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정점
EP.13.8 · 고정점

핏빛 달II

"이 세상 수많은 재회는 감동으로 가득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는 법."

-51-3-10

1 / 133
전체 대사 보기 (125줄)

빗발치는 총탄, 중화기의 폭발, 근거리 기습... 틸은 단신으로 온갖 공격에 능숙하게 대항했다.

손에 쥔 검은 마치 몸의 일부인 듯, 유연하게 대기를 가르며 공격과 방어를 행했다. 그야말로 경지에 이른 검술이었다.

하지만, 장도 하나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총성에 뒤이어 날아든 포격이 지근거리에서 틸을 덮쳤다.

자갈과 모래가 사방으로 튀며 세상이 뒤집어졌고, 틸은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마치 호수 깊숙이 빠진 듯, 찢어지는 굉음은 희미하게 들리고 시야에는 검은 얼룩이 꼈다.

......?!

틸은 이를 아랑곳않으면서 다시 칼을 잡고 일어나려 했지만, 어째선지 칼이 잡히질 않았다.

이상해하며 고개를 돌려 본 뒤에야, 칼을 쥐던 손이 없어진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망설일 틈은 없었다. 틸은 곧장 다른 손으로 칼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레이...

오래된 전구처럼 점멸하는 시야에, 그녀를 향해 점점 다가오는 흐릿한 형체들이 들어왔다.

맹렬한 총성은 미약한 바람 소리 같았고, 다리에는 족쇄가 채워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일어나 검을 단단하게 고쳐 쥐었다.

다시...

다시 보자 약속했어...

아베르누스에서, 반드시...

칼날에 비치는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게 번뜩였다.

블랙존의 다른 위치.

질소와 철분 팀의 이동 경로를 따라, 나머지 작전팀도 "죽음의 바다"로 진입했다.

모나가 제공한 정보 덕분에, 팀원들은 "죽음의 바다"의 상식에서 벗어난 특성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 계획대로 목표의 추적을 개시했다.

RO635

질소, 철분, 우리도 "죽음의 바다"로 진입했습니다.

모나

<color=#00CCFF>질소 수신. 현재 우리는 틸과 교전 중입니다만 몰리도와 그레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하겠습니다.</color>

회의실을 거치지 않아도, RO635는 저멀리서 치열한 전투로 인한 소음을 들었다.

RO635

틸이... 알겠습니다.

M4 SOPMOD II

RO, 이쪽엔 아무 흔적도 없는데 어떻게 쫓지?

UMP45

몰리도의 추적기 신호도 유효 범위를 진작에 이탈했어.

RO635

지금 질소와 철분 팀이 틸과 교전 중이야. 분명 시간을 끌기 위해 일부러 나타난 거겠지...

아무래도 목표를 뒤쫓을 단서를 또 놓쳐버린 거 같은데...

또 다시 단서가 끊기자, RO635는 고민에 빠졌다.

XM8

대장, 아까 내가 오라고 했던 버려진 초소 기억하지?

RO635

응, 패러데우스의 흔적이 상당히 많았어.

XM8

내가 너희 기다리면서 좀 조사했거든?

보니까, 그 초소에 남은 데이터베이스 찌꺼기에 통신 채널의 흔적이 있더라고. 분명 다른 데에도 초소가 있는 게 분명해.

RO635

초소를 여럿 지었다면, 분명 제일 중요한 건물을 중심으로 배치했을 거야... 다른 초소들은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는 없을까?

XM8

무슨 초소든 정기적으로 본부에 연락해야 하는 법인데, 신호를 송수신하는 설비도 있겠지.

UMP45

그럼 초소가 발송하는 신호를 포착할 수만 있다면...

RO635

은밀성을 유지하면서 목표 지점까지 접근할 수 있겠다.

45 씨, 신호 탐지 가능한가요?

UMP45

지금 하는 중이야.

UMP45와 UMP9은 곧장 초소의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XM8도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다른 초소들의 위치를 추측해 보았다.

하지만 차원이 다른 붕괴 복사 농도로 각종 장치들이 작동에 심각한 영향을 받는 통에, RO635는 도저히 잠시도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RO635

으... 붕괴 복사 농도가 높아도 너무 높아...

UMP45

덕분에 우리만이 아니라 적에게도 걸림돌이지. 놈들이 쓸 수 있는 설비는 엄청 제한적일 거야.

그때, UMP45의 손 옆의 설비에서 소리가 났다.

RO635

찾아냈나요?

UMP9

대충 방향만.

너무 멀어선지 복사의 영향 때문인지, 신호가 아주 약해.

RO635

일단 그쪽을 수색해보죠.

M4 SOPMOD II

주변 지형 대충 정찰했으니까 내가 앞장설게!

녹색 안개는 시야를 가리고, 바닥의 울퉁불퉁하고 이질적인 지형은 자꾸만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 했다.

게다가 블랙존으로 진입한 이후로 지면의 진흙마저 단단한 돌덩이가 되어버려, 걸음에 부담을 가중했다.

복잡한 지형과 붕괴 입자의 방해로 인해 인형들의 행군은 레드존에서보다도 더뎌졌다.

UMP9

왜 이러지...? 한참을 걸은 거 같은데 얼마 못 움직였네!?

M4 SOPMOD II

뭐어? 우리 계속 일직선으로 엄청 오래 걷지 않았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추리하던 XM8이, 갑자기 고개를 홱 들었다.

XM8

이 체스 마스터의 직감상, 우리 거의 다 왔어.

UMP45

맞아, 한참 멀리 있었으면 애초에 신호도 안 잡혔을 거야.

UMP9

그럼 대체 어디 있지...

RO635

......

쿠르릉...

그때 들려온 부자연스러운 소음에, 인형들은 잽싸게 여기저기의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조심스레 너머를 엿보았다.

RO635

<color=#00CCFF>단거리 통신 채널 오픈.</color>

M4 SOPMOD II

<color=#00CCFF>엑, 도청당하지 않을까?</color>

UMP45

<color=#00CCFF>괜찮아, 지금 RO가 전개한 통신 채널은 가청 범위가 엄청 좁아서 놈들한텐 닿지도 않아.</color>

UMP9

<color=#00CCFF>방금 그거 무슨 소리야? 엄청 무거운 게 땅을 막 뭉개면서 가는 소리 같았는데...</color>

XM8

<color=#00CCFF>전조등이다!</color>

어두운 좁은 길 위에 두 등불이 어둠을 뚫었다.

RO635

<color=#00CCFF>패러데우스의 수송 차량... 우리가 제대로 짚었어.</color>

M4 SOPMOD II

<color=#00CCFF>가서 저거 뺏을까? 그럼 안 걸어다녀도 되는데.</color>

RO635

<color=#00CCFF>안 돼. 지금 적에게 발각되면 큰일나.</color>

잡아먹을 듯 주시하는 다섯 명의 시선을 받는지도 모르는 그 등불은, 천천히 "죽음의 바다"을 나가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XM8

<color=#00CCFF>대장, 저쪽!</color>

XM8이 흥분해 떨리는 손가락으로 수송 차량을 발견했던 곳을 가리켰다.

어둠과 안개 너머로 흐릿하게, 시꺼먼 암석 위에 우뚝 선 회색 건물이 보인 것이었다.

XM8

<color=#00CCFF>...아마 초소일 거야.</color>

RO635

<color=#00CCFF>찾았다...!</color>

RO635도 흥분되는 마음을 다잡으며 침착하게 답했다.

UMP9

<color=#00CCFF>정말이다...</color>

M4 SOPMOD II

<color=#00CCFF>이제 어떡해?</color>

RO635

<color=#00CCFF>계획대로 해야지. 최대한 적의 주의를 끌지 않고 은밀하게 저 초소를 점령해야 해.</color>

<color=#00CCFF>SOP2, 같이 선봉을 맡자. 45 씨와 9 씨는 우리 뒤를 맡아 주세요.</color>

<color=#00CCFF>XM8은 후방 경계. 증원이 올지도 모르니 적의 동향을 살피도록 해.</color>

소대 일동

<color=#00CCFF>라저!</color>

단순히 밤하늘 때문만이 아닌 어둠에 몸을 숨기고, 5명의 인형들은 초소로 접근했다.

콰아앙!!

아키텍트와 게이저의 지원 포격에 이미 제압됐던 패러데우스는 바로 진형이 무너져 버렸고, 모나와 라이노의 팀워크에 픽픽 쓰러져 나갔다.

<size=50>...크윽!</size>

그리고 울퉁불퉁한 지형에 불리한 틸은 아키텍트의 무차별 포격 세례 때문에 속도가 더욱 크게 떨어졌다.

이동 범위가 제한되자, 안개도 더는 그녀를 숨겨 주지 못했다.

9호

지금이다!

그리고 틸이 빈틈을 보인 순간, 계속 주시하던 9호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향해 탄창의 탄환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

피하기엔 너무 늦어, 틸은 칼을 들어 날아드는 총탄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보인 것이 그녀를 절망에 빠뜨렸다.

아키텍트

야호~

에이전트한테 들었는데, 너 이런 거에 좋아 죽는다며?

......!!

아주 찰나의 망설임 때문에, 아키텍트가 발사한 로켓에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콰앙!!!

모나

라이노!

라이노

OK!

라이노가 모나와 함께 바로 달려들어, 힘을 합쳐 틸을 제압하고 다른 한 팔도 무력화했다.

결착이 나자, 9호는 경계는 풀지 않으면서 무기를 내렸다.

게이저와 한껏 우쭐해진 아키텍트도 무기를 등에 메고 모나 일행과 다시 합류했다.

......

절망해서일까, 아님 다른 이유에서일까. 라이노에겐 틸의 금빛 눈동자가 마치 녹슬어버린 도금판처럼 빛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다만 틸은 의연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사명을 다했다.

네놈들이 내게서 얻을 것은 없어.

라이노

...이런 정신 나간 녀석.

라이노는 혀를 차며 총을 들었다.

라이노

죽기 직전인데도 입은 살았구나.

아키텍트

엥, 여기서 죽이려고? 안 잡아가?

게이저

먼저 사지부터 자른다 하지 않았던가?

아키텍트

오, 그건 내가 또 전문이지!

라이노

뭐? 잠깐, 설마 네 무기로 할 셈은――

모나

<size=50>――모두 회피하세요!</size>

라이노

――?!!

일행이 틸의 처분을 놓고 논의하던 그때, 가장 먼저 낌새를 느낀 모나가 소리쳤다.

쉬이익――

거의 동시에, 예리한 칼날들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인형들 주변의 암석들을 토막냈다.

그리고 뒤이어...

<size=50>콰아아앙!!</size>

부유하는 칼날들이 뿜어낸 포격에, 토막난 암석 조각들은 폭발하여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파편으로 변해 사방으로 튀었다.

9호

엎드려!

<size=50>쾅!!!</size>

<size=50>콰앙!!!!</size>

<size=50>콰아앙!!!!!</size>

???

<size=50>캬하하하하핫!!</size>

<size=50>어디야? 어딨어! 감히 우리 언니 쫓아다닌 버러지들!!</size>

???

<size=50>잘도 여기까지 따라온 쓰레기들 어딨냐고!!!</size>

하늘에서 광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익숙한 목소리에, 틸은 눈을 부릅뜨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 목소리...

나르시스...!

그리고 하얀 그림자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콰앙!!

조종사를 잃은 하얀 비행기는 목 잘린 파리처럼 추락해, 자갈 더미에 꽂히며 굉음과 강렬한 폭발, 불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착지한 왜소한 소녀는, 어째선지 주위의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르시스

어라? 왜 너만... 어... 그러니까... 너 이름이 뭐였더라?

아 몰라, 그레이의 똘마니. 우리 언니 어딨어?

그레이가... 데려갔다...

나르시스

<size=50>뭐어라고오오!?</size>

<size=50>제기랄! 그 자식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잘도――</size>

......

나르시스

...잠깐, 그럼 너 혼자 남아서 저것들이랑 싸운 거야?

저딴 쓰레기들 상대로 그 꼴이라고? 진짜 약해 빠졌네 이 폐급 녀석...

9호

뭐야 저건 또... 지금 우리 무시하는――

모나

9호!

부웅!

나르시스가 눈길도 돌리지 않고 부유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모나가 9호를 밀쳐낸 그 자리의 바위가, 말끔한 절단면을 따라 바닥으로 미끄러져 박살났다.

나르시스

쓰레기가... 누가 나 말하는 중에 입 열래!?

나르시스...

나르시스

폐급도 닥쳐.

뭐, 그래도 널 구했으니 언니가 칭찬해 주겠지?

이 쓰레기들 처리하면 언니가 더 칭찬해 줄 테고...

칭찬이 두 배... 헤헤, 아주 좋아...

나르시스

그러니까, 너네 다 얌전히 <size=50>죽어!!!</size>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