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II
"우린 이보다 더한 지옥도 겪여 봤어, 그에 비해 너희들은 결국엔 넘어서게 될 장애물이지."
배신자와 배신자라. 정말 기묘한 광경이네요.
날 너하고 똑같은 취급하지 마.
탕!
난 너와 달라.
정말 그런가요? 어디가요, M16A1?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 궁금하네요.
당신은 다른 일로 여기에 오지 않았나요? 안젤리아는 어떻게 되든 관심도 없었고.
그런데 지금은 선심 쓰는 척, RO635를 돕고 있네요.
단순한 변덕인가요, 아니면 속죄인가요?
닥쳐.
콰앙!!
일렁이는 포스실드 덕분에, RPK-16은 태연하게 말을 계속했다.
배신자가 용서를 구한다니, 정말 흥미롭네요.
하지만 제 눈에 당신은 처음 다짐했던 각오를 저버린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페르시카 씨의 작품은 겨우 그 정도인가요?
닥치라 했다.
콰앙!!
M16A1의 공격이 더욱 매서워졌다.
......
대체 뭘 어떡할 셈인가요, M16?
보여 주세요.
상대가 몸을 숨긴 엄폐물을 주시하면서, RPK-16은 여유롭게 총을 M16A1이 택할 만한 퇴로를 향해 겨눴다.
데구르르...
......!
하지만 몸을 던지는 M16A1 대신, 수류탄 하나가 엄폐물 밖으로 굴러 나왔다.
기폭과 함께 사방으로 뿜어지는 연기.
연막탄이었다.
타타타탕!!!
——!
연막탄 너머에서 발사된 총알이, RPK-16이 아닌 연막탄이 터진 뒤편의 압축 가스통에 구멍을 뚫었다.
...아이쿠.
RPK-16의 미소가 쓴웃음으로 바뀌었다. 연막탄에 시선을 빼앗겨, 무엇을 놓쳤는지를 깨달은 것이었다.
콰아아앙!!!
총알이 튀긴 불똥에, 인화성 가스가 점화했다.
그리고 그 폭발로 인한 충격파를 발판 삼아, 노련한 인형이 단숨에 불길을 뜷고 달려들었다.
——!
RPk-16은 곧장 총구를 들어 방아쇠를 당겼지만...
따앙!
이미 이를 예측한 M16A1이 물건을 던진 뒤였다.
상대를 저지하려던 RPK-16의 총알은 그 투척물에 맞아 무력화되었다.
구멍난 투척물은 새하얀 가루를 토해냈고, 순식간에 좁은 방 전체에 퍼졌다.
......
퍽!
퍼억!!
아야야...
잡았다.
주먹 한 방으로 RPK-16을 벽으로 몰은 M16A1은 상대가 대응하기 전에 그녀의 왼쪽 어깨를 탈골시켰다.
쿠웅!
흐트러지고 힘이 풀려 손에 들린 기관총도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 특유의 미소는 여전한 RPK-16은 코앞까지 다가온 M16A1을 마주봤다.
뭘 원하세요, M16?
여기는 패러데우스의 본거지예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갈 수는 없어요.
그거야 내 사정이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M16A1은 RPK-16의 가는 목을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는 비수를 들어 언제든지 그녀의 머리를 잘라낼 태세를 취했다.
그런 그들의 뒤로, 폭발로 인한 불길이 둘의 모습을 비췄다.
문 열어.
안 돼요.
......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이 녀석 때문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협박해 봤자란 직감도 들었다.
머리를 빠르게 굴린 M16A1은 1초도 안 되어 판단을 내렸고, 그대로 비수를 쥔 손에 힘을 주어 찍어내렸다.
좀 더 이야기할 생각은 없나요?
......!!
하지만 그 순간, M16A1의 팔이 단단한 무언가에 붙잡혔다.
뭐야?!
비수를 쥔 손도 점점 RPK-16에게서 멀어졌다.
실험실 바닥과 천장에서 뻗어 나온 전선들이, 그녀의 몸을 꽁꽁 묶은 것이었다.
말했잖아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를 거라고.
......
포스실드는 일부러 접근하게 만들 미끼였다.
자아...
페르시카 씨의 작품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볼까요?
후우...
엄폐물 뒤에 웅크린 XM8은 벽에 몸을 기댔다.
그녀는 지금 만신창이였다. 온몸에 각종 날붙이와 스친 총탄으로 인한 상처가 가득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퀸즈 갬빗"이라 할 수 있겠지...
진짜, 이렇게 아슬아슬한 대국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녀가 등을 기댄 벽 너머로는, 바닥에 잔뜩 쌓인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넘는 무수한 패러데우스 병사들이 신중하게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RO...
XM8은 고개를 들어, 시꺼먼 하늘을 바라봤다.
꼭 체크메이트 찍어야 해...
아베르누스, 토대 위의 플랫폼.
엉망진창이 된 플랫폼은 하얀 병사와 니토들의 토막난 사지가 곳곳에 즐비했고, 원래 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이 싸움터에 마지막 세 명의 생존자가 여전히 대치하고 있었다.
헉... 헉...
아키텍트는 불타는 비행기 뒤에 숨어 힘겹게 무기를 재장전했다.
게이저, 우리 적어도 20분은 버티지 않았어?
이제 슬슬 철수해도 되지 않을까?
이 정도면 내가 94년 내내 자랑하고 다닐 만한 전적——
찾았——다!!!
아 씨――
콰아앙!!
아주 잠시 한눈판 것으로 치명적인 재난이 들이닥쳤다.
끼야악!!!
콰아앙!!
퍼엉!!
지면이 비행기와 함께 통째로 뒤집혔고, 충격파로 그녀도 그대로 공중에 띄워졌다.
쿵!
놓친 무기가 빙그르르 돌며 멀리 미끄러졌지만, 바닥에 철푸덕 떨어진 아키텍트는 무기를 챙길 새도 없이 곧장 앞으로 몸을 굴렸다.
콰아앙!!!
뒤따르는 두 번째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 약골만 보지 말고 번갈아 가며 상대하지 그러냐!
아, 안 돼 게이저!
——넌 재미 없으니까 꺼져 이 버러지야!
아키텍트가 위기에 처하자, 게이저가 빛의 칼날을 전개한 보우건으로 가속해 나르시스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이미 대비해고 있던 나르시스의 손짓에, 날카로운 부유검이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쉬익――
쿠웅!
아키텍트가 몸을 날려 게이저를 밀쳐내, 간발의 차로 피할 수 이었다.
부유검은 그저 스쳤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게이저의 팔을 망가뜨렸다.
캬하하하하하!!
도망쳐! 도망쳐! 계속 도망쳐 보라고!!!
크윽...
힘을 잃은 팔은 보우건을 놓치고 말았다.
게이저는 발을 몇 번 헛디디다 간신히 고개를 돌리니, 나르시스의 광기 어린 시선과...
그녀를 겨누고 다시 광선포를 충전하는 부유검이 보였다.
피해!!
콰아앙!!
——!?
아, 아키텍트...!
......야 이 XXX들아...
니들 다 내 다리랑 원수진 거 있냐!!!
——!!
자신의 몸 위로 엎어진 아키텍트의 모습에, 게이저는 눈을 부릅 떴다.
그녀의 정강이가 폭발에 휘말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박살나 버렸다.
제기랄!!
게이저는 일말의 주저 없이 벌떡 일어나, 아키텍트를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쳤다.
퇴각한다, 아키텍트!
우린 할 만큼 했어!
......
아키텍트?
내 무기 가져와.
...뭘 어쩔 셈이냐.
게이저의 어깨 위에 매달린 아키텍트는, 입술을 핥으며 게이저가 낚아채 준 로켓 발사기를 다시 들고 나르시스를 향해 조준했다.
우리 기사님, 아직 안 까먹었지?
우리가 맡은 작전의 제3단계... 아직 안 끝났어.
계속해봤자 죽을 뿐이다.
RO가 믿으랬잖아!
그리고 SOP2 그 녀석이랑 돌아가면 다리 뜯어버린다 내기했거든!?
콰앙!!!
아키텍트의 포격이, 나르시스 옆에 노출된 기름통을 터뜨렸다. 폭발과 함게 시꺼먼 연기가 치솟았고, 상대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게이저는 다시 속력을 높였다.
겨우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계속 있으려면 잘 보여야겠지?
......
그러니까 넌 달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빨리 달려. 쏘는 건 나한테 맡기고 그냥 달려!
잘만 하면 5분은 더 버틸 수 있어!!
너 진짜...
게이저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꼭 이럴 때만 그딴 고집을 피우냔 말이다――!!
한쪽만 남은 팔로 아키텍트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 게이저는 엄폐물을 향해 내달렸다.
어딜 가!!
죽어!! 빨리 죽으라고!!
콰앙!!
"심판의 다리".
아이네이아스 작전, 제5단계...
으아아아악!!!
라이노!!
모나! 움직이면 안 돼!
파지직...
......!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지기 직전인 라이노에 달려가려 했지만, 모나의 왼쪽 빰 가까이서 스파크가 터졌다.
큭...!
사방이 놈의 초소형 전자 유닛이야, 지금 우린 오븐 속 통닭이나 다름없어!
......
여전히 활공 중인 네메아란은 얼음장 같은 시선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겉보기엔 교착 상태였지만, 실상은 천천히 이뤄지는 처형이었다.
모, 모나아... 나... 나 더는 안 되겠어...
교란 때문에... 마인드맵이 찢어질 거 같아...
이를 악무는 라이노의 손에 들린 신호 증폭기가 조금씩 으스러졌다.
......
우산한테 연락 좀 해봐!
얼마나 더 버텨야 해?! 이제 퇴각해도 되는 거야!?
우산! 여기는 질소, 응답 바란다!
치지직...
......
...모나?
안 돼요... 아직도 연락이 안 돼요...
신호 교란이 너무 강해서...
......
모나는 이미 벼랑 너머로 떠밀린 심정이었다.
작전의 제2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일환으로서, UMP45는 작전팀 전체의 통신 네트워크 유지를 담당했다.
만약 그쪽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분전하던 팀들이 모두 고립된다는 뜻이었다.
우산도 그렇고, 다른 팀도 소식이 없으니...
비록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9호의 의사는 명확했다.
정말 퇴각해야 할까? 여기까지 왔는데?
......
모나는 깊게 심호흡하고, 총을 고쳐쥐었다.
...라이노를 데리고 서탑으로 돌진하세요.
저 여자는 제가 막겠습니다.
모나...?!
라이노가 경악으로 눈이 동그래졌다.
저는 우산 팀을 믿어요.
모나는 차분하게 동료들의 말을 끊었다.
저는 그녀를 믿겠어요. RO635는 신뢰하기 마땅한 대장입니다.
그러니 저는 여기 남겠습니다. 임무를 끝까지 관철하겠어요.
작전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물러서지 않을 셈이었다.
......
그 말에, 고민하던 9호는 총을 가슴 앞에 걸고 라이노를 업었다.
9, 9호?
...가자.
......
동료들을 보내고, 모나는 고개를 들어 차가운 네메아란의 시선에 맞섰다.
그녀는 이보다 더한 지옥도 경험했다.
이 따위, 무엇이 대수랴.
RO 씨...
당신에게,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슈웅――
수 톤에 달하는 트럭이 번쩍 들어올려져, 그레이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촤악!
하얀 섬광이 번뜩이자, 수송 차량은 가로로 두 동강나 관성과 중력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레이는 꼬리를 바로 움츠려 방패로 삼아, 쏟아지는 총탄을 모조리 튕겨냈다.
...수치가 이전과 너무나도 차이 나.
경이롭구나... 그 정도 규격의 소체에, 더욱 강화할 여지가 있었다니.
설계자를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야.
1 대 1의 싸움. 허나 절대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이 싸움을 즐기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저, 브라메드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저 새로운 침입자를 신중하게 상대하려는 의도였다.
더군다나...
네가 혼자 왔을 리가 없어.
판도라가 말했던 "동료 없이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녀석"은 어디 갔지?
설마 집에다 두고 오진 않았을 텐데.
......
쉭!
......
광택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먼지구름을 뚫고 그레이에게 날아들자, 그레이는 반사적으로 꼬리의 예리한 칼날로 그 작은 물체를 동강냈다.
그것은...
...정말 질리지도 않고 쓰는구나.
두 동강났는데도 여전히 폭발하려는 수류탄을, 그레이가 꼬리로 돌려 쳐냈다.
AK-15가 엄폐물로 삼은 컨테이너는 폭발에 휘말려 불이 붙었다. 그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내부서부터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콰아앙!!!
......
그레이는 자조하듯 미소를 지었다. 설마 자신을 두고 간 브라메드에게 섭섭함을 느끼다니...
자신이 언제 이렇게 나약해진 것일까?
슈욱!
지칠 줄 모르는 맹수처럼, AK-15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치솟는 매연과 불길을 뚫고 달려들었다.
또 그 뻔한 수작.
...닥쳐.
진한 살기를 내뿜는 시뻘건 눈동자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레이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계속되던 조롱이 드디어 AK-15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
그레이는 조금 전의 빈말이 아니라, 그제서야 정말 아주 조금 경이로움을 느꼈다.
똑같이 전조 없는 돌격인데도, AK-15의 속도는 지난번보다 월등히 빨라졌다.
그게 네 자신감이라, 이건가...
가소로워.
날렵한 꼬리는 유연하게 꿈틀하며 AK-15가 돌진해 오는 방향을 향해 선을 그었다.
몸도 움직이지 않고, "지난번"처럼 꼬리 끝을 AK-15에게 향했다.
속도가 빠를 수록, 앞의 장애물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AK-15는 지난번처럼 알아서 부딪힐 것이고, 이번에는 그 어떤 잔수작에도 걸려들지 않을 것이다.
그때 저 시뻘건 눈동자가 완전히 빛을 잃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
——!
꼬리 끝에 닿기 직전, AK-15가 발을 굴렀다.
아주 약간, 몸을 틀은 것이었다.
몸을 틀은 AK-15의 가슴 장갑판이, 그레이의 꼬리 칼날을 스치며 불똥을 튀겼다.
이 모든 일이 0.5초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졌다.
단순히 순간 출력과 힘만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AK-15의 장갑판은 그녀의 기동력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눈동자는 분노로 이글거렸고, 그레이의 목을 노리는 칼끝은 차가웠다.
그녀가 이 순간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물러.
그레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쉬익――
......!
맹렬하게 돌진하던 태산은, 그레이와 충돌하기 직전 백덤블링으로 수 m가량 물러났다.
덜그럭.
어깨끈이 절단된 총이 바닥에 떨어져 소리를 냈다.
그레이는 높이 든 손에서 뻗어 나온 칼날을 굽히며,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눈빛으로 AK-15를 노려봤다.
......
AK-15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가슴 부위 장갑판에 새겨진 흠집은, 한 발짝만 더 깊었어도 그녀의 소체가 잘렸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발전했구나.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
......
AK-15에게 그런 도발은 간지럽지도 않았지만, 의외로 무어라 입술을 우물거렸다.
흠...? 지금 뭐라 했지?
...터진다고.
AK-15는 눈에서 이글거리던 분노를 거두고, 나지막이 읊조리며 시선을 그레이의 얼굴에서 꼬리로 향했다.
......!?
이를 눈치챈 그레이도 황급히 시선을 자신의 꼬리로 향했다.
길고 뾰족한 금속제 쇠말뚝이, 그녀의 꼬리 장갑 틈새에 박혀 소름 끼치는 타이머음을 내다... 멈췄다.
퍼어어엉!!!
크윽...!
'말도 안 돼.'
'전부 노림 수였다고?'
눈이 커진 그레이는 폭발로 인한 충격을 고스란히 견디면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AK-15가 다시 땅을 박차고 날아오는 것을 늦지 않게 포착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휘두른 손의 칼날은 허공을 갈랐다.
——!
AK-15는 다시 접근하려던 것이 아니라, 그저 앞구르기로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주운 것이었다.
그리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움직임으로 다른 엄폐물 뒤에 쪼그려 앉아, 자세를 잡더니...
타타타탕!!!
크헉...!
고폭철갑탄이 그녀의 가장 예리한 칼날을 앗아갔다.
날렵하던 꼬리는 알맹이가 빠진 듯 날아드는 총탄을 간신히 막아내는 수준으로 움직임이 둔해졌다.
날아드는 총탄은 리듬감 있게 꼬리에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내었고, 만신창이가 된 그레이는 점점 계단 끝자락까지 내몰렸다.
......
돌연 총성이 멈췄다. 탄창 하나를 비운 AK-15가 총을 놓고, 팔에 부착된 대검을 뽑아 손에서 휘릭 돌리며 잡았다.
......
이 기세로 숨통을 끊을 셈이었다.
이젠 정말 인정해야겠구나... 신소련 최강의 인형이라 불려도 손색 없어.
여유를 잃은 그레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하지만 여긴 아베르누스란다.
타타타타타탕!!!
...?!
자세를 취한 AK-15가 포탄처럼 돌진하려던 그 순간,
소나기 같은 총알 세례가 그녀의 머리 위로 빗발쳤다.
이에 AK-15는 곧장 몸을 다른 방향으로 던져, 구석의 엄폐물로 숨었다.
죽여라.
엘레베이터에서 우르르 몰려 나온 패러데우스의 병사들이 산개해, 나선 계단을 촘촘히 에워쌌다.
그리고 그들의 시꺼먼 총구가, 콜로세움 같은 원형 바닥의 유일한 목표를 향해 아낌없이 총알을 퍼부었다.
누가 자신의 본거지에서 아무 대비 없이 침입자를 혼자 상대하겠는가.
그레이는 그런 바보가 아니었다.
그래도... 의미가 없지는 않았네.
그녀가 AK-15와 격투를 벌인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AK-15의 상태는 네메아란마저 모르는 것이었다.
......!!
갑자기 경보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직 병사들이 다 나오지 못한 엘레베이터의 붉은 램프가 빛나더니, 그대로 문이 닫혀 일부 병사들이 안에 갇혀 버렸다.
나머지 병사들의 공격도 그 순간 멈칫했고, AK-15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총을 다시 들었다.
큰일이다.
쯧...
AK-15는 이 돌발 상황이 전혀 놀랍지 않은 눈치였다.
그레이는... 비록 놀라긴 했지만, 아주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이를 기회로 이용했다.
비켜!
그레이는 방해되는 병사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다급하게 계단을 올랐다.
삐이.
통신 연결.
네메아란 언니.
...무슨 일이니?
난 지금 바쁘단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타타탕!!
뒤에서 들려오는 총성은 장애물을 거침없이 돌파하는 탱크의 엔진음 같았고, 그레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더욱 걸음을 서둘렀다.
이 문도 막혔다...'
굳게 닫힌 엘레베이터를 짜증스럽게 흘겨보면서, 그레이는 계속 위로 올랐다.
놈들의 상세한 정보를 줬잖니...
그런데도 상대를 못한다고?
제발, 더는 날 네 무능함으로 놀래키지 말려무나.
상황이 네메아란 언니의 예상과 다릅니다.
"벌침"도 가끔은 닿지 않는 곳이 있기 마련이죠.
그레이는 전투로 얻은 데이터를 모조리 전송했다.
AK-15는 예전과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전술 레벨도, 소체의 강도도, 업그레이드를 거쳐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유적 기술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단 겁니다.
분명 언니의 자료에는 없는 내용이겠죠?
저 광견이 이 정도인데, 지금 여기 어딘가에 숨어있을 놈의 동료는 어떻겠습니까?
그 녀석이야말로 진짜 지휘자일 수도 있습니다. 녀석은 우리 시스템을 해킹할 능력까지 갖췄습니다.
...놈들을 사로잡으면, 아버님도 분명 흥미로워하실 것입니다.
...그렇군.
그레이가 보낸 데이터를 확인한 네메아란은 다소 감탄하는 듯한 투였다.
확실히, 이건 뜻밖의 수확이구나.
언니도 이해하셨다면――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바쁜 건 사실이란다.
지원을 보내 줄 수는 있다만...
"있다만"이라뇨... 저한테 맡기세요, 네메아란... 언, 니.
......?!
이... 이렇게 빨리!?
이것도 예상밖인걸...
벌써 끝났니?
네... 아주 성공적으로요.
그렇다면... 그레이, 30층의 엘레베이터 출입구로 가렴.
새로이 다시 태어난 이 아가씨가 너를 마중할 거다.
알겠습니다.
안심하고 기다리렴, 그레이.
금방 갈게.
삐이.
통신 종료.
......
뜻밖의 소식에 그레이가 말을 잃은 것도 잠시, 그녀의 가슴에서 환희가 샘솟았다.
하지만 그 격양된 감정이 입밖으로 흘러나오기 전에, 저 뒤에서 고함이 날아왔다.
——거기 서라!!
예상대로, 하얀 병사들만으론 AK-15를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걸 어떡하나...
이번에도 결국 나의 승리란다.
점점 거리가 벌어지자, 그레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꿰뚫리고, 부러지고, 찢어지고, 박살나는 끔찍한 소리.
하지만 총과 대검으로 숨통이 끊어져도 똑같이 생긴 병사들 서너 명이 다시 길을 막았다.
분노로 울부짖는 그 모습은 환희에 찬 그레이도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지만,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거리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후우...
마침내, 그레이가 30층의 엘레베이터 문 앞에 도착했다.
AK-15는 학살당하는 졸병들의 방해 때문에, 여전히 23층 즈음의 계단 위였다.
그녀가 지금 그레이의 털끝 하나 건드릴 방법은 없었다.
다시는 만나는 일 없을 거다.
엘레베이터가 경쾌한 알림음을 냈다.
고장이 발생한 층은 29층까지였고, 이런 오류쯤 몇 분만에 원상복귀된다.
그럴 때쯤이면, AK-15도, 어딘가 숨어있을 그녀의 동료도 그저 밀물 같은 군세에 휩쓸릴 터였다.
그레이는 환희로 입이 귓가에 걸리다 못해 찢어질 기세였다.
드디어,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
엘레베이터의 문 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본 순간, 그레이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
타앙――!
날아든 한 발의 탄환은, 자비 없이 그녀의 미간을 꿰뚫었다.
......
이럴 리가 없었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AK-15의 동료였다.
헉... 커헉...
그레이는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완전히 힘이 풀린 몸은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대로 뒤로 넘어가 위태롭게 몸이 난간에 걸쳐진 그레이의 눈에, 끝이 보이지 않는 나선 계단에 휘감긴 탑의 천장이 들어왔다.
그야말로, 나는 새마저 집어삼키는 지옥의 호수 같은 경관이었다.
그...레이...?!
————
흐려진 그레이의 시야가 그 순간 맑아졌다.
저 위에, 나선 계단의 저 위에,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틸이 있었다. 기능이 회복된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나온 그녀는 지금 눈에 들어온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티...일......
그레이!
하지만 맑아졌던 그레이의 시야는 다시 회색빛으로 흐려졌다.
......
타앙!
안 돼!!
——!
검을 쥔 틸이 단숨에 발판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 번째 탄환이 그레이의 가슴을 관통했다.
타앙!
타앙!
타앙!
그레이의 눈이, 마침내 빛을 잃었다.
그녀의 몸은 난간에 추욱 늘어졌고, 귀에도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틸이 계단을 박차고 달리는 그 순간,
그레이의 몸뚱이는 돌풍에 떠밀려 난간 아래로 추락했다.
한 쌍의 금빛 눈동자가 심연으로 떨어지는 그레이를 향해 다가왔다.
추락하는 그레이를 쫓아, 나선 계단을 타고 정신없이 아래로 달리는 틸이었다.
그녀의 눈에,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미련이라도 있는 듯 허공으로 뻗어진 손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레이이이!!!
틸은 가슴이 찢어지듯 소리지르며 손을 뻗었다.
그레이도 이에 회답하듯, 손을 틸에게 뻗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말 그렇더라도, 둘은 손을 뻗는다고 닿는 거리가 아니었다.
괜찮아...
추락하며 광풍에 휩싸여 두려웠지만, 그레이는 애써 웃어보였다. 틸에게 전혀 안 보일지라도.
아버님이, 날 되살려 주실 거야...
안 돼애애애애!!!
자신을 위로하는 것일까, 남겨질 틸을 다독이는 것일까. 그레이는 갈수록 멀어지는 천장을 향해 입을 뻐끔이며 아버지를 불렀다.
――쿠웅!
묵직한 충돌음을 끝으로, 그레이는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아베르누스, 서탑.
자신을 뒤로 끌어당기는 힘을 느끼면서, M16A1은 RPK-16을 노려봤다.
제법 괜찮은 수군.
그녀는 담담하게 평가를 내렸다.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응?
삐빅.
RPK-16의 표정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경보음에 이끌려 내려다본 그녀의 옆구리에는, 작은 점착 폭탄이 붉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퍼엉!!
그것이 폭발하는 동시에, M16A1을 포박하던 것들이 맥없이 늘어졌다.
몸의 자유를 되찾은 M16A1은 망설이지 않고 RPK-16의 얼굴에 다시 한번 주먹을 꽂았다.
커헉...
하지만 RPK-16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과연... 과연 대단하네요, M16...
비장의 수가 있으리라곤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자비한 걸 줄은 몰랐네요...
너...?
다시 대검을 든 M16A1의 손이, 또 다시 멈췄다.
......너였냐.
그만 가세요.
당신이 찾는 것은 이쪽에 없어요.
......
M16A1은 손을 떨구고, 옆의 굳게 닫힌 차단문을 흘겨봤다.
그런 거 같네.
케헥... 콜록콜록...
잘 해 봐라.
바닥에 주저앉아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RPK-16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던진 M16A1은, 자신의 단말기를 확인하곤 자신히 왔던 방향 그대로 돌아갔다.
한편, 그런 M16A1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입 안의 피를 음미하던 RPK-16은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저기요... 새 상사님 맞죠...? 당신이 찾던 거, 발견했어요... 교전 기록도 지금 전달했답니다...
...흠, 이걸로 충분해. 잘했다.
놓친 벌레는... 이제 두 마리 남았나.
삑.
통신 종료.
......
RPK-16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제 개조가 끝날 때까지만요...
우리 사이의 인력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답니다... M16...
축하해.
네가 맞았어.
확실해?
동탑 내부, 다음 방으로 돌입하려고 조심조심 벽에 기대어 나아가던 RO635와 SOP2는 M16A1의 통신을 받았다.
그래, 틀림없어. 안젤리아는 동탑에 있어.
내 임무는 이걸로 끝이야. ...잘 해봐.
...응.
RO...
그녀를 바라보는 SOP2는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너도 들었지?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있어.
...응!
지금 그들이 숨어든 동탑도, 수상할 정도로 경비가 빈약했다.
우산 팀은 탑에 진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전조차 벌이지 않았다.
그들의 가장 큰 불안 요소는 바로 과연 그들이 찾는 것이 여기 있기나 한지를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지금 그 통신으로 확답을 얻었다.
이에 RO635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뜬 감정을 억누르며 회의실 채널을 켰다.
여기는 우산. 유니콘, 응답 바란다.
...유니콘 수신.
안젤리아의 위치를 특정했습니다.
모든 팀에게 철수 준비하라 전달하세요.
......
흥분을 억누르는 RO635와 달리, 통신 너머의 UMP45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 점을 눈치챈 RO635의 기분도 빠르게 식었다.
...유니콘?
...아무도 지금 철수할 여유가 없어.
앞으로 너희에게 벌어 줄 수 있는 시간은 약 5분... 아니, 3분도 안 돼.
그러니까... 실망시키지 마.
삑.
통신 종료.
......
어... 45? 왜 그래? 거기 무슨 일 있어?
여보세요? 야 철혈...이 아니라 철분, 아직 거기 있지?
...체스 마스터? 질소 팀?
시끌벅적했던 아이네이아스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RO...
...나도 알아.
모두...
상황을 파악한 SOP2도 통신기를 쥔 손을 떨궜다.
RO635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절망감을 1초도 안 되어 털어내고,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서두르자, SOP2.
하지만...
이대로 포기해선 안 돼.
SOP2는 할 말이 있었지만, RO635의 비장하고 단호한 표정을 보곤 하려단 말을 꿀꺽 삼켰다.
...응, 가자! 모두의 희생을 헛되이 하면 안 되지!
그래, 우리가――
치직... 치지직...
――?!
누구냐!
강렬한 전자 교란이 그들을 덮쳤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다.
덤벼, 한꺼번에 다 덤비라고!
나 혼자 남더라도... 끝까지 버틸 테니까!
크윽... 뭘 깨작깨작대! 한꺼번에 덤비라니까!!!
엑, XM8?! 너야?!
어두워진 복도 저 끝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비통함과 분노로 SOP2가 손이 부들부들 떨었다.
진정해.
응...
언니... 난 괜찮아... 내 마인드맵은...
그러니까... 크윽... 크아아아악!!
9!!! 이 자식들, 다 죽었어!!!
어, 45랑 9...? 안 돼...!
이 망할 자식아! 당장 튀어나오지 못해!?
......
동료들의 비명이 RO635와 SOP2의 마인드맵을 갈기갈기 찢는 듯했다.
후후후... 겨우 이 정도도 못 참니?
경멸 여린 웃음소리와 함께, 요염한 자태의 여인이 저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절망도 함께 나타났다. 브라메드의 뒤로, 수많은 하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네가... 모두를...!
......
크흠크흠, 여기는 브라메드~
나머지 벌레 두 마리 찾았습니다.
...대충 이러면 되지?
일부러 뜸을 드리며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하던 브라메드가, 대뜸 짐짓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어? 다 죽어버렸다고~?
어머나 이를 어쩌나~ 모두 함께 임무를 마치고 살아서 돌아가자 약속했다며~!
너 가만 안 둬어어!!!
SOP2, 진정해. 방금 그거 다 저 년이 만들어낸 환각이야. 우릴 정신적으로 몰아붙이려는 거라고.
SOP2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 직전에, RO635는 자신의 분노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SOP2를 말렸다.
어머, 그래? 모두 끔찍하게 당했다고?
우리 애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총알이고 포탄이고 마구 쏴대서...
그랬구나아... 불쌍하기도 하지. 마인드맵 코어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에...
닥쳐. 언제까지 연기하려고 그래?
으응? 그게 무슨 소리니~ 난 지금 진짜로 네 동료들이랑 통화 중인데.
뭐 임마!?
악의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브라메드는 자신의 통신을 크게 틀었다.
...RO, 우리다.
...암구호.
강철매 통합.
진짜잖아?! 괜찮아? 지금 어떻게 됐어?!
야...! 우리 약속 지켰다? 끝까지 버텼어!
너희들...
꼭 해내라고 임마!
아키텍트!!
SOP2 너 꼭 기억해! 돌아가면 네 다리 스무 번은――
콰앙――
격렬한 포성에 뒤이은 노이즈가, 아키텍트의 고함을 집어삼켰다.
백 번이라도... 뜯게 해줄 테니까...
SOP2... 준비해.
RO635의 목소리가, 드물게도 분노와 살의로 낮게 깔렸다.
응.
너무 감동적이다 얘, 나 눈물나려 해~
물론 전혀 그런 기색은 없었고 오히려 손뼉을 치며 키득였다.
아무튼, 너희도 여기서 죽어 줘야겠어.
아, 혹시라도 네 동료들이랑 같은 묫자리에 묻히고 싶다면 내가 넓~은 아량을 베풀어 그리 해 줄게.
...그것들 잔해 찾기가 좀 힘들겠지만 말이야.
......
RO635는 마음을 다잡았다.
방금, 안젤리아가 이 서탑의 어딘가에 있다는 확답을 얻었다. 임무 완수까지, 이제 한 걸음 남은 것이다.
하지만...
......
옆의 SOP2는 조용히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가자, RO.
저 년, 전자전 능력은 강력하지만 몸싸움은 못 해.
그래...? 딱 내 밥이란 거네!
타타탕!!
분노를 가득 담은 총탄이 브라메드를 향해 발사되었지만, 전부 그녀를 호위하는 하얀 병사들에게 막혔다.
그래! 그 뜨거운 분노, 뒤틀린 증오! 더 분노해! 나를 더 증오해 봐!
까불지 마아아아!!
SOP2의 움직임에 맞춰, RO635는 침착하게 그녀를 엄호했다.
SOP2, 1 대 1 채널 열어.
응!
장애물은 내가 치울 테니까 넌 저 년만 집중해서 달려들어.
한 방에 해치우지 못해도 되니까, 계속 두들겨 패버려.
헤헤헤... 맡기시라!
타타탕——!
브라메드의 조롱을 무시하면서, RO635는 그녀 옆의 병사들에게 총알을 퍼부었다.
그런데, 총탄은 맹렬하게 불똥을 튀기곤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떨어졌다. 장갑이 두꺼워 가벼운 흠집만 난 것이었다.
......
이를 본 RO635는 가슴이 철렁했다. 화력과 방어력 차가 심각해, 이대로 그녀와 SOP2만으로는 저 빌어먹을 니토에게 치명타를 먹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다른 작전팀들은 각자 고군분투 중이어서, 그들을 지원하러 올 수 없었다.
RO?
괜찮아, 지금 대책 생각 중이야.
RO635의 화력만으론 SOP2가 브라메드에게 접근할 길을 열어 줄 수 없었고, SOP2의 공격은 전부 하얀 병사들이 브라메드 대신 받아냈다.
아하하하핫!
부족해! 아직 한참은 부족해! 더 힘차게 몸부림쳐 봐, 어서!
아 좀 닥쳐 봐 이 미친년아!
어머나아~? 방금 전까지 물불 안 가리던 살기는 어디로 갔대? 갑자기 팍 식어버렸어?
흐음... 아, 네 동료들 목소리 다시 들려주면 돌아오려나?
너 같은 약골 죽이는 데 괜히 힘 낭비하기 싫거든!?
건방지긴... 후후훗, 좋아! 그래야 마지막의 절망이 더 커지지!
......
브라메드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둘의 귓가를 맴돌았다.
SOP2의 싸움은 갈수록 거칠어졌고, RO635도 연산하는 대책이 점점 다듬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점점 더, 극도로 초조해졌지만, SOP2가 걱정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억눌렀다.
...아무래도 SOP2를 속여서 저 앞으로 돌파하게 하고 나는 여기서――
RO! 나 좋은 수가 떠올랐어!
뭐, 뭔데?
임무 목표도 아닌데, 우리가 굳이 저 자식을 때려잡을 필요는 없잖아?
......
RO635는 SOP2의 성장을 내심 감탄했다.
맞아, 우리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안젤리아 씨를 찾아 구출하는 거야.
그치? 그러니까 저기 저 문으로 도망치자!
저기...? 저 문을 닫아도 얼마 못 버틸 텐데?
아니야. 아까 정찰할 때 봤는데, 꽤 두꺼운 데다 안에서 작동하는 거더라.
들어가서 제어 시스템으로 잠궈버릴 수 있어.
정말...? 아무리 봐도 밖에서 조작하는 문 같은데...
아 내가 방금 봤다니까 그러네? 나 못 믿어?
...그래, 알았어!
타타탕——!
SOP2가 앞장서서 RO635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벌레 두 마리가 어디로 가나요~
네 묫자리 간다, 어쩔래!
아휴 참 귀엽기도 해라...
SOP2!
타타탕——!
SOP2의 엄호를 받아 문 안으로 들어온 RO635는 뒤돌아 SOP2를 엄호했다.
간다아아아!!
SOP2가 RO635에게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문짝을 뻥 걷어찼다.
콰앙!!
그 묵직한 문짝이, RO635의 얼굴을 후려치며 닫혔다.
드르륵――
문이 밖에서 잠기는 소리였다.
윽... 야 SOP2! 너 이게 뭐야?!
빨리 가!
역시 밖에서 잠그는 거였네!
이게 날 속여!?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어...?
RO635는 말문이 막혔다.
......
미안해, RO.
그치만... 다들 이미...
나도 안다고...
하지만...
하지만, 너 만큼은... 너만은 절대...
또... 내 앞에서...
그건, 그건 절대로 보기 싫어.
......
RO635는 괴로워하며 머리를 열리지 않는 문짝에 기댔다. 이 문 밖으로 SOP2는 혈투를 벌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영화 같은 비극이네. 이번엔 진짜 눈물 찔끔 나겠는걸?
보답으로 너무 괴롭게 죽이진 않을게, 멍멍아...
빨리 가!!
코앞에서 총성과 폭음이 터지자, RO635는 당장 이 문을 박살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머리로 이해했다. 그리 했다간, SOP2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임을.
알았어... 알았어, 안젤리아 씨 찾아서 바로 구하러 올게.
응! 난 RO 믿어!
RO635는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다시 붙잡기를 반복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문을 두들기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약속해 SOP2!!
내가 올 때까지 버텨! 꼭!!
죽기만 해 봐, 귀신이 되어서라도 가만 안 둘 테니까!!
약속할게――!!!
터져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RO635는 내달렸다.
온힘을 다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한편.
방금 지나간 건 자료로 본 "틸"인가?
...도망쳤다.
추격할 필요는 없어. 임무를 잊지 마라, AK-15.
그래.
목표 그레이의 침묵을 확인.
임무 완료.
우산을 지원하러 갈 건가?
연락해 보겠......
AN-94가 흠칫하더니,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러지?
신호가 없다.
...그럼 어떡할까?
사전 계획대로, 동탑으로 돌입한다.
그 다음――
턱.
——!
——!
둘은 바로 총을 들었다.
매우 희미한 소리였다.
하지만 아주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던 그들에겐 충분히 요란한 소리였다.
...AK-15.
니토다.
간단히 말을 주고받은 둘은 상황을 파악했다.
AK-15의 빨간 눈동자가, 자신이 박살낸 입구를 신중하게 확인했다.
그곳에서 전혀 새로운, 하지만 형용하기 어려운 익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니토가 우아하게 위층에서 내려왔다.
오랜만이에요, 에르빈 씨, 안티아 씨.
보고 싶었나요?
...우리가 구면인가?
어머?
니토는 내심 아쉬운 듯 가볍게 탄식하며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그 차가운 얼굴에 약간 기대감을 품고, 두 인형들에게 얼굴을 보였다.
이러면——
타앙!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두 인형은 거의 동시에 방아쇠를 당겨 대답했다.
하지만 그 니토는 불시에 날아든 두 탄환을 손쉽게 튕겨냈다.
......
...몰리도.
AN-94는 차갑게 그 이름을 내뱉었다.
오래지 않은 과거의, 한때 잠시나마 어깨를 나란히 했던 "다른 사람"과 서서히 겹쳐 보였다.
계속, 계~속, 오늘 같은 날을 기대했답니다...
...에르빈 씨, 그리고 안티아 씨.
공감이다...
네가 여기 있다는 건 목표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니까.
그 말에 몰리도는 기쁘게 웃었다.
그렇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부디... 우리의 이번 재회가, 모두에게 만족스럽길 바라요.
......
타앙!!!
유니콘, 오프라인.
아이네이아스 작전, 현재 상황을 저장 중...
제1단계 - 진도 100%.
제2단계 - 진도 50%.
제3단계 - 진도 0%.
제4단계 - 진도 100%.
제5단계 - 진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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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와 배신자라. 정말 기묘한 광경이네요.
날 너하고 똑같은 취급하지 마.
탕!
난 너와 달라.
정말 그런가요? 어디가요, M16A1?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 궁금하네요.
당신은 다른 일로 여기에 오지 않았나요? 안젤리아는 어떻게 되든 관심도 없었고.
그런데 지금은 선심 쓰는 척, RO635를 돕고 있네요.
단순한 변덕인가요, 아니면 속죄인가요?
닥쳐.
콰앙!!
일렁이는 포스실드 덕분에, RPK-16은 태연하게 말을 계속했다.
배신자가 용서를 구한다니, 정말 흥미롭네요.
하지만 제 눈에 당신은 처음 다짐했던 각오를 저버린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페르시카 씨의 작품은 겨우 그 정도인가요?
닥치라 했다.
콰앙!!
M16A1의 공격이 더욱 매서워졌다.
<color=#A9A9A9>......</color>
<color=#A9A9A9>대체 뭘 어떡할 셈인가요, M16?</color>
<color=#A9A9A9>보여 주세요.</color>
상대가 몸을 숨긴 엄폐물을 주시하면서, RPK-16은 여유롭게 총을 M16A1이 택할 만한 퇴로를 향해 겨눴다.
데구르르...
......!
하지만 몸을 던지는 M16A1 대신, 수류탄 하나가 엄폐물 밖으로 굴러 나왔다.
기폭과 함께 사방으로 뿜어지는 연기.
연막탄이었다.
타타타탕!!!
——!
연막탄 너머에서 발사된 총알이, RPK-16이 아닌 연막탄이 터진 뒤편의 압축 가스통에 구멍을 뚫었다.
...아이쿠.
RPK-16의 미소가 쓴웃음으로 바뀌었다. 연막탄에 시선을 빼앗겨, 무엇을 놓쳤는지를 깨달은 것이었다.
콰아아앙!!!
총알이 튀긴 불똥에, 인화성 가스가 점화했다.
그리고 그 폭발로 인한 충격파를 발판 삼아, 노련한 인형이 단숨에 불길을 뜷고 달려들었다.
——!
RPk-16은 곧장 총구를 들어 방아쇠를 당겼지만...
따앙!
이미 이를 예측한 M16A1이 물건을 던진 뒤였다.
상대를 저지하려던 RPK-16의 총알은 그 투척물에 맞아 무력화되었다.
구멍난 투척물은 새하얀 가루를 토해냈고, 순식간에 좁은 방 전체에 퍼졌다.
......
퍽!
퍼억!!
아야야...
잡았다.
주먹 한 방으로 RPK-16을 벽으로 몰은 M16A1은 상대가 대응하기 전에 그녀의 왼쪽 어깨를 탈골시켰다.
쿠웅!
흐트러지고 힘이 풀려 손에 들린 기관총도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 특유의 미소는 여전한 RPK-16은 코앞까지 다가온 M16A1을 마주봤다.
뭘 원하세요, M16?
여기는 패러데우스의 본거지예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갈 수는 없어요.
그거야 내 사정이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M16A1은 RPK-16의 가는 목을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는 비수를 들어 언제든지 그녀의 머리를 잘라낼 태세를 취했다.
그런 그들의 뒤로, 폭발로 인한 불길이 둘의 모습을 비췄다.
문 열어.
안 돼요.
......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이 녀석 때문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협박해 봤자란 직감도 들었다.
머리를 빠르게 굴린 M16A1은 1초도 안 되어 판단을 내렸고, 그대로 비수를 쥔 손에 힘을 주어 찍어내렸다.
좀 더 이야기할 생각은 없나요?
......!!
하지만 그 순간, M16A1의 팔이 단단한 무언가에 붙잡혔다.
뭐야?!
비수를 쥔 손도 점점 RPK-16에게서 멀어졌다.
실험실 바닥과 천장에서 뻗어 나온 전선들이, 그녀의 몸을 꽁꽁 묶은 것이었다.
말했잖아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를 거라고.
......
포스실드는 일부러 접근하게 만들 미끼였다.
자아...
페르시카 씨의 작품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볼까요?
후우...
엄폐물 뒤에 웅크린 XM8은 벽에 몸을 기댔다.
그녀는 지금 만신창이였다. 온몸에 각종 날붙이와 스친 총탄으로 인한 상처가 가득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퀸즈 갬빗"이라 할 수 있겠지...
진짜, 이렇게 아슬아슬한 대국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녀가 등을 기댄 벽 너머로는, 바닥에 잔뜩 쌓인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넘는 무수한 패러데우스 병사들이 신중하게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RO...
XM8은 고개를 들어, 시꺼먼 하늘을 바라봤다.
꼭 체크메이트 찍어야 해...
아베르누스, 토대 위의 플랫폼.
엉망진창이 된 플랫폼은 하얀 병사와 니토들의 토막난 사지가 곳곳에 즐비했고, 원래 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이 싸움터에 마지막 세 명의 생존자가 여전히 대치하고 있었다.
헉... 헉...
아키텍트는 불타는 비행기 뒤에 숨어 힘겹게 무기를 재장전했다.
<color=#A9A9A9>게이저, 우리 적어도 20분은 버티지 않았어?</color>
<color=#A9A9A9>이제 슬슬 철수해도 되지 않을까?</color>
<color=#A9A9A9>이 정도면 내가 94년 내내 자랑하고 다닐 만한 전적——</color>
<size=50>찾았——다!!!</size>
아 씨――
콰아앙!!
아주 잠시 한눈판 것으로 치명적인 재난이 들이닥쳤다.
<size=50>끼야악!!!</size>
콰아앙!!
퍼엉!!
지면이 비행기와 함께 통째로 뒤집혔고, 충격파로 그녀도 그대로 공중에 띄워졌다.
쿵!
놓친 무기가 빙그르르 돌며 멀리 미끄러졌지만, 바닥에 철푸덕 떨어진 아키텍트는 무기를 챙길 새도 없이 곧장 앞으로 몸을 굴렸다.
콰아앙!!!
뒤따르는 두 번째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 약골만 보지 말고 번갈아 가며 상대하지 그러냐!
아, 안 돼 게이저!
——넌 재미 없으니까 꺼져 이 버러지야!
아키텍트가 위기에 처하자, 게이저가 빛의 칼날을 전개한 보우건으로 가속해 나르시스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이미 대비해고 있던 나르시스의 손짓에, 날카로운 부유검이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쉬익――
쿠웅!
아키텍트가 몸을 날려 게이저를 밀쳐내, 간발의 차로 피할 수 이었다.
부유검은 그저 스쳤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게이저의 팔을 망가뜨렸다.
<size=50>캬하하하하하!!</size>
<size=50>도망쳐! 도망쳐! 계속 도망쳐 보라고!!!</size>
크윽...
힘을 잃은 팔은 보우건을 놓치고 말았다.
게이저는 발을 몇 번 헛디디다 간신히 고개를 돌리니, 나르시스의 광기 어린 시선과...
그녀를 겨누고 다시 광선포를 충전하는 부유검이 보였다.
피해!!
콰아앙!!
——!?
아, 아키텍트...!
......야 이 XXX들아...
<size=50>니들 다 내 다리랑 원수진 거 있냐!!!</size>
——!!
자신의 몸 위로 엎어진 아키텍트의 모습에, 게이저는 눈을 부릅 떴다.
그녀의 정강이가 폭발에 휘말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박살나 버렸다.
제기랄!!
게이저는 일말의 주저 없이 벌떡 일어나, 아키텍트를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쳤다.
퇴각한다, 아키텍트!
우린 할 만큼 했어!
......
아키텍트?
내 무기 가져와.
...뭘 어쩔 셈이냐.
게이저의 어깨 위에 매달린 아키텍트는, 입술을 핥으며 게이저가 낚아채 준 로켓 발사기를 다시 들고 나르시스를 향해 조준했다.
우리 기사님, 아직 안 까먹었지?
우리가 맡은 작전의 제3단계... 아직 안 끝났어.
계속해봤자 죽을 뿐이다.
RO가 믿으랬잖아!
그리고 SOP2 그 녀석이랑 돌아가면 다리 뜯어버린다 내기했거든!?
콰앙!!!
아키텍트의 포격이, 나르시스 옆에 노출된 기름통을 터뜨렸다. 폭발과 함게 시꺼먼 연기가 치솟았고, 상대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게이저는 다시 속력을 높였다.
겨우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계속 있으려면 잘 보여야겠지?
......
그러니까 넌 달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빨리 달려. 쏘는 건 나한테 맡기고 그냥 달려!
잘만 하면 5분은 더 버틸 수 있어!!
너 진짜...
게이저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꼭 이럴 때만 그딴 고집을 피우냔 말이다――!!
한쪽만 남은 팔로 아키텍트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 게이저는 엄폐물을 향해 내달렸다.
<size=50>어딜 가!!</size>
<size=50>죽어!! 빨리 죽으라고!!</size>
콰앙!!
"심판의 다리".
아이네이아스 작전, 제5단계...
으아아아악!!!
라이노!!
모나! 움직이면 안 돼!
파지직...
......!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지기 직전인 라이노에 달려가려 했지만, 모나의 왼쪽 빰 가까이서 스파크가 터졌다.
큭...!
사방이 놈의 초소형 전자 유닛이야, 지금 우린 오븐 속 통닭이나 다름없어!
......
여전히 활공 중인 네메아란은 얼음장 같은 시선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겉보기엔 교착 상태였지만, 실상은 천천히 이뤄지는 처형이었다.
모, 모나아... 나... 나 더는 안 되겠어...
교란 때문에... 마인드맵이 찢어질 거 같아...
이를 악무는 라이노의 손에 들린 신호 증폭기가 조금씩 으스러졌다.
......
우산한테 연락 좀 해봐!
얼마나 더 버텨야 해?! 이제 퇴각해도 되는 거야!?
우산! 여기는 질소, 응답 바란다!
치지직...
......
...모나?
안 돼요... 아직도 연락이 안 돼요...
신호 교란이 너무 강해서...
......
모나는 이미 벼랑 너머로 떠밀린 심정이었다.
작전의 제2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일환으로서, UMP45는 작전팀 전체의 통신 네트워크 유지를 담당했다.
만약 그쪽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분전하던 팀들이 모두 고립된다는 뜻이었다.
우산도 그렇고, 다른 팀도 소식이 없으니...
비록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9호의 의사는 명확했다.
정말 퇴각해야 할까? 여기까지 왔는데?
......
모나는 깊게 심호흡하고, 총을 고쳐쥐었다.
...라이노를 데리고 서탑으로 돌진하세요.
저 여자는 제가 막겠습니다.
모나...?!
라이노가 경악으로 눈이 동그래졌다.
저는 우산 팀을 믿어요.
모나는 차분하게 동료들의 말을 끊었다.
저는 그녀를 믿겠어요. RO635는 신뢰하기 마땅한 대장입니다.
그러니 저는 여기 남겠습니다. 임무를 끝까지 관철하겠어요.
작전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물러서지 않을 셈이었다.
......
그 말에, 고민하던 9호는 총을 가슴 앞에 걸고 라이노를 업었다.
9, 9호?
...가자.
......
동료들을 보내고, 모나는 고개를 들어 차가운 네메아란의 시선에 맞섰다.
그녀는 이보다 더한 지옥도 경험했다.
이 따위, 무엇이 대수랴.
RO 씨...
당신에게,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슈웅――
수 톤에 달하는 트럭이 번쩍 들어올려져, 그레이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촤악!
하얀 섬광이 번뜩이자, 수송 차량은 가로로 두 동강나 관성과 중력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레이는 꼬리를 바로 움츠려 방패로 삼아, 쏟아지는 총탄을 모조리 튕겨냈다.
...수치가 이전과 너무나도 차이 나.
경이롭구나... 그 정도 규격의 소체에, 더욱 강화할 여지가 있었다니.
설계자를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야.
1 대 1의 싸움. 허나 절대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이 싸움을 즐기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저, 브라메드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저 새로운 침입자를 신중하게 상대하려는 의도였다.
더군다나...
네가 혼자 왔을 리가 없어.
판도라가 말했던 "동료 없이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녀석"은 어디 갔지?
설마 집에다 두고 오진 않았을 텐데.
......
쉭!
......
광택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먼지구름을 뚫고 그레이에게 날아들자, 그레이는 반사적으로 꼬리의 예리한 칼날로 그 작은 물체를 동강냈다.
그것은...
...정말 질리지도 않고 쓰는구나.
두 동강났는데도 여전히 폭발하려는 수류탄을, 그레이가 꼬리로 돌려 쳐냈다.
AK-15가 엄폐물로 삼은 컨테이너는 폭발에 휘말려 불이 붙었다. 그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내부서부터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콰아앙!!!
......
그레이는 자조하듯 미소를 지었다. 설마 자신을 두고 간 브라메드에게 섭섭함을 느끼다니...
자신이 언제 이렇게 나약해진 것일까?
슈욱!
지칠 줄 모르는 맹수처럼, AK-15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치솟는 매연과 불길을 뚫고 달려들었다.
또 그 뻔한 수작.
...닥쳐.
진한 살기를 내뿜는 시뻘건 눈동자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레이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계속되던 조롱이 드디어 AK-15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
그레이는 조금 전의 빈말이 아니라, 그제서야 정말 아주 조금 경이로움을 느꼈다.
똑같이 전조 없는 돌격인데도, AK-15의 속도는 지난번보다 월등히 빨라졌다.
그게 네 자신감이라, 이건가...
가소로워.
날렵한 꼬리는 유연하게 꿈틀하며 AK-15가 돌진해 오는 방향을 향해 선을 그었다.
몸도 움직이지 않고, "지난번"처럼 꼬리 끝을 AK-15에게 향했다.
속도가 빠를 수록, 앞의 장애물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AK-15는 지난번처럼 알아서 부딪힐 것이고, 이번에는 그 어떤 잔수작에도 걸려들지 않을 것이다.
그때 저 시뻘건 눈동자가 완전히 빛을 잃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
——!
꼬리 끝에 닿기 직전, AK-15가 발을 굴렀다.
아주 약간, 몸을 틀은 것이었다.
몸을 틀은 AK-15의 가슴 장갑판이, 그레이의 꼬리 칼날을 스치며 불똥을 튀겼다.
이 모든 일이 0.5초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졌다.
단순히 순간 출력과 힘만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AK-15의 장갑판은 그녀의 기동력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눈동자는 분노로 이글거렸고, 그레이의 목을 노리는 칼끝은 차가웠다.
그녀가 이 순간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물러.
그레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쉬익――
......!
맹렬하게 돌진하던 태산은, 그레이와 충돌하기 직전 백덤블링으로 수 m가량 물러났다.
덜그럭.
어깨끈이 절단된 총이 바닥에 떨어져 소리를 냈다.
그레이는 높이 든 손에서 뻗어 나온 칼날을 굽히며,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눈빛으로 AK-15를 노려봤다.
......
AK-15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가슴 부위 장갑판에 새겨진 흠집은, 한 발짝만 더 깊었어도 그녀의 소체가 잘렸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발전했구나.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
......
AK-15에게 그런 도발은 간지럽지도 않았지만, 의외로 무어라 입술을 우물거렸다.
흠...? 지금 뭐라 했지?
...터진다고.
AK-15는 눈에서 이글거리던 분노를 거두고, 나지막이 읊조리며 시선을 그레이의 얼굴에서 꼬리로 향했다.
......!?
이를 눈치챈 그레이도 황급히 시선을 자신의 꼬리로 향했다.
길고 뾰족한 금속제 쇠말뚝이, 그녀의 꼬리 장갑 틈새에 박혀 소름 끼치는 타이머음을 내다... 멈췄다.
퍼어어엉!!!
크윽...!
'말도 안 돼.'
'전부 노림 수였다고?'
눈이 커진 그레이는 폭발로 인한 충격을 고스란히 견디면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AK-15가 다시 땅을 박차고 날아오는 것을 늦지 않게 포착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휘두른 손의 칼날은 허공을 갈랐다.
——!
AK-15는 다시 접근하려던 것이 아니라, 그저 앞구르기로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주운 것이었다.
그리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움직임으로 다른 엄폐물 뒤에 쪼그려 앉아, 자세를 잡더니...
타타타탕!!!
크헉...!
고폭철갑탄이 그녀의 가장 예리한 칼날을 앗아갔다.
날렵하던 꼬리는 알맹이가 빠진 듯 날아드는 총탄을 간신히 막아내는 수준으로 움직임이 둔해졌다.
날아드는 총탄은 리듬감 있게 꼬리에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내었고, 만신창이가 된 그레이는 점점 계단 끝자락까지 내몰렸다.
......
돌연 총성이 멈췄다. 탄창 하나를 비운 AK-15가 총을 놓고, 팔에 부착된 대검을 뽑아 손에서 휘릭 돌리며 잡았다.
......
이 기세로 숨통을 끊을 셈이었다.
이젠 정말 인정해야겠구나... 신소련 최강의 인형이라 불려도 손색 없어.
여유를 잃은 그레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하지만 여긴 아베르누스란다.
타타타타타탕!!!
...?!
자세를 취한 AK-15가 포탄처럼 돌진하려던 그 순간,
소나기 같은 총알 세례가 그녀의 머리 위로 빗발쳤다.
이에 AK-15는 곧장 몸을 다른 방향으로 던져, 구석의 엄폐물로 숨었다.
죽여라.
엘레베이터에서 우르르 몰려 나온 패러데우스의 병사들이 산개해, 나선 계단을 촘촘히 에워쌌다.
그리고 그들의 시꺼먼 총구가, 콜로세움 같은 원형 바닥의 유일한 목표를 향해 아낌없이 총알을 퍼부었다.
누가 자신의 본거지에서 아무 대비 없이 침입자를 혼자 상대하겠는가.
그레이는 그런 바보가 아니었다.
<color=#A9A9A9>그래도... 의미가 없지는 않았네.</color>
그녀가 AK-15와 격투를 벌인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AK-15의 상태는 네메아란마저 모르는 것이었다.
......!!
갑자기 경보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직 병사들이 다 나오지 못한 엘레베이터의 붉은 램프가 빛나더니, 그대로 문이 닫혀 일부 병사들이 안에 갇혀 버렸다.
나머지 병사들의 공격도 그 순간 멈칫했고, AK-15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총을 다시 들었다.
큰일이다.
쯧...
AK-15는 이 돌발 상황이 전혀 놀랍지 않은 눈치였다.
그레이는... 비록 놀라긴 했지만, 아주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이를 기회로 이용했다.
비켜!
그레이는 방해되는 병사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다급하게 계단을 올랐다.
삐이.
통신 연결.
네메아란 언니.
<color=#00CCFF>...무슨 일이니?</color>
<color=#00CCFF>난 지금 바쁘단다.</color>
...지원이 필요합니다.
타타탕!!
뒤에서 들려오는 총성은 장애물을 거침없이 돌파하는 탱크의 엔진음 같았고, 그레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더욱 걸음을 서둘렀다.
이 문도 막혔다...'
굳게 닫힌 엘레베이터를 짜증스럽게 흘겨보면서, 그레이는 계속 위로 올랐다.
<color=#00CCFF>놈들의 상세한 정보를 줬잖니...</color>
<color=#00CCFF>그런데도 상대를 못한다고?</color>
<color=#00CCFF>제발, 더는 날 네 무능함으로 놀래키지 말려무나.</color>
상황이 네메아란 언니의 예상과 다릅니다.
"벌침"도 가끔은 닿지 않는 곳이 있기 마련이죠.
그레이는 전투로 얻은 데이터를 모조리 전송했다.
AK-15는 예전과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전술 레벨도, 소체의 강도도, 업그레이드를 거쳐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유적 기술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단 겁니다.
분명 언니의 자료에는 없는 내용이겠죠?
저 광견이 이 정도인데, 지금 여기 어딘가에 숨어있을 놈의 동료는 어떻겠습니까?
그 녀석이야말로 진짜 지휘자일 수도 있습니다. 녀석은 우리 시스템을 해킹할 능력까지 갖췄습니다.
...놈들을 사로잡으면, 아버님도 분명 흥미로워하실 것입니다.
<color=#00CCFF>...그렇군.</color>
그레이가 보낸 데이터를 확인한 네메아란은 다소 감탄하는 듯한 투였다.
<color=#00CCFF>확실히, 이건 뜻밖의 수확이구나.</color>
언니도 이해하셨다면――
<color=#00CCFF>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바쁜 건 사실이란다.</color>
<color=#00CCFF>지원을 보내 줄 수는 있다만...</color>
<color=#00CCFF>"있다만"이라뇨... 저한테 맡기세요, 네메아란... 언, 니.</color>
<color=#00CCFF>......?!</color>
이... 이렇게 빨리!?
<color=#00CCFF>이것도 예상밖인걸...</color>
<color=#00CCFF>벌써 끝났니?</color>
<color=#00CCFF>네... 아주 성공적으로요.</color>
<color=#00CCFF>그렇다면... 그레이, 30층의 엘레베이터 출입구로 가렴.</color>
<color=#00CCFF>새로이 다시 태어난 이 아가씨가 너를 마중할 거다.</color>
알겠습니다.
<color=#00CCFF>안심하고 기다리렴, 그레이.</color>
<color=#00CCFF>금방 갈게.</color>
삐이.
통신 종료.
......
뜻밖의 소식에 그레이가 말을 잃은 것도 잠시, 그녀의 가슴에서 환희가 샘솟았다.
하지만 그 격양된 감정이 입밖으로 흘러나오기 전에, 저 뒤에서 고함이 날아왔다.
<size=50>——거기 서라!!</size>
예상대로, 하얀 병사들만으론 AK-15를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걸 어떡하나...
이번에도 결국 나의 승리란다.
점점 거리가 벌어지자, 그레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꿰뚫리고, 부러지고, 찢어지고, 박살나는 끔찍한 소리.
하지만 총과 대검으로 숨통이 끊어져도 똑같이 생긴 병사들 서너 명이 다시 길을 막았다.
분노로 울부짖는 그 모습은 환희에 찬 그레이도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지만,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거리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후우...
마침내, 그레이가 30층의 엘레베이터 문 앞에 도착했다.
AK-15는 학살당하는 졸병들의 방해 때문에, 여전히 23층 즈음의 계단 위였다.
그녀가 지금 그레이의 털끝 하나 건드릴 방법은 없었다.
다시는 만나는 일 없을 거다.
엘레베이터가 경쾌한 알림음을 냈다.
고장이 발생한 층은 29층까지였고, 이런 오류쯤 몇 분만에 원상복귀된다.
그럴 때쯤이면, AK-15도, 어딘가 숨어있을 그녀의 동료도 그저 밀물 같은 군세에 휩쓸릴 터였다.
그레이는 환희로 입이 귓가에 걸리다 못해 찢어질 기세였다.
드디어,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
엘레베이터의 문 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본 순간, 그레이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
타앙――!
날아든 한 발의 탄환은, 자비 없이 그녀의 미간을 꿰뚫었다.
......
이럴 리가 없었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AK-15의 동료였다.
헉... 커헉...
그레이는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완전히 힘이 풀린 몸은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대로 뒤로 넘어가 위태롭게 몸이 난간에 걸쳐진 그레이의 눈에, 끝이 보이지 않는 나선 계단에 휘감긴 탑의 천장이 들어왔다.
그야말로, 나는 새마저 집어삼키는 지옥의 호수 같은 경관이었다.
그...레이...?!
————
흐려진 그레이의 시야가 그 순간 맑아졌다.
저 위에, 나선 계단의 저 위에,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틸이 있었다. 기능이 회복된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나온 그녀는 지금 눈에 들어온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티...일......
그레이!
하지만 맑아졌던 그레이의 시야는 다시 회색빛으로 흐려졌다.
......
타앙!
<size=50>안 돼!!</size>
——!
검을 쥔 틸이 단숨에 발판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 번째 탄환이 그레이의 가슴을 관통했다.
타앙!
타앙!
타앙!
그레이의 눈이, 마침내 빛을 잃었다.
그녀의 몸은 난간에 추욱 늘어졌고, 귀에도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틸이 계단을 박차고 달리는 그 순간,
그레이의 몸뚱이는 돌풍에 떠밀려 난간 아래로 추락했다.
한 쌍의 금빛 눈동자가 심연으로 떨어지는 그레이를 향해 다가왔다.
추락하는 그레이를 쫓아, 나선 계단을 타고 정신없이 아래로 달리는 틸이었다.
그녀의 눈에,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미련이라도 있는 듯 허공으로 뻗어진 손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size=50>그레이이이!!!</size>
틸은 가슴이 찢어지듯 소리지르며 손을 뻗었다.
그레이도 이에 회답하듯, 손을 틸에게 뻗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말 그렇더라도, 둘은 손을 뻗는다고 닿는 거리가 아니었다.
괜찮아...
추락하며 광풍에 휩싸여 두려웠지만, 그레이는 애써 웃어보였다. 틸에게 전혀 안 보일지라도.
아버님이, 날 되살려 주실 거야...
<size=50>안 돼애애애애!!!</size>
자신을 위로하는 것일까, 남겨질 틸을 다독이는 것일까. 그레이는 갈수록 멀어지는 천장을 향해 입을 뻐끔이며 아버지를 불렀다.
――쿠웅!
묵직한 충돌음을 끝으로, 그레이는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아베르누스, 서탑.
자신을 뒤로 끌어당기는 힘을 느끼면서, M16A1은 RPK-16을 노려봤다.
제법 괜찮은 수군.
그녀는 담담하게 평가를 내렸다.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응?
삐빅.
RPK-16의 표정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경보음에 이끌려 내려다본 그녀의 옆구리에는, 작은 점착 폭탄이 붉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퍼엉!!
그것이 폭발하는 동시에, M16A1을 포박하던 것들이 맥없이 늘어졌다.
몸의 자유를 되찾은 M16A1은 망설이지 않고 RPK-16의 얼굴에 다시 한번 주먹을 꽂았다.
커헉...
하지만 RPK-16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과연... 과연 대단하네요, M16...
비장의 수가 있으리라곤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자비한 걸 줄은 몰랐네요...
너...?
다시 대검을 든 M16A1의 손이, 또 다시 멈췄다.
......너였냐.
그만 가세요.
당신이 찾는 것은 이쪽에 없어요.
......
M16A1은 손을 떨구고, 옆의 굳게 닫힌 차단문을 흘겨봤다.
그런 거 같네.
케헥... 콜록콜록...
잘 해 봐라.
바닥에 주저앉아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RPK-16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던진 M16A1은, 자신의 단말기를 확인하곤 자신히 왔던 방향 그대로 돌아갔다.
한편, 그런 M16A1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입 안의 피를 음미하던 RPK-16은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저기요... 새 상사님 맞죠...? 당신이 찾던 거, 발견했어요... 교전 기록도 지금 전달했답니다...
<color=#00CCFF>...흠, 이걸로 충분해. 잘했다.</color>
<color=#00CCFF>놓친 벌레는... 이제 두 마리 남았나.</color>
삑.
통신 종료.
......
RPK-16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제 개조가 끝날 때까지만요...
우리 사이의 인력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답니다... M16...
<color=#00CCFF>축하해.</color>
<color=#00CCFF>네가 맞았어.</color>
확실해?
동탑 내부, 다음 방으로 돌입하려고 조심조심 벽에 기대어 나아가던 RO635와 SOP2는 M16A1의 통신을 받았다.
<color=#00CCFF>그래, 틀림없어. 안젤리아는 동탑에 있어.</color>
<color=#00CCFF>내 임무는 이걸로 끝이야. ...잘 해봐.</color>
...응.
RO...
그녀를 바라보는 SOP2는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너도 들었지?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있어.
...응!
지금 그들이 숨어든 동탑도, 수상할 정도로 경비가 빈약했다.
우산 팀은 탑에 진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전조차 벌이지 않았다.
그들의 가장 큰 불안 요소는 바로 과연 그들이 찾는 것이 여기 있기나 한지를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지금 그 통신으로 확답을 얻었다.
이에 RO635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뜬 감정을 억누르며 회의실 채널을 켰다.
여기는 우산. 유니콘, 응답 바란다.
<color=#00CCFF>...유니콘 수신.</color>
안젤리아의 위치를 특정했습니다.
모든 팀에게 철수 준비하라 전달하세요.
<color=#00CCFF>......</color>
흥분을 억누르는 RO635와 달리, 통신 너머의 UMP45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 점을 눈치챈 RO635의 기분도 빠르게 식었다.
...유니콘?
<color=#00CCFF>...아무도 지금 철수할 여유가 없어.</color>
<color=#00CCFF>앞으로 너희에게 벌어 줄 수 있는 시간은 약 5분... 아니, 3분도 안 돼.</color>
<color=#00CCFF>그러니까... 실망시키지 마.</color>
삑.
통신 종료.
......
어... 45? 왜 그래? 거기 무슨 일 있어?
여보세요? 야 철혈...이 아니라 철분, 아직 거기 있지?
...체스 마스터? 질소 팀?
시끌벅적했던 아이네이아스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RO...
...나도 알아.
모두...
상황을 파악한 SOP2도 통신기를 쥔 손을 떨궜다.
RO635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절망감을 1초도 안 되어 털어내고,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서두르자, SOP2.
하지만...
이대로 포기해선 안 돼.
SOP2는 할 말이 있었지만, RO635의 비장하고 단호한 표정을 보곤 하려단 말을 꿀꺽 삼켰다.
...응, 가자! 모두의 희생을 헛되이 하면 안 되지!
그래, 우리가――
치직... 치지직...
――?!
누구냐!
강렬한 전자 교란이 그들을 덮쳤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다.
덤벼, 한꺼번에 다 덤비라고!
나 혼자 남더라도... 끝까지 버틸 테니까!
크윽... 뭘 깨작깨작대! 한꺼번에 덤비라니까!!!
엑, XM8?! 너야?!
어두워진 복도 저 끝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비통함과 분노로 SOP2가 손이 부들부들 떨었다.
진정해.
응...
언니... 난 괜찮아... 내 마인드맵은...
그러니까... 크윽... 크아아아악!!
9!!! 이 자식들, 다 죽었어!!!
어, 45랑 9...? 안 돼...!
<size=50>이 망할 자식아! 당장 튀어나오지 못해!?</size>
......
동료들의 비명이 RO635와 SOP2의 마인드맵을 갈기갈기 찢는 듯했다.
후후후... 겨우 이 정도도 못 참니?
경멸 여린 웃음소리와 함께, 요염한 자태의 여인이 저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절망도 함께 나타났다. 브라메드의 뒤로, 수많은 하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네가... 모두를...!
......
크흠크흠, 여기는 브라메드~
나머지 벌레 두 마리 찾았습니다.
...대충 이러면 되지?
일부러 뜸을 드리며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하던 브라메드가, 대뜸 짐짓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size=50>뭐어? 다 죽어버렸다고~?</size>
<size=50>어머나 이를 어쩌나~ 모두 함께 임무를 마치고 살아서 돌아가자 약속했다며~!</size>
<size=50>너 가만 안 둬어어!!!</size>
SOP2, 진정해. 방금 그거 다 저 년이 만들어낸 환각이야. 우릴 정신적으로 몰아붙이려는 거라고.
SOP2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 직전에, RO635는 자신의 분노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SOP2를 말렸다.
어머, 그래? 모두 끔찍하게 당했다고?
우리 애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총알이고 포탄이고 마구 쏴대서...
그랬구나아... 불쌍하기도 하지. 마인드맵 코어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에...
닥쳐. 언제까지 연기하려고 그래?
으응? 그게 무슨 소리니~ 난 지금 진짜로 네 동료들이랑 통화 중인데.
뭐 임마!?
악의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브라메드는 자신의 통신을 크게 틀었다.
<color=#00CCFF>...RO, 우리다.</color>
...암구호.
<color=#00CCFF>강철매 통합.</color>
진짜잖아?! 괜찮아? 지금 어떻게 됐어?!
<color=#00CCFF>야...! 우리 약속 지켰다? 끝까지 버텼어!</color>
너희들...
<color=#00CCFF>꼭 해내라고 임마!</color>
아키텍트!!
<color=#00CCFF>SOP2 너 꼭 기억해! 돌아가면 네 다리 스무 번은――</color>
콰앙――
격렬한 포성에 뒤이은 노이즈가, 아키텍트의 고함을 집어삼켰다.
백 번이라도... 뜯게 해줄 테니까...
SOP2... 준비해.
RO635의 목소리가, 드물게도 분노와 살의로 낮게 깔렸다.
응.
너무 감동적이다 얘, 나 눈물나려 해~
물론 전혀 그런 기색은 없었고 오히려 손뼉을 치며 키득였다.
아무튼, 너희도 여기서 죽어 줘야겠어.
아, 혹시라도 네 동료들이랑 같은 묫자리에 묻히고 싶다면 내가 넓~은 아량을 베풀어 그리 해 줄게.
...그것들 잔해 찾기가 좀 힘들겠지만 말이야.
......
RO635는 마음을 다잡았다.
방금, 안젤리아가 이 서탑의 어딘가에 있다는 확답을 얻었다. 임무 완수까지, 이제 한 걸음 남은 것이다.
하지만...
......
옆의 SOP2는 조용히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가자, RO.
저 년, 전자전 능력은 강력하지만 몸싸움은 못 해.
그래...? <size=50>딱 내 밥이란 거네!</size>
타타탕!!
분노를 가득 담은 총탄이 브라메드를 향해 발사되었지만, 전부 그녀를 호위하는 하얀 병사들에게 막혔다.
그래! 그 뜨거운 분노, 뒤틀린 증오! 더 분노해! 나를 더 증오해 봐!
<size=50>까불지 마아아아!!</size>
SOP2의 움직임에 맞춰, RO635는 침착하게 그녀를 엄호했다.
<color=#00CCFF>SOP2, 1 대 1 채널 열어.</color>
<color=#00CCFF>응!</color>
<color=#00CCFF>장애물은 내가 치울 테니까 넌 저 년만 집중해서 달려들어.</color>
<color=#00CCFF>한 방에 해치우지 못해도 되니까, 계속 두들겨 패버려.</color>
<color=#00CCFF>헤헤헤... 맡기시라!</color>
타타탕——!
브라메드의 조롱을 무시하면서, RO635는 그녀 옆의 병사들에게 총알을 퍼부었다.
그런데, 총탄은 맹렬하게 불똥을 튀기곤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떨어졌다. 장갑이 두꺼워 가벼운 흠집만 난 것이었다.
......
이를 본 RO635는 가슴이 철렁했다. 화력과 방어력 차가 심각해, 이대로 그녀와 SOP2만으로는 저 빌어먹을 니토에게 치명타를 먹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다른 작전팀들은 각자 고군분투 중이어서, 그들을 지원하러 올 수 없었다.
<color=#00CCFF>RO?</color>
<color=#00CCFF>괜찮아, 지금 대책 생각 중이야.</color>
RO635의 화력만으론 SOP2가 브라메드에게 접근할 길을 열어 줄 수 없었고, SOP2의 공격은 전부 하얀 병사들이 브라메드 대신 받아냈다.
<size=50>아하하하핫!</size>
<size=50>부족해! 아직 한참은 부족해! 더 힘차게 몸부림쳐 봐, 어서!</size>
아 좀 닥쳐 봐 이 미친년아!
어머나아~? 방금 전까지 물불 안 가리던 살기는 어디로 갔대? 갑자기 팍 식어버렸어?
흐음... 아, 네 동료들 목소리 다시 들려주면 돌아오려나?
너 같은 약골 죽이는 데 괜히 힘 낭비하기 싫거든!?
건방지긴... 후후훗, 좋아! 그래야 마지막의 절망이 더 커지지!
......
브라메드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둘의 귓가를 맴돌았다.
SOP2의 싸움은 갈수록 거칠어졌고, RO635도 연산하는 대책이 점점 다듬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점점 더, 극도로 초조해졌지만, SOP2가 걱정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억눌렀다.
<color=#A9A9A9>...아무래도 SOP2를 속여서 저 앞으로 돌파하게 하고 나는 여기서――</color>
<color=#00CCFF>RO! 나 좋은 수가 떠올랐어!</color>
<color=#00CCFF>뭐, 뭔데?</color>
<color=#00CCFF>임무 목표도 아닌데, 우리가 굳이 저 자식을 때려잡을 필요는 없잖아?</color>
<color=#00CCFF>......</color>
RO635는 SOP2의 성장을 내심 감탄했다.
<color=#00CCFF>맞아, 우리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안젤리아 씨를 찾아 구출하는 거야.</color>
<color=#00CCFF>그치? 그러니까 저기 저 문으로 도망치자!</color>
<color=#00CCFF>저기...? 저 문을 닫아도 얼마 못 버틸 텐데?</color>
<color=#00CCFF>아니야. 아까 정찰할 때 봤는데, 꽤 두꺼운 데다 안에서 작동하는 거더라.</color>
<color=#00CCFF>들어가서 제어 시스템으로 잠궈버릴 수 있어.</color>
<color=#00CCFF>정말...? 아무리 봐도 밖에서 조작하는 문 같은데...</color>
<color=#00CCFF>아 내가 방금 봤다니까 그러네? 나 못 믿어?</color>
<color=#00CCFF>...그래, 알았어!</color>
타타탕——!
SOP2가 앞장서서 RO635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벌레 두 마리가 어디로 가나요~
네 묫자리 간다, 어쩔래!
아휴 참 귀엽기도 해라...
<color=#00CCFF>SOP2!</color>
타타탕——!
SOP2의 엄호를 받아 문 안으로 들어온 RO635는 뒤돌아 SOP2를 엄호했다.
<color=#00CCFF>간다아아아!!</color>
SOP2가 RO635에게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문짝을 뻥 걷어찼다.
콰앙!!
그 묵직한 문짝이, RO635의 얼굴을 후려치며 닫혔다.
드르륵――
문이 밖에서 잠기는 소리였다.
윽... <size=50>야 SOP2! 너 이게 뭐야?!</size>
빨리 가!
역시 밖에서 잠그는 거였네!
이게 날 속여!?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어...?
RO635는 말문이 막혔다.
......
미안해, RO.
그치만... 다들 이미...
나도 안다고...
하지만...
하지만, 너 만큼은... 너만은 절대...
또... 내 앞에서...
그건, 그건 절대로 보기 싫어.
......
RO635는 괴로워하며 머리를 열리지 않는 문짝에 기댔다. 이 문 밖으로 SOP2는 혈투를 벌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영화 같은 비극이네. 이번엔 진짜 눈물 찔끔 나겠는걸?
보답으로 너무 괴롭게 죽이진 않을게, 멍멍아...
<size=50>빨리 가!!</size>
코앞에서 총성과 폭음이 터지자, RO635는 당장 이 문을 박살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머리로 이해했다. 그리 했다간, SOP2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임을.
알았어... 알았어, 안젤리아 씨 찾아서 바로 구하러 올게.
응! 난 RO 믿어!
RO635는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다시 붙잡기를 반복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문을 두들기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size=50>약속해 SOP2!!</size>
<size=50>내가 올 때까지 버텨! 꼭!!</size>
<size=50>죽기만 해 봐, 귀신이 되어서라도 가만 안 둘 테니까!!</size>
<size=50>약속할게――!!!</size>
터져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RO635는 내달렸다.
온힘을 다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한편.
방금 지나간 건 자료로 본 "틸"인가?
...도망쳤다.
추격할 필요는 없어. 임무를 잊지 마라, AK-15.
그래.
목표 그레이의 침묵을 확인.
임무 완료.
우산을 지원하러 갈 건가?
연락해 보겠......
AN-94가 흠칫하더니,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러지?
신호가 없다.
...그럼 어떡할까?
사전 계획대로, 동탑으로 돌입한다.
그 다음――
턱.
——!
——!
둘은 바로 총을 들었다.
매우 희미한 소리였다.
하지만 아주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던 그들에겐 충분히 요란한 소리였다.
...AK-15.
니토다.
간단히 말을 주고받은 둘은 상황을 파악했다.
AK-15의 빨간 눈동자가, 자신이 박살낸 입구를 신중하게 확인했다.
그곳에서 전혀 새로운, 하지만 형용하기 어려운 익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니토가 우아하게 위층에서 내려왔다.
오랜만이에요, 에르빈 씨, 안티아 씨.
보고 싶었나요?
...우리가 구면인가?
어머?
니토는 내심 아쉬운 듯 가볍게 탄식하며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그 차가운 얼굴에 약간 기대감을 품고, 두 인형들에게 얼굴을 보였다.
이러면——
타앙!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두 인형은 거의 동시에 방아쇠를 당겨 대답했다.
하지만 그 니토는 불시에 날아든 두 탄환을 손쉽게 튕겨냈다.
......
...몰리도.
AN-94는 차갑게 그 이름을 내뱉었다.
오래지 않은 과거의, 한때 잠시나마 어깨를 나란히 했던 "다른 사람"과 서서히 겹쳐 보였다.
계속, 계~속, 오늘 같은 날을 기대했답니다...
...에르빈 씨, 그리고 안티아 씨.
공감이다...
네가 여기 있다는 건 목표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니까.
그 말에 몰리도는 기쁘게 웃었다.
그렇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부디... 우리의 이번 재회가, 모두에게 만족스럽길 바라요.
......
<size=50>타앙!!!</size>
유니콘, 오프라인.
아이네이아스 작전, 현재 상황을 저장 중...
제1단계 - 진도 100%.
제2단계 - 진도 50%.
제3단계 - 진도 0%.
제4단계 - 진도 100%.
제5단계 - 진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