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귀정리
EP.13.75 · 재귀정리

ⅠB

"난 조국을 위해 헌신하기로 맹세한 몸이다. 조국과 국민에게 해가 되는 일은 내 명예를 걸고 한 적 없고, 하지도 않을 거다."

-48-3-8

1 / 100
전체 대사 보기 (92줄)

퍼엉!!

경호원

?!!

기, 긴급상황! 긴급 상황 발생!

B 구역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지원 바람!

경호원

아니 이런 데에 무슨... 각 인원, 경계 경보! 예비 전원 올리고 입주자 진정시켜!

폭발물 처리반도 부르고!

......

남자는 베란다 창문 앞에 서서, 갑작스런 소란에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과민 반응일 수도 있지만, 일이 끝나기 전까진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미 한 번 실패를 겪은 몸이니까.

똑똑똑!

???

누구냐?

문 밖의 목소리

늦은 밤에 실례합니다, 아파트 관리팀입니다.

아파트에서 가까운 곳에 폭발이 발생해 현재 모든 입주자들의 안전을 확인 중입니다.

문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

여기는 문제 없다.

남자는 티 테이블에 뒀던 권총을 집었다.

문 밖의 목소리

그래도 잠깐 확인하게 문을 열어 주십시오.

권총을 등뒤에 숨기고, 남자는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확실히, 아파트에서 일하는 건장한 체격의 경비원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사살할 수 있었다.

경호원

......

???

...됐나?

경호원

어디 보자... 네, 문제 없군요.

죄송합니다, 위에서 방마다 확인하라는 지시였어서 말이죠.

???

문제 없으면 이만 닫겠다.

경호원

실례했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쿵. 문이 닫히니, 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남자는 천천히 접객실로 가, 다시 베란다 창문 앞에 섰다. 아래로 보이는 소란은 여전했고, 저 멀리서 소방차가 달려오는 것도 보였다.

???

꼼짝 마.

???

......!

???

움루스, 너를 국가 안보 위협 혐의로 체포한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두 슈타지 요원이 소리 없이 뒤에서 나타났다. 남자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J

너였냐...?!

K

농담 한번 고약하군.

J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래...

안 그러냐? 움루스... 아니, 홉스였지?

J는 중얼거리며 눈앞의 거구의 남자를 매섭게 노려봤다.

홉스

...슈타지.

홉스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홉스

국가 안보 위협이라고? 누명을 씌우는 데 이젠 증거조차 필요가 없어진 거냐?

J

증거가 있는지 없는진 네가 잘 알 텐데?

홉스

저 폭발도 네놈들 짓이겠지?

이런 방법으로 경비원의 주의를 돌리다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가 보군.

그렇다면, 체포 영장도 없으면서 사유지를 무단 침입했다 이건가?

여기가 100년 전의 독일인 줄 아나?

K

화물을 어디로 보냈지?

홉스

그것 때문에 온 거였나.

슈타지가 끼어들 것 없는 일이다.

K

미안하지만 그 물건이 테러에 사용된 이상 개입할 수밖에 없다.

홉스

그딴 헛소리에 내가 동요할 것 같으냐?

K

뭐, 네가 모를 거라곤 예상했지.

이 일의 복잡함은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으니.

홉스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이지?

K

설마 여기서 볼 줄은 우리도 몰랐지만, 네 행적은 전에 확인했다. 넌 자독당을 위해 일하지 갈라테아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어.

그들이 왜 널 감옥에서 꺼내서 또 이런 일을 시키는지는 우리도 궁금하지만, 지금까지의 네 이력을 봐서는 네가 알고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일 테지?

J

요약하면, 넌 또 이용당했다는 거다 이 멍청아.

홉스

다 안다는 듯이 떠들지 마라, 슈타지.

내가 누구 밑에서 무슨 일을 하든 네놈들과는 관계도 없고 알려 줄 이유도 없다.

J

말할 생각 없으면 당장 여기서 죽여버릴 수도 있다고?

베를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데, 내가 악당놈들의 공범 한 명 죽였다고 신경쓸 사람은 없겠지.

홉스

날 위협하다니 웃음밖에――

K

"이아손의 상자".

홉스

뭐?

K

네가 밀수한 건 "이아손의 상자"라는 생화학 무기다.

몇 개월 전부터 베를린의 안팎으로 터졌던 수 차례의 소규모 테러 공격에, 놈들이 쓴 것이 바로 그거지.

홉스

웃기지 마라, 내가 운반한 무기는 테러를 위한 것이 아니다.

J

무기라 인정한 건 둘째 치고, 뭔 헛소리야 또? 네 윗대가리들이 그걸로 화학 비료라도 만든다대?

정신 똑바려 차려! 그게 만들어진 목적은 단 하나야, 사람 죽이는 거! 넌 생화학 무기를 빼돌려서 독일 국민들 죽이려는 걸 도와준 꼴이라고!

전에는 조국을 위해서라고 잘도 떠벌이더니, 이것도 나라 지키는 일이냐!? 앙?!

홉스

......

J가 그렇게까지 나오니, 홉스도 처음으로 침묵했다.

홉스

...증거는?

K

우릴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협조를 거부한다면, 수백만 베를린 시민이 희생되겠지.

홉스

......

홉스가 두 요원들에게 등을 돌리더니, 발 아래 베를린의 야경을 보며 다시 침묵했다.

홉스

...나도, 그 물건의 종착지가 어딘지 모른다.

J

뭐?

K

협조하겠단 뜻인가?

홉스

테러는 정치가 아니다. 의도부터가 다르지.

난 조국을 위해 헌신하기로 맹세한 몸이다. 조국과 국민에게 해가 되는 일은 내 명예를 걸고 한 적 없고, 하지도 않을 거다.

홉스

...그리고 무엇보다, 매국노라면 그 뼈를 씹어먹어도 속이 시원치 않아.

삐빅.

그때, 홉스의 휴대폰이 수신음을 냈다.

홉스

나다.

...그래, 잘했다.

거기서 계속 놈들의 거동을 지켜보도록.

아주 간단한 대화 후 통화가 끝났다.

홉스

화물은 지금 막 베를린 공항에 도착했다. 놈들이 내게 맡긴 일은 여기까지다.

다만 내 부하들을 잠복시켜 무기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게 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놈들이 뭘 할 셈인지 알 수 있겠지.

J

진작에 손을 써놨다는 거야?

홉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놈들이 날 골랐을 리 없을 테니까.

K

베를린 공항... 혹시 모르니 당장 이 소식을――

탕!!

총성과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충격받은 표정의 홉스도, 그대로 고꾸라졌다.

K

저격수다! 엄폐해!

J

제기랄!

K는 재빨리 소파 뒤로 숨었고, J는 부릅 뜬 눈으로 그대로 홉스에게 몸을 던져 엎드렸다.

J

누구야!?

누가 너한테 운반책 일을 맡겼어!

이름!! 이름을 말해!!

홉스

메...브윽...

J

메브? 여왕 메브?

코드명이야? 여자야? 여자냐고! 이봐!!

홉스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끊어진 고무줄처럼 풀렸고, 가슴에서 솟아나는 피가 바닥에 피웅덩이를 드리웠다.

홉스의 숨이 그자리에서 멎었다.

K

J! 철수한다! 경비원이 들이닥칠 거다!

K

모나!

모나

저격수를 포착해 추적 중입니다!

......

탕!

모나

서라!

건물 옥상을 넘나드는 검은 그림자를, 모나가 힘겹게 뒤쫓았다.

믿기지 않았다. 일단은 엘리트 전술인형이라 자부하는 자신이, 저 저격수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상대는 인간이 아님이 확실했다.

모나

......!

브라메드

정말 끈질기구나. 분수도 모르고 집착하는 여자는 인기 없어요~

날씬한 여인이 갑자기 멈춰 서, 모나도 제자리에 멈췄다. 그렇게 둘은 서로 한 건물의 옥상 맞은편에 서서, 밤의 찬바람을 맞으며 대치했다.

모나

살인죄로 체포한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모나는 곧장 총구를 그 요염한 여인에게 겨눴다.

모나

너는――?!

갑자기 모나의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그대로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시야마저 점점 어두워져, 그 여인이 다가오는 모습을 눈뜨고 보면서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브라메드

아까워라...

인형만 아니었어도, 너랑 데이트를 생각해봤을 텐데.

털썩.

모나는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쓰러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