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W3 만토바 여행
충성은 절대 입에 발린 말로 증명하는 게 아닙니다.
테이블 중앙에 루비 보석을 낀 잘린 손가락이 하얀 손수건 위에 놓여 있었다.
깔끔하고 냉정하군... 좋아, 자네들은 실제 행동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였네.
"수석 금융가"의 칭찬에 글레프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굽혔다.
사하로프는 미소 지은 채 다가가 글레프와 친절하게 악수를 하고, 바로 시선을 그 뒤에 있는 발레리야에게 향했다.
부군이 이렇게 재주가 좋은데, 안주인도 필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겠지? 아직 부인을 정식으로 소개받지 못한 것 같네만...
송구합니다. 이쪽은 제 집사람인 발레리야라 합니다. 소련 과학원에서 한동안 일했습니다.
발레리야는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했다.
그건 정말 의외로군... 어느 분야 연구에 종사했었는지 알 수 있나?
물리학입니다, 어르신.
사하로프는 흡족하게 발레리야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좋아, 아주 좋군...
지식인은 뒷세계의 진정한 보물이지. 지식으로 무장한 밀수단체야말로 군용화기 시장의 미래 아니겠나!
자네들의 가입은 본디 두 손 벌려 환영해야 마땅하겠지...
허나...
사하로프는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아서 손을 내저었다.
글레프와 발레리야는 서로 눈치를 교환했다. 그들의 가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조직에는 아주 중요한 규칙이 하나 더 있지. 바로 "우리는 친인척을 끊어낸다." 부모와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가정을 꾸려서도 안 되네.
이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둘은 여기서 떠나야 하네만... 자네들 생각은 어떠한가?
빛을 등지고 있는 탓에 사하로프의 얼굴은 시종일관 진한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레프 부부는 그의 눈에서 교활한 웃음기가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
가장 어려운 시험은 이제야 시작된 것이다.
글레프는 바짝 마른 입술을 핥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미소를 짓고 테이블에 다가갔다.
"수석 금융가" 어르신, 조직의 규칙에 따르자면 확실히 저는 여기서 수 년간 사랑을 나눈 아내를 버려야겠지요...
하지만 조직에 몸을 담은 후로 아내는 잠자리를 함께하는 사람을 넘어서 제 가장 충실하고 총명한 파트너가 됐습니다.
지금까지의 임무에서 이 여자의 공헌을 잘 보셨을 겁니다.
발레리야의 공헌은 당연히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네.
조직의 규칙을 어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조직에 들어오기 전부터 엄격한 규칙에 대해 전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직이 지금 이 정도의 규모로 발전한 비결은 엄격한 위계질서와 규칙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서로를 돕고 구하는 의리도 무척 중요하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동료를 저버리지 않는 의리.
저와 발레리야는 진심으로 조직에 남아 몸바쳐 일하고 싶습니다. 부부가 아닌 두 조직원의 신분으로.
사하로프가 턱 밑의 수염을 어루만지며 눈꼬리를 내렸다. 글레프의 말에 꽤나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
글레프는 승리를 확신하고 한시름 놓은 듯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타앙!
이 화목한 분위기를 한 발의 총성이 깨뜨렸다.
검은 옷의 보디가드가 밖에서 달려들어와, 방 안의 거한과 함께 총구를 발레리야에게 겨눴다.
한편 맞은편에서는 사하로프 쪽을 보던 글레프의 몸뚱이가 털썩 쓰러졌고, 뜨거운 피가 그의 머리에서 흘러나와 카펫을 적셨다.
발레리야는 총을 놓고 천천히 두 손을 들어올리며 또박또박 말했다.
충성은 절대 입에 발린 말로 증명하는 게 아닙니다.
그녀의 어조는 마치 얼어붙은 호수면 같았다.
보디가드들은 양쪽으로 길을 비켰고 그 사이로 사하로프가 걸어나와 복잡한 생각이 실린 눈빛을 보였다.
......
자네가 총을 쏜 이유는 이해하네.
다만 궁금하군, 남편을 남겨두면 자네에게도 이득이지 않나?
저를 남겨두면 그에겐 확실히 이득이 있죠.
어르신께서 그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신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그에게 저는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
저는 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구가 아니라 발레리야로서.
그러니 저는 모든 것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짝... 짝...
고요한 방 안에 맑은 손뼉 소리가 울렸다.
사하로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그녀를 인정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사하로프는 발레리야의 손을 정중하게 쥐고 비수로 그녀의 손바닥을 그었다.
피가 손금을 따라 흘러 한 방울씩 바닥에 떨어졌다.
사하로프는 이어서 성자의 이콘을 꺼내 불을 붙였다.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고, 종이가 타고 남은 재가 천천히 발레리야의 손바닥에 뿌려졌다.
발레리야, 오늘, 너는 새롭게 태어난다. 우리의 사업에 합류하여 조직의 신조에 평생토록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거라.
만약 맹세를 어길 시엔 너는 지옥의 불에 휩싸여 지금 손바닥에 재가 되어 떨어진 성자의 상처럼 될 것이다.
맹세하겠느냐?
예, 맹세합니다.
사하로프는 미소 지으며 손바닥을 발레리야의 머리에 얹었다.
친애하는 바네사여... 자네가 괜찮다면 이 시간부로 자네에게 "사하로프"의 성을 내리겠네.
충성스런 발레리야 사하로프가 앞으로 나를 위해, 조직을 위해, 불가능한 일을 더 많이 해내기를 바라네.
이는 자네에 대한 표창이면서 내 진심어린 기대일세. 받아들이겠는가?
......
발레리야 사하로프는 어르신의 기대에 부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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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중앙에 루비 보석을 낀 잘린 손가락이 하얀 손수건 위에 놓여 있었다.
깔끔하고 냉정하군... 좋아, 자네들은 실제 행동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였네.
"수석 금융가"의 칭찬에 글레프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굽혔다.
사하로프는 미소 지은 채 다가가 글레프와 친절하게 악수를 하고, 바로 시선을 그 뒤에 있는 발레리야에게 향했다.
부군이 이렇게 재주가 좋은데, 안주인도 필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겠지? 아직 부인을 정식으로 소개받지 못한 것 같네만...
송구합니다. 이쪽은 제 집사람인 발레리야라 합니다. 소련 과학원에서 한동안 일했습니다.
발레리야는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했다.
그건 정말 의외로군... 어느 분야 연구에 종사했었는지 알 수 있나?
물리학입니다, 어르신.
사하로프는 흡족하게 발레리야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좋아, 아주 좋군...
지식인은 뒷세계의 진정한 보물이지. 지식으로 무장한 밀수단체야말로 군용화기 시장의 미래 아니겠나!
자네들의 가입은 본디 두 손 벌려 환영해야 마땅하겠지...
허나...
사하로프는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아서 손을 내저었다.
글레프와 발레리야는 서로 눈치를 교환했다. 그들의 가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조직에는 아주 중요한 규칙이 하나 더 있지. 바로 "우리는 친인척을 끊어낸다." 부모와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가정을 꾸려서도 안 되네.
이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둘은 여기서 떠나야 하네만... 자네들 생각은 어떠한가?
빛을 등지고 있는 탓에 사하로프의 얼굴은 시종일관 진한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레프 부부는 그의 눈에서 교활한 웃음기가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
가장 어려운 시험은 이제야 시작된 것이다.
글레프는 바짝 마른 입술을 핥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미소를 짓고 테이블에 다가갔다.
"수석 금융가" 어르신, 조직의 규칙에 따르자면 확실히 저는 여기서 수 년간 사랑을 나눈 아내를 버려야겠지요...
하지만 조직에 몸을 담은 후로 아내는 잠자리를 함께하는 사람을 넘어서 제 가장 충실하고 총명한 파트너가 됐습니다.
지금까지의 임무에서 이 여자의 공헌을 잘 보셨을 겁니다.
발레리야의 공헌은 당연히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네.
조직의 규칙을 어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조직에 들어오기 전부터 엄격한 규칙에 대해 전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직이 지금 이 정도의 규모로 발전한 비결은 엄격한 위계질서와 규칙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서로를 돕고 구하는 의리도 무척 중요하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동료를 저버리지 않는 의리.
저와 발레리야는 진심으로 조직에 남아 몸바쳐 일하고 싶습니다. 부부가 아닌 두 조직원의 신분으로.
사하로프가 턱 밑의 수염을 어루만지며 눈꼬리를 내렸다. 글레프의 말에 꽤나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
글레프는 승리를 확신하고 한시름 놓은 듯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타앙!
이 화목한 분위기를 한 발의 총성이 깨뜨렸다.
검은 옷의 보디가드가 밖에서 달려들어와, 방 안의 거한과 함께 총구를 발레리야에게 겨눴다.
한편 맞은편에서는 사하로프 쪽을 보던 글레프의 몸뚱이가 털썩 쓰러졌고, 뜨거운 피가 그의 머리에서 흘러나와 카펫을 적셨다.
발레리야는 총을 놓고 천천히 두 손을 들어올리며 또박또박 말했다.
충성은 절대 입에 발린 말로 증명하는 게 아닙니다.
그녀의 어조는 마치 얼어붙은 호수면 같았다.
보디가드들은 양쪽으로 길을 비켰고 그 사이로 사하로프가 걸어나와 복잡한 생각이 실린 눈빛을 보였다.
......
자네가 총을 쏜 이유는 이해하네.
다만 궁금하군, 남편을 남겨두면 자네에게도 이득이지 않나?
저를 남겨두면 그에겐 확실히 이득이 있죠.
어르신께서 그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신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그에게 저는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
저는 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구가 아니라 발레리야로서.
그러니 저는 모든 것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짝... 짝...
고요한 방 안에 맑은 손뼉 소리가 울렸다.
사하로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그녀를 인정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사하로프는 발레리야의 손을 정중하게 쥐고 비수로 그녀의 손바닥을 그었다.
피가 손금을 따라 흘러 한 방울씩 바닥에 떨어졌다.
사하로프는 이어서 성자의 이콘을 꺼내 불을 붙였다.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고, 종이가 타고 남은 재가 천천히 발레리야의 손바닥에 뿌려졌다.
발레리야, 오늘, 너는 새롭게 태어난다. 우리의 사업에 합류하여 조직의 신조에 평생토록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거라.
만약 맹세를 어길 시엔 너는 지옥의 불에 휩싸여 지금 손바닥에 재가 되어 떨어진 성자의 상처럼 될 것이다.
맹세하겠느냐?
예, 맹세합니다.
사하로프는 미소 지으며 손바닥을 발레리야의 머리에 얹었다.
친애하는 바네사여... 자네가 괜찮다면 이 시간부로 자네에게 "사하로프"의 성을 내리겠네.
충성스런 발레리야 사하로프가 앞으로 나를 위해, 조직을 위해, 불가능한 일을 더 많이 해내기를 바라네.
이는 자네에 대한 표창이면서 내 진심어린 기대일세. 받아들이겠는가?
......
발레리야 사하로프는 어르신의 기대에 부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