러 가자!

엘사는 순진무구한 미소와 함께 내 가명을 불렀다.

지휘관

너한테 자꾸 신세를 지네, 네가 아니었으면 여기서 어떻게 적응했을지 모르겠어.

엘사

어제 막 왔잖아, 이상할 거 하나도 없어.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이리야 언니는 무서워 보여도 실은 엄청 착한 사람이야.

혼자서 마을의 일을 척척 해결해!

지휘관

그것보단, 내가 여기서 하는 일도 없이 받아먹기만 하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엘사

그럼 밥 먹고 일을 신청해보는 게 어때? 최근에 집을 또 넓게 지어서 오는 사람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대.

지휘관

그럴게.

<color=#A9A9A9>마을의 정보를 더 많이 접할 수 있겠지.</color>

점심 배식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마을의 난민들이 모여 질서 있게 줄을 섰다.

"이리야"라 불리는 여성은 식사 배급 창구 앞에 서서, 두꺼운 책자를 들고 줄을 선 모두에게 엄숙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기도문을 외웠다.

이리야

신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베푸셨음에 감사하라.

신께서 우리에게 살아갈 터전을 베푸셨음에 감사하라!

난민들

우리의 신을 찬양하라!

이리야

믿고 따르는 자, 누구나 행복과 안녕을 누릴지어다.

불신하고 거역하는 자, 재난과 심판을 받을지어다.

우리 모두 부지런한 두 손과 하늘이 내리신 육체를 빌어 살아가리니.

사악을 믿는 자, 천벌을 받게 될지어다.

이리야가 대열 한쪽의 무릎 꿇은 난민들을 손가락질했다. 그 앞을 지나는 난민들은 고개를 숙이고 이를 못 본 척함으로써 자신의 결의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낮춰 옆의 엘사에게 물었다.

지휘관

사악을 믿는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엘사

신이 허락하시지 않은 일을 하는 걸 말해. 전자기기를 쓴다거나, 몸에 기계를 단다거나, 오락에 빠진다거나...

나는 옆의 얼굴에 핏기가 없는 난민들을 조용히 관찰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야위고 얼굴에 황달기가 확연해, 영양실조가 분명했다. 어떤 이들은 몸에 복사감염증의 증상까지 보였다.

이리야

미천한 우리에게 은혜를 하사하시니, 신의 이름은 패러데우스여라!

...오늘의 기도는 여기까지. 여러분, 순서를 지켜 식사를 받아 가십시오.

너희는 반성실에 들어가 계속 참회하거라.

무릎 꿇고 기도하던 난민들은 거듭 감사하며 일어나 배식처를 떠났다.

내 눈에 띈 그들 중 한 명은 한쪽 다리가 없었는데, 엘사의 말과 노출된 흉터로 보아 기계 의족을 달았다 억지로 뜯긴 듯했다.

그는 몇 번이고 일어나려 했지만 번번이 넘어졌고, 주위의 난민들도 그를 전혀 돕지 않았다.

지휘관

누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엘사

안 돼 안 돼!

지휘관

음? 어째서?

엘사

"죄를 동정하는 자 함께 벌받으리라."

저 사람을 도왔다간 로빈도 배교자로 몰리고 말아...

지휘관

......

엘사는 자그마한 손으로 나를 꼬옥 붙들었다.

결국 나는 그 난민이 주위 모든 사람들의 싸늘한 눈빛을 받으며, 존엄성 있는 사람이 아닌 애벌레처럼 반성실로 기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엘사

로빈, 네 차례야!

배급이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내 손엔 식사보다 책 한 권이 먼저 쥐어졌다.

이리야

로빈이라고 했죠? 당신은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이걸 잘 읽고 우리 마을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하세요.

지휘관

아... 알겠습니다.

이리야 여사가 날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여, 나는 그녀의 눈앞에서 이 책자를 넘겨볼 수밖에 없었다.

책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았다. 종교로서의 패러데우스를 선전하는 신화와, 꽤나 엄격한 마을의 규칙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교주나 이 "종교"의 유래에 관해서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이리야

이 책을 두고 매일 읽도록 하세요.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가르침을 받을 겁니다.

그럼 주욱 훑어본 모양이니, 질문 있나요?

지휘관

여사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째서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한 전자기기까지 금지하는 겁니까?

이리야

지금 저희의 주를 의심하는 겁니까?

방금까지만 해도 환하게 미소를 짓던 이리야의 얼굴이 순간 무시무시해졌다.

지휘관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엘사

화내지 마 이리야 언니!

로빈은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내가 나중에 설명할게.

로빈도 마을에 도움이 되고 싶댔는걸! 할 수 있는 일 없나 물어보겠다고 했어!

이리야

호오, 그렇습니까?

이리야의 안색이 많이 풀어졌다.

이리야

근면함은 미덕이니, 식사를 마치면 제게 와서 곧 마을에 새로 올 분들을 반겨 주세요.

지휘관

알겠습니다.

엘사

고마워, 이리야 언니.

한시름 놓은 나는 채소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들고서, 엘사를 따라 식사 구역으로 향했다.

엘사

여기선 전자제품은 절대 쓰면 안 돼. 딴 건 몰라도 그건 이리야 언니가 엄청 무서워져.

지휘관

하지만 아까 그 사람은 의족을 잃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데...

엘사

참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전자제품이 우리 몸에 얼마나 해로운데!

바깥에서 복사감염증에 걸린 사람들을 봐, 다 전자파를 너무 많이 쐬서 병에 걸렸잖아. 다 살려고 여기 오는 거라니까...

패러데우스가 우릴 구원해 주시지 않았으면, 이렇게 잘 살 수도 없었어!

지휘관

......

그거, 마을 사람들이 가르쳐 줬니?

엘사

응! 패러데우스는 우리를 한데 모아 먹을 것과 살 곳을 내려 주셨어.

그러니까 우리도 열심히 찬양해서 보답해야지.

지휘관

......

엘사

빨리 먹자, 로빈.

이따가 이리야 언니한테 갈 때 나도 같이 가 줄게.

지휘관

알았어, 고마워.

짧은 식사를 마치고서, 나는 엘사를 따라 마을의 검문소로 갔다.

본 마을 입구의 검문소는 우리가 도착했을 땐 한창 바쁠 때였다.

등기와 검사 담당은 여럿이었지만, 심사를 기다리는 난민이 워낙에 많은데다 통신설비도 없으니 소통의 효율이 너무나도 떨어졌다.

지휘관

<color=#A9A9A9>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확인해 봤지만...</color>

<color=#A9A9A9>어쩌면 목표는 이 마을에 없을지도 모르겠는걸. 슬슬 철수를 고려해야 하나...</color>

엘사

로빈! 뭘 또 멍하니 있어?

여기 분들 도와줘야지!

지휘관

아, 알았어.

나는 물자 보급상자를 받아, 검사를 기다리는 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대기 행렬에는 복사감염증 증상이 있는 난민이 적지 않았지만, 엘사는 그들과 접촉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엘사

본 마을에 어서 오세요! 이거 받으세요, 신께선 여러분을 환영하십니다!

지휘관

엘사, 잠깐만 이리 와 봐.

엘사

응? 무슨 일이야?

지휘관

<Size=25>너, 복사감염증이 옮는다는 건 알지...?</Size>

엘사

그야 당연히 알지, 하나도 안 무서워!

지휘관

...설마, 패러데우스를 믿으면 어떤 병에도 안 걸리게 되는 거야?

엘사

푸흡, 그런 거 아니야! 우리는 성녀 언니가 지켜주고 있거든!

감염증에 걸리더라도, 성녀 언니가 바로 고쳐줘!

지휘관

성녀... 패러데우스 신화에 나오는 사람이야?

엘사

신화가 아니라 진짜야, 로빈은 온 지 얼마 안 돼서 못 봤겠구나 참.

예전엔 본 마을에도 복사감염증 환자가 아주 많았는데, 성녀 언니가 정화해줘서 모두 병이 나았어!

지휘관

그 성녀... 정말 복사감염증을 치유할 수 있다고?

엘사

응! 언니가 누군지는 보면 바로 알 거야.

지휘관

언제 오는데?

엘사

글쎄... 다음주? 아무튼 환자가 있으면 꼭 나타나. 만날 수 있을지는 운에 달렸지만!

지휘관

<color=#A9A9A9>목표가 도저히 안 보인다면, 그 성녀에 대해서 조사해보는 것도 좋겠어.</color>

엘사에게 성녀에 관해 더 물어보려던 그때, 이리야가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리야

엘사, 로빈, 잡담 그만하고 얼른 선물을 나눠 주세요.

아직 안내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마을의 창립 기념일이라 축제를 준비에 여러분의 힘이 필요하니, 좀 더 힘내세요.

엘사

아차, 농땡이 들켰다.

지휘관

알겠습니다.

바쁜 일이 줄줄이 이어져, 결국 거의 쉬지도 않고 일하는 꼴이 되었다.

나와 엘사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녹초가 되어 방으로 돌아가 쉴 수 있었다.

내일, 2064년 9월 20일은 본 마을의 창립 기념 축제일이다. 내 잠입 수사도 막바지란 예감이 들었다.

AR팀 쪽은 얼마나 진전이 있는지 알 수 없어 걱정되었지만, 쌓이고 쌓인 피로에 눌린 난 그대로 꿈속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