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성쇼크
EP.14 · 만성쇼크

SPR Tableau no.1

세계 각국이 편을 가르고 하이에나처럼 서루를 물어뜯고 있는데, 네가 그 사이서 목숨 던져 털 한 가닥 뽑는다고 전쟁이 끝나겠어?

-58-1-B5

1 / 188
전체 대사 보기 (175줄)

황폐한 마을에서, 총성은 폭죽놀이처럼 이어졌다.

람잔

<color=#00CCFF>안나! 교대 엄호 사격하면서 후퇴한다! 즉시 3소대 화력투사 준비시켜!</color>

안나

알았다, 하지만 이쪽은 탄약이 얼마 없어.

람잔

<color=#00CCFF>어떻게든 해봐!</color>

삑.

안나는 발밑의 진흙을 걷어차고, 겨우 4명 남은 3소대 생존자들을 바라봤다.

안나

다시! 지휘부에 다시 연락해 봐!

1분대장 윅토르

여전히 신호 불량입니다, 연락이 안 닿아요!

안나

임시 집결지에 아직 3명 있지? 걔네한테 물자 남은 거 모조리 갖고 오라 해!

1분대장 윅토르

통신 연결은 되는데 응답이 없습니다!

안나

제기랄... 탄약 아끼면서 은엄폐 유지!

안나는 조준경 너머의 목표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격발음과 함께 적 한 명이 털썩 쓰러졌고, 안나는 바로 몸을 숙였다.

그러기가 무섭게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알렉산더

소대장님! 대위님의 부대가 곧 지정 위치에 도착합니다!

안나

3소대! 방어선 좁히고 후퇴 준비해!

안나는 총을 고쳐 쥐고, 다음 후퇴 경로를 빠르게 결정했다.

알렉산더

저 새끼들 엄마가 블랙 맘바인가, 물고 놓지를 않네!

알렉산더는 소총 단발 사격으로 화력 투사하는 적을 하나씩 끊으며 안나의 몇 m 안으로 다가왔다.

알렉산더

윅토르! 그 고물 만지는 건 나중에 하고 빨리 와!

1분대장 윅토르

알았... 어? 신호 잡혔다!? 소대장님! 통신――

윅토르가 환희에 차 통신기를 든 손을 번쩍 들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퍼엉!

기다렸다는 듯 날아든 총알은 통신기와 함께 윅토르의 손을 박살냈다.

1분대장 윅토르

<size=50>끄아아아아아악!!!</size>

알렉산더

윅토르!!

피를 철철 흘리며 허둥대는 윅토르는 알렉산더에게 가려다, 그만 몸이 엄폐물 밖으로 노출되고 말았다.

총알 세례는 순식간에 쏟아졌고, 윅토르의 몸에서 피가 폭발하듯 뿜어졌다.

병사

분대장님!

알렉산더

멍청아 가지 마!

병사

으아아악!!

윅토르를 끌어당기려던 두 병사들도 총탄에 몸이 꿰뚫렸다.

결국 그들도 윅토르 옆에 쓰러져,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안나

<size=50>윅토르! 유리! 코즐로프!</size>

한편, 위치에서 간신히 자리를 잡은 람잔의 소대가 3소대를 엄호하고자 화망을 구축했다.

1분대장 윅토르

소대장님...!

이를 깨달은 알렉산더가 눈에 불을 켜고 기회를 엿봐 윅토르라도 구출하려 했지만, 두 걸음 내딛자마자 총탄의 비가 윅토르 옆에 구멍을 뚫어대 도로 엄폐할 수밖에 없었다.

1분대장 윅토르

살려――

타앙! 목소리가 뚝 끊어지고, 윅토르의 고개가 땅에 떨어졌다.

안나

제기랄...!

알렉산더! 눈 돌리고 따라와! 당장!

알렉산더

......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고, 알렉산더는 남겨진 전우들을 뒤로했다.

안나

대위, 3소대는 이제 2명밖에 안 남았다. 교차 엄호 사격 불가능. 귀측에 합류 요청한다, 반복한다, 합류 요청한다.

람잔

<color=#00CCFF>...알았다, 신속히 이쪽으로 이동하라.</color>

안나

알았다.

잠시 후, 합류 지점인 폐가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총알이 바닥난 소총을 내던졌다.

람잔의 인형 소대와 합류한 후, 그들은 동쪽으로 퇴각했다.

그리고 레드존 끝자락에서, 만신창이인 전술인형들은 람잔과 경례하며 작별을 고했다.

남은 인간 3명은 계속 동쪽으로 향했다.

......

............

레드존 외곽, 3소대의 원래 임시 집결지 밖.

추격을 따돌린 세 사람은 묵묵히 걸음을 재촉했고, 마침내 폐공장의 모습이 희미한 초록빛 안개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나

우리 수송 차량이 저 건물 안에 있어. 총 3대에, 통신 장비와 보급품도 넉넉히 있어.

람잔

내가 따로 한 대 쓰지. 이 정보를 반드시 본부에 전달해야만 해.

안나가 입을 열려던 찰나,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벽 뒤로 숨었다.

알렉산더

초병이 있는데, 우리 부대원이 아닙니다.

그 말에 화답하듯 안에서 총성이 들렸다.

안나는 즉각 총을 뽑아 나서려다 멈추고, 이를 악물었다.

안나

총성은 단 한 발...

알렉산더

소대장님, 3소대에 남은 건 저 녀석들뿐입니다.

안나

알아 젠장...!

안나는 발을 굴렀고, 람잔은 조용했다.

안나

...맞아, 공장 뒤에 벽이 무너진 곳이 있어. 그쪽으로 넘어가자.

아직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알렉산더

그럼 주저할 게 뭐 있습니까? 당장 가죠.

안나는 람잔을 바라봤다.

람잔

...상황 보면서 움직이고, 들키지 않게 주의해.

잠시 후, 공장 안.

10명은 족히 넘는 완전무장한 병사들이 둥글게 서 있었고, 그 가운데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통신기에 대고 무어라 말했다.

운전병 한 명은 피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었고, 나머지 둘은 무릎을 꿇린 채 양손을 들고 벌벌 떨었다.

병사 대장?

어때, 나머지 미꾸라지들한테서 통신 안 왔어?

병사?

없습니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슬쩍 시간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병사 대장?

에이 됐다, 곧 철수 시간이네.

빨리빨리 하자, 주사해.

병사 한 명이 의료 상자에서 수상한 주사기 3자루를 꺼냈다.

수송차량 운전병A

뭐야, 뭐하려는 거야? <size=50>안 돼! 싫어, 이거 놔!</size>

병사 대장?

꽉 붙잡아!

바늘은 그의 목덜미를 찔러, 연녹색의 액체를 주입했다.

수송차량 운전병B

<size=50>으아아아악!! 소대장님! 알렉산더! 소대장님! 아아아악!!</size>

마지막 주사기는 피웅덩이 속의 운전병에게 그 속을 비웠다.

병사 대장?

찾아내면 좋겠는데... 교수가 아주 좋아할 거라고...

수송차량 운전병A

<size=50>끄어아아아악!!</size>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기괴한 울부짖음.

세 운전병은 안면이 급격하게 일그러지고 쪼그라들었다. 몸도 빠르게 혈색을 잃었고, 경련을 일으키고, 몸을 마구 할퀴고, 위아래턱이 발작적으로 부딪혔다.

그런 끔찍한 광경을, 저 병사들은 손에서 총을 놓지 않으면서도 제자리에서 그대로 무덤덤하게 지켜봤다.

병사 대장?

솔직히 기대는 안 했는데, 역시 이 "재료"도 불합격인가...

시간 없으니까 얼른 차에 싣고 여기 청소해!

대장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고, 이어서 나머지 병사들도 총격을 가했다.

이내 운전병들이 꿈틀거리지도 않게 되자, 병사 6명이 그들을 질질 끌고 갔다.

잠시 후, 폐공장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리고 틈새를 통해 이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알렉산더는 눈에서 피라도 뿜을 지경이었다.

알렉산더

빌어먹을... 이 악마 놈들...! 쓰레기만도 못한 자식들...!!

안나도 목의 핏줄이 솟고 쥔 총의 손잡이를 으깨버릴 기세였다.

람잔도 얼굴에 분노를 드러냈지만, 이내 감정을 제어했다.

람잔

...우선 여길 벗어나서 지휘부에 연락하자.

안나

본대가 오면 내가 손수 저놈들 머리통에 숨구멍을 뚫어버리겠어.

알렉산더, 일어나. 놈들이 멀리 떨어지면 차를 확보하자.

람잔

...잠깐, 놈들이 차량을 파괴 안 했어?

람잔

젠장――

포탄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람잔

엎드려!!

폭발로 불길이 치솟았고, 네 면의 건물 벽이 전부 무너져 내렸다.

알렉산더

――!!

등을 확 떠밀린 안나는 땅바닥을 여러 번 뒹굴고 흙탕물에 빠진 다음에야 멈췄다.

열풍이 지나가고, 건물은 폭삭 무너졌지만 부스러기는 여전히 하늘에서 쏟아졌다.

람잔은 몸을 뒤덮은 건물 파편들을 털어냈다. 아무래도 튼튼한 의수로 머리를 감싼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었다.

람잔

알렉산더?!

하지만 그가 손으로 먼지구름을 걷어내자 보인 전우는 아니었다.

벽이 통째로 알렉산더를 덮쳐, 하반신이 사라졌다.

안나

<size=50>알렉산더!!!</size>

안나는 두 손 두 발로 기어와 떨리는 손으로 쓰러진 벽을 들어올리려 했지만, 당연히 꿈쩍도 않았다.

안나

좀만 참아...! 본대가 곧 올 거야, 이력 끝내주는 군의관도 잔뜩이니까 걱정 말고!

알렉산더의 얼굴은 이미 흙먼지에 피범벅이었고, 몸은 좀처럼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알렉산더

어... 왜 이렇게엑... 갑자기 춥죠...?

지금... 여름 아니었습니까...?

입을 열 때마다 피가 역류했고, 기도가 막혀 가쁜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안나

헛소리 말고 입 다물어, 살아야지... 살아서――

람잔

안나.

안나

저리 가!

죽지 마라 알렉산더... 살아, <size=50>명령이니까 살아남아!!</size>

람잔

안나... 그의 말을 들어줘.

안나

......

알렉산더

소, 대장님... 저... 집에 가고 싶습니다...

그의 피는 이제 땅 깊숙이 스며들었다.

알렉산더

돌아가면... 마티나가 마중나와서... 감자 농사하고...

소대장님... 저, 저 진짜... 집에 돌아갈 수 있어요...?

안나는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내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안나

그래 임마, 꼭 갈 수 있어, 내가 집으로 데려다줄게...!

알렉산더

약속...하시, 하신......

알렉산더가 눈을 감았다.

검붉게 물든 진흙에 눈물이 떨어졌고, 안나는 힘없이 늘어진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안나

<size=50>눈 떠 이 새끼야! 눈 뜨라고! 눈 떠!!</size>

람잔

.....

람잔은 조용히 일어서, 알렉산더에게 경례했다.

폭발로 일어난 회색 분진은 아직도, 한겨울의 눈처럼 떨어졌다.

폐공장 바깥.

한참 동안 무너진 건물을 바라보던 안나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녹색 안개가 자욱한 곳을 바라봤다.

안나

차량은 없어.

람잔

다리 있잖아.

안나

내 통신기도 망가졌어.

람잔

내 건 멀쩡해.

안나

넌 통신기 있지만 난 없어.

이제 아무것도 없어.

람잔

여긴 복사 레벨이 꽤 낮아. 조금만 더 가면 신호가 잡힐 거야.

안나

지금 귀 먹었어?

람잔

전우를 잃은 기분은 내가 너보다 더 잘 아니까 말 아껴라.

안나, 이게 바로 전쟁이야.

안나

그래, 이게 바로 전쟁이지...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죽고, 살아있으면 안 될 놈들은 살고...

람잔

너 설마 "사형수"를 찾으러 갈 셈이야? 그깟 공적 때문에 혼자 죽으러 가겠다고?

안나

공적 X 까, 그 "사형수"란 새끼가 1초도 더 살아있게 둘 수 없어!

람잔

그건 본대가 온 다음에——

안나

못 기다려! 놈들 말 잊었어? "사형수"는 곧 여기서 철수해!

반드시 그 전에 놈이 숨은 공장을 찾아내야 한다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어!

람잔

안나, 냉정하게 생각해. 네가 여기서 "사형수"를 죽인다고 뭐가 달라질까?

세계 각국이 편을 가르고 하이에나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있는데, 네가 그 사이서 목숨 던져 털 한 가닥 뽑는다고 전쟁이 끝나겠어?

안나

이럴 땐 또 맨날 입에 달고 다니던 입장론을 안 꺼내네,

람잔

내 말은, 무의미한 희생을 하지 말라고.

안나

그래도 뭐라도 해야만 해.

그때는 내가 힘이 없어서 안전 케이스 뒤에 숨기만 했어.

하지만 지금 나는 힘이 있어.

람잔

안나, 기다——

안나

돕던가, 저리 비켜.

람잔

......

람잔은 천천히 팔을 내렸다.

안나

그러니까 넌 절대 아흐민 오빠처럼 되지 못한다는 거야.

오빠라면 나랑 같이 갔어.

어깨를 스치고 지나는 안나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안나는 남겨진 바퀴 자국을 따라, 축축한 황야를 가로질렀다.

불어오는 축축한 바람은 불처럼 타오르는 그녀의 눈 아래 맺힌 눈물을 대신 훔쳤다.

......

옐로우존 끝자락.

참호, 방벽, 고압 전기 울타리, 초소탑, 무장하고 순찰하는 초병은 보너스.

공장은 문이 활짝 열린 상태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8대의 트럭이 밖으로 나오고, 비슷한 숫자의 트럭들이 안으로 들어서 한줄로 늘어서고 있었다.

그 사이서, 병사들은 쉬지 않고 각종 물자와 상자를 차에 실었다.

병사?

빨리 빨리 옮겨! 20분 남았다!

야 이 살살 내려놔! 샘플 망가지면 네가 대신 처넣어진다!

안나는 가까운 곳의 폐건물 뒤에 숨어, 저 "재료 공장"의 상황을 관찰했다.

안나

역시 여기가 "사형수"의 실험 기지군...

총을 쏠 기회는... 잘해봐야 1번이려나.

시간이 없는데...

안나는 두 손을 꼭 쥔 총을 이마에 댔다.

안나

알렉산더, 윅토르, 판... 3소대 동지들, 나를 지켜봐 줘.

안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총의 탄약을 재확인한 뒤 발을 내디뎠다.

안나

――?!

그리고 그때 바로 뒤에서 난 인기척에, 안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등뒤의 상대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명치에 맞아 가슴을 쥐고 뒷걸음질 친 것은 다름아닌 람잔이었다.

안나

람잔?! ...뭐야 왜 안 피했어?

람잔

쿨럭쿨럭...

너, 지금 저기로 달릴 생각이었지?

안나

"두 점 사이는 직선이 제일 짧다." 네가 가르쳤잖아.

람잔

실전 수업에서 격투술만 배우고 머리는 교실에다 두고 왔냐?

안나

그 선생에 그 학생인 거지.

당치도 않다는 듯 람잔이 콧방귀를 뀌었다.

안나

저놈들 대부분은 지금 이사하느라 바빠서, 내부의 경비가 허술해졌을 거야. 그럼 3단계면 충분해.

잠입해서, "사형수"를 찾고, 쏜다.

람잔

2단계로 가기도 전에 죽을 거 같은데.

안나

아 뭔데, 조롱이나 하려고 따라온 거 아니잖아.

람잔

...신호 잡혀서 통신했다.

안나

그리고?

람잔

지휘부가 나한테 저 "재료 공장"을 감시하라 지시했어. "사형수"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확보하라고.

그러니 어느 정도 선에서는 너랑 협력할 수 있다 이거지.

안나

난 정보 따위나 모으러 온 게 아닌데.

람잔

너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셔, 나도 내 할 일 할 테니까. 투 트랙으로.

람잔

그러니까 잘 봐라 이 햇병아리야, 내가 "교과서 같은 잠입"이 뭔지 제대로 보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