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
"지금 우리가 바로 적의 심장을 빠르게 찌를 칼이다."
.....
패러데우스의 어느 버려진 기지.
짧은 대화 후 통신기를 내려놓는 그레이는 안색이 어두웠다.
...그레이.
그레이가 통신을 마친 것을 확인한 틸이 조심조심 그녀 곁에 다가갔다.
몰리도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만신창이임에도 그 두 눈만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괜찮아.
스승님,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응급처치해서 많이 괜찮아졌어.
시내의 기지에서 그런 대접을 받을 줄은...
...실패자에겐 따질 자격이 없지.
...아버님께서 브라메드에게 그곳을 청소하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네메아란도 그녀에게 RPK-16을 감시하며 아베르누스로 복귀하라 했습니다.
하지만... 스승님과 저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그럼 우리도 복귀해야 하지 않을까?
......
그레이는 미간을 좁히며 잠시 고민했다.
지금 돌아가면 오명을 씻을 기회가 없어지고 말아.
그리고, "그자"가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안젤리아가 아직 우리 손에 있는데, "그자"가 과연 포기할까?
아버님이 눈독들이신 인물이니 우리가 참견할 권리는 없어.
...우리도 바로 복귀해야 해.
몰리도가 갑자기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스승님...?
우린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 그리고 아버님은 실수만큼 잘못도 싫어하셔.
지금 우린 뭐라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버림패처럼 버려지고 말 거야.
몰리도는 가볍게 말을 이었다.
...반드시, 내가 아버님과 직접 대면해야만 전환점이 생길 거야.
안 그럼 우리 모두 여기서 죽어.
...알겠습니다.
틸, 나 좀 부축해 줘.
...알았다.
몰리도는 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레이, 여기서 기다리기만 했다간 정말 버려진다고.
네메아란은 이미 돌아갔어.
"불꽃놀이"가 쏘아 올려진 것으로 그녀의 임무는 완수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같은 때에 복귀한 것은 지극히 정상 아닌가요?
틀렸어. 아베르누스에서 그녀한테 새로운 계획을 맡기려는 거야.
우리에게 최악의 상황은 일을 실패하는 게 아니야. 이대로 아버님의 핵심 계획에 들러리조차 되지 못하면, 우리는 완전히 가치를 상실하게 돼.
...알겠습니다.
내가 아베르누스에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 모두, 아버님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어.
내가 장담할게.
베를린, 공항에서 가까운 임시 세이프하우스.
지휘관이 아이네이아스 회의실에 접속했다.
...신분 인증 통과. 암호를 입력하십시오.
...암호 확인. 접속합니다.
아이네이아스 작전회의실에 접속하셨습니다.
목표의 동향에 변화는 없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지휘관님, 몰리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좋았어, 현재 상황 동기화하자.
네.
우산팀 2인, 현재 목표 감시 중.
유니콘팀 2인, 우산팀 보조 중~
질소팀 3인 보고, 현재 목표 지점으로 이동 중입니다.
철분 2인, 현재 제자리서 지시를 대기 중.
구역의 오프라인 지도, 패러데우스 관련 정보, 안전 연락 채널 전부 공유했습니다.
탄약 보급도 전원 출발 전에 마쳤습니다.
아이네이아스 작전 인원 총 12명 중 현재 9명이 집결했습니다.
목표가 이동을 시작했으니, 모두 집결할 때까지 기다리진 못하겠군. 후속 인원은 RO에게 전달하겠다.
전원, 이번 작전의 핵심을 숙지하도록.
"빠르고, 은밀하게". 지금 우리는 불시에 적의 심장을 찌를 비수다.
그리고, 행동 개시에 앞서 작전 목표를 재확인하겠다.
작전명 "아이네이아스"는 잠입 작전으로, 임무는 2개다.
하나, 안젤리아의 구출. 돌발 상황 발생 즉시 연락하도록.
둘, "죽음의 바다" 지역에 존재하는 적 거점과 병력 상황 파악.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댄들라이가 계속 이 회의실에 연결을 유지할 거다.
내가 필요할 경우 바로 지원하겠어.
다만, 난 이번에 전선에 나서지 않아. 알고 있지, RO?
네, 지휘관님.
이번 작전의 대장은 너야. 현장에서 네가 판단하고 결정해.
감사합니다, 그 신뢰에 부응하겠습니다.
그밖에 당부할 사항은 없으십니까?
그래. 저번에 말한 지원으로, 페르시카 씨가 "체스 마스터"를 보냈다.
너희가 찾아내는 지점들의 좌표를 전부 이곳으로 업로드하면, 그걸 바탕으로 체스 마스터가 목표 지점을 추측해낼 거야.
알겠습니다. 체스 마스터와도 속히 합류하겠습니다.
그래. 더 질문 있는 사람?
잠깐의 침묵 후, 지휘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건투를 빈다. 아이네이아스, 작전 개시.
인형들은 바로 통신 침묵 상태로 돌입했다.
UMP45가 통신기를 놓자마자 작은 소리가 들렸다. 지휘관이 비밀 채널로 연락한 것이었다.
또 뭘 시키려고 그러셔?
추가 비용 붙는 건 알지?
달라는 대로 줄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이번 임무는 각기 다른 출신의 인형들이 임시로 혼합 편성돼서 호흡을 맞추는 작전이야. RO의 실력이야 당연히 믿지만, 보좌할 사람이 필요해.
도와줄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물론 나랑 9이 안전한 선에서.
UMP45, 부탁해. 이번에 네 모든 걸 걸고 RO를 보조해 줘.
......
이번 임무는 전례 없는 위험도야. 너희 모두가 전력으로 임하더라도 목표를 전부 달성하리란 보장이 없어.
팀의 모두가 모든 걸 걸고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야 비로소 희망이 생길 거야.
하아... 지휘관은 진짜 메뉴판에 없는 서비스 주문하는 거 너무 좋아한다.
요구가 아니라 부탁이야.
내 체면 봐줄 필요 없어. 과한 부탁이라는 거 알아.
그래도 네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RO를 도와주길 부탁할게.
지휘관의 부탁이라...
UMP45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그러지 뭐♪
대신, 나중에 청구서 보고 딴소리하기 없기다~?
물론이지. 아무리 오래 걸려도 기다릴게.
평소대로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고, UMP45도 회의실에서 나갔다.
...꼭 살아 돌아와서 청구서를 보내야 한다, 45.
베를린 시외, 인적이 끊긴 레드존의 변두리.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아래서, RO635가 탐지기에 표시되는 좌표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RO... 나 심심해애... 아직도 움직이면 안 돼?
안 돼. 조금만 더 참아.
옆에서 함께 관측 중인 UMP45도 거들었다.
10분 전부터 목표는 거의 제자리걸음이야.
추적기가 제거됐을 가능성도 고려해보는 게 어때?
그래, 어쩌면 추적기를 떼어내서 로봇 개 같은 거에다 달아놨을지도 모르잖아.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 추적기는 목표가 의식이 없을 때 체내에 심어 둔 거니까요.
전신을 검사하지 않는 한, 그리 쉽게는 못 찾아내요.
지금 그들처럼 정밀 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선 더더욱.
맞아 맞아! 내가 직접 넣었다구!
네 인형들의 눈길이 탐지기의 화면에 모였지만, 목표의 위치를 나타내는 작은 점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목표와 거리를 더 좁히는 건?
...고려해볼게요.
목표의 궤적과 주위의 지형을 대조하면서, RO635가 머리를 굴리던 그때였다.
어어, RO! 목표가 갑자기 엄청 빨리 움직이는데?
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작은 점이 갑자기 레드존 깊숙이를 향해 고속으로 직진했다.
추적합니다.
알았어.
옷깃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네 인형들의 모습은 폐허 너머로 사라졌다.
베를린 시외, 레드존.
미행이 없음을 수 차례 확인한 뒤에야, 유령 같은 세 그림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방문자 하나 없었던 폐허에 모습을 드러냈다.
꼬리는 다 떼어냈어?
이럴 때 귀찮은 일 생기면 좋을 거 없어.
안심하십시오, 확신합니다.
그러니 잠깐 여기서 쉬는 게 어떻겠습니까, 스승님? 지금 스승님은 몸 상태가...
......
그레이가 몰리도를 부축하며 잠시 쉬려는 것을 본 틸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다 등을 돌렸다.
난 저쪽에서 경계하겠다.
우린 레드존 안으로 들어왔어요, 이제 아베르누스까지 얼마 안 걸립니다.
...난 괜찮으니까 빨리 움직이자.
늦게 가서 뭘 놓치지나 않을까 걱정이야.
하지만 부상이 아직...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내 몸이 살덩이라고 얕보지는 말아 줘, 그레이.
오히려, 이깟 상처보단 그 교활한 생쥐 자식들이 내가 의식이 없을 때 내 몸에다 무슨 짓을 했을지가 신경쓰여.
...저라면 최소한 나노 추적기라도 주입했을 겁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레드존에서는 어떠한 전자 설비도 정확성이 급감하고 맙니다.
그렇기를 바라야지...
아니면, 누가 불행해질지는 불 보듯 뻔하니...
몰리도는 입술에 침을 바르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가자. 꾸물거릴 시간 없어.
...예.
......
두 사람이 움직이자, 틸도 다시 조용히 그레이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 앞으로도 추적자를 따돌리는 것을 우선시하나?
그래. 여기까지 쫓아왔으리라 생각되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 더 우회해야겠어.
도중에 니토를 남겨 추적자의 발을 묶으면 우리가 아베르누스까지 갈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거야.
알았다.
길은 내가 살필 테니, 넌 스승님을 챙기렴.
그들의 모습은 다시 유령처럼 폐허 사이로 사라졌다.
베를린 시외, 레드존의 어딘가.
목표가 레드존으로 진입하자, 탐지기에 표기되는 신호원은 사방팔방으로 마구 튀었다.
그래서 RO635는 감에 의지해 목표를 뒤쫓았다. 여기까지 와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우이씨, 이거 우리 놀리는 거야 뭐야!
동감이야...
RO, 성급해서 아무 소용 없으니까 잠깐 멈춰서 분석해보자.
그러죠... 자꾸 먼길을 빙빙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RO635가 걸음을 멈추고, UMP45와 함께 탐지기의 계기판 위에서 춤추는 신호원이 흩뿌리는 데이터를 분석했다.
레드존의 신호 교란 되게 짜증나네... 조금만 떨어지면 너희 신호까지 구분 못하게 되는 거 아니야?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이따 철분이랑 합류하려다 오인 사격이라도 나면 큰일인데!
걱정 마세요, 암구호도 미리 정했으니까요.
역시 RO야!
우리도 주위에 뭐 단서가 될 만한 거 없나 찾아보자!
오케이!
다만 UMP9는 UMP45의 눈치를 보았고, 너무 멀리 가진 말라는 눈빛을 받은 뒤에야 움직였다.
그리고, 자리에는 RO635와 UMP45만 남게 되었다.
45 씨? 지금 표기되는 궤적들을 다시 분석해봤지만 데이터에는 오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신호가 자꾸 끊겨서 일부가 기록되지 않았을 뿐인 것 같아요.
응, 연산하면 기록이 누락된 부분을 추측할 수도 있겠네.
그럼 이제 어떡할래? 철분이랑 합류하길 기다릴까, 아님 계속 추적할까?
잠시만요.
철분, 여기는 우산. 약속 지점 도착까지 얼마나 더 걸리지?
철분 수신. 10분 내로 도착한다.
10분은 무슨, 바로 저기 있구만!
RO의 뒤통수가 보인다구우~ 달려라 달려!
뭐...? 하지만 너희의 신호는 전혀 감지가 안 되는데?
아니, 다 왔다니까 글쎄!
아키텍트의 목소리는 그대로 끊어졌다.
...이상하네.
신호 교란 탓일까요? 지금 주위를 몇 번이나 스캔 중인데 아무것도 안 잡혀요.
나도야.
9, 혹시 철분 녀석들 보여?
아니. 지금 왔대?
......
앗, 저기 보인다!
그 말을 들은 RO635와 UMP45는 SOP2가 서 있는 언덕에 올랐다.
SOP2의 말대로, 언덕 아래의 안개 속에서 하얀 머리의 실루엣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레드존의 어딘가.
아키텍트는 게이저를 끌고 저 앞의 안개 너머로 보이는 검은 머리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RO~ 철분 도착했어~!
여기 신호 진짜 구리더라 야, 내비게이션 때문에 자꾸 엉뚱한 데로 갔다니까!
――아키텍트!
그런데, 게이저가 황급히 아키텍트를 잡아 세웠다.
뭔데?
......
게이저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안개 속의 실루엣을 노려봤다.
...다시 잘 봐라, 저게 누군지.
응?
아키텍트는 한쪽 눈을 치켜뜨며 그 실루엣을 다시 확인했다.
레드존의 자욱한 안개는 마치 원혼처럼 꿈틀대며 계속해서 그 모습이 변화했다.
그래서, 아키텍트의 눈에는 그 짙은 안개 너머로 상대의 검은 단발만 보일 뿐이었다.
......단발?
흐엑...?!
아직 우릴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우회하자.
응...
RO635, 여기는 철분. 적과 조우했다.
두 인형들이 급히 통신하며 우회할 길을 찾는 모습 뒤로, 안개 속에서 한참을 요지부동이던 흑발의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은 음산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베를린 시외의 레드존 어딘가.
거리가 좁혀지면서, 백발의 실루엣이 뚜렷해졌다.
어딜 가도 역겨운 벌레가 꼬이는구나.
목표 확인! 그레이다!
그토록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 주마.
그레이――!!!
드디어 적과 맞닥뜨리자, SOP2는 바로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반면 RO635는 아주 침착하게 지휘를 개시했다.
45 씨와 9 씨는 원거리 지원 사격.
저는 SOP2와 함께 근거리에서 견제합니다.
라저!
네 수법 이제 다 알아아아!!!
SOP2가 사납게 포효하며 달려드는데도 그레이가 살짝 고개를 돌려 뒤에다 무어라 말하는 것을, RO635는 놓치지 않았다.
저 뒤에 그녀의 동료가 있음이 분명했고, 몰리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SOP2, 신중하게 행동해. 언제라도 이탈할 수 있도록.
걱정 마셔!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 그레이는 좌우 양쪽으로 달려드는 인형들을 보며,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무장을 전개했다.
...가소롭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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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데우스의 어느 버려진 기지.
짧은 대화 후 통신기를 내려놓는 그레이는 안색이 어두웠다.
...그레이.
그레이가 통신을 마친 것을 확인한 틸이 조심조심 그녀 곁에 다가갔다.
몰리도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만신창이임에도 그 두 눈만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괜찮아.
스승님,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응급처치해서 많이 괜찮아졌어.
시내의 기지에서 그런 대접을 받을 줄은...
...실패자에겐 따질 자격이 없지.
...아버님께서 브라메드에게 그곳을 청소하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네메아란도 그녀에게 RPK-16을 감시하며 아베르누스로 복귀하라 했습니다.
하지만... 스승님과 저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그럼 우리도 복귀해야 하지 않을까?
......
그레이는 미간을 좁히며 잠시 고민했다.
지금 돌아가면 오명을 씻을 기회가 없어지고 말아.
그리고, "그자"가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안젤리아가 아직 우리 손에 있는데, "그자"가 과연 포기할까?
아버님이 눈독들이신 인물이니 우리가 참견할 권리는 없어.
...우리도 바로 복귀해야 해.
몰리도가 갑자기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스승님...?
우린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 그리고 아버님은 실수만큼 잘못도 싫어하셔.
지금 우린 뭐라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버림패처럼 버려지고 말 거야.
몰리도는 가볍게 말을 이었다.
...반드시, 내가 아버님과 직접 대면해야만 전환점이 생길 거야.
안 그럼 우리 모두 여기서 죽어.
...알겠습니다.
틸, 나 좀 부축해 줘.
...알았다.
몰리도는 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레이, 여기서 기다리기만 했다간 정말 버려진다고.
네메아란은 이미 돌아갔어.
"불꽃놀이"가 쏘아 올려진 것으로 그녀의 임무는 완수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같은 때에 복귀한 것은 지극히 정상 아닌가요?
틀렸어. 아베르누스에서 그녀한테 새로운 계획을 맡기려는 거야.
우리에게 최악의 상황은 일을 실패하는 게 아니야. 이대로 아버님의 핵심 계획에 들러리조차 되지 못하면, 우리는 완전히 가치를 상실하게 돼.
...알겠습니다.
내가 아베르누스에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 모두, 아버님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어.
내가 장담할게.
베를린, 공항에서 가까운 임시 세이프하우스.
지휘관이 아이네이아스 회의실에 접속했다.
...신분 인증 통과. 암호를 입력하십시오.
...암호 확인. 접속합니다.
아이네이아스 작전회의실에 접속하셨습니다.
목표의 동향에 변화는 없나?
<color=#00CCFF>마침 잘 오셨습니다 지휘관님, 몰리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color>
좋았어, 현재 상황 동기화하자.
<color=#00CCFF>네.</color>
<color=#00CCFF>우산팀 2인, 현재 목표 감시 중.</color>
<color=#00CCFF>유니콘팀 2인, 우산팀 보조 중~</color>
<color=#00CCFF>질소팀 3인 보고, 현재 목표 지점으로 이동 중입니다.</color>
<color=#00CCFF>철분 2인, 현재 제자리서 지시를 대기 중.</color>
<color=#00CCFF>구역의 오프라인 지도, 패러데우스 관련 정보, 안전 연락 채널 전부 공유했습니다.</color>
<color=#00CCFF>탄약 보급도 전원 출발 전에 마쳤습니다.</color>
<color=#00CCFF>아이네이아스 작전 인원 총 12명 중 현재 9명이 집결했습니다.</color>
목표가 이동을 시작했으니, 모두 집결할 때까지 기다리진 못하겠군. 후속 인원은 RO에게 전달하겠다.
전원, 이번 작전의 핵심을 숙지하도록.
"빠르고, 은밀하게". 지금 우리는 불시에 적의 심장을 찌를 비수다.
그리고, 행동 개시에 앞서 작전 목표를 재확인하겠다.
작전명 "아이네이아스"는 잠입 작전으로, 임무는 2개다.
하나, 안젤리아의 구출. 돌발 상황 발생 즉시 연락하도록.
둘, "죽음의 바다" 지역에 존재하는 적 거점과 병력 상황 파악.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댄들라이가 계속 이 회의실에 연결을 유지할 거다.
내가 필요할 경우 바로 지원하겠어.
다만, 난 이번에 전선에 나서지 않아. 알고 있지, RO?
<color=#00CCFF>네, 지휘관님.</color>
이번 작전의 대장은 너야. 현장에서 네가 판단하고 결정해.
<color=#00CCFF>감사합니다, 그 신뢰에 부응하겠습니다.</color>
<color=#00CCFF>그밖에 당부할 사항은 없으십니까?</color>
그래. 저번에 말한 지원으로, 페르시카 씨가 "체스 마스터"를 보냈다.
너희가 찾아내는 지점들의 좌표를 전부 이곳으로 업로드하면, 그걸 바탕으로 체스 마스터가 목표 지점을 추측해낼 거야.
<color=#00CCFF>알겠습니다. 체스 마스터와도 속히 합류하겠습니다.</color>
그래. 더 질문 있는 사람?
잠깐의 침묵 후, 지휘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건투를 빈다. 아이네이아스, 작전 개시.
인형들은 바로 통신 침묵 상태로 돌입했다.
UMP45가 통신기를 놓자마자 작은 소리가 들렸다. 지휘관이 비밀 채널로 연락한 것이었다.
또 뭘 시키려고 그러셔?
추가 비용 붙는 건 알지?
<color=#00CCFF>달라는 대로 줄 테니 걱정 안 해도 돼.</color>
<color=#00CCFF>이번 임무는 각기 다른 출신의 인형들이 임시로 혼합 편성돼서 호흡을 맞추는 작전이야. RO의 실력이야 당연히 믿지만, 보좌할 사람이 필요해.</color>
도와줄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물론 나랑 9이 안전한 선에서.
<color=#00CCFF>UMP45, 부탁해. 이번에 네 모든 걸 걸고 RO를 보조해 줘.</color>
......
<color=#00CCFF>이번 임무는 전례 없는 위험도야. 너희 모두가 전력으로 임하더라도 목표를 전부 달성하리란 보장이 없어.</color>
<color=#00CCFF>팀의 모두가 모든 걸 걸고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야 비로소 희망이 생길 거야.</color>
하아... 지휘관은 진짜 메뉴판에 없는 서비스 주문하는 거 너무 좋아한다.
<color=#00CCFF>요구가 아니라 부탁이야.</color>
<color=#00CCFF>내 체면 봐줄 필요 없어. 과한 부탁이라는 거 알아.</color>
<color=#00CCFF>그래도 네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RO를 도와주길 부탁할게.</color>
지휘관의 부탁이라...
UMP45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그러지 뭐♪
대신, 나중에 청구서 보고 딴소리하기 없기다~?
<color=#00CCFF>물론이지. 아무리 오래 걸려도 기다릴게.</color>
평소대로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고, UMP45도 회의실에서 나갔다.
<color=#00CCFF>...꼭 살아 돌아와서 청구서를 보내야 한다, 45.</color>
베를린 시외, 인적이 끊긴 레드존의 변두리.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아래서, RO635가 탐지기에 표시되는 좌표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RO... 나 심심해애... 아직도 움직이면 안 돼?
안 돼. 조금만 더 참아.
옆에서 함께 관측 중인 UMP45도 거들었다.
10분 전부터 목표는 거의 제자리걸음이야.
추적기가 제거됐을 가능성도 고려해보는 게 어때?
그래, 어쩌면 추적기를 떼어내서 로봇 개 같은 거에다 달아놨을지도 모르잖아.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 추적기는 목표가 의식이 없을 때 체내에 심어 둔 거니까요.
전신을 검사하지 않는 한, 그리 쉽게는 못 찾아내요.
지금 그들처럼 정밀 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선 더더욱.
맞아 맞아! 내가 직접 넣었다구!
네 인형들의 눈길이 탐지기의 화면에 모였지만, 목표의 위치를 나타내는 작은 점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목표와 거리를 더 좁히는 건?
...고려해볼게요.
목표의 궤적과 주위의 지형을 대조하면서, RO635가 머리를 굴리던 그때였다.
어어, RO! 목표가 갑자기 엄청 빨리 움직이는데?
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작은 점이 갑자기 레드존 깊숙이를 향해 고속으로 직진했다.
추적합니다.
알았어.
옷깃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네 인형들의 모습은 폐허 너머로 사라졌다.
베를린 시외, 레드존.
미행이 없음을 수 차례 확인한 뒤에야, 유령 같은 세 그림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방문자 하나 없었던 폐허에 모습을 드러냈다.
꼬리는 다 떼어냈어?
이럴 때 귀찮은 일 생기면 좋을 거 없어.
안심하십시오, 확신합니다.
그러니 잠깐 여기서 쉬는 게 어떻겠습니까, 스승님? 지금 스승님은 몸 상태가...
......
그레이가 몰리도를 부축하며 잠시 쉬려는 것을 본 틸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다 등을 돌렸다.
난 저쪽에서 경계하겠다.
우린 레드존 안으로 들어왔어요, 이제 아베르누스까지 얼마 안 걸립니다.
...난 괜찮으니까 빨리 움직이자.
늦게 가서 뭘 놓치지나 않을까 걱정이야.
하지만 부상이 아직...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내 몸이 살덩이라고 얕보지는 말아 줘, 그레이.
오히려, 이깟 상처보단 그 교활한 생쥐 자식들이 내가 의식이 없을 때 내 몸에다 무슨 짓을 했을지가 신경쓰여.
...저라면 최소한 나노 추적기라도 주입했을 겁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레드존에서는 어떠한 전자 설비도 정확성이 급감하고 맙니다.
그렇기를 바라야지...
아니면, 누가 불행해질지는 불 보듯 뻔하니...
몰리도는 입술에 침을 바르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가자. 꾸물거릴 시간 없어.
...예.
......
두 사람이 움직이자, 틸도 다시 조용히 그레이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 앞으로도 추적자를 따돌리는 것을 우선시하나?
그래. 여기까지 쫓아왔으리라 생각되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 더 우회해야겠어.
도중에 니토를 남겨 추적자의 발을 묶으면 우리가 아베르누스까지 갈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거야.
알았다.
길은 내가 살필 테니, 넌 스승님을 챙기렴.
그들의 모습은 다시 유령처럼 폐허 사이로 사라졌다.
베를린 시외, 레드존의 어딘가.
목표가 레드존으로 진입하자, 탐지기에 표기되는 신호원은 사방팔방으로 마구 튀었다.
그래서 RO635는 감에 의지해 목표를 뒤쫓았다. 여기까지 와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우이씨, 이거 우리 놀리는 거야 뭐야!
동감이야...
RO, 성급해서 아무 소용 없으니까 잠깐 멈춰서 분석해보자.
그러죠... 자꾸 먼길을 빙빙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RO635가 걸음을 멈추고, UMP45와 함께 탐지기의 계기판 위에서 춤추는 신호원이 흩뿌리는 데이터를 분석했다.
레드존의 신호 교란 되게 짜증나네... 조금만 떨어지면 너희 신호까지 구분 못하게 되는 거 아니야?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이따 철분이랑 합류하려다 오인 사격이라도 나면 큰일인데!
걱정 마세요, 암구호도 미리 정했으니까요.
역시 RO야!
우리도 주위에 뭐 단서가 될 만한 거 없나 찾아보자!
오케이!
다만 UMP9는 UMP45의 눈치를 보았고, 너무 멀리 가진 말라는 눈빛을 받은 뒤에야 움직였다.
그리고, 자리에는 RO635와 UMP45만 남게 되었다.
45 씨? 지금 표기되는 궤적들을 다시 분석해봤지만 데이터에는 오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신호가 자꾸 끊겨서 일부가 기록되지 않았을 뿐인 것 같아요.
응, 연산하면 기록이 누락된 부분을 추측할 수도 있겠네.
그럼 이제 어떡할래? 철분이랑 합류하길 기다릴까, 아님 계속 추적할까?
잠시만요.
철분, 여기는 우산. 약속 지점 도착까지 얼마나 더 걸리지?
<color=#00CCFF>철분 수신. 10분 내로 도착한다.</color>
<color=#00CCFF>10분은 무슨, 바로 저기 있구만!</color>
<color=#00CCFF>RO의 뒤통수가 보인다구우~ 달려라 달려!</color>
뭐...? 하지만 너희의 신호는 전혀 감지가 안 되는데?
<color=#00CCFF>아니, 다 왔다니까 글쎄!</color>
아키텍트의 목소리는 그대로 끊어졌다.
...이상하네.
신호 교란 탓일까요? 지금 주위를 몇 번이나 스캔 중인데 아무것도 안 잡혀요.
나도야.
9, 혹시 철분 녀석들 보여?
아니. 지금 왔대?
......
앗, 저기 보인다!
그 말을 들은 RO635와 UMP45는 SOP2가 서 있는 언덕에 올랐다.
SOP2의 말대로, 언덕 아래의 안개 속에서 하얀 머리의 실루엣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레드존의 어딘가.
아키텍트는 게이저를 끌고 저 앞의 안개 너머로 보이는 검은 머리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size=50>RO~ 철분 도착했어~!</size>
여기 신호 진짜 구리더라 야, 내비게이션 때문에 자꾸 엉뚱한 데로 갔다니까!
――아키텍트!
그런데, 게이저가 황급히 아키텍트를 잡아 세웠다.
뭔데?
......
게이저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안개 속의 실루엣을 노려봤다.
...다시 잘 봐라, 저게 누군지.
응?
아키텍트는 한쪽 눈을 치켜뜨며 그 실루엣을 다시 확인했다.
레드존의 자욱한 안개는 마치 원혼처럼 꿈틀대며 계속해서 그 모습이 변화했다.
그래서, 아키텍트의 눈에는 그 짙은 안개 너머로 상대의 검은 단발만 보일 뿐이었다.
......단발?
<size=25>흐엑...?!</size>
<size=25>아직 우릴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우회하자.</size>
<size=25>응...</size>
<size=25>RO635, 여기는 철분. 적과 조우했다.</size>
두 인형들이 급히 통신하며 우회할 길을 찾는 모습 뒤로, 안개 속에서 한참을 요지부동이던 흑발의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은 음산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베를린 시외의 레드존 어딘가.
거리가 좁혀지면서, 백발의 실루엣이 뚜렷해졌다.
어딜 가도 역겨운 벌레가 꼬이는구나.
목표 확인! 그레이다!
그토록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 주마.
<size=50>그레이――!!!</size>
드디어 적과 맞닥뜨리자, SOP2는 바로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반면 RO635는 아주 침착하게 지휘를 개시했다.
45 씨와 9 씨는 원거리 지원 사격.
저는 SOP2와 함께 근거리에서 견제합니다.
라저!
네 수법 이제 다 알아아아!!!
SOP2가 사납게 포효하며 달려드는데도 그레이가 살짝 고개를 돌려 뒤에다 무어라 말하는 것을, RO635는 놓치지 않았다.
저 뒤에 그녀의 동료가 있음이 분명했고, 몰리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SOP2, 신중하게 행동해. 언제라도 이탈할 수 있도록.
걱정 마셔!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 그레이는 좌우 양쪽으로 달려드는 인형들을 보며,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무장을 전개했다.
...가소롭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