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성쇼크
EP.14 · 만성쇼크

SPR 회색 나무

그날 이후로 난 물러설 곳이 없어졌어.

-58-1-B3

1 / 221
전체 대사 보기 (207줄)

레드존 외곽, 3소대 임시 지휘소.

눈이 닿는 곳에서는 사람이랄 만한 것은 거의 안 보였지만, 끝없이 울려 퍼지는 총성이 아직 전투가 계속되고 있음을 사방에 알렸다.

다만 갱지 안에서 파괴되어 검은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는 수송 차량 3대가, 전투의 성과를 나타냈다.

2분대장 판

와 씨, 우리가 진짜 양키놈들을 막아낸 거야? 이런 수적 열세로?

이거야 원, 나중에 장편의 시를 써서 기록으로 남겨야겠구만!

안나

작전이란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아. 앞으로 내가 천천히 가르쳐 줄게.

2분대장 판

정말 대단하십니다 소대장님! 평생 따르겠습니다!

안나

각 분대, 현위치서 5분 휴식 후 재정비하고 지휘부의 지시를 기다린다.

2분대장 판

예!

그때, 무언가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3소대의 진지로 날아들었다.

안나

<size=50>엎드려!!!</size>

안나가 가장 가까운 알렉산더를 붙잡아 넘어뜨리며 엎드리는 거의 동시에, 강력한 충격파가 진지를 휩쓸었다.

온세상이 뒤집히며 깜빡였고, 초록색 결정 가루가 섞인 진흙이 비린내를 흩뿌리며 쏟아졌다.

누가 무어라 소리를 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가... 어둠에 잠겼다.

어딘가의 사관 학교.

4층 복도엔 수많은 세계 유명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중 오른쪽 끝에서 다섯 번째는 과학자, 마사 마이트너였다. "유적기술 연구에 혁신적인 성과를 올림."

조용해야 할 점심 시간이건만, 안나는 복도를 지나던 중 스프레이 소리를 들었다.

안나

음?

늘씬한 몸집의 남학도

미국인은 우리 학교에 걸릴 자격 없다!

왜소하고 퉁퉁한 남학도

양키는 소련에서 꺼져라!

안나

<size=50>지금 뭐하는 거야!</size>

안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두 사람을 밀쳐냈다.

마사의 초상화는 눈에 검은 줄이 그어졌고, 머리 위엔 이미 온갖 육두문자가 쓰여진 상태였다.

안나

<size=50>이 자식들!!!</size>

성난 안나는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갑작스런 공격에 남학도들은 잠깐 당황하다, 이내 반격에 나서 셋은 한데 뒤엉켜 싸워댔다.

안나가 이를 악물고 주먹 몇 대를 견뎌내곤 맹공을 퍼붓는 통에 두 남학도들은 머리를 감싸기까지 하며 뒤로 물러났고, 활활 타오르는 저 두 눈을 향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항의했다.

늘씬한 몸집의 남학도

양키 초상화에 낙서했다고 지금 학우를 패는 거야?

안나

전장에 나설 배짱도 없어서 초상화에다 화풀이하는 겁쟁이들을 패는 거다!

늘씬한 몸집의 남학도

뭐래 XX, 난 당장에라도 전선 나가서 양키 새끼들 모가지 딸 수 있거든!?

언제라도 다시 뒤엉켜 주먹질할 기세였지만, 남학도가 곁눈질로 반대편에서 나타난 그림자를 보고 기겁했다.

왜소하고 퉁퉁한 남학도

라, 람잔 교관님?!

늘씬한 몸집의 남학도

젠장... 교관 동생이라 차암 좋겠다!

왜소하고 퉁퉁한 남학도

......

두 남학도들은 바람처럼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반대편 끝에서는, 교관 람잔이 조용히 호수처럼 잔잔한 눈빛으로 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나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성질을 부리며 피 섞인 침을 뱉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우람한 체격의 교관이 천천히 걸어왔다.

안나

다 봤어?

람잔

넌 왜 아직도 술 취한 고릴라가 주먹 휘두르는 것처럼 싸우냐.

안나

하... 실전 과목 교관님 얼굴에 먹칠을 해서 미안하게 됐네요.

안나는 눈길도 안 주고 발길을 돌렸다.

람잔

멈춰.

안나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발을 내디뎠다.

람잔

<size=50>안나 빅토로브나 최!</size>

안나

왜. 훈련생의 격투술이 엉망이라 교관님이 직접 시간 내서 지도해 주려고? 여기서?

람잔

저 초상화 떼어내라, 마사 마이트너 거.

그제서야 안나가 고개를 홱 돌려 람잔을 똑바로 바라봤다.

안나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람잔

의심할 여지 없는 소련인이지.

그러는 너는?

안나

무슨 소련인, 학교 안에 쭈그려 앉아서 초상화에나 대고 잘난 척하는 소련인?

람잔

저년은 유적기술을 연구하는 미국인이다. 넌 어느 나라 사람이지?

안나

내가 너한테 증명할 의무는 없는데.

람잔

너 자신에게 증명할 의무는 있지.

이걸 떼던가, 그걸 떼.

람잔은 초상화와 안나의 학교 완장을 번갈아 가리켰다.

안나

네가 무슨 권한으로!

람잔

자신이 어느 편인지도 분간 못하는 반푼이를 전장에 내보낼 순 없다.

안나

모르는 건 너지!

람잔

뗄 거야? 안 뗄 거야?

안나

그래... 그렇게 날 전장에 보내기 싫으시다 이거지?

람잔은 말 대신 차가운 눈초리만 보냈다.

안나

내가 너보다 출세할까 봐 무섭냐? 어!?

예전부터 그랬어! 베슬란에서도――

람잔

네가 무슨 자격으로 베슬란을 들먹여!

왜 형은 죽고 너는 살아남았냐고!

왜 네가 아니라 형이 죽어야만 했――

람잔

......칫...

안나

......!!

......

정신이 들었을 때, 안나는 머리에 보드카 한 병이 꽂힌 듯 어지러운 가운데에도 누가 자신을 질질 끌고 가는 게 느껴졌다.

알렉산더

<size=50>소대장님! 정신 차리십쇼!</size>

안나

너어... 계급장 뺏으려고 날 흔들어 죽일 셈이냐...

부웅부웅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헛구역질했지만,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소대장이 정신을 차리자, 알렉산더를 그녀를 놓고 "포도당"이라 적힌 링거 팩을 건넸다.

알렉산더

드십시오.

안나는 그걸 받아 포장을 뜯어 천천히 마셨다.

3소대 병사들은 앉거나 누운 채로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의료 인형 한 명이 그들 사이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윅토르와 다른 병사 한 명은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손 안의 통신 장비를 만지작거렸다.

알렉산더

람잔 대위님이 도착해서 인형 부대를 지휘 중이십니다.

저 의료 인형 좀 보십쇼, 완전 미인 아닙니까? 하하하, 판이 봤으면 바로... 작업 걸었을 텐데...

사나이 알렉산더가 갑자기 울컥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안나

판은...?

알렉산더

양키 새끼들, 후퇴하면서 박격포를 네 발이나 갈겼습니다.

그중 한 발이 2분대의 진지에, 판이 있던 그 자리에 떨어져서...

안나

...몇 명 죽었어?

알렉산더

...사망자 4명, 부상자 4명입니다.

안나

......

누운 채 신음하는 부상자들, 총을 껴안고 앉은 채 하늘만 바라보는 병사들...

알렉산더도 머릿속이 찌잉 울리면서도 텅 빈 느낌이었다.

알렉산더

허구한 날 지가 카사노바네 뭐네 허풍이나 치고, 소름 돋게 못 쓰는 시나 자랑하면서 지가 무슨 21세기의 푸시킨이라 떠들어 대던 놈이...

알렉산더

이게 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따라야 한다는 건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그래도...

알렉산더는 숨을 잔뜩 마시고, 떨리는 목소리를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에게, 안나는 어깨를 토닥여 줄 수밖에 없었다.

안나

네가 3소대 최고참에, 유일한 자진입대자랬던가... 왜 입대했어?

알렉산더

아무것도 안 남아서요.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적어도 나라까지 버릴 순 없잖습니까...

사실 그렇게 고상한 이유도 아니고, 그냥 군대 말곤 갈 데가 없었어서 말뚝 박았습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점심이나 날씨 이야기하듯 툭 내뱉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리는 것을 애써 억누르는 티가 났다.

알렉산더

제 얘기는 됐고... 소대장님은요?

장군 되겠다는 농담 말고 말입니다.

안나

솔직하게 말해 줘?

안나는 포도당액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안나

난 말이다... 전쟁을 끝내고 싶어.

알렉산더

...그런 말 하는 사람은 많이 봤습니다.

안나

그리고?

알렉산더

다 죽었죠.

빌어먹을 전쟁은 보다시피고요.

안나

......

뭣 좀 물어보자.

알렉산더

말씀하십쇼.

안나

삶이 결국 덧없을 운명이라면, 몸부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알렉산더

...제 생각엔――

1분대장 윅토르

<size=50>그 무전 신호 또 포착했습니다!</size>

윅토르가 알렉산더의 말을 끊었다.

1분대장 윅토르

레인저 놈들 이 주변에 있는 게 틀림없어요, 이거 레드존으로 진입한 거 아닙니까?

달랑 한 대 남은 소형 통신기를 품에 안은 윅토르는 흥분해서 안나를 바라봤다.

안나는 눈빛으로 알렉산더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알렉산더

암호 해독 못한다면서?

1분대장 윅토르

우리 설비론 안 돼도 저 인형들은 되겠죠!

전술인형한텐 온갖 기능이 달렸다잖습니까, 전투는 물론이고 컴퓨터처럼 쓸 수 있다고요. 부대한테 잘 말해서 한두 대 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안나

저쪽은 정예 부대야, 우리가 뭔 수로 손을 벌려?

1분대장 윅토르

그치만 저쪽 대위는 소대장님의――

1분대장 윅토르

<size=50>꾸와악!</size>

알렉산더의 로우킥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윅토르는 한 팔로는 통신기를, 다른 손으로는 정강이를 부여잡고 깽깽이발로 방방 뛰었다.

안나

어우 현기증 나...

안나는 바위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알렉산더도 어깨를 으쓱하자, 윅토르는 인상을 구긴 채 절뚝이며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불어오는 후덥지근 바람은 여전히 끈적해, 땀과 흙탕물에 절은 방호복은 홀딱 젖은 우비처럼 살갗에 들러붙었다.

안나는 더 말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은 채 손가락으로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

알렉산더도 입을 다물었지만, 결국 참지 못했다.

알렉산더

...두 분, 싸웠습니까?

안나

쓸데없는 거 묻지 마라...

알렉산더

가족끼리 싸우는 건 좋은 일입니다.

마티나가 아직 살아있었으면, 맨날 저한테 투정 부려도 다 받아 줬을 겁니다.

안나

만약이라...

너 말하는 게 진짜 가족이 전부라고 설교하는 할망구 같다.

알렉산더가 대꾸하려던 그때 윅토르가 똥 씹은 표정으로 다시 걸어왔고, 그 소리에 안나도 눈을 떴다.

1분대장 윅토르

소대장님, 대위님께 말해봤는데, 저는 무시하고, 소대장님이 직접 오랍니다.

안나

아놔!

알렉산더

제가 대신 갈까요?

안나

욕을 사서 먹게?

알렉산더

인형을 빌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요.

공적은 길바닥에 굴러다니지 않는다셨잖습니까.

1분대장 윅토르

어떡할까요...?

안나가 무거운 표정으로 일어섰다.

안나

너흰 여기서 기다려, 나 혼자 갔다 온다.

잠시 후, 임시 지휘소.

안나가 도착했을 때, 람잔은 차가운 표정으로 한 인형에게 무어라 말하는 중이었다.

안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가가, 형식적으로 경례를 했다.

안나

대위.

람잔

――그리고 KS-23와 함께 레드존 입구 쪽으로 가서 인근 지형을 스캔하도록.

생명 반응 포착 시 자체적으로 피아식별 후 발포를 허가한다.

아군 통신 채널과 두절될 시 오프라인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즉시 집결 장소로 복귀해 정보를 공유해.

SVT-38

예, 지휘관.

명령을 하달받은 전술인형은 그대로 나가려 했다.

안나

잠깐.

SVT-38

소위님?

안나

대위――

람잔

최 소위, 저지 임무 협력에 감사한다. 후속 정찰 임무는 전술인형 부대가 이어서 완수하겠다.

안나

레드존 외부 지형은 3소대가 이미 정찰 및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데이터 공유 가능합니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람잔

인형을 빌려 적의 암호 통신을 해독하겠단 거지?

안나, 적 정찰 임무의 최우선 사항이 무엇이지?

안나

기도비닉 유지――

아오 씨 이젠 교관도 아닌데 그딴 말투 하지 마.

안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다 성질을 내며 비아냥댔다.

람잔

적의 암호를 해독하다 아군의 위치가 노출될 가능성은 생각 안 했어?

안나

아무것도 안 하다 중요한 정보를 놓쳐서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보단 낫겠지.

람잔

나가.

안나

얼씨구 바로 쫒아내시겠다? 그래 내가 더러워서――

람잔

너 말고!

너, 나가.

SVT-38가 잠깐 얼을 탔다가 바로 뒤돌아 나갔다.

람잔

안나, 우리의 임무는 미군의 증원을 저지하는 거야. 그리고 임무는 완수했어.

안나

"사형수"는 냅두게? 그놈은 바로 저기, "죽음의 바다"에 있어. 레인저가 언제 놈을 잡아갈지 모른다고.

람잔

그건 본대의 임무지, 우리가 신경쓸 게 아니야.

안나

왜 내빼는데, 나랑 내 3소대가 네 공적 뺏어갈까 겁나?

람잔

공적을 통장에 든 현금으로 친다면 너한테 10년을 줘도 내 이자도 못 모을 거다.

잘 들어, 임무 외에는 건들지 마. 괜히 건드렸다간 전황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안나

뭐? 내가 잘못 들었나? 나더러 소극적으로 대응하라고? <size=50>네가?</size>

람잔

불필요한 행동은 사상자를 늘릴 뿐이야. 지금 네 3소대에 몇 명 남았지?

안나

필요한 행동을 안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생긴단 건 모르고? 대위, 이 점에 관해서는 내가 너보다 발언권 높아.

그 말을 들은 람잔의 눈빛은 한층 더 얼어붙었다.

안나

......

잠깐의 대치 후, 람잔이 먼저 눈을 감고 미간을 문질렀다. 인상을 쓰는 그의 눈두덩이엔 다크서클이 진하게 두드러졌다.

안나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알아.

하지만 외줄타기든 순탄한 길이든 가시밭 길이든, 난 기어서라도 나아가야만 해.

안나

그날 이후로 난 물러설 곳이 없어졌다고.

......

??

<color=#00CCFF>교수님 오래 못 기다리신다, 더 빨리 움직여.</color>

???

<color=#00CCFF>9번대 차량 2대, 적재 완료. 곧 복귀하겠다.</color>

???

<color=#00CCFF>6번대는 계속 수색 중, 아직까지 재료 발견 못함.</color>

????

<color=#00CCFF>7번대, 현재 복귀 중.</color>

??

<color=#00CCFF>일 지체시키면 당장 네가 재료실행이라는 거 명심해라.</color>

<color=#00CCFF>무조건 11시 22분 전에 도착해 재료 초기 선별과 재적을 완료하고, 11시 30분 정각에 전원 철수한다.</color>

???

<color=#00CCFF>라저.</color>

임시 지휘소.

연산력을 집중하는 두 인형들의 눈동자 속으로 데이터의 홍수가 흘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적의 통신을 감청하는 데 성공한 안나와 람잔은 각자 머리를 굴렸다.

1분대장 윅토르

저거 뭐라는 거야...?

알렉산더

묻지 마, 나도 영어는 단어 몇 개밖에 몰라.

안나

조용.

람잔은 미간을 찌푸리고 수시로 지도를 훑었다.

람잔

어딘가의 정규군일까, 고용된 용병일까...

안나

"교수"? "재료"란 건 또 뭐지?

안나와 람잔은 잠깐 시선을 교환하고 감청을 계속했다.

???

<color=#00CCFF>그나저나, 미국은 아주 불붙은 화약통 아니었어? 내전 터지기 직전이던데 여기까지 쳐들어올 여유도 다 있네.</color>

????

<color=#00CCFF>하하하, 덕분에 레인저까지 보내서 우리가 이렇게 횡재한 거 아니겠어!</color>

<color=#00CCFF>재료를 이렇게 잔뜩 보내면 우리야 고맙게 받아먹어야지.</color>

???

<color=#00CCFF>그래도 레인저 놈들 때문에 적군이 잔뜩 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이사하느라 고생할 일 없었다고...</color>

안나&람잔

교수가 "사형수"다!

동시에 결론에 도달해 외친 두 사람은 바로 서로에게서 시선을 치웠다.

람잔

크흠... "사형수"는 레인저의 체포 작전을 빠져나갔단 건가?

안나

이거 월척이네.

람잔

백상아리지. 하지만 우린 지금 병력이 부족해.

KS-23, 데이터 블랙존에서 이탈해.

KS-23

예.

【연결을 끊는 중...】

KS-23

...? 지휘관, 연결이 끊기지 않습니다.

????

<color=#00CCFF>그래도 저것들은 한참 멀리 있잖아. 놈들이 여기까지 왔을 때면 우린 사라진 지 오래야.</color>

??

<color=#00CCFF>그래서 엿듣는 거 재밌냐, 버러지들아?</color>

KS-23

상대가 역추적해옵니다!

안나

!!!

람잔

<size=50>강제 리부트!</size>

인형의 눈동자에서 빛이 틱 꺼지며 소체가 강제 리부트되었다.

SVT-38

지휘관, 레드존에서 미확인 비행물체가 포착됐습니다.

초병

<size=50>저게 뭐지!?</size>

초록색 안개 너머에서 청백색 불덩이가 한 쌍 한 쌍, 마치 고개를 드는 안광처럼 피어올랐다.

미확인 비행물체는 후미의 분사염으로 밝은 궤적을 그리며, 안개와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람잔

제기랄, 비상 사태! 즉시 퇴각하라!

안나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 <size=50>모두 엄폐해!</size>

쏜살같이 날아온 비행체들은 저공비행으로 굉음과 함께 탄막의 비를 쏟아냈다.

콰아앙!

그리고 폭음과 화염, 매연이 치솟았다.

안나

람잔!

비행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갔고, 안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기억하는 방향으로 뛰었다.

땅을 딛고 서 있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가까스로 생존한 이들도 곁의 전우를 살피려 했지만, 곁의 누군가를 아주 조금만 건드려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런 광경에, 한순간 과거가 뇌리를 스쳤다.

총성, 비명, 울음소리, 죽어가는 신음...

패닉에 빠진 사람들, 안전 케이스 뒤에 숨어 몸을 떠는 소녀, 눈물 가득한 두 눈...

안나

......!!

누군가 팔을 덥석 붙잡아, 안나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알렉산더

<size=50>소대장님!</size>

얼굴 절반에 화상을 입고 꼴도 말이 아닌 알렉산더였다.

람잔

쿨럭쿨럭... 안나? 안나!

진흙 더미에서 기어나온 람잔도 불똥으로 방호복에 구멍이 여럿 난 상태였다.

그런데도 람잔은 허겁지겁 달려와 안나의 어깨를 붙들고 이리저리 뭘 확인하는 듯하다, 흠칫하며 손을 떼고 시선을 돌렸다.

람잔

인형 소대, 내 위치로 집결해! 돌파 준비한다!

먼지 구름이 점차 걷혀 갔다.

그 시야의 끝에서, 완전무장한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안나

<size=50>3소대! 아직 움직일 수 있으면 따라와! 포위를 돌파한다!</s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