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전 슈타지 요원, K의 동료죠. J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독일 베를린의 교외.
후우...
인형들은 전복된 차량에 의탁해, 습격해 온 패러데우스의 부대를 힘겹게나마 섬멸했다.
소규모 습격이어서 망정이지...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어.
일단 이 차, 아직 굴러갈 수는 있어?
으랏차차차――
SOP2가 차량을 다시 뒤집어 세우려고 애를 썼다.
퍽!
또 이딴 수작 부리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우리가 정말 널 못 죽일 거 같아!?
열받은 AR-15가 다짜고짜 몰리도에게 주먹부터 날렸다.
......
그럼에도 몰리도는 그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AR-15, 그만. 화풀이해 봤자야.
가서 다른 애들을 도와주렴.
후우... 죄송합니다.
AR-15는 몰리도를 다시 매섭게 쏘아보곤, 당장에라도 쏴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반대편의 여전히 혼수 상태인 댄들라이를 확인하러 갔다.
아직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았네요, 그리폰의 지휘관~?
그 입 다물어.
어머~ 입을 다물라뇨, 입을 열게 하려고 저를 사로잡은 거 아니었나요?
입 다물고 있으면 오히려 기분 나쁠 텐데~
쓸데없는 말 말라고 했다.
정말 너무하네요. 언니한텐 엄청 상냥했잖아요. 저한텐 왜 매정하세요?
너는 그녀가 아니야... 그녀는 힘이 있어도 사리사욕으로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이 아니었어.
헤~? 피로 손을 씻는 당신이 그런 걸 신경쓰다니, 놀랍네요.
아~ 알았다, 빛을 바라는 진흙 속 싹 같은 취향이셨군요. 알겠어요.
다음번엔 꼭 만족시켜 드릴게요.
......
지휘관님!
RO635가 황급히 달려와, 지휘관과 몰리도의 "대화"를 끊었다.
...기지로부터 통신입니다.
......
지휘관은 몰리도를 흘겨보곤 RO635를 따라갔다.
접니다.
아직 몸 성해 보여서 기쁘군요, 지휘관.
헬리안 씨! 카리나는 어떻습니까? 병세는 호전됐나요?
걱정 마십시오, 카리나라면 아주 양호합니다.
치료가 용이한 전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니, 곧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안나를 비롯한 어린 니토들도, 지휘관이 부재 중이기에 당분간 하벨 씨가 맡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앗, 다짜고짜 저부터 질문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연락하시다니, 무슨 상황이라도 발생했습니까?
이쪽은 아니지만, 상황이 발생하긴 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휘관.
......?!
다, 당신은?
슈타지의 요원, J라고 합니다. K 녀석의 동료죠.
아하... 역시 슈타지가 계속 안젤리아에게 도움을...
지휘관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말에,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설마 그게 안젤리아와의 마지막 통신이 될 줄이야.
해야만 하는 일이 더 늘어났다.
우리에게 계속 도움을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입니다.
당신과 K에게 진 빚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거 참, 안젤리아 씨랑은 진짜 딴판이군요? 시간 없으니까 겉치레는 됐습니다.
......
...K가 댁의 연락처를 내게 줬다는 건, 녀석이 댁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단 뜻이죠.
전 말입니다, K도 믿고 안젤리아 씨도 믿습니다. 그러니 댁에게도 한번 걸어보기로 했어요. 그쪽도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 아니죠?
참, 낯간지러우니까 말 놔도 됩니다. 안젤리아 씨랑 늑대 아가씨들한테 하도 들들 볶여서 이젠 그게 더 편하네요.
어... 그렇다면야.
아무튼, 상황이 상황일 텐데 연락해 줘서 고맙다.
댁도 알다시피, 패러데우스의 침투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진 상황이니, 우리가 협력해야만 일을 만회할 수 있어요.
......
지휘관을 얼굴을 문질러 차분함을 회복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댁네 숙녀분들께 먼저 말했지만, 지금 전 감시가 붙어서 움직이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뭘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댁은 아니죠.
그러니, 제가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댁은 조사한 결과를 공유해 주기만 하면 돼요.
......
...제 동지들이 말입니다, 그 저택에서 일곱 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안젤리아 씨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몰라요. 그럼 분명 구해낼 기회가 있을 겁니다.
아무렴, 안젤리아 씨인데.
그리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야.
이야하, 이제야 좀 죽이 맞는 사람을 만났네요! 같이 잘 해봅시다.
알았다. 그럼 계속해서 연락 주길 바란다.
뭣 좀 찾아내면 바로 알려 주십쇼, 저도 그럴 테니.
그러지.
삑.
통신 종료.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믿어도 될까요?
그는 K의 암호 채널로 연락했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길을 하나 더 뚫어도 나쁠 것 없지 않을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 포로한테 확실하게 물어볼 것이 아주 많아졌지.
네.
......
............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여성악가가 홀 중앙 무대에 올라 공연을 시작했다.
Kein Traum ist dieses Glück!
Ich halte dich umfangen♪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어떤 마력이라도 깃든 것처럼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정말 매력적인 가창력이야...
그대 취향은 여전하군.
루돌프 폰 오버슈타인 장관은 2층 좌측의 특별석에 앉아 있었다.
물론, 오늘 이곳에 온 거물급 인사는 그만이 아니었다. 민주독일의 실권자들 대다수가 이 오페라 극장에 모였다.
전반부의 막이 내린 후, 중간 휴식 시간.
루돌프, 그 친구가 소련에서 가져온 선물이오.
호오... 스톨리치나야라. 나보고 자제하고 당부하는 뜻인가?
으음... 이젠 이게 어떤 맛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군.
자네의 취향을 아주 훤히 꿰고 있는 모양이구려.
술잔을 든 오버슈타인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딴소린 그만하지. 그가 우리의 초대에 응했나?
그렇소. 처음부터 자네가 보내는 초대란 것도 알더군.
그야 그렇겠지, 평범한 인물이 아니니까.
자네가 그와 접촉하기로 한 이유를 이제야 좀 알겠소. 하지만, 이래서는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소?
이사회의 일원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어딨소? 안 그래도 지금 스위스가 루련에게 꼼짝 못하고 있는데, 그들 귀에 들어갔다간...
하인리히, 그대는 훈작사와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이 아니라 스위스와도 관계가 두터운가 보군?
하지만 조심하게, 돈으로 사귄 것은 친구가 아니라 짐승일지도 모르는 법일세.
......
하하하...
너무 걱정 말게나 장군, 51년 때와 같은 대규모 군비 감축은 없다고 내 약속하지. 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오, 루돌프. 더 큰 문제가――
나머진 나중에 하지, 그 친구가 왔네.
오버슈타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특별석의 문 밖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관님, 그리폰 훈작사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보내게.
네.
잠시 후 특별석이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서 지각한 손님을 환영했다.
어서오게 훈작사, 참 늦게도 왔군. 전반부의 훌륭한 소프라노 공연을 통째로 놓쳐서 정말 유감일세.
두 분께 정말 송구합니다, 설마 비 내리는 베를린의 도로가 여전히 런던에 필적하는 난장판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오버슈타인 장관. 마지막으로 뵈었던 게 62년이었는데, 풍채가 여전하시군요.
허허, 그런가? 전에 봤던 게 런던의 유럽 정보화 기술 세미나에서였지? 그때 자네는 아직... "내각 사무실의 비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기억해 주시다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선물도 고맙게 받겠네. 간만에 이걸 보니 재건 시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그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만, 솔직히 장관께선 보드카를 싫어하실 줄 알았습니다.
자네도 베를린에서 이렇게 오래 머무르고 있지 않은가? 나도 영국인은 평생 섬 밖으로 나오길 싫어하는 줄 알았어.
......
눈빛을 주고받던 그리폰과 오버슈타인은 동시에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지켜보던 슈바인슈타이거는 소리 죽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멀뚱멀뚱 서서 뭐하는 거요? 자, 앉아서 계속합시다.
앉으시게.
먼저 앉으십시오.
세 사람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고, 오버슈타인부터 입을 열었다.
훈작사, 자네가 베를린에 온 지도 한참이 됐는데 여태까지 마주보고 대화할 기회가 없었네. 그러니, 오늘 이렇게 만난 참에 내 다 얘기하지.
대체 이사회는 무엇을 보고 이토록 베를린에 흥미를 갖는 겐가?
본 것이 아니라 맡은 것입니다, 장관.
폭풍 전야의 그 피비린내 섞인 냄새를 말이죠.
폭풍이 다가오고 있단 말이오?
저는 이 자리가 우리가 그걸 어떻게 막을지를 논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그래? 그럼 그 피비린내가 온 나라에 배이지 않도록 하려면 내가 무얼 하면 되겠나?
염려 마십시오, 장관께서 원하신다면 이 정도의 피비린내는 가볍게 씻어내기만 해도 지워질 겁니다.
하지만, 씻어낼 피가 묻는 것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상책이겠죠.
......
훈작사, 현재 베를린의 추태를 양해해 주길 바라네. 독일에게 있어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야.
존경하는 오버슈타인 장관, 저는 궁금합니다. 독일은 이러한 혼란에 어떻게 종지부를 찍으려 할지. 나라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장관께선 어떤 미래를 바라십니까?
이렇게 헌 집에 사는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고 보나?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 이 헌 집을 허무시겠단 말씀입니까? 그럼 누가, 어떻게 허물 것인지요? 장관께서 발로 차셔서?
훈작사, 말을 좀...
괜찮네, 하인리히.
먼 길을 온 이국의 손님이 우리나라에 이토록 관심을 가져 주는데, 고마워해야지.
이해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부디 믿어 주시길. 저는 유럽에 밝은 미래가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는 바입니다.
훈작사, 자넨 내가 언제 이 보드카를 처음 마셔봤는지 아나? 벌써 10년도 넘었네.
어느 방공호에서, 내 중위가 긴장이나 누그러뜨리자고 한 잔 따라 줬네. 지금도 그의 미소가 생생하게 기억나.
그러니 자네가 네게 이 혼란에 어떻게 종지부를 찍을지 물을 것 없네. 이런 일은 우리의 신소련 친구들이 더 잘 거 아닌가.
다만 그들은 지금은 그쪽의 골칫거리를 처리하는 중이라, 이런 귀중한 경험을 나눌 시간이 없을 겁니다.
그것 참 아쉽구먼. 그럼 대신 꼭 안부라도 전해 주게나, 몸조심하라고. 시베리아의 겨울은 아주 추우니까 말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그들이 항상 건강하기를 기원합시다.
그래, 그들이 항상 건강하기를.
오버슈타인은 술잔을 들어, 보드카를 단숨에 삼켰다.
훈작사, 오늘 이렇게 와 주어서 정말 고맙네. 독일은 분쟁과 혼란을 겪으면서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잃었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해.
물론, 나도 "미래의 독일"에서 자네와 다시 보고 싶네.
그리고 오버슈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특별석의 장막을 젖혔다.
슈바인슈타이거 장군, 초대해 주어 정말 고맙네.
하지만 미안하네, 내일도 국가에 헌신하려면 오늘은 일찍 돌아가야겠어. 그럼, 이만 실례하지.
그렇게 오버슈타인 장관은 특별석을 떠났다.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누군들 안 그렇겠소.
......
전체 대사 보기 (128줄)
독일 베를린의 교외.
후우...
인형들은 전복된 차량에 의탁해, 습격해 온 패러데우스의 부대를 힘겹게나마 섬멸했다.
소규모 습격이어서 망정이지...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어.
일단 이 차, 아직 굴러갈 수는 있어?
으랏차차차――
SOP2가 차량을 다시 뒤집어 세우려고 애를 썼다.
퍽!
또 이딴 수작 부리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우리가 정말 널 못 죽일 거 같아!?
열받은 AR-15가 다짜고짜 몰리도에게 주먹부터 날렸다.
......
그럼에도 몰리도는 그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AR-15, 그만. 화풀이해 봤자야.
가서 다른 애들을 도와주렴.
후우... 죄송합니다.
AR-15는 몰리도를 다시 매섭게 쏘아보곤, 당장에라도 쏴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반대편의 여전히 혼수 상태인 댄들라이를 확인하러 갔다.
아직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았네요, 그리폰의 지휘관~?
그 입 다물어.
어머~ 입을 다물라뇨, 입을 열게 하려고 저를 사로잡은 거 아니었나요?
입 다물고 있으면 오히려 기분 나쁠 텐데~
쓸데없는 말 말라고 했다.
정말 너무하네요. 언니한텐 엄청 상냥했잖아요. 저한텐 왜 매정하세요?
너는 그녀가 아니야... 그녀는 힘이 있어도 사리사욕으로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이 아니었어.
헤~? 피로 손을 씻는 당신이 그런 걸 신경쓰다니, 놀랍네요.
아~ 알았다, 빛을 바라는 진흙 속 싹 같은 취향이셨군요. 알겠어요.
다음번엔 꼭 만족시켜 드릴게요.
......
지휘관님!
RO635가 황급히 달려와, 지휘관과 몰리도의 "대화"를 끊었다.
...기지로부터 통신입니다.
......
지휘관은 몰리도를 흘겨보곤 RO635를 따라갔다.
접니다.
<color=#00CCFF>아직 몸 성해 보여서 기쁘군요, 지휘관.</color>
헬리안 씨! 카리나는 어떻습니까? 병세는 호전됐나요?
<color=#00CCFF>걱정 마십시오, 카리나라면 아주 양호합니다.</color>
<color=#00CCFF>치료가 용이한 전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니, 곧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color>
<color=#00CCFF>더불어 안나를 비롯한 어린 니토들도, 지휘관이 부재 중이기에 당분간 하벨 씨가 맡기로 했습니다.</color>
그렇군요... 앗, 다짜고짜 저부터 질문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연락하시다니, 무슨 상황이라도 발생했습니까?
<color=#00CCFF>이쪽은 아니지만, 상황이 발생하긴 했습니다.</color>
<color=#00CCFF>만나서 반갑습니다, 지휘관.</color>
......?!
다, 당신은?
<color=#00CCFF>슈타지의 요원, J라고 합니다. K 녀석의 동료죠.</color>
아하... 역시 슈타지가 계속 안젤리아에게 도움을...
지휘관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말에,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설마 그게 안젤리아와의 마지막 통신이 될 줄이야.
해야만 하는 일이 더 늘어났다.
우리에게 계속 도움을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입니다.
당신과 K에게 진 빚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color=#00CCFF>거 참, 안젤리아 씨랑은 진짜 딴판이군요? 시간 없으니까 겉치레는 됐습니다.</color>
......
<color=#00CCFF>...K가 댁의 연락처를 내게 줬다는 건, 녀석이 댁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단 뜻이죠.</color>
<color=#00CCFF>전 말입니다, K도 믿고 안젤리아 씨도 믿습니다. 그러니 댁에게도 한번 걸어보기로 했어요. 그쪽도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 아니죠?</color>
<color=#00CCFF>참, 낯간지러우니까 말 놔도 됩니다. 안젤리아 씨랑 늑대 아가씨들한테 하도 들들 볶여서 이젠 그게 더 편하네요.</color>
어... 그렇다면야.
아무튼, 상황이 상황일 텐데 연락해 줘서 고맙다.
<color=#00CCFF>댁도 알다시피, 패러데우스의 침투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color>
<color=#00CCFF>믿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진 상황이니, 우리가 협력해야만 일을 만회할 수 있어요.</color>
......
지휘관을 얼굴을 문질러 차분함을 회복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color=#00CCFF>댁네 숙녀분들께 먼저 말했지만, 지금 전 감시가 붙어서 움직이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뭘 할 수가 없어요.</color>
<color=#00CCFF>하지만 댁은 아니죠.</color>
<color=#00CCFF>그러니, 제가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댁은 조사한 결과를 공유해 주기만 하면 돼요.</color>
......
<color=#00CCFF>...제 동지들이 말입니다, 그 저택에서 일곱 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color>
<color=#00CCFF>하지만 안젤리아 씨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몰라요. 그럼 분명 구해낼 기회가 있을 겁니다.</color>
아무렴, 안젤리아 씨인데.
그리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야.
<color=#00CCFF>이야하, 이제야 좀 죽이 맞는 사람을 만났네요! 같이 잘 해봅시다.</color>
알았다. 그럼 계속해서 연락 주길 바란다.
<color=#00CCFF>뭣 좀 찾아내면 바로 알려 주십쇼, 저도 그럴 테니.</color>
그러지.
삑.
통신 종료.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믿어도 될까요?
그는 K의 암호 채널로 연락했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길을 하나 더 뚫어도 나쁠 것 없지 않을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 포로한테 확실하게 물어볼 것이 아주 많아졌지.
네.
......
............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여성악가가 홀 중앙 무대에 올라 공연을 시작했다.
Kein Traum ist dieses Glück!
Ich halte dich umfangen♪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어떤 마력이라도 깃든 것처럼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정말 매력적인 가창력이야...
그대 취향은 여전하군.
루돌프 폰 오버슈타인 장관은 2층 좌측의 특별석에 앉아 있었다.
물론, 오늘 이곳에 온 거물급 인사는 그만이 아니었다. 민주독일의 실권자들 대다수가 이 오페라 극장에 모였다.
전반부의 막이 내린 후, 중간 휴식 시간.
루돌프, 그 친구가 소련에서 가져온 선물이오.
호오... 스톨리치나야라. 나보고 자제하고 당부하는 뜻인가?
으음... 이젠 이게 어떤 맛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군.
자네의 취향을 아주 훤히 꿰고 있는 모양이구려.
술잔을 든 오버슈타인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딴소린 그만하지. 그가 우리의 초대에 응했나?
그렇소. 처음부터 자네가 보내는 초대란 것도 알더군.
그야 그렇겠지, 평범한 인물이 아니니까.
자네가 그와 접촉하기로 한 이유를 이제야 좀 알겠소. 하지만, 이래서는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소?
이사회의 일원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어딨소? 안 그래도 지금 스위스가 루련에게 꼼짝 못하고 있는데, 그들 귀에 들어갔다간...
하인리히, 그대는 훈작사와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이 아니라 스위스와도 관계가 두터운가 보군?
하지만 조심하게, 돈으로 사귄 것은 친구가 아니라 짐승일지도 모르는 법일세.
......
하하하...
너무 걱정 말게나 장군, 51년 때와 같은 대규모 군비 감축은 없다고 내 약속하지. 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오, 루돌프. 더 큰 문제가――
나머진 나중에 하지, 그 친구가 왔네.
오버슈타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특별석의 문 밖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관님, 그리폰 훈작사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보내게.
네.
잠시 후 특별석이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서 지각한 손님을 환영했다.
어서오게 훈작사, 참 늦게도 왔군. 전반부의 훌륭한 소프라노 공연을 통째로 놓쳐서 정말 유감일세.
두 분께 정말 송구합니다, 설마 비 내리는 베를린의 도로가 여전히 런던에 필적하는 난장판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오버슈타인 장관. 마지막으로 뵈었던 게 62년이었는데, 풍채가 여전하시군요.
허허, 그런가? 전에 봤던 게 런던의 유럽 정보화 기술 세미나에서였지? 그때 자네는 아직... "내각 사무실의 비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기억해 주시다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선물도 고맙게 받겠네. 간만에 이걸 보니 재건 시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그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만, 솔직히 장관께선 보드카를 싫어하실 줄 알았습니다.
자네도 베를린에서 이렇게 오래 머무르고 있지 않은가? 나도 영국인은 평생 섬 밖으로 나오길 싫어하는 줄 알았어.
......
눈빛을 주고받던 그리폰과 오버슈타인은 동시에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지켜보던 슈바인슈타이거는 소리 죽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멀뚱멀뚱 서서 뭐하는 거요? 자, 앉아서 계속합시다.
앉으시게.
먼저 앉으십시오.
세 사람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고, 오버슈타인부터 입을 열었다.
훈작사, 자네가 베를린에 온 지도 한참이 됐는데 여태까지 마주보고 대화할 기회가 없었네. 그러니, 오늘 이렇게 만난 참에 내 다 얘기하지.
대체 이사회는 무엇을 보고 이토록 베를린에 흥미를 갖는 겐가?
본 것이 아니라 맡은 것입니다, 장관.
폭풍 전야의 그 피비린내 섞인 냄새를 말이죠.
폭풍이 다가오고 있단 말이오?
저는 이 자리가 우리가 그걸 어떻게 막을지를 논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그래? 그럼 그 피비린내가 온 나라에 배이지 않도록 하려면 내가 무얼 하면 되겠나?
염려 마십시오, 장관께서 원하신다면 이 정도의 피비린내는 가볍게 씻어내기만 해도 지워질 겁니다.
하지만, 씻어낼 피가 묻는 것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상책이겠죠.
......
훈작사, 현재 베를린의 추태를 양해해 주길 바라네. 독일에게 있어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야.
존경하는 오버슈타인 장관, 저는 궁금합니다. 독일은 이러한 혼란에 어떻게 종지부를 찍으려 할지. 나라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장관께선 어떤 미래를 바라십니까?
이렇게 헌 집에 사는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고 보나?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 이 헌 집을 허무시겠단 말씀입니까? 그럼 누가, 어떻게 허물 것인지요? 장관께서 발로 차셔서?
훈작사, 말을 좀...
괜찮네, 하인리히.
먼 길을 온 이국의 손님이 우리나라에 이토록 관심을 가져 주는데, 고마워해야지.
이해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부디 믿어 주시길. 저는 유럽에 밝은 미래가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는 바입니다.
훈작사, 자넨 내가 언제 이 보드카를 처음 마셔봤는지 아나? 벌써 10년도 넘었네.
어느 방공호에서, 내 중위가 긴장이나 누그러뜨리자고 한 잔 따라 줬네. 지금도 그의 미소가 생생하게 기억나.
그러니 자네가 네게 이 혼란에 어떻게 종지부를 찍을지 물을 것 없네. 이런 일은 우리의 신소련 친구들이 더 잘 거 아닌가.
다만 그들은 지금은 그쪽의 골칫거리를 처리하는 중이라, 이런 귀중한 경험을 나눌 시간이 없을 겁니다.
그것 참 아쉽구먼. 그럼 대신 꼭 안부라도 전해 주게나, 몸조심하라고. 시베리아의 겨울은 아주 추우니까 말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그들이 항상 건강하기를 기원합시다.
그래, 그들이 항상 건강하기를.
오버슈타인은 술잔을 들어, 보드카를 단숨에 삼켰다.
훈작사, 오늘 이렇게 와 주어서 정말 고맙네. 독일은 분쟁과 혼란을 겪으면서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잃었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해.
물론, 나도 "미래의 독일"에서 자네와 다시 보고 싶네.
그리고 오버슈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특별석의 장막을 젖혔다.
슈바인슈타이거 장군, 초대해 주어 정말 고맙네.
하지만 미안하네, 내일도 국가에 헌신하려면 오늘은 일찍 돌아가야겠어. 그럼, 이만 실례하지.
그렇게 오버슈타인 장관은 특별석을 떠났다.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누군들 안 그렇겠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