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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5 · 재귀정리

iota

"그년은 처음부터 우릴 함정에 빠뜨릴 셈이었어요."

-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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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

......

지휘관

......

그림자에 가려진 자가 지휘관의 얼굴을 가늠하더니, 총구를 하늘로 들면서 사납던 적대감을 풀었다.

의외의 행동에 인형들은 당황했지만, 무기를 내리진 않았다.

로미

생각보다 젊군.

지휘관

...저를 아십니까?

로미

네 명성은 모스크바에서 베를린까지 직통으로 퍼졌거든.

그늘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온 전술작전복 차림의 여성은 총을 홀스터에 집어넣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총구가 겨눠진 상황에서도,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로미

만나서 반갑다, 그리폰의 지휘관.

로미 리슈펜탈, 독일 국가안전국의 현임 국장이다.

AR15

슈타지의 국장...?

AR-15가 흠칫하며 무의식적으로 총구를 내렸다.

하지만 M16A1는 계속 로미를 노려보며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M16A1

슈타지의 보스가 무슨 일로 패러데우스의 기지에 나타나셨나?

좀 많이 의심스러운걸.

로미

대화가 하고 싶다면 응당 그에 맞는 태도를 보여야겠지?

지휘관

...M16, 총 내려.

나머지도 모두. 그녀에게 적의는 없다.

인형들

......

지휘관의 명령에, 인형들은 로미를 향하던 총구를 내렸다.

지휘관

...그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로미

너희는 왜 이곳이 패러데우스의 영역이라 생각하지?

지휘관

그건...

"J가 그렇다 해서"라 말하려던 찰나, 지휘관은 그녀가 J의 상관임을 떠올렸다.

지휘관

...지금 여기에 패러데우스의 졸개들이 잔뜩이지 않습니까.

로미

하지만 이 안까지 들어오지 않았다면 놈들을 보지 못했겠지.

그리고 이들을 보지 못했다면, 여기가 패러데우스의 소굴이란 것도 몰랐을 테고.

로미 국장은 지휘관이 적당히 둘러댔음을, 아주 잠깐의 머뭇거림만으로 간파했다.

로미

...말하기 싫다면 됐다. 방금까지 총을 겨눈 사이기도 하니.

다만, 내 당당하게 밝히건대 여긴 패러데우스의 공장이 아니라 우리의 공장이다.

AR15

그쪽의 공장이요?

로미

그래, 우리 정부의 것.

지휘관

그럼 이놈들은...

로미

용병, 외인부대... 마음대로 해석해라.

이놈들은 내 지휘를 받았고, 패러데우스 소속이 아니란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지휘관

그렇다면, 정말 독일 정부와 패러데우스가 협력 관계란 말입니까?

로미

그건 말할 수 없다.

지휘관

...그럼 왜 여길 부수고 있었습니까?

로미

그것도.

지휘관

......

UMP45

물어볼 필요도 없어 지휘관.

뻔하지 뭐, 저들이 여길 다 때려 부수던 이유는 바로 지휘관이야.

대화에 빈틈이 생긴 타이밍을 노리고 UMP45가 끼어들었다.

지휘관

나 때문이라니...?

UMP45

국장 아줌마, 내 추측이 맞다면... "그 무기들", 여기서 조립됐지?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비밀리에 처리했어야 했는데, 그 무기를 지휘관이 찾아내서 확보한 건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고.

로미

......

UMP45

지휘관이 알았다면 훈작사도 알게 됐다는 뜻인데, 지휘관이 확보한 그게 아예 훈작사의 손에 들어갔지.

내막을 들킨 이상, 더 많은 걸 들키기 전에 증거를 인멸하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패러데우스가 증거를 없애려 하질 않으니, 정부가 직접 나설 수밖에.

로미

...아주 기특한 부하를 뒀군.

훈작사가 네게 이번 조사를 시킨 건, 우리를 상대로 협상거리를 늘리기 위해서인가?

말투와 표정엔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왠지 모를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지휘관

아니오, 그건 아닙니다.

지휘관

말해야겠군요, 저희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은 당신의 부하입니다.

그의 정보통이, 이곳이 패러데우스에게서 노획한 무기와 연루되어 있다 하여, 여기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조사하러 온 건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기다리지 않고 들어왔더니 패러데우스의 병사를 발견해... 지금 이 상황인 거죠.

지휘관

솔직히, 저흰 오기 전까지 여기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습니다.

여기가 그 무기와 관계 있을 거란 추측이 유일한 단서였습니다.

로미

내 부하... J 요원 말이로군.

괜찮은 행동력이야, 나도 너를 칭찬해야겠어.

훈작사는 대체 어디서 이렇게 든든한 부하를 데려오는 건지 원.

로미

...그런데 이상하군. 네가 공장에 들어와서 여태까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너와 만나기로 한 J 요원은 왜 아직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

지휘관

안 그래도 그 이유를 생각 중입니다.

로미

......

로미는 시선을 내리고 엄지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면서 생각했다.

로미

...나도 계속 여기 있으면서 아무도 보지 못했다.

여기가 접선 장소인 게 확실해?

지휘관

좌표는 J 요원이 제공했고, 그도 여기가 공장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이 근방에 유사한 다른 건물도 없는데, 장소를 헷갈릴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로미

......

로미가 고개를 들었다.

로미

...그건 모르는 일이지.

이런 공장이... 하나 더 있거든.

지휘관

두 곳이라고요?!

지휘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J

...그랬구나.

RO635가 건네준 수건을 받아, J는 얼굴을 파묻었다.

말라버린 핏자국과 눈물자국을 닦아내며, 그는 깊게 숨을 들이내쉬었다.

아직 살아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

J

모나는... 무사합니까?

UMP45

걱정 마, 소체가 아주 걸레짝이 되긴 했지만 코어는 멀쩡한 편이야. 간단하게 조치를 취하기만 하면 돼.

그런데, 각인은 안 했나 봐?

정말이지, 못 하겠음 그냥 IOP한테 기술 지원이나 받을 것이지.

로미

고려하지.

로미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J를 나무라지도 않았고,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장을 살펴봤다.

J

...설마 댁들이 같이 다닐 줄은 몰랐네요.

지휘관

만난 사람이 국장이었기에 망정이니,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

나도 설마 공장이 둘일 줄은 몰랐다.

J

저도 몰랐습니다... 정보 제공자가 일부러 잘못 안내한 거예요.

지휘관

그게 누구지?

J

......RPK-16.

J가 눈빛을 불태우며 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J

그년은 처음부터 우릴 함정에 빠뜨릴 셈이었어요.

지휘관

RPK-16...? 잠깐, 어느 RPK-16 말이야?

J

안젤리아 씨네 은여우 아가씨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지휘관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고? 아니 그럼 안젤리아는?!

아니 잠깐만... RPK-16이 널 함정에 빠뜨렸다고? 어째서...?

뜻밖의 이름을 들은 지휘관이 혼란에 빠졌다.

J

낸들 알겠습니까. 짐작도 안 가요.

브레멘에서부터 협력했는데, 그녀가 패러데우스와 한패였다니...

숨을 들이마시는 J의 목 안은 타들어가듯 쓰라렸다.

J

...확실히 의심스러웠는데. 모나도 눈치채고 말해 줬는데.

그런데... 그녀가 라이트... 제 후배 녀석의 배지를 가져와 보여 줘서, 앞뒤 안 보고 그녀의 말을...

지휘관

......

J

해킹당했을 수도 있고, 안젤리아 씨가 인질로 붙잡혀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에요, RPK-16이 배신했습니다.

그녀가 댁을 노리고 있다면 일이 더 꼬여버릴지도 몰라요.

지휘관

...알았다.

그래도 역시 의문스럽군... 왜 하필 너였지?

왜 하필 그녀가 널 찾아갔지? 그리고 일부러 여기까지 끌고 와서... 하필 여기서 죽이려 든 이유가 뭘까?

로미

......

그 말에 로미가 팔짱을 풀고 지휘관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로미

내가 안다.

지휘관

뭘 말입니까?

로미

녀석들을 여기서 죽이려 한 이유.

J

......?

로미

우리 보고, 중도하차하지 말라는 경고다.

로미

내가 다른 공장을 청소하는 동안, 놈들은 여기서 우리 슈타지 요원들을 죽였다.

이렇게나 사상자가 많이 나오면... 일을 묻어버리기도 힘들어지지.

만약 이 일이 외부에 유출된다면, 그땐 참사는 물론 공장에 대해서도 매스컴이 폭로해버리는 건 시간문제고.

그럼 국방부가 안팎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는 걸 넘어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게 될지도 몰라.

로미

패러데우스 놈들... 계산이 빈틈이 없어.

로미의 말투가 점점 냉랭해지면서, J도 점차 일의 전말을 깨달았다.

J

제기랄, 그런 거였구만...

전 미끼였군요. 제가 나서지 않았어도, 놈들은 배지든 다른 허위 정보든 뭘 써서라도 절 여기로 유인했을 테고요.

그냥 마침 제가 여기를 찾으려 해서――

불현듯 뭔가 떠오른 J의 안색이 뒤집혔다.

J

망했다, 넬레 씨가!

지휘관

넬레?

J

제가 말한 정보통 말입니다! 좌표 찾아다 준 사람이요!

J가 다급하게 통신기를 꺼내 넬레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우우...

응답이 없었다.

J

제기랄... 제발, 미아 양이라도 받아 봐요 좀...

뚜우우...

응답은 없었다.

지휘관

심각한 상황이야?

J

...매우 심각합니다.

J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J

그녀도 놈들한테 노출됐어요, 제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걸 RPK-16도 압니다.

지휘관

젠장... 지금 그 사람은 어디 있지?

J

——따라오세요!

질 나쁜 장난이길 바랐다.

그냥 다른 하찮은 이유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J

(난 더 이상 사람 목숨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

J의 안내를 따라, 지휘관 일행은 차를 몰아 베를린의 시가지로 돌아왔다.

넬레의 아파트가 있는 거리가 바로 코앞이었다.

하지만...

UMP45

잠깐, 차 세워 봐, 좀 이상해.

J

무, 무슨 일인데요?

UMP45가 운전하던 RO635를 불러 세워, 급브레이크에 스키드 마크를 내며 멈췄다.

UMP45

...아무래도 이 주변, "청소"된 거 같아.

UMP45가 먼저 차에서 내리면서, 어두컴컴하고 썰렁한 주택가의 거리를 경계했다.

RO635

그렇네요... 신호가 차단됐습니다. 교란당하고 있어요.

J

아주 익숙한 수법이군요.

J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넬레가 사는 아파트가 바로 저기였다.

일단 겉보기엔 괜찮아 보였다. 아직 아무 일도 없어 보였다.

AR15

저게 뭐지?

AR-15가, 그 아파트 한 층의 창문을 가리켰다.

지휘관

――연기다! 불이야!

J

——!!

그것도 J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날, 안젤리아가 묵던 건물이 기습받아 불타올랐을 때.

그때와 판박이였다.

AR15

안에 있다! 저 자식들 민간 아파트에다 불을 질렀어!

J

넬레 씨... 안 돼, 안 돼 안돼 안돼안돼안돼!!!

J가 이성을 잃고 아파트의 현관을 향해 냅다 달렸다.

지휘관

J?! 기다려! 제기랄, 빨리 쫓아가서 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