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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5 · 재귀정리

nano

"우리만으로 놈들을 여기서 가로막는다."

-4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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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지하 2층의 사격장 천장 위에서, 폭발의 굉음이 시시때때로 들려왔다.

희미한 빛을 통해, 크루거는 인형들이 예정된 위치에 매복해 적의 도래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웨블리

<color=#00CCFF>크루거 님, 적 제1소대가 D3 구역에 도달했습니다.</color>

크루거

D5, 주의하라.

톰슨

<color=#00CCFF>라저, 더미 배치 완료.</color>

웨블리

<color=#00CCFF>적 제1소대, D4 구역에 도달. 이어서 제2소대가 D3 구역에 진입.</color>

크루거

전원, 주의하라. 적이 곧 사정권에 들어온다.

인형들은 적이 나타날 방향을 주시하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기다렸다.

주변은 온통 고요했지만, 인형들은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크루거

......

준비.

곧 사격 신호가 떨어진다.

모두가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당장에라도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낼 적들을 맞이하기 위해.

지하 3층, 예비 엘레베이터 앞.

헬리안과 마인드맵 서버 호위 팀은 초조한 마음으로 엘레베이터를 기다렸다.

한편, 페르시카가 헬리안의 시선이 자꾸 천장으로 향하는 것을 눈치챘다.

페르시카

헬리안, 크루거 씨 걱정해?

헬리안

...네, 적과의 전력차는 명백하니까요.

페르시카

너무 걱정 마,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습관과 신뢰"라는 말도 있잖아.

헬리안

그러고 보니, 당신은 이상하리만치 태연하군요?

페르시카

그야 그렇지 뭐, 너희가 날 실망시킨 적이 없었는데.

페르시카

그러니까, 저 위 말고 여길 더 걱정하도록 해.

그 말에, 헬리안은 천천히 뒤의 호위 팀을 돌아보았다. 싸울 수 있는 인형들은 모두 자진해서 저지 팀으로 들어갔기에, 여기 남은 인형들은 모두 부상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다들 수복실에 누워있어야 하는 인형들이었다.

GSH18

헬리안 씨, 저흰 괜찮아요.

만신창이인 소체로 무거운 서버를 끌고 온 인형들은 차분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헬리안

......

모두 수고가 많아.

조금만 더 참자, 지원군은 반드시 올 거야.

벌써 몇 번째인지 몰라도, 헬리안은 또 천장을 바라봤다.

다만 이번에는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이 크루거가 있는 쪽인지, 지원군이 올 방향인지 페르시카도 알 수 없었다.

지하 2층, 사격연습장.

저지 팀은 집결하여 방금 사살한 적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시신에서 쓸 만한 무기와 탄약을 뒤졌다.

크루거

인간 병사 4명에 군용 인형 7대.

꽤 정예병들을 보냈군. 카터가 배 좀 아파하겠어.

웨블리

<color=#00CCFF>크루거 님, 적들의 동향이 이상합니다.</color>

<color=#00CCFF>지하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구간의 일부 적이 지상 1층으로 퇴각하는 것을 관측했습니다.</color>

크루거

알았다, 계속 정찰 바란다.

MP443

퇴각...?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토카레프

적도 확실히 병력 손실이 꽤 크긴 할 거야...

톰슨

빅 보스, 반격할까?

적의 시신을 확인하던 크루거는 잠시 고민했다.

크루거

카터가 내가 알던 그대로라면, 저놈들은 아마 후속 지원군을 기다리면서 재보급을 위해 일시적으로 후퇴한 것이겠지.

톰슨

놈들이 보급을 마치기 전에 해치울 수 있다면 전선을 크게 밀어낼 수 있겠는데.

크루거

그래,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지. 무기고를 탈환하면 보급이 가능해지고, 무엇보다 더 많은 시간을 벌 좋은 기회로군.

헬리안, 적이 후퇴한다. 지금부터 반격을 시도하려 한다만, 호위 팀은 예정대로 더 아래로 철수하도록.

헬리안

<color=#00CCFF>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color>

크루거

명심하지.

전원, 돌격 준비. 전선을 탈환한다.

지하 3층, 예비 엘레베이터 문 앞.

헬리안의 지휘를 받으며, 호위 팀 인형들은 질서정연하게 마인드맵 서버를 한 블록씩 지하 3층에서 4층으로 운반했다.

헬리안

...역시 불안해.

페르시카

왜? 크루거 씨가 적들이 후퇴하는 낌새라며.

헬리안

만약 그게 함정이라면요?

페르시카

크루거 씨도 백전노장이잖아,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내린 결정이겠지.

그리고, 계속 도망치기만 해선 결국 기지 밑바닥에 갇혀 죽기를 기다리는 신세밖에 더 돼?

헬리안

저도 지원군의 구조가 오기를 바라기만 하는 건 너무 소극적이라 생각합니다만... 왠지 모르게 걱정됩니다.

페르시카

적어도 당장 눈앞의 상대는 이길 방법이 있잖아.

페르시카

내가 저놈들이었으면, 아예 기지의 출입구란 출입구는 모조리 틀어막고 안에다 물을 들이부었을 거야.

헬리안

......

쿠구궁――

격렬한 진동과 함께, 예비 엘레베이터의 전원이 끊어졌다.

헬리안

무슨 일이지?

헬리안이 태블릿으로 기지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확인하니, 지하 2층의 전력망이 끊어졌다고 표시됐다.

헬리안

적의 공작인가...

크루거 님, 무사하십니까?

통신 채널엔 노이즈뿐이었다.

페르시카

서버를 지켜라!

GSH18

모두 침착하세요!

콰아앙!!

계속되는 포성에 인형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아 파란 속을 떠도는 뗏목이 되었다.

헬리안

크루거 님...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통하는 복도. 크루거와 저지 팀은 퇴각하는 적을 맹추격하며 뒤처지는 낙오병들을 섬멸했다.

PPK

이놈들, 술래잡기 엄청 좋아하나 봐? 우리가 쫓아오니까 꽁무니 빠져라 도망가네.

MP443

분명 우리한테 겁먹은 거야!

크루거

...추격 중지, 제자리에서 대기하라.

크루거가 손짓으로 부대를 멈춰 세웠다.

톰슨

왜 그래, 빅 보스? 조금만 더 가면 지하 1층의 무기고를 탈환할 수 있어.

크루거

놈들은 우릴 유인하고 있다. 우리의 한계 사거리에 들어왔다 도망치기를 반복하고 있어.

WA2000

하지만 이렇게 우리랑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게 저놈들한테 무슨 의미인데요? 아까부터 계속 우리한테 얻어맞고만 있는데...

크루거

......

일단 물러난다.

그때, 불현듯 뭔가 떠오른 크루거의 표정이 급변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전원이 죽기 전의 마지막 단말마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불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크루거

제기랄, 엎드려! 야시장비 착용!

타타타탕——

콰앙——

맹렬한 포화가 순식간에 벽을 허물었다.

깜깜한 가운데 사방에서 총탄과 포격이 날아들어, 피아조차 구분할 수가 없었다.

바닥에 엎드린 인형들은 그저 어둠 속을 더듬으면서, 몰아치는 총탄과 화염의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야만 했다.

크루거

카터, 자넨 역시나...

톰슨

빅 보스, 이제 어떡하지?

크루거

야시장비 착용자는 퇴각을 엄호한다!

토카레프

예!

크루거

<color=#A9A9A9>헬리안, 부디 침착하게...</color>

콰아앙——!!

포탄 한 발이, 아주 가까이서 폭발했다.

크루거

크으윽...!

톰슨

빅 보스!

긴급 상황! 빅 보스가 폭발에 휘말렸다!

지하 3층, 멈춰 버린 예비 엘레베이터 앞.

톰슨

<color=#00CCFF>마담 헬리안, 지금 우린 지하 3층으로 퇴각 중이야. 빅 보스가 중상을 입었어...</color>

헬리안

뭐라고?!

톰슨

<color=#00CCFF>빅 보스가 기절한 상태라 지휘가 불가능해. 이젠 마담밖에 없어.</color>

톰슨

<color=#00CCFF>지금은 놈들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중이야. 마담, 더 늦기 전에 지휘권 인계받길 바라.</color>

헬리안

...알았다. 너희는 현재 경로를 유지하며 퇴각하도록.

톰슨

<color=#00CCFF>지금 이 상태로 복귀는 불가능해, 놈들이 바짝 따라잡았어.</color>

헬리안

......

페르시카

이런 상황에선 역시... 소대 하나를 "미끼"로 삼아야겠지.

쟤네가 이대로 돌아오면 서버까지 위험해져.

헬리안

저도 압니다... 하지만...

헬리안이 주저하던 사이, 떨리는 목소리가 채널에 끼어들었다.

토카레프

<color=#00CCFF>헬리안 씨! 제가 남아서 시간을 벌겠습니다!</color>

헬리안

토카레프...!

토카레프

<color=#00CCFF>웰로드가 목숨을 바쳐 저를 구해 줬어요... 저도... 저도 모두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요!</color>

헬리안

......

헬리안

알았다. 네게 권한을 부여했으니, 즉시 소대를 편성해 동료들의 퇴각을 도와라.

토카레프

<color=#00CCFF>알겠습니다!</color>

통신을 종료하자마자 헬리안은 벽에 기댄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등골을 타고 오한이 치솟았다.

또 한 번, 홀로 어둠 속에 갇힌 공포감이 들었다.

긴급 편성된 저지 소대가 방어선을 구축하는 사이, 나머지 인형들은 차례차례 퇴각했다.

토카레프는 엄폐물 뒤에서 적의 동향을 귀기울여 살폈다.

톰슨

교활한 놈들... 전력이 끊겨서 마담 헬리안도 서버를 옮길 수 없게 됐어.

토카레프

저희가 어떻게든 고쳐볼게요.

톰슨

나도 여기 남겠다.

PPK

톰슨, 우린 시간만 벌 수 있지 결국엔 당하고 말 거야.

너 없으면 크루거 씨랑 헬리안이랑 다른 애들이랑, 또 마인드맵 서버는 누가 지켜?

목숨 하나 바치면 되는 간단한 임무는 우리한테 맡기고 어서 가. 모두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잖아.

리베롤

맞아요...

토카레프

걱정 마세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틸게요.

톰슨

......

소대 하나 남겨서, 2차 방어선을 만들어 둘게. 도저히 못 버티겠으면 뒤로 빠져야 한다, 알았지?

톰슨은 토카레프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의식을 잃은 크루거를 업고 떠났다.

MP443

...설마 내가 너희랑 마지막을 함께할 줄이야.

토카레프

웰로드 씨 덕분에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리베롤

......

PPK

그럼 웰로드를 대신해 대장이 된 토카레프~? 우린 이제 어떡하면 될까?

토카레프

적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전원을 복구해야죠.

MP443

우리만으로?

토카레프

네, 우리만으로요.

어둠 속에서도 토카레프의 눈이 굳세게 빛났다.

PPK

정말 과감한 작전이네. 마음에 들어.

MP443

무리야... 우리의 화력으론...

토카레프

그러니 적과의 정면 충돌은 일절 피해야 해요.

놈들의 전술은, 집중 폭격으로 우리의 진형을 와해시킨 뒤 부대를 투입해 돌파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로선 그걸 버텨낼 방법이 없어요.

PPK

가루가 되는 데 1초도 안 걸리겠지.

토카레프

다만,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적 대다수의 장비는 기관단총에 수류탄 정도에, 권총이나 근접 무기가 없었어요.

MP443

그게 표준이잖아?

토카레프

그렇죠, 즉 놈들은 기관단총의 교전 사거리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의 전투에 대비하지 않았단 뜻이에요.

PPK

오호라... 알았다.

MP443

뭘 알아?

토카레프

좁은 통로를 이용해서, 지근거리에서 싸운다면 우리도 승산이 있다는 거예요.

권총을 장전하는 토카레프의 등에서, 야전삽이 은은히 빛을 발했다.

MP443

오오... 제법 그럴싸한데?

리베롤

근접전... 저도 할 수 있어요...!

PPK

작전 계획이 세워졌네.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야.

전원을 복구하러 갈 술래는 누가 할 거야?

시끌시끌하던 엄폐물 뒤의 작전 회의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토카레프

왜, 왜 다들 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