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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5 · 재귀정리

"내부고발자란 게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넬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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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좁은 세이프하우스가 사람으로 가득 찼다.

미아는 그나마 있는 물건으로 커피를 준비했고, 넬레와 레니는 2인용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창문을 걸어 잠근 모나는 몸을 움츠려 그 두 사람 사이에 낑겨 앉았다. J는 혼자 탁상에 반쯤 몸을 기대어 섰다.

J

아파트 주변은 여전히 개미 떼가 우글거리니까, 대충 한 이틀 간은 여기서 지내세요.

넬레

...생각보다 배려심이 있네요.

J

안전국의 세이프하우스라 제가 월세 내는 것도 아닌데요 뭘.

아, 그래도 최대 이틀입니다. 사용 허가 신청 안 했어요.

넬레

방금 한 말 취소요.

J

아무튼 이제 말씀이나 해 주실까요? 무슨 정보를 갖고 있단 겁니까?

넬레

J 요원님. 저, 잘 생각해봤는데요...

요원님은 지금 제 입으로 뭔가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저한테 시키고 싶은 일이 있는 거죠?

슈타지의 상급 요원이 무슨 시간이 있다고 절 집까지 호위해 주고, 취조 전에 들어와서 수다를 떨어요?

갈라테아에 관해서 뭘 알고 싶은 거예요?

J

오호라... 이거 제가 당신을 과소평가했나 봅니다.

넬레

말하세요, 당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볼 테니.

J

풉... 그렇게 적극적으로 협력 의사를 내비치다니 오히려 의심스러운데요?

넬레

믿어 주세요. 저도 따로 알아보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J

"이둔"에 관해섭니까, 아니면 "그레이 선생님"에 관해섭니까?

넬레

둘 다요. 그러니까, 제가 내부고발자가 될게요.

그럼 제가 뭘 찾아내면 당신이 확인해 줄 수 있죠?

J

내부고발자란 게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넬레 씨.

넬레

제 의지를 얕보지 말아 줄래요?

실험실에서 일하던 마음가짐으로 당신이 요구하는 일도 해치우겠어요.

J

그건 당신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판단할 일이죠.

J가 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미아에게 넘겼다.

모나

앗, 기밀 사항을 민간인에게 함부로 유출하면...

J

다른 수 있으면 얼마든지 따릅죠, 모나 대장님.

모나

으...

J가 다시 고개를 넬레에게 돌려, 그 사진을 가리켰다.

J

잘 기억하세요. 갈라테아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이 차량의 운송 정보를 조회해 주세요. 할 수 있겠어요?

넬레

네.

J

좋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할까요? 이쪽의 제 인형 대장님이 더는 못 있겠다는 표정이라서.

모나

...아닙니다.

J

별일 없으면 곧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라서 말이죠.

넬레

알았어요.

J와 모나가 떠나자 비로소 방은 조용해졌고, 넬레도 그제서야 한꺼번에 피로가 밀려든 기색이 역력했다.

미아

넬레? 미안하지만... 방금 그 요원이 시킨 일, 하나가 아니야.

넬레

뭐?

미아가 사진의 뒷면을 보여 주니, 거기엔 휘갈겨 적은 글씨가 있었다.

"거래 2 - 920, 노이템펠호프구, 별장, 누구?"

......

밤만 되면 시끌벅적한 홍등가지만, 오늘 이 시간은 유별나게 적적했다.

그 거리를, 한 여인이 거닐고 있었다.

한손에는 담배를 든 그녀는, 109번째 연락 시도가 실패하자 짜증 섞인 눈빛으로 한탄했다.

???

하아... 다들 소리소문 없이 죽기라도 했나? 죽을 거면 좀 확실하게 알리고 죽던가. 중간에 작업에 투입되면 엄청 힘들단 말이야.

이렇게까지 상사를 신경써 주는 부하가 어디 흔해?

???

어휴 참, 가끔씩은 본부에 사람이 모조리 사라진 건 아닌가 싶다니까. 뭘 해도 구멍투성이야.

여인이 투덜대던 그때, 뒤에서 웬 건들거리는 남자가 나타났다.

건들건들한 남자

휘유~ 아가씨, 여기서 누구 기다려요~?

어이쿠, 담배 피우시네?

여인은 웃으며 통신기를 내리고,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까딱거렸다.

그걸 본 남자는 냉큼 라이터를 꺼내 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건들건들한 남자

이곳 미인은 다 밤에만 보이는 줄 알았는데 말임다~

아가씨는... 척 봐도 분위기가 남다르네요.

???

후훗... 보는 눈이 있네요.

여인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그 매력적인 입술로 담배 연기를 남자의 얼굴에 뿜으니, 그에겐 그야말로 매혹적인 도발이었다.

건들건들한 남자

낮엔 장사하는 술집 없던데, 기왕 이렇게 만난 거 제 집에서 한잔... 어때요? 좋은 거 많――

걸걸한 남성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

그 여자는 나와 선약이 있다.

건들건들한 남자

엥... 아저씨가 뉘신진 몰라도――

엌!!

체격차에도 여전히 건들대던 남자가, 팔이 뒤로 꺾이면서 벽에 밀쳐졌다.

???

꺼져.

그 무력행사에 건들대던 남자는 곧장 꽁무니 빠져라 도망쳤고, 여인은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가볍게 즈려밟았다.

???

기다리게 했군. 이동 경로는 이미 정리했다.

???

미인을 기다리게 하다니, 그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

물건은 가져왔나?

???

물론~

그녀는 발치의 짐가방을 가리켰다.

???

자기가 원하는 정보야.

하아... 그런데, 독일 남자는 다 자기처럼 머리에 정치밖에 안 들었어?

???

난 거래를 위해 온 거다만.

???

한 마디도 안 지려고 대꾸하는 거 진짜 재밌다~

???

...장난이라면 그만해라.

여인이 남자의 허리에 팔을 감으니, 마치 조용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연인처럼 보였다.

???

나, 오늘 잘 곳이 없는데... 어떡할까?

???

괜찮으면 내 집에서 묵어라.

???

내가 안 괜찮다면?

???

......

남자는 대꾸하지 않고, 여인의 손에서 짐가방을 넘겨받았다.

......

커피 머신이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아주 진한 향의 시꺼먼 액체를 하얀 머그컵에 따랐다. 다들 앉아서 키보드나 두들기는 것보단 직접 발로 뛰는 일이 많기에, 안전국의 사무실은 항상 사람이 별로 없었다.

J

하하핫! 아주 월척이야 월척! 교통부 사람들 구슬리느라 아주 진땀을 뺀 보람이 있었어!

K

잘했다! 드디어 우리가 아는 케빈이 돌아왔군!

J

나 참, 고작 운송 경로 기록 몇 개 얻자고 무슨 사막에서 바늘 찾는 꼴이었으니 원...

K

이거 오늘 저녁은 내가 한턱 내야겠는걸.

아무튼 서둘러 경로의 인근 지형을 조사하자고, 그런 화물 트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리 없으니.

J

그래야지. 아, 그나저나 내가 차량 번호 너한테 공유했냐?

K

아니. 하는 김에 정리한 자료도 부탁한다.

J

예이 예이.

전원 연결, 스위치 온, 부팅... 세이프. 10초 내외로 켜졌으니, 컴퓨터의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J의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

J

야 케인! 누가 내 컴퓨터 건드렸냐?!

K

글쎄다, 여기 컴퓨터는 모두에게 접근 권한이 있으니... 저번에 인쇄한 자료는?

그 말에 J는 사무실의 휴지통까지 들쑤셨다.

J

없어... 그 사진까지 없어졌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쿵하고 사무실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뚜벅뚜벅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든 로미 리슈펜탈 국장과, 그녀를 뒤따라온 모나였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매우 심각했다.

로미

너희, 갈라테아의 물류 기록을 조사했다며?

K

...네, 사건과의 연관성이 발견되어――

로미

방향을 잘못 짚었어.

K

하지만 불확실한 단서만으론 후속 조사를 전개하기 어렵습니다.

로미

그건 너희의 수준 문제고.

K

...죄송합니다.

로미

그리 단순한 일이었다면 너에게 맡기지도 않았어.

그 화물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게 우선이었다.

로미가 손에 든 서류 뭉치를 철썩 탁상에 내리쳤다.

로미

내가 몇 번을 말했어!

화물 트럭! 화물하고, 트럭!

K

...네.

로미

기본적인 기밀 유지도 못하면서 뭐가 슈타지의 요원이냐! 여기도 물갈이를 해야 하는 거냐!?

J

지금 뭐——

로미는 J를 쏘아보면서 단호히 명령했다.

로미

이 임무는 취소다!

후속 작업도 중지해!

......

조용히 재정비하던 도중 갑자기 통신 수신음이 울렸지만, 연결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녹음 메시지로 전환됐다.

J

<color=#00CCFF>아아, 여보세요? 녹음 시작된 건가?</color>

<color=#00CCFF>죄송합니다 지휘관 나리, 이쪽에서 또 부탁할 일이 생겼습니다.</color>

J

<color=#00CCFF>우리 낙하산 국장님이 임무를 내렸는데 말입니다... 상세 사항은 기밀이지만, 대충 돌려 말하자면 실종된 화물 트럭을 찾아내는 일이었거든요?</color>

<color=#00CCFF>그런데 조사하고 보니 그 트럭이 어디 거였는 줄 알아요? 갈라테아 그룹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좀 일이 재밌어진다 싶더니만, 낙하산님이 뜬금없이 성질 부리면서 일을 덮어버렸지 뭡니까.</color>

J

<color=#00CCFF>그냥 들어봐도 이상하죠? 제가 봐도 이상해요... 제 후배 녀석이 목숨을 잃은 그때랑 상황이 판박이란 말입니다.</color>

<color=#00CCFF>그 사건의 담당자도 아주 그냥 시치미 뚝 떼고 이것도 기밀이네, 저것도 기밀이네... 이젠 제가 요원인지 청소부인지도 헷갈린다니까요.</color>

J

<color=#00CCFF>아이고, 또 딴 길로 샜네... 아무튼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이번 일도 뒤가 구려요.</color>

<color=#00CCFF>아무래도, 그 트럭에 실린 물건이 의심스럽습니다..</color>

J

<color=#00CCFF>어쩌면... 이번 일에도 먼저 간 제 동료들과 안젤리아 씨가 엮였을지도 모를 노릇이죠.</color>

<color=#00CCFF>지금 상황에서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나리뿐입니다. 소식 기다릴게요, 이상.</col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