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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 만성쇼크

SPR 파랑새의 날개

우린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58-1-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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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대사 보기 (207줄)

......

안나

잠입 루트 참 기가 막히게도 골랐네...

안나

——<size=50>우웁!</size>

람잔

천천히, 냄새는 금방 익숙해져.

안나와 람잔은 어두운 하수도를 포복 전진했다.

들리는 소리라곤 람잔의 의수가 파이프를 두드리는 경미한 소음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피비린내와 썩은내가 진동했고, 심지어는 뭔가 물컹물컹한 덩어리가 팔뚝에 닿기까지 했다.

그날, 베슬란 중학교의 체육관처럼.

람잔

작전 초기에, 너희는 반드시 적이 눈치채지 못한 상황에서 잠입을 시도해야 한다. 거동을 노출하는 그 어떤 행위든 후속 작전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지.

람잔

적이 너의 의도를 파악하기 전에 선제공격하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놈들은 가만히 기다려 줄 바보가 아니다.

1초라도 더 늦게 발각당하고, 1초라도 상대의 반응을 지연시켜야만 한다.

람잔

이를 위해, 어떨 땐 끝까지 침묵해야 할 수도 있고, 또 어떨 땐 적절한 소동을 일으켜 적의 주의를 돌려야 할 수도 있다. 즉,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하라는 소리다.

훈련장에서 모래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학도들은 날카로운 철망 아래를 포복 전진으로 기어갔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기어가다 숨을 헐떡이며 먼지를 한껏 들이켜 연거푸 기침을 하는 사람은 안나만이 아니었다.

람잔

적이 숨 돌릴 시간을 줄 것 같나! 호흡 조절하고! 계속 전진!

안나

......

기억 속의 철망은 어두운 파이프로 변했고, 안나는 계속 나아갔다.

들어왔던 입구는 더는 보이지 않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앞으로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어갔을까, 앞서가던 람잔이 갑자기 멈춰, 안나는 그의 군화 깔창에 얼굴을 들이받을 뻔했다.

몇 초가 넘게 람잔이 꼼짝도 않자, 안나는 최대한 음량을 낮춰 모기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안나

<size=25>뭐야?</size>

람잔

<size=25>공장 안에 뭔가 있어.</size>

안나

<size=25>"사형수"의 본거지니까 뭐든지 있겠지.</size>

람잔

<size=25>그게 아니라, 뭔가 이끌림 같은 느낌이 나.</size>

안나

<size=25>하아? 저 안에 뭐 네 운명의 여인이라도 있단 거야 뭐야?</size>

안나

<size=25>됐고, 나 토할 것 같으니까 빨리.</size>

람잔

<size=25>도로 삼켜.</size>

똑... 똑...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외엔 조용하던 창고에, 손수레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병사?

이따 교수 나가면 우리도 서둘러서 철수해야 해. 저 괴물들, 교수가 만든 진정제 없으면 발광하면서 눈에 보이는 걸 죄다 입에 쑤셔넣으려 들어.

병사의 동료?

저것들... 복사감염증 걸린 거 맞지? 근데 어째 생긴 게 좀 다르다...?

교수가 연구한다는 게 대체 뭐길래?

병사?

묻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응? 잠깐.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하수도 안의 안나와 람잔은 벽에 바짝 붙어, 총을 쥐고 숨을 죽였다.

가까워진 발소리는 거의 머리 바로 위에서 났다.

병사의 동료?

무슨 냄새긴, 방독면도 저 썩은내는 못 막아.

그리고 경첩이 뻑뻑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퉁... 퉁... 무언가가 잇따라 방 안으로 던져져 묵직한 소리를 냈다.

병사?

오늘 재료는 불합격이 많네, 우웩... 빨리 가자.

병사들은 손을 털고 나갔다.

......

잠시 후.

끼익 소리와 함께 배수구의 덮개가 들어올려졌고, 의수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으며 람잔이 먼저 나왔다.

방금 전의 소리를 따라, 안나는 그 철문을 찾았다. 그리고 문짝 위에 손바닥 만한 구멍이 있어, 안을 슬쩍 확인했더니...

안나

윅토르!?

총상은 벌써 부자연스러운 피딱지로 막혔고, 핏자국 아래로는 규소화된 피부가 보이고, 회색빛 결정이 쭈그러든 뺨의 절반을 뒤덮은 몸뚱이.

눈도 감지 못하고 죽었던 윅토르는 여전히 두 눈을 부릅뜬 채 가장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층층이 쌓인 인체들이 보였다. 각국의 제식 군복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복까지 있었다.

람잔

왜 하수도에 경비가 없나 했다...

만약 저... 괴물들이 돌아다니면, 누가 잡입하든 바로 토막날 거야.

안나

괴물... 대체 누가 괴물일까.

안나는 이를 갈았다.

안나

...8분 남았어.

람잔

"적절히 소동을 일으켜 적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수수하지만 언제나 잘 먹히는 방법이지. 아직 기억해?

안나

몰라.

됐으니까 여기서 갈라지자고. 대충 어디 안전해 보이는 데로 가서 정보나 수집해.

난 내가 할 일 하러 갈게.

병사?

아오 이 머저리야 아직 잔뜩 남았는데 수레를 두고 오면 어떡――하냐...?

투덜대며 들어온 병사가, 복도 끝에 서 있는 둘을 보곤 말을 멈췄다.

병사?

<size=50>XX 격리 실패! 빨리 문 닫아!</size>

안나

...일부러야?

람잔

아이고 들켰네, 가자고.

문이 닫히기 1초 전, 안나는 몸을 던져 틈새로 빠져나와, 버튼을 마구 연타하는 병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개폐 레버를 다시 올렸다.

그러자 차단문이 천천히 다시 입을 벌렸다.

병사

격리 실패가 아니잖아! <size=50>습격이다!</size>

병사가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안나가 달라붙어 정확히 손목을 붙잡아 비틀었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병사의 손목 관절이 힘없이 으스러졌고, 무전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상황이 좋지 않자 그의 동료로 보이는 병사는 냉큼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

람잔

비켜!

안나가 고개를 옆으로 치우자, 한 발의 총알이 차단문을 스치고 날아가 도망가던 병사의 허벅지에 명중했다.

안나

"교과서 같은 잠입"?

람잔은 그대로 달려가, 상대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기도 전에 총구를 옆으로 차고 몸을 던졌다.

그렇게 뒤엉킨 두 사람은 바닥을 몇 바퀴 굴렀고...

마침내 람잔이 팔다리로 관절기를 걸고, 의수로 작은 돌풍을 일으키며 병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힘없이 축 늘어진 병사를 옆으로 던지며 일어난 람잔은 뺨에 피가 튄 얼굴로 씨익 웃었다.

람잔

"교과서 같은 격투기"는 덤이지.

안나는 눈알을 굴리고, 자신이 제압한 병사의 머리에 주먹을 한 대 더 박곤 영어로 심문했다.

안나

말해, 진정제 투여는 어떻게 멈추지?

병사

......

병사는 입을 꾹 다물고 찍 소리도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무의식적으로 안나의 뒤로 향했다.

안나가 고개를 돌리자 병사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박치기를 날려 안나를 밀어내고, 제압에서 풀려나자마자 무전기로 몸을 던졌다.

타앙!

피가 터지고, 병사가 축 늘어지는 것 본 뒤에야 람잔은 총구를 거뒀다.

람잔

방아쇠를 당길 땐 주저하지 말 것.

안나

사람도 아닌 짐승한텐 주저 안 해.

안나는 바로 쓰러진 병사를 버리고 조작 패널을 만졌다. 방금 그 병사의 신분 인증이 아직 유효했다.

삐익.

<color=#FFFF00>【진정제 밸브 잠금】</color>

그 사이, 람잔은 쓰러진 적병들의 몸을 뒤져 총과 탄창을 챙기고 안나에게도 한 자루 건넸다.

안나

......

<color=#FFFF00>【각성제 밸브 열림】</color>

<color=#FFFF00>【1호 재료실 개방】</color>

<color=#FFFF00>【2호 재료실 개방】</color>

......

잠시 후, "재료"들이 서서히 깨어났다. 생전 마지막 표정으로 굳은 몸을 비틀면서, 그들은 바닥을 기고 두 발로 걸으며 복도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바닥의 무전기에서 소리가 났다.

무전기에서 나는 소리

<color=#00CCFF>얌마! 누가 지금 재료실 문 열으래!?</color>

<color=#00CCFF>이봐? 여보세요! 또 어따 토――</color>

람잔이 발을 들어 무전기를 짓밟아 부쉈다.

복도 끝에서부터 서로를 밀치며 다가오는 산 송장들을 바라보니, 윅토르와 세 운전병들도 끼어 있었다.

다만 그들은 모두 짐승의 본능대로 서성이며, 그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다가가려 할 뿐이었다.

람잔

총알 한 발은 아껴 둬라... 우리가 실패하거나, 아니면...

안나

피차양반이지.

안나는 아직도 생생한 과거의 전우들을 봤다.

안나

이것도 어떻게 보면 함께 싸우는 것일까?

그때, 위층에서 고함과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나

...일부는 내려오는 중이고, 일부는 더 위로 올라갔네. 2층... 아니, 3층?

람잔

이런 상황에서 놈들은 분명 그 "교수"란 작자부터 최우선으로 지키려 하겠지. 그러니... "사형수"는 저 위 어딘가에 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철컥.

안나

그럼... 참수 작전, 개시.

안나와 람잔은 계단으로 돌입, 구불구불한 통로를 빠르게 타고 위로 올랐다.

그런 와중에도 람잔은 몸을 기울여 저 위의 적 병사를 쐈고,

그 병사는 그대로 고꾸라져 안나의 눈앞에 철퍽 떨어졌다.

람잔

3층으로!

병사

<size=50>습격이다! 교수를 보호해라!</size>

무수한 발소리가 아랫층에서 들려왔다.

밑에서 나는 소리

비상!! 괴물들이 빠져나왔다!!

밑에서 나는 소리

<size=50>으아아아아악!!</size>

람잔

올라가!

두 사람은 몇 초만에 통로에서 3층 복도로 나왔다.

밑에서부터 들려오는 고함과 비명은 점점 커져 갔고, 괴물들의 울부짖음도 어림잡아 2층에서 나는 듯했다.

안나

복도에 엄폐물은 없어, 강행돌파해야 해.

안나는 람잔과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람잔

윽! 어... 자, 잠깐만!

쾅!

문이 활짝 열리더니, 총알이 빗발쳤다.

안나는 재빨리 다시 문 뒤로 숨어야만 했다.

안나

<size=50>여기서 뭔데!?</size>

람잔

......

람잔은 어딘가 피로한 기색이면서 이상하게 더 입을 열질 않았다.

칵칵칵 이빨을 부딪히는 소리는 이제 계단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도 반대편에서도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났고,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적 병사 4명이 곧장 이쪽으로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기며 다가왔다.

안나

젠장 시간 없는데...!

엄호!

안나는 다시 몸을 굴려 바닥에 엎드리고 복도를 향해 방아쇠를 마구 당겼다.

총알 한 발이 안나의 정수리 바로 위를 슉 스친 대신, 복도 반대편의 병사 둘은 뒤의 벽에 피로 그림을 그렸다.

람잔과 나머지 병사 두 명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교차했다.

안나

람잔!

두 놈은 똑같이 쓰러졌다.

그리고 한 발, 딱 한 발이 람잔의 가슴에 명중해, 그는 몇 걸음 물러나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안나

람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안나는 황급히 그를 끌어당겼다.

하늘도 무심한 걸까, 그와 동시에 복도 끝의 문이 다시 활짝 열리면서 안에서 또 4명의 적 병사가 나와 문앞에 포진했다.

그들이 쏴 갈기는 총알 세례는 그물을 이루어, 고작 몇 m 거리임에도 난공불락의 관문이 되어버렸다.

병사?

수송기 언제 도착해?! 적이 코앞이라고!

놈들 중 하나의 무전기에서 성질이 단단히 난 고함 소리가 났다.

무전기에서 나는 소리

<color=#00CCFF>ETA 120초!</color>

<color=#00CCFF>XX 괴물이 너무 많아서 올라갈 수가 없어!</color>

병사?

수류탄이든 무반동포든 있는대로 쏴! 기어서라도 올라와! 교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죽는 걸로 안 끝나!

벽 뒤에서, 안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람잔의 총상을 꾹 눌렀다.

안나

이 한심한 자식아, 몇 발짝만 더 가면 되는데...

보랏빛 눈동자가 흐려졌다 맑아지기를 반복하며, 람잔의 동공은 점점 풀려 갔다.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군복들을 입고, 사지가 뒤틀린 괴물들은 이제 복도를 따라 다가오고 있었다.

안나에게 그들 얼굴의 주름과 손톱 사이에 낀 피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이.

계단 아래서 이번엔 굉음이 들렸다. 아무래도 놈들의 무전대로 중화기까지 동원하는 모양이었다.

안나

..."적의 수비가 가장 취약한 지점을 돌파해, 최단 시간 내에 목표에게 접근해 신속히 전투를 끝낸다."

안나는 람잔에게서 손을 떼고, 마지막 남은 탄창을 교체했다.

안나

이대로 뛰어드는 게 미친 짓인 건 알아... 하지만 이제 다른 수가 없어.

...곧 다시 보자고 짜식들아.

비리고 썩은내가 코끝에 닿았다, 괴물들은 안나의 2m 앞까지 다가왔다. 살아있는 사람의 기운이 그들을 흥분시켰다.

안나는 그들을 무시하며 몸을 굽히고, 마지막 질주를 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안나의 발목을 덥석 붙잡았다.

안나

――?!

쓰러졌을 터였던, 벌겋게 충혈된 눈을 다시 뜬 람잔이었다.

안나

람잔!?

안나의 발목을 붙잡은 채로, 람잔은 굳어 가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가슴팍에 박혔던 총알은 이미 규소화된 근육에 밀려 저절로 뽑혀 나오는 게 보이기까지 했다.

안나

복사감염증...!

폭격으로 손상된 방호복, 공장 밖에서의 느닷없는 재회, 그답지 않게 피하지 못한 팔꿈치, 하수도에서 느꼈다던 이상한 "이끌림"...

안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은 채 손을 덜덜 떨었다.

람잔

총알 한 발은 아껴 둬라... 우리가 실패하거나, 아니면...

안나

그게... 그런 의미였어...?

안나는 힘없이 총구를 떨궜다. 괴물들이 바닥과 벽을 할퀴며, 이빨을 딱딱거리며 몰려오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람잔도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람잔

<size=50>크오오오오!!!</size>

그런데 방향이 달랐다. 갑자기 처절하게 울부짖더니, 람잔은 그대로 뒤로 돌아 몰려온 괴물들을 쳐냈다.

야수처럼 물어뜯고 포효하며, 그는 사방으로 반쯤 규소화된 살점과 옷조각을 흩뿌렸다.

안나

람잔?

람잔이 다시 한번 포효하자, 이번엔 괴물들이 지시를 받은 군인마냥 일제히 복도 반대편으로 돌진했다.

아래턱은 피범벅에 눈에는 초점이 사라진 람잔은, 안나의 부름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안나

람잔...

병사?

괴물들이 온다! 빨리 쏴!

다시 총탄이 빗발쳤지만, 규소화가 진행된 몸뚱이를 상대로 그들의 소규경 탄환은 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안나는 람잔을 뒤따랐고, 우르르 몰려가는 괴물들이 시야를 가려 오직 적 병사들의 비명만 들렸다.

병사?

<size=50>으아아아아악!!!</size>

비명, 총성, 울음소리, 죽어가는 신음소리...

안나는 람잔의 옆에 서서 한 걸음씩, 복도 끝의 문까지 나아갔다.

이제 문 앞에는 안나 외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었고, 괴물들은 안나를 무시하고 굳게 닫힌 문을 마구 할퀴고 들이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문득, 계단 쪽에서 괴물의 것이 아닌 발소리가 났다.

이를 깨달은 안나가 고개를 돌렸을 땐 너무 늦어, 이미 로켓포가 날아든 뒤였다.

콰아앙!!

열폭풍에 휩쓸리기 직전, 안나는 무언가가 자신의 등을 감싼 느낌이 들었다. 그날, 그때의 안전 케이스처럼 자신을 완전히 가려 주는 느낌이 들었다.

막대한 충격파가 복도를 휩쓸었고, 그 때문에 닫힌 문도 박살나다시피 하며 열렸다.

람잔

......

안나

<size=50>람자안!!!</size>

고스란히 받아내어 등가죽이 거의 다 벗겨진 채로, 람잔은 찢어진 걸레처럼 바닥에 고꾸라졌다.

람잔

............헷.

웃음인지 바람인지 모를 목소리를 끝으로, 작은오빠는 움직이지 않았다.

??

난 아직 괜찮아. 비행기는 아직 안 왔지만... 음?

문이 열리며 드러난 발코니의 창가에서 말을 하던 여자는 목소리가 무덤덤하고, 차갑고, 말꼬리에서 약간 쉰소리가 났다.

람잔에게 한소리 할 새도 없이, 안나는 냉큼 뒤돌아 목소리의 주인에게 총구를 겨눴다.

하지만 바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고, 충격으로 동공이 수축했다.

안나

마사... 선생님!?

창가에 쏟아지는 태양빛을 받으며 서 있는 저 자의 두 눈은 차가웠다.

태양빛이 그녀의 뺨 반쪽을 비추는데도, 전혀 따스하지 않았다.

마사

설마,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이야...

...안나.

안나

"사형수"가... 당신이었어?

마사

...응.

안나

당신이 이런 정신 나간 연구를 하고 있었어?

마사

...응.

안나

......왜?

마사

아무리 설명한들 우리의 입장은 바뀌지 않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그래, 이 인간들의 세상에서, 우린 항상 정반대편에 서 있었어.

안나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았어...?

마사

그럴 리가. 난 내 영혼을 누구에게도 판 적 없어.

안나

그럼 뭔데... 대체 뭐가 당신을 그렇게 바꿨어?!

마사

내가 변한 걸까? 그냥 네가 내 참모습을 짐작 못했을 뿐일 수도 있지.

안나

......못 믿어.

그 테러 때문이지?

안나

그때 네가 사나를 잃었단 거 알아...

하지만, 나도 그때 똑같이 내 가족을 잃었어...

안나

...우린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아니었구나.

마사

내가 너희를 원망하는 것처럼 보여?

아니야, 안나...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

마사

베슬란 경비단이 해산되지 않았으면, 아마 그 테러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그런데 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내가 거기에 가질 말았어야 했지.

안나

......

마사

...방금 말했지? 넌 애초부터 날 제대로 알지도 못했어.

나는 딱히 어떤 일을 겪어서 변한 게 아니야.

안나

이름 날리던 유적 기술 연구자인 당신이 베슬란 중학교의 교사로 왔던 건...

이런... 비윤리적인 실험을 해서였어?

마사

......

<color=#99FF99>【나는 동물이다. 그건 너도 잘 알겠지.</color>

<color=#99FF99>허울 좋은 소리는 할 줄 몰라, 누구도 나한테 그런 말을 가르친 적 없으니까.</color>

<color=#99FF99>생각하는 법도 나는 잘 몰라, 그 망할 놈들이 내가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두지 않았으니까.</color>

<color=#99FF99>만약 내가 정말로... 전지전능한 라플라스의 악마라면, 너는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color>

안나

웃기지도 않네... 그게 당신이 《노변의 피크닉》에서 배운 거야?

마사

더 할 말은 없어.

안나

.....

삶이 결국 덧없을 운명이라면, 몸부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사

인류의 첫 전쟁부터 우리의 마지막 가슴 아픈 노력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자살뿐이니.

안나

......

타앙!!!

......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겁고, 자유롭기를.

모두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를!

이게 결말일까?

그래, 이게 결말이야.

????

기억을 몇 번이고 잃어도, 곁의 인물이 어떻게 바뀌어도, 너는 언제나 네 결정을 결코 바꾸는 법이 없구나.

과연 내 제자야.

???

당신은 그녀에 대해 좀 모르는 것 같네요.

????

어쩌면 그럴지도. 하지만 소위 가르침이란, 그 짧은 시간에 묶인 것이 아니야. 한두 마디뿐이더라도, 서로의 인생에 확실한 흔적을 퍼뜨리거든.

친애하는 마이트너에게.

제가 기존의 "성배" 위에 새로운 걸 추가했습니다. 이제 작동하는 건 확실해요.

하지만 에너지 소모율이 막대해요, 이건 일개 실험실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 아니에요.

그리고, 비록 사나의 데이터를 이식하는 건 성공했지만... 수술 자체는 이상적이지 않아요.

저는 도저히, "그것"을... 사나로 보질 못하겠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애초에, 이건 윤리에 어긋나는 수술이었다고요...

그러니 마사 선배, 이만 포기하세요. 인간의 능력에는 결국 한계가 있는 법이고, 사나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산 자의 목숨을 죽은 자에게 붙일 수는 없어요. 이건 우리의 협력 원칙에도 위배돼요.

2051년 베를린에서, 블랙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