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단계
EP.13.5 · 거울단계

환수의 어깨 Ⅲ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우리와 세상의 내일을 위한 것."

-44-B1-4-2

1 / 94
전체 대사 보기 (93줄)

베를린의 구시가지 지역.

장치가 딸깍 소리를 내며 해제됐고, 현관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러자 어두운 실내의 작은 전등이 자동으로 켜졌다.

지익――

그리고, 한 남성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

<color=#00CCFF>Good afternoon, 지휘관.</color>

지휘관

처음 뵙겠습니다, 훈작사님.

???

<color=#00CCFF>좀 긴장한 듯 보이는군.</color>

지휘관

...그리폰의 지휘관이라고 다 뵐 수 있는 분이 아니니 말이죠.

귀하에 대해서, 정말 많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지.</color>

<color=#00CCFF>지금의 나는 그저 소소한 후방 작업이나 하는, 나이 먹은 노인이네.</color>

<color=#00CCFF>자네도 나를 평범한 연장자로 봐주었으면 하네. 우리의 사이는 자네의 생각보다 꽤 가깝거든.</color>

지휘관

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훈작사님은――

그리폰

<color=#00CCFF>"그리폰".</color>

<color=#00CCFF>사적인 자리에선 친근하게 불렸으면 하네.</color>

지휘관

아... 네, 그리폰... 씨.

그리폰

<color=#00CCFF>허허... 뭐, 좋네.</color>

<color=#00CCFF>기념할 만한 첫 만남이지만, 이런 식으로밖에 대화할 수밖에 없어 참 유감이군.</color>

<color=#00CCFF>자네에게도 너무 실례가 되지 않았기를 바라네.</color>

지휘관

아뇨,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리폰

<color=#00CCFF>그 넓은 도량에 감사하지, 지휘관.</color>

<color=#00CCFF>자네에 대해서는, 나도 많은 소문을 들었다네.</color>

<color=#00CCFF>자네처럼 전장을 많이 겪은 전사는 하나같이 피와 살기를 씻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건만...</color>

<color=#00CCFF>이렇게 직접 보니, 그저 다정하고 예의 바른 젊은이로군.</color>

지휘관

제 경력은 당신의 1할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도 적과 같은 꼴로 전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하하하, 미안하네. 괜한 소리를 했나 보군.</color>

<color=#00CCFF>그냥, 자네와 이렇게라도 마주하게 되니 기뻐서 하는 말일세.</color>

<color=#00CCFF>나도 유능한 인재를 정말 아끼는데, 크루거의 안목은 빗나가는 법이 없거든.</color>

<color=#00CCFF>이 늙은이의 나쁜 버릇을 용서해 주게.</color>

페로사

훈작사님.

그리폰

<color=#00CCFF>아아 그래, 굳이 서 있을 필요도 없지. 편하게 앉게나.</color>

<color=#00CCFF>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color>

지휘관

네.

그리폰

<color=#00CCFF>하지만 그 전에.</color>

<color=#00CCFF>지휘관, 이 인물은 벌써 봤을 테지?</color>

지휘관

현재 "마흐리안"을 발견하고 확보했습니다만... 자료와 부합하지 않는 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엔, 그녀를 화면의 인물과 동일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폰 씨가 미소지었다.

그리폰

<color=#00CCFF>역시 예리해, 크루거가 자네를 과대평가한 것이 아니었어.</color>

<color=#00CCFF>그래, 화면의 이 인물은 자네가 확보한 "마흐리안"이 아닐세.</color>

<color=#00CCFF>이 여성은 브레멘에서 안젤리아 곁에 잠복했던 패러데우스로, "몰리도 포거트"의 신분을 탈취해 정부에 침투해 있었네.</color>

<color=#00CCFF>물론, 이해에 용이하도록 계속해서 "몰리도"라 지칭하겠네.</color>

지휘관

마흐리안이 정말 몰리도일까요?

아니면... 그저 똑같이 생긴 별개의 인물일까요?

그리폰

<color=#00CCFF>그 문제의 답을, 자네가 밝혀 주었으면 해.</color>

지휘관

......

그리폰

<color=#00CCFF>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고문을 불렀지.</color>

지휘관

고문이요...?

그리폰

<color=#00CCFF>안젤리아 대위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아주 기쁠 것이라 믿네.</color>

지휘관

안젤리아 씨 말입니까? 그녀도 베를린으로 왔습니까?

그리폰

<color=#00CCFF>서로 제대로 만나볼 때도 되었잖는가.</color>

<color=#00CCFF>브레멘에서의 사건들과 몰리도에 관한 정보 등,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잔뜩이겠지?</color>

지휘관

그렇죠...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확실히, 이런 상황에서 안젤리아 씨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동료는 없겠죠.

그리폰

<color=#00CCFF>진정 믿음직한 친구는 종종 이미 곁에 있기도 하는 법일세, 지휘관.</color>

<color=#00CCFF>자네들이 만나 소통하고, 베를린에서 우리의 예리한 칼이 되어 주길 바라네.</color>

지휘관

패러데우스가 독일에서 꾸미는 음모를 파헤쳐 달란 뜻이시군요.

그리폰

<color=#00CCFF>자네는 마흐리안 쪽부터 조사에 착수하면 금방 수확을 얻을걸세.</color>

<color=#00CCFF>자네도 본 마을이 수상하다 느꼈겠지.</color>

지휘관

...마흐리안은, 마을 주민들에게 이상한 방식으로 숭배받고 있었습니다.

그 괴이한 종교의식.... 패러데우스의 일관적인 스타일이 틀림없습니다.

그들의 구호도 제 추측대로였고... 패러데우스의 영향은 진작에 확산되어, 이미 뿌리까지 내린 상태라 봐도 무방하겠죠.

그리폰

<color=#00CCFF>아주 좋아, 계속하게.</color>

지휘관

그리고, 마흐리안... 몰리도일 수도 있겠지만...

패러데우스는 그녀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녀를 납치하자, 주민들뿐만 아니라 패러데우스마저 대규모 병력을 보내 저희를 붙잡으려 했습니다.

그건 절대 연기가 아닙니다, 마흐리안에게 집착을 보인 것입니다.

페로사

마흐리안 외에도, 이전의 정찰로 다른 고위 니토의 존재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포위망 돌파 과정에선 그녀와 직접 조우하진 않았습니다.

지휘관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은 제가 마흐리안을 확보하는 것을 극히 싫어한 겁니다.

다행히도 잠입 작전 덕에 경계가 느슨한 기회를 우연찮게 이용하여, 그녀를 무사히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정말 훌륭해.</color>

<color=#00CCFF>역시 크루거가 이번에도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어, 첫 임무부터 이렇게나 큰 놀라움을 주다니.</color>

지휘관

어...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폰

<color=#00CCFF>패러데우스가 그토록 마흐리안을 중요시한다면, 우리도 그 점을 역이용해 더 많은 단서를 캐낼 수 있겠지.</color>

<color=#00CCFF>이 일은 자네에게 전권 위임하겠네, 지휘관. 패러데우스에 대해 잘 알면서도 믿을 수 있는 인선은 자네밖에 없겠어.</color>

지휘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폰

<color=#00CCFF>패러데우스는 현재, 독일 각지에서의 활동이 빈번해지고 있다네.</color>

<color=#00CCFF>브레멘은 그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color>

<color=#00CCFF>그리고 드디어, 그 빌어먹을 윌리엄이... 마침내 베를린까지 손을 뻗었네.</color>

지휘관

그 윌리엄이란 사람은 대체 어떤 인물입니까?

그리폰

<color=#00CCFF>내가 여기 온 것도 다 그를 수사하기 위해서네.</color>

<color=#00CCFF>그의 행동 양상을 보아 우리가 알아낸 것은, 그가 높은 지위의 인물이라는 것뿐일세. 그렇지 않고서는 그토록 많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지 설명되지 않으니 말이지.</color>

<color=#00CCFF>아직 그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모르네만, 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사업을 방해하리란 것만은 확실하네.</color>

<color=#00CCFF>테러까지도 불사하면서 말이지.</color>

지휘관

전력을 다해 조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아까처럼 패러데우스와 정면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지금 제 병력이 다소 부족합니다.

그리폰

<color=#00CCFF>나도 진심으로 자네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싶네.</color>

<color=#00CCFF>하지만 지금 내가 처리해야 하는 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는 것을 부디 양해해 주길 바라네, 지휘관.</color>

<color=#00CCFF>자네가 노력으로 일궈낸 기회를, 내 결코 헛되게 하지 않겠네.</color>

지휘관

과찬이십니다.

그리폰

<color=#00CCFF>그래도 내 힘이 닿는대로 자네를 도움세.</color>

<color=#00CCFF>자네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임시 지휘부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필요한 설비는 전부 설치했으니, 여기 있는 건 마음껏 사용하게.</color>

<color=#00CCFF>그리고.</color>

<color=#00CCFF>페로사, 현시간부로 자네와 휘하 소대의 지휘 권한은 이 지휘관에게 일임한다. 온힘을 다해 지휘관을 보좌하도록.</color>

페로사

예!

지휘관

이렇게라도 지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과연 저 혼자만으로 패러데우스의 음모를 저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그래도 자네는 최선을 다하겠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color>

<color=#00CCFF>내 말이 틀렸나?</color>

지휘관

......

그리폰

<color=#00CCFF>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해도 좋을 것 없다네, 지휘관.</color>

<color=#00CCFF>자네의 업적은 그 누가 봐도 기적이라 칭할 만해.</color>

지휘관

...알겠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마음에 아직 응어리가 있는 모양이군.</color>

<color=#00CCFF>내 오해라면 미리 사과하겠네만, 혹시 아직도 날 신용하지 못하는 겐가?</color>

지휘관

아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다 보니... 조금 신경질적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의심도 한편으론 좋은 습관이라네. 나도 몸소 실천해 자네의 의심을 해소하고 싶군.</color>

<color=#00CCFF>크루거한테서도, 자네의 사고방식을 많이 들었네.</color>

<color=#00CCFF>우리 사이에 의견이 갈릴 일이 분명 있겠지만, 우리의 이상은 일치한다는 점을 명심해 주길 바라네.</color>

지휘관

..."세상을 새로 쓰는 것" 말씀입니까?

그리폰

<color=#00CCFF>우리가 하는 일은 전부, 우리 모두와 이 세계의 내일을 위한 것일세.</color>

지휘관

하지만 우리 회사의 표어가 루크사트주의의 슬로건임을 알았을 때,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그래? 무슨 고민이었나?</color>

지휘관

과연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입니다.

대체 어떡해야 우리나라를, 우리 사회를, 우리 세계를 지금 이 거지 같은 곤경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혁명가에겐 적당한 원칙이 필요한 법이지. 우린 아마 죽이 잘 맞을 게야.</color>

지휘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폰 씨.

루크사트주의가 그리는 세상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정말 하나로 단결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리폰

<color=#00CCFF>...이 문제는 얼버무려서는 안 되겠군.</color>

<color=#00CCFF>나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은가?</color>

지휘관

무례가 아니라면, 부디 듣고 싶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내 대답은... "불가능하다"일세.</color>

<color=#00CCFF>인류는 결코 하나되어 단결할 수 없고,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도 없을걸세.</color>

지휘관

그럼――

그리폰

<color=#00CCFF>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질서가 필요해. 인류가 단결해야만 하는, 서로 이해해야만 하는 "규율"을 수립하고, 인도해야 하네.</color>

<color=#00CCFF>갈등을 조장하는 자는 벌을 받고, 서로를 돕는 자는 이익을 얻는 전기충격기와 같은 규율이 있어야만, 인류는 자신의 악행을 교정하고 세상에 마땅한 질서를 되돌려 놓을 수 있네.</color>

<color=#00CCFF>루크사트 선생은 위대한 선구자지만, 동시에 이상주의자였지.</color>

<color=#00CCFF>이상주의는 결코 이상적인 세계를 현실로 만들지 못해. 우리는 뿌린 씨앗이 불러올 결과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color>

<color=#00CCFF>그렇기에 인류의 공익에 부합하는 질서를 세워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린 어떠한 대가도 마다하지 않을걸세.</color>

지휘관

"당신들"이 그 질서를 세우고 정하는 겁니까?

그리폰

<color=#00CCFF>질서를 정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일세. 우리는 그저, 인류에게 봉사하는 시종일 뿐이야.</color>

지휘관

...제가 예상한 답변과는 조금 다르군요.

그리폰

<color=#00CCFF>총명한 자에겐 솔직하고 진중한 말이 가장 설득력이 높지.</color>

<color=#00CCFF>단지 구호만으로 혁명을 실현할 수 있다면, 왜 우리가 지금 이렇게 대화하고 있겠나?</color>

지휘관

......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리폰

<color=#00CCFF>말해보게.</color>

지휘관

저희가 이 길의 종점에 도달해, 다시 뒤를 돌아볼 때...

저희가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대가 중에, 선량함과 정의도 포함됩니까?

그리폰

<color=#00CCFF>지휘관, 우화에 대해선 얼마나 아는가?</color>

지휘관

...어느 우화 말씀이십니까?

그리폰

<color=#00CCFF>"절대적인 진리를 신봉하는 고슴도치는, 세상을 단 하나의 틀에 넣고 가시를 세워 다른 사상을 모조리 거절했다."</color>

<color=#00CCFF>"반면 교활하고 변덕스러운 여우는, 어지러운 시대의 파도 속에 숨어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을 뒤집을 불협화음을 찾아 나섰다."</color>

지휘관

고슴도치와 여우... 우화보다는 철학 같습니다만.

그리폰

<color=#00CCFF>내 아직은 자네의 모든 의혹을 풀어 줄 수 없네. 마찬가지로, 자네도 내 의혹을 다 풀어 줄 필요가 없고.</color>

<color=#00CCFF>하지만 언젠가는... 자네 스스로 결정해야 할 때가 올걸세.</color>

지휘관

...그렇겠죠.

그리폰

<color=#00CCFF>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지휘관.</color>

<color=#00CCFF>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네.</color>

지휘관

예.

그리폰 씨가 신사답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끝으로, 홀로그램이 꺼졌다.

내 시선은 탁상에 놓인 체스판을 향했다. 이번엔 또 어떤 국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휘관

...안젤리아 씨도 베를린에 왔다니.

RO635

지휘관님, 방금 막 암호화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지휘관

확인할게.

나는 통신기를 받아, 해독된 그 메시지를 확인했다.

안젤리아

<color=#00CCFF>안녕 지휘관, 오랜만이야.</color>

익숙한 그 얼굴이 통신기의 화면에 나타났다. 다만, 이전에 비해 안젤리아 씨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보니, 어째선지 안심이 되었다.

안젤리아

<color=#00CCFF>이 통신을 볼 땐, 아마 "그 양반"과 만난 뒤겠지?</color>

<color=#00CCFF>지금 넌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산더미라는 거 알아, 나도 너한테 물어볼 게 많고.</color>

<color=#00CCFF>그러니까, 얼굴 좀 보자.</color>

<color=#00CCFF>오늘 오후 3시, 술집 "미네르바의 부엉이"에서 기다릴게.</color>

<color=#00CCFF>미리 말해두는데, 난 지각하는 사람은 질색이야.</co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