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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 고정점

옛비 II

"지금, 그녀는 그 낡은 양옥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양팔이 멀쩡하고, 손에 쥔 총도 탄환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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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르누스, 하층 구역.

콰직.

통로의 길모퉁이에서, 스트렐치 한 기가 바닥에 엎어져 기어서라도 도망치려 했지만, 묵직한 발이 그의 머리를 밟아 으깨버렸다.

???

......

지금 밟은 것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다는 듯, 통로 안에 우뚝 선 태산은 고개를 들어, 시뻘건 눈동자로 나선 계단을 올라, 굳게 닫힌 입구를 뚫고 저 높은 곳을 바라봤다.

그녀 뒤로는 온통 폭발흔과 탄흔, 그리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지고 부러지고 터진 패러데우스 병사들의 살덩이였다.

이 층의 패러데우스 병력은, 한 기도 빠짐없이 섬멸되었다.

???

......그레이.

철탑 같은 그녀의 눈에는 어떤 장애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목표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발을 내딛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탑의 내벽에 몸을 붙이고 나선 계단을 타고 올랐다.

그 문 앞까지 도착한 그녀는, 말없이 그 묵직한 문을 밀어 열었다.

끼기긱...

???

......

그 순간, 시야가 넓어졌다.

탁 트인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온 그녀는, 여전히 주저 없이 발을 내디뎠다.

썰렁하고, 빛마저 희미한 공간에서, 그녀의 발소리가 무한히 휘감겨 오르는 탑 안에서 메아리쳤다.

위이잉... 철컥.

몇 발자국 안 가, 그녀가 열고 들어온 문이 기계음을 내며 천천히 닫히고 조롱하듯 굳게 잠기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녀가 걸음을 멈춘 것은 문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글거리는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레이

역시 너였구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넓다란 발판 위에, 회색의 두 인물만이 서 서로를 마주봤다.

그레이는 입꼬리를 올려, 제 발로 우리 안에 들어온 짐승을 비웃었다.

그레이

가여운 것... 또 혼자냐, AK-15?

AK-15

......

AK-15는 대꾸하지 않고, 앞머리로 가려진 눈으로 주위를 훑어봤다.

그레이

걱정 마라, 브라메드라면 네 동료를 접대하러 갔으니.

지금 여기엔 너와 나뿐이다.

AK-15

후우...

AK-15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안도가 아니라 아쉬움의 한숨이었다.

지금, 그녀는 그 낡은 양옥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양팔이 멀쩡하고, 손에 쥔 총도 탄환이 가득했다.

아무리 둔감한 자라도 AK-15가 내뿜는 투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레이

또 한 번 놀아 줘야겠니?

그레이의 조소 어린 미소와 말에도, AK-15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레이

...잡담할 기분이 아닌가 보구나.

그래, 나도 이해한다.

칠흑 같은 그림자에 가려졌던 그레이의 기계 꼬리가, 서늘하게 번뜩이며 소리를 내었다. 그 날카로운 칼끝은 AK-15의 허리를 노리며 도발하듯 꿈틀거렸다.

이에 AK-15도 무게 중심을 낮추고 골반을 틀어, 곧장 튀어오를 용수철처럼 몸을 수그렸다.

쉬익——!

퍼엉!

아이네이아스 작전 상황.

제1단계 - 진도 100%.

제2단계 - 진도 100%.

제3단계 - 진도 40%.

제4단계 - 진도 20%.

제5단계 - 진도 0%.

아베르누스의 강당.

네메아란

새로운 침입자...?

애슐리

예, 지금 그레이 언니가 대치 중입니다.

네메아란

......

네메아란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뒤돌아, 조각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메아란

위치 파악이 안 되고, 신분도 확인 못하는 벌레가 들어왔다?

네메아란

...흥.

불쾌함이 담긴 콧방귀 소리.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님에도, 애슐리는 움찔했다.

네메아란

수색 범위를 주변 초소까지 넓히렴.

애슐리

예...!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애슐리는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애슐리

......

...네메아란 언니?

그런데, 주변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당혹스러워, 애슐리는 불안감에 떨면서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애슐리

......?

강당은 텅 비었고,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애슐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심판의 다리".

콰아앙――

저 아래의 토대 위 플랫폼에서 폭발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와중, 비행기 두 대가 꼬리를 물고 매우 아슬아슬한 각도로 35층에 위치한 교량 위로 낙하해 착륙했다.

앞의 비행기에서 한 명, 뒤의 것에서 두 명. 총 3명의 인형들이 교량에 착지했고, 비행기 자체를 엄폐물 삼아 총을 견착하고 서로 다른 방향을 경계했다.

9호

<color=#00CCFF>9호 진입. 서쪽 시야 넓음, 보이는 적대 유닛 없음.</color>

라이노

<color=#00CCFF>2호 진입. 동쪽에 닫힌 문 하나, 보이는 적대 유닛 없음.</color>

모나

<color=#00CCFF>1호 진입.</color>

모나

우산, 여기는 질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

RO635

<color=#00CCFF>우산 수신.</color>

<color=#00CCFF>"울프팩"이 현재 그레이와 교전 중이나, 현장에서 브라메드의 종적을 놓쳤습니다.</color>

<color=#00CCFF>전자전에 주의하십시오, 이상.</color>

모나

질소 수신.

알겠습니다, 브라메드와 조우하는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준비 후 움직이겠습니다, 이상.

RO635

<color=#00CCFF>현재 정보에 따라 제가 추측한 것이 맞다면... 그녀는 지금 아마 서탑으로 이동 중일 겁니다.</color>

<color=#00CCFF>그렇지 않고서는 동탑의 입구를 지키는 그레이만 놔두고 갈 이유가 없어요.</color>

<color=#00CCFF>부디 주의하세요.</color>

모나

알겠습니다.

삐익.

모나

<color=#00CCFF>9호, 동쪽 문을 확인하세요.</color>

<color=#00CCFF>시야가 필요합니다.</color>

9호

<color=#00CCFF>알았어.</color>

9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총을 등에 멘 다음 내시경을 꺼냈다.

9호

<color=#00CCFF>너머의 시야를 확인.</color>

<color=#00CCFF>좌측 근방 양... 아니, 좌 45도 방향에 장애물 포착.</color>

<color=#00CCFF>정면 시야 넓음, 닫힌 문 하나 확인.</color>

9호

<color=#00CCFF>우측 근방 양호. 우 45도에 벽면.</color>

<color=#00CCFF>적 유닛 없음, 함정 없음.</color>

9호

<color=#00CCFF>도어 브리칭 후 좌측으로 전진하자.</color>

모나

<color=#00CCFF>수신. 2호를 선두로 좌측으로 진입. 제가 문을 열고 함정 유무를 확인합니다.</color>

<color=#00CCFF>9호는 문을 닫아 후방을 봉쇄합니다.</color>

9호

<color=#00CCFF>수신.</color>

라이노

<color=#00CCFF>수신.</color>

모나도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조심 문을 열고 틈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모나

<color=#00CCFF>9호, 문 뒤에 함정이 관측됩니까?</color>

9호

<color=#00CCFF>함정 없음.</color>

모나

<color=#00CCFF>양호. 브리칭 준비, 3... 2...</color>

라이노

<color=#00CCFF>잠깐!</color>

모나

<color=#00CCFF>......!</color>

세 인형들의 뒤, 즉 서쪽 멀리서 돌연 경쾌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모나

......!!

척!

인형들은 동시에 무기를 들었다.

???

......

그 발소리의 주인공은 다리의 끝자락에서 멈춰, 냉혹한 시선으로 엄폐물 하나 없는 교량 위에 노출된 세 인형들을 바라봤다.

자신을 향하는 총구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마치, 그 총구가 자신이 아닌 남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RO635

<color=#00CCFF>질소 팀? 무슨 일입니까?</color>

모나

우산에게 보고... 합류 중단. 플랜 C로 변경합니다.

네메아란

셋 다 있구나... 아주 좋아...

세 인형들을 바라보며, 네메아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