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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 세로변형

21 시계

전투력 5짜리한테 어떻게 일을 끝까지 맡기겠나.

-54-B-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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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어둠.

시각, 청각, 촉각이 모두 사라졌다.

눈 앞엔 오로지 끝없는 어둠이 매기를 단단히 죄어왔다.

익숙하고도 기이한 고요함이었다.

매기는 자조하듯이 웃었다.

매기

...매너하고는. 친구하고 얘기 나누던 중인데 이딴 식으로 끊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자신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매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목소리를 냈다.

타레우스

...넌 우릴 배신했어.

그 목소리는 청각 시스템을 통해 매기의 귀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심장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매기

이봐요이봐요, 그건 억울하네요.

제 기억이 맞다면 우리 거래는 이미 다 끝났잖아요. 그 소련 요원을 찾아내 드리지 않았습니까?

타레우스

그럴듯하게 꾸며내 봐야 소용없어.

그자의 위치를 말해.

상대의 노여움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매기의 의식은 마치 누군가의 손 안에 잡혀 주물러지는 듯했다.

마인드맵에 격통이 흘렀지만, 매기는 여전히 거래할 때의 영업용 미소를 유지했다.

매기

그건 별도 요금을 내셔야죠.

요금만 내신다면야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수 있죠.

타레우스

내놔.

타레우스는 잠깐 망설였고, 매기는 몸의 구속이 살짝 느슨해진 것을 느꼈다.

매기

콜록,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얀 빛 알갱이가 매기의 손에서 떠올랐다.

그 알갱이는 천천히 타레우스에게 다가가며, 자기를 만지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반짝거렸다.

타레우스가 손을 내밀어 그 알갱이에 닿으려 할 때, 가벼운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매기

신통방통 유령의 집에 어서 오십쇼~

머리 위엔 천국 대신 지옥이 보여요

크리스탈 잔에 가득 찬 데킬라 위로

영혼의 본래 모습이 떠오르네요

반짝이는 액체가 혈관을 씻어내려요

쾌락을 내려놓고, 슬픔을 내려놓고

광기를 내려놓고, 침묵을 내려놓고

매기

이곳을 배회하는 망령들이여,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나의 부름에 응답하라...

딸랑...

맑은 방울 소리가 울리면서 불꽃이 춤을 추었다.

타레우스는 극장 중앙에 앉아 있고, 눈앞의 무대 위에선 뮤지컬이 공연 중이었다.

아리따운 성악가가 감정을 가득 담아 매혹적인 가사를 한 소절씩 불렀다——

슬픈 성악가

"잠결에 그가 내게 노래하고"

"꿈속에서 내 곁으로 다가오네"

"나를 부르고, 내 이름을 말하는 그 목소리"

"내가 또 꿈을 꾸는 걸까?"

"이제 난 알았어"

"오페라의 유령은 있다네"

"내 마음속에"

성악가는 감정 넘치는 눈으로 타레우스를 바라보았다. 불꽃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핥으며 뱀처럼 극장을 서서히 휘감았다.

슬픈 성악가

"나와 다시 한번 노래해 주오"

"우리의 기묘한 듀엣을"

"그대를 향한 나의 힘은"

"점점 강해져 가고"

타레우스

...닥쳐.

손바닥 위로 부유탄이 뭉쳐져, 눈부신 별처럼 빛나며 내쏘아졌다. 감수성을 모르는 병사가 유채화를 찢어버리듯이.

빛의 탄환은 성악가의 아름다운 얼굴을 찢어발겼다.

마치 불꽃에 삼켜지는 유채화처럼 성악가의 얼굴이 점점 녹아내렸다.

매기

손님께 드리는 블러디 메리입니다. 맛있게 즐겨주십쇼.

신선한 붉은 빛이 감도는 술잔이 그녀의 손에 생겨나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하늘까지 치솟은 불의 빛깔은 피처럼 붉은색이 됐고, 무대 위의 매기는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뚝——

타레우스가 냉소를 지었다.

타레우스

...어리석어.

부유포 하나가 또다시 손에서 떠올라 그대로 앞에 있는 핏빛 극장에 들이박았다.

콰앙!

극장은 모자이크처럼 산산조각났고, 그 조각들이 바닥이 안 보이는 레벨 2 플랫폼에 온통 떠다녔다.

눈앞이 온통 핏빛이었다.

피가 타레우스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얼굴의 피를 훔쳐 한 입 핥아보았다.

타레우스

피의 맛은 전혀 재현하지 않았네.

매기, 넌 정말 시대에 뒤떨어졌어.

매기

아, 그런가요?

딸랑...

다시 맑은 방울 소리가 울렸다.

폭스는 데킬라를 집었어요

심장과 폐가 불붙은 것처럼 타들어가요

거짓말과 욕망이 한데 모여 뒤섞이고

악마는 천사의 가면을 쓰고 미소짓지요

타레우스의 눈 앞엔 다시 새로운 빛깔들이 나타났다. 이번엔 호화로운 카지노 안이었다.

가지각색의 얼굴들이 옆을 지나갔다. 진한 향수 냄새, 매캐한 시가 냄새, 그리고 카지노 특유의 향기...

시끌벅적한 한가운데서 그녀는 손 안에 트럼프 카드를 쥐고 있었다.

카드를 뒤집어 무늬를 보았다.

스페이드K.

타레우스

...매기, 난 지금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이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웨이터

타레우스 씨, 아직 이번 판은 안 끝났습니다만?

타레우스

저리 꺼져!

콰직콰직——

타레우스가 손을 뻗자 카지노 안의 의자들이 한 곳에 모였다...

딜러

타레우스 씨... 어느 쪽에 베팅하시겠습니까?

콰앙——!

타레우스가 의자들을 조종해 미소짓는 딜러에게 포탄처럼 발사했다.

웨이터

타레우스 씨,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촤악——!

웨이터의 얼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경비원

타레우스 씨, 도박에 진 사람은 여기서 평생 나갈 수 없습니다.

퍼엉——!

쿵, 쿵, 쿵...

타레우스는 온몸에서 살기를 뿜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구석에 숨어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

타레우스 씨, 여기 엄청 재밌는 스파클링 와인이 있어요. 이름이 '알리마마와 40인의 술꾼'이래요.

한 입 맛보실래요?

타레우스

매기, 넌 니토의 개조를 뭐라고 생각하지?

매기

악마의 선물.

타레우스

아니, 저승사자야.

매기는 몸을 굴려 두꺼운 카지노 테이블 밑에 숨어, 테이블을 엄폐물로 삼으며 정문 쪽으로 포복 전진했다.

콰콰쾅——!

무거운 물건들이 우박처럼 테이블에 쏟아졌다.

매기가 주사위를 한 움큼 던지자, 그 순간 모든 빛깔이 타레우스의 눈앞에서 빠르게 멀어져가며 모든 물체의 형체가 무너져내렸다...

딸랑...

또 다시 맑은 방울 소리가 울렸다.

여기 데킬라 두 잔 주세요

한 잔은 사탄을 위하여, 한 잔은 나를 위하여

어둠 속에서 타레우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구역질을 일으키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 반사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똑... 똑...

미세한 물방울 소리 속에 타레우스 눈앞의 풍경이 점점 선명해졌다.

타레우스

...내가 널 너무 오냐오냐 해줬구나.

그곳은 한 버려진 공장이었다.

패러데우스의 공장.

모든 니토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처음의 기억.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썩어가며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시체들이 잔뜩 놓여 있는...

니토의 원재료 생산소였다.

타레우스

매기... 이번엔 시체 더미에 숨을 생각이야?

컨베이어 벨트 위... 시체 더미 속에서 커다란 위저 보드가 두둥실 떠올랐다.

이어서 허공에 포인터가 나타났다.

슥, 슥, 슥.

포인터가 말판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YES / NO

포인터가 두 대답 사이를 번갈아 가리켰다.

"미스 이브."

그 순간 타레우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타레우스

...매기, 해냈구나.

지지지직...

쿠웅——!

타레우스

타레우스의...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된 걸 축하해.

이번 부유포는 하나둘씩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아예 타레우스의 뒤에 포탄의 벽을 세웠다.

펑!

퍼엉!!

퍼어엉!!!

컨베이어 벨트 위의 시체들이 서서히 녹아내려 하나의 인형이 되었다.

매기

......

지금이라도 항복해도 될까?

타레우스

...될 것 같아?

매기

...난 이제 낼 카드가 없어. 류드밀라가 어디 있는진 정말로 몰라.

걔가 신호를 완전히 죽여버렸어.

타레우스

그걸 내가 믿을 거라 생각해?

매기

...정말이야, 황금보다도 진실한 말이야.

타레우스는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았다. 공장이 통째로 일그러졌다.

허공에 떠오른 부유탄들이 모두 매기에게 날아들었다.

매기

...이번 건 진짜 목숨을 건 장사구만.

매기는 눈을 감았다.

타앙!

침착한 총소리.

총탄은 타레우스의 기계팔에 명중했지만 그대로 튕겨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류드밀라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매기

댁이 여긴 왜 왔어?

류드밀라

전투력 5짜리한테 어떻게 일을 끝까지 맡기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