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슈타지에 남아야 계속 조사를 할 거 아니야."
독일 베를린, 국가안전국.
J는 설마 슈타지의 상급 요원인 자신이 심문당하는 자리에 앉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럼...
슈타지가 봉쇄한 접근 금지 구역에 무단 침입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를 리 없겠지?
......
이 여성은 슈타지의 신임 국장, 로미 리펜슈탈.
즉, J의 새 상사였다.
조국을 배신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그걸 판단하는 건 나다, 케빈 요원.
제가 베를린으로 배치되면서 맡은 임무는 신소련의 안젤리아 요원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희생된 요원들 중 한 명인 라이트는 제 후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진상 조사에 나선 겁니다.
하지만 난 허가하지 않았어.
저도 슈타지 요원 아닙니까? 요원의 직책은 진실을 밝혀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겁니다.
저는 이번 사건이 국익에 해를 끼칠 중대한 일이라 판단하여 행동했습니다.
네가 뭔데? 네 판단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인가?
다른 사람들은 다 머저리인 줄 알아?
......
네가 수 차례나 제출한 조사 신청서, 내가 읽어보지도 않은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야.
난 똑똑히 말했다, 그곳은 더는 조사할 가치가 없다고.
거기서 우리 요원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현장을 조사할 가치가 없다뇨?!
댁이 국장이라지만 이제 막 취임했으면서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유도 설명 않고 그런 판단을 내리면 누가 납득합니까! 귀신도――
그만.
로미는 J의 항변을 묵살하고, 증거물품함에서 J가 양옥에서 발견했던 약병을 꺼내 들었다.
이건 뭐지?
...보고도 모르시겠습니까?
이게 뭐냐고 물었다.
현장에서 찾아낸 단서입니다.
병의 그 로고는 갈라테아 그룹의 것이 확실하고요.
하지만 시중에 이런 포장의 제품은 유통된 적 없습니다.
즉, 아직 출시되지 않은 시제품이란 뜻이죠. 그리고 그런 건 오직 어느 정도 직급이 되는 내부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현장에 갈라테아의 관계자가 있었단 명백한 증거입니다.
멍청이.
......잘 못 들었습니다?
이것만으론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어.
로미는 흥미 없다는 듯 병을 한쪽에 내려놨다.
이깟 약병 하나쯤, 그곳에 있었던 이유라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어.
너는 그저 네가 가장 바라는, 가능성 낮은 결론을 믿기로 한 것에 불과해.
아니 그게 말이 되는――
네 무단 행동의 이유는 그게 다인가?
...이렇게 쉽게 후속 조사도 없이 포기한다는 결정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네가 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자격은 없다.
그래서 "국장님"의 결정이란, 희생된 동료들을 무시하고, 일을 벌인 범인에 대해서 신경쓰는 척도 안 하겠단 겁니까?
아무래도 넌 네 일자리가 소중하지 않나 보군.
......!
똑똑.
국장님, 실례하겠습니다.
케인 슈바벤입니다.
...들어와.
K가 그 익숙한 무덤덤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로미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갈라테아의 제약 공장 운영 중지 건에 대해서 새로 보고드릴 내용이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로미는 의자에 묶여 있는 J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곤, 리모컨을 눌러 J의 구속을 풀어 주었다.
가 봐.
...이대로 끝이라고요?
그래, 끝이다. 슈타지에서의 마지막 몇 시간이나 만끽해.
국가안전국의 사무실에, J는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겼다.
케빈, 할 얘기가...
...너 지금 뭐하냐?
J가 골판지 상자에서 고개를 들었다.
보면 모르겠냐? 내 바캉스 플랜의 첫 단계지. 명예퇴직.
그 아줌마가 말했잖아.
......
거침없는 J의 말에 K는 이번에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제서야 J는 K의 뒤에 처음 보는 여성이 있는 것을 눈치챘다.
좀 어른스럽게 행동해라...
뭐, 내가 지금 애들처럼 땡깡이라도 부리는 거 같아?
J는 정리 중이던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K를 마주봤다.
좌절 좀 겪었다고 다 때려치려는 그 행위가 유치해서지 그럼 뭐겠냐.
라이트의 복수를 하겠다면서 슈타지를 그만두겠다니, 이런 걸 보고 정신분열이라 하던가?
됐네요 이 자식아! 내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조사 안 한다니 너한테 유치하단 소리나 듣고, 조사한다니 그 여자한테 욕이나 먹―― 아, 욕이 아니라 모가지네.
......
K는 숨을 깊이 들이쉬곤 J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케빈, 주변을 봐라. 빈 자리가 이렇게 많아졌어. 너만 당한 게 아니야. 그만둔 게 누구누구인지도 생각해 봐, 그들은 왜 떠났을 거 같냐?
무슨 일이든 좀 더 머리를 굴리라고.
지금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어딨다고... 내 머릿속엔 지금 양옥에서 뭔 일이 있었나밖에 없어.
이 멍청아, 슈타지에 남아야 계속 조사를 할 거 아니야.
이제 와서 죄송합니다~ 해도 소용 없을 텐데?
그거라면 걱정 마라.
그녀가 네게 새 임무를 하달했다. 너 안 짤렸어.
너... 설마 날 위해 미인계를?
K는 J의 농담에 딴지 대신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곤 한 발짝 물러나, 여태까지 침묵하던 소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
소개하지. 이쪽은 모나 양이다. 얼마 전 슈타지에 정식 배치된 전술인형이지.
잘 부탁드립니다, J 요원.
오, 우리도 이제 전술인형 써? 음 음... 일단 외모는 합격.
...리펜슈탈 국장의 요구로, 슈타지에 전술인형 운용이 도입된 거다. 아직은 실험 기수다만.
현시간부로, 모나 양이 널 데리고 임무를 수행할 거다.
예쁜 전술인형 아가씨과 함께 작――뭐?
잠깐잠깐, 내가 잘못 들었나...? 난 인간에, 얜 인형 맞지? 얘가 날 지휘한다고?
청력에 이상 없는 것 같아 다행이군.
아무튼, 윗선의 명령이다. 상관 명령엔 절대복종이라, 훈련 때 안 배웠나?
......쓰읍.
알았어.
수행할 임무의 내용은 모나 양이 대신 설명하도록.
네. 얼마 전 갈라테아 제약 공장의 운영 정지 처분으로 인한 치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베를린 경찰청에게서 전달받은 정보로, 현재 한 시위대 무리가 제약 공장 앞에 집합했다고 합니다.
즉시 출동해 폭력 내지는 범법 행위 발생을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쳇... 참 슈타지 요원다운 일이구만.
하면 되잖아, 높으신 분이 까라면 까야지.
모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가 문을 열었다.
케빈.
이거 가지고 가라.
K가 불쑥 J에게 내민 것은 연락처로 보이는 숫자가 적힌 쪽지였다. 다만, 이게 연락처라면 독일의 것이 아니었다.
J는 번호를 머릿속에 새겨둔 다음, 쪽지를 구겨 주머니에 쑤셔넣곤 고개를 돌려 K를 보았다.
시간 있을 때 걸어 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그래.
갈라테아 그룹, 그레이 생물 연구소.
뭘 보고 있지?
주문 내역서.
손가락으로 탁상을 툭툭 두드리며 목록을 읽어 내려가는 그레이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보낸 건가?
맞아.
메시지만 보내곤, 연락받는 걸 거절하고 있어.
...아버님이나 스승님 외엔 아무하고도 말하기 싫다는 거겠지.
...그레이.
이게 뭐람...
그 여자, 선전포고라도 하는 건가? 아님 투항하겠단 걸 돌려 말하나?
그녀의 성격으로 판단할 때, 둘 다 아니야.
흥...
아무리 불만이 많더라도, 지금 임무의 흐름을 쥔 사람은 녀석이 아니라 바로 나야.
그녀가 네게 주문을 보낸 것이 그 증거지.
그래...
임무는 어차피 실행해야 해. 때가 왔어.
불꽃이 피어날 날이 정해졌으니, 아무도 막을 수 없어.
베를린 시가지, 가동 정지된 갈라테아 제약 공장 앞.
망할 놈들아! 약 만드는 공장을 멈추면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냐!
정부는 우릴 몽땅 죽일 셈이냐!
벌써 약을 살 곳이 없어요! 이래서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요!!
가동 정지 처분에 분노한 시민들이, 공장 앞 차단선에 모여 울부짖었다.
그 많은 수에, 출동한 경찰 인력만으로는 그들을 진정시키는 데 점점 힘에 부쳐 가는 상황이었다.
로미 국장님께서 내리신 임무는, 경찰의 시위대 해산 및 치안 유지 임무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도착 전까지 일부 사건 사례 보고를 봤는데, 현장을 직접 보니 예상보다 심각하군요.
J 요원의 의견은 어떱니까?
내 의견은 왜 물어?
여기 대장은 너잖아.
그렇죠. 하지만 J 요원이 저보다 슈타지 요원으로서의 경험이 훨씬 풍부합니다.
J 요원의 경험이 임무 수행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합니다만, 이견 있습니까?
어떻게 봐도, 모나는 틀림없이 "국장님 편"이었다.
J와는 완전 반대 입장인 것이다.
거 참... 어쩌긴 뭘 어째, 치안 유지 도우랬으니 그렇게 해야지.
일단 여기 담당자한테 연락하고, 상황 보면서 행동해야지.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요원 일을 한다는 거야?
......
그 말에 J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소 이상했지만, 그녀는 딱히 뭐라 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리펜슈탈 그 여자, 이딴 허드렛이나 시키다니... 나보고 귀찮으니까 좀 가만 있어라 이거잖아?)
(인형까지 감시로 붙이고 말이야...)
(젠장! 이딴 데서 시간 낭비할 여유 없다고!)
모나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J는 속으로만 불같이 화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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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국가안전국.
J는 설마 슈타지의 상급 요원인 자신이 심문당하는 자리에 앉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럼...
슈타지가 봉쇄한 접근 금지 구역에 무단 침입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를 리 없겠지?
......
이 여성은 슈타지의 신임 국장, 로미 리펜슈탈.
즉, J의 새 상사였다.
조국을 배신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그걸 판단하는 건 나다, 케빈 요원.
제가 베를린으로 배치되면서 맡은 임무는 신소련의 안젤리아 요원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희생된 요원들 중 한 명인 라이트는 제 후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진상 조사에 나선 겁니다.
하지만 난 허가하지 않았어.
저도 슈타지 요원 아닙니까? 요원의 직책은 진실을 밝혀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겁니다.
저는 이번 사건이 국익에 해를 끼칠 중대한 일이라 판단하여 행동했습니다.
네가 뭔데? 네 판단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인가?
다른 사람들은 다 머저리인 줄 알아?
......
네가 수 차례나 제출한 조사 신청서, 내가 읽어보지도 않은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야.
난 똑똑히 말했다, 그곳은 더는 조사할 가치가 없다고.
거기서 우리 요원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현장을 조사할 가치가 없다뇨?!
댁이 국장이라지만 이제 막 취임했으면서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유도 설명 않고 그런 판단을 내리면 누가 납득합니까! 귀신도――
그만.
로미는 J의 항변을 묵살하고, 증거물품함에서 J가 양옥에서 발견했던 약병을 꺼내 들었다.
이건 뭐지?
...보고도 모르시겠습니까?
이게 뭐냐고 물었다.
현장에서 찾아낸 단서입니다.
병의 그 로고는 갈라테아 그룹의 것이 확실하고요.
하지만 시중에 이런 포장의 제품은 유통된 적 없습니다.
즉, 아직 출시되지 않은 시제품이란 뜻이죠. 그리고 그런 건 오직 어느 정도 직급이 되는 내부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현장에 갈라테아의 관계자가 있었단 명백한 증거입니다.
멍청이.
......잘 못 들었습니다?
이것만으론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어.
로미는 흥미 없다는 듯 병을 한쪽에 내려놨다.
이깟 약병 하나쯤, 그곳에 있었던 이유라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어.
너는 그저 네가 가장 바라는, 가능성 낮은 결론을 믿기로 한 것에 불과해.
아니 그게 말이 되는――
네 무단 행동의 이유는 그게 다인가?
...이렇게 쉽게 후속 조사도 없이 포기한다는 결정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네가 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자격은 없다.
그래서 "국장님"의 결정이란, 희생된 동료들을 무시하고, 일을 벌인 범인에 대해서 신경쓰는 척도 안 하겠단 겁니까?
아무래도 넌 네 일자리가 소중하지 않나 보군.
......!
똑똑.
국장님, 실례하겠습니다.
케인 슈바벤입니다.
...들어와.
K가 그 익숙한 무덤덤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로미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갈라테아의 제약 공장 운영 중지 건에 대해서 새로 보고드릴 내용이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로미는 의자에 묶여 있는 J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곤, 리모컨을 눌러 J의 구속을 풀어 주었다.
가 봐.
...이대로 끝이라고요?
그래, 끝이다. 슈타지에서의 마지막 몇 시간이나 만끽해.
국가안전국의 사무실에, J는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겼다.
케빈, 할 얘기가...
...너 지금 뭐하냐?
J가 골판지 상자에서 고개를 들었다.
보면 모르겠냐? 내 바캉스 플랜의 첫 단계지. 명예퇴직.
그 아줌마가 말했잖아.
......
거침없는 J의 말에 K는 이번에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제서야 J는 K의 뒤에 처음 보는 여성이 있는 것을 눈치챘다.
좀 어른스럽게 행동해라...
뭐, 내가 지금 애들처럼 땡깡이라도 부리는 거 같아?
J는 정리 중이던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K를 마주봤다.
좌절 좀 겪었다고 다 때려치려는 그 행위가 유치해서지 그럼 뭐겠냐.
라이트의 복수를 하겠다면서 슈타지를 그만두겠다니, 이런 걸 보고 정신분열이라 하던가?
됐네요 이 자식아! 내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조사 안 한다니 너한테 유치하단 소리나 듣고, 조사한다니 그 여자한테 욕이나 먹―― 아, 욕이 아니라 모가지네.
......
K는 숨을 깊이 들이쉬곤 J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케빈, 주변을 봐라. 빈 자리가 이렇게 많아졌어. 너만 당한 게 아니야. 그만둔 게 누구누구인지도 생각해 봐, 그들은 왜 떠났을 거 같냐?
무슨 일이든 좀 더 머리를 굴리라고.
지금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어딨다고... 내 머릿속엔 지금 양옥에서 뭔 일이 있었나밖에 없어.
이 멍청아, 슈타지에 남아야 계속 조사를 할 거 아니야.
이제 와서 죄송합니다~ 해도 소용 없을 텐데?
그거라면 걱정 마라.
그녀가 네게 새 임무를 하달했다. 너 안 짤렸어.
너... 설마 날 위해 미인계를?
K는 J의 농담에 딴지 대신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곤 한 발짝 물러나, 여태까지 침묵하던 소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
소개하지. 이쪽은 모나 양이다. 얼마 전 슈타지에 정식 배치된 전술인형이지.
잘 부탁드립니다, J 요원.
오, 우리도 이제 전술인형 써? 음 음... 일단 외모는 합격.
...리펜슈탈 국장의 요구로, 슈타지에 전술인형 운용이 도입된 거다. 아직은 실험 기수다만.
현시간부로, 모나 양이 널 데리고 임무를 수행할 거다.
예쁜 전술인형 아가씨과 함께 작――뭐?
잠깐잠깐, 내가 잘못 들었나...? 난 인간에, 얜 인형 맞지? 얘가 날 지휘한다고?
청력에 이상 없는 것 같아 다행이군.
아무튼, 윗선의 명령이다. 상관 명령엔 절대복종이라, 훈련 때 안 배웠나?
......쓰읍.
알았어.
수행할 임무의 내용은 모나 양이 대신 설명하도록.
네. 얼마 전 갈라테아 제약 공장의 운영 정지 처분으로 인한 치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베를린 경찰청에게서 전달받은 정보로, 현재 한 시위대 무리가 제약 공장 앞에 집합했다고 합니다.
즉시 출동해 폭력 내지는 범법 행위 발생을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쳇... 참 슈타지 요원다운 일이구만.
하면 되잖아, 높으신 분이 까라면 까야지.
모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가 문을 열었다.
케빈.
이거 가지고 가라.
K가 불쑥 J에게 내민 것은 연락처로 보이는 숫자가 적힌 쪽지였다. 다만, 이게 연락처라면 독일의 것이 아니었다.
J는 번호를 머릿속에 새겨둔 다음, 쪽지를 구겨 주머니에 쑤셔넣곤 고개를 돌려 K를 보았다.
시간 있을 때 걸어 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그래.
갈라테아 그룹, 그레이 생물 연구소.
뭘 보고 있지?
주문 내역서.
손가락으로 탁상을 툭툭 두드리며 목록을 읽어 내려가는 그레이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보낸 건가?
맞아.
메시지만 보내곤, 연락받는 걸 거절하고 있어.
...아버님이나 스승님 외엔 아무하고도 말하기 싫다는 거겠지.
...그레이.
이게 뭐람...
그 여자, 선전포고라도 하는 건가? 아님 투항하겠단 걸 돌려 말하나?
그녀의 성격으로 판단할 때, 둘 다 아니야.
흥...
아무리 불만이 많더라도, 지금 임무의 흐름을 쥔 사람은 녀석이 아니라 바로 나야.
그녀가 네게 주문을 보낸 것이 그 증거지.
그래...
임무는 어차피 실행해야 해. 때가 왔어.
불꽃이 피어날 날이 정해졌으니, 아무도 막을 수 없어.
베를린 시가지, 가동 정지된 갈라테아 제약 공장 앞.
망할 놈들아! 약 만드는 공장을 멈추면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냐!
정부는 우릴 몽땅 죽일 셈이냐!
벌써 약을 살 곳이 없어요! 이래서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요!!
가동 정지 처분에 분노한 시민들이, 공장 앞 차단선에 모여 울부짖었다.
그 많은 수에, 출동한 경찰 인력만으로는 그들을 진정시키는 데 점점 힘에 부쳐 가는 상황이었다.
로미 국장님께서 내리신 임무는, 경찰의 시위대 해산 및 치안 유지 임무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도착 전까지 일부 사건 사례 보고를 봤는데, 현장을 직접 보니 예상보다 심각하군요.
J 요원의 의견은 어떱니까?
내 의견은 왜 물어?
여기 대장은 너잖아.
그렇죠. 하지만 J 요원이 저보다 슈타지 요원으로서의 경험이 훨씬 풍부합니다.
J 요원의 경험이 임무 수행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합니다만, 이견 있습니까?
어떻게 봐도, 모나는 틀림없이 "국장님 편"이었다.
J와는 완전 반대 입장인 것이다.
거 참... 어쩌긴 뭘 어째, 치안 유지 도우랬으니 그렇게 해야지.
일단 여기 담당자한테 연락하고, 상황 보면서 행동해야지.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요원 일을 한다는 거야?
......
그 말에 J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소 이상했지만, 그녀는 딱히 뭐라 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리펜슈탈 그 여자, 이딴 허드렛이나 시키다니... 나보고 귀찮으니까 좀 가만 있어라 이거잖아?)
(인형까지 감시로 붙이고 말이야...)
(젠장! 이딴 데서 시간 낭비할 여유 없다고!)
모나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J는 속으로만 불같이 화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