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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5 · 재귀정리

"가려진 여론과 가려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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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의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미아도, 넬레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렇게 벨이 네 차례 울리고, 자동 응답기로 넘어갔다.

낯선 남성 목소리

<color=#00CCFF>이 역겨운 년아! 콱 죽어――</color>

소리가 들리자마자 미아가 냅다 메시지 재생을 껐다. 어디의 불량 매스컴이 넬레의 신상정보를 유출했는지, 지난 며칠 간 그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려오는 악성 전화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또다시 전화기 벨소리가 울리자, 이번엔 미아가 신경질적으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낯선 여성 목소리

<color=#00CCFF>지옥에나 떨어져라 이 해충아! 너 때문에 난민들이 정부를 안 믿는――</color>

미아가 통화를 끊고 전화기에서 손을 떼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낯선 남성 목소리

<color=#00CCFF>너 간첩이지? 당장 네 나라――</color>

이번에도 미아는 중간에 통화를 끊어버렸다.

미아

넬레, 그냥 전화선 뽑아버리자니까? 넌 지금 안정을 취해야 해...

넬레

......

또다시 전화벨이 울리자, 미아가 반사적으로 수신 거부 버튼을 누르려다 가까스로 발신자가 "그레이 선생님"인 것을 보았다.

미아

...그레이야.

그 말에 넬레가 눈을 번쩍 뜨고 전화기에 달려들어, 수화기를 집었다.

그레이

<color=#00CCFF>임시 통보를 전달합니다. 불가항적인 요인으로 인해 사무실을 이용할 수 없는 바, 갈라테아 그룹은 일시적으로 연구 센터를 폐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color>

<color=#00CCFF>그동안 특별한 사항이 아닌 이상 연구 센터로의 복귀를 금하며, 질문이 있을 경우 인사팀장에게 문의하십시오.</color>

미아

단체 메시지네...

넬레

...응.

수화기를 내려놓은 넬레는 힘없이 풀썩 소파에 엎어졌다.

미아

왜 그래?

넬레

연구소 문 닫았다잖아... 다 내 탓이야...

그때 충동을 참기만 했어도, 이렇게까진 안 됐을 텐데...

미아

그후로 슈타지한테서 연락 온 거 없잖아.

넬레

응...?

그, 그럼 약은 문제 없었고 나도 괜찮다는 건가!?

미아

그런 셈이지. 약에 정말 문제가 있었으면 연구소 문 닫는 정도론 안 끝났을걸?

미아

그런데... 정작 약은 문제 없으면서 여전히 출근하지 말라는 건 역시 좀 이상하네.

넬레

선생님한테 메시지를 계속 보내봤는데, 답장 하나 없고...

미아

기운내, 넬레. 정말 바쁜 걸지도 모르잖아.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도 꽤 되지 않았어?

넬레

그러게... 대체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대학에서 선생님은 꼭 점심 아니면 저녁 시간대로 수업을 잡으셨는데... 연구 실험에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면서.

올바른 의약품 전문가는 절대 실험을 아랫사람한테만 맡겨서는 안 된다, 현장 업무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없다고,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셨는데... 그런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연구 센터에 입사하고서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이 거의 없었어...

미아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고들 하잖아.

아무리 "닥터 그레이"라도 스스로 한 말을 지키긴 어려웠단 거지 뭐.

넬레

서, 선생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야!

넬레가 소파 위에서 벌떡 일어나 방의 벽 한 면을 가득 장식한 논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넬레

난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니까 갈라테아에 들어간 거라고!

미아

...넬레, 네가 스승을 엄청 존경한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 사람, 네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 요원이 한 말도 아주 쌩뚱맞진 않다고 느끼지 않았어?

넬레

......응.

솔직히 그 사람이 한 말이 좀 신경쓰이긴 해. 하지만, 그렇다 해서 뭘 어쩌면 좋을지...

미아

네가 뭘 어떻게 할 것까진 없어.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안 그래?

넬레

그게 무슨 소리야!

난――

그때, 누가 다급하게 현관문을 쾅쾅 두들겼다.

미아

누구세요?

경비원

경비원입니다! 지금 아파트가 난민들한테 포위당했어요!

미아

그게 무슨...?

경비원

오늘 아침 신문 말예요, "'이둔' 치사 사건 용의자, 석방되어 자택 복귀"요!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진 몰라도 현수막까지 들고 지금 주위에 쫙 깔렸어요!

처음엔 많아봤자 몇십 명 정도여서 저희가 어떻게든 달래서 돌래보내려 했는데...

계속 더 나타난데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고 합세까지 하고, 입주민들 일부까지 끼어들었지 뭡니까.

저희만으론 도저히 감당이 안 돼요, 위험하니 아예 잠시 다른 곳으로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미아

이봐요 아저씨, 지금 건물이 포위당했면서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빠져나가요?

좀 골치아픈 일 생겼다고 입주자한테 나가 달라 하면 누가 이 아파트 경비원을 믿어요?

아무리 수가 많아도 무기도 없는 일반인들이잖아요, 정말 당신들이 어떻게 못 해요?

경비원

그냥 아파트 경비원인데 뭘 어떡해요, 경찰도 아니고 총도 없는데!

일단 경비팀장님이 방금 경찰에 신고는 했는데, 솔직히 지금 상황으론 경찰서가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아

.....

경비원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는데, 그놈들이 벌써 아파트 안까지 들이닥쳐서 사진 들고 집집마다 찾는 중입니다.

입주민께 이런 소리 해서 정말 송구합니다만, 얼른 피신 안 하면 무슨 일 생겨도 저흰 몰라요.

그리고 경비원은 도망치듯 사라졌다.

미아는 복도 밖으로 저 아파트 아래를 살펴봤다.

경비원의 말대로, 아파트 아래는 바글거리는 군중들로 발 디딜 틈 없어, 어디로 나가든 바로 들킬 게 뻔했다.

사태가 심각함을 파악한 미아는 냉큼 돌아와 문을 잠갔다.

미아

넬레... 긴급 사태야. 밖에 사람들이 쫙 깔렸어. 창문으로 뛰어내려도 들킬 거야.

...나 혼자선 널 지키면서 탈출하기 힘들겠어.

넬레

......

미아는 하는 수 없이 어딘가로 연락했다.

???

<color=#00CCFF>여보세요, 미아?</color>

미아

레니, 하필이면 이런 때에 연락해서 미안한데 도무지 다른 방법이 없어.

최대한 빨리 와 줘. 사람 한 명 구해서 나가야 해.

레니

<color=#00CCFF>알겠습니다, 주소 주세요.</color>

미아는 주소를 전송한 다음, 한숨을 푹 쉬곤 방금부터 아무 말도 않는 넬레에게 다가갔다.

미아

넬레, 간단하게 짐 싸자. 레니가 오는대로 바로 나갈 거야.

넬레

...아파트가 통째로 포위됐다면, 머릿수 좀 늘린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더 좋은 수가 없을까?

미아

그건 그렇지. 우린 그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널 지킬 수밖에 없어.

경비원 말대로 경찰이라도 나서지 않는 이상은 지금 상황을 수습하긴 어려울 거야.

넬레

...그래!

미아

응?

넬레

경찰은 아니지만, 그 사람 슈타지잖아! 빨리 연락해 봐!

독일의 어느 물류 회사의 입구. J는 여전한 태도로 드문드문 사람들이 드나드는 회사 건물의 현관 너머로 모나가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나가 돌아왔다.

모나

사측에게서 해당 운송 경로 구간의 데이터를 제공받았습니다.

대조 결과 실종 지점의 범위가 대폭 축소됐는데, K 요원과 합류한 뒤에 계속할까요?

J

쫄따구한테 일일이 보고 말고 알아서 하세요~

모나

......

기술팀이 오늘 오후까지 이미지를 최대한 복원해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운이 좋다면 새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J

딱 봐도 똥개 훈련인데, 너도 K도 왜 그리 진지한지 모르겠다.

모나

...J 요원.

J

듣고 있습니다~

"띵!"하는 소리와 함께, 모나가 복원된 고화질 이미지를 전송받았다.

모나

이 로고는...

모나가 보여준 이미지를 본 J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내내 대충대충이던 J의 태도를 단숨에 진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로고였다.

J

갈라테아...

이토록 진중한 기색의 J는 모나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J

흐음... 이러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

또 거기라니...

때마침 J의 통신기가 수신음을 냈고, 수신 알림엔 J가 처음 보는 번호가 띄워졌다.

넬레

<color=#00CCFF>여보세요, J 요원 맞죠?</color>

J

어, 넬레 씨?

넬레

<color=#00CCFF>저 지금 아파트가 사람들한테 포위당해서 갇혔어요.</color>

<color=#00CCFF>경찰한텐 절대 알릴 수 없는 정보를 갖고 있는데, 그쪽이 아주 흥미로워 할 거라 보는데요.</color>

J

주소 불러요.

넬레

<color=#00CCFF>좋아요, 제 친구가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만나서 같이 와 주세요. 이름은 "레니"예요.</color>

넬레가 전화를 끊자마자 모든 정보가 전송됐다.

J는 곧바로 받은 위치로 향하려 했지만, 모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모나

J 요원, 적어도 저와 동행하세요.

J

그래그래 너 마음대로 하셔. 이 사건도 갈라테아가 연루됐는데, 갈라테아의 내부자가 제발로 접촉해 왔다고.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