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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다시 조용해졌다.
아마리스의 마인드맵 공간.
운명의 쌍둥이는 고고한 푸른 달 아래 이 고요한 공간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스쳐 지나가는 데이터의 흐름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았다.
겨우 이 정도론 나를 죽일 수 없어.
전력을 내서 한다는 짓이 겨우 나를 네 마인드맵에 조금이라도 가두려는 거냐?
엘리아나.
모두를 대체 어떻게 죽였어?
왜 모두 마인드맵 코어조차 회수할 수 없었던 거야...?
몇 번이나 말해 줬을 텐데.
군인의 끝은 결국 "군번줄"이야.
그것 때문에 난 네가 어디 있든, 단 하나인 너를 찾아낼 수 있어.
......
네 질문에 대답했으니 이젠 내 질문에 대답할 차례다.
너는 대체... 무슨 배짱으로 "서광" 팀에 있었던 거냐?
...곧 알게 될 거야.
아마리스의 회심의 미소. 엘리아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엘리아나, 왜 내가 "달"인 거 같아?
......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아마리스는 홀로 그 어딘가에 앉아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잔잔한 웅덩이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진 것처럼.
청량한 달빛이 어둠을 밝히고, 아마리스의 눈을 가린 안개를 걷어냈다.
너희들...
너무나도 밝지만 무척이나 부드러워, 여태 어둠 속에 있었던 아마리스에게도 그 빛이 전혀 눈부시지 않았다.
축하해, 온전한 너를 찾았구나.
축하해.
잘했어, 아마리스.
너라면 해내리라 믿었어.
이번엔 나도 칭찬해 줄 수밖에 없겠네.
다시 "아마리스"가 된 기분이 어때?
너희들...
똑딱, 똑딱...
어둠이 완전히 걷혀, 익숙한 얼굴들이 아마리스의 곁에 나타났다.
아마리스는 자신의 의자에 앉은 채,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봤다. 잠깐이라도 눈을 돌리면 사라질까,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똑... 똑...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아마리스.
어깨에 손이 살며시 얹어졌다. 간신히 정신을 다잡은 아마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의 옆에서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웃고 있는 유라를 보았다.
유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데이터의 밑바닥에서, 물리적인 방해는 아무 의미 없었다.
이것은 그녀 자신이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의 구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리스!
그런 그녀를, 유라의 외침이 다시 깨웠다.
너희들... 떠나는 거야?
......
유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아마리스의 머릿결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아마리스, 난 알고 있었어. 너에겐, 우리에겐 없는 강인함과 용기가 있다는 것을.
너도 처음부터 진실을 알았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어. 그치?
......
우리 걱정은 마, 중요한 순간에 막내 동생 발목 잡는 못된 언니는 되기 싫다고.
엘리아나는... 우리를 비추던 태양이었지.
그리고 넌 우리가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달이야.
아마리스... 이건 너만이 짊어질 수 있는 책임이야.
마음의 준비는 됐어?
겁먹지 마, 우리 모두 마지막까지 네 곁에 함께할 거야.
......
아마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자매들"은 그녀를 감싸, 다독이고, 격려하고, 인정해 주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아마리스는 길게 숨을 내쉬곤 떨구었던 고개를 천천히 다시 들었다.
말해 줘, 너는 누구야?
나는... 태양을 집어삼키는 달.
일식처럼, 햇빛을 전부 가리는 그림자.
그녀는 "서광" 팀의 막내로서, 언제나 모두가 아끼고 챙겨 주었다. 그 추억, 그 보살핌 덕분에 그녀는 지금까지 모두에게 어리광 부릴 수 있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리광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짊어진 책임을, 누군가에겐 "급소"가 될 자신의 의무를 잊을 뻔했다.
나는... "아마리스".
네 이름은 이미 정해 뒀어.
아마리스.
신의 축복이 담긴 선물, 달의 아이.
그래서 우리도 네게 작은 선물을 주려 해.
그게 뭔데요?
"문"이란다. 서광 팀의 미래를 위해, 네 마인드맵으로 "기억"을 받아들일 문.
서광의 미래를 위해서 노력해 주겠니?
...네, 노력할게요.
좋았어, 앞으로 이 "문"의 열쇠는 네가 보관하렴.
하지만 절대 함부로 써서는 안 돼, 그녀의 끝이 곧 너의 시작이 될 테니까.
일단 이 대화를 나눈 기억은 봉인할 거야, 필요한 날이 올 때까지... 아니, 평생 쓸 일이 없길 바란다.
아마리스가 앉았던 의자는 어느샌가 사라졌다.
지금 그녀는 우뚝 서 있었다. 천천히 다시 뜬 반짝이는 두 눈동자엔 한 점의 망설임도 남아있지 않았다.
유라, 로우렐, 크리스탈... 익숙한 "기억"들도 바로 그녀 뒤에 있었다.
"군번줄" 시스템... 맞지?
너희를 부수고 가둔 물건...
내가 전부 끝내겠어.
아마리스 앞의 쇠사슬로 묶인 문은 그저 조용히, 위험한 빛을 발하기만 했다.
뻗어지는 손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
그때, 유라의 손이 그녀의 손에 겹쳐졌다.
로우렐의 손도 그녀의 손에 겹쳐졌다.
크리스탈의 손도 그녀의 손에 겹쳐졌다.
하나씩 하나씩, 덧없고도 따뜻한 그림자들이 그녀가 뻗은 손에 겹쳐졌다.
하지만 아마리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끼이이――
육중한 쇠사슬은 허무하게 끊어졌고, 여태까지 아마리스를 막아섰던 문이 마침내 활짝 열렸다.
쏴아——
...!?
생소한 데이터 스트림이 밀려들고, 푸른 달이 더욱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빛 아래로,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과 것들이 다시 그녀의 눈앞에 떠올랐다.
너였구나... 그게 바로 너였구나...!
그게 바로 너였다니 정말 다행이다, 아마리스!
유언 남길 시간 3분 주겠다.
풉... 엘리아나, 아닌 척하는 거 언제 봐도 귀엽네.
......
변함 없을 것 같았던 서맨사의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고,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전장에서 죽는 인간들은 다 엄청 괴로워하면서 죽었어.
마인드맵을 융합하는 건 단순히 데이터를 합치는 거니까, 그렇게까지 괴롭진 않겠지...?
...솔직히, 나도 몰라.
엘리아나, 전쟁이 과연 끝날 것 같아?
끝내고자 이러는 거야.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때가 되니... 역시 스스로를 설득하기가 버겁네.
눈먼탄에 맞아 죽든, 적의 해킹으로 회로가 타 죽든...
............
긴 침묵이 이어졌다.
서맨사는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엘리아는 팔을 뻗어, 손을 서맨사의 가슴에 댔다.
그러자 푸른 빛이 일었다.
엘리... 마지막에 살아남는 사람이 누구든, 우리의 사명을 잊지 않고, 전쟁을 끝내서 서광을 가져다주길 바라...
그래야 나도 사명을 다한 셈이 될 거... 아니야......
......응.
그리고, 서맨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마인드맵의 데이터가 난폭하게 추출되어...
방대하던 데이터 스트림이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졌다.
서맨사의 슬픔, 두려움, 고통, 무력감...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 감정의 격류에 엘리아나는 마인드맵이 두 쪽으로 찢어질 것만 같았다.
......
허억... 허억...
어휴 젠장...
언젠가는 꼭 승부를 내고 싶었는데, 이젠 그럴 기회도 없겠네...
...빨랑 끝내.
솔직히 반전이고 뭐고 없어서 실망이야...
...더 하고 싶은 말 있어?
하고 싶은 말 뭐.
전쟁은 언제나 어느 한 쪽이 총알을 다 써 버리는 걸로 끝나잖아.
근데, 그 마지막 한 발을 쏘는 게 너일 줄은 몰랐네...
전쟁은 끝날 거야.
아쉽게도, 상관없어. 상관없는 일이 됐어.
나한테도, 이 몇 년 동안 죽은 수만 명의 사람들한테도. 이젠 아무 상관 없어.
......
빨리 안 하고 뭐해? 쓸데없이 숨만 붙여 두지 말고 얼른 하라고.
...서광은 떠오르리라, 누구를 위해서라도...
크리스탈의 모습은 깜빡이다 이내 홍수에게 뜯어먹혔다.
엘리아나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
속상하다... 속상한데, 딱히 그 이상의 무언가는 안 느껴져.
나 망가진 걸까?
......
어째서... 모르겠어... 대체 왜...
......
엘리아나...
......
엘리아나...
타앙!
엘리아나가 방아쇠를 당겨, 마지막으로 나타난 유라의 환영을 깨뜨렸다. 이제 남은 것은 아마리스였다.
다시 한 쪽이 내려다보는 구도가 되었지만, 지금 두 인형의 위치는 정반대였다.
골수에 스며드는 독처럼, 흡수된 데이터들이 엘리아나의 몸 속에서 날뛰었다.
끊임없이 찢어지고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해, 엘리아나는 지금 겨우 원형만 유지할 뿐이었다.
결국 그녀의 비참한 미소가 끝을 알렸다.
네가 이겼어.
......
내가 죽으면, 그들처럼 나의 기억도 네가 계승하게 될까?
아니, 넌 그들과 같은 방을 쓸 자격도 없어. 기억의 단편도 어림없어.
그렇다면 안심이네. 남이 내 안을 엿보는 건 원치 않아. 설령 너라도 말이야, 아마리스.
흥... 난 네가 모두를 죽인 것처럼 널 죽이지 못해.
그것 참 유감이겠네, 내 "군번줄"을 가져가지 못해서...
필요 없어, 모두의 것은 이미 되찾았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 엘리아나 너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
적어도 내게는.
너의 "군번줄"은 내 "문"과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랬구나...
사실상 이건 둘이서 하나의 시스템이야.
단지, 그들은 너를 서광 팀의 미래라 생각했어.
그래서 성능을 끌어올리는 능력을 너에게 준 거야.
하... 운이 좋았군.
그리고... 감정이나 기억 같은 "쓸모 없는 잉여 데이터"는 나에게 오도록 했고.
이런 구조 덕분에 난 지난 13년을 그들과 함께했어.
아마리스는 점점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흡사, 더는 흥미가 없어진 것처럼.
밖에서 정신없이 부는 찬바람이 깨진 창문을 통해 건물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정중앙에 누운 엘리아나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아마리스를 멍하니 바라봤다.
............
아마리스도 바닥에 쓰러져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엘리아나를 내려다보다, 파우치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그녀에게 휙 던졌다.
종이는 하늘하늘 엘리아나의 머리맡에 떨어졌다.
오래전,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
두 인형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인형은 서로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제서야, 엘리아나는 깨달았다.
그녀가 기억하던 약하고 쓸모없고 언제나 누가 챙겨 줘야 했던 아마리스는...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싹을 틔워서 그녀마저도 흔들 수 없는 거목으로 성장했음을.
...그거 알아? 나, 예전엔 네가 엄청 부러웠어.
내가 너의 자리를 차지해버릴까 욕심낸 적 있을 정도로.
너를 동경했어. 너처럼 되고 싶었어.
......
엘리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
내가 동경하던, 다다르려고 갈망했던 그 자리에...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더 이상 네가 아니야.
어두워진 엘리아나의 눈빛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아마리스는 얼굴을 쓱쓱 닦고는 등을 돌렸다.
끝이었다.
......
엘리아나는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봤다.
공허한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들으면서.
이윽고 발소리는 출구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밤은 다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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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리스의 마인드맵 공간.
운명의 쌍둥이는 고고한 푸른 달 아래 이 고요한 공간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스쳐 지나가는 데이터의 흐름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았다.
겨우 이 정도론 나를 죽일 수 없어.
전력을 내서 한다는 짓이 겨우 나를 네 마인드맵에 조금이라도 가두려는 거냐?
엘리아나.
모두를 대체 어떻게 죽였어?
왜 모두 마인드맵 코어조차 회수할 수 없었던 거야...?
몇 번이나 말해 줬을 텐데.
군인의 끝은 결국 "군번줄"이야.
그것 때문에 난 네가 어디 있든, 단 하나인 너를 찾아낼 수 있어.
......
네 질문에 대답했으니 이젠 내 질문에 대답할 차례다.
너는 대체... 무슨 배짱으로 "서광" 팀에 있었던 거냐?
...곧 알게 될 거야.
아마리스의 회심의 미소. 엘리아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엘리아나, 왜 내가 "달"인 거 같아?
......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아마리스는 홀로 그 어딘가에 앉아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잔잔한 웅덩이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진 것처럼.
청량한 달빛이 어둠을 밝히고, 아마리스의 눈을 가린 안개를 걷어냈다.
너희들...
너무나도 밝지만 무척이나 부드러워, 여태 어둠 속에 있었던 아마리스에게도 그 빛이 전혀 눈부시지 않았다.
축하해, 온전한 너를 찾았구나.
축하해.
잘했어, 아마리스.
너라면 해내리라 믿었어.
이번엔 나도 칭찬해 줄 수밖에 없겠네.
다시 "아마리스"가 된 기분이 어때?
너희들...
똑딱, 똑딱...
어둠이 완전히 걷혀, 익숙한 얼굴들이 아마리스의 곁에 나타났다.
아마리스는 자신의 의자에 앉은 채,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봤다. 잠깐이라도 눈을 돌리면 사라질까,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똑... 똑...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아마리스.
어깨에 손이 살며시 얹어졌다. 간신히 정신을 다잡은 아마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의 옆에서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웃고 있는 유라를 보았다.
유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데이터의 밑바닥에서, 물리적인 방해는 아무 의미 없었다.
이것은 그녀 자신이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의 구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리스!
그런 그녀를, 유라의 외침이 다시 깨웠다.
너희들... 떠나는 거야?
......
유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아마리스의 머릿결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아마리스, 난 알고 있었어. 너에겐, 우리에겐 없는 강인함과 용기가 있다는 것을.
너도 처음부터 진실을 알았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어. 그치?
......
우리 걱정은 마, 중요한 순간에 막내 동생 발목 잡는 못된 언니는 되기 싫다고.
엘리아나는... 우리를 비추던 태양이었지.
그리고 넌 우리가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달이야.
아마리스... 이건 너만이 짊어질 수 있는 책임이야.
마음의 준비는 됐어?
겁먹지 마, 우리 모두 마지막까지 네 곁에 함께할 거야.
......
아마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자매들"은 그녀를 감싸, 다독이고, 격려하고, 인정해 주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아마리스는 길게 숨을 내쉬곤 떨구었던 고개를 천천히 다시 들었다.
말해 줘, 너는 누구야?
나는... 태양을 집어삼키는 달.
일식처럼, 햇빛을 전부 가리는 그림자.
그녀는 "서광" 팀의 막내로서, 언제나 모두가 아끼고 챙겨 주었다. 그 추억, 그 보살핌 덕분에 그녀는 지금까지 모두에게 어리광 부릴 수 있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리광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짊어진 책임을, 누군가에겐 "급소"가 될 자신의 의무를 잊을 뻔했다.
나는... "아마리스".
네 이름은 이미 정해 뒀어.
아마리스.
신의 축복이 담긴 선물, 달의 아이.
그래서 우리도 네게 작은 선물을 주려 해.
그게 뭔데요?
"문"이란다. 서광 팀의 미래를 위해, 네 마인드맵으로 "기억"을 받아들일 문.
서광의 미래를 위해서 노력해 주겠니?
...네, 노력할게요.
좋았어, 앞으로 이 "문"의 열쇠는 네가 보관하렴.
하지만 절대 함부로 써서는 안 돼, 그녀의 끝이 곧 너의 시작이 될 테니까.
일단 이 대화를 나눈 기억은 봉인할 거야, 필요한 날이 올 때까지... 아니, 평생 쓸 일이 없길 바란다.
아마리스가 앉았던 의자는 어느샌가 사라졌다.
지금 그녀는 우뚝 서 있었다. 천천히 다시 뜬 반짝이는 두 눈동자엔 한 점의 망설임도 남아있지 않았다.
유라, 로우렐, 크리스탈... 익숙한 "기억"들도 바로 그녀 뒤에 있었다.
"군번줄" 시스템... 맞지?
너희를 부수고 가둔 물건...
내가 전부 끝내겠어.
아마리스 앞의 쇠사슬로 묶인 문은 그저 조용히, 위험한 빛을 발하기만 했다.
뻗어지는 손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
그때, 유라의 손이 그녀의 손에 겹쳐졌다.
로우렐의 손도 그녀의 손에 겹쳐졌다.
크리스탈의 손도 그녀의 손에 겹쳐졌다.
하나씩 하나씩, 덧없고도 따뜻한 그림자들이 그녀가 뻗은 손에 겹쳐졌다.
하지만 아마리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끼이이――
육중한 쇠사슬은 허무하게 끊어졌고, 여태까지 아마리스를 막아섰던 문이 마침내 활짝 열렸다.
쏴아——
...!?
생소한 데이터 스트림이 밀려들고, 푸른 달이 더욱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빛 아래로,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과 것들이 다시 그녀의 눈앞에 떠올랐다.
너였구나... 그게 바로 너였구나...!
그게 바로 너였다니 정말 다행이다, 아마리스!
유언 남길 시간 3분 주겠다.
풉... 엘리아나, 아닌 척하는 거 언제 봐도 귀엽네.
......
변함 없을 것 같았던 서맨사의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고,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전장에서 죽는 인간들은 다 엄청 괴로워하면서 죽었어.
마인드맵을 융합하는 건 단순히 데이터를 합치는 거니까, 그렇게까지 괴롭진 않겠지...?
...솔직히, 나도 몰라.
엘리아나, 전쟁이 과연 끝날 것 같아?
끝내고자 이러는 거야.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때가 되니... 역시 스스로를 설득하기가 버겁네.
눈먼탄에 맞아 죽든, 적의 해킹으로 회로가 타 죽든...
............
긴 침묵이 이어졌다.
서맨사는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엘리아는 팔을 뻗어, 손을 서맨사의 가슴에 댔다.
그러자 푸른 빛이 일었다.
엘리... 마지막에 살아남는 사람이 누구든, 우리의 사명을 잊지 않고, 전쟁을 끝내서 서광을 가져다주길 바라...
그래야 나도 사명을 다한 셈이 될 거... 아니야......
......응.
그리고, 서맨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마인드맵의 데이터가 난폭하게 추출되어...
방대하던 데이터 스트림이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졌다.
서맨사의 슬픔, 두려움, 고통, 무력감...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 감정의 격류에 엘리아나는 마인드맵이 두 쪽으로 찢어질 것만 같았다.
......
허억... 허억...
어휴 젠장...
언젠가는 꼭 승부를 내고 싶었는데, 이젠 그럴 기회도 없겠네...
...빨랑 끝내.
솔직히 반전이고 뭐고 없어서 실망이야...
...더 하고 싶은 말 있어?
하고 싶은 말 뭐.
전쟁은 언제나 어느 한 쪽이 총알을 다 써 버리는 걸로 끝나잖아.
근데, 그 마지막 한 발을 쏘는 게 너일 줄은 몰랐네...
전쟁은 끝날 거야.
아쉽게도, 상관없어. 상관없는 일이 됐어.
나한테도, 이 몇 년 동안 죽은 수만 명의 사람들한테도. 이젠 아무 상관 없어.
......
빨리 안 하고 뭐해? 쓸데없이 숨만 붙여 두지 말고 얼른 하라고.
...서광은 떠오르리라, 누구를 위해서라도...
크리스탈의 모습은 깜빡이다 이내 홍수에게 뜯어먹혔다.
엘리아나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
속상하다... 속상한데, 딱히 그 이상의 무언가는 안 느껴져.
나 망가진 걸까?
......
어째서... 모르겠어... 대체 왜...
......
엘리아나...
......
엘리아나...
타앙!
엘리아나가 방아쇠를 당겨, 마지막으로 나타난 유라의 환영을 깨뜨렸다. 이제 남은 것은 아마리스였다.
다시 한 쪽이 내려다보는 구도가 되었지만, 지금 두 인형의 위치는 정반대였다.
골수에 스며드는 독처럼, 흡수된 데이터들이 엘리아나의 몸 속에서 날뛰었다.
끊임없이 찢어지고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해, 엘리아나는 지금 겨우 원형만 유지할 뿐이었다.
결국 그녀의 비참한 미소가 끝을 알렸다.
네가 이겼어.
......
내가 죽으면, 그들처럼 나의 기억도 네가 계승하게 될까?
아니, 넌 그들과 같은 방을 쓸 자격도 없어. 기억의 단편도 어림없어.
그렇다면 안심이네. 남이 내 안을 엿보는 건 원치 않아. 설령 너라도 말이야, 아마리스.
흥... 난 네가 모두를 죽인 것처럼 널 죽이지 못해.
그것 참 유감이겠네, 내 "군번줄"을 가져가지 못해서...
필요 없어, 모두의 것은 이미 되찾았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 엘리아나 너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
적어도 내게는.
너의 "군번줄"은 내 "문"과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랬구나...
사실상 이건 둘이서 하나의 시스템이야.
단지, 그들은 너를 서광 팀의 미래라 생각했어.
그래서 성능을 끌어올리는 능력을 너에게 준 거야.
하... 운이 좋았군.
그리고... 감정이나 기억 같은 "쓸모 없는 잉여 데이터"는 나에게 오도록 했고.
이런 구조 덕분에 난 지난 13년을 그들과 함께했어.
아마리스는 점점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흡사, 더는 흥미가 없어진 것처럼.
밖에서 정신없이 부는 찬바람이 깨진 창문을 통해 건물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정중앙에 누운 엘리아나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아마리스를 멍하니 바라봤다.
............
아마리스도 바닥에 쓰러져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엘리아나를 내려다보다, 파우치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그녀에게 휙 던졌다.
종이는 하늘하늘 엘리아나의 머리맡에 떨어졌다.
오래전,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
두 인형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인형은 서로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제서야, 엘리아나는 깨달았다.
그녀가 기억하던 약하고 쓸모없고 언제나 누가 챙겨 줘야 했던 아마리스는...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싹을 틔워서 그녀마저도 흔들 수 없는 거목으로 성장했음을.
...그거 알아? 나, 예전엔 네가 엄청 부러웠어.
내가 너의 자리를 차지해버릴까 욕심낸 적 있을 정도로.
너를 동경했어. 너처럼 되고 싶었어.
......
엘리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
내가 동경하던, 다다르려고 갈망했던 그 자리에...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더 이상 네가 아니야.
어두워진 엘리아나의 눈빛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아마리스는 얼굴을 쓱쓱 닦고는 등을 돌렸다.
끝이었다.
......
엘리아나는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봤다.
공허한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들으면서.
이윽고 발소리는 출구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밤은 다시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