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안심하세요. 우리가 다시 진정으로 재회하는 그날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독일 베를린 교외.
무성한 가로수길 옆으로, 세월이 느껴지는 오두막이 있었다.
켈록켈록켈록... 으에에, 무슨 집이 이래! 그 J란 사람이 말한 곳이 정말 여기인 거 맞아?
맞으니까 그만 투덜대, SOP2. 어서 정리나 하자.
알았어...
근데, 여기 진짜 너덜너덜한데 정말 쓸 수 있는 거 맞아?
확실히 많이 낡긴 했지만, 필요한 시설은 다 있어. 차까지 한 대 있더라.
오우! ...아니 잠깐, 근데 왜 우리 둘이서만 청소해?
어휴 진짜, 그렇게 투덜댈 시간이면 벌써 청소 다 했겠다!
RO635는 SOP2를 밀면서 청소 도구를 들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오두막 밖에선 피곤함에 찌든 지휘관 일행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남은 탄약과 총기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표정만 봐도 알겠다. 몰리도의 멱을 어떻게 딸지 벌써 수천 가지는 염두에 뒀지?
......
정 답답하면 나한테 몇 개만 들려줘 봐, G11이 맨날 보는 호러 영화보다 끔찍할 거 같은데.
AR-15, 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직은 몰리도를 살려 둬야 해.
...알아요.
하지만 저년한테서 정보 캐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말이지.
어려울 게 뭐 있어? 머리 멀쩡하고 입 달렸으니까, 불게 만들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어.
그런 기술이야 나도 빠삭하거든? 지금 우리의 문제는 아주 잠깐 안전해졌을 뿐이란 거야.
임시 은신처를 얻었다지만, 몰리도 저년의 능력상 신호 차단망을 뚫고 구조 신호를 보내는 건 시간문제지.
이걸 해결 못하면 우린 계속 자리를 옮겨 다녀야 해.
만약 패러데우스에게 빼앗겼다간,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 버릴 테고...
통신 모듈을 파괴할 순 없어?
아니, 전자 봉쇄 말곤 답이 없어.
문제는, 그걸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자고 있다는 거지.
그럼... 대충이라도 시간이 얼마나 더 있는데?
그러니까, 그년이 이곳의 신호 차단망을 뚫는 데 걸리는 시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니토의 마인드맵은... 아, 컨셔스 파노라마랬지?
우리 같은 인형의 마인드맵 공간이랑 똑같아 보이기만 하지, 실제론 완전히 다른 시스템인걸.
해킹이야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좀 억지로 강행돌파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럼――
부웅——!
그때, 기괴한 노이즈가 지휘관의 통신기를 긁었다.
날카로운 소음이 지휘관의 고막을 찌르는 것과 동시에, 두 인형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으윽...!?
마... 마인드맵 해킹...?!
AR-15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
UMP45는 그보단 나은 상태였지만, 꼼짝달싹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AR-15!!
통신기를 부숴버릴 기세로 끈 지휘관은 쓰러진 AR-15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젠장! 벌써 당한 건가?!
빠... 빨리 도망쳐 지휘관...!
인간이어서 영향이 전혀 없는 지휘관은, 어떡하면 좋을지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부웅——!!
허억...!
또다시 울려 퍼진 노이즈가 마치 정지 신호였다는 것처럼, 꼼짝 못하던 UMP45가 속박에서 풀려났다.
으윽...!!
경련하던 AR-15도 제정신을 차렸지만, 힘이 빠진 탓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했다.
이렇게 강력한 전자파 간섭... 들어본 적 없어...
신경이 곤두선 UMP45가 총을 꽉 쥐었다.
준비... 반격 준비해야... 콜록... 적 어딨어...?
벽을 짚으면서 힘겹게 일어난 AR-15도 함께 경계 태세를 취했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적이 들이닥치니기는커녕 은신처 주위는 쥐죽은듯 조용했다.
적의 습격에 대비하던 지휘관과 두 인형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대체 무슨 일이었던 걸까?
...둘 다 괜찮니?
전... 괜찮아요.
쇼크를 좀 받긴 했지만 나도 괜찮아.
하지만 머릿속의 경계 경보가 해제되지 않은 UMP45는 곧바로 UMP9에게 연결했다.
9, 응답해.
응? 왜 그래 언니?
방금 무슨 일이었어?
무슨 일이냐니, 뭐가?
말 그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 UMP9은 태평한 목소리였다.
무슨 기척 같은 것도 못 느꼈대?
그런 모양이야. 우리한테만 일어난 거 같은데?
우리한테만...?
무언가 번뜩 떠오른 AR-15가 고개를 홱 돌렸다.
큰일이야, RO랑 SOP2도!
으아아아――!!
AR-15의 예상은 맞아떨어졌고, 은신처 안에서 SOP2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방이, 우거진 숲길에 선 그레이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우아하게 나방의 날개를 낚아채더니, 다른 손으로 덮어, 서서히 조이다... 양손을 펼쳤다.
손 안의 나방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
그, 그들의 위치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출동한 정찰 부대가 몰리도 님의 신호를 미약하게나마 포착했지만...
며... 몇분 전 그들마저도 신호가 끊겨, 추적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설명은 됐어.
너는?
지명된 니토가 크게 움찔하더니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지난번 전달받은 정보 코드의 해독 결과, 지점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알았다, 그 위치에 존재하는 공장 전부에 보내.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위치의 공장들은 전부 폐기된 상태입니다... 어떡하면 됩니까?
창고에서 적당한 것들로 골라 채워 넣어, 완성도 50% 미만인 걸로.
...네.
너는――
그레이가 턱을 살짝 들었다.
며, 명령을!
...가서 감시망 설치해. 안팎으로 사각지대 없도록 빈틈없이.
네!
하, 하지만...
말해.
폐, 폐기된 지 너무 오래되어, 감시 설비 운용에 필요한 전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 시간은 아직 있으니까.
저... 경비 병력을 배치합니까?
아니, 내가 직접 가겠다.
네.
말을 마친 그레이가 잠깐 멈칫하더니, 손의 나방 시체를 휙 던져버렸다.
그 모습에 니토들은 어떡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눈치만 보았고, 결국 보다못한 그레이가 눈총을 주었다.
일하러 가.
...네!
니토들이 물러난 뒤, 그레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연락했다.
...피곤해 보이는군.
이번에는 일이 잘 풀리길 빌어야지.
골칫거리가 끊이질 않으니 원... 갈라테아의 녀석들이 좀 정신을 똑바로 차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다행히 우리에겐 네가 있다.
...어디의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구나.
그녀라면 추측해낼 게 많을 테지.
상관없어, 어차피 걔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도움을 청하게 될 테니.
아직 "화물"은 여기 있으니까.
응.
이쪽의 일은 거의 다 끝나 간다.
알았어, 그럼 이따 보자.
베를린 교외의 임시 은신처.
RO!! SOP2!!
문을 박차고 들어온 AR-15가 다급하게 동료들을 찾았다.
...진짜 큰일났네.
세 사람이 오두막에 들어오자마자 보인 것은, 바닥에 쓰러진 RO635와 SOP2였다. AR-15와 UMP45와 달리, 그녀들은 아예 소체의 기능이 정지되어버린 상태였다.
UMP45가 재빨리 다가가 둘의 상태를 확인했고, AR-15는 소파 위에 눕혀진 댄들라이에게 달려갔다.
이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댄들라이는 여전히 편안히 자는 듯한 얼굴이었다.
AR-15는 조십스럽게 댄들라이를 살펴봤다. 만약 정말 적의 기습이라면, 최우선으로 지켜야 하는 대상은...
AR-15! 기다려!
네?
그때, 아주 잠깐 한눈판 AR-15의 손을 누가 덥석 붙잡았다.
AR-15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그 익숙한 두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댄들라이가 깨어난 것이다.
......
......!?
너...
저... 괜찮으세요, AR-15?
혹시 언어 모듈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나요?
지휘관과 UMP45도 이 갑작스런 광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댄들... 아니, 넌 대체...
긴장할 것 없어요, AR-15.
AR-15는 댄들라이가 또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M4?
AR-15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M4A1은 지휘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역시 인사부터 하는 게 좋을까요, 지휘관님?
어... 어, 그, 그게 그러니까...
음...
갑자기 불린 지휘관도 말을 더듬었다.
M4A1은 재촉하지 않고, 그저 평온한 얼굴로 다시 만난 지휘관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니, 당황했던 지휘관도 점차 진정했다.
...어서 돌아오렴, M4.
지금 그녀가 누구인지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방금 그 마인드맵에 다이렉트로 꽂힌 공격은 네 짓이었어?
모두가 재회의 감동에 젖었지만, UMP45는 홀로 짜증 가득한 얼굴이었다.
패러데우스한테 벌써 기습당한 건가 했다고.
미안해요, 다시 일어날 뿐인데 그런 부작용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됐어, 사과하란 말은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감동적인 재회를 계속하기 전에 여기 바닥 청소 중인 둘부터 깨워 줄래?
아, 네. 지금 깨우겠습니다.
M4A1이 소파에서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디뎠다. 댄들라이의 몸을 빌린 그녀는 낯선 소체에 신기해하는 듯했다.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음 졸이는 눈치의 지휘관과 AR-15에, M4A1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었다.
푸후훗...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요, AR-15, 지휘관님.
누가 보면 제가 재활 운동하는 환자인 줄 알겠어요.
하지만...
너보다 멀쩡해 보이는데 뭘.
이 상황에서 내가 외부자긴 하지만, 둘 다 그래서는 우리 공주님만 부담스러울걸?
45 씨, 당신은 외부자가 아니에요.
여기 있는 모두, 외부자가 아니에요. 당신도 우리의 소중한 동료인걸요.
그래 45, 그렇게 섭섭한 말 하지 마.
...흥.
UMP45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어깨를 으쓱했지만,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다.
M4A1이 바닥에 쓰러진 RO635와 SOP2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헉!?
흐앗!?
기능이 정지됐던 두 인형이, 동시에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 무슨 일이었던 거지?!
으으... 어? 어어?! M4!! 깨어났구나 M4!!
댄들라이!?
AR-15?
M4A1이 미안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잠깐 모두를 데리고 나가 주겠어요?
잠시 지휘관님과 할 말이 있어요.
엥? 왜애애!? 나도, 나도 M4랑 얘기할래!!
잠깐, 잠깐만요... 뭐에요?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RO635가 당혹스럽게 쳐다봤지만, AR-15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M4A1는 달라붙은 SOP2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착하죠, SOP2? 중요한 얘기라서요.
SOP2와는 이따가 실컷 얘기할게요. 괜찮죠?
우엥...
입을 삐죽 내민 SOP2는 그 말에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M4A1을 다시 보게 되어 기쁜 것만은 확실했다.
...일단 나가자, 내가 설명할게.
눈앞의 그녀가 정말 괜찮은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AR-15는 모두를 데리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리고 방에는 지휘관과 M4A1만 남게 되었다.
......
모두와 함께여도 괜찮은데.
저도 그러고 싶지만, 지휘관님은 물어보고 싶으신 게 많죠?
...그래.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저는 지금 아주 특수한 상태입니다.
몇 가지는 그들이 알면 걱정만 늘 테니, 가능하면 숨기고 싶어요.
음... 확실히 지금 네 상태가 무척 신경쓰이네.
하지만 그것보다, 그동안 대체 어디 있었니?
......
그 질문을 들은 M4A1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말할 수 없다고?
네.
어째서?
저도 숨기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지휘관님을 위해서, 그리고 저를 위해서도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아직 모든 걸 알려드릴순 없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믿어 주세요. 저는 절대 지휘관님과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널 믿어.
나머지도 때가 되면 말해 주렴.
참, 그때 고맙다고 하지도 못했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거기서 죽었을 거야.
마땅히 할 일이었는걸요. 무엇보다, 그걸 위해 제가 돌아온 거예요.
그러니 지휘관님과 동료들을 구하는 당연한 일로 감사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도 고마워.
그런데, 대체 어떻게 돌아온 거니? 댄들라이는 어떻게 됐고?
제 본체는 여기에 없습니다. 지금의 저는 마인드맵 속 한 줄의 데이터에 지나지 않고, 잠시 댄들라이의 소체를 잠시 빌렸을 뿐이에요. 댄들라이도 이 안에서 휴면 중이니 걱정 마세요.
다만, 지금 두 개의 마인드맵이 존재하는 상태라 지금 이 소체는 상당한 부하를 받고 있어요. 버티지 못하는 때가 오면, 저는 떠나야 해요.
그렇... 뭐? 또 떠난다고?
네, 그래서 그 전에 제 임무를 완수하려 해요.
...안심하세요. 우리가 다시 진정으로 재회하는 그날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M4A1은 싱긋 웃으며 지휘관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얼굴을 어루만졌다.
여태까지...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지휘관님.
...너도 수고가 많구나.
우리가 그 지하 기지에서 고위 니토를 포로로 붙잡았어.
그런데 그 녀석의 전자전 능력이 너무 강해서, 우리로선 손쓸 방도가 없어.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죠. 제게 맡겨 주세요.
그 소체의 상태로 괜찮겠니?
네, 전 괜찮아요.
...알았다, 그럼 부탁할게.
대신...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걱정 마세요, 저는 이제 예전의 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돌아온 것이니까요.
좁고, 어둡고, 고요한 방. 들리는 것이라곤 자신의 호흡뿐.
돌연 어둠을 꿰뚫는 빛 한 줄기에 눈이 부셨고, 강철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일어나.
정확히 120분마다... 정말 철저하게 시간 엄수하는구나.
......
이번에도 똑같은 걸 쓰려고...? 전기, 물, 수면 방해... 뭐 좀 색다른 거 없어...?
퍼억!
AR-15가 몰리도의 관자놀이에 주먹을 날렸다.
새로이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새빨간 피가 관자놀이에서 이마로, 이마에서 콧등을 따라 흘렀다.
킥킥킥... 겨우 이 정도야...? 부족한데...
그 클레임을, AR-15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의 합금 나이프가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며, 어딘가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몰리도가 인간의 육체를 가져 완벽한 위장 능력을 얻었다면, 지금은 그 부작용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가 고통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으으윽... 아파~ 너무 아파~ 차라리 날 죽여 줘어... 너무 아파...
흑흑흑...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아파아... 그만해, 이제 더는 싫어~
――이러면 좀 재밌어?
우는 시늉을 하던 몰리도가 표정을 싹 바꿨다.
이럼 만족해? 기분 좋아? 하아... 난 진짜 질색인데.
난 통각을 차단할 수 있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러는지 몰라 정말.
하아암... 지겨워서 하품이 다 나온다 얘.
일부러 도발하는 거야.
나도 알아.
AR-15는 주저 없이 또 주먹을 날렸다.
놀고 싶다니까 놀아 주는 거라고.
킥킥킥... 내 머릿속을 들쑤시고도 원하는 건 못 찾았나 봐?
괜찮아, 시간은 넘치도록 있으니까.
그러시겠지... 참나, 니모겐이 아니었다면 지금 고문당하는 건 누구였을까?
너...는 아니겠네. 흥, 그럴 가치도 없지. 코어 뽑는데 들일 힘도 아까워.
역시... 너네가 존경하는 "그 사람"이려나? 킥킥킥...
그 말에 AR-15는 걸상을 발로 차 몰리도를 넘어뜨리고 그녀의 얼굴을 걷어찼다.
크히힉...
AR-15! 지금 이년한테 낭비할 시간 없어!
그 "고치 계획"이 뭔지나 상세하게 불어. 그리고 너네가 "아버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누구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어디 보자... 으음... 그래, 고치 계획은 말이지... 베를린을 날려버리는 계획이지 뭐... 아버님이 누구냐고? 이름은 크루거... 아, 이건 너네 사장님 이름――
이번엔 몰리도의 정수리를 AR-15의 개머리판이 강타했고, 또 새로운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우... 이제야 좀 심문받는 기분이네.
그래도 아직 너무 상냥해.
상황 파악 좀 하지? 넌 이제 패러데우스로 돌아가지도 못해.
하하하... 잘못 알아도 아주 단단히 잘못 아는구나...
하긴, 인형 주제에 뭘 알겠어...
낡은 전구가 특유의 소리를 내며 방을 환히 밝혔다.
어둠에 숨어 말이 없던 사람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몰리도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몸풀기는 여기까지.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의미야 있답니다, 정하는 건 제가 아니지만요.
다 당신이 마음먹기 나름이에요.
듣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린 애초부터 적대하는 사이가 아니예요.
게다가, 저는 당신을 아주 높이 산답니다...
..."로빈".
닥쳐!!
지휘관! 이년은 마흐리안의――
알아.
몰리도는 꼴이 아주 엉망이었지만, 얼굴만은 아주 여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느릿느릿 바닥에서 일어나, 잠깐 옷을 정리하고, 다시 걸상에 앉았다.
아니요,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마흐리안은 제 언니 같은 게 아니랍니다. 제가 바로 그녀고, 그녀가 바로 저죠.
그래서?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그녀한테서 못 들었나 봐요?
우리는 둘이서 하나예요. 영혼을 공유하고, 기억을 공유하죠. 그래요... 감정까지도.
그렇다면 지금 패러데우스가 무슨 꿍꿍이인지 말해 주겠어?
"불꽃놀이"는 뭐고, 언제 하려는 거지? 통일절인가?
언젠가는 가르쳐드릴게요. 지금은 말고, 나중에.
......
지휘관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 모습에 분노로 눈썹이 들썩이던 AR-15는 다시 총을 들었다.
기다려요, AR-15.
하지만 M4A1이 그녀를 제지했다.
소용없어요. 그녀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내성이 강해요.
...치잇.
바보가 아닌 애가 있긴 했구나? 안녕, 니모겐.
......
M4A1이 걸어 나와, 지휘관과 AR-15의 곁을 지나 몰리도의 앞에 섰다.
우리가 당신을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틀렸어요.
당신이 패러데우스에 바치는 충성도, 아무 의미 없어요.
그게 무슨 말――
M4A1이 몰리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전체 대사 보기 (226줄)
독일 베를린 교외.
무성한 가로수길 옆으로, 세월이 느껴지는 오두막이 있었다.
켈록켈록켈록... 으에에, 무슨 집이 이래! 그 J란 사람이 말한 곳이 정말 여기인 거 맞아?
맞으니까 그만 투덜대, SOP2. 어서 정리나 하자.
알았어...
근데, 여기 진짜 너덜너덜한데 정말 쓸 수 있는 거 맞아?
확실히 많이 낡긴 했지만, 필요한 시설은 다 있어. 차까지 한 대 있더라.
오우! ...아니 잠깐, 근데 왜 우리 둘이서만 청소해?
어휴 진짜, 그렇게 투덜댈 시간이면 벌써 청소 다 했겠다!
RO635는 SOP2를 밀면서 청소 도구를 들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오두막 밖에선 피곤함에 찌든 지휘관 일행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남은 탄약과 총기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표정만 봐도 알겠다. 몰리도의 멱을 어떻게 딸지 벌써 수천 가지는 염두에 뒀지?
......
정 답답하면 나한테 몇 개만 들려줘 봐, G11이 맨날 보는 호러 영화보다 끔찍할 거 같은데.
AR-15, 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직은 몰리도를 살려 둬야 해.
...알아요.
하지만 저년한테서 정보 캐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말이지.
어려울 게 뭐 있어? 머리 멀쩡하고 입 달렸으니까, 불게 만들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어.
그런 기술이야 나도 빠삭하거든? 지금 우리의 문제는 아주 잠깐 안전해졌을 뿐이란 거야.
임시 은신처를 얻었다지만, 몰리도 저년의 능력상 신호 차단망을 뚫고 구조 신호를 보내는 건 시간문제지.
이걸 해결 못하면 우린 계속 자리를 옮겨 다녀야 해.
만약 패러데우스에게 빼앗겼다간,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 버릴 테고...
통신 모듈을 파괴할 순 없어?
아니, 전자 봉쇄 말곤 답이 없어.
문제는, 그걸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자고 있다는 거지.
그럼... 대충이라도 시간이 얼마나 더 있는데?
그러니까, 그년이 이곳의 신호 차단망을 뚫는 데 걸리는 시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니토의 마인드맵은... 아, 컨셔스 파노라마랬지?
우리 같은 인형의 마인드맵 공간이랑 똑같아 보이기만 하지, 실제론 완전히 다른 시스템인걸.
해킹이야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좀 억지로 강행돌파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럼――
부웅——!
그때, 기괴한 노이즈가 지휘관의 통신기를 긁었다.
날카로운 소음이 지휘관의 고막을 찌르는 것과 동시에, 두 인형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으윽...!?
마... 마인드맵 해킹...?!
AR-15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
UMP45는 그보단 나은 상태였지만, 꼼짝달싹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AR-15!!
통신기를 부숴버릴 기세로 끈 지휘관은 쓰러진 AR-15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젠장! 벌써 당한 건가?!
빠... 빨리 도망쳐 지휘관...!
인간이어서 영향이 전혀 없는 지휘관은, 어떡하면 좋을지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부웅——!!
허억...!
또다시 울려 퍼진 노이즈가 마치 정지 신호였다는 것처럼, 꼼짝 못하던 UMP45가 속박에서 풀려났다.
으윽...!!
경련하던 AR-15도 제정신을 차렸지만, 힘이 빠진 탓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했다.
이렇게 강력한 전자파 간섭... 들어본 적 없어...
신경이 곤두선 UMP45가 총을 꽉 쥐었다.
준비... 반격 준비해야... 콜록... 적 어딨어...?
벽을 짚으면서 힘겹게 일어난 AR-15도 함께 경계 태세를 취했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적이 들이닥치니기는커녕 은신처 주위는 쥐죽은듯 조용했다.
적의 습격에 대비하던 지휘관과 두 인형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대체 무슨 일이었던 걸까?
...둘 다 괜찮니?
전... 괜찮아요.
쇼크를 좀 받긴 했지만 나도 괜찮아.
하지만 머릿속의 경계 경보가 해제되지 않은 UMP45는 곧바로 UMP9에게 연결했다.
9, 응답해.
<color=#00CCFF>응? 왜 그래 언니?</color>
방금 무슨 일이었어?
<color=#00CCFF>무슨 일이냐니, 뭐가?</color>
말 그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 UMP9은 태평한 목소리였다.
무슨 기척 같은 것도 못 느꼈대?
그런 모양이야. 우리한테만 일어난 거 같은데?
우리한테만...?
무언가 번뜩 떠오른 AR-15가 고개를 홱 돌렸다.
큰일이야, RO랑 SOP2도!
으아아아――!!
AR-15의 예상은 맞아떨어졌고, 은신처 안에서 SOP2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방이, 우거진 숲길에 선 그레이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우아하게 나방의 날개를 낚아채더니, 다른 손으로 덮어, 서서히 조이다... 양손을 펼쳤다.
손 안의 나방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
그, 그들의 위치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출동한 정찰 부대가 몰리도 님의 신호를 미약하게나마 포착했지만...
며... 몇분 전 그들마저도 신호가 끊겨, 추적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설명은 됐어.
너는?
지명된 니토가 크게 움찔하더니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지난번 전달받은 정보 코드의 해독 결과, 지점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알았다, 그 위치에 존재하는 공장 전부에 보내.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위치의 공장들은 전부 폐기된 상태입니다... 어떡하면 됩니까?
창고에서 적당한 것들로 골라 채워 넣어, 완성도 50% 미만인 걸로.
...네.
너는――
그레이가 턱을 살짝 들었다.
며, 명령을!
...가서 감시망 설치해. 안팎으로 사각지대 없도록 빈틈없이.
네!
하, 하지만...
말해.
폐, 폐기된 지 너무 오래되어, 감시 설비 운용에 필요한 전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 시간은 아직 있으니까.
저... 경비 병력을 배치합니까?
아니, 내가 직접 가겠다.
네.
말을 마친 그레이가 잠깐 멈칫하더니, 손의 나방 시체를 휙 던져버렸다.
그 모습에 니토들은 어떡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눈치만 보았고, 결국 보다못한 그레이가 눈총을 주었다.
일하러 가.
...네!
니토들이 물러난 뒤, 그레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연락했다.
<color=#00CCFF>...피곤해 보이는군.</color>
이번에는 일이 잘 풀리길 빌어야지.
골칫거리가 끊이질 않으니 원... 갈라테아의 녀석들이 좀 정신을 똑바로 차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color=#00CCFF>다행히 우리에겐 네가 있다.</color>
...어디의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구나.
<color=#00CCFF>그녀라면 추측해낼 게 많을 테지.</color>
상관없어, 어차피 걔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도움을 청하게 될 테니.
아직 "화물"은 여기 있으니까.
<color=#00CCFF>응.</color>
<color=#00CCFF>이쪽의 일은 거의 다 끝나 간다.</color>
알았어, 그럼 이따 보자.
베를린 교외의 임시 은신처.
RO!! SOP2!!
문을 박차고 들어온 AR-15가 다급하게 동료들을 찾았다.
...진짜 큰일났네.
세 사람이 오두막에 들어오자마자 보인 것은, 바닥에 쓰러진 RO635와 SOP2였다. AR-15와 UMP45와 달리, 그녀들은 아예 소체의 기능이 정지되어버린 상태였다.
UMP45가 재빨리 다가가 둘의 상태를 확인했고, AR-15는 소파 위에 눕혀진 댄들라이에게 달려갔다.
이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댄들라이는 여전히 편안히 자는 듯한 얼굴이었다.
AR-15는 조십스럽게 댄들라이를 살펴봤다. 만약 정말 적의 기습이라면, 최우선으로 지켜야 하는 대상은...
AR-15! 기다려!
네?
그때, 아주 잠깐 한눈판 AR-15의 손을 누가 덥석 붙잡았다.
AR-15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그 익숙한 두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댄들라이가 깨어난 것이다.
......
......!?
너...
저... 괜찮으세요, AR-15?
혹시 언어 모듈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나요?
지휘관과 UMP45도 이 갑작스런 광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댄들... 아니, 넌 대체...
긴장할 것 없어요, AR-15.
AR-15는 댄들라이가 또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M4?
AR-15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M4A1은 지휘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역시 인사부터 하는 게 좋을까요, 지휘관님?
어... 어, 그, 그게 그러니까...
음...
갑자기 불린 지휘관도 말을 더듬었다.
M4A1은 재촉하지 않고, 그저 평온한 얼굴로 다시 만난 지휘관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니, 당황했던 지휘관도 점차 진정했다.
...어서 돌아오렴, M4.
지금 그녀가 누구인지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방금 그 마인드맵에 다이렉트로 꽂힌 공격은 네 짓이었어?
모두가 재회의 감동에 젖었지만, UMP45는 홀로 짜증 가득한 얼굴이었다.
패러데우스한테 벌써 기습당한 건가 했다고.
미안해요, 다시 일어날 뿐인데 그런 부작용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됐어, 사과하란 말은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감동적인 재회를 계속하기 전에 여기 바닥 청소 중인 둘부터 깨워 줄래?
아, 네. 지금 깨우겠습니다.
M4A1이 소파에서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디뎠다. 댄들라이의 몸을 빌린 그녀는 낯선 소체에 신기해하는 듯했다.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음 졸이는 눈치의 지휘관과 AR-15에, M4A1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었다.
푸후훗...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요, AR-15, 지휘관님.
누가 보면 제가 재활 운동하는 환자인 줄 알겠어요.
하지만...
너보다 멀쩡해 보이는데 뭘.
이 상황에서 내가 외부자긴 하지만, 둘 다 그래서는 우리 공주님만 부담스러울걸?
45 씨, 당신은 외부자가 아니에요.
여기 있는 모두, 외부자가 아니에요. 당신도 우리의 소중한 동료인걸요.
그래 45, 그렇게 섭섭한 말 하지 마.
...흥.
UMP45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어깨를 으쓱했지만,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다.
M4A1이 바닥에 쓰러진 RO635와 SOP2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헉!?
흐앗!?
기능이 정지됐던 두 인형이, 동시에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 무슨 일이었던 거지?!
으으... 어? 어어?! M4!! 깨어났구나 M4!!
댄들라이!?
AR-15?
M4A1이 미안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잠깐 모두를 데리고 나가 주겠어요?
잠시 지휘관님과 할 말이 있어요.
엥? 왜애애!? 나도, 나도 M4랑 얘기할래!!
잠깐, 잠깐만요... 뭐에요?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RO635가 당혹스럽게 쳐다봤지만, AR-15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M4A1는 달라붙은 SOP2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착하죠, SOP2? 중요한 얘기라서요.
SOP2와는 이따가 실컷 얘기할게요. 괜찮죠?
우엥...
입을 삐죽 내민 SOP2는 그 말에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M4A1을 다시 보게 되어 기쁜 것만은 확실했다.
...일단 나가자, 내가 설명할게.
눈앞의 그녀가 정말 괜찮은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AR-15는 모두를 데리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리고 방에는 지휘관과 M4A1만 남게 되었다.
......
모두와 함께여도 괜찮은데.
저도 그러고 싶지만, 지휘관님은 물어보고 싶으신 게 많죠?
...그래.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저는 지금 아주 특수한 상태입니다.
몇 가지는 그들이 알면 걱정만 늘 테니, 가능하면 숨기고 싶어요.
음... 확실히 지금 네 상태가 무척 신경쓰이네.
하지만 그것보다, 그동안 대체 어디 있었니?
......
그 질문을 들은 M4A1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말할 수 없다고?
네.
어째서?
저도 숨기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지휘관님을 위해서, 그리고 저를 위해서도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아직 모든 걸 알려드릴순 없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믿어 주세요. 저는 절대 지휘관님과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널 믿어.
나머지도 때가 되면 말해 주렴.
참, 그때 고맙다고 하지도 못했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거기서 죽었을 거야.
마땅히 할 일이었는걸요. 무엇보다, 그걸 위해 제가 돌아온 거예요.
그러니 지휘관님과 동료들을 구하는 당연한 일로 감사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도 고마워.
그런데, 대체 어떻게 돌아온 거니? 댄들라이는 어떻게 됐고?
제 본체는 여기에 없습니다. 지금의 저는 마인드맵 속 한 줄의 데이터에 지나지 않고, 잠시 댄들라이의 소체를 잠시 빌렸을 뿐이에요. 댄들라이도 이 안에서 휴면 중이니 걱정 마세요.
다만, 지금 두 개의 마인드맵이 존재하는 상태라 지금 이 소체는 상당한 부하를 받고 있어요. 버티지 못하는 때가 오면, 저는 떠나야 해요.
그렇... 뭐? 또 떠난다고?
네, 그래서 그 전에 제 임무를 완수하려 해요.
...안심하세요. 우리가 다시 진정으로 재회하는 그날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M4A1은 싱긋 웃으며 지휘관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얼굴을 어루만졌다.
여태까지...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지휘관님.
...너도 수고가 많구나.
우리가 그 지하 기지에서 고위 니토를 포로로 붙잡았어.
그런데 그 녀석의 전자전 능력이 너무 강해서, 우리로선 손쓸 방도가 없어.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죠. 제게 맡겨 주세요.
그 소체의 상태로 괜찮겠니?
네, 전 괜찮아요.
...알았다, 그럼 부탁할게.
대신...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걱정 마세요, 저는 이제 예전의 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돌아온 것이니까요.
좁고, 어둡고, 고요한 방. 들리는 것이라곤 자신의 호흡뿐.
돌연 어둠을 꿰뚫는 빛 한 줄기에 눈이 부셨고, 강철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일어나.
정확히 120분마다... 정말 철저하게 시간 엄수하는구나.
......
이번에도 똑같은 걸 쓰려고...? 전기, 물, 수면 방해... 뭐 좀 색다른 거 없어...?
퍼억!
AR-15가 몰리도의 관자놀이에 주먹을 날렸다.
새로이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새빨간 피가 관자놀이에서 이마로, 이마에서 콧등을 따라 흘렀다.
킥킥킥... 겨우 이 정도야...? 부족한데...
그 클레임을, AR-15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의 합금 나이프가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며, 어딘가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몰리도가 인간의 육체를 가져 완벽한 위장 능력을 얻었다면, 지금은 그 부작용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가 고통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으으윽... 아파~ 너무 아파~ 차라리 날 죽여 줘어... 너무 아파...
흑흑흑...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아파아... 그만해, 이제 더는 싫어~
――이러면 좀 재밌어?
우는 시늉을 하던 몰리도가 표정을 싹 바꿨다.
이럼 만족해? 기분 좋아? 하아... 난 진짜 질색인데.
난 통각을 차단할 수 있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러는지 몰라 정말.
하아암... 지겨워서 하품이 다 나온다 얘.
일부러 도발하는 거야.
나도 알아.
AR-15는 주저 없이 또 주먹을 날렸다.
놀고 싶다니까 놀아 주는 거라고.
킥킥킥... 내 머릿속을 들쑤시고도 원하는 건 못 찾았나 봐?
괜찮아, 시간은 넘치도록 있으니까.
그러시겠지... 참나, 니모겐이 아니었다면 지금 고문당하는 건 누구였을까?
너...는 아니겠네. 흥, 그럴 가치도 없지. 코어 뽑는데 들일 힘도 아까워.
역시... 너네가 존경하는 "그 사람"이려나? 킥킥킥...
그 말에 AR-15는 걸상을 발로 차 몰리도를 넘어뜨리고 그녀의 얼굴을 걷어찼다.
크히힉...
AR-15! 지금 이년한테 낭비할 시간 없어!
그 "고치 계획"이 뭔지나 상세하게 불어. 그리고 너네가 "아버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누구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어디 보자... 으음... 그래, 고치 계획은 말이지... 베를린을 날려버리는 계획이지 뭐... 아버님이 누구냐고? 이름은 크루거... 아, 이건 너네 사장님 이름――
이번엔 몰리도의 정수리를 AR-15의 개머리판이 강타했고, 또 새로운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우... 이제야 좀 심문받는 기분이네.
그래도 아직 너무 상냥해.
상황 파악 좀 하지? 넌 이제 패러데우스로 돌아가지도 못해.
하하하... 잘못 알아도 아주 단단히 잘못 아는구나...
하긴, 인형 주제에 뭘 알겠어...
낡은 전구가 특유의 소리를 내며 방을 환히 밝혔다.
어둠에 숨어 말이 없던 사람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몰리도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몸풀기는 여기까지.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의미야 있답니다, 정하는 건 제가 아니지만요.
다 당신이 마음먹기 나름이에요.
듣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린 애초부터 적대하는 사이가 아니예요.
게다가, 저는 당신을 아주 높이 산답니다...
..."로빈".
닥쳐!!
지휘관! 이년은 마흐리안의――
알아.
몰리도는 꼴이 아주 엉망이었지만, 얼굴만은 아주 여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느릿느릿 바닥에서 일어나, 잠깐 옷을 정리하고, 다시 걸상에 앉았다.
아니요,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마흐리안은 제 언니 같은 게 아니랍니다. 제가 바로 그녀고, 그녀가 바로 저죠.
그래서?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그녀한테서 못 들었나 봐요?
우리는 둘이서 하나예요. 영혼을 공유하고, 기억을 공유하죠. 그래요... 감정까지도.
그렇다면 지금 패러데우스가 무슨 꿍꿍이인지 말해 주겠어?
"불꽃놀이"는 뭐고, 언제 하려는 거지? 통일절인가?
언젠가는 가르쳐드릴게요. 지금은 말고, 나중에.
......
지휘관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 모습에 분노로 눈썹이 들썩이던 AR-15는 다시 총을 들었다.
기다려요, AR-15.
하지만 M4A1이 그녀를 제지했다.
소용없어요. 그녀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내성이 강해요.
...치잇.
바보가 아닌 애가 있긴 했구나? 안녕, 니모겐.
......
M4A1이 걸어 나와, 지휘관과 AR-15의 곁을 지나 몰리도의 앞에 섰다.
우리가 당신을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틀렸어요.
당신이 패러데우스에 바치는 충성도, 아무 의미 없어요.
그게 무슨 말――
M4A1이 몰리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