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순순히 저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뜨거웠던 열기가 점차 식어 가는 연회장. 오버슈타인은 홀로 창가에 서서, 여전히 하늘에서 피어나고 사라지는 불꽃놀이를 지켜봤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수신음을 숨기면서, 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통신기를 슬쩍 본 오버슈타인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자아 여러분! 다시 한번 잔을 듭시다! 멋진 오늘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에 걸맞는 성대한 마침표를 찍읍시다!
통일절을 위하여! 건배!
높이 들어올려진 잔들이 부딪히는 가운데, 오버슈타인 장관과 슈바인슈타이거 장군은 멀리서 서로에게도 잔을 들었다.
오늘밤의 불꽃놀이는... 어느 해보다도 현란하군.
그리폰 기지, 지하 3층의 연구소.
중앙홀에서 부상 인형을 이송 중입니다!
또? 한밤중에 왜 그렇게 많이 중앙 홀에 모여있었던 거지?
어... 그게...
헬리안 님, 무기고의 정리가 완료됐습니다. 현재 창고의 중요 물자 수량 파악과 이송을 진행 중입니다.
속도를 높여. 크루거 님과 전선대기조가 너희를 기다리며 적의 공세를 저지 중이다.
NTW-20 진행 상황 보고해라.
전자 봉쇄 해제 담당 소대가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보고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후방 우회 소대는 방금 집결하여 출발했다.
알았다, 신중을 기하도록.
라저.
헬리안은 지휘 태블릿에 뜨는 메시지들을 빠르게 처리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어 페르시카의 실험실 문을 찾았다.
헬리안 씨, 여긴 벌써 세 번이나 봤어요.
이상하네... 그녀의 실험실은 분명 이 근처였는데...
폭발에 놀라서 먼저 도망가진 않았을까요?
아니, 그럴 리는 없어. 그녀는 아무것도 안 챙기고 갈 바에야 차라리 실험실에서 죽길 택하는 사람이야.
아무래도 연락해봐야겠군. 하지만 시간이 시간이니 안 받을 수도...
헬리안이 페르시카에게 통신을 걸었다.
발신음이 열 번 넘게 들리고 나서야,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마침 잘 됐다. 헬리안! 한밤중에 공사해서 층간소음 냈다고 클레임 넣을 거야!
......
아니 대체 뭐야? 어딜 철거하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워!
덕분에 커피도 다 쏟았다고!
공사가 아닙니다.
조금 전의 소란은 기지가 기습 폭격을 받아서고, 현재 적이 기지를 침공 중입니다.
......
으아아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야!! 이사 오자마자 뭔 습격이야 대체...
불만은 나중에 들어드릴 테니 연구소 문이나 여세요, 급합니다.
예감이 안 좋은데... 용건부터 말해.
연구소에 볼일이 있으니까죠.
응? 설마 이 타이밍에 내가 요청한 새 실험 기구 왔어? 아님 주문한 재료?
그것도 아니면... 설마 누가 먼저 내 프로젝트랑 똑같은 주제로 논문 발표한 건 아니지?
하아... 다 아닙니다, 클라우드 마인드맵 서버 때문입니다.
크루거 님의 상황이 불리해질 경우, 전면 철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땐 서버도 운반해야 합니다.
뭐어?!
벽의 조그만 창이 드르륵 열리더니, 드물게 부릅 뜬 페르시카의 눈이 나타났다.
마인드맵 서버가 뭔지 알고나 말하는 거야!?
이게 무슨 케이크 조각 같아?! 깜찍한 메이드 인형이 문앞까지 배달해 주는 간식 같냐고!!
마인드맵 서버라고! 알아 몰라!?
안 돼, 절대 안 돼!!
일단 문부터 열고 얘기하세요.
제대로 준비도 않고 마인드맵 서버를 옮겼다간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운 좋으면 데이터 쬐끔 소실, 재수없으면 데이터가 통째로 손상돼서 쓰지도 못하게 된단 말이야!
그리폰이 지금까지 모아 온 기억과 경험이 날아간다고!
......
알았으니까 문 여세요.
싫어! 저번에 네가 문 열라고 해서 열었더니 인형들 잔뜩 데리고 와서 내 커피잔들 몽땅 설거지해버렸잖아!
...그거 나쁜 일인가요?
몰라, 문 안 열어. 단념해!
페르시카가 창을 쾅 닫았다.
......
잉그램, "대화 수단" 챙겨왔지?
분부대로.
방금 위치 봤지? 문 하나 크기로 구멍 뚫어.
걱정 마세요, 이런 건 또 제가 전문이거든요... 킥킥킥...
MAC-10이 음흉하게 킥킥대며, 특제 전기톱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폰 기지 입구. 미사일 폭격으로 모든 방위 시스템이 무력화된 탓에, 적들은 거침없이 쳐들어왔다.
가장 먼저 방어선에 도착한 산탄총 소대가 적의 선봉대와 맞붙어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뒤이어 도착한 소대들은 크루거의 지휘를 받으며 적 선봉대의 제압을 시도했다.
방어선을 유지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놈들의 화력에 진형에 구멍이 나선 안 돼!
외부 방어선이 돌파됐으니, 이 이상 들여보내면 기지가 위험해진다!
놈들은 우리가 여기서 막는다!
라저!
하지만 격전의 최전선에 선 산탄총 소대는 점점 밀리고 있었다.
저 XX X XX 놈들!! 반으로 찢어 죽일 거야!! 갈비뼈를 모조리 안으로 접어버리겠어!!
이거 놔!! 놓으라고!! 나 더 싸울 수 있어!!
으아아 디펜더 알았으니까 좀 진정해! 얘 데리고 빠질 테니 엄호해 줘!
산탄총 B팀, 교대! A팀은 속히 퇴각해서 수복해라!
크루거의 진두지휘에 힘입어, 인형들은 만신창이 꼴일지언정 방어선을 가까스로 유지해냈다.
크루거 님, 1시 방향에서 적의 증원이 접근 중입니다.
1개 소대, 수는 7명. 중화기는 없습니다.
톰슨, 몇 명 차출해 경로에 매복시켜라.
저와 리엔필드가 가겠습니다.
OK! WA, 넌 나랑 같이 카라비너와 리엔필드를 엄호한다!
타타탕——!
리엔필드와 Kar98k는 날렵한 동작으로 크루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다시 눈을 돌려, 현재 저 멀리서 교전 중인 적의 잔여 병력을 확인했다.
전원, 이번 공세를 섬멸하면 숨 돌릴 시간이 생길 것 같다.
다 들었지? 있는 거 없는 거다 때려넣어!!
알았어!
승기를 잡았단 낭보에, 지쳐 가던 인형들이 용맹하게 돌격을 감행해 해일 같은 기세로 남은 적들을 몰아붙였다.
여기는 웨블리. 적의 증원 부대가 3명이 사살되자 퇴각합니다.
그 둘이 해냈군. 적의 후속 병력이 보이나?
현재 관측된 바로는 없습니다.
전원! 이 틈에 재정비한다!
Kar98k와 리엔필드도 수고했다, 현 위치에서 철수해라.
즉시 복귀하겠습니다.
다들 정말 잘했다! 기념으로 와서 한잔해!
적의 1차 공세를 어렵사리 막아내어, 크루거가 이끄는 그리폰 부대는 짧은 휴식 시간을 얻었다.
이에 사기를 북돋으려는 심산으로 톰슨이 아껴 뒀던 술병을 꺼냈고, 무너진 잔해에서 치솟는 불길이 병을 반짝였다.
NTW-20, 돌파 소대의 상황은?
미안...... 크...... ...무 실패......
...다시 말해라, 통신 상태가――
유탄이다!! 엎드려――!!
콰아앙!!
지시를 받은 NTW-20은 즉시 소대를 편성해, 포위망을 뚫고 적의 후방으로 강행돌파하기 위해 움직였다. 성공한다면, 어디가 됐든 외부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을 터였다.
먼저 정찰 결과를 보고받은 돌파 소대는 수비가 가장 취약한 D1 포인트로 돌격했다.
그리고 탄약과 더미를 절반 이상 소모한 끝에 함락시켰다.
하지만 환호도 잠깐, 적의 무장헬기가 나타나, 그들에게 시꺼먼 철갑 기관포를 들이댔다.
돌파 소대, 응답해! 생존자는 없나!?
기지에 지원이 필요하다! 반복한다, 기지에 지원이 필요하다!
창백한 번개가 하늘을 갈랐고, 포성 같은 천둥 소리가 울려퍼졌다.
CZ75를 등에 업은 Spitfire는 그나마 멀쩡한 오른발로 두 사람 몫의 무게를 지탱하며 간신히 나아갔다.
야... 그만 내려놔...
놈들이 오고 있어...
질 나쁜 농담 말아요, 언니...
Spitfire가 조심조심 잔해를 넘는 그 순간에도, 저 멀리서 적이 흩뿌리는 총탄이 그들을 스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대가 함께 어깨를 나란히하고 작전에 임했건만, 순식간에 반파된 인형 둘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면... 너도 못 살아남아...
그것도 괜찮네요, 저세상에서 다 같이 모일 테니.
......
흔적을 감추기 위해, Spitfire는 더 걷기 힘든 숲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 Spitfire는 비가 쏟아져 질척질척해진 진흙을 나아가기엔 버거운 상태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날카로운 금속의 마찰음이 들렸다.
돌파 소대! 응답해!
너... 소체 아직 괜찮잖아... 더 싸울 수 있어... 난 됐으니까 기지로 가서 힘이나 보태...
시끄러워요, GSh의 구조팀이 바로 저 앞에 있다고요.
CZ75가 고개를 돌려 본 저 뒤엔, 진흙 위에 널브러진 동료들의 잔해가 조용히 누워있었다. 길 잃은 아이들처럼, 빗물의 세례를 받으며.
Spitfire... 우리 몫까지...
마저 싸워 줘...
뒤편의 숲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자, Spitfire는 다급한 마음에 걸음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응급처치했던 왼다리가 콰직 소리를 내며 다시 부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윽... 언니, 괜찮아요? 언니?
......
Spitfire는 다급하게 왼다리를 다시 이어 붙이면서 CZ75를 불렀다.
...75 언니?
CZ75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
Spitfire는 말없이 총을 주워, 다시 기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돌파 소대의 Spitfire.
무사했구나 Spitfire! 다른 인원들은?
...저뿐이에요.
......
바로 기지로 복귀하겠습니다.
통신 종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세차게 내리는 비에 섞여 들어 아무도 보지 못했다.
......
기지 입구 근처에서 크루거와 인형들이 고생 끝에 지켜낸 방어선은, 적의 폭격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인형들의 호위 덕분에, 크루거는 적들의 추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적의 두 번째 공세가 기지로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적 부대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크루거는 엄폐물 밖으로 나왔지만, 주위에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자욱한 먼지구름과 초연이었다.
크루거는 통신 채널에 퇴각 명령을 내리면서 생존 인형을 찾아 헤맸다.
방어선이 돌파당했다, 모든 병력은 즉시 합류 지점으로 퇴각하라!
...거기 산탄총 소대원인가? 뭣하고 있나, 당장 퇴각한다!
초연 너머로 흐릿한 반쪽짜리 방패가 보이자, 크루거가 바닥을 짚으며 다가갔다.
아직 움직일 수 있겠나?
방패 뒤엔 부러진 기계팔밖에 없었다.
......
생존자 없느냐! 대답해라!!
빅 보스... 여기, 나랑 WA.
절뚝거리는 인형의 윤곽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지로 후퇴한다. 생존자를 집결시켜라.
라저.
리엔필드... 카라비너...! 제발 정신 차려...!
톰슨의 뒤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한 WA2000이 리엔필드와 Kar98k의 소체를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
WA2000, 아직 끝이 아니니 마음을 다잡아라. 동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알아요... 안다고요...
여기는 물자 이송 부대! 지원 요청합니다!
적들이 창고로 침입했습니다! 우리만으로 반격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알았다, 바로 지원하겠다.
...크루거 님? 들리십니까?
톰슨! 톰슨, 응답 바란다!
아무도 없습니까! 현재 창고가 적에게 포위되었습니다!
안 들리는 건가? 빌어먹을 통신 교란...
WA2000, 너와――
크루거가 텅 빈 작전실을 죽 훑어봤지만, 다른 인형은 없었다.
...나한테 맡겨요, 크루거 씨.
......
부탁한다.
WA2000은 자가수복을 마무리하고, 곧장 창고를 향해 달려갔다.
쿵쿵쿵쿵——
물자 창고. 헬리안의 지시를 받은 웰로드는 신속히 부대를 편성해 창고의 중요 물자를 이송했다.
이송 작업은 막바지였고, 대부분의 대원들이 물자를 호위하며 창고를 떠났기에 남은 인원은 몇 없었다.
마지막 점검을 마친 후 웰로드와 나머지 대원들이 철수하려던 그때, 적들이 엄호 폭격을 받으며 크루거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왔다.
피 한 방울이 토카레프의 얼굴에 튀었다. 피비린내 나는 인간의 뜨거운 혈액이었다.
탄약이 진작에 바닥난 토카레프는, 창고에서 찾아낸 야전삽으로 자기 위로 엎어진 병사의 시체를 밀어냈다.
до свидания (안녕히 가세요).
수많은 인간의 시체들과 인형의 잔해들이 한데 얽힌 광경에, 토카레프는 감정이 마비된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야전삽을 휘두를 뿐이었다.
...크루거 님? 들리십니까?
톰슨! 톰슨, 응답 바란다!
아무도 없습니까! 현재 창고가 적에게 포위되었습니다!
웰로드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통신 채널에 계속해서 소리질렀다.
웰로드... 솔직히 말이야... 지금 이게 그 이벤트보다 훨씬 더 짜릿하다...?
알았으니까 입 좀 다물고 있어! 리베롤! PPK한테 긴급 수복!
토카레프! 네가 PPK의 위치를 맡아라!
네!
웰로드가 PPK에게 달려가면서, 토카레프의 사각지대에서 나타난 적을 처리했다.
여기는 톰슨. 웰로드, 상황 보고해.
톰슨! 적 병력 다수가 창고를 포위했다! 운반할 물자가 있는 상태라 돌파가 불가능해!
알았다. WA가 지원하러 갔으니 조금만 더 버텨.
PPK! 조금만 더 버텨라! 지원이 곧 도착한다!
우후훗... 나 같은 문제아를 왜 다들 가만 안 놔두는 건지... 토카레프가 아직 멀쩡할 때 얼른 빠져나가서 크루거 씨한테 가...
어둠에 몸을 맡긴 내게 빛을 비춰 주는 것은 지휘관님과 너희밖에 없어!
아무리 기나긴 밤이라도, 난 빛을 쫓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때, 환풍기가 쿵 바닥에 떨어지더니 구명 사다리가 내려왔다.
얘들아! 엄호할 테니까 빨리 나와!
WA2000! 좋았어, 다들 물자를 가지고 탈출한다!
PPK를 업은 MP443이 먼저 사다리를 올랐고, 토카레프가 리베롤을 밀어 주면서 그 뒤를 따랐다.
웰로드는, 시간을 벌기 위해 홀로 닥쳐오는 적들에게 맞섰다.
웰로드! 이제 너만 나오면 돼! 얼른!
알았——
웰로드가 사다리를 붙잡았다.
콰아앙!!
날아든 포탄이 매우 가까이서 폭발했고, 열풍과 충격파가 웰로드의 뒤를 덮쳤다.
굉음과 혼란 속에서, 그녀는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반 토막 난 사다리였다.
급히 소체의 상태를 자가진단한 결과도, 절망적이었다.
웰로드!
들려? 지금 출구가 박살났어!
......
먼저 가라. 여긴 내게 맡기고.
지금 폼 잡을 때야!?
웰로드 씨, 빨리 나오세요!
웰로드는 엉망이 된 소체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시야에서는 경고 알람이 계속해서 깜빡였다.
그 폭발로 벽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거친 부스러기가 후두둑 떨어지는 천장은 위태롭게 기울었다.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기다려, 다른 길을 찾을게!!
걱정 말라니까. 저놈들은 나 혼자서도 문제 없다.
멀지 않은 위치에서, 인형들의 농성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적들이 지원군과 합류해 그녀를 찾아다녔다.
웰로드는 각도를 계산하며 무너져 가는 창고의 구석으로 기어가, 품에서 마지막 수류탄을 꺼냈다.
너... 설마 우리 구하겠다고 희생할 셈은 아니지...?
웰로드 씨... 저한텐 그럴 만한 가치가...!
...이 세상에, 구원받을 가치 없는 자는 없어.
웰..... ... 안 돼...!
노이즈가 심해지자, 웰로드는 통신을 끄고 수류탄을 꾹 쥐었다.
내가 지금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니까...
적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소리로 판단해 인간 병사 2명에 군용인형 6기.
창고 반대편의 벽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비통함에 오열하며 벽을 두들기는 것만 같았다.
웰로드 씨! 안 돼요! 웰로드 씨!
통신 다시 켜 이 바보야!! 허튼 짓 말고 기다리라고!
웰로드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웃음이 터지는 동시에 눈물도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벽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지 적 병사들이 경계하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웰로드는 무리해서 일어나, 마지막 힘을 쥐어짜 창고의 선반을 내리쳤다.
..."순순히 저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스러져 가는 이여, 저무는 날에 맞서 소리치고 격노하라."
그 소리에, 적 병사들이 방향을 꺾어 웰로드 쪽으로 접근했다.
선반에 몸을 기대 시야의 사각지대에 숨은 웰로드는, 숨을 죽이고 놈들의 발소리에 집중했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저승사자의 발걸음이, 점점 다가온다...
이윽고 때가 찾아왔고, 웰로드는 씨익 웃으며 안전핀을 뽑았다.
"격노하라, 꺼져 가는 빛에 격노하라."
——!!
작전실.
톰슨은 모든 생존자를 집합시켜 철수 준비를 하고, 크루거는 아직 흩어진 소대들에게 연락해 교전 상황과 적의 침투 정황을 재확인했다.
헬리안, 방어선이 돌파됐다. 현시간부로 긴급 철수 계획을 실행한다.
...알겠습니다.
페르시카는 어떻지? 마인드맵 서버 운반 준비는 끝났나?
아직 준비 작업 중입니다.
그런데 크루거 님, 정말 지하로 철수하는 겁니까?
지하는 피해가 크지 않고, 구조 기반도 아직 멀쩡하다.
잊지 말도록, 우리 기지는 본디 수비에 용이하도록 설계됐다.
...알겠습니다.
이 통신을 받는 모든 그리폰 인형에게 전한다! 즉시 지하 3층으로 퇴각한다!
반복한다, 즉시 지하 3층으로 퇴각하라! 적의 섬멸보다 안전히 퇴각하는 것을 우선하라!
통신 채널을 통해, 헬리안의 목소리가 모든 그리폰 인형들의 통신 모듈에 전해졌다.
하지만 그녀들의 대부분은, 그 부름에 응할 수 없었다.
전체 대사 보기 (197줄)
뜨거웠던 열기가 점차 식어 가는 연회장. 오버슈타인은 홀로 창가에 서서, 여전히 하늘에서 피어나고 사라지는 불꽃놀이를 지켜봤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수신음을 숨기면서, 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통신기를 슬쩍 본 오버슈타인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자아 여러분! 다시 한번 잔을 듭시다! 멋진 오늘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에 걸맞는 성대한 마침표를 찍읍시다!
통일절을 위하여! 건배!
높이 들어올려진 잔들이 부딪히는 가운데, 오버슈타인 장관과 슈바인슈타이거 장군은 멀리서 서로에게도 잔을 들었다.
오늘밤의 불꽃놀이는... 어느 해보다도 현란하군.
그리폰 기지, 지하 3층의 연구소.
<color=#00CCFF>중앙홀에서 부상 인형을 이송 중입니다!</color>
또? 한밤중에 왜 그렇게 많이 중앙 홀에 모여있었던 거지?
<color=#00CCFF>어... 그게...</color>
<color=#00CCFF>헬리안 님, 무기고의 정리가 완료됐습니다. 현재 창고의 중요 물자 수량 파악과 이송을 진행 중입니다.</color>
속도를 높여. 크루거 님과 전선대기조가 너희를 기다리며 적의 공세를 저지 중이다.
NTW-20 진행 상황 보고해라.
<color=#00CCFF>전자 봉쇄 해제 담당 소대가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보고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color>
<color=#00CCFF>후방 우회 소대는 방금 집결하여 출발했다.</color>
알았다, 신중을 기하도록.
<color=#00CCFF>라저.</color>
헬리안은 지휘 태블릿에 뜨는 메시지들을 빠르게 처리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어 페르시카의 실험실 문을 찾았다.
헬리안 씨, 여긴 벌써 세 번이나 봤어요.
이상하네... 그녀의 실험실은 분명 이 근처였는데...
폭발에 놀라서 먼저 도망가진 않았을까요?
아니, 그럴 리는 없어. 그녀는 아무것도 안 챙기고 갈 바에야 차라리 실험실에서 죽길 택하는 사람이야.
아무래도 연락해봐야겠군. 하지만 시간이 시간이니 안 받을 수도...
헬리안이 페르시카에게 통신을 걸었다.
발신음이 열 번 넘게 들리고 나서야,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color=#00CCFF>아, 마침 잘 됐다. 헬리안! 한밤중에 공사해서 층간소음 냈다고 클레임 넣을 거야!</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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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00CCFF>아니 대체 뭐야? 어딜 철거하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워!</color>
<color=#00CCFF>덕분에 커피도 다 쏟았다고!</color>
공사가 아닙니다.
조금 전의 소란은 기지가 기습 폭격을 받아서고, 현재 적이 기지를 침공 중입니다.
<color=#00CCFF>......</color>
<color=#00CCFF>으아아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야!! 이사 오자마자 뭔 습격이야 대체...</color>
불만은 나중에 들어드릴 테니 연구소 문이나 여세요, 급합니다.
<color=#00CCFF>예감이 안 좋은데... 용건부터 말해.</color>
연구소에 볼일이 있으니까죠.
<color=#00CCFF>응? 설마 이 타이밍에 내가 요청한 새 실험 기구 왔어? 아님 주문한 재료?</color>
<color=#00CCFF>그것도 아니면... 설마 누가 먼저 내 프로젝트랑 똑같은 주제로 논문 발표한 건 아니지?</color>
하아... 다 아닙니다, 클라우드 마인드맵 서버 때문입니다.
크루거 님의 상황이 불리해질 경우, 전면 철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땐 서버도 운반해야 합니다.
<color=#00CCFF>뭐어?!</color>
벽의 조그만 창이 드르륵 열리더니, 드물게 부릅 뜬 페르시카의 눈이 나타났다.
마인드맵 서버가 뭔지 알고나 말하는 거야!?
<size=40>이게 무슨 케이크 조각 같아?! 깜찍한 메이드 인형이 문앞까지 배달해 주는 간식 같냐고!!</size>
<size=50>마인드맵 서버라고! 알아 몰라!?</size>
<size=50>안 돼, 절대 안 돼!!</size>
일단 문부터 열고 얘기하세요.
제대로 준비도 않고 마인드맵 서버를 옮겼다간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운 좋으면 데이터 쬐끔 소실, 재수없으면 데이터가 통째로 손상돼서 쓰지도 못하게 된단 말이야!
그리폰이 지금까지 모아 온 기억과 경험이 날아간다고!
......
알았으니까 문 여세요.
싫어! 저번에 네가 문 열라고 해서 열었더니 인형들 잔뜩 데리고 와서 내 커피잔들 몽땅 설거지해버렸잖아!
...그거 나쁜 일인가요?
몰라, 문 안 열어. 단념해!
페르시카가 창을 쾅 닫았다.
......
잉그램, "대화 수단" 챙겨왔지?
분부대로.
방금 위치 봤지? 문 하나 크기로 구멍 뚫어.
걱정 마세요, 이런 건 또 제가 전문이거든요... 킥킥킥...
MAC-10이 음흉하게 킥킥대며, 특제 전기톱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폰 기지 입구. 미사일 폭격으로 모든 방위 시스템이 무력화된 탓에, 적들은 거침없이 쳐들어왔다.
가장 먼저 방어선에 도착한 산탄총 소대가 적의 선봉대와 맞붙어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뒤이어 도착한 소대들은 크루거의 지휘를 받으며 적 선봉대의 제압을 시도했다.
방어선을 유지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놈들의 화력에 진형에 구멍이 나선 안 돼!
외부 방어선이 돌파됐으니, 이 이상 들여보내면 기지가 위험해진다!
놈들은 우리가 여기서 막는다!
라저!
하지만 격전의 최전선에 선 산탄총 소대는 점점 밀리고 있었다.
저 XX X XX 놈들!! 반으로 찢어 죽일 거야!! 갈비뼈를 모조리 안으로 접어버리겠어!!
이거 놔!! 놓으라고!! 나 더 싸울 수 있어!!
으아아 디펜더 알았으니까 좀 진정해! 얘 데리고 빠질 테니 엄호해 줘!
산탄총 B팀, 교대! A팀은 속히 퇴각해서 수복해라!
크루거의 진두지휘에 힘입어, 인형들은 만신창이 꼴일지언정 방어선을 가까스로 유지해냈다.
<color=#00CCFF>크루거 님, 1시 방향에서 적의 증원이 접근 중입니다.</color>
<color=#00CCFF>1개 소대, 수는 7명. 중화기는 없습니다.</color>
톰슨, 몇 명 차출해 경로에 매복시켜라.
저와 리엔필드가 가겠습니다.
OK! WA, 넌 나랑 같이 카라비너와 리엔필드를 엄호한다!
타타탕——!
리엔필드와 Kar98k는 날렵한 동작으로 크루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다시 눈을 돌려, 현재 저 멀리서 교전 중인 적의 잔여 병력을 확인했다.
전원, 이번 공세를 섬멸하면 숨 돌릴 시간이 생길 것 같다.
다 들었지? 있는 거 없는 거다 때려넣어!!
알았어!
승기를 잡았단 낭보에, 지쳐 가던 인형들이 용맹하게 돌격을 감행해 해일 같은 기세로 남은 적들을 몰아붙였다.
<color=#00CCFF>여기는 웨블리. 적의 증원 부대가 3명이 사살되자 퇴각합니다.</color>
그 둘이 해냈군. 적의 후속 병력이 보이나?
<color=#00CCFF>현재 관측된 바로는 없습니다.</color>
전원! 이 틈에 재정비한다!
Kar98k와 리엔필드도 수고했다, 현 위치에서 철수해라.
<color=#00CCFF>즉시 복귀하겠습니다.</color>
다들 정말 잘했다! 기념으로 와서 한잔해!
적의 1차 공세를 어렵사리 막아내어, 크루거가 이끄는 그리폰 부대는 짧은 휴식 시간을 얻었다.
이에 사기를 북돋으려는 심산으로 톰슨이 아껴 뒀던 술병을 꺼냈고, 무너진 잔해에서 치솟는 불길이 병을 반짝였다.
NTW-20, 돌파 소대의 상황은?
<color=#00CCFF>미안...... 크...... ...무 실패......</color>
...다시 말해라, 통신 상태가――
유탄이다!! 엎드려――!!
콰아앙!!
지시를 받은 NTW-20은 즉시 소대를 편성해, 포위망을 뚫고 적의 후방으로 강행돌파하기 위해 움직였다. 성공한다면, 어디가 됐든 외부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을 터였다.
먼저 정찰 결과를 보고받은 돌파 소대는 수비가 가장 취약한 D1 포인트로 돌격했다.
그리고 탄약과 더미를 절반 이상 소모한 끝에 함락시켰다.
하지만 환호도 잠깐, 적의 무장헬기가 나타나, 그들에게 시꺼먼 철갑 기관포를 들이댔다.
<color=#00CCFF>돌파 소대, 응답해! 생존자는 없나!?</color>
<color=#00CCFF>기지에 지원이 필요하다! 반복한다, 기지에 지원이 필요하다!</color>
창백한 번개가 하늘을 갈랐고, 포성 같은 천둥 소리가 울려퍼졌다.
CZ75를 등에 업은 Spitfire는 그나마 멀쩡한 오른발로 두 사람 몫의 무게를 지탱하며 간신히 나아갔다.
야... 그만 내려놔...
놈들이 오고 있어...
질 나쁜 농담 말아요, 언니...
Spitfire가 조심조심 잔해를 넘는 그 순간에도, 저 멀리서 적이 흩뿌리는 총탄이 그들을 스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대가 함께 어깨를 나란히하고 작전에 임했건만, 순식간에 반파된 인형 둘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면... 너도 못 살아남아...
그것도 괜찮네요, 저세상에서 다 같이 모일 테니.
......
흔적을 감추기 위해, Spitfire는 더 걷기 힘든 숲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 Spitfire는 비가 쏟아져 질척질척해진 진흙을 나아가기엔 버거운 상태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날카로운 금속의 마찰음이 들렸다.
<color=#00CCFF>돌파 소대! 응답해!</color>
너... 소체 아직 괜찮잖아... 더 싸울 수 있어... 난 됐으니까 기지로 가서 힘이나 보태...
시끄러워요, GSh의 구조팀이 바로 저 앞에 있다고요.
CZ75가 고개를 돌려 본 저 뒤엔, 진흙 위에 널브러진 동료들의 잔해가 조용히 누워있었다. 길 잃은 아이들처럼, 빗물의 세례를 받으며.
Spitfire... 우리 몫까지...
마저 싸워 줘...
뒤편의 숲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자, Spitfire는 다급한 마음에 걸음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응급처치했던 왼다리가 콰직 소리를 내며 다시 부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윽... 언니, 괜찮아요? 언니?
......
Spitfire는 다급하게 왼다리를 다시 이어 붙이면서 CZ75를 불렀다.
...75 언니?
CZ75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
Spitfire는 말없이 총을 주워, 다시 기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돌파 소대의 Spitfire.
<color=#00CCFF>무사했구나 Spitfire! 다른 인원들은?</color>
...저뿐이에요.
<color=#00CCFF>......</color>
바로 기지로 복귀하겠습니다.
통신 종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세차게 내리는 비에 섞여 들어 아무도 보지 못했다.
......
기지 입구 근처에서 크루거와 인형들이 고생 끝에 지켜낸 방어선은, 적의 폭격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인형들의 호위 덕분에, 크루거는 적들의 추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적의 두 번째 공세가 기지로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적 부대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크루거는 엄폐물 밖으로 나왔지만, 주위에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자욱한 먼지구름과 초연이었다.
크루거는 통신 채널에 퇴각 명령을 내리면서 생존 인형을 찾아 헤맸다.
방어선이 돌파당했다, 모든 병력은 즉시 합류 지점으로 퇴각하라!
...거기 산탄총 소대원인가? 뭣하고 있나, 당장 퇴각한다!
초연 너머로 흐릿한 반쪽짜리 방패가 보이자, 크루거가 바닥을 짚으며 다가갔다.
아직 움직일 수 있겠나?
방패 뒤엔 부러진 기계팔밖에 없었다.
......
생존자 없느냐! 대답해라!!
빅 보스... 여기, 나랑 WA.
절뚝거리는 인형의 윤곽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지로 후퇴한다. 생존자를 집결시켜라.
라저.
리엔필드... 카라비너...! 제발 정신 차려...!
톰슨의 뒤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한 WA2000이 리엔필드와 Kar98k의 소체를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
WA2000, 아직 끝이 아니니 마음을 다잡아라. 동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알아요... 안다고요...
<color=#00CCFF>여기는 물자 이송 부대! 지원 요청합니다!</color>
<color=#00CCFF>적들이 창고로 침입했습니다! 우리만으로 반격하기엔 역부족입니다!</color>
알았다, 바로 지원하겠다.
<color=#00CCFF>...크루거 님? 들리십니까?</color>
<color=#00CCFF>톰슨! 톰슨, 응답 바란다!</color>
<color=#00CCFF>아무도 없습니까! 현재 창고가 적에게 포위되었습니다!</color>
안 들리는 건가? 빌어먹을 통신 교란...
WA2000, 너와――
크루거가 텅 빈 작전실을 죽 훑어봤지만, 다른 인형은 없었다.
...나한테 맡겨요, 크루거 씨.
......
부탁한다.
WA2000은 자가수복을 마무리하고, 곧장 창고를 향해 달려갔다.
쿵쿵쿵쿵——
물자 창고. 헬리안의 지시를 받은 웰로드는 신속히 부대를 편성해 창고의 중요 물자를 이송했다.
이송 작업은 막바지였고, 대부분의 대원들이 물자를 호위하며 창고를 떠났기에 남은 인원은 몇 없었다.
마지막 점검을 마친 후 웰로드와 나머지 대원들이 철수하려던 그때, 적들이 엄호 폭격을 받으며 크루거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왔다.
피 한 방울이 토카레프의 얼굴에 튀었다. 피비린내 나는 인간의 뜨거운 혈액이었다.
탄약이 진작에 바닥난 토카레프는, 창고에서 찾아낸 야전삽으로 자기 위로 엎어진 병사의 시체를 밀어냈다.
до свидания (안녕히 가세요).
수많은 인간의 시체들과 인형의 잔해들이 한데 얽힌 광경에, 토카레프는 감정이 마비된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야전삽을 휘두를 뿐이었다.
...크루거 님? 들리십니까?
톰슨! 톰슨, 응답 바란다!
아무도 없습니까! 현재 창고가 적에게 포위되었습니다!
웰로드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통신 채널에 계속해서 소리질렀다.
웰로드... 솔직히 말이야... 지금 이게 그 이벤트보다 훨씬 더 짜릿하다...?
알았으니까 입 좀 다물고 있어! 리베롤! PPK한테 긴급 수복!
토카레프! 네가 PPK의 위치를 맡아라!
네!
웰로드가 PPK에게 달려가면서, 토카레프의 사각지대에서 나타난 적을 처리했다.
<color=#00CCFF>여기는 톰슨. 웰로드, 상황 보고해.</color>
톰슨! 적 병력 다수가 창고를 포위했다! 운반할 물자가 있는 상태라 돌파가 불가능해!
<color=#00CCFF>알았다. WA가 지원하러 갔으니 조금만 더 버텨.</color>
PPK! 조금만 더 버텨라! 지원이 곧 도착한다!
우후훗... 나 같은 문제아를 왜 다들 가만 안 놔두는 건지... 토카레프가 아직 멀쩡할 때 얼른 빠져나가서 크루거 씨한테 가...
어둠에 몸을 맡긴 내게 빛을 비춰 주는 것은 지휘관님과 너희밖에 없어!
아무리 기나긴 밤이라도, 난 빛을 쫓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때, 환풍기가 쿵 바닥에 떨어지더니 구명 사다리가 내려왔다.
얘들아! 엄호할 테니까 빨리 나와!
WA2000! 좋았어, 다들 물자를 가지고 탈출한다!
PPK를 업은 MP443이 먼저 사다리를 올랐고, 토카레프가 리베롤을 밀어 주면서 그 뒤를 따랐다.
웰로드는, 시간을 벌기 위해 홀로 닥쳐오는 적들에게 맞섰다.
웰로드! 이제 너만 나오면 돼! 얼른!
알았——
웰로드가 사다리를 붙잡았다.
콰아앙!!
날아든 포탄이 매우 가까이서 폭발했고, 열풍과 충격파가 웰로드의 뒤를 덮쳤다.
굉음과 혼란 속에서, 그녀는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반 토막 난 사다리였다.
급히 소체의 상태를 자가진단한 결과도, 절망적이었다.
<color=#00CCFF>웰로드!</color>
<color=#00CCFF>들려? 지금 출구가 박살났어!</color>
......
먼저 가라. 여긴 내게 맡기고.
<color=#00CCFF>지금 폼 잡을 때야!?</color>
<color=#00CCFF>웰로드 씨, 빨리 나오세요!</color>
웰로드는 엉망이 된 소체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시야에서는 경고 알람이 계속해서 깜빡였다.
그 폭발로 벽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거친 부스러기가 후두둑 떨어지는 천장은 위태롭게 기울었다.
<color=#00CCFF>이상한 짓 하지 말고 기다려, 다른 길을 찾을게!!</color>
걱정 말라니까. 저놈들은 나 혼자서도 문제 없다.
멀지 않은 위치에서, 인형들의 농성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적들이 지원군과 합류해 그녀를 찾아다녔다.
웰로드는 각도를 계산하며 무너져 가는 창고의 구석으로 기어가, 품에서 마지막 수류탄을 꺼냈다.
<color=#00CCFF>너... 설마 우리 구하겠다고 희생할 셈은 아니지...?</color>
<color=#00CCFF>웰로드 씨... 저한텐 그럴 만한 가치가...!</color>
...이 세상에, 구원받을 가치 없는 자는 없어.
<color=#00CCFF>웰..... ... 안 돼...!</color>
노이즈가 심해지자, 웰로드는 통신을 끄고 수류탄을 꾹 쥐었다.
내가 지금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니까...
적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소리로 판단해 인간 병사 2명에 군용인형 6기.
창고 반대편의 벽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비통함에 오열하며 벽을 두들기는 것만 같았다.
웰로드 씨! 안 돼요! 웰로드 씨!
통신 다시 켜 이 바보야!! 허튼 짓 말고 기다리라고!
웰로드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웃음이 터지는 동시에 눈물도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벽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지 적 병사들이 경계하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웰로드는 무리해서 일어나, 마지막 힘을 쥐어짜 창고의 선반을 내리쳤다.
..."순순히 저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스러져 가는 이여, 저무는 날에 맞서 소리치고 격노하라."
그 소리에, 적 병사들이 방향을 꺾어 웰로드 쪽으로 접근했다.
선반에 몸을 기대 시야의 사각지대에 숨은 웰로드는, 숨을 죽이고 놈들의 발소리에 집중했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저승사자의 발걸음이, 점점 다가온다...
이윽고 때가 찾아왔고, 웰로드는 씨익 웃으며 안전핀을 뽑았다.
"격노하라, 꺼져 가는 빛에 격노하라."
——!!
작전실.
톰슨은 모든 생존자를 집합시켜 철수 준비를 하고, 크루거는 아직 흩어진 소대들에게 연락해 교전 상황과 적의 침투 정황을 재확인했다.
헬리안, 방어선이 돌파됐다. 현시간부로 긴급 철수 계획을 실행한다.
<color=#00CCFF>...알겠습니다.</color>
페르시카는 어떻지? 마인드맵 서버 운반 준비는 끝났나?
<color=#00CCFF>아직 준비 작업 중입니다.</color>
<color=#00CCFF>그런데 크루거 님, 정말 지하로 철수하는 겁니까?</color>
지하는 피해가 크지 않고, 구조 기반도 아직 멀쩡하다.
잊지 말도록, 우리 기지는 본디 수비에 용이하도록 설계됐다.
<color=#00CCFF>...알겠습니다.</color>
<color=#00CCFF>이 통신을 받는 모든 그리폰 인형에게 전한다! 즉시 지하 3층으로 퇴각한다!</color>
<color=#00CCFF>반복한다, 즉시 지하 3층으로 퇴각하라! 적의 섬멸보다 안전히 퇴각하는 것을 우선하라!</color>
통신 채널을 통해, 헬리안의 목소리가 모든 그리폰 인형들의 통신 모듈에 전해졌다.
하지만 그녀들의 대부분은, 그 부름에 응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