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β4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차가운 바닥에 앉은 캐서린과 매기는 서로에게 기댔다.
모스크바의 세이프하우스.
시멘트 용해액을 몇 통이나 쓰고서야, 매기는 간신히 캐서린을 드럼통에서 꺼낼 수 있었다.
으윽... 피부가 까칠까칠해...
팔다리 멀쩡하게 나왔으니까 됐지.
야 이 구두쇠야, 용해액 좀 더 좋은 걸로 사면 어디 덧나냐?
에에, 네가 보낸 돈으로 산 건데, 돈 아끼면 더 좋아할 줄 알았지.
아 맞다, 내 돈! 당장 돌려줘!
헤에, 송금 메시지는 그렇게 감동적으로 써 놓더니...
"잘 있어, 매기..."
닥쳐 임마! 그땐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고!!!
캐서린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매기를 몇 번 때리고는, 바닥에 앉아 자신에게 잔뜩 기름칠을 했다.
그리고 흡족하게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래서, 그 의뢰란 게 어떤 거야?
......
아직 몰라.
모르면서 그걸 받았어?
아무튼 쉬운 일은 아니겠지.
의뢰를 받은 것만으로도 우릴 그 강도 패거리한테서 구해 줄 정도니까.
...의뢰인이 마냥 우리를 편하게 두진 않을 거야. 바로 목숨 값을 독촉하러 올 거라고.
걱정 마, 여태까지 우리가 노아의 방주를 놓친 적이 있었냐? 이번에도 똑같을 거야.
그래.
그럼 언제부터 일 시작해?
지금.
아... 그럼 뭐부터 하는데?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지금 저쪽한테 받은 건 "로열 카지노"란 의뢰명하고 익명 통신밖에 없어.
삐이——
매기는 발신자 추적이 불가능한 그 통신을 다시 재생했다.
너의 면접은 내일 9시에 잡았다. 좌표는 다음과 같다.
확실히 추적이 전혀 안 되네...
이런 상대는 정말 오랜만이야...
보르 브 자코녜를 바로 순한 양으로 만드는 걸 보면 절대 만만한 인물이 아니겠지...
이거 완전 산 넘어 산이구만.
아니지, 이건 늑대 피하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거야.
그래도 단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네. серый, 이 낱말은 러시아어로 회색이란 뜻이야.
회색...
이 낱말에 다른 뜻이 숨어있을 것 같아. 천천히 껍질을 까봐야겠지.
옛날 시절이 떠오르네, 뭐 그 시절 손님들 중에 이만큼 진상은 없었지만.
며칠 후, 브레멘의 플로라 연구소.
약속한 면접 시간에 맞춰 매기는 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빌딩에 도착했다. 그리고 접수처 아가씨의 안내를 받아 대기 홀에 앉았다.
접수처 직원은 곧 돌아가고, 호화롭게 꾸며진 대기 홀에 매기 혼자만 남았다.
매기는 몇몇 팻말에서 "갈라테아"라는 단어를 발견했지만, 검색해 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매기 씨 맞으세요?
문 하나가 열리고, 하얀 제복을 입은 여성이 매기에게 손짓했다.
이쪽이요.
하얀 옷의 여성을 따라서 매기는 사무실에 들어와 푹신푹신한 소파 위에 앉았다.
매기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여성은 무덤덤하게 절차를 시작했다.
그럼 면접 시작할게요.
그래.
이름.
매기 폰지.
직업.
음... 사회공학자.
......
상대방은 무덤덤하게 매기의 정보를 키보드로 입력했다.
이제 댁 차례야.
전 "로열 카지노" 의뢰인이에요.
저번에 통신으로 연락했죠? 이제 제 시험을 통과해야 의뢰를 받을 수 있어요.
좋아, 그럼 시작하자고.
이미 시작했어요.
매기 씨, 당신이 가장 자신있는 방식으로 제가 스스로 의뢰를 당신에게 맡기도록 만들어 보세요.
어? 무슨 수를 써도 상관없어?
물론이죠.
시작하기 전에 하나 확실히 해 줘——
의뢰를 내게 맡길지 여부를 정하는 건 의뢰인뿐인 거, 맞지?
네.
그럼 이 시험은 애초에 통과가 불가능해.
......
어째서죠?
댁은 의뢰인이 아니니까.
저를 도발해서 의뢰를 맡기게 할 심산인가요?
실례가 지나치군요.
댁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어, 리오니 씨.
......
댁의 성문을 살짝 분석해서 외모와 대조하면 진짜 신분을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댁이 작년에 발표한 연구소 연말보고서는 참 훌륭했어.
그런데 말이지, 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댁이 그 수수께끼의 의뢰인이라기엔 약간 부족해 보여.
어제 그 대단하신 의뢰인은 꽤나 큰 골칫거리를 뚝딱 해결해 줬거든.
헛?
명찰을 급하게 가리는 걸 보니까 내가 그걸 훔쳐봤다고 생각하나 보지?
그런 건 기술 수준이 너무 낮잖아, 당신네 회사 스타일에 안 맞아.
......
좋아요.
한번 놀랐다가 정신을 차린 리오니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다시 침착한 얼굴을 되찾았다.
그럼——
짝짝짝——
손뼉 소리가 울리더니, 방 안의 전기가 잠시 나갔다.
매기의 눈이 어둠에 적응했을 때 리오니의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그 대신 어둠 속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처음 만나는군, 매기 양.
그쪽이 그 "회색" 씨?
나한테도 똑같은 수단을 써보지 그래?
내 성문을 살짝 분석하고 외모와 대조해서?
아뇨.
그래봤자 당신에겐 안 먹히겠죠.
아니면, 그렇게 해서 찾아낸 "그레이" 가 당신의 정체가 아닐 수도 있고.
자기 분수를 안다는 점은 마음에 들어, 매기 폰지 씨.
아니면, 매기 폰지 씨의 조수 인형이라 불러야 할까?
......
매기가 소파를 툭툭 두드리던 손가락이 굳었다.
걱정 말렴, 그런 배경도 네 경쟁력이니까.
나는 원래 인형의 사기 솜씨에 회의적이었지만, 네가 폭스 시스터후드 소속 인형인 걸 알고 기대를 걸게 됐어.
아직도 폭스 시스터후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니.
현대 인류는 잊어선 안 될 것들을 너무 많이 잊어버렸지.
폭스 시스터후드는 3차대전 이후 몰락했다고 들었지만...
설마 그 조직의 일원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어쩐지 시원시원하게 캐서린을 구해주더라니.
가치 있는 인물한텐 항상 흔쾌히 베풀어 주지.
폭스 시스터후드의 배경 말고는요?
뭘 보고 저희의 가치를 평가한 거죠?
총명한 사람과 대화하면 수고가 준다니까.
"회색" 부인은 천천히 일어나 카메라 앞을 벗어나더니, 조금 뒤 커피 한 잔을 들고 돌아왔다.
네가 주도한 데킬라 사업, 아니지, 까놓고 데킬라 사기극이라고 불러도 될까?
......
그것 때문에 보르 브 자코녜가 너희를 잡아 죽이려고 쫓아다닌 거겠지.
아차, 들통나 버렸네.
헛웃음을 치고, 매기는 억지로 아무렇지 않다는 양 소파 등받이에 기대 다리를 꼬았다.
그 사기극을 짜맞춘 발상에는 나도 한 수 배웠지.
폰지 사기는 아주 오래된 수법이지만, 매기 양은 그걸 이 시대에 되살려냈어.
과찬이시네요, 그건 이미 볼장 다 본 아이템입니다. 그쪽이 흥미 있으시다면야 그런 컨셉으로 따로——
아니.
난 바로 그 사업을 원해.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대화의 흐름이 또다시 매기의 예측을 벗어나자, 그녀는 저절로 앉은 자세를 반듯하게 고쳤다.
"빈번히 일어나는 전쟁의 배후에 숨은 유명 과학자가, 유적 기술로 더티밤을 개발한다."
데킬라 사업이 사기인 이유는 이 테마에 진실인 부분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
......
하지만 내가 그걸 진실로 만들 수 있어.
매기는 잠깐 머리를 굴렸다. 이 사기극을 진짜로 만들기 위해 써야 할 자원과 자금을 어림잡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고작 페이퍼컴퍼니 하나에 실체를 부여하겠다고 그 큰 돈을 투자한다고요?
그건 시작에 불과해.
데킬라 제조 회사는 더 이상 없어. 오로지 갈라테아의 계열사만 남게 될 거야.
갈라테아...
즉 당신은 데킬라 사업의 투자자 명단에 눈독을 들인 거군요.
이건 의뢰의 첫 단계일 뿐이야.
......
그래, 이제부터가 의뢰의 중요 포인트라 이거죠?
"회색" 부인이 히죽 웃었다.
휴면 상태이던 스크린이 매기 앞에서 켜졌다.
스크린 위로 유라시아 대륙의 전체 지도가 나타났다. 국경선만 그려진 지도 위에 ELID 오염 농도가 표시돼 있었다.
빨강, 노랑, 초록색이 지도를 뒤덮었고, 군데군데 검은 반점이 찍혀 있었다.
이 세계는 2030년대 이전만 해도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지.
그렇죠, 그러다 북란도 사태로 모든 것이 변했고요.
그 후 인류는 두 파벌로 나뉘었어. 세상을 다시 하나로 잇고 싶은 자들과, 이대로 분리된 채 있고 싶은 자들.
인간은 논쟁을 벌이길 좋아하죠, 논쟁이 생기면 입장이란 게 생기니까.
잘 말했어. 하지만 자기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힘을 가진 자의 특권이야.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지.
아주 영리한 장사꾼이시군요.
반짝이는 점 하나가 대륙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구불구불한 곡선을 그리며 가로질렀다.
중간의 오염지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서.
지금 엄청나게 거대한 이익이 눈앞에 있어.
시베리아 생명선이 재가동되고 있지. 그쪽 관련으로 대리인이 하나 필요해.
그러니까... 대륙간 열차가 다시 달린다고요?
맞아, 오염지대를 넘어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소련과 독일을 하나로 잇는 대륙간 열차지.
...거참 위대한 기적이네요.
그런 초대형 프로젝트를 가지고 제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요?
또 다른 기적이지.
"회색" 부인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대륙간 열차에 견줄 수 있는 기적, 인형에게 있어서의 기적.
그날 밤, 브레멘의 세이프하우스.
매기?
매기는 문에 기댄 채 주저앉아 대답이 없었다.
......
그러다, 한참 지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어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너 표정이 엄청 무거운걸.
이번 건은 진짜 미쳤어.
......
하지만 우리가 거부할 권리는 없는 거지?
이미 휘말려 버렸어.
이제 와서 빠져나갈 길은 없어.
......
캐서린은 매기 곁으로 걸어와 그녀처럼 문 앞 바닥에 앉았다.
이번 일이 끝나고 살아남는다면, 어디 조용한 곳을 찾아서 한동안 숨어 살자.
...그래.
근데 얼마나 걸리는데?
빠르면 몇 달, 늦으면 몇 년 걸리겠지.
얼마나 걸리든, 우린 분명 살아남을 거야.
차가운 바닥에 앉은 캐서린과 매기는 서로에게 기댔다.
이렇게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이, 오래전부터 두 사람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부터, 처량한 신통방통 유령의 집을 지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쭉.
전체 대사 보기 (134줄)
모스크바의 세이프하우스.
시멘트 용해액을 몇 통이나 쓰고서야, 매기는 간신히 캐서린을 드럼통에서 꺼낼 수 있었다.
으윽... 피부가 까칠까칠해...
팔다리 멀쩡하게 나왔으니까 됐지.
야 이 구두쇠야, 용해액 좀 더 좋은 걸로 사면 어디 덧나냐?
에에, 네가 보낸 돈으로 산 건데, 돈 아끼면 더 좋아할 줄 알았지.
아 맞다, 내 돈! 당장 돌려줘!
헤에, 송금 메시지는 그렇게 감동적으로 써 놓더니...
"잘 있어, 매기..."
닥쳐 임마! 그땐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고!!!
캐서린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매기를 몇 번 때리고는, 바닥에 앉아 자신에게 잔뜩 기름칠을 했다.
그리고 흡족하게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래서, 그 의뢰란 게 어떤 거야?
......
아직 몰라.
모르면서 그걸 받았어?
아무튼 쉬운 일은 아니겠지.
의뢰를 받은 것만으로도 우릴 그 강도 패거리한테서 구해 줄 정도니까.
...의뢰인이 마냥 우리를 편하게 두진 않을 거야. 바로 목숨 값을 독촉하러 올 거라고.
걱정 마, 여태까지 우리가 노아의 방주를 놓친 적이 있었냐? 이번에도 똑같을 거야.
그래.
그럼 언제부터 일 시작해?
지금.
아... 그럼 뭐부터 하는데?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지금 저쪽한테 받은 건 "로열 카지노"란 의뢰명하고 익명 통신밖에 없어.
삐이——
매기는 발신자 추적이 불가능한 그 통신을 다시 재생했다.
<color=#00CCFF>너의 면접은 내일 9시에 잡았다. 좌표는 다음과 같다.</color>
확실히 추적이 전혀 안 되네...
이런 상대는 정말 오랜만이야...
보르 브 자코녜를 바로 순한 양으로 만드는 걸 보면 절대 만만한 인물이 아니겠지...
이거 완전 산 넘어 산이구만.
아니지, 이건 늑대 피하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거야.
그래도 단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네. серый, 이 낱말은 러시아어로 회색이란 뜻이야.
회색...
이 낱말에 다른 뜻이 숨어있을 것 같아. 천천히 껍질을 까봐야겠지.
옛날 시절이 떠오르네, 뭐 그 시절 손님들 중에 이만큼 진상은 없었지만.
며칠 후, 브레멘의 플로라 연구소.
약속한 면접 시간에 맞춰 매기는 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빌딩에 도착했다. 그리고 접수처 아가씨의 안내를 받아 대기 홀에 앉았다.
접수처 직원은 곧 돌아가고, 호화롭게 꾸며진 대기 홀에 매기 혼자만 남았다.
매기는 몇몇 팻말에서 "갈라테아"라는 단어를 발견했지만, 검색해 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매기 씨 맞으세요?
문 하나가 열리고, 하얀 제복을 입은 여성이 매기에게 손짓했다.
이쪽이요.
하얀 옷의 여성을 따라서 매기는 사무실에 들어와 푹신푹신한 소파 위에 앉았다.
매기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여성은 무덤덤하게 절차를 시작했다.
그럼 면접 시작할게요.
그래.
이름.
매기 폰지.
직업.
음... 사회공학자.
......
상대방은 무덤덤하게 매기의 정보를 키보드로 입력했다.
이제 댁 차례야.
전 "로열 카지노" 의뢰인이에요.
저번에 통신으로 연락했죠? 이제 제 시험을 통과해야 의뢰를 받을 수 있어요.
좋아, 그럼 시작하자고.
이미 시작했어요.
매기 씨, 당신이 가장 자신있는 방식으로 제가 스스로 의뢰를 당신에게 맡기도록 만들어 보세요.
어? 무슨 수를 써도 상관없어?
물론이죠.
시작하기 전에 하나 확실히 해 줘——
의뢰를 내게 맡길지 여부를 정하는 건 의뢰인뿐인 거, 맞지?
네.
그럼 이 시험은 애초에 통과가 불가능해.
......
어째서죠?
댁은 의뢰인이 아니니까.
저를 도발해서 의뢰를 맡기게 할 심산인가요?
실례가 지나치군요.
댁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어, 리오니 씨.
......
댁의 성문을 살짝 분석해서 외모와 대조하면 진짜 신분을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댁이 작년에 발표한 연구소 연말보고서는 참 훌륭했어.
그런데 말이지, 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댁이 그 수수께끼의 의뢰인이라기엔 약간 부족해 보여.
어제 그 대단하신 의뢰인은 꽤나 큰 골칫거리를 뚝딱 해결해 줬거든.
헛?
명찰을 급하게 가리는 걸 보니까 내가 그걸 훔쳐봤다고 생각하나 보지?
그런 건 기술 수준이 너무 낮잖아, 당신네 회사 스타일에 안 맞아.
......
좋아요.
한번 놀랐다가 정신을 차린 리오니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다시 침착한 얼굴을 되찾았다.
그럼——
짝짝짝——
손뼉 소리가 울리더니, 방 안의 전기가 잠시 나갔다.
매기의 눈이 어둠에 적응했을 때 리오니의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그 대신 어둠 속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color=#00CCFF>처음 만나는군, 매기 양.</color>
그쪽이 그 "회색" 씨?
<color=#00CCFF>나한테도 똑같은 수단을 써보지 그래?</color>
<color=#00CCFF>내 성문을 살짝 분석하고 외모와 대조해서?</color>
아뇨.
그래봤자 당신에겐 안 먹히겠죠.
아니면, 그렇게 해서 찾아낸 "그레이" 가 당신의 정체가 아닐 수도 있고.
<color=#00CCFF>자기 분수를 안다는 점은 마음에 들어, 매기 폰지 씨.</color>
<color=#00CCFF>아니면, 매기 폰지 씨의 조수 인형이라 불러야 할까?</color>
......
매기가 소파를 툭툭 두드리던 손가락이 굳었다.
<color=#00CCFF>걱정 말렴, 그런 배경도 네 경쟁력이니까.</color>
<color=#00CCFF>나는 원래 인형의 사기 솜씨에 회의적이었지만, 네가 폭스 시스터후드 소속 인형인 걸 알고 기대를 걸게 됐어.</color>
아직도 폭스 시스터후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니.
<color=#00CCFF>현대 인류는 잊어선 안 될 것들을 너무 많이 잊어버렸지.</color>
<color=#00CCFF>폭스 시스터후드는 3차대전 이후 몰락했다고 들었지만...</color>
<color=#00CCFF>설마 그 조직의 일원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color>
어쩐지 시원시원하게 캐서린을 구해주더라니.
<color=#00CCFF>가치 있는 인물한텐 항상 흔쾌히 베풀어 주지.</color>
폭스 시스터후드의 배경 말고는요?
뭘 보고 저희의 가치를 평가한 거죠?
<color=#00CCFF>총명한 사람과 대화하면 수고가 준다니까.</color>
"회색" 부인은 천천히 일어나 카메라 앞을 벗어나더니, 조금 뒤 커피 한 잔을 들고 돌아왔다.
<color=#00CCFF>네가 주도한 데킬라 사업, 아니지, 까놓고 데킬라 사기극이라고 불러도 될까?</color>
......
<color=#00CCFF>그것 때문에 보르 브 자코녜가 너희를 잡아 죽이려고 쫓아다닌 거겠지.</color>
아차, 들통나 버렸네.
헛웃음을 치고, 매기는 억지로 아무렇지 않다는 양 소파 등받이에 기대 다리를 꼬았다.
<color=#00CCFF>그 사기극을 짜맞춘 발상에는 나도 한 수 배웠지.</color>
<color=#00CCFF>폰지 사기는 아주 오래된 수법이지만, 매기 양은 그걸 이 시대에 되살려냈어.</color>
과찬이시네요, 그건 이미 볼장 다 본 아이템입니다. 그쪽이 흥미 있으시다면야 그런 컨셉으로 따로——
<color=#00CCFF>아니.</color>
<color=#00CCFF>난 바로 그 사업을 원해.</color>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대화의 흐름이 또다시 매기의 예측을 벗어나자, 그녀는 저절로 앉은 자세를 반듯하게 고쳤다.
<color=#00CCFF>"빈번히 일어나는 전쟁의 배후에 숨은 유명 과학자가, 유적 기술로 더티밤을 개발한다."</color>
<color=#00CCFF>데킬라 사업이 사기인 이유는 이 테마에 진실인 부분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color>
......
<color=#00CCFF>하지만 내가 그걸 진실로 만들 수 있어.</color>
매기는 잠깐 머리를 굴렸다. 이 사기극을 진짜로 만들기 위해 써야 할 자원과 자금을 어림잡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고작 페이퍼컴퍼니 하나에 실체를 부여하겠다고 그 큰 돈을 투자한다고요?
<color=#00CCFF>그건 시작에 불과해.</color>
<color=#00CCFF>데킬라 제조 회사는 더 이상 없어. 오로지 갈라테아의 계열사만 남게 될 거야.</color>
갈라테아...
즉 당신은 데킬라 사업의 투자자 명단에 눈독을 들인 거군요.
<color=#00CCFF>이건 의뢰의 첫 단계일 뿐이야.</color>
......
그래, 이제부터가 의뢰의 중요 포인트라 이거죠?
"회색" 부인이 히죽 웃었다.
휴면 상태이던 스크린이 매기 앞에서 켜졌다.
스크린 위로 유라시아 대륙의 전체 지도가 나타났다. 국경선만 그려진 지도 위에 ELID 오염 농도가 표시돼 있었다.
빨강, 노랑, 초록색이 지도를 뒤덮었고, 군데군데 검은 반점이 찍혀 있었다.
<color=#00CCFF>이 세계는 2030년대 이전만 해도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지.</color>
그렇죠, 그러다 북란도 사태로 모든 것이 변했고요.
<color=#00CCFF>그 후 인류는 두 파벌로 나뉘었어. 세상을 다시 하나로 잇고 싶은 자들과, 이대로 분리된 채 있고 싶은 자들.</color>
인간은 논쟁을 벌이길 좋아하죠, 논쟁이 생기면 입장이란 게 생기니까.
<color=#00CCFF>잘 말했어. 하지만 자기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힘을 가진 자의 특권이야.</color>
<color=#00CCFF>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지.</color>
아주 영리한 장사꾼이시군요.
반짝이는 점 하나가 대륙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구불구불한 곡선을 그리며 가로질렀다.
중간의 오염지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서.
<color=#00CCFF>지금 엄청나게 거대한 이익이 눈앞에 있어.</color>
<color=#00CCFF>시베리아 생명선이 재가동되고 있지. 그쪽 관련으로 대리인이 하나 필요해.</color>
그러니까... 대륙간 열차가 다시 달린다고요?
<color=#00CCFF>맞아, 오염지대를 넘어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소련과 독일을 하나로 잇는 대륙간 열차지.</color>
...거참 위대한 기적이네요.
그런 초대형 프로젝트를 가지고 제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요?
<color=#00CCFF>또 다른 기적이지.</color>
"회색" 부인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color=#00CCFF>대륙간 열차에 견줄 수 있는 기적, 인형에게 있어서의 기적.</color>
그날 밤, 브레멘의 세이프하우스.
매기?
매기는 문에 기댄 채 주저앉아 대답이 없었다.
......
그러다, 한참 지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어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너 표정이 엄청 무거운걸.
이번 건은 진짜 미쳤어.
......
하지만 우리가 거부할 권리는 없는 거지?
이미 휘말려 버렸어.
이제 와서 빠져나갈 길은 없어.
......
캐서린은 매기 곁으로 걸어와 그녀처럼 문 앞 바닥에 앉았다.
이번 일이 끝나고 살아남는다면, 어디 조용한 곳을 찾아서 한동안 숨어 살자.
...그래.
근데 얼마나 걸리는데?
빠르면 몇 달, 늦으면 몇 년 걸리겠지.
얼마나 걸리든, 우린 분명 살아남을 거야.
차가운 바닥에 앉은 캐서린과 매기는 서로에게 기댔다.
이렇게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이, 오래전부터 두 사람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부터, 처량한 신통방통 유령의 집을 지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