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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 거울단계

판도라 상자 Ⅲ

"오직 나방만이 불꽃의 매력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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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나방만이 불꽃의 매력을 안다.

불꽃에 홀린 그 끝이 어떤 운명인지를 알아도, 망설임 없이 죽음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 죽음은 과연 종착역일까?

RPK16

<color=#A9A9A9>매번 깨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공기는, 항상 색달라요.</color>

<color=#A9A9A9>항상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들죠.</color>

<color=#A9A9A9>안젤리아...</color>

RPK16

당신은, 새로운 세상에 제 자리를 남겨 줄 건가요?

......

끼이익...

안젤리아

콜록... 먼지 봐라.

안젤리아가 손을 허공에 휘휘 내저으며, 눈앞에 떠다니는 먼지를 쫓아냈다.

방 안의 가구로 보아, 이곳은 서재인 것 같았다. 단지, 필시 웅장했을 과거의 모습은 전부 두껍게 쌓인 먼지 밑에 묻힌지 오래였다.

마호가니 책상 뒤의 화려한 벽에는 기이한 형상의 주목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의 가지 끝마다 걸린 인물 사진들에는, 저마다 사진의 주인공의 것으로 보이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젤리아

이건...

가계도인가...?

안젤리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와, 그 화려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이 가문의 가계도는 안젤리아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로 방대했다.

하지만 이 가계도가 그녀의 궁금증 이상으로 주의를 끈 이유는 바로 나무의 꼭대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가장 최신 일원이 있어야 할 그곳은, 흉측하게 불태워져 이름도,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분간 가능한 점은, 이 가문이 남자애도 머리를 기르게 하지 않은 이상 둘 중 하나는 여자애였다.

안젤리아

루니샤...

바로 그때, 안젤리아의 통신기가 울렸다.

안젤리아

라이트?

라이트

<color=#00CCFF>습——</color>

안젤리아

라이트? AN-94? 무슨 일이야?

라이트

<color=#00CCFF>습격입니다!</color>

<color=#00CCFF>페러데우스예요!</color>

<color=#00CCFF>안젤리아 씨! 빨리 나오세요! 어서요!</color>

타탕——!

치지직...

통신이 끊어졌다.

안젤리아

큰일이다.

끼익...

안젤리아

......!

등뒤의 인기척에, 안젤리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상대의 얼굴을 보곤 안도했다.

RPK16

......

RPk-16은 사뿐사뿐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몸을 돌려 안젤리아를 등지고 문을 닫으려 했다.

안젤리아

아니, 닫지 마. 당장 철수해야 하니까 AK-15 불러. 방금 라이트한테서...?

RPK-16의 움직임에 이상한 점은 없었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경험 덕택에 안젤리아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RPK16

안젤리아... 과연 식물이 인류의 미래일까요?

안젤리아

...또 그 소리냐. 당연히 아니지, 그때 내가 뭐랬어?

아무튼 지금 그딴 소리나 할 때가 아니야. 바깥의 경계팀이 습격받았어,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

RPK16

그렇죠. 식물은 그저 식물일 뿐, 미래의 책임을 지우는 건 너무해요.

그럼... 인형은 어떤가요?

안젤리아

너 또 어디 나사 풀렸냐? 정 그렇게 철학가가 되고 싶으면 돌아가서 퇴역 신청해 줄게.

RPK-16의 기이한 표정을 보는 안젤리아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먹구름처럼 드리웠다.

RPK16

제가 보기엔 말이죠, 인형에겐 절대 메꿀 수 없는 결함이 존재해요.

저희 인형은 진정한 고통이, 슬픔이, 쾌락이 무엇인지 몰라요. 삶과 죽음의 개념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하고요.

승리는 항상 인간의 것이고, 죽음은 언제나 인형의 몫인데... 결국 죽음을 온전하게 누리는 것도 인간이죠.

너무나도 황당한 모순이란 생각, 안 들어요?

안젤리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RPK16

저는요, 인간이 되고 싶어요.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희비를, 생사를... 그리고, 미래를 체험하고 싶어요

스윽――

타앙!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 요원으로서, 안젤리아의 총을 뽑는 속도는 신소련의 안전국에서도 독보적이라 할 정도였다.

허나 그럼에도 인형에 비해선 턱없이 느렸다.

오른손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비록 총탄은 그녀의 권총에 맞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피격당한 충격은 간신히 아물어 가던 안젤리아의 상처가 터지기에 충분했다.

안젤리아

나를 향해... 쐈어...?!

RPK-16, 너 미쳤어!?

RPK16

가능하면 저도 이렇게 야만적인 수단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안젤리아는 방심할 수 없는 상대라서요.

안젤리아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네... 네 마인드맵, 기반 설정, 핵심 명령...

대체... 대체 너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RPK16

무슨 짓을 했냐고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전 날 때부터 이랬답니다.

안젤리아

......!

쇼, 넌 대체 무슨... 무슨 괴물을 만들어낸 거야...

RPK16

안젤리아, 전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 모두를 위해 부디 얌전히 잡혀 주세요.

안젤리아

또 영문 모를 헛소리를 하나 싶더니, 총까지 나한테 겨누고...

이젠 나보고 항복하라고? 대체 어디다 항복하란 건데?

인형과 인간 중 뭐가 미래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네 머리가 완전히 맛이 갔단 건 알겠다.

RPK16

방금 저는 제가 지금 왜 이러는지에 대한 동기를 말한 거예요. 당신은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안젤리아

동기...?

RPK16

패러데우스요, 안젤리아.

당신도 그들의 피조물을 봤잖아요? 예전부터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몰리도 씨를 보고 마침내 확신했어요. 패러데우스라면 제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어요.

패러데우스는 가능해요. 그들은 "마인드맵 공간을 지닌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들이라면... 절 뼈와 살로 이뤄진 육체에 넣어줄 수 있겠죠. 설령 지금은 불가능하더라도, 언젠가는.

안젤리아

패러데우스라니...... 너였어?

여태까지 계속 내 옆에 숨어있던 스파이가... 바로 너였어?!

경악스러움에, 안젤리아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RPK16

드디어 제 말을 이해해 주셨네요, 기뻐요.

안젤리아

좋아... 그렇다 치자. 네가 날 잡아갈 수는 있겠냐? AN-94랑 AK-15한테 상대도 안 되는 년이.

RPK16

그럴지도요. 하지만 짜잔~ 소대의 지휘 권한이 제 손에 있네요?

이렇게 편리한 걸 넘겨주다니, AK-12 선배한테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어요.

안젤리아

경고하는데, 여기서 AK-12를 들먹이지 마라.

RPK16

그녀는 실수했어요, 안젤리아. 바로 당신처럼요.

좀 더 일찍 눈치챌 수 있었는데.

안젤리아

그 입 닥쳐!

퍼엉!

RPK16

!!

RPK-16이 말을 마치는 순간, 안젤리아가 그녀를 향해 수류탄을 던짐과 동시에 몸을 굴려 책상을 넘어뜨리면서 뒤로 숨었다.

RPK16

...이 정도 폭발은 "늑대"한테 소용 없는 거 아시잖아요.

아무렴요, 당신의 오랜 친구의 솜씨인데.

안젤리아

쳇!

그제서야 안젤리아는 깨달았다.

RPK-16이 왜 AK-15를 따로 보냈는지.

자신과 단둘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그 의도대로――

RPK16

어!?

AK15

――!!

폭발로 인한 분진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무쇠 같은 주먹이 문을 박살내며 들어와 RPK-16을 덮쳤다. 이에 RPK-16는 본능적으로 반응해, 유연한 몸놀림으로 흘려내는 한편 권총을 뽑아 기습자의 허리춤을 노렸다.

퍼억!

하지만 기습은 한 방으로 끝나지 않았다. AK-15의 억센 팔이 눈 깜짝할 사이에 RPK-16의 손과 몸을 비틀어, 권총을 쥔 RPK-16의 손가락 관절은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하게 꺾였다.

AK-15가 아주 조금만 더 힘을 주면, RPK-16는 팔이 통째로 뜯겨 나갈 터였다.

RPK16

소용없어요, AK-15.

저보다 당신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있나요?

AK15

!

딸그락.

AK-15가 허리춤에 장비한 전술 수류탄이 낭랑한 소리를 내었고, AK-15가 눈치챘을 땐 이미――

콰앙!!

안젤리아

AK-15!

AK15

...역시 심상치 않았다, RPK.

RPK16

어머, 알았어요?

역시 AK-15는 눈이 밝네요.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라니, 이거 뜻밖인걸요.

AK15

안젤리아, 도망치십시오.

안젤리아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데?

AK15

대량의 열원이 고속 접근 중... 패러데우스입니다.

어서 AN-94에게 가십시오.

안젤리아

그럼 너는...

AK15

......

AK-15가 시뻘건 눈으로 "파트너"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녀보다 RPK-16의 성가심과 무서움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AK15

RPK의 코어, 회수합니까?

안젤리아

...당연하지.

RPK16

아이 무서워라.

제발 우리 갈등은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