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단계
EP.13.5 · 거울단계

닉스의 밤 Ⅰ

"따끔거리는 꿈은 대부분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44-B4-1-1

1 / 83
전체 대사 보기 (83줄)

......

똑... 똑...

어두컴컴한 공장 안, 파열된 파이프에서 떨어지는 물은 바닥에 고여 웅덩이가 되었다.

싸늘한 공기는 뼛속까지 스며들어, 숨만 쉬기만 해도 가슴이 바늘에 찔리듯 아팠다.

마흐리안

...엘사.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곳에, 산처럼 쌓인 시체 더미에 파묻힌 소녀가 있었다.

마흐리안

엘사... 기다려, 조금만 참아...

언니가 금방 약을 만들어 줄게...

천장에서 뻗어 나온 수액관들 끝의 뾰족한 바늘이, 마흐리안의 살을 파고들었다.

마흐리안

윽!

피가 뽑혀 나간다.

주삿바늘은 마치 거머리처럼 마흐리안의 몸에서 양분을 약탈했다.

한 발짝 나아갈수록, 천장에서 더 많은 수액관이 뻗어졌다.

마흐리안

엘...사...

털썩!

온몸에 박힌 바늘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마흐리안은 쓰러졌다.

하지만 힘을 쥐어짜내, 앞으로 기어나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그 소녀의 어깨에 손이 닿는다.

마흐리안

......!!

탁한 웅덩이의 수면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몸에서 체액이 모조리 뽑혀 나간 마흐리안의 몰골은 흡사 미이라 같았다.

알 수 없는 목소리

넌 괴물이야...

사람의 시체로 만들어진 괴물!

마흐리안

아니야... 아니야...!

난 괴물이 아니야!

엘사

성녀... 언니...?

마흐리안

엘사!

마흐리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엘사의 얼굴을 본 순간, 심장이 멈췄다.

소녀의 얼굴은 부식되어 피가 철철 흐르고, 점점 규소화되어 가는 피부가 한없이 연약한 육체를 자비없이 찢어발겼다.

엘사

언니... 나 아파...

마흐리안

엘사...

꼬르륵——

갑자기 물웅덩이에서 검게 썩은 손들이 뻗어 나와, 엘사를 깊은 심연으로 끌고 들어갔다.

마흐리안

안 돼!!

마흐리안

엘——

꿈에서 깨어난 마흐리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그리폰 차량의 임시 지휘실이었다.

지휘관

아 마흐리안, 깼구나.

다른 사람들은 전술 테이블에 모여 무언가를 논의 중이었다.

지휘관은 소파에 누운 마흐리안을 보며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휘관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은데.

AR15

안색이 안 좋기는요.

이런 때에 잘만 자니,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M4 SOPMOD II

엥, 벌써 깼어? 회의 끝나고 얼굴에 낙서하려 했더니!

AR15

너 또 그러려고!?

마흐리안

아...

마흐리안은 눈을 비비며 심호흡했다.

마흐리안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전 괜찮아요.

무슨 회의 중이셨나요?

댄들라이

우린 지금 네가 제공한 좌표에서 약 50m 떨어진 위치에 있어.

차에서 내려 정찰해본 결과, 해당 좌표는 오래전 폐기된 공장임을 확인했지.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에 계획을 확실하게 짜야 해.

마흐리안

벌써 도착했다고요!?

마흐리안은 소파에서 허겁지겁 일어나다 그만 무릎을 티 테이블에 찧고 말았다.

지휘관

조심해.

마흐리안

...네.

찧은 곳을 살살 문지르며, 마흐리안도 절뚝절뚝 전술 테이블로 다가왔다.

AR15

엄살은...

마흐리안

이건... 지도인가요?

댄들라이

맞아, 내가 스캔한 지도지. 네 기억과 차이나는 점은 없어?

AR15

여긴 패러데우스의 영역인데, 이 녀석한테 물어도 돼?

댄들라이

확인해서 나쁠 것 없지.

그녀를 못 믿겠으면 내 지도만 보던가.

AR15

어느 쪽이든 짜증나네...

마흐리안은 말없이 테이블에 펼쳐진 단면도를 확인했다.

마흐리안

...제 기억과 그다지 차이가 없어요.

대단하네요... 문 앞에서 이렇게 넓은 범위를 스캔했다고요?

댄들라이

이 분야에선 내가 일가견 있거든.

RO635

그럼 지형은 충분히 파악한 것 같네요.

위험 요소는 어때?

댄들라이

패러데우스도, 니토의 존재도 탐지되지 않아.

저 안은 텅 비었어. 마흐리안의 말대로, 버려진 곳 같아.

지휘관

마흐리안, 너 정말 저 공장에서 탈출한 게 맞아?

마흐리안

...네, 확실해요.

악몽과 현실이 겹쳐지는 것 같은 느낌에, 지도를 보던 마흐리안은 휘청이며 양팔을 탁상에 짚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구토감을 억눌렀다.

마흐리안

전... 여기에서 태어나, 실험체가 되었어요.

그는 제가 부분면역체임을 알게 되자, 제 피를 원료로 혈청을 개발했어요.

물론, 그 의도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겠죠.

그래도 여기서 탈출할 때, 복사감염증을 치료하는 약을 어느 정도 가지고 나왔어요.

페로사

그때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데?

마흐리안

그때, 그들은 여기서 철수하는 중이었어요.

실험체, 처분할 시체, 운반할 수 있는 설비와 다른 물건들...

무슨 일이었는진 모르지만, 다들 엄청 분주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제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틈을 타... 달렸어요, 계속 달렸어요.

그러다 본 마을에 다다랐어요.

AR15

정말 쉽게도 탈출했네.

아, 그게 아니지.

그런 걸 보고 "하늘이 굽어살폈다"고 하던가?

RO635

넌 어려운 말 하는 거 하나도 안 어울리니까 그만해.

AR15

아 좀!

지휘관

그렇다면, 혈청을 만드는 설비가 남아있다고 어떻게 장담하지?

그들이 철수할 때 함께 가져갔을 수도 있잖아.

마흐리안

아뇨, 제 생각엔 못 가져갔을 거예요.

그 설비는 엄청 거대하고 건물과 결합된 형태여서, 왠만해선 옮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사실 그들도 혈청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어서, 괜히 그런 고생을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휘관

그런가... 어차피 달리 방도가 없으니, 일단은 살펴보는 수밖에.

지휘관이 시선을 돌려, 두 소대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

페로사, 그리폰 소대는 바깥에서 주위를 경계하도록. 무슨 일 있으면 즉시 보고해.

물론 우리도 상황이 발생하면 너희에게 곧장 지원을 요청할 거야.

페로사

알겠습니다.

지휘관

AR팀과 댄들라이는 평소처럼 나와 함께 마흐리안을 데리고 건물로 진입한다.

설비를 찾으면 구역을 확보하고, 혈청을 얻는 즉시 철수한다.

AR15

잠깐만요, 지휘관도 같이 가시게요?

반대합니다, 너무 위험해요.

RO635

맞습니다, 저도 지휘관님은 그리폰 소대와 함께 계시기를 건의합니다.

그 편이 유사시 저희도 행동하기 용이합니다.

지휘관

너희의 뜻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휘관이 마흐리안을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의 이마에 식은땀이 잔뜩 맺힌 것도 모르는 모습에, 아직도 몸을 떨며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휘관

...마흐리안의 상태가 걱정되니 말이지.

그리고, 댄들라이가 아래에 위협은 없다고 확인했잖아.

그러니 문제 없을 거야.

마흐리안

로빈...

저 때문에 로빈까지 위험에 노출될 필요는...

지휘관

행여 적이 기습하더라도, 입구로밖에 진입할 수 없어.

그러면, 오히려 차에 있는 편이 적과 더 가까워져 버리지.

그리고 패러데우스를 상대론 댄들라이 곁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잖아?

댄들라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AR15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마흐리안

......

마흐리안

...고마워요, 로빈.

지휘관

자 집중하고, 마지막으로 지도를 검토한다.

잠입과 철수 경로 확인해.

이번엔 댄들라이가 전체 지형도도 만들었으니, 본 마을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속전속결로 해치운다.

RO635

네.

페로사

알겠습니다.

지휘관

45?

UMP45

<color=#00CCFF>우리 걱정은 안 해도 돼.</color>

<color=#00CCFF>벌써 잊었어? 우린 상황에 맞춰서 움직여.</color>

지휘관

좋아, 그럼 모두 문제 없지?

준비 마치는 즉시 출발한다.

RO635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