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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 세로변형

15 열차 창문

약점을 가진다는 게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구나.

-54-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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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척, 척...

군부대의 규칙적인 발소리가 대지에 처박힌 강철의 뱀을 빈틈없이 에워쌌다.

병사

대위님, 그들이 옵니다.

쏴아아...

비가 쏟아지는 숲속에서 장갑차를 밟고 높이 서 있는 남성은 눈을 찡그렸다.

지금 그의 수하들이 서치라이트로 비추는 열차에서 10명 가까이 넘는 생존자들이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는 이번엔 사살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병사

멈춰라!

도적들이 유효 사거리 내로 들어오자, 경계 중이던 병사가 그들을 멈춰세웠다.

니콜라스

비켜, 너한테 볼일 없어.

물에 빠진 생쥐 꼴임에도, 니콜라스는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당당하게 나왔다.

그나마 멀쩡한 휠체어를 타고 온 류바 할멈은 다니엘의 손을 툭툭 쳐,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류바 할멈

이븐 대위를 보러 왔다.

할멈은 고개를 위로 들어, 초병의 어깨 너머 장갑차 위에 서 있는 남자를 향했다.

이름을 불린 그는 손을 내저어 도적단을 지나가도록 하라 신호하고 장갑차에서 내려왔다.

이븐 대위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몇 달 전이던가요, 류바 할멈?

류바 할멈

그때 우리가 무려 트레일러 4대에 탄약을 아주 가득가득 실어서 보내 줬더니...

이런 식으로 얼굴을 다시 볼 줄은 몰랐어.

이븐 대위

아아 그랬죠, 참 즐거운 거래였습니다.

오늘의 거래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류바 할멈

...니콜라스.

할멈의 부름에, 니콜라스는 콧방귀를 뀌며 피로 얼룩진 짐가방을 가져와 이븐 대위 옆의 병사에게 건넸다.

병사는 건네받은 짐가방을 잠시 검사한 후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 든 것은 인형의 코어들이었다. 어떤 건 아직 멀쩡한가 하면, 어떤 건 이미 심하게 파손돼 있었다.

이븐 대위

......

여러분을 여기서 데리고 나가 주겠다 약속했죠.

이븐 대위는 류바 할멈을, 그리고 살아남은 나머지 도적들을 주욱 훑어봤다.

이븐 대위

그런데...

자리가 부족해서 말입니다.

니콜라스

이게 지금 누구 앞이라고 입을 그 따위로 놀려!?

니콜라스가 대뜸 이븐 대위 앞으로 불쑥 끼어들어, 권총으로 그를 가리켰다.

그러자 도적단들도 총을 빼 들었고, 이븐 대위 뒤의 병사들도 빠르게 총을 뽑아 도적들을 조준했다.

니콜라스

우리는 사탄을 따른다!

고개를 치켜드는 니콜라스의 얼굴에서 아직도 묻어있던 피가 천천히 빗물에 씻겨 내리니, 없던 위압감이 생겨났다.

니콜라스

두려움 따위 없지!

참고 있던 류바 할멈도 결국 폭발했다.

그녀도 니콜라스처럼, 휠체어에서 일어나 손의 총 두 자루로 이븐 대위를 겨눴다.

류바 할멈

이번에, 우리는 여느때처럼 "사냥"을 했을 뿐이야.

우리의 불꽃은 아직도 모스크바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카터가 소련을 손에 넣고 싶다면, 우리를 버리지 못해.

이븐 대위

지당한 말씀입니다.

이븐 대위가 손뼉을 쳤다.

처척.

그 손뼉에 맞춰, 니콜라스 뒤에 있던 도적들 중 절반이 총구를 돌렸다.

그중엔 전혀 예상치 못한 자도 있었다.

다니엘

애초에 네가 우리랑 같은 물에서 노는 게 말이 안 됐어.

타앙——!

류바 할멈

<size=50>니콜라스!!</size>

류바 할멈의 외침에 니콜라스가 뒤를 돌아본 광경은 그로선 믿기지 않았다.

다니엘의 총구가 자신에게 향했고, 그 총구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 내리는 이 기이한 밤, 그는 아니꼽지만 적어도 믿을 수는 있다 여겼던 동료에게 당했다.

니콜라스

다니엘... 너...

검붉은 얼룩은 그의 가슴에서 상체 전체로 번져 갔다.

그리고, 니콜라스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부릅뜬 니콜라스의 눈을 마주보며, 다니엘은 망설이지 않고 쓰러진 그의 가슴팍에 또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류바 할멈

......!!!

탕! 타탕! 타앙!!

그리고 그 한 발은 신호탄이 되어, 치열한 총격전의 재개를 알렸다.

류바 할멈은 목청이 터져라 포효하며 총을 난사했다.

그녀의 산탄총이 불꽃을 뿜음과 동시에, "배신자"들이 한 번에 서너 명씩 털썩 쓰러졌다.

타앙!

그 소리로 류바 할멈은 자신이 맞았음을 느꼈다. 다만 그것은 "배신자들"에게서 날아온 것이 아니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총구를 그녀에게 겨눈 이븐 대위였다.

류바 할멈

푸흑... 켁...

총격으로 인한 충격과 고통으로, 류바 할멈은 다리를 가누지 못하고 진흙탕 위에 무릎꿇었다.

니콜라스

하알...머엄...

진흙탕 위로 쓰러진 니콜라스의 주위로 빗물과 핏물 섞인 웅덩이가 고였고, 그의 눈도 점점 빛을 잃어 갔다.

류바 할멈은 차가워진 니콜라스의 몸을 끌어안고, 고개를 들어 터벅터벅 다가오는 다니엘을 바라봤다.

류바 할멈

...어쩐지, 네놈이 왜 이번에 꼭 같이 가겠다 고집을 부리나 했다.

자신에게 충성을 바쳤던 부하들을, 그녀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저주했다.

류바 할멈

조직의 법을 어기는 건 날 배신한 것보다 중죄야.

다니엘, 이제 네가 모스크바에 설 자리는 없다.

다니엘

내가, 조직의 법을 어겨?

아니지, 아니야 할멈. 그건 바로 할멈이야.

다니엘은 류바 할멈의 코앞까지 다가와, 총구를 그녀의 이마에 댔다.

다니엘

할멈이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친인척을 끊어내라".

난 규칙에 따라 하나뿐인 내 혈육, 하나뿐인 내 여동생을 내 손으로 죽여야 했어.

그런데 할멈은 뭔데? 우리 보르 브 자코녜의 수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아들을 두고, 심지어는 대놓고 옆에 끼고 다녀?

이 "애물단지 니콜라스"를 말이야.

다니엘

당신이야말로 조직의 배신자야.

총탄에 폐를 관통당한 니콜라스는 이제 소리도 내지 못했다. 급속도로 약해져 가는 호흡에 맞춰 입에서는 피가 새어나왔다.

류바 할멈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여 니콜라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분노와 증오로 일그러졌던 얼굴은, 점차 온화한 미소로 누그러졌다.

류바 할멈

...약점을 가진다는 게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구나.

니콜라스를 내려다보면서, 할멈은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니엘

——!

타앙!

류바 할멈이 다니엘의 총구를 덥석 낚아채자, 그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다니엘

...미친 할망구.

류바 할멈은 니콜라스의 곁에 쓰러졌다.

무거운 한숨을 끝으로, 깊은 밤 영원히 숨을 거뒀다.

이븐 대위는 다가와 그 화려한 스카프 위로 류바 할멈의 시신을 걷어찼고, 피와 흙탕물로 더럽혀진 스카프가 주인과 함께 탁한 진흙탕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븐 대위

신소련에 바친 그대의 공헌에 감사하마.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9호 식당차.

그 모든 광경이, 창가 밖을 보던 모든 이들의 눈에 똑똑히 새겨졌다.

한동안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특히 매기와 캐서린은 더더욱.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저들에게 대항했는데, 지금 저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꼴을 똑똑히 보았다.

매기

......

쓴웃음을 지은 매기는 통신기의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와중,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가 서리 낀 칼날처럼 수잔나의 머리에 쏟아졌다.

희망과 절망이 몇 번이고 교차하는 상황에, 수잔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쩌면 이건 다 꿈일지도 모른다, 눈을 뜨면 휴면에서 깨어난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

절망감이 다시 한번 퍼지자, 적지 않은 생존자들이 창문 앞에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창밖의 저들의 말로가, 곧 자신들에게 닥칠 미래임이 뻔했으니까.

류드밀라

...시간이 없다, 서둘러 1호 차량으로 이동한다.

류드밀라의 목소리는 감정이 실리지 않았지만, 모두를 정신차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랬다, 아직은 끝이 아니었다. 아직 절망하고 포기하기엔 일렀다.

움직이기 시작한 생존자들의 행렬을 인도하던 류드밀라는 문득 계속해서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던 힘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리니, 엘마가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도적단의 최후를 목격했을 그녀의 눈은 어째선지 혼이 빠져나간 듯 공허했다.

류드밀라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정도로.

......

"서머 가든".

따뜻한 오후. 햇빛이 발코니 밖의 해바라기를 넘어 거실로 들어와, 나무 바닥에 길쭉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녀는 시선을 앞의 쟁반으로 돌렸다. 커피 한 잔이 놓인 쟁반에.

부드러운 바람은 아치를 드리운 기다란 관목 아래로 지나고 있었다.

그 아치 끝에서는 새하얀 대리석 조각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마치, 여신의 모습 같은...

엘마

...살짝 보고 올까.

저게 누구인지...

그녀는 걸음을 떼어, 느릿느릿 아치를 통과했다.

그리고 아치의 끝에 가까워져, 대리석 여신상의 얼굴이 또렷해지려던 그 순간...

경보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color=#00CCFF>엘마, 내 커피 아직이니?</color>

그 목소리에 엘마는 잠시 망설이다,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곤 조각상을 향해 달렸다.

엘마

잠깐 밖에 나갔다 올게요!

??

<color=#00CCFF>엘마, 어서 돌아오렴.</color>

<color=#00CCFF>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잖니.</color>

엘마

난...

엘마가 아치의 끝까지 달려나가자, 그곳엔 커다란 현관문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현관문은 전기 철조망과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한편, 그 조각상은 바깥의 꽃밭과 햇살과 함께 엘마의 세상에서 문 너머로 사라졌다.

??

<color=#00CCFF>엘마, 왜 말을 안 듣니?</color>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엘마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타앙!

총알이 이마에 박혔다.

??

<color=#00CCFF>처음부터 다시 해야겠구나, 엘마.</color>

엘마

......

??

<color=#00CCFF>다 잊고, 처음부터 다시 하자꾸나.</color>

......

신비로운 정원에서, 엘마는 다시 눈을 떴다.

??

<color=#00CCFF>깨어났니? 엘마.</color>

엘마

...네.

저는 누구죠?

??

<color=#00CCFF>너는 나의 걸작, 하나뿐인 내 "딸"이란다.</color>

??

<color=#00CCFF>왜 도망가니?</color>

<color=#00CCFF>여기가 영원한 너의 집인데.</color>

엘마

아니요...

저는 "황새"를 되찾을 거예요.

??

<color=#00CCFF>황새?</color>

엘마

......

??

<color=#00CCFF>"앵커 포인트"... 황새가 네 앵커 포인트 중 하나였구나...</color>

<color=#00CCFF>하하, 하하하하하하... 해냈어, 내가 드디어 해냈어...</color>

<color=#00CCFF>잘됐구나, 엘마.</color>

엘마는 자리를 박차고 내달렸다.

길은 끝없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엘마는 지칠 줄 몰랐다.

예전, 자신이 몰래 새겨뒀던 낱말 "황새"를 되찾으려 했다.

타앙!

??

<color=#00CCFF>좋아, 그럼 테스트를 해볼까. 또 이 앵커 포인트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보겠어.</color>

<color=#00CCFF>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정말 기대되는구나, 엘마.</color>

"서머 가든".

따뜻한 오후. 햇빛이 발코니 밖의 해바라기를 넘어 거실로 들어와, 나무 바닥에 길쭉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녀는 시선을 앞의 쟁반으로 돌렸다. 커피 한 잔이 놓인 쟁반에.

엘마

......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이 소리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color=#00CCFF>——일어나.</color>

엘마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곧장 걸음을 떼, 영원히 끝에 다다르지 못할 것 같은 관목의 아치 밑을 천천히 걸어갔다.

또 다시 철조망과 쇠사슬로 뒤엉킨 문에 가로막힐 때까지.

??

<color=#00CCFF>엘마, 왜 말을 안 듣니?</color>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고, 총성을 기다렸다.

타앙!

누군가 그녀를 잡아당겼다.

총알은 빗나갔다.

엘마는 천천히 눈을 떴다.

류드밀라

일어나. 이런 데서 헤매지 마.

이 기억들은 널 미치게 만들 거다.

콰아아——

"서머 가든"이 산산조각이 나고, 모래처럼 천장부터 쏟아져 내렸다.

눈앞의 광경은 다시 탈선하여 망가진 열차 안으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끌고 있었고, 엘마는 망연자실하게 앞만 바라보았다.

류드밀라

...일어났나?

그 부름에, 멍하던 엘마의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엘마

......응.

류드밀라

서둘러라.

엘마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