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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5 · 재귀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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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에 보이는 것 전부가 진실은 아니야. 지휘관, 눈에 의존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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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지휘관은, 술집의 테이블 앞에 앉은 자신을 발견했다.

차가운 진저 에일 한 잔이 테이블 위에 길쭉한 물자국을 남기며 손 옆으로 미끄러져 왔다.

안젤리아

내가 쏘는 거야.

지휘관

안젤리아 씨!?

안젤리아

응?

테이블 맞은편에 안젤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주황빛 위스키가 든 잔을 천천히 흔들었고, 그때마다 얼음 조각이 잔에 부딪히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

지휘관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렇지, 우리가 진짜 몰리도를 찾아냈습니다.

안젤리아

그래?

어째선지, 안젤리아는 관심없다는 듯 술값과 팁을 툭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휘관

어디... 가십니까?

안젤리아

......

안젤리아는 대답 대신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지휘관을 겨눴다.

지휘관

안젤리아 씨...?

안젤리아

네 눈에 보이는 것 전부가 진실은 아니야. 지휘관, 눈에 의존하지 마.

지휘관

네?

타앙!!!

지휘관은 가슴을 움켜쥐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휘관

헉!! ...여긴 어디지?

카리나

일어나셨나요 지휘관님?

지휘관

카리나...?

침대 옆에 카리나가 앉아있었다. 조금 초췌한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기운만은 넘쳐 보였다.

지휘관

너... 몸은 다 나았니? 의사 선생님이 뭐래?

카리나

헤헤, 저 다 나았어요! 이제 입원해 있을 필요 없다니까 오늘 퇴원할 거예요!

카리나는 발랄하게 웃으며 짐을 싸는 중이었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싱싱한 꽃이 한층 더 밝은 분위기를 내었다.

지휘관

퇴원해도 된대?

카리나

...입원비 엄청 비싼걸요. 명세서 볼 때마다 가슴 아파 죽겠어요.

지휘관

이 녀석이... 네가 아까워할 게 어딨어? 다 내 통장에서 나가는 건데.

카리나

제가 빨리 퇴원해야, 지휘관님이 약 찾는다고 무작정 돌아다니지 않으실 거 아니에요.

카리나가 고개를 돌려 지휘관을 마주봤다.

카리나

병문안 오시는 거 매일 기다렸는데, 한 번도 안 오시고.

지휘관

윽... 미안해 카리나, 그게――?

뜨끔하며 시선을 돌린 협탁에 놓인 꽃이, 시들었다.

털썩.

그리고 시선을 돌린 그 순간, 카리나도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지휘관

카리나? 카리나!!

카리나, 정신 차려!!

의사... 의사 있습니까!!

지휘관은 카리나를 안아 들고 일어나, 병실의 문을 확 열어재꼈다.

지휘관

여기 환자가――

하지만 문을 열자 보인 것은 병원의 복도가 아니었다. 치솟는 불길과 자욱한 연기, 초연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어딘가였다.

지휘관

뭐야... 이게 무슨 상황이야...?!

우, 우리 인형들은 어딨지...?

???

지휘관...님...

저희... 여기 있......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인형이 절뚝거리며 다가왔고, 지휘관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휘관

여긴... 그리폰 기지?

???

구해 주세요...

지휘관의 품에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인형의 몸이 점점 흩어져갔다.

반사적으로 그녀를 부둥켜안았지만, 바스라져 가는 그녀의 몸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지휘관

너 누구니? 기지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잔불이 되어 지휘관의 팔 사이로 흘러내렸다.

떨리는 눈으로 내려다본 바닥은, 온통 타고 남은 잿더미뿐이었다.

AR15

지휘관...

RO635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M4 SOPMOD II

꿈에서 괴물 나왔어? 내가 다 때려잡아 줄게!

지휘관

난... 괜찮아.

베를린 교외의 임시 지휘부. 소파에서 악몽에 시달린 지휘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지휘관

...꿈이 좀 생생했어.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벌렁거렸다.

지휘관이 고개를 돌리니, 옆자리의 M4A1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지휘관의 잠꼬대에도 방해받지 않은 듯했다.

그녀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 주면서, 지휘관은 피로감 역력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

M4는... 아직도 안 깨어났어?

AR15

아뇨, 계속 지켜봤지만 손가락 하나 안 움직였어요.

지휘관

......

M4 SOPMOD II

걱정 마 지휘관, M4잖아! 분명 괜찮을 거야!

RO635

지휘관님, 물 한 잔 마시면서 진정하세요. 지금 심박수가 엄청 높으세요.

지휘관

응... 고마워 RO.

소파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손이 지휘관의 손을 붙잡았다.

M4A1

지휘관님...?

지휘관

M4...! 정신이 드니?

M4 SOPMOD II

M4!! 너 괜찮아?! 너 엄청 오래 잤어!

M4A1

난... 괜찮아요...

지휘관의 부축을 받으며 앉은 M4A1이 부스스한 눈을 비볐다.

AR-15와 SOP2가 가장 먼저 M4A1의 곁에 모여들었고, RO635는 헐레벌떡 데운 타올을 가져왔다.

M4 SOPMOD II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AR15

몸에 어디 불편한 덴 없어?

M4A1

조금 피곤한 걸 빼면, 딱히 아무 느낌도...

저, 얼마나 잤나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죠?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AR-15가, 갑자기 인상을 썼다.

AR15

......

M4A1

...AR-15? 왜 그래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그리고 얼굴도 어두워지더니, M4A1의 말도 무시하고 그녀의 얼굴을 덥석 붙잡아 자세히 살펴봤다.

지휘관

AR-15?

M4 SOPMOD II

으음...? 뭔가 좀... 어색하다?

AR15

너...

M4A1

AR-15...? 그, 그렇게 잡으면 아파요...

지휘관

AR-15, 일단 손에 힘부터 풀으렴.

잠시 후, AR-15는 툴툴대며 손을 놓곤 지휘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AR15

얘 M4 아니에요.

지휘관

뭐?

?M4A1

제가 M4가 아니라니... 그럼 전 누구죠...?

AR15

......

?M4A1

AR-15...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잖아요?

AR15

너 진짜!

RO635

앗, AR-15! 진정해!

열받은 AR-15를 RO635가 뜯어말리는 광경을 재밌다는 듯 보면서도, "그녀"는 무미건조한 투로 입을 열었다.

댄들라이

벌써 들켰네, 시시해.

지휘관

댄들라이니...?

M4 SOPMOD II

엥!? 그럼 M4는? M4 어디 갔어?!

댄들라이

글쎄, 나도 모르겠네. 어쩌면 내가 잡아먹었을지도?

M4 SOPMOD II

뭐야!? 너어어――!!

SOP2가 댄들라이의 팔을 덥석 물었다.

RO635

SOP2!

지휘관

......

소체의 주도권이 댄들라이에게 되돌아간 것을 깨달은 지휘관은 아쉬움에 다리가 풀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RO635

지휘관님...

RO635가 한눈파는 사이에 AR-15까지 풀려나 댄들라이에게 달려들어, 조용했던 임시 지휘부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넋이 나간 표정의 지휘관을 본 RO635는 제지를 포기하고, 대신 서둘러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왔다.

RO635

지휘관님, M4 씨는 꼭 돌아올 거예요.

지휘관

...응.

그때, 겁먹은 듯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왔는지, 문짝이 뜯어진 문틀 앞의 카이바르가 난장판이 된 방에 어쩔 줄 몰라하며 다가왔다.

카이바르

지, 지휘관... 여기 무슨 일이야...?

지휘관

얘네 원래 이렇게 다투고 그래.

카이바르

오오... 그리폰의 일상은 이렇구나...

지휘관

아니 그건 아니지만...

카이바르

아, 까먹을 뻔했다. 지휘관이 저번에 훈작사한테 패러데우스가 인질 교환 거래 제시한 거 물어보라 했잖아? 방금 답신이 왔어.

지휘관

뭐라고 했어?

카이바르

"몰리도의 처우는 지휘관에게 전권 위임하겠다."

지휘관

훈작사께 의견을 존중해 줘서 고맙다고 전해 주렴.

카이바르

응.

카이바르는 고개를 끄덕이곤 잔뜩 어질러진 바닥의 장애물을 넘어 방에서 나갔다.

UMP45

정말 몰리도를 넘길 셈이야?

M4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곤 했지만, 공항에서의 일은 너무 갑작스러웠는데.

RO635

M4 씨는 몰리도에게, "때가 되면"이라 했어요. 지금도 적절한 타이밍이라 생각해요.

M4 씨의 바람대로 하면서, 동시에 안젤리아 씨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UMP45

결국 몰리도를 어떤 식으로 풀어 주려는 건지는 끝까지 설명을 못 들었지만.

RO635

그래도 뜻은 명확했어요.

UMP45

안젤리아를 구할 수 있다면야 나도 두 손 들고 찬성이야.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몰리도가 우리에 관한 정보를 잔뜩 가진 채로 윌리엄에게 돌아가는 꼴밖에 안 돼.

UMP45

이건 패러데우스한테 꿇고 들어가는 거라고. 우리가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겠어?

지휘관

알아, 리스크가 크지. 하지만 모처럼 찾아온 기회이기도 해. 이번에 놓치면, 우린 언제 또 윌리엄의 꼬리를 붙잡을지 알 수 없어.

UMP45

무슨 뜻인진 알겠는데에... 그래도 역시 너무 무모하다니깐?

UMP45는 뭔가 계속 말하려는 눈치였지만, 한층 더 시끄러워진 소란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댄들라이

잊지 마, 나 아직 면죄부 남았어.

AR15

그딴 거 이제 없어!!

얼른 지휘관한테 똑바로 설명이나 해!

M4 SOPMOD II

설명해!

한바탕 투닥거리고 난 뒤, AR-15와 SOP2가 댄들라이를 지휘관 앞에 떠밀었다.

옷차림도 흐트러지고 머리도 엉망이었지만,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옷의 먼지만 털어내고 담담하게 지휘관을 바라봤다.

댄들라이

짐작하신 바와 같이, 루니샤가 떠났습니다.

지휘관

어디로 간지 알아?

댄들라이

그야 저도 모르죠. 그저, 지금 여기엔 없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지휘관

언제 다시 돌아올지도?

댄들라이

네, 루니샤의 현황에 관해서는 저도 지휘관님보다 많이 아는 게 아니라서 말이죠.

AR15

숨기지 말라니까!?

댄들라이

루니샤와 재회하고 싶은 건 나도 똑같아, 수많은 의문에 답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루니샤뿐인걸.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로선 그녀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고 언제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

M4 SOPMOD II

으... 벌써 M4를 보고 싶어졌어...

RO635

...꼭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꼭.

다만, 우린 그 전에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잖아?

지휘관

......

지휘관은 AR팀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베를린에 도착하고부터 계속 자신과 함께한 이들에겐 쉴 틈이 나질 않아, 항상 극도로 긴장하면서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협에 대비해야 했다.

아무리 전술인형이라도, 이대로는 피로와 스트레스에 무너질 때가 올 것이 분명했다.

지휘관

그래, 조금만 더 힘내자. 얼마 안 남았어.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지휘관은 카이바르에게 통신을 지시했다.

일곱 번의 발신음 뒤, 상대가 통신을 받았다.

???

<color=#00CCFF>시간을 잘 지키는군요, 그리폰의 지휘관. 어떡할지 결론을 내렸나요?</color>

지휘관

거래를 받아들이겠다. 단, 그 전에 안젤리아와 대화해야겠다.

???

<color=#00CCFF>안 된다고 한다면?</color>

지휘관

거래를 제안한 건 너희다.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이지 않으면 거래고 뭐고 없어.

상대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잠깐 멀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오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지휘관은 손가락이 하얗게 될 정도로 수화기를 꽉 움켜쥐었다.

???

<color=#00CCFF>만족하셨나요?</color>

<color=#00CCFF>안젤리아는 아주 팔팔하답니다.</color>

지휘관

......

???

<color=#00CCFF>다시 거래 얘기를 할까요?</color>

지휘관

...2시간 후, 그 공항에서 보자.

???

<color=#00CCFF>기다리고 있을게요.</co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