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로변형
EP.13.9 · 세로변형

35-W4 이별곡

그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저주예요...

-54-W-4

1 / 51
전체 대사 보기 (46줄)

몇 개월 후, 옐로우존의 어느 버려진 지하 진료소.

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복도에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고통스런 산통에 울부짖던 진료소 병실에 새로 태어난 희망이 찾아왔다.

병상 위에서, 점차 기력을 회복하는 중인 검은 옷의 여인이 눈을 뜨고 침대 끝자락을 짚으며 윗몸을 일으켰다.

의사

축하합니다, 하나님께서 건강한 아들을 내리셨네요.

의사는 활짝 웃으며 품속의 아기를 어미 앞에 내보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검은 옷의 여인은 기뻐하거나 우는 게 아니라,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아기를 힐끗 보고 짜증이 나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기는 글레프와 많이 닮아 있었다. 가슴에 난 반점까지 똑같았다.

검은 옷의 여인

...13번가에 보내세요.

의사

저... 아기를 보지도 않으시고요?

검은 옷의 여인

그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저주예요...

제 말대로 하지 않으면 그 아기가 당신에게 엄청난 불행을 가져다 줄 겁니다.

의사 품속의 아기는 어미의 차가운 태도를 느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여인은 일말의 미련도 보이지 않고,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진료소를 떠났다.

사하로프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발레리야는 입단하고 겨우 수개월 사이에 유례없는 전격전으로 조직의 내부 충돌을 몇 건이나 해결해 여러 눈엣가시들을 제거해 주었다.

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 휴가 신청 횟수가 점점 잦아진 점은 사하로프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필요한 골칫덩이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음을 발레리야는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의 접견으로 반드시 사하로프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

사하로프

날씨 한번 좋군, 친애하는 바네사.

발레리아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창 밖을 보던 사하로프가 환하게 웃으며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품 속엔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다.

발레리야의 동공이 수축했다. 가슴팍의 저 반점은 틀림없는...

발레리야

<color=#A9A9A9>그렇구나...</color>

발레리야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사하로프 앞으로 다가가 곤히 잠든 아기를 차갑게 흘겨보았다.

사하로프

참 귀여운 아기일세, 안 그런가?

발레리야

태어나선 안 될 생명입니다, 당장 처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사하로프는 발레리야를 곁눈질로 훑어보았다. 여전히 그녀의 눈빛 속에서는 흔들림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내심 가볍게 탄식하고, 사람을 불러 아기를 먼저 방 밖으로 내보냈다.

사하로프

앉아서 얘기하세, 친애하는 바네사.

사하로프의 얼굴은 친절하고 상냥했지만 거절을 불허하는 위압감이 있었다. 발레리야는 할 수 없이 그와 마주앉아, 복잡한 생각들이 한데 섞인 그의 두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사하로프

그 뭐냐, 이런 일이 있었네. 어젯밤 사탄이 꿈속에서 내게 위대한 예언을 내렸다네.

내가 오늘 조직의 다음 두목과 혈연 관계가 있는 자를 양자로 들일 것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게 재앙이 떨어질 것이라 했지.

발레리야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하로프

친애하는 바네사, 이건 운명이라 생각하지 않나?

자네는 내가 큰 책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위인일세. 그런데 때마침 사탄이 내게 신탁을 내린 오늘, 자네가 득남하다니...

그러니 저 아기는 오늘 죽을 운명이 아닌 거야. 내가 이 녀석을 양아들로 맞이하겠네.

발레리야

하지만 우리는 친인척을 모두 끊어내야 합니다.

사하로프

걱정 말게나, 이 일을 아는 자들은 모두 처리했으니.

지금 오직 자네와 나만이 이 아이의 진짜 출생을 알고 있네.

발레리야는 눈살을 약간 찌푸리고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사하로프의 뜻을 거역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하물며 조직 전체에 뿌리내린 사탄 숭배는, 발레리야가 신탁이란 핑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발레리야

그 아기가 죽든 살든 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사탄의 계시가 그렇고 어르신께서 그렇게 결정하신 이상...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사하로프

그래, 그래야지.

사하로프는 친절하게 미소지으며 테이블 위에 놓은 발레리야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사하로프

이름은 이미 생각해뒀어, 니콜라스라고 부르겠네.

이제부터 나는 외부에 니콜라스를 나의 양아들이라 알리겠네. 그 아이는 내 곁에서 즐겁게 자랄 걸세... 하지만 자네와는 일절 관계 없는 일이지.

사탄께 맹세하겠네. 니콜라스가 자네와 나 사이의 약속의 증인이네.

발레리야는 황송해하며 고개를 숙여 사하로프의 손에 입을 맞췄다.

"수석 금융가"의 배려심 깊은 눈빛을 받으며, 그녀는 등을 돌려 방을 나섰다.

사하로프

......

참 독한 여자구만...

갑자기 사하로프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아기를 안고 나갔던 도적단원이 방에 돌아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도적A

저 여자를 꺼려하신다면 그냥 해치우면 되지 않습니까? 저희가 어르신 대신...

사하로프

저 여자는 이미 기반을 잡았으니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네.

그리고 아직 우리 조직에는 저 여자가 필요해. 저렇게 독한 인물이 있어야 조직을 이끌고 옐로우존을 지배하지...

다만 나는 이미 늙었잖은가. 만일 그녀가 선을 넘으려는 생각을 품고 있다면... 역시 뭐라도 약점을 쥐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나.

도적A

부디 걱정 마십시오, 어르신! 저 여자가 무슨 꿍꿍이를 품든 저희가 목숨바쳐 지켜드리겠습니다!

사하로프

자네들이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사하로프는 온화하게 웃지만 눈에 품은 비웃음은 감추지 않았다. 도적단원은 자신의 무능을 자각하고 고개를 숙였다.

사하로프

글레프 그 녀석의 수작도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일리가 있네.

약점이 없는 자야말로 가장 무섭지, 발레리야가 그토록 막강하다면 그녀에게 약점을 억지로라도 만드는 수밖에.

안 그러니, 니콜라스?

니콜라스는 사하로프의 품에 안겨 해맑게 웃었다. 마치 순진무구한 천사처럼 사랑스러운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