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화장실
내 이름은 말이지... 류바 할멈이다――!!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9호 식당차의 화장실.
약 10분 전, 누군가가 이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슬그머니 "청소 중" 팻말을 걸었다.
지금 화장실 안에는 두 명이 있었다.
키가 작은 인형과, 그런 그녀를 총구로 위협하는 키 큰 인형이.
정체를 밝혀라.
......
엘마는 머리의 후드를 벗었다.
......
......
얼굴 말고 신분.
넌 누구지? 무슨 목적으로 열차에 탑승했지?
다짜고짜 저를 화장실로 끌고 오더니...
한다는 말이 제가 누구냐고 묻는 거예요?
요즘 강도는 다 이렇게 막무가내인가요?
류드밀라는 대꾸할 시간도 아까워, 바로 해킹을 시도했다.
삑——
...침투 불가능. 역시 너인가.
네? 당신은 제가 누군지 알아요?
언제까지 연기할 셈이지, 클럽3?
그 시각, 콜트 익스프레스.
류드밀라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림자가 갑자기 몸을 쭉 내밀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옷깃을 붙잡았다.
——손 놔요!
......
얼른 손 안 놓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어, 저기, 손님?
클럽3 손님, 우선 진정하실래요?
일단 엘마 흄에 대해서, 저희 측엔 관련 거래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럴 리 없어요, 여기에 제가 원하는 정보가 있다고요.
손님, 고객으로서 진상 부리는 거 좋지 않습......?
......
클럽3가 돌연 다시 조용해졌다.
같은 시각, 식당차의 화장실 안.
엘마의 한쪽 팔은 류드밀라가 아주 살짝 힘을 줬는데도 쑥 뽑힌 상태였다.
...시킨대로 콜트 익스프레스 안에선 입 다물었어요.
그러니까 제 팔 다시 끼워 줄래요?
왜 엘마 흄을 찾고 있지?
넌 "흄"과 무슨 관계야?
엘마 흄이 누군지 알아요?
...일단 흔한 성씨는 아니지.
그럼, 엘마 흄은 몰라도 다른 흄은 안다는 뜻이네요?
그 정보 저랑 거래해 줄 수 있어요?
류드밀라는 잠시 넋을 잃었다. 지금 눈앞의 이 인형 소녀는 문자 그대로 거지 꼴에 한쪽 팔은 뽑힌 데다, 이마에는 총구까지 겨눠져 있었다.
해킹이 불가능한 마인드맵 외에는 눈에 띄는 점 없고, 무력도 류드밀라 자신보다 훨씬 형편없어 보였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
제 이름은 엘마 흄이에요.
당신은 저를 모르는 거 같은데 왜 그렇게 냅다 여기로 끌고와서 총을 꺼내 겨눌 만큼 예민하게 굴어요?
혹시...
......?
혹시, 당신도 성이 흄인가요?
성씨가 "흄"인 사람은 다 추격당하는 입장이라, 당신은 정보가 유출되는 걸 막아서 "흄"을 지키려는 건가요?
...지금 날 모욕하는 거냐?
......
우선 제 이유부터 설명할게요.
류드밀라의 머릿속 경종이 맹렬하게 울렸다.
하지만 엘마는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고, 그저 계속해서 류드밀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저 조금 무덤덤해보이는 금안으로.
흄은 제 주인, 혹은 제 "엄마"의 성...일 거예요.
저는 기억을 잃어서 그 사람을 찾아야 해요.
기억을 잃기 전 남겨진 단서가 "콜트 익스프레스"뿐이었고요.
하지만... 당신도 같은 자리에 있었어서 알겠지만, 쓸 만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어요.
......
저 말을 믿어도 될까?
아주 말도 안 되지는 않아. 이렇게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 것은 확실히 그 박사다운 짓이야.
"새벽별"이 추락했다.
......!
류드밀라는 고개를 숙여 그 소녀의 눈을 응시했다.
이 타이밍에...?
...아니야, 그렇다고 이 인형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돼. 마인드맵을 해킹할 수도 없고, 이런 우연도 함정일 가능성이 있어... 모든 요소를 경계해야 해.
타——앙!!!
그때, 옆 객차에서 꽤나 익숙한 굉음이 들려왔다.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9호 식당차.
갑작스런 큰 소리에 승객들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했고, 수잔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빠르게 승객들을 진정시켰다.
여러분, 진정해 주십시오. 제가 확인해보겠습――
쾅!!
수잔나가 문에 다가가기도 전에 밖의 누군가가 식당차의 문을 열어젖혔다.
――!!!
절뚝절뚝절뚝...
문을 열어젖힌 주인공은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다급하게 외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사, 살려, 살려 주세요!
가, 가, 강도! 강도――
타앙!!!
뒤에서 날아든 총성과 총탄이 그의 정수리를 스치며 입을 틀어막았다.
쨍그랑!!
그리고 날아든 총탄은 벽에 맞고 도탄되어, 바 카운터의 와인병 하나를 박살내 피처럼 붉은 술을 흩뿌렸다.
사람 살려어어어!!!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사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식당차의 승객들은 전원 동시에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모두 한데 뒤엉켜 반대편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퍼엉!!
폭발이 일어나 F10호 객차와 식당차의 문을 박살냈다.
엄청난 충격파에 문 앞까지 몰려들었던 승객들은 전부 튕겨져 나갔고, 겁에 질린 웅성거림은 순식간에 처절한 비명으로 변했다.
승객들은 엎치락뒤치락 식당차의 중앙으로 한데 뭉쳤고, 더는 선두가 아니게 된 자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바닥을 기었다.
그 와중, 폭발로 인한 연기를 가장 먼저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아까 F02호차에서 행패를 부렸던 거한이었다.
길 청소했습니다, "할멈".
고맙다, 다니엘.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난 것은 바로 휠체어에 탄 온화한 표정의 노부인이었다.
이에 수잔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바, 발레리야 부인...?
그녀를 본 수잔나는 억지로라도 자신을 진정시켰다.
...부인, 승무원 수잔나가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식당차까지 오시다니,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이 열차에 강도가 들이닥친 것도, 수잔나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원래부터 회색분자 상대에 익숙한 그녀는 저들 같은 부류와 대화하는 법을 잘 알았다.
강도들의 목적은 보나마나 돈. 그러므로 승무원인 수잔나는 적당히 저들의 비위를 맞춰 주며 승객들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시하면 될 터였다.
적어도 그녀 생각엔 그랬다.
인형 아가씨~? 잘못 아는 게 두 가지 있구나.
철컥.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시꺼멓고 커다란 총구 두 개였다.
첫째, 난 너랑 소꿉놀이나 할 마음 없단다.
온화하던 노부인의 얼굴이 급속도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둘째, 내 이름은 말이지...
류바 할멈이다――!!
벌어질 일을 직감한 거의 모두가 번쩍 손을 들었고, 시꺼먼 두 총구는 불을 뿜었다.
퍼엉!!
묵직한 총성과 함께, 바 카운터에 줄지어 늘어선 크리스탈 잔들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꺄아아악!!
산전수전 다 겪어본 수잔나도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포에 벌벌 떨던 승객들도 참지 못하고 덩달아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저항은 꿈도 못 꿀 상황 속에서, 다니엘이란 이름의 거한은 총구를 들이대며 윽박질렀다.
자신에게 총구가 겨눠질 때마다, 승객들은 눈물도 비명도 뚝 그쳤다.
시끄러워! 인형은 10호차로, 인간은 8호차로! 움직여!
몸에 지닌 건 전부 테이블에 올려놓고, 짐가방도 다 열어놔라! 빨랑빨랑 움직여!
잠시 패닉에 빠졌던 수잔나는 문득 뇌리를 스친 것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류바 할멈"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류... 류... 류바 할멈...?!
신소련의 마지막 보르——
네가 추천해 준 노블 와인 참 맛있더구나.
눈치도 빠른 아이니, 지금부터 어떡해야 할진 잘~ 알겠지?
수잔나는 중얼거리던 말을 마른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
승객 리스트는 준비실에 있어요.
그래그래 고맙구나, 착하기도 해라.
지금 휠체어에 "올라탄" 사람은 더는 허약한 노부인이 아니었다. 양손에 하나씩 산탄총을 쥔, 무법자들의 수장이었다. 우아한 음악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소름 끼치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마치 죽음을 독촉하는 음표 같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무장한 강도들이 질서정연하게 차례차례 걸어 나왔다.
한편, 캐서린은 강도들이 들이닥쳤을 때부터 패닉에 빠져 바 카운터 앞에 웅크려 앉아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하는 상태였다.
매기... 우리 이제 어떡해...
......
바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는 매기는, 여전히 미동도 않았다.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9호 식당차의 화장실.
고막이 터질 듯한 총성에, 화장실 안의 두 인형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밖이 시끄러운데, 무슨 일이죠?
총성이다.
...살인 사건인가요?
몰라. 다만 상대는 산탄총으로 무장하고 있군. 수도 적지 않고 무장의 종류도 다양해.
소리로 봐서는 Super-Shorty, M500...
당신도 총 갖고 있잖아요, 같은 편 아니에요?
아니야.
그럼 먼저 흄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제가 콜트 익스프레스에서 흄이라 말하자마자 바로 여기로 끌고 왔잖아요.
대체 이유가 뭐예요?
...말해 줄 수 없어.
......
류드밀라는 눈을 감고 주의력을 귀에 집중했다.
저 밖에 총으로 무장한 자들은 수가 꽤 되었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무기를 가지고 열차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일곱... 여덟... 침입자는 총 12명. 그중 한 명은 발 대신 휠체어인가.
류드밀라의 머릿속에 객차에서 보았던 그 노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지 알겠다.
네?
신소련의 마지막 "보르 브 자코녜".
절도는 기본이고, 네가 생각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범법 행위로 생계를 유지하는 놈들이지.
류드밀라가 뜸을 들였다.
...그리고, 놈들은 강도짓을 할 땐 생존자를 잘 남기지 않아.
...소리만 들어도 거기까지 알아요?
류드밀라가 고민에 빠진 사이, 돌연 낯선 통신 요청이 동시에 두 인형에게 들어왔다.
둘은 다시 서로 잠깐 마주보다, 동시에 통신을 받았다.
받은 통신에서 흘러나온 것은, 벌써 익숙해진 목소리였다.
이보쇼 거기 두 손님들.
지금 무진장 급하니까 바로 질문할게.
두 사람 중에 누가 잠복 수사 중인 특수요원이야?
...설마 둘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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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간 열차 "미래호", F09호 식당차의 화장실.
약 10분 전, 누군가가 이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슬그머니 "청소 중" 팻말을 걸었다.
지금 화장실 안에는 두 명이 있었다.
키가 작은 인형과, 그런 그녀를 총구로 위협하는 키 큰 인형이.
정체를 밝혀라.
......
엘마는 머리의 후드를 벗었다.
......
......
얼굴 말고 신분.
넌 누구지? 무슨 목적으로 열차에 탑승했지?
다짜고짜 저를 화장실로 끌고 오더니...
한다는 말이 제가 누구냐고 묻는 거예요?
요즘 강도는 다 이렇게 막무가내인가요?
류드밀라는 대꾸할 시간도 아까워, 바로 해킹을 시도했다.
삑——
...침투 불가능. 역시 너인가.
네? 당신은 제가 누군지 알아요?
언제까지 연기할 셈이지, 클럽3?
그 시각, 콜트 익스프레스.
류드밀라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림자가 갑자기 몸을 쭉 내밀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옷깃을 붙잡았다.
——손 놔요!
......
얼른 손 안 놓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어, 저기, 손님?
클럽3 손님, 우선 진정하실래요?
일단 엘마 흄에 대해서, 저희 측엔 관련 거래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럴 리 없어요, 여기에 제가 원하는 정보가 있다고요.
손님, 고객으로서 진상 부리는 거 좋지 않습......?
......
클럽3가 돌연 다시 조용해졌다.
같은 시각, 식당차의 화장실 안.
엘마의 한쪽 팔은 류드밀라가 아주 살짝 힘을 줬는데도 쑥 뽑힌 상태였다.
...시킨대로 콜트 익스프레스 안에선 입 다물었어요.
그러니까 제 팔 다시 끼워 줄래요?
왜 엘마 흄을 찾고 있지?
넌 "흄"과 무슨 관계야?
엘마 흄이 누군지 알아요?
...일단 흔한 성씨는 아니지.
그럼, 엘마 흄은 몰라도 다른 흄은 안다는 뜻이네요?
그 정보 저랑 거래해 줄 수 있어요?
류드밀라는 잠시 넋을 잃었다. 지금 눈앞의 이 인형 소녀는 문자 그대로 거지 꼴에 한쪽 팔은 뽑힌 데다, 이마에는 총구까지 겨눠져 있었다.
해킹이 불가능한 마인드맵 외에는 눈에 띄는 점 없고, 무력도 류드밀라 자신보다 훨씬 형편없어 보였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
제 이름은 엘마 흄이에요.
당신은 저를 모르는 거 같은데 왜 그렇게 냅다 여기로 끌고와서 총을 꺼내 겨눌 만큼 예민하게 굴어요?
혹시...
......?
혹시, 당신도 성이 흄인가요?
성씨가 "흄"인 사람은 다 추격당하는 입장이라, 당신은 정보가 유출되는 걸 막아서 "흄"을 지키려는 건가요?
...지금 날 모욕하는 거냐?
......
우선 제 이유부터 설명할게요.
류드밀라의 머릿속 경종이 맹렬하게 울렸다.
하지만 엘마는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고, 그저 계속해서 류드밀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저 조금 무덤덤해보이는 금안으로.
흄은 제 주인, 혹은 제 "엄마"의 성...일 거예요.
저는 기억을 잃어서 그 사람을 찾아야 해요.
기억을 잃기 전 남겨진 단서가 "콜트 익스프레스"뿐이었고요.
하지만... 당신도 같은 자리에 있었어서 알겠지만, 쓸 만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어요.
......
저 말을 믿어도 될까?
<color=#A9A9A9>아주 말도 안 되지는 않아. 이렇게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 것은 확실히 그 박사다운 짓이야.</color>
<color=#00CCFF>"새벽별"이 추락했다.</color>
......!
류드밀라는 고개를 숙여 그 소녀의 눈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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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A9A9A9>...아니야, 그렇다고 이 인형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돼. 마인드맵을 해킹할 수도 없고, 이런 우연도 함정일 가능성이 있어... 모든 요소를 경계해야 해.</color>
타——앙!!!
그때, 옆 객차에서 꽤나 익숙한 굉음이 들려왔다.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9호 식당차.
갑작스런 큰 소리에 승객들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했고, 수잔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빠르게 승객들을 진정시켰다.
여러분, 진정해 주십시오. 제가 확인해보겠습――
쾅!!
수잔나가 문에 다가가기도 전에 밖의 누군가가 식당차의 문을 열어젖혔다.
――!!!
절뚝절뚝절뚝...
문을 열어젖힌 주인공은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다급하게 외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size=50>사, 살려, 살려 주세요!</size>
<size=50>가, 가, 강도! 강도――</size>
타앙!!!
뒤에서 날아든 총성과 총탄이 그의 정수리를 스치며 입을 틀어막았다.
쨍그랑!!
그리고 날아든 총탄은 벽에 맞고 도탄되어, 바 카운터의 와인병 하나를 박살내 피처럼 붉은 술을 흩뿌렸다.
<size=50>사람 살려어어어!!!</size>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사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식당차의 승객들은 전원 동시에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모두 한데 뒤엉켜 반대편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퍼엉!!
폭발이 일어나 F10호 객차와 식당차의 문을 박살냈다.
엄청난 충격파에 문 앞까지 몰려들었던 승객들은 전부 튕겨져 나갔고, 겁에 질린 웅성거림은 순식간에 처절한 비명으로 변했다.
승객들은 엎치락뒤치락 식당차의 중앙으로 한데 뭉쳤고, 더는 선두가 아니게 된 자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바닥을 기었다.
그 와중, 폭발로 인한 연기를 가장 먼저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아까 F02호차에서 행패를 부렸던 거한이었다.
길 청소했습니다, "할멈".
고맙다, 다니엘.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난 것은 바로 휠체어에 탄 온화한 표정의 노부인이었다.
이에 수잔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바, 발레리야 부인...?
그녀를 본 수잔나는 억지로라도 자신을 진정시켰다.
...부인, 승무원 수잔나가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식당차까지 오시다니,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이 열차에 강도가 들이닥친 것도, 수잔나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원래부터 회색분자 상대에 익숙한 그녀는 저들 같은 부류와 대화하는 법을 잘 알았다.
강도들의 목적은 보나마나 돈. 그러므로 승무원인 수잔나는 적당히 저들의 비위를 맞춰 주며 승객들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시하면 될 터였다.
적어도 그녀 생각엔 그랬다.
인형 아가씨~? 잘못 아는 게 두 가지 있구나.
철컥.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시꺼멓고 커다란 총구 두 개였다.
첫째, 난 너랑 소꿉놀이나 할 마음 없단다.
온화하던 노부인의 얼굴이 급속도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둘째, 내 이름은 말이지...
<size=50>류바 할멈이다――!!</size>
벌어질 일을 직감한 거의 모두가 번쩍 손을 들었고, 시꺼먼 두 총구는 불을 뿜었다.
퍼엉!!
묵직한 총성과 함께, 바 카운터에 줄지어 늘어선 크리스탈 잔들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꺄아아악!!
산전수전 다 겪어본 수잔나도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포에 벌벌 떨던 승객들도 참지 못하고 덩달아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저항은 꿈도 못 꿀 상황 속에서, 다니엘이란 이름의 거한은 총구를 들이대며 윽박질렀다.
자신에게 총구가 겨눠질 때마다, 승객들은 눈물도 비명도 뚝 그쳤다.
시끄러워! 인형은 10호차로, 인간은 8호차로! 움직여!
몸에 지닌 건 전부 테이블에 올려놓고, 짐가방도 다 열어놔라! 빨랑빨랑 움직여!
잠시 패닉에 빠졌던 수잔나는 문득 뇌리를 스친 것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류바 할멈"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류... 류... 류바 할멈...?!
신소련의 마지막 보르——
네가 추천해 준 노블 와인 참 맛있더구나.
눈치도 빠른 아이니, 지금부터 어떡해야 할진 잘~ 알겠지?
수잔나는 중얼거리던 말을 마른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
승객 리스트는 준비실에 있어요.
그래그래 고맙구나, 착하기도 해라.
지금 휠체어에 "올라탄" 사람은 더는 허약한 노부인이 아니었다. 양손에 하나씩 산탄총을 쥔, 무법자들의 수장이었다. 우아한 음악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소름 끼치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마치 죽음을 독촉하는 음표 같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무장한 강도들이 질서정연하게 차례차례 걸어 나왔다.
한편, 캐서린은 강도들이 들이닥쳤을 때부터 패닉에 빠져 바 카운터 앞에 웅크려 앉아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하는 상태였다.
매기... 우리 이제 어떡해...
......
바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는 매기는, 여전히 미동도 않았다.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9호 식당차의 화장실.
고막이 터질 듯한 총성에, 화장실 안의 두 인형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밖이 시끄러운데, 무슨 일이죠?
총성이다.
...살인 사건인가요?
몰라. 다만 상대는 산탄총으로 무장하고 있군. 수도 적지 않고 무장의 종류도 다양해.
소리로 봐서는 Super-Shorty, M500...
당신도 총 갖고 있잖아요, 같은 편 아니에요?
아니야.
그럼 먼저 흄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제가 콜트 익스프레스에서 흄이라 말하자마자 바로 여기로 끌고 왔잖아요.
대체 이유가 뭐예요?
...말해 줄 수 없어.
......
류드밀라는 눈을 감고 주의력을 귀에 집중했다.
저 밖에 총으로 무장한 자들은 수가 꽤 되었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무기를 가지고 열차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일곱... 여덟... 침입자는 총 12명. 그중 한 명은 발 대신 휠체어인가.
류드밀라의 머릿속에 객차에서 보았던 그 노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지 알겠다.
네?
신소련의 마지막 "보르 브 자코녜".
절도는 기본이고, 네가 생각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범법 행위로 생계를 유지하는 놈들이지.
류드밀라가 뜸을 들였다.
...그리고, 놈들은 강도짓을 할 땐 생존자를 잘 남기지 않아.
...소리만 들어도 거기까지 알아요?
류드밀라가 고민에 빠진 사이, 돌연 낯선 통신 요청이 동시에 두 인형에게 들어왔다.
둘은 다시 서로 잠깐 마주보다, 동시에 통신을 받았다.
받은 통신에서 흘러나온 것은, 벌써 익숙해진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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