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표준시 시계
누가 한 달에 겨우 몇백 받고 목숨을 걸겠냐?
밤이 깊어질수록, EN440-13M 대륙간 열차가 레드존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그림자엔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순진한 사낭걈이, 정성들여 놓아진 함정에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발을 들이듯이.
도적단 "보르 브 자코녜"는 어둠 속에 도사리는 사냥꾼처럼, 이번 "사냥감"도 인정사정 없이 약탈했다.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2호 객차.
선글라스를 쓴 남성은 발을 꼬아 비싼 원목 테이블 위에 올린 채, 손에 쥔 위압감 넘치는 대구경 리볼버를 휘휘 저으며 거들먹대고 있었다.
객차 안은 그의 부하들에게 완전히 제압된 상태였다.
승객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그저 난데없이 쳐들어와 가진 것을 빼앗는 이 불청객들에게 두려움과 증오심 가득한 눈빛을 던지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어... 윌러 씨, 이 금고 진짜 못 열겠는데요.
이번에 일등석 객차를 배정받은 이 "윌러"는 저 탐스러운 양들로부터 최대한 기름을 짜내려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으로, 그는 일등석에 앉는 승객들은 정말로 값진 물건은 웬만해선 몸에 지니고 다니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
윌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파이슨 리볼버로 탁상을 퉁퉁 두드렸다.
그의 부하 두 명이 한참을 씨름했는데도, 이 튼튼한 금고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셈은 아니었다. 금고 옆자리엔 귀부인이 빨개진 눈으로 윌러의 거만한 얼굴을 노려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이브... 우리 딸 어디로 끌고 갔어...
하아 참...
윌러는 못 이기겠단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서로 난처하게 만들지 맙시다~ 예, 아줌씨?
댁 딸내미의 목숨은 지금 내가 아니라 아줌마 손에 달려 있다고요. 당신이 얌전히 요 금고만 열어 주면 아무도 그 애 털끝 하나 안 건드릴 겁니다요.
......
내가... 내가 네깟 마귀놈이랑 거래할 것 같아!?
그러자 윌러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낄낄대며 부하에게 손가락을 튕겼고, 그의 부하는 바로 무전기를 건넸다.
지직...
삑.
여보세요~?
.....
.....훌쩍.
무전기에서 여자애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리자, 적어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던 귀부인은 참지 못하고 펄쩍 뛰어올랐다.
......!!
이브야!!
하지만 곧바로 뒤에 서 있던 도적단원들에게 눌려 강제로 다시 앉혀졌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장정 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엄마...? 엄마아아!!
그만해 이 빌어먹을 놈들아! 내 딸 돌려줘!!
아 글쎄 아니라니까 아줌마? 지금 당신 딸을 살려 달라 빌어야 하는 쪽은 당신이 아니라 우리라고요.
윌러는 고개를 틀어 턱으로 금고를 가리키면서 권총으로 손짓했다.
서로 돕고 삽시다 아줌마, 모두한테 편하게.
......
일라오이 부인은 결국 입술을 질끈 깨물곤 금고 앞에 쪼그려 앉아 다이얼을 돌렸다.
아 진작에 좀 그러시지~ 그럼 아무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다만 일라오이 부인은 손을 심하게 떨어, 몇 번이나 다이얼을 잘못 돌려 비밀번호를 틀렸다.
부인이 금고를 여는 동안, 윌러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도록 무전기의 볼륨도 키웠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며 손에 땀을 쥐는 승객들의 분노, 공포, 불안감... 각기 다른 감정들이 객차를 가득 채웠다.
삐이익.
마침내 짧은 신호음과 함께 금고가 입을 벌렸고, 이를 본 옆의 도적 한 명이 귀부인을 옆으로 밀쳤다.
...수표랑 보석입니다.
분류해서 대충 얼마 나오는지 세 둬. 그리고 보석은 나 주고, 수표는 가서 다니엘 씨한테 드려.
아이고 이브야... 우리 딸, 우리 딸 얼른――
삑.
윌러는 무심하게 무전기를 꺼버렸다.
아 미안해요, 배터리 아껴야 해서.
그리고 뭘 그렇게 성급하게 구시나? 걱정 말아요, 우리가 뭐 나쁜놈들도 아――
그때, 객차 한구석에서 누가 욕설을 내뱉었다.
윌러가 묻기도 전에, 도적단원이 한 중년 남성의 멱살을 잡아 윌러 앞으로 끌고 왔다.
가차없는 폭력 행사에, 다른 승객들은 식은 땀을 흘리며 더욱더 동요했다.
이 자식이 구석에서 전화하고 있었슴다!
어따가?
소련 짭새한테요!
제가 발견했을 땐 독일에다가도 걸려 하더라고요!
부부부부탁합니다 사 사사살려, 살려 주세요...
땀을 뻘뻘 흘리는 남자는 겁에 질린 눈으로 당장에라도 그의 머리를 터뜨릴 수 있는 총구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목숨을 구걸했다.
그 비굴한 꼴을 보며 윌러는 또 뒤통수를 긁적이곤, 목을 양옆으로 꺾으며 부하에게 손짓했다.
그거 줘 봐.
......?
통화기를 넘겨받은 윌러는 남자 앞에 쪼그려 앉아 통화기로 독일 경찰에게 전화를 걸고는, 그의 손에 통화기를 쥐어 준 뒤 총열로 얼굴을 툭툭 쳤다.
당연히, 남자는 놀라 눈이 부릅 떠졌다.
잠시 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독일 민주——
여보세요! 독일 경찰이죠!
미래호 열차 승객이에요!
지금 열차가 강도한테 납치당했어요! 빨리 와서 구해 주세요!
중년 남성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일라오이 부인이 버럭버럭 소리질렀다.
그 옆의 도적단원이 황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윌러가 손짓으로 그를 말렸다.
그는 그저 히죽히죽 웃으며, 다급하게 울부짖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일단 침착하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자세히 설명하긴 뭘 설명해요 강도라고요 강도! 강도!! 못 알아들어요!?
...우린 바르샤바에서 EN440-13M 열차 미래호에 탑승한 승객입니다, 지금 열차가 강도에게 납치당했어요.
지금 음주하셨습니까?
수, 술 안 마셨습니다!
당신 외에 그 말씀을 증명할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증명해요! 지금 정말 강도가 들었다고요!
신체 접촉이 있었습니까?
아니 강도라니까요! 강도가 강도질 하고 있는데 그런 걸 따집니까?!
죄송하지만 다 필수 절차입니다.
그럼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EN440-13M 미래호 열차! EN440-13M 미래호 열차! EN440-13M 미래호 열차에 있다니까요! 말길을 못 알아먹는 겁니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확인 결과 EN440-13M 열차의 현재 위치는 저희의 담당 구역이 아닙니다. 저희는 포즈난 역에서 권한을 인계받습니다.
통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그 말을 코앞에서 들은 일라오이 부인도, 차 안의 다른 승객들도, 저 말을 듣곤 얼굴이 움찔했다.
거기에 더해, 일라오이 부인의 얼굴엔 믿기지 않는다는 경악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이 드리웠다.
그게... 그게 지금 뭔 소리예요...?
이놈들... 이놈들이 내 딸도 잡아갔다고요!
그런데 당신은 경찰씩이나 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부인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입니다만...
저희는 독일 국경 내 출동 권한만을 가졌습니다. 도와드릴 수 없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자가 구조를 시도하려 할 경우 얼마든지 조언해드릴 수 있으니, 통화를 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삑.
통신이 끊어졌다.
낄낄낄,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마쇼들.
윌러는 양손을 저으며 넋두리가 나간 중년 남성을 야유하듯 웃었다.
소련 쪽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지?
......
돌대가리도 아니고, 누가 한 달에 겨우 몇백 받고 목숨을 걸겠냐?
여긴 레드존이야, 니들 열차 납치된 거라고! 여긴 우리 보르 브 자코녜가 지배한다 이 말이야! 알아 몰라!?
폭소하던 그가 돌연 정색하더니, 총을 들었다.
그리곤 그 굵다란 파이슨의 총구를 남자의 입에 쑤셔넣었다.
컥?! 어어얽!! 아얼어어얽!!!
놀란 남성이 미친듯이 몸부림쳤지만, 옆에 있던 도적단원들에게 단단히 붙잡혔다.
그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눈앞의 귀부인에게, 다른 승객들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면.
멈추시오!
돈을 원한다면 당장 그를 놓으시오!
귀티 나는 정장 차림의 남성이었다. 그의 연민 가득한 눈빛은 발버둥치는 남자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윌러는 씨익 웃더니...
이걸 어쩌나... 이 양반이 말을 안 들었는데.
...대가를 치를 거요.
타앙!!!
이윽고 터진 총성에, 거의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뭐야... 누가 내 허락 없이 총 쐈냐!!!
하지만 그의 머리에 꽂힌 것은 부하의 변명이 아니었다.
억――
"허가받지 않은 총격"이란 중대 사항에 넋이 나갔던 도적단원들은, 윌러가 관자놀이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꼴에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탕! 탕! 탕!
그들은 추가로 탄환이 날아들자, 그제서야 반응해 총성이 들려온 객차 연결구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어느 새 열린 객차 문 너머로부터 날아든 총탄 세례가, 도적들이 총을 들기도 전에 그들의 무릎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뭐어으아아아악!!!
도적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피를 뿜는 무릎을 감싸쥐곤 바닥을 뒹굴었다.
...후우.
총을 내리고, 객차 내 승객들의 안전을 확인한 건 바로 류드밀라였다.
객차 내 강도들의 무력화를 확인.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6-F07 객차간 연결구.
몇 분 전.
쿵!
몸을 굴려 객차 연결구에 들어가 엄폐한 후, 류드밀라는 총을 들어 정확히 세 발을 쏘았다.
이에 그녀를 뒤쫓던 도적단원들은 황급히 피하다 코앞에서 닫히는 문을 막지 못했다.
그들이 금속문 너머로 저주를 퍼붓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
좁은 공간에 자신 외의 다른 기척을 감지한 류드밀라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반쯤 열린 준비실의 문 뒤로, 익숙한 얼굴이 두 손을 번쩍 든 채로 걸어 나왔다.
발포 중지 발포 중지!! 아군이야 아군!
류드밀라는 총을 내리진 않았지만, 상대를 한 차례 스윽 위아래로 훑어봤다.
하트Q인가. 우리가 아군이었던 적은 없을 텐데.
매기는 윙크로 응수했다.
"친구는 되도록 많게, 적은 되도록 없게"가 내 좌우명이라서 말이야.
지금도 그래, 강도 상대로 우린 최소한 적은 아니잖아?
너 같은 친구 필요 없다.
필요해질걸~?
난 이 열차의 모든 전자문 통행 키를 갖고 있걸랑?
그리고, 방금 막 그걸 전부 다 최신 업데이트했지.
류드밀라의 눈이 갈수록 차가워지자...
매기는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바로 말을 덧붙였다.
――난 그냥 장사꾼이야.
장사꾼한텐 정해진 규칙 같은 게 없어, 그냥 물 흐르듯 흐르는 거지.
가격만 합당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거래할 수 있다고.
난 네 적이 아니야, 교관 나리.
잠시 고민한 끝에, 류드밀라는 총을 내렸다.
2호 객차로 간다.
콜!
아참참, 하트Q보단 "매기"라 불러 줘.
......
한 번도 협력해본 적 없건만, 두 인형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리고 나아가는 둘의 뒤로, 인간과 인형 몇 명이 뒤따랐다.
그들은 금방 F02-F03 연결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힌트. 문 바로 뒤에 사람이 있어.
그 말을 들은 류드밀라는 능숙하게 옷소매를 걷더니 자신의 몸에서 부품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인공 피부로 덮이지 않은 그녀의 팔다리에서 "남는" 부품을 뽑는 것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그 남는 부품들이 류드밀라의 손을 거치자, 마술처럼 권총 한 자루로 조립됐다.
그리고 그녀는 허리띠의 버클에서 총알 몇 발을 꺼내 탄창을 장전하고, 슬라이드를 당겼다.
삐.
매기는 이번에도 타이밍 좋게 객차의 문을 열어 주었다.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2호 객차.
매기가 문을 연 바로 그 순간, 류드밀라는 무시무시한 동체시력으로 객차 내의 정황을 전부 파악했다.
그래서 그녀는 과감하게 윌러만을 사살하고, 나머지 도적단원들은 무력화시키기만 한 것이었다.
상황이 정리된 후, 류드밀라는 휴대하는 나이프로 의자에 묶인 승객의 결박을 풀어 줬다.
닥터 루고사,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는 바로 조금 전 입에 총이 쑤셔넣어진 중년 남성을 구하려고 나섰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도적놈들이 여길 점거해서 짐가방을 모조리 열고, 일라오이 부인의 딸과 가장 먼저 금품을 바친 사람들을 다른 차로 끌고 갔소.
류드밀라와 함께 들어온 이들 중엔 루고사의 인형 조수, 루카스도 있었다.
선생님, 교관님이 저쪽 차량의 도적들을 사살해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직 사람들과 인형들 일부는 제자리에 남아 있어요.
루고사는 루카스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자신의 좌석에서 짐을 꺼내는 류드밀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류드밀라 양.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소.
류드밀라는 뒤돌아 의사를 마주 봤다.
나도... 나도 놈들에게 맞서 싸우겠소.
그대가 모두를 이끌어 주구려.
미쳤어요?!
저 도적놈들 하는 짓이 무기 밀매랑 강도질이라고요!
우리가 어떻게 저놈들한테 맞서 싸워요!?
돈 좀 잃는 걸로 살 수만 있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그, 그렇잖아요... 저놈들이 누굴 죽인 것도 아니고...
...그럼 우리 이브는요?
……
아, 아까 놈들 말대로면 부인 따님은 살아있을 거예요, 아까 끌려간 엘턴 씨처럼 말예요.
저어, 혹시 그 엘턴 씨라는 사람이 안경 쓴 대학생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 사람 이미 죽었어요, F05호차에서요.
저희가 여기까지 오면서 본 시체가 많아요.
뭐라고!? 그, 그럴 리가!
돈에 눈이 먼 강도에게 도리를 따질 수 없는 거요.
자기 목숨 안 아까운 놈들이 뭘 신경쓰겠소?
루카스와 닥터 루고사의 말에, 술렁이던 객차가 침묵에 빠졌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힘으로 우리를 지키는 것밖에 없소.
류드밀라 교관, 내 부탁을 받아 주겠소?
모두의 시선이 류드밀라에게 모였다.
......
류드밀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짐가방에서 무기를 꺼냈다.
총기를 점검하는 그녀의 절도 있는 움직임은 늠름하고 카리스마 넘쳐 보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모두가 제 지휘에 따라야만 합니다.
인간도 포함해서.
전체 대사 보기 (151줄)
밤이 깊어질수록, EN440-13M 대륙간 열차가 레드존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그림자엔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순진한 사낭걈이, 정성들여 놓아진 함정에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발을 들이듯이.
도적단 "보르 브 자코녜"는 어둠 속에 도사리는 사냥꾼처럼, 이번 "사냥감"도 인정사정 없이 약탈했다.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2호 객차.
선글라스를 쓴 남성은 발을 꼬아 비싼 원목 테이블 위에 올린 채, 손에 쥔 위압감 넘치는 대구경 리볼버를 휘휘 저으며 거들먹대고 있었다.
객차 안은 그의 부하들에게 완전히 제압된 상태였다.
승객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그저 난데없이 쳐들어와 가진 것을 빼앗는 이 불청객들에게 두려움과 증오심 가득한 눈빛을 던지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어... 윌러 씨, 이 금고 진짜 못 열겠는데요.
이번에 일등석 객차를 배정받은 이 "윌러"는 저 탐스러운 양들로부터 최대한 기름을 짜내려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으로, 그는 일등석에 앉는 승객들은 정말로 값진 물건은 웬만해선 몸에 지니고 다니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
윌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파이슨 리볼버로 탁상을 퉁퉁 두드렸다.
그의 부하 두 명이 한참을 씨름했는데도, 이 튼튼한 금고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셈은 아니었다. 금고 옆자리엔 귀부인이 빨개진 눈으로 윌러의 거만한 얼굴을 노려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이브... 우리 딸 어디로 끌고 갔어...
하아 참...
윌러는 못 이기겠단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서로 난처하게 만들지 맙시다~ 예, 아줌씨?
댁 딸내미의 목숨은 지금 내가 아니라 아줌마 손에 달려 있다고요. 당신이 얌전히 요 금고만 열어 주면 아무도 그 애 털끝 하나 안 건드릴 겁니다요.
......
내가... 내가 네깟 마귀놈이랑 거래할 것 같아!?
그러자 윌러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낄낄대며 부하에게 손가락을 튕겼고, 그의 부하는 바로 무전기를 건넸다.
지직...
삑.
여보세요~?
<color=#00CCFF>.....</color>
<color=#00CCFF>.....훌쩍.</color>
무전기에서 여자애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리자, 적어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던 귀부인은 참지 못하고 펄쩍 뛰어올랐다.
......!!
<size=50>이브야!!</size>
하지만 곧바로 뒤에 서 있던 도적단원들에게 눌려 강제로 다시 앉혀졌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장정 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엄마...? 엄마아아!!
<size=50>그만해 이 빌어먹을 놈들아! 내 딸 돌려줘!!</size>
아 글쎄 아니라니까 아줌마? 지금 당신 딸을 살려 달라 빌어야 하는 쪽은 당신이 아니라 우리라고요.
윌러는 고개를 틀어 턱으로 금고를 가리키면서 권총으로 손짓했다.
서로 돕고 삽시다 아줌마, 모두한테 편하게.
......
일라오이 부인은 결국 입술을 질끈 깨물곤 금고 앞에 쪼그려 앉아 다이얼을 돌렸다.
아 진작에 좀 그러시지~ 그럼 아무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다만 일라오이 부인은 손을 심하게 떨어, 몇 번이나 다이얼을 잘못 돌려 비밀번호를 틀렸다.
부인이 금고를 여는 동안, 윌러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도록 무전기의 볼륨도 키웠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며 손에 땀을 쥐는 승객들의 분노, 공포, 불안감... 각기 다른 감정들이 객차를 가득 채웠다.
삐이익.
마침내 짧은 신호음과 함께 금고가 입을 벌렸고, 이를 본 옆의 도적 한 명이 귀부인을 옆으로 밀쳤다.
...수표랑 보석입니다.
분류해서 대충 얼마 나오는지 세 둬. 그리고 보석은 나 주고, 수표는 가서 다니엘 씨한테 드려.
아이고 이브야... 우리 딸, 우리 딸 얼른――
삑.
윌러는 무심하게 무전기를 꺼버렸다.
아 미안해요, 배터리 아껴야 해서.
그리고 뭘 그렇게 성급하게 구시나? 걱정 말아요, 우리가 뭐 나쁜놈들도 아――
그때, 객차 한구석에서 누가 욕설을 내뱉었다.
윌러가 묻기도 전에, 도적단원이 한 중년 남성의 멱살을 잡아 윌러 앞으로 끌고 왔다.
가차없는 폭력 행사에, 다른 승객들은 식은 땀을 흘리며 더욱더 동요했다.
이 자식이 구석에서 전화하고 있었슴다!
어따가?
소련 짭새한테요!
제가 발견했을 땐 독일에다가도 걸려 하더라고요!
부부부부탁합니다 사 사사살려, 살려 주세요...
땀을 뻘뻘 흘리는 남자는 겁에 질린 눈으로 당장에라도 그의 머리를 터뜨릴 수 있는 총구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목숨을 구걸했다.
그 비굴한 꼴을 보며 윌러는 또 뒤통수를 긁적이곤, 목을 양옆으로 꺾으며 부하에게 손짓했다.
그거 줘 봐.
......?
통화기를 넘겨받은 윌러는 남자 앞에 쪼그려 앉아 통화기로 독일 경찰에게 전화를 걸고는, 그의 손에 통화기를 쥐어 준 뒤 총열로 얼굴을 툭툭 쳤다.
당연히, 남자는 놀라 눈이 부릅 떠졌다.
잠시 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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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독일 경찰이죠!
미래호 열차 승객이에요!
지금 열차가 강도한테 납치당했어요! 빨리 와서 구해 주세요!
중년 남성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일라오이 부인이 버럭버럭 소리질렀다.
그 옆의 도적단원이 황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윌러가 손짓으로 그를 말렸다.
그는 그저 히죽히죽 웃으며, 다급하게 울부짖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color=#00CCFF>...일단 침착하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color>
<size=50>자세히 설명하긴 뭘 설명해요 강도라고요 강도! 강도!! 못 알아들어요!?</size>
...우린 바르샤바에서 EN440-13M 열차 미래호에 탑승한 승객입니다, 지금 열차가 강도에게 납치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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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술 안 마셨습니다!
<color=#00CCFF>당신 외에 그 말씀을 증명할 사람이 있습니까?</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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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ze=50>아니 강도라니까요! 강도가 강도질 하고 있는데 그런 걸 따집니까?!</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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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440-13M 미래호 열차! EN440-13M 미래호 열차! EN440-13M 미래호 열차에 있다니까요! 말길을 못 알아먹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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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00CCFF>...대단히 죄송합니다만, 확인 결과 EN440-13M 열차의 현재 위치는 저희의 담당 구역이 아닙니다. 저희는 포즈난 역에서 권한을 인계받습니다.</color>
통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그 말을 코앞에서 들은 일라오이 부인도, 차 안의 다른 승객들도, 저 말을 듣곤 얼굴이 움찔했다.
거기에 더해, 일라오이 부인의 얼굴엔 믿기지 않는다는 경악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이 드리웠다.
그게... 그게 지금 뭔 소리예요...?
이놈들... 이놈들이 내 딸도 잡아갔다고요!
<size=50>그런데 당신은 경찰씩이나 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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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통신이 끊어졌다.
낄낄낄,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마쇼들.
윌러는 양손을 저으며 넋두리가 나간 중년 남성을 야유하듯 웃었다.
소련 쪽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지?
......
돌대가리도 아니고, 누가 한 달에 겨우 몇백 받고 목숨을 걸겠냐?
여긴 레드존이야, 니들 열차 납치된 거라고! 여긴 우리 보르 브 자코녜가 지배한다 이 말이야! 알아 몰라!?
폭소하던 그가 돌연 정색하더니, 총을 들었다.
그리곤 그 굵다란 파이슨의 총구를 남자의 입에 쑤셔넣었다.
<size=50>컥?! 어어얽!! 아얼어어얽!!!</size>
놀란 남성이 미친듯이 몸부림쳤지만, 옆에 있던 도적단원들에게 단단히 붙잡혔다.
그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눈앞의 귀부인에게, 다른 승객들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면.
멈추시오!
돈을 원한다면 당장 그를 놓으시오!
귀티 나는 정장 차림의 남성이었다. 그의 연민 가득한 눈빛은 발버둥치는 남자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윌러는 씨익 웃더니...
이걸 어쩌나... 이 양반이 말을 안 들었는데.
...대가를 치를 거요.
타앙!!!
이윽고 터진 총성에, 거의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뭐야... <size=50>누가 내 허락 없이 총 쐈냐!!!</size>
하지만 그의 머리에 꽂힌 것은 부하의 변명이 아니었다.
억――
"허가받지 않은 총격"이란 중대 사항에 넋이 나갔던 도적단원들은, 윌러가 관자놀이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꼴에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탕! 탕! 탕!
그들은 추가로 탄환이 날아들자, 그제서야 반응해 총성이 들려온 객차 연결구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어느 새 열린 객차 문 너머로부터 날아든 총탄 세례가, 도적들이 총을 들기도 전에 그들의 무릎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뭐어으아아아악!!!
도적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피를 뿜는 무릎을 감싸쥐곤 바닥을 뒹굴었다.
...후우.
총을 내리고, 객차 내 승객들의 안전을 확인한 건 바로 류드밀라였다.
객차 내 강도들의 무력화를 확인.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6-F07 객차간 연결구.
몇 분 전.
쿵!
몸을 굴려 객차 연결구에 들어가 엄폐한 후, 류드밀라는 총을 들어 정확히 세 발을 쏘았다.
이에 그녀를 뒤쫓던 도적단원들은 황급히 피하다 코앞에서 닫히는 문을 막지 못했다.
그들이 금속문 너머로 저주를 퍼붓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
좁은 공간에 자신 외의 다른 기척을 감지한 류드밀라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반쯤 열린 준비실의 문 뒤로, 익숙한 얼굴이 두 손을 번쩍 든 채로 걸어 나왔다.
<size=50>발포 중지 발포 중지!! 아군이야 아군!</size>
류드밀라는 총을 내리진 않았지만, 상대를 한 차례 스윽 위아래로 훑어봤다.
하트Q인가. 우리가 아군이었던 적은 없을 텐데.
매기는 윙크로 응수했다.
"친구는 되도록 많게, 적은 되도록 없게"가 내 좌우명이라서 말이야.
지금도 그래, 강도 상대로 우린 최소한 적은 아니잖아?
너 같은 친구 필요 없다.
필요해질걸~?
난 이 열차의 모든 전자문 통행 키를 갖고 있걸랑?
그리고, 방금 막 그걸 전부 다 최신 업데이트했지.
류드밀라의 눈이 갈수록 차가워지자...
매기는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바로 말을 덧붙였다.
――난 그냥 장사꾼이야.
장사꾼한텐 정해진 규칙 같은 게 없어, 그냥 물 흐르듯 흐르는 거지.
가격만 합당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거래할 수 있다고.
난 네 적이 아니야, 교관 나리.
잠시 고민한 끝에, 류드밀라는 총을 내렸다.
2호 객차로 간다.
콜!
아참참, 하트Q보단 "매기"라 불러 줘.
......
한 번도 협력해본 적 없건만, 두 인형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리고 나아가는 둘의 뒤로, 인간과 인형 몇 명이 뒤따랐다.
그들은 금방 F02-F03 연결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힌트. 문 바로 뒤에 사람이 있어.
그 말을 들은 류드밀라는 능숙하게 옷소매를 걷더니 자신의 몸에서 부품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인공 피부로 덮이지 않은 그녀의 팔다리에서 "남는" 부품을 뽑는 것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그 남는 부품들이 류드밀라의 손을 거치자, 마술처럼 권총 한 자루로 조립됐다.
그리고 그녀는 허리띠의 버클에서 총알 몇 발을 꺼내 탄창을 장전하고, 슬라이드를 당겼다.
삐.
매기는 이번에도 타이밍 좋게 객차의 문을 열어 주었다.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2호 객차.
매기가 문을 연 바로 그 순간, 류드밀라는 무시무시한 동체시력으로 객차 내의 정황을 전부 파악했다.
그래서 그녀는 과감하게 윌러만을 사살하고, 나머지 도적단원들은 무력화시키기만 한 것이었다.
상황이 정리된 후, 류드밀라는 휴대하는 나이프로 의자에 묶인 승객의 결박을 풀어 줬다.
닥터 루고사,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는 바로 조금 전 입에 총이 쑤셔넣어진 중년 남성을 구하려고 나섰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도적놈들이 여길 점거해서 짐가방을 모조리 열고, 일라오이 부인의 딸과 가장 먼저 금품을 바친 사람들을 다른 차로 끌고 갔소.
류드밀라와 함께 들어온 이들 중엔 루고사의 인형 조수, 루카스도 있었다.
선생님, 교관님이 저쪽 차량의 도적들을 사살해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직 사람들과 인형들 일부는 제자리에 남아 있어요.
루고사는 루카스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자신의 좌석에서 짐을 꺼내는 류드밀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류드밀라 양.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소.
류드밀라는 뒤돌아 의사를 마주 봤다.
나도... 나도 놈들에게 맞서 싸우겠소.
그대가 모두를 이끌어 주구려.
<size=50>미쳤어요?!</size>
저 도적놈들 하는 짓이 무기 밀매랑 강도질이라고요!
우리가 어떻게 저놈들한테 맞서 싸워요!?
돈 좀 잃는 걸로 살 수만 있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그, 그렇잖아요... 저놈들이 누굴 죽인 것도 아니고...
...그럼 우리 이브는요?
……
아, 아까 놈들 말대로면 부인 따님은 살아있을 거예요, 아까 끌려간 엘턴 씨처럼 말예요.
저어, 혹시 그 엘턴 씨라는 사람이 안경 쓴 대학생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 사람 이미 죽었어요, F05호차에서요.
저희가 여기까지 오면서 본 시체가 많아요.
<size=50>뭐라고!? 그, 그럴 리가!</size>
돈에 눈이 먼 강도에게 도리를 따질 수 없는 거요.
자기 목숨 안 아까운 놈들이 뭘 신경쓰겠소?
루카스와 닥터 루고사의 말에, 술렁이던 객차가 침묵에 빠졌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힘으로 우리를 지키는 것밖에 없소.
류드밀라 교관, 내 부탁을 받아 주겠소?
모두의 시선이 류드밀라에게 모였다.
......
류드밀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짐가방에서 무기를 꺼냈다.
총기를 점검하는 그녀의 절도 있는 움직임은 늠름하고 카리스마 넘쳐 보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모두가 제 지휘에 따라야만 합니다.
인간도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