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γ1 타이스 명상곡
서머 가든'의 잠금이 해제됐습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상트페테르부르크, 인형 박람회.
햇살이 높은 발코니창을 넘어 새하얀 로비의 벽과 바닥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견학하러 온 인간들은 각 전시대 사이를 지나다니며 그 안의 인형들을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
그중 한 인형이 눈을 뜨고 사람들이 떠드는 쪽을 바라보았다. 얼마 안 떨어진 곳에 한 붉은 머리 소녀가 라켓을 열심히 휘두르고 있었다.
테니스공은 마치 소녀가 지배하는 기계처럼 스윙할 때마다 벽에 부딪히고 정확하게 소녀 앞으로 튕겨서 돌아왔다.
누군가 전시대에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자, 인형은 아쉬워하면서도 시선을 다시 돌리고 사전 설정된 동작에 따라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었다.
엄마! 쟤 바비인형 같다!
이건 무슨 모델이죠?
안목이 있으시군요, 이건 제2세대 인형의 최신 모델인 Q1A-MX형입니다.
Q1A-MX라는 건 누구? 나?
두 모녀가 손을 잡고 다가왔다. 천진난만한 여자아이가 까치발을 세우고 몸을 내밀어 전시대의 Q1A-MX 명찰을 단 인형을 만져보려고 했다.
때맞춰 매니저가 나타나, 난간을 치워 모녀가 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자아이는 순수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로 Q1A-MX를 지그시 보면서, 말랑하고 작은 손으로 조심조심 인형의 피부를 만져보았다.
Q1A-MX는 고개를 돌려 여자아이에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것도 사전 설정된 동작이었다.
반갑습니다, 두 아리따운 숙녀분. 제가 이 모델의 특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모델은 군용 레벨의 통신 모듈을 탑재하여 신호 장애가 심각한 오염지대에서도 식별 가능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답니다.
아이가 위치 추적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에 가더라도 걱정이 없겠죠.
우와, 멋지다!
전 딸한테 놀이 친구를 선물하고 싶어요, 모험 파트너 말고요.
...시끄러워.
Q1A-MX는 짜증이 나서 음성 차단을 켰다.
그것도 좋죠, 위치 추적뿐만 아니라 공부 친구로서도 최고의 선택이랍니다.
Q1A-MX의 마인드맵은 아주 특별하거든요. 서포트 모듈을 따로 주문제작해야 하는 다른 인형들과 달리, 따님의 데이터를 내장된 학습 모듈에 직접 반영하여 맞춤형 플랜을 구상할 수 있답니다.
게다가 따님의 성장에 맞춰서 끊임없이 학습하여, 변화하는 따님 상태에 계속해서 적응할 것입니다. 놀이 친구로도 이상적인 상품이죠.
그 말은 이 인형의 마인드맵이 계속 성장해서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맞는 말씀이죠.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는 언제든지 고객님께 마인드맵 교정 서비스를 제공해 드립니다.
언제든 마음에 안 드는 방향으로 변했다 싶으면 데려오세요. 고객님께서 원하시는 시기의 마인드맵으로 복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
Q1A-MX의 얼굴엔 만점짜리 미소가 걸려있었지만, 그녀의 사고는 이미 저 멀리 붕 떠 있었다.
나는 누구지...
그녀는 햇빛에 눈이 부셔, 팔을 들어 태양을 가렸다.
언뜻언뜻 햇빛이 커다란 창문을 넘어 로비의 대리석 바닥에 남긴 길쭉한 연황색 자국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기다란 주걱으로 유리병에서 긁어낸 얇은 버터처럼...
이때 그녀의 소매가 살짝 흘러내렸고, 햇빛에 비친 팔에 오밀조밀하게 새겨진 암호화 문자가 장신구처럼 드러났다.
......
그녀는 그중 눈에 띄는 글자 몇 개를 골라 마인드맵 공간에 검색해 보았다.
......
검색 중...
...erma...
엘마?
...loading...
...loading...
"서머 가든"의 잠금이 해제됐습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이동.
"서머 가든"
따뜻한 오후. 햇빛이 발코니 밖의 해바라기를 넘어 거실로 들어와, 나무 바닥에 길쭉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녀는 시선을 앞의 쟁반으로 돌렸다. 커피 한 잔이 놓인 쟁반에.
...뭘 하면 되는 거지?
바람이 기다란 관목 아치 밑으로 지나갔다.
아치 끝으로 하얀 대리석 조각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마치 여신의 모습 같은...
살짝 보고 오자.
저게 누구인지...
그녀는 걸음을 떼어 천천히 아치 밑을 지나갔다.
아치 끝에 도착해 대리석 여신상의 얼굴을 또렷하게 보려는 순간...
경보가 울렸고,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마, 내 커피는 아직이니?
...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
나는... 누구에게 커피를 갖다주려고 했지?
그녀가 어리둥절하던 중, 고운 모래알이 푸른 하늘에서 쏟아져 그녀의 어깨에, 그리고 검은 커피에 떨어졌다.
그녀는 재빨리 커피잔을 손으로 덮었지만, 이번엔 방 바닥이 통째로 기울어졌다.
마치 모래시계 바닥에 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모래가 그녀에게 쏟아졌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바닥에 넘어져, 기울어져 가라앉는 세상을 따라 미끄러졌다.
비뚤어지고 흔들리는 시야 속에 그 흐릿한 모습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엘마, 빨리 돌아오렴...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단다.
난...
그녀는 그 그림자를 붙잡으려 했다.
이거 놔! 무슨 짓이야!? 빨리 손 놓으라고!
팔목에 찌릿한 아픔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손을 풀었다.
으아아아앙!!! 엄마, 아파!
전시용으로 갖다놓은 것도 고장이 나는데 이런 걸 누가 마음 놓고 사요!?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 클레임 넣을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이건 정말 뜻밖의 사고입니다, 저희가 철저하게 점검할 테니...
......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방금 그 여자아이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그 커피잔을 움켜잡은 것처럼.
...커피잔?
아까 얼굴이 잘 안 보인 사람은 누구?
엘마는 또 누구?
내 이름인가?
[엘마] 입력 성공, 신분 인증 완료, 연동된 권한 잠금 해제. 현 플랫폼의 상태가 잠김에서 열림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나는 엘마야.
정말 진심으로 대단히 죄송합니다, 기분 많이 상하셨죠... 저희가 다른 전시대도 마음껏...
아 맞다, 여기 할인권입니다. 오늘 인형을 구입할 때 사용하실 수 있으니 부디 화를 푸시고...
매니저는 굽신굽신하며 여전히 성난 얼굴의 여사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돌아와서, 방금까지만 해도 공손했던 얼굴을 완전히 일그러뜨리고는 엘마를 거칠게 의자 위에서 끌어내려 유리 전시대 안에 집어넣었다.
이 쓰레기 인형, 또 장사를 망치면 정비소에 보낼 테다!
쾅! 유리 전시대의 문이 굳게 닫혔다.
전시대는 마치 결계처럼, 바깥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먹먹하고 부드럽게 바꿔놓았다.
엘마는 손을 살며시 유리에 갖다대어 차가운 온도가 손가락 마디마디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마인드맵 데이터 포맷 기록 1598회...
마인드맵 리부트 기록 2035회...
마인드맵 공간 잠금 해제 15.9%...
기억 잔여 데이터 동기화 12.8%...
......
익숙한 방, 누군가의 서재 같았다.
엘마, 이리 오렴.
이건 황새란다, 아주 우아한 물새지.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낮은 초목이 자라는 얕은 물에서 먹이를 잡는단다.
제가 알기론... 이 동물은 이미 멸종했어요...
그래, 그 재난 이후로 수많은 동물이 멸종했지.
우리에게 남은 건 박제뿐이야. 이건 새끼 황새의 박제란다.
이 새... 죽은 건가요?
그래, 박제로 만들기 전에 이미 과다한 피폭으로 죽었어.
......
그럼...
당신도 죽나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단다. 나도 미래의 어느 날에는 죽겠지.
흐릿한 모습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간은 누구나 목숨이 단 하나고, 영혼은 모두 죽음으로 떨어지는 도중이란다.
모래시계 안의 모래처럼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떨어지는 거지.
그럼 저는요? 저도 죽나요?
너는 내 딸이야, 영원히 죽지 않을 나의 딸.
네가 살아있는 한 나도 살아있는 거란다.
그럼 제 영혼은요?
......
엘마는 괴로움에 마인드맵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서재가 기울어지며 벽이 무너져내렸다...
황새의 박제가 그녀의 무릎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엘마, 정말로 기억을 잃은 거니?
...죄송해요.
아니, 네가 기억을 잃을 리가 없어...
네 기억은 인간과 마찬가지란다. 결코 잃어버릴 수 없어. 단순히 잊을 뿐이야...
그럼 어떻게 기억해내죠?
앵커 포인트.
보물을 찾으러 넓은 바다를 가로질렀던 배들의 이야기 아직 기억하지?
네.
그런 커다란 배들은 풍랑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정하기 위해 바다에 닻을 내리지...
내가 너의 마인드맵에 남긴 첫 번째 앵커 포인트는... 바로 네 이름이란다.
...그럼 제가 마인드맵에 "엘마"를 되새기면 이 구역의 잠금을 풀 수 있다는 거네요.
그래.
그럼 나머지 기억은요?
그건 너 스스로 찾아야 해.
그 목소리는 점점 옅어져 음절 하나조차 알아듣기 힘들어졌다.
......
......
죄송합니다, 당신의 마인드맵 문제는 고칠 수가 없어요.
...복구해도 안 되나요?
그 질문은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정말 자신의 제작자의 이름이 안 떠오르나요?
...그러니까 아마...
......
또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렸어...
필기장에 앵커 포인트를 기록하는 것만으론 역시 불안해...
내 소체에 첫번째 앵커 포인트를 새겨둬야겠어. e, r, m, a.
소체에 있는 이 암호화 문자들이 나의 앵커 포인트였구나.
응? 저들은 뭘 하려는 거지?
복구인가? 괜찮아... 이젠 상관 없어...
...복구 프로세스 종료, 마인드맵 레벨2 플랫폼으로 이전.
신분 대조 중...
모델명 Q1A-MX, 복구 완료. 통용 시스템 덮어쓰기 완료, 마인드맵 데이터 포맷 완료, 부팅 대기.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
엘마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 눈앞의 유리판이 깨져 바닥에 쏟아졌고, 자기 손 안에는 어디서 뜯어낸 건지 모를 센서가 쥐여 있었다.
...어?
경비원! 경비원! 인형이 인간을 공격한다!
으아아아아악!!
깨진 유리조각에 다친 인간들이 혼비백산 도망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엘마는 유리 전시대에서 그대로 걸어나왔고, 경비원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기술팀! 기술팀 좀 불러와! 여기 Q1A-MX가 폭주했다!
...Q1A-MX라는 이름은 맘에 안 들어, 엘마가 더 좋아.
분명 어제 데이터 초기화랑 테스트를 끝냈는데...
기술팀 이 밥만 축내는 것들!!
......
또 그럴 셈인가?
귀찮아... 싫어, 또 기억을 잃는 건 싫어...
보안 인형 싹 다 전원 켜! 반드시 붙잡아!
작업복을 입은 인간들이 계속해서 엘마에게 다가왔다. 유일한 목표인 그녀는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더 큰 혼란이 필요했다, 그래야 난리 속에 숨어 이 위험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퉁, 퉁퉁——
오른쪽에 그 붉은 머리 인형이 아직도 설정된 패턴에 따라 정확하게 라켓을 휘둘러 테니스공을 고정된 경로로 왕복하게 하고 있었다.
주위의 혼란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얼굴엔 활기차고 자신 있는 미소가 넘쳤다.
너로 하자...
......
설명할 새 없이, 엘마는 상대방이 손에 쥔 라켓을 잡아뺏었다, 손이 서로 닿은 순간, 뭔가 비슷한 것을 느꼈다...
등 뒤에 숨어 있는 실들, 무언가가 뒤에서 저 실들을 움직여 인형의 움직임을 조종하고 있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엘마는 인형 마인드맵 안의 실들을 잘랐다.
테니스공은 더이상 정확하게 라켓 앞에 돌아오지 않았고, 쓸쓸하게 두 인형 발치에 굴러와 멈췄다.
......
응? 지금 무슨 일이야?
...다신 조종받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불법 행위를 멈춰라! 즉시 정비소로 복귀하라!
...싫어.
엘마는 라켓으로 보안 인형이 그녀에게 뻗은 손을 막았다.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그녀는 이 보안 인형 역시 자신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 정해진 규칙에 묶인 꼭두각시일 뿐.
그녀는 방금 했던 것처럼 보안 인형을 옭아맨 실들을 잘랐다.
쨍그랑! 보안 인형이 털썩 쓰러지며 전시대의 유리를 몽땅 깨뜨렸다. 유리조각이 엘마에게 쏟아졌다.
......
...지...지직...
시스템 고장! 경고, 시스템 고장!
보안 인형이 뻗었어! 인간이 나서야 해!
모두 주의! 적색 경보! 저 Q1A-MX는 일정 수준의 인형 파괴 능력을 지녔다!
더 많은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엘마 쪽으로 몰려왔다.
엘마는 보안 인형을 밀쳐내고 계속 출구를 찾았다.
마인드맵 공간 잠금 해제 16.2%...
기억 잔존 데이터 동기화 13.4%....
잠금 해제율이 올랐어...
...예전의 "나"도 이렇게 능력을 쓸 수 있었구나.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되찾겠어.
계속 몽롱함 속에서 헤매는 건...
너무 괴로워...
붙잡았다!
혼란스러운 고함과 비명 소리 사이에 갇힌 엘마는 다른 존재를 감지했다.
감정의 기복은 없이, 사해처럼 고요하게——
아직도 전시대 안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인형들의 머리 위에, 높이 걸려있는 실들이 그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사람 더 붙어! 끌고 가!
끌려가면 안 돼... 이제 겨우 기억 일부분을 개방했는데...
모르겠다...
해보는 수밖에...
엘마는 잡념을 뿌리치고, 생기가 없는 실들을 몽땅 잘랐다.
쨍그랑! 전시대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일부 인형은 전시대에서 굴러떨어져 유리조각 위에 주저앉은 채 어리둥절했고, 어떤 인형은 바로 당황해서 자리를 박차고 내달렸다...
박람회장의 혼란이 급격히 가중되었다.
공공장소에서 뛰지 마세요!
거기 멈춰요!
내 라켓... 어디 갔지?
혼란에 빠진 인형들이 스태프들의 포위망을 무너뜨렸고, 엘마 옆에 있는 인형과 인간도 날뛰는 인파들에 떠밀렸다.
엘마는 땅을 짚고서 일어나 박람회장 밖으로 달렸다...
경보! 경보!
전원 수행 중인 작업을 멈추고 놈들을 막아!
전체 대사 보기 (143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형 박람회.
햇살이 높은 발코니창을 넘어 새하얀 로비의 벽과 바닥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견학하러 온 인간들은 각 전시대 사이를 지나다니며 그 안의 인형들을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
그중 한 인형이 눈을 뜨고 사람들이 떠드는 쪽을 바라보았다. 얼마 안 떨어진 곳에 한 붉은 머리 소녀가 라켓을 열심히 휘두르고 있었다.
테니스공은 마치 소녀가 지배하는 기계처럼 스윙할 때마다 벽에 부딪히고 정확하게 소녀 앞으로 튕겨서 돌아왔다.
누군가 전시대에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자, 인형은 아쉬워하면서도 시선을 다시 돌리고 사전 설정된 동작에 따라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었다.
엄마! 쟤 바비인형 같다!
이건 무슨 모델이죠?
안목이 있으시군요, 이건 제2세대 인형의 최신 모델인 Q1A-MX형입니다.
<color=#A9A9A9>Q1A-MX라는 건 누구? 나?</color>
두 모녀가 손을 잡고 다가왔다. 천진난만한 여자아이가 까치발을 세우고 몸을 내밀어 전시대의 Q1A-MX 명찰을 단 인형을 만져보려고 했다.
때맞춰 매니저가 나타나, 난간을 치워 모녀가 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자아이는 순수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로 Q1A-MX를 지그시 보면서, 말랑하고 작은 손으로 조심조심 인형의 피부를 만져보았다.
Q1A-MX는 고개를 돌려 여자아이에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것도 사전 설정된 동작이었다.
반갑습니다, 두 아리따운 숙녀분. 제가 이 모델의 특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모델은 군용 레벨의 통신 모듈을 탑재하여 신호 장애가 심각한 오염지대에서도 식별 가능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답니다.
아이가 위치 추적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에 가더라도 걱정이 없겠죠.
우와, 멋지다!
전 딸한테 놀이 친구를 선물하고 싶어요, 모험 파트너 말고요.
<color=#A9A9A9>...시끄러워.</color>
Q1A-MX는 짜증이 나서 음성 차단을 켰다.
<size=25>그것도 좋죠, 위치 추적뿐만 아니라 공부 친구로서도 최고의 선택이랍니다.</size>
<size=25>Q1A-MX의 마인드맵은 아주 특별하거든요. 서포트 모듈을 따로 주문제작해야 하는 다른 인형들과 달리, 따님의 데이터를 내장된 학습 모듈에 직접 반영하여 맞춤형 플랜을 구상할 수 있답니다.</size>
<size=25>게다가 따님의 성장에 맞춰서 끊임없이 학습하여, 변화하는 따님 상태에 계속해서 적응할 것입니다. 놀이 친구로도 이상적인 상품이죠.</size>
<size=25>그 말은 이 인형의 마인드맵이 계속 성장해서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size>
<size=25>맞는 말씀이죠.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는 언제든지 고객님께 마인드맵 교정 서비스를 제공해 드립니다.</size>
<size=25>언제든 마음에 안 드는 방향으로 변했다 싶으면 데려오세요. 고객님께서 원하시는 시기의 마인드맵으로 복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size>
......
Q1A-MX의 얼굴엔 만점짜리 미소가 걸려있었지만, 그녀의 사고는 이미 저 멀리 붕 떠 있었다.
나는 누구지...
그녀는 햇빛에 눈이 부셔, 팔을 들어 태양을 가렸다.
언뜻언뜻 햇빛이 커다란 창문을 넘어 로비의 대리석 바닥에 남긴 길쭉한 연황색 자국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기다란 주걱으로 유리병에서 긁어낸 얇은 버터처럼...
이때 그녀의 소매가 살짝 흘러내렸고, 햇빛에 비친 팔에 오밀조밀하게 새겨진 암호화 문자가 장신구처럼 드러났다.
......
그녀는 그중 눈에 띄는 글자 몇 개를 골라 마인드맵 공간에 검색해 보았다.
......
검색 중...
...erma...
엘마?
...loading...
...loading...
<color=#FFFF00>"서머 가든"의 잠금이 해제됐습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color>
이동.
"서머 가든"
따뜻한 오후. 햇빛이 발코니 밖의 해바라기를 넘어 거실로 들어와, 나무 바닥에 길쭉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녀는 시선을 앞의 쟁반으로 돌렸다. 커피 한 잔이 놓인 쟁반에.
...뭘 하면 되는 거지?
바람이 기다란 관목 아치 밑으로 지나갔다.
아치 끝으로 하얀 대리석 조각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마치 여신의 모습 같은...
살짝 보고 오자.
저게 누구인지...
그녀는 걸음을 떼어 천천히 아치 밑을 지나갔다.
아치 끝에 도착해 대리석 여신상의 얼굴을 또렷하게 보려는 순간...
경보가 울렸고,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color=#00CCFF>엘마, 내 커피는 아직이니?</color>
...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
나는... 누구에게 커피를 갖다주려고 했지?
그녀가 어리둥절하던 중, 고운 모래알이 푸른 하늘에서 쏟아져 그녀의 어깨에, 그리고 검은 커피에 떨어졌다.
그녀는 재빨리 커피잔을 손으로 덮었지만, 이번엔 방 바닥이 통째로 기울어졌다.
마치 모래시계 바닥에 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모래가 그녀에게 쏟아졌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바닥에 넘어져, 기울어져 가라앉는 세상을 따라 미끄러졌다.
비뚤어지고 흔들리는 시야 속에 그 흐릿한 모습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color=#00CCFF>엘마, 빨리 돌아오렴...</color>
<color=#00CCFF>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단다.</color>
난...
그녀는 그 그림자를 붙잡으려 했다.
<size=50>이거 놔! 무슨 짓이야!? 빨리 손 놓으라고!</size>
팔목에 찌릿한 아픔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손을 풀었다.
으아아아앙!!! 엄마, 아파!
전시용으로 갖다놓은 것도 고장이 나는데 이런 걸 누가 마음 놓고 사요!?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 클레임 넣을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이건 정말 뜻밖의 사고입니다, 저희가 철저하게 점검할 테니...
......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방금 그 여자아이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그 커피잔을 움켜잡은 것처럼.
...커피잔?
아까 얼굴이 잘 안 보인 사람은 누구?
엘마는 또 누구?
내 이름인가?
<color=#FFFF00>[엘마] 입력 성공, 신분 인증 완료, 연동된 권한 잠금 해제. 현 플랫폼의 상태가 잠김에서 열림으로 전환되었습니다.</color>
...나는 엘마야.
정말 진심으로 대단히 죄송합니다, 기분 많이 상하셨죠... 저희가 다른 전시대도 마음껏...
아 맞다, 여기 할인권입니다. 오늘 인형을 구입할 때 사용하실 수 있으니 부디 화를 푸시고...
매니저는 굽신굽신하며 여전히 성난 얼굴의 여사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돌아와서, 방금까지만 해도 공손했던 얼굴을 완전히 일그러뜨리고는 엘마를 거칠게 의자 위에서 끌어내려 유리 전시대 안에 집어넣었다.
이 쓰레기 인형, 또 장사를 망치면 정비소에 보낼 테다!
쾅! 유리 전시대의 문이 굳게 닫혔다.
전시대는 마치 결계처럼, 바깥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먹먹하고 부드럽게 바꿔놓았다.
엘마는 손을 살며시 유리에 갖다대어 차가운 온도가 손가락 마디마디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color=#FFFF00>마인드맵 데이터 포맷 기록 1598회...</color>
<color=#FFFF00>마인드맵 리부트 기록 2035회...</color>
<color=#FFFF00>마인드맵 공간 잠금 해제 15.9%...</color>
<color=#FFFF00>기억 잔여 데이터 동기화 12.8%...</color>
......
익숙한 방, 누군가의 서재 같았다.
엘마, 이리 오렴.
이건 황새란다, 아주 우아한 물새지.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낮은 초목이 자라는 얕은 물에서 먹이를 잡는단다.
제가 알기론... 이 동물은 이미 멸종했어요...
그래, 그 재난 이후로 수많은 동물이 멸종했지.
우리에게 남은 건 박제뿐이야. 이건 새끼 황새의 박제란다.
이 새... 죽은 건가요?
그래, 박제로 만들기 전에 이미 과다한 피폭으로 죽었어.
......
그럼...
당신도 죽나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단다. 나도 미래의 어느 날에는 죽겠지.
흐릿한 모습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간은 누구나 목숨이 단 하나고, 영혼은 모두 죽음으로 떨어지는 도중이란다.
모래시계 안의 모래처럼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떨어지는 거지.
그럼 저는요? 저도 죽나요?
너는 내 딸이야, 영원히 죽지 않을 나의 딸.
네가 살아있는 한 나도 살아있는 거란다.
그럼 제 영혼은요?
......
엘마는 괴로움에 마인드맵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서재가 기울어지며 벽이 무너져내렸다...
황새의 박제가 그녀의 무릎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color=#00CCFF>엘마, 정말로 기억을 잃은 거니?</color>
...죄송해요.
<color=#00CCFF>아니, 네가 기억을 잃을 리가 없어...</color>
<color=#00CCFF>네 기억은 인간과 마찬가지란다. 결코 잃어버릴 수 없어. 단순히 잊을 뿐이야...</color>
그럼 어떻게 기억해내죠?
<color=#00CCFF>앵커 포인트.</color>
<color=#00CCFF>보물을 찾으러 넓은 바다를 가로질렀던 배들의 이야기 아직 기억하지?</color>
네.
<color=#00CCFF>그런 커다란 배들은 풍랑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정하기 위해 바다에 닻을 내리지...</color>
<color=#00CCFF>내가 너의 마인드맵에 남긴 첫 번째 앵커 포인트는... 바로 네 이름이란다.</color>
...그럼 제가 마인드맵에 "엘마"를 되새기면 이 구역의 잠금을 풀 수 있다는 거네요.
<color=#00CCFF>그래.</color>
그럼 나머지 기억은요?
<color=#00CCFF>그건 너 스스로 찾아야 해.</color>
그 목소리는 점점 옅어져 음절 하나조차 알아듣기 힘들어졌다.
......
......
죄송합니다, 당신의 마인드맵 문제는 고칠 수가 없어요.
...복구해도 안 되나요?
그 질문은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정말 자신의 제작자의 이름이 안 떠오르나요?
...그러니까 아마...
......
또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렸어...
필기장에 앵커 포인트를 기록하는 것만으론 역시 불안해...
내 소체에 첫번째 앵커 포인트를 새겨둬야겠어. e, r, m, a.
소체에 있는 이 암호화 문자들이 나의 앵커 포인트였구나.
응? 저들은 뭘 하려는 거지?
복구인가? 괜찮아... 이젠 상관 없어...
<color=#FFFF00>...복구 프로세스 종료, 마인드맵 레벨2 플랫폼으로 이전.</color>
<color=#FFFF00>신분 대조 중...</color>
<color=#FFFF00>모델명 Q1A-MX, 복구 완료. 통용 시스템 덮어쓰기 완료, 마인드맵 데이터 포맷 완료, 부팅 대기.</color>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
엘마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 눈앞의 유리판이 깨져 바닥에 쏟아졌고, 자기 손 안에는 어디서 뜯어낸 건지 모를 센서가 쥐여 있었다.
...어?
<size=50>경비원! 경비원! 인형이 인간을 공격한다!</size>
으아아아아악!!
깨진 유리조각에 다친 인간들이 혼비백산 도망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엘마는 유리 전시대에서 그대로 걸어나왔고, 경비원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기술팀! 기술팀 좀 불러와! 여기 Q1A-MX가 폭주했다!
...Q1A-MX라는 이름은 맘에 안 들어, 엘마가 더 좋아.
분명 어제 데이터 초기화랑 테스트를 끝냈는데...
기술팀 이 밥만 축내는 것들!!
......
또 그럴 셈인가?
귀찮아... 싫어, 또 기억을 잃는 건 싫어...
보안 인형 싹 다 전원 켜! 반드시 붙잡아!
작업복을 입은 인간들이 계속해서 엘마에게 다가왔다. 유일한 목표인 그녀는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더 큰 혼란이 필요했다, 그래야 난리 속에 숨어 이 위험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퉁, 퉁퉁——
오른쪽에 그 붉은 머리 인형이 아직도 설정된 패턴에 따라 정확하게 라켓을 휘둘러 테니스공을 고정된 경로로 왕복하게 하고 있었다.
주위의 혼란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얼굴엔 활기차고 자신 있는 미소가 넘쳤다.
<color=#A9A9A9>너로 하자...</color>
......
설명할 새 없이, 엘마는 상대방이 손에 쥔 라켓을 잡아뺏었다, 손이 서로 닿은 순간, 뭔가 비슷한 것을 느꼈다...
등 뒤에 숨어 있는 실들, 무언가가 뒤에서 저 실들을 움직여 인형의 움직임을 조종하고 있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엘마는 인형 마인드맵 안의 실들을 잘랐다.
테니스공은 더이상 정확하게 라켓 앞에 돌아오지 않았고, 쓸쓸하게 두 인형 발치에 굴러와 멈췄다.
......
응? 지금 무슨 일이야?
...다신 조종받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불법 행위를 멈춰라! 즉시 정비소로 복귀하라!
...싫어.
엘마는 라켓으로 보안 인형이 그녀에게 뻗은 손을 막았다.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그녀는 이 보안 인형 역시 자신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 정해진 규칙에 묶인 꼭두각시일 뿐.
그녀는 방금 했던 것처럼 보안 인형을 옭아맨 실들을 잘랐다.
쨍그랑! 보안 인형이 털썩 쓰러지며 전시대의 유리를 몽땅 깨뜨렸다. 유리조각이 엘마에게 쏟아졌다.
......
...지...지직...
시스템 고장! 경고, 시스템 고장!
<size=50>보안 인형이 뻗었어! 인간이 나서야 해!</size>
<size=50>모두 주의! 적색 경보! 저 Q1A-MX는 일정 수준의 인형 파괴 능력을 지녔다!</size>
더 많은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엘마 쪽으로 몰려왔다.
엘마는 보안 인형을 밀쳐내고 계속 출구를 찾았다.
<color=#FFFF00>마인드맵 공간 잠금 해제 16.2%...</color>
<color=#FFFF00>기억 잔존 데이터 동기화 13.4%....</color>
잠금 해제율이 올랐어...
...예전의 "나"도 이렇게 능력을 쓸 수 있었구나.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되찾겠어.
계속 몽롱함 속에서 헤매는 건...
너무 괴로워...
<size=50>붙잡았다!</size>
혼란스러운 고함과 비명 소리 사이에 갇힌 엘마는 다른 존재를 감지했다.
감정의 기복은 없이, 사해처럼 고요하게——
아직도 전시대 안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인형들의 머리 위에, 높이 걸려있는 실들이 그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size=50>사람 더 붙어! 끌고 가!</size>
끌려가면 안 돼... 이제 겨우 기억 일부분을 개방했는데...
모르겠다...
해보는 수밖에...
엘마는 잡념을 뿌리치고, 생기가 없는 실들을 몽땅 잘랐다.
쨍그랑! 전시대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일부 인형은 전시대에서 굴러떨어져 유리조각 위에 주저앉은 채 어리둥절했고, 어떤 인형은 바로 당황해서 자리를 박차고 내달렸다...
박람회장의 혼란이 급격히 가중되었다.
공공장소에서 뛰지 마세요!
거기 멈춰요!
내 라켓... 어디 갔지?
혼란에 빠진 인형들이 스태프들의 포위망을 무너뜨렸고, 엘마 옆에 있는 인형과 인간도 날뛰는 인파들에 떠밀렸다.
엘마는 땅을 짚고서 일어나 박람회장 밖으로 달렸다...
<size=50>경보! 경보!</size>
<size=60>전원 수행 중인 작업을 멈추고 놈들을 막아!</s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