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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 거울단계

테세우스의 배Ⅲ

"테세우스의 배의 나무 판자를 계속해서 갈아치우면 그 배는 여전히 원래의 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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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미네르바의 부엉이"의 문 앞.

지휘관

남은 시간 1분!

RO635

지휘관님, 저흰 문 앞에서 대기할 테니 무슨 일 있으면——

지휘관

30초——!!

지휘관은 술집으로 냅다 달려들어갔다.

RO635

어휴...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면하셨겠지.

그나저나 45, 아까 신호가 차단당했다는 건 무슨 소리야?

UMP45

<color=#00CCFF>자세한 원인은 아직 파악 중이지만, 이번 건 엄청 이상해.</color>

AR15

전자전의 프로 UMP45가 신호를 차단당하고, 그걸 해제하는 데 시간을 그렇게나 잡아먹었다고?

UMP45

<color=#00CCFF>사실, 차단을 풀진 못했어.</color>

<color=#00CCFF>재밍 장치를 도저히 탐지할 수가 없어서, 결국 계속 자리를 이동하면서 차단망의 범위를 추측했을 뿐이야.</color>

RO635

재밍 장치를 못 찾았다고?

말도 안 돼, 재밍도 신호를 발사해서 통신 신호를 교란하는 원리잖아.

UMP45

<color=#00CCFF>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color>

<color=#00CCFF>일반적인 재밍 장치라면 해독할 수 없어도 그 존재를 인식할 수는 있는데...</color>

<color=#00CCFF>이번 건 마치 우리의 연결을 그대로 끊어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았어.</color>

RO635

......

그거 좀 많이 위험한걸.

UMP45

<color=#00CCFF>그렇지. 그래도 나머진 지휘관이 나온 다음에 얘기하자.</color>

UMP45

<color=#00CCFF>지금은 우리도 좀 쉬어야겠어.</color>

RO635

알았어.

통신을 종료하고서도, RO635는 그 "이상한 재밍"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그때, SOP2가 그녀를 흔들며 거대한 전광판을 가리켰다.

건너편 마켓의 외벽에 설치된 그 전광판은, 3시 정각이 되자 거창한 광고를 재생했다.

그와 함께, 화려한 글자체로 <color=#FFFF00>"갈라테아 그룹의 창설 100주년을 축하합니다!"</color>라는 문구도 지나갔다.

M4 SOPMOD II

RO! 저것 좀 봐봐!

아까 사람들이 막 뛰어오던 게 저거 때문이었나 봐!

저 갈라테아 그룹이란 데, 엄청 큰 회사인가 보네? 우리도 지휘관한테 기지 창설 100주년 되면 저렇게 해 달라고 하자!

AR15

야야, 100주년이면 지휘관도 폭삭――

RO635

크흠... 100주년 얘기는 100주년이 됐을 때 하자.

M4 SOPMOD II

히히히, 오케이~

RO635는 전광판에서 재생되는 갈라테아 그룹의 홍보 영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때마침 광고에선 용모단정한 난민 대표가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중이었다.

난민 대표

"――저희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 주었습니다. 물질적인 지원만이 아니라, 정신적 보살핌까지 말이죠."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난민은 그저 하루하루 연명할 수 있다면 달리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겨 왔습니다."

"하지만 오직 갈라테아 그룹만이, 붕괴 오염으로 모든 것을 잃은 저희의 고통을 헤아리고 구원의 손길을 내어――"

AR15

RO, 무슨 생각해?

RO635

저 그룹... 본 마을에서 들었어.

AR15

......

출현 시기와 장소가 너무 절묘한걸.

딸랑딸랑――

술집 뒷문의 방울이 가볍게 울리더니, 고양이 사료 봉투를 품에 안은 옅은 머리색의 소녀가 걸어 나왔다.

AN94

......

AR15

AN-94?

AN94

앗, AR-15...

...그리고 AR팀, 모두 반갑다.

AR15

그래, 안녕. 안젤리아랑 지휘관은 잘 얘기하고 있어?

AN94

괜찮은 편이다... 아마도.

AN-94는 조용히 길가에 쪼그려앉았다. 그러자 지붕 언저리에서 햇볕을 쬐던 고양이가 뛰어내려, 그녀에게 다가왔다.

AR15

네가 여기 있다는 건...

문의 방울이 다시 한번 딸랑 울렸다.

AK12

안녕 AR팀~ 오랜만이야~

RO635

확실히 오랜만이네.

AK12

너희도 들어가서 한잔할래? 이 집 바텐더 실력이 꽤 제법이더라.

내가 안젤리아랑 같이 가본 술집 3위에 들 정도야.

M4 SOPMOD II

오오... 응?

근데 왜 나왔어?

AK12

그야 안에 재수없는 녀석이――

AR15

우리보다 먼저 베를린에 왔다고 들었는데, 상황이 어때?

AK12

별로. 안젤리아도 상태가 영... 원흉이 뭔진 너희도 알겠지?

AR15

그 "몰리도"라는 여자?

AK12

그래... 그 여자가 원흉이야.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모일 일도 없었지.

RO635

어떤 인물인지 설명해 주겠어?

AK12

음험하고, 교활하고, 변장술에 뛰어난, 다양한 성격을 모방할 수 있는 고위 니토야.

AR15

......

RO635

변장술이 특기라고?

AK12

맞아, 굉장한 사기꾼이었어. 평생 남을 의심하며 살아온 안젤리아마저도 보기좋게 속아넘어갔다니까.

AR15

그 몰리도란 녀석, 우리가 생포한 걸지도 몰라.

RO635

AR-15, 아직 단정할 순 없어. 지휘관님도 조사가 더 필요하다 하셨잖아.

AK12

그래? 그럼 부디 조심해, 그 여자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고생 중이야.

AR15

패러데우스가 그렇게 떼거리로 쫓아올 만했네.

AK12

녀석은 변장술에 더해, 상대의 성격에 따라 자신의 인상을 바꿀 수 있어.

AK12

너네 지휘관 같은 사람은 고문은 버텨도 불쌍한 사람의 간청은 못 버틸걸?

AR15

......

RO635

지휘관님은 확실히 정의롭고 선량한 분이시지만, 그렇게 쉽게 속진 않을 거야.

AK12

그래그래, 너무 걱정 마. 안젤리아도 유용한 조언을 해 주겠지.

딸랑딸랑——

RPK16

어머, 익숙한 분들이 한가득이네요.

AK15

......

RO635

너희가 RPK-16과 AK-15구나.

RPK16

네, 맞아요. 당신이 바로 AR팀의 현임 대장 RO635 씨군요?

RO635

응, 만나서 반가워.

RPK16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RPK16

방금 대화 중에 끼어들어 버린 듯한데, 저 신경쓰지 말고 계속하세요.

RO635

......

RPK-16이 밖으로 나오자, AK-12는 대뜸 벽에 기대고는 말이 없어졌다.

분위기가 바로 썰렁해져 버렸다.

질리도록 이어지는 대형 전광판의 갈라테아 그룹 홍보 영상만이 시끄럽게 떠들 뿐이었다.

그레이

갈라테아 그룹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항붕괴제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저희의 최신 성과, 신형 복사감염증 치료제 "이둔"에 대해 익히 들으셨겠죠.

"이둔"은 더욱 효율적이고, 더욱 안전한 복사감염증 치료제로서,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현재 "이둔"은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 정부의 심사를 받는 중입니다.

"이둔"이 곧 국민 여러분께 공개되리라 확신하며, 심사가 통과된다면 저희도 여러분을 초대해 그 효능을 검증드리겠습니다.

동이 트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희와 함께 다가올 여명의 첫 햇살을 맞이합시다!

전광판 앞에 모인 사람들이 열렬하게 환호했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임에도, 술집 뒷문에서까지 그들의 진심 어린 희열과 희망이 느껴졌다.

이에 인형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환호성이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RPK16

인간은 참 나약하면서도 강인한 생물이네요.

절대적인 힘 앞에선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면서...

아무리 실낱같아도, 희망이 있다면 삶에 대한 갈망을 다시 불태우잖아요.

어느샌가, RPK-16이 RO635의 곁에 다가왔다.

RO635

...그렇지.

M4 SOPMOD II

역시 난 인형인 게 좋아, 소체가 망가져도 바로 갈아치울 수 있잖아!

RPK16

그런가요? 제 생각은 다른데.

"테세우스의 배"라고, 들어보셨어요?

M4 SOPMOD II

뭔 배? 그게 뭐야?

RPK16

아주 오래전, 어느 인간이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낡아 가는 배의 목재를 조금씩 갈아 수리하면, 언젠가는 모든 목재가 원래의 것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어도 그 배는 원래의 배인가?"

인형으로 비유하자면, 우리 소체의 부품을 하나씩 교체하거나 아예 새 소체로 바꾸더라도, 우린 여전히 원래의 그 인형일까요?

M4 SOPMOD II

어...

RO635

그 이야기는...

RPK16

우리는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부품을 교환해야 하죠.

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달라요.

M4 SOPMOD II

으음...

RPK16

불행한 사고만 없다면, 인간은 순수한 육체에 의존해 아주 긴 시간을 살 수 있어요.

비록 나약할지언정, 더없이 순수하답니다.

RO635

RPK-16은 생각이 엄청 깊구나...

SOP2는 철학적인 얘기에 버티지 못하고 이미 RO635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버린 뒤였다.

RO635는 예의를 지키느라 자리를 뜨지 못했다.

RPK16

...RO 씨, 제 이야기가 너무 지루하진 않나요?

RO635

아니...

M4 SOPMOD II

Zzzzz....

RO635

<color=#A9A9A9>이 녀석 또 침을 흘리네...</color>

RPK16

그거 다행이네요, RO 씨한테 묻고 싶은 게 잔뜩이었는데.

또다시 어느샌가 RPK-16이 RO635의 코앞까지 다가와, 기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자세히 살폈다.

RPK16

제가 듣기론, 당신은 3세대 인형의 프로토타입이라면서요?

페르시카 씨는 당신의 기반 설정에 어떠한 제한도 걸지 않았고요.

RO635

어... 응.

그렇긴 해도 그다지 차이는 없어.

RPK16

백지처럼 새하얗고, 티끌 한 점 없는 기반...

인간의 마음에 무한히 가깝네요...

RO635

......

RPK16

한마디로, RO 씨는 인간의 마음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겠죠.

RO635

그렇게까진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난——

RPK16

혹시, 인간이 되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보셨나요?

RPK16

당신과 인간의 차이는 이제 육체의 차이뿐이에요.

인간처럼 순수한 정신에, 인간의 순수한 육체가 합쳐진다면... 우리의 창조주에게 무한히 가까워질 수 있겠죠...

RO635

그게 무슨 소리야...?

뜻밖의 말에 놀란 RO635는 주춤했다.

조는 척하던 AR-15도 눈을 떴고, AK-15와 AK-12의 시선도 RPK-16에게 집중됐다.

RPK16

아이 참, 모두 왜 이렇게 긴장해요? 그냥 해본 말인데.

RO635

아... 미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거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어.

딸랑딸랑——

지휘관이 뒷문으로 나왔다.

지휘관

RO, 이제――

아, 리벨리온도 있었구나. 얘기하는 중이었니?

RPK16

다시 봐서 반가워요, 지휘관님.

지휘관

나도 반갑다. 안젤리아가 기다리니 어서 가 봐.

AR팀, 우린 그만 돌아가자.

RO635

네. AR-15, SOP2, 가자.

M4 SOPMOD II

ZZZZzzzz......

AR15

얼른 일어나 SOP2! 돌아갈 시간이야!

404 소대가 무단 점거 중인 구시가지의 어느 다락방.

HK416

저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래... 듣다 잠들 뻔했네.

UMP9

언니, 무슨 생각해?

UMP45

......

UMP45의 시선은 RPK-16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 밑의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안젤리아와 말을 나누는 중이었다.

UMP45

...예감이 썩 좋지 않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