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노시엔느 1번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대륙간 열차 "미래호", 콜트 익스프레스 안.
매기는 테이블 한쪽에 앉아 미소를 짓고 맞은 편의 실루엣을 바라봤다.
그 실루엣 앞의 테이블 위엔 스페이드K가 술잔 밑에 깔려있었다.
이게 "그녀"의 위치입니다.
...알았어.
그럼 "로열 카지노" 의뢰의 보수 잔금은요?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그건 담당자가 따로 처리할 거야.
스페이드K는 매기의 질문에 대충 대답하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왔을 때처럼 아무 기척도 없이.
대륙간 열차 "미래호", 콜트 익스프레스 제일 끝 차량.
이제야 왔구나...
매기가 차 안에 나타난 것을 본 캐서린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밖엔 이상한 군대가 있지, 안엔 도적떼가 날뛰지,
차는 물까지 새지...
다신 이렇게 뒤지게 힘든 의뢰 안 받을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니콜라스의 돈을 탐내지 않는 건데.
...지금 말해봐야 쓸데없잖아. 칭얼대지 마.
그럼 좀 쓸데 있는 말을 해봐!
이제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어...
뭔 소리래...
아직 할 일이 잔뜩이거든?
됐어됐어, 말하지 마... 바로 머리가 지끈거리네.
너 이번 베팅은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아?
예전처럼 갑끼리 싸움 붙여놓고 이기는 쪽에 붙을 줄 알았는데.
...살다 보면 박쥐 포지션을 못 잡을 때도 있는 거지.
밖에 저 장갑차들은 또 뭐야?
저 정도로 큰 싸움은 본 적이 없어...
이제 왜 자기가 주도하는 건 말곤 천문학적 보수가 걸린 암시장 의뢰를 함부로 받지 말라는 건지 알겠지...?
난 그냥 소체를 바꾸고 편하게 말년을 보낼 돈을 벌고 싶은 거지, 저런 목숨을 막 내다버리는 놈들하고 어울리긴 싫어.
그치만 세상이 갈수록 엉망진창인걸.
우리가 싫다고 다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인간이란 교훈을 전혀 배울 줄 모르지.
엉성한 무기로 1차 대전을 치르고, 잘 만든 무기로 2차 대전을 치르고, 전자동화된 무기로 3차 대전을 치르고.
...이 기세로 4차 대전도 금방 올지 누가 알아.
...됐네요, 그딴 어느 날의 이야기 같은 건.
쉬익.
열차 안에서 캐서린의 모습이 사라졌다.
...과연 어느 날의 이야기일까?
뭐, 그때 가면 또 어떻게 살아날 구멍이 나오겠지. 지금 고민해서 뭐하겠어.
쉬익.
매기의 모습도 열차에서 사라졌다.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9 식당차.
쏴아...
빗물이 차창에 쏟아지며 침묵하는 심장을 두드렸다.
더이상 내리겠다고 조르는 사람은 없었다.
절망의 기운이 좁은 차 안에서 퍼져나갔다.
......
수잔나는 문 옆에 서 있었다. 문이 닫힐 때 그녀는 빗속에서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은 이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열차 안의 승객들은 서로 다친 정도를 살피면서 언제 찾아올지, 과연 찾아오기는 할지도 알 수 없는 여명을 조용히 기다렸다.
...누워 있는 게 편할 거야.
엘마는 류드밀라의 오른팔을 조심스레 감쌌다.
반면 류드밀라는 부상자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지, 묵묵한 시선으로 저 멀리의 등불을 바라보기만 했다.
...앉아서 안 쉬어도 돼?
류드밀라는 결국 참을성이 다한 듯 고개를 엘마에게 돌렸다.
내가 다친 건 팔이지 다리가 아니야.
그리고 이 정도 상처쯤 아무것도 아니야.
그치만... 원랜 내가 널 지켜줘야 했는걸.
류드밀라는 살짝 어이를 잃었다.
?
내가 언니잖아.
내가 널 지켜야지, "엄마"가 날 지켜준 것처럼.
쓸데없는 소리.
그 사람은 네 "어머니"가 아니야, 널 지켜주지도 않아.
..난 안 믿어.
넌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
?
날 네 언니라고 생각한 게 아니면 왜 날 구한 거야?
괜찮아, 네가 소련 요원이란 건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니까.
......
류드밀라는 원래 그 상황에선 그게 누구였든 구해줬을 거라 말하려 했다.
자신이 교관으로서 셀 수 없이 그래왔던 것처럼.
하지만 정말로 흄의 작품이라서 그랬던 거라면?
...그녀의 마지막 결말 역시 광기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광경일까?
내가 서머 가든에 너를 위해 열쇠를 하나 만들었어.
언젠가 내가 널 까먹어도, 누가 내 앞에서 류드밀라란 이름을 말하면 널 떠올릴 수 있어.
...기억의 앵커 포인트?
맞아, 내 마인드맵 안에선 열쇠 모양으로 나와.
조금 있으면 내가 널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언젠가 다시 기억해 낼 테니까 걱정 마.
......
흄 박사를 찾는 건 그만둬.
그 사람은 잊고 아무 직업이라도 찾아서 자유로운 인형으로 살아.
...안 돼.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데?
말했잖아, 나는 온전한 "내"가 되고 싶어.
내겐 모든 기억이 소중해. 기억이 나를 만들고, 내 곁에 있어주고, 나를 다독여줘.
내가 언제 또 나도 모르게 그 기억들을 잊어버린다면...
그건 기억 속 사람들에게 너무 불공평해!
그들에게 너무 미안해져...
기억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야.
그래서 뭐?
좋은 기억도 나, 나쁜 기억도 나야.
둘 다 있어야 온전한 내가 만들어지는 거야.
...그럼 맘대로 해.
응?
그럼 "흄 박사"에 대해서 말해줄 거야?
그 사람 이야기 꺼낼 때 짜증 안 부릴 거고?
...아니.
그래, 그럼 다른 얘기나 하자.
...어떻게 저게 구조대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
수잔나 언니가 보낸 신호에 응답도 했잖아?
류드밀라는 한숨을 뱉었다.
너무 빨리 왔으니까.
바르샤바에서 출발해서 얼마 가지도 않았고, 그렇게 큰 소동이 있었으니 바로 신고를 받은 걸 수도 있잖아...
정말 근처에 있던 구조대가 온 것이라 해도 저렇게 진형을 짜진 않아.
...저건 장갑부대의 공격진형이야.
장갑부대의... 공격진형?
어느 나라의 구조대도 공격진형을 펼치지는 않아.
의사는 보자기를 들고 다녀야지, 송곳이 아니라.
...그렇구나.
그때 한 목소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우리 류드밀라 교관 나리께서 혼자 뭘 그리 중얼거리고 계시나?
......
...아 그렇지, 나 방금 입으로 말하고 있던 걸 깜빡했네.
......
무슨 일인데?
폴이라는 인형이 널 찾더라.
그런데 감염자를 데리고 있어서 차 안의 인간들이 문을 안 열려고 해.
대륙간 열차 "미래호"의 F09-F10 객차간 연결구
류드밀라는 엘마와 매기를 데리고 차량 연결구로 갔다.
연결구 안의 인형들은 가운데를 비우고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고, 가운데엔 인형 폴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복사감염 증상이 뚜렷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두 눈을 꾹 감고 있는 것을 보아 맹인임이 확실했다.
폴 아저씨... 무슨 일인데요?
폴은 엘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마.
이게 사정이 복잡해...
그는 바로 고개를 류드밀라에게 돌렸다.
류드밀라 교관, 통신으로만 뵈었지만 당신이 지금 여기의 지휘를 맡고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류드밀라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여자아이와 철도 작업자 인형, 생전 처음 보는 조합이었다.
...로시타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원래부터 얘를 데리고 베를린에 치료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부탁합니다, 교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무거운 분위기에 불안한 듯, 폴이 감싸고 있던 소녀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폴... 됐어, 남한테 부탁하는 건 그만하자.
로시타의 목소리는 매우 허약했다.
괜찮아 로시타... 열차는 살짝 고장이 난 것뿐이야.
금방 멀쩡해질 거야.
싸... 싸우지 말고...
음...? 로시타...?
로시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사그라들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폴은 바로 무릎을 굽히고 로시타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 심해...
교관!
폴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의 커다란 램프는 표정을 지을 수 없었지만, 그의 초조한 감정이 잔뜩 전해졌다.
...저는 시베리아 생명선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교관. 저도 여기에서 쓸모가 있을 겁니다...
1호 차량의 의사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계속 류드밀라를 따라온 매기가 못 참고 입을 열었다. 얼굴에는 동정심까지 엿보였다.
엘마가 이 항상 히죽거리는 사기꾼에게서 처음으로 본 다른 표정이었다.
그 양반이 아직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특등석 객차의 방호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다. 아마 무사하겠지.
류드밀라는 고민하는 듯 통신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엘마는 폴의 손등을 토닥였다.
안심해요, 류드밀라한테 방법이 있을 거예요.
......
매기가 피식 웃었고, 그 옅은 미소가 다시 얼굴에 돌아왔다.
네가 교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 궁금하다.
슈퍼히어로쯤 되냐?
쿠웅!
커다란 굉음이 그들의 잡담을 끊었다.
...교관 나리, 아무리 성질이 나도 그렇게 큰 소릴 낼 필요는 없잖아.
류드밀라는 깐족대는 매기를 무시하고 바로 권총을 들고 9호차로 돌아갔다.
적이다!
모두 준비해!
처처척——!
차 안의 인형들은 곧바로 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그때, 한동안 안 보였던 그 모습이 무너진 바 카운터 옆에 나타났다.
여기 인형들 다 해체해!
시그너스가 이 쓰레기들을 넘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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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간 열차 "미래호", 콜트 익스프레스 안.
매기는 테이블 한쪽에 앉아 미소를 짓고 맞은 편의 실루엣을 바라봤다.
그 실루엣 앞의 테이블 위엔 스페이드K가 술잔 밑에 깔려있었다.
이게 "그녀"의 위치입니다.
...알았어.
그럼 "로열 카지노" 의뢰의 보수 잔금은요?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그건 담당자가 따로 처리할 거야.
스페이드K는 매기의 질문에 대충 대답하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왔을 때처럼 아무 기척도 없이.
대륙간 열차 "미래호", 콜트 익스프레스 제일 끝 차량.
이제야 왔구나...
매기가 차 안에 나타난 것을 본 캐서린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밖엔 이상한 군대가 있지, 안엔 도적떼가 날뛰지,
차는 물까지 새지...
다신 이렇게 뒤지게 힘든 의뢰 안 받을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니콜라스의 돈을 탐내지 않는 건데.
...지금 말해봐야 쓸데없잖아. 칭얼대지 마.
그럼 좀 쓸데 있는 말을 해봐!
이제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어...
뭔 소리래...
아직 할 일이 잔뜩이거든?
됐어됐어, 말하지 마... 바로 머리가 지끈거리네.
너 이번 베팅은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아?
예전처럼 갑끼리 싸움 붙여놓고 이기는 쪽에 붙을 줄 알았는데.
...살다 보면 박쥐 포지션을 못 잡을 때도 있는 거지.
밖에 저 장갑차들은 또 뭐야?
저 정도로 큰 싸움은 본 적이 없어...
이제 왜 자기가 주도하는 건 말곤 천문학적 보수가 걸린 암시장 의뢰를 함부로 받지 말라는 건지 알겠지...?
난 그냥 소체를 바꾸고 편하게 말년을 보낼 돈을 벌고 싶은 거지, 저런 목숨을 막 내다버리는 놈들하고 어울리긴 싫어.
그치만 세상이 갈수록 엉망진창인걸.
우리가 싫다고 다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인간이란 교훈을 전혀 배울 줄 모르지.
엉성한 무기로 1차 대전을 치르고, 잘 만든 무기로 2차 대전을 치르고, 전자동화된 무기로 3차 대전을 치르고.
...이 기세로 4차 대전도 금방 올지 누가 알아.
...됐네요, 그딴 어느 날의 이야기 같은 건.
쉬익.
열차 안에서 캐서린의 모습이 사라졌다.
...과연 어느 날의 이야기일까?
뭐, 그때 가면 또 어떻게 살아날 구멍이 나오겠지. 지금 고민해서 뭐하겠어.
쉬익.
매기의 모습도 열차에서 사라졌다.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9 식당차.
쏴아...
빗물이 차창에 쏟아지며 침묵하는 심장을 두드렸다.
더이상 내리겠다고 조르는 사람은 없었다.
절망의 기운이 좁은 차 안에서 퍼져나갔다.
......
수잔나는 문 옆에 서 있었다. 문이 닫힐 때 그녀는 빗속에서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은 이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열차 안의 승객들은 서로 다친 정도를 살피면서 언제 찾아올지, 과연 찾아오기는 할지도 알 수 없는 여명을 조용히 기다렸다.
...누워 있는 게 편할 거야.
엘마는 류드밀라의 오른팔을 조심스레 감쌌다.
반면 류드밀라는 부상자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지, 묵묵한 시선으로 저 멀리의 등불을 바라보기만 했다.
...앉아서 안 쉬어도 돼?
류드밀라는 결국 참을성이 다한 듯 고개를 엘마에게 돌렸다.
내가 다친 건 팔이지 다리가 아니야.
그리고 이 정도 상처쯤 아무것도 아니야.
그치만... 원랜 내가 널 지켜줘야 했는걸.
류드밀라는 살짝 어이를 잃었다.
?
내가 언니잖아.
내가 널 지켜야지, "엄마"가 날 지켜준 것처럼.
쓸데없는 소리.
그 사람은 네 "어머니"가 아니야, 널 지켜주지도 않아.
..난 안 믿어.
넌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
?
날 네 언니라고 생각한 게 아니면 왜 날 구한 거야?
<color=#66CDAA>괜찮아, 네가 소련 요원이란 건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니까.</color>
......
류드밀라는 원래 그 상황에선 그게 누구였든 구해줬을 거라 말하려 했다.
자신이 교관으로서 셀 수 없이 그래왔던 것처럼.
하지만 정말로 흄의 작품이라서 그랬던 거라면?
...그녀의 마지막 결말 역시 광기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광경일까?
<color=#66CDAA>내가 서머 가든에 너를 위해 열쇠를 하나 만들었어.</color>
<color=#66CDAA>언젠가 내가 널 까먹어도, 누가 내 앞에서 류드밀라란 이름을 말하면 널 떠올릴 수 있어.</color>
...기억의 앵커 포인트?
<color=#66CDAA>맞아, 내 마인드맵 안에선 열쇠 모양으로 나와.</color>
<color=#66CDAA>조금 있으면 내가 널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언젠가 다시 기억해 낼 테니까 걱정 마.</color>
......
흄 박사를 찾는 건 그만둬.
그 사람은 잊고 아무 직업이라도 찾아서 자유로운 인형으로 살아.
<color=#66CDAA>...안 돼.</color>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데?
<color=#66CDAA>말했잖아, 나는 온전한 "내"가 되고 싶어.</color>
<color=#66CDAA>내겐 모든 기억이 소중해. 기억이 나를 만들고, 내 곁에 있어주고, 나를 다독여줘.</color>
<color=#66CDAA>내가 언제 또 나도 모르게 그 기억들을 잊어버린다면...</color>
<color=#66CDAA>그건 기억 속 사람들에게 너무 불공평해!</color>
<color=#66CDAA>그들에게 너무 미안해져...</color>
기억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야.
<color=#66CDAA>그래서 뭐?</color>
<color=#66CDAA>좋은 기억도 나, 나쁜 기억도 나야.</color>
<color=#66CDAA>둘 다 있어야 온전한 내가 만들어지는 거야.</color>
...그럼 맘대로 해.
<color=#66CDAA>응?</color>
<color=#66CDAA>그럼 "흄 박사"에 대해서 말해줄 거야?</color>
<color=#66CDAA>그 사람 이야기 꺼낼 때 짜증 안 부릴 거고?</color>
...아니.
<color=#66CDAA>그래, 그럼 다른 얘기나 하자.</color>
<color=#66CDAA>...어떻게 저게 구조대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color>
<color=#66CDAA>수잔나 언니가 보낸 신호에 응답도 했잖아?</color>
류드밀라는 한숨을 뱉었다.
너무 빨리 왔으니까.
<color=#66CDAA>바르샤바에서 출발해서 얼마 가지도 않았고, 그렇게 큰 소동이 있었으니 바로 신고를 받은 걸 수도 있잖아...</color>
정말 근처에 있던 구조대가 온 것이라 해도 저렇게 진형을 짜진 않아.
...저건 장갑부대의 공격진형이야.
<color=#66CDAA>장갑부대의... 공격진형?</color>
어느 나라의 구조대도 공격진형을 펼치지는 않아.
의사는 보자기를 들고 다녀야지, 송곳이 아니라.
<color=#66CDAA>...그렇구나.</color>
그때 한 목소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우리 류드밀라 교관 나리께서 혼자 뭘 그리 중얼거리고 계시나?
......
<color=#66CDAA>...아 그렇지, 나 방금 입으로 말하고 있던 걸 깜빡했네.</color>
......
무슨 일인데?
폴이라는 인형이 널 찾더라.
그런데 감염자를 데리고 있어서 차 안의 인간들이 문을 안 열려고 해.
대륙간 열차 "미래호"의 F09-F10 객차간 연결구
류드밀라는 엘마와 매기를 데리고 차량 연결구로 갔다.
연결구 안의 인형들은 가운데를 비우고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고, 가운데엔 인형 폴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복사감염 증상이 뚜렷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두 눈을 꾹 감고 있는 것을 보아 맹인임이 확실했다.
폴 아저씨... 무슨 일인데요?
폴은 엘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마.
이게 사정이 복잡해...
그는 바로 고개를 류드밀라에게 돌렸다.
류드밀라 교관, 통신으로만 뵈었지만 당신이 지금 여기의 지휘를 맡고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류드밀라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여자아이와 철도 작업자 인형, 생전 처음 보는 조합이었다.
...로시타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원래부터 얘를 데리고 베를린에 치료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부탁합니다, 교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무거운 분위기에 불안한 듯, 폴이 감싸고 있던 소녀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폴... 됐어, 남한테 부탁하는 건 그만하자.
로시타의 목소리는 매우 허약했다.
괜찮아 로시타... 열차는 살짝 고장이 난 것뿐이야.
금방 멀쩡해질 거야.
싸... 싸우지 말고...
음...? 로시타...?
로시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사그라들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폴은 바로 무릎을 굽히고 로시타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 심해...
교관!
폴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의 커다란 램프는 표정을 지을 수 없었지만, 그의 초조한 감정이 잔뜩 전해졌다.
...저는 시베리아 생명선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교관. 저도 여기에서 쓸모가 있을 겁니다...
1호 차량의 의사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계속 류드밀라를 따라온 매기가 못 참고 입을 열었다. 얼굴에는 동정심까지 엿보였다.
엘마가 이 항상 히죽거리는 사기꾼에게서 처음으로 본 다른 표정이었다.
그 양반이 아직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특등석 객차의 방호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다. 아마 무사하겠지.
류드밀라는 고민하는 듯 통신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엘마는 폴의 손등을 토닥였다.
안심해요, 류드밀라한테 방법이 있을 거예요.
......
매기가 피식 웃었고, 그 옅은 미소가 다시 얼굴에 돌아왔다.
네가 교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 궁금하다.
슈퍼히어로쯤 되냐?
쿠웅!
커다란 굉음이 그들의 잡담을 끊었다.
...교관 나리, 아무리 성질이 나도 그렇게 큰 소릴 낼 필요는 없잖아.
류드밀라는 깐족대는 매기를 무시하고 바로 권총을 들고 9호차로 돌아갔다.
적이다!
모두 준비해!
처처척——!
차 안의 인형들은 곧바로 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그때, 한동안 안 보였던 그 모습이 무너진 바 카운터 옆에 나타났다.
여기 인형들 다 해체해!
시그너스가 이 쓰레기들을 넘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