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탁상의 단아한 꽃다발
너는 인간이야, 인간과 함께해야 해. 네가 있을 곳은 저기야.
대륙간 열차 "미래호", 망가진 차량에서 멀지 않은 위치.
비 내리는 밤하늘 아래서, 이븐 대위는 지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통신이 들어왔다.
움직여.
이 인형을 원해.
암호화된 코드도 함께 전달되었다.
이븐 대위가 미리 설정된 명령어를 입력하자, 화면에 사이드캡을 쓴 진중한 표정의 여성이 출력됐다.
제7총국 예하 선진 작전 훈련대, "Я" 교관. 해당 분대 내 유일한 사관 인형. 상세 정보 불명. 위험도 극고.
......
대륙간 열차, "미래호"의 어느 차량 안.
뚝... 뚝... 뚝...
그칠 기미 없는 비로 인해 열차 안에도 곳곳에 웅덩이가 생겼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음울한 분위기의 생존자들을 더욱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지금 방호복을 입은 채 수잔나의 인솔을 따라 류드밀라가 지시한 대로 F01호 특등석 객차로 향하는 중이었다.
여기 큰 턱이 있습니다, 발밑에 주의하십시오.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 수잔나에게 부축을 받아야 간신히 장애물을 넘을 수 있을 정도로, 비틀리고 찌그러진 차량 안은 험난한 산길처럼 생존자 행렬의 속도를 크게 늦췄다.
그러던 그때,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노, 놈들이 온다!
승무원 씨 저기 좀 봐요!
수잔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창밖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진 불빛들이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열차로 접근하는 것이 분명했다.
다 죽이러 오는 거야... 이제 끝이야...
싫어... 난 여기서 죽기 싫어!
겁에 질린 생존자가 F01호 차량을 향해, 발밑의 오물과 날카롭게 깨진 유리 조각도 무시하고 내달렸다.
우... 우리도! 우리도 빨리 가자!
손님 여러분 발밑을 조심하세요!
앞사람을 밀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나방을 내쫓는 횃불처럼, 창밖의 점점 더 촘촘해지는 불빛이 사람들을 운명이란 우리 속으로 몰아넣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말을 따르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모두가 달리기 시작했다.
단 한 명, 행렬의 끄트머리에 있던 거대한 그림자만 빼고.
로시타, 아직 버틸 수 있겠니?
폴의 등에 업혀 웅크린 로시타는, 겉으로 드러난 피부에 규소화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듯 보였다.
폴... 나, 폴이 만든 샌드위치 먹고 싶어...
의사 선생님께 진찰받은 다음에 만들어 줄게.
응...
저 앞에서 야단법석을 부리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생사의 기로에서, 한 사람이 챙길 수 있는 건 언제나 자신의 목숨뿐이었다.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1-F02 열차간 연결구.
길고도 고된 길이었다.
그래도 마침내, 생존자들은 F01호 객차의 문앞까지 도달했다.
쿵쿵쿵!
수잔나가 문을 마구 두드리는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나와 전자키를 꺼냈다.
삐빅.
권한이 부족합니다.
매기 이 빌어먹을 년!
아... 안에 계신 손님, 저는 승무원 인형 수잔나입니다.
지금 여기 생존자 손님들께 마실 물과 음식, 그리고 쉴 자리가 필요합니다.
저희를 들여보내 주십시오.
스윽——
차량 문의 창문에 귀티를 부리는 얼굴이 나타났다.
들어오는 건 상관없는데...
그 전에 방호복부터 벗으세요.
뭣?!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정화 장치 전부 망가졌어!
이걸 벗음 복사에 노출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벗으라고! 방호복에 방사능에 세균이 얼마나 묻었을지 누가 알아!
그게 무슨...
고작 1, 2분 정도 노출된다고 안 죽어!
당신들이 붕괴 입자 잔뜩 묻은 채로 들어오면 우리 다 죽는다고!
문 밖의 생존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저 밖의 불빛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다가오고 있다 생각하니, 잠깐의 침묵 후 그들은 말없이 주섬주섬 방호복을 벗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이제 됐어!? 얼른 문 열어!
흥...
남자는 천천히 몸을 돌려 문을 열려는 듯했다.
그때, 그의 눈에 무언가 들어오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잠깐, 그 여자애는 뭐야?
......
남자가 가리킨 것은 다름아닌 폴에게 업힌 로시타였다.
걔 이미 감염된 거 아니야?!
어쩌자고 데려왔어!? 몽땅 감염시킬 작정이야?!
이 아이의 증상은 아직 가볍습니다!
아직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 칸에 의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의사를 보게 해 주십시오!
이런 상황에서 의사 보여 준다고 무슨 소용인데!
아, 아무튼 들어올 생각 마! 이대로 개죽음당하기 싫어!
뭐야?! 당신이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저 여자앤 감염됐어도 우린 멀쩡하다고! 빨랑 문 열어!
전염됐는지 안 됐는지 어떻게 알아!
폴...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폴의 등에 업힌 로시타가 그의 어깨를 꼬옥 쥐었다.
싫어... 날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보내지 마...
그런 곳... 다신 가기 싫어...
로시타는 폴에게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곳엔 가고 싶지 않아...
그냥 여기 있을래... 폴이 있잖아, 폴이랑 함께면 괜찮아...
로시타의 목소리에 마법의 힘이 담긴 듯했다.
살벌한 언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여기서 폴에게만 겨우 들릴 정도로 미미한 목소리였음에도, 순간 모두가 침묵했다.
이 무거운 침묵 속에서, 폴은 한참을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로시타, 난 그저 인형일 뿐이야. 나는 네 친구가 아니야.
나는 언제까지고 네 곁에 있어 줄 수 없어. 너는 인간이야, 인간과 함께해야 해. 네가 있을 곳은 저기야.
싫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진 나도 알아. 폴, 난 폴이 인형이든 뭐든 상관없어.
난 날 걱정해 주는 사람이랑 같이 있을래... 폴이 내 친구야, 날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
그리고 다시 이어지던 죽음과 같은 정적을, 문 뒤에서 난 인자한 목소리가 깼다.
들여보내시오.
오...! 봐, 들어오라 하잖아! 빨리 문열어!
미쳤어 의사 양반?! 저 앤 감염됐다고!
그렇소, 난 의사요.
그리고 저들을 문 밖에 내버려두면 우리가 무사할 줄 아시오?
아 그래 저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저 감염자는? 저 애를 들이면 전부 감염될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문을 여시오.
칫...!
닥터 루고사의 단호한 목소리에, 남자는 점점 기세가 눌려 입만 뻥끗거렸다.
......
그리고 마침내, 안에서 잠겼던 문이 열렸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여러분.
번거롭겠지만, 차례대로 여기다 성함을 적어 주세요.
문 밖의 생존자들은 앞다투어 객차 안으로 몰려들었다. 당장에라도 안의 사람들이 마음을 바꿀까 무서운 듯이.
마지막으로, 폴이 닥터 루고사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로시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폴은 로시타를 등에서 내려, 수잔나에게 맡겼다.
그때, 루카스가 수잔나를 제외한 다른 인형들이 객차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 왜 여러분은 안 들어오세요?
폴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우리는 인형이야. 우리에겐 인간을 지킬 의무가 있어.
솔직히 무섭긴 마찬가지지만... 뭐어, 위험해지더라도 우리가 2호차에서 한동안은 막을 수 있을 거야.
다른 인형들은 말이 없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도 F01호차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터였다.
하지만 한데 모여 용기가 생겼는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결국 어느 인형도 발을 떼지 않았다.
이에, 이번엔 닥터 루고사가 인형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부탁드리오.
저는 열차의 설비를 점검하겠습니다.
루고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떠나는 폴을 눈으로 배웅한 뒤, 시선을 고열에 지쳐 잠든 로시타에게 돌렸다.
루카스, 내 의료함 가져오거라.
네.
루카스는 곧장 수잔나와 함께 객차 안으로 들어갔다.
............
닥터 루고사는 잠시 혼자 문밖에 서서, 엉망으로 늘어진 열차를 바라봤다. 썰렁한 복도 저 끝까지 생기란 없었다.
그렇게 잠시, 그는 눈을 돌리고 다시 객차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1호 객차의 휴게실.
선생님, 교관님이 지시하신 대로 자리를 배정해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여기는 두 분께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 사람을 지원하러 가야 합니다.
걱정 마시게.
그의 등 뒤로, 초연한 모습의 그녀가 휴게실의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두 분의 신뢰에 보답할 것이 없군요.
......
혹시 남는 권총 있소?
......
류드밀라가 고개를 돌려 본 닥터 루고사의 뒷모습은, 침착하고 의연했다.
...어디에 쓰실 생각입니까?
나도 끝까지 놈들에게 맞서 싸울 거요. 그대들이 도적떼에게 맞섰던 것처럼.
......
류드밀라의 눈에, 그의 등에선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류드밀라는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그의 어깨 위로 손잡이가 향하도록 건넸다.
그리고 닥터 루고사는 정중히 두 손으로 권총을 받았다.
......!
루카스는 이 광경을 옆에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지켜봤다.
그때, 닥터 루고사의 얼굴에도 창밖의 불빛이 비쳤다.
군대의 마수가, 열차 가까이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대가 놈들의 목표요?
...예.
그러니 제 손으로 전부 처리할 겁니다.
무슨 수로?
여명으로 밤을 밝혀서.
아아... 이런 자리에서나마 그대와 알게 되어 대단히 기쁘오, 류드밀라 교관.
저야말로, 닥터 유진 루고사.
류드밀라는 드물게 부드럽게 감은 눈으로 미소를 짓곤, 문을 나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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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간 열차 "미래호", 망가진 차량에서 멀지 않은 위치.
비 내리는 밤하늘 아래서, 이븐 대위는 지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통신이 들어왔다.
<color=#00CCFF>움직여.</color>
<color=#00CCFF>이 인형을 원해.</color>
암호화된 코드도 함께 전달되었다.
이븐 대위가 미리 설정된 명령어를 입력하자, 화면에 사이드캡을 쓴 진중한 표정의 여성이 출력됐다.
<color=#00CCFF>제7총국 예하 선진 작전 훈련대, "Я" 교관. 해당 분대 내 유일한 사관 인형. 상세 정보 불명. 위험도 극고.</color>
......
대륙간 열차, "미래호"의 어느 차량 안.
뚝... 뚝... 뚝...
그칠 기미 없는 비로 인해 열차 안에도 곳곳에 웅덩이가 생겼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음울한 분위기의 생존자들을 더욱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지금 방호복을 입은 채 수잔나의 인솔을 따라 류드밀라가 지시한 대로 F01호 특등석 객차로 향하는 중이었다.
여기 큰 턱이 있습니다, 발밑에 주의하십시오.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 수잔나에게 부축을 받아야 간신히 장애물을 넘을 수 있을 정도로, 비틀리고 찌그러진 차량 안은 험난한 산길처럼 생존자 행렬의 속도를 크게 늦췄다.
그러던 그때,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노, 놈들이 온다!
승무원 씨 저기 좀 봐요!
수잔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창밖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진 불빛들이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열차로 접근하는 것이 분명했다.
다 죽이러 오는 거야... 이제 끝이야...
싫어... 난 여기서 죽기 싫어!
겁에 질린 생존자가 F01호 차량을 향해, 발밑의 오물과 날카롭게 깨진 유리 조각도 무시하고 내달렸다.
우... 우리도! 우리도 빨리 가자!
손님 여러분 발밑을 조심하세요!
앞사람을 밀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나방을 내쫓는 횃불처럼, 창밖의 점점 더 촘촘해지는 불빛이 사람들을 운명이란 우리 속으로 몰아넣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말을 따르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모두가 달리기 시작했다.
단 한 명, 행렬의 끄트머리에 있던 거대한 그림자만 빼고.
로시타, 아직 버틸 수 있겠니?
폴의 등에 업혀 웅크린 로시타는, 겉으로 드러난 피부에 규소화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듯 보였다.
폴... 나, 폴이 만든 샌드위치 먹고 싶어...
의사 선생님께 진찰받은 다음에 만들어 줄게.
응...
저 앞에서 야단법석을 부리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생사의 기로에서, 한 사람이 챙길 수 있는 건 언제나 자신의 목숨뿐이었다.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1-F02 열차간 연결구.
길고도 고된 길이었다.
그래도 마침내, 생존자들은 F01호 객차의 문앞까지 도달했다.
쿵쿵쿵!
수잔나가 문을 마구 두드리는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나와 전자키를 꺼냈다.
삐빅.
권한이 부족합니다.
<color=#A9A9A9>매기 이 빌어먹을 년!</color>
아... 안에 계신 손님, 저는 승무원 인형 수잔나입니다.
지금 여기 생존자 손님들께 마실 물과 음식, 그리고 쉴 자리가 필요합니다.
저희를 들여보내 주십시오.
스윽——
차량 문의 창문에 귀티를 부리는 얼굴이 나타났다.
들어오는 건 상관없는데...
그 전에 방호복부터 벗으세요.
뭣?!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정화 장치 전부 망가졌어!
이걸 벗음 복사에 노출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벗으라고! 방호복에 방사능에 세균이 얼마나 묻었을지 누가 알아!
그게 무슨...
고작 1, 2분 정도 노출된다고 안 죽어!
당신들이 붕괴 입자 잔뜩 묻은 채로 들어오면 우리 다 죽는다고!
문 밖의 생존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저 밖의 불빛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다가오고 있다 생각하니, 잠깐의 침묵 후 그들은 말없이 주섬주섬 방호복을 벗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이제 됐어!? 얼른 문 열어!
흥...
남자는 천천히 몸을 돌려 문을 열려는 듯했다.
그때, 그의 눈에 무언가 들어오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잠깐, 그 여자애는 뭐야?
......
남자가 가리킨 것은 다름아닌 폴에게 업힌 로시타였다.
걔 이미 감염된 거 아니야?!
어쩌자고 데려왔어!? 몽땅 감염시킬 작정이야?!
이 아이의 증상은 아직 가볍습니다!
아직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 칸에 의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의사를 보게 해 주십시오!
이런 상황에서 의사 보여 준다고 무슨 소용인데!
아, 아무튼 들어올 생각 마! 이대로 개죽음당하기 싫어!
뭐야?! 당신이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저 여자앤 감염됐어도 우린 멀쩡하다고! 빨랑 문 열어!
전염됐는지 안 됐는지 어떻게 알아!
폴...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폴의 등에 업힌 로시타가 그의 어깨를 꼬옥 쥐었다.
싫어... 날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보내지 마...
그런 곳... 다신 가기 싫어...
로시타는 폴에게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곳엔 가고 싶지 않아...
그냥 여기 있을래... 폴이 있잖아, 폴이랑 함께면 괜찮아...
로시타의 목소리에 마법의 힘이 담긴 듯했다.
살벌한 언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여기서 폴에게만 겨우 들릴 정도로 미미한 목소리였음에도, 순간 모두가 침묵했다.
이 무거운 침묵 속에서, 폴은 한참을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로시타, 난 그저 인형일 뿐이야. 나는 네 친구가 아니야.
나는 언제까지고 네 곁에 있어 줄 수 없어. 너는 인간이야, 인간과 함께해야 해. 네가 있을 곳은 저기야.
싫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진 나도 알아. 폴, 난 폴이 인형이든 뭐든 상관없어.
난 날 걱정해 주는 사람이랑 같이 있을래... 폴이 내 친구야, 날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
그리고 다시 이어지던 죽음과 같은 정적을, 문 뒤에서 난 인자한 목소리가 깼다.
들여보내시오.
오...! 봐, 들어오라 하잖아! 빨리 문열어!
미쳤어 의사 양반?! 저 앤 감염됐다고!
그렇소, 난 의사요.
그리고 저들을 문 밖에 내버려두면 우리가 무사할 줄 아시오?
아 그래 저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저 감염자는? 저 애를 들이면 전부 감염될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문을 여시오.
칫...!
닥터 루고사의 단호한 목소리에, 남자는 점점 기세가 눌려 입만 뻥끗거렸다.
......
그리고 마침내, 안에서 잠겼던 문이 열렸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여러분.
번거롭겠지만, 차례대로 여기다 성함을 적어 주세요.
문 밖의 생존자들은 앞다투어 객차 안으로 몰려들었다. 당장에라도 안의 사람들이 마음을 바꿀까 무서운 듯이.
마지막으로, 폴이 닥터 루고사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로시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폴은 로시타를 등에서 내려, 수잔나에게 맡겼다.
그때, 루카스가 수잔나를 제외한 다른 인형들이 객차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 왜 여러분은 안 들어오세요?
폴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우리는 인형이야. 우리에겐 인간을 지킬 의무가 있어.
솔직히 무섭긴 마찬가지지만... 뭐어, 위험해지더라도 우리가 2호차에서 한동안은 막을 수 있을 거야.
다른 인형들은 말이 없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도 F01호차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터였다.
하지만 한데 모여 용기가 생겼는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결국 어느 인형도 발을 떼지 않았다.
이에, 이번엔 닥터 루고사가 인형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부탁드리오.
저는 열차의 설비를 점검하겠습니다.
루고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떠나는 폴을 눈으로 배웅한 뒤, 시선을 고열에 지쳐 잠든 로시타에게 돌렸다.
루카스, 내 의료함 가져오거라.
네.
루카스는 곧장 수잔나와 함께 객차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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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루고사는 잠시 혼자 문밖에 서서, 엉망으로 늘어진 열차를 바라봤다. 썰렁한 복도 저 끝까지 생기란 없었다.
그렇게 잠시, 그는 눈을 돌리고 다시 객차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
대륙간 열차 "미래호", F01호 객차의 휴게실.
선생님, 교관님이 지시하신 대로 자리를 배정해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여기는 두 분께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 사람을 지원하러 가야 합니다.
걱정 마시게.
그의 등 뒤로, 초연한 모습의 그녀가 휴게실의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두 분의 신뢰에 보답할 것이 없군요.
......
혹시 남는 권총 있소?
......
류드밀라가 고개를 돌려 본 닥터 루고사의 뒷모습은, 침착하고 의연했다.
...어디에 쓰실 생각입니까?
나도 끝까지 놈들에게 맞서 싸울 거요. 그대들이 도적떼에게 맞섰던 것처럼.
......
류드밀라의 눈에, 그의 등에선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류드밀라는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그의 어깨 위로 손잡이가 향하도록 건넸다.
그리고 닥터 루고사는 정중히 두 손으로 권총을 받았다.
......!
루카스는 이 광경을 옆에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지켜봤다.
그때, 닥터 루고사의 얼굴에도 창밖의 불빛이 비쳤다.
군대의 마수가, 열차 가까이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대가 놈들의 목표요?
...예.
그러니 제 손으로 전부 처리할 겁니다.
무슨 수로?
여명으로 밤을 밝혀서.
아아... 이런 자리에서나마 그대와 알게 되어 대단히 기쁘오, 류드밀라 교관.
저야말로, 닥터 유진 루고사.
류드밀라는 드물게 부드럽게 감은 눈으로 미소를 짓곤, 문을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