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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 만성쇼크

SUM 푸른 방 안의 햇빛

내 지휘방식은 하나뿐이야, 까라면 까는 거.

-58-1-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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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허나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 그에겐 살아갈 이유가 있다.

모든 것은...

하얀 니토

실험체 전원, 지시대로 출발했습니다.

???

......

눈앞의 모니터들은 보디캠처럼 잠입 임무를 수행 중인 실험체들의 시야를 중계했다.

나뭇가지가 밟혀 우드득 부러지는 소리까지, 아주 선명하게 방으로 전해졌다.

하얀 니토

그럼, 전 물러가겠습니다.

???

......

하얀 소녀는 이곳에서 최신형이지만,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왜일까? 그가 무서운 사람이라서?

그는 거울을 보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이미 빛을 반사하는 물건은 전부 때려 부순 일이 떠올랐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차가운 손가락으로 얼굴의 흉터를 매만지고, 목에서 쇄골 위까지 이어지는 협곡 같은 접합선을 따라 내리훑으며 자신의 모습을 가늠했다.

실험체

<color=#00CCFF>강글라티 대위, 지정 좌표에 도착했습니다.</color>

???

...잠입 개시, 목표의 정보를 수집하라.

실험체

<color=#00CCFF>예.</color>

그는 느긋하게 의자를 오른쪽으로 돌렸고, 거기엔 봉제 인형을 품은 누더기 꼴의 주검이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축 늘어져 있었다.

???

형... 잘 보고 있어.

이제부터 재밌는 쇼가 시작될 거야.

지직...

실험체는 시설 안에 도청기를 설치했다.

여성의 목소리

<color=#00CCFF>노비코프 지휘관님, 요구하신 보급 물자 전부 창고 선반 B17-19에 뒀습니다, 확인 바랍니다.</color>

남성의 목소리

<color=#00CCFF>응, 확인했다.</color>

<color=#00CCFF>아 참, 안젤리아 지휘관은 이번 달 보급 받으러 왔어?</color>

누더기 주검의 옷깃을 정리해 주던 그가 고개를 홱 돌려, 소름끼치는 눈빛을 화면에 고정했다.

여성의 목소리

<color=#00CCFF>죄송합니다만 그건 지휘관님의 프라이버시라서요.</color>

남성의 목소리

<color=#00CCFF>으이구, 답답하긴.</color>

<color=#00CCFF>됐다,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지 뭐.</color>

???

안젤리아... 하하하하!

그가 활짝 웃어, 썰렁하던 방에 거친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

찾았다.

LAMG

......

하아...

2061년, 여름. 한여름의 밀림은 온갖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맹렬한 총성과 포성이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메아리쳤다.

수풀 아래 엎드린 LAMG는 초조한 눈빛으로 자신의 뒤에 있는 지휘관을 힐끔거렸다.

그녀는 지금 팔자 좋게 해먹 위에 드러누워 졸고 있었다.

LAMG

<color=#A9A9A9>우린 언제 진격하지...</color>

<color=#A9A9A9>계속 이렇게 꾸물거리다간 뒷정리나 하게 될 텐데...!</color>

안젤리아

뭘 꿍시렁대냐?

LAMG

아, 아무것도요!

안젤리아 지휘관을 따른 지 벌써 몇 년째건만, LAMG는 여전히 그녀의 생각을 도통 읽을 수가 없었다.

바로 지금처럼, LAMG는 초조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데 안젤리아는 또 몸을 뒤집어 팔자 좋게 잠이나 자려 하고 있으니까.

고구마가 목구멍에 걸린 듯한 답답한 느낌을 참은 끝에 결국 LAMG가 입을 열었다.

LAMG

...지휘관님?

안젤리아

엉?

LAMG

저희도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소대는 이미 목표와 교전 중인데...

안젤리아

기다려.

LAMG

......네.

LAMG는 불만을 뱃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다른 대원들에게 명령 대기 지시를 전달했다.

안젤리아

그건 그렇고, 너 기억은 다 정리했어?

LAMG

네? 아, 동종 모델의 마인드맵 데이터 정리 말씀이시군요.

모든 마인드맵 데이터 통합을 마쳤습니다, 일부 중복 및 잉여 데이터는 삭제했고요.

안젤리아

그럼 이제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도 기억하겠네.

LAMG

그러니까, 제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서 당신을 기절시킨 일이요?

안젤리아

말은 똑바로 해라~

네가 나한테 완전히 제압당해서 한 궁여지책이라고.

LAMG

그 정도 높이에서 추락은 인형에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그때 당신이 기절만 하고 멀쩡했던 게 신기한 일이에요.

안젤리아

어쭈, 자랑하는 듯이 말한다?

LAMG

그야 지휘관님은 우리 기지에서 전설이신걸요, 평소엔 꺼드럭거리고 하는 일을 전부 운에 맡기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지금 그리폰에서 제일 뛰어난 전술지휘관이 당신이란 사실은 아무도 부정 못해요.

안젤리아

그딴 소문 퍼뜨린 게 너였구나.

안젤리아가 한쪽 팔에 얼굴을 괴고 졸린 눈을 떴다.

그녀가 드디어 잠에서 깨어날 것 같자, LAMG는 곧장 "추격"에 들어갔다.

LAMG

그래서요 지휘관님, 왜 아직도 출격하지 않는 건가요?

제겐 비록 고성능의 지휘 모듈이 없지만, 지휘관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라면...

15분 전에 우리 소대가 목표의 우측을 기습했다면... 이미 임무 완료였을지도 모르는데요.

안젤리아

야, 인형이란 뭘 하기 위해 존재한다 생각하냐?

안젤리아가 대뜸 주제를 돌리면서 다시 눈꺼풀을 감았다.

LAMG

네? 어... 맡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요?

안젤리아

그치.

하지만 임무는 영원히 끝나지 않아.

마침내 안젤리아는 해먹에서 몸을 일으키고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안젤리아

네가 맨날 하는 훈련이랑은 다르다고. 어려운 훈련을 통과할수록 너는 계속 실력이 늘어나지.

하지만 임무는 말이지, 어려운 걸 많이 해낼수록 더 어려운 걸 더 많이 떠안게 될 뿐이야.

LAMG

말이 이상한데요... 어려운 임무를 많이 완수할수록 포상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잖아요.

안젤리아

승진이랑 급료 인상? 그딴 거 관심 없어.

LAMG

그럼 원하시는 게 뭔데요?

안젤리아

진실.

LAMG

진실이요?

LAMG

무엇에 관한——

예리하게도, LAMG는 이것이 안젤리아가 한 번도 스스로 꺼낸 적 없는 말임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게 안젤리아의 사고방식 이해에 도움이 될 중요한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또 "추격"하려 했지만, 이번엔 안젤리아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안젤리아가 마침내 지시를 내리려는 것이었다.

안젤리아

전원 출격이다, 좌우측의 전투 소대와 협공해서 목표의 후방을 기습한다.

LAMG

네!

마침내 출격 명령이 떨어지자 LAMG가 흥분해서 폴짝 뛰었다가 순간 멈칫했다.

안젤리아

왜 또.

LAMG

...돌아와서 방금 하던 얘기 계속해도 되나요?

안젤리아

하하, 꺼져.

LAMG

네~!

LAMG는 다른 소대원들을 이끌고 밀림 속으로 돌입해, 멀리의 총격전에 합류하러 이동했다.

안젤리아는 해먹에서 내려와, 낙엽이 잔뜩 쌓인 흙바닥에 맨발을 디뎠다.

그리고 한 번 더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고, 한참 전부터 울리던 통신을 받았다.

안젤리아

상황 보고.

M4A1

<color=#00CCFF>지휘관님, 요구하신 대로 그리폰 소대보다 먼저 임무 목표인 기밀 자료를 확보했습니다.</color>

안젤리아

들키진 않았지?

M4A1

<color=#00CCFF>네, 아직까지는...</color>

안젤리아

뭐가 고민인데?

M4A1

<color=#00CCFF>철수 경로를 그리폰 소대 하나가 점거 중입니다.</color>

<color=#00CCFF>인형 5명, 대장은 LAMG예요.</color>

안젤리아

상대의 머릿수랑 디테일까지 알면서 뭘 걱정해?

발각되기 전에 해치워 버려.

M4A1

<color=#00CCFF>하지만...</color>

안젤리아

응?

M4A1

<color=#00CCFF>저들은 아군이에요. 아군과 싸울 수는...</color>

안젤리아

어휴, 서로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걔네는 너희 AR팀의 존재마저 모른다고.

M4A1

<color=#00CCFF>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료는 소중히 해야...</color>

안젤리아

임무를 실패하게 되더라도?

M4A1

<color=#00CCFF>그, 그건...</color>

벌써 M4A1 쪽에서 총성과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게 들리자, 안젤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안젤리아

어휴... 알았다, 제자리서 대기해.

M4A1

<color=#00CCFF>네...</color>

통신을 종료한 안젤리아는 바로 새 지시를 LAMG에게 전송했다.

"진격 중지. 즉시 후퇴하라."

그 다음, 안젤리아는 AR팀을 위해 작성된 훈련 계획을 확인했다. 훈련 성적은 확실히 눈부신 반면, 실전 성과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안젤리아

......

실전 기록 다 받았어?

페르시카

<color=#00CCFF>응, 봤어.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color>

<color=#00CCFF>너, AR팀을 지휘하는 법 잘 모르는 거 아니야?</color>

안젤리아

지금 내 지휘 능력을 의심하는 거야?

페르시카

<color=#00CCFF>그럴 리가. 이건 다른 얘기야.</color>

<color=#00CCFF>내 AR팀은 엄청 특별해. 다른 인형들에겐 먹히는 지휘 방식이 이 애들에겐 안 맞을 수도 있어.</color>

안젤리아

내 지휘 방식은 하나뿐이야. 까라면 까라.

페르시카

<color=#00CCFF>나도 아는데, 내 AR팀 중에서도 M4는 더 특별해. 엄청 인간에 가까운 아이야.</color>

<color=#00CCFF>그러니까, 인간 같은 문제가 있다는 거지. 감정에 휩쓸린다거나 그런.</color>

안젤리아

내가 인형 기술은 잘 모르는데, 내가 보는 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냐 없냐야.

그리고 지금 이 데이터로 봐서는 걔네는 전장에서 구르는 것보단 네 실험실 안에 있는 게 신상에 좋을 거 같다.

페르시카

<color=#00CCFF>벌써 결론지으려 하지 말라고, 안젤리아 지휘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 애들인걸.</color>

안젤리아

맘대로 하셔, 거래한 대로만 해 준다면 아무래도 좋아.

페르시카

<color=#00CCFF>물론이지, 처음에 약속한 대로.</color>

<color=#00CCFF>네가 AR팀의 지휘를 맡아 주면, 나는 네게 달마다 자유 외출 기회를 따 주기.</color>

안젤리아

바로 그거야. 이번 달 외출일 거의 다 됐는데, 수속은 밟았어?

페르시카

<color=#00CCFF>알았어 알았어, 일단 끊을게.</color>

안젤리아

응.

페르시카가 통신을 종료했지만, 안젤리아는 바로 끊지 않고 턱을 괸 채 통신기를 툭툭 두드렸다.

???

<color=#00CCFF>...쯧.</color>

안젤리아

라이벌의 비밀 통신을 도청하니 기분 째지시나?

<color=#00CCFF>녀석이 건 조건이 그거였냐...</color>

<color=#00CCFF>왜 네가 대뜸 울프팩을 버리고 AR팀을 맡나 했다.</color>

안젤리아

내 말 들었잖아. 사람 같은 놈들이든 늑대 같은 놈들이든 임무를 잘 완수할 수 있으면 장땡이라고.

<color=#00CCFF>하지만 듣자하니 그 녀석들은 네 입맛에 안 맞는 것 같은데?</color>

안젤리아

......

인형도 성장 과정이 필요한 거야.

<color=#00CCFF>나 참, 페르시카가 얼마나 널 구워삶았길래 그런대.</color>

안젤리아

......

<color=#00CCFF>그렇게 그리폰 밖으로 빠져나와서 뭘 하는데?</color>

안젤리아

그건 우리의 거래랑 상관없는 일이지.

<color=#00CCFF>......</color>

<color=#00CCFF>그래, 지장만 없으면 아무래도 좋다 치자고.</color>

<color=#00CCFF>아무튼 새 의뢰는 이미 전달해 뒀다, 평소대로.</color>

안젤리아

OK.

그리폰 기지, 주차장.

지프차 한 대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질주해 와, 매섭게 드리프트를 꺾으며 주차칸에 정확히 급정거했다.

LAMG

...그러니까요 지휘관님, 다음에는 좀 더 도전성 있는 임무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번에 저희 소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만 한 셈이에요... 이래서 어떻게 다른 애들한테 자랑해요!

안젤리아

......

안젤리아는 무표정으로 차 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안젤리아

좋아, 그럼 네게 아주 도전성 넘치는 임무를 주마.

LAMG

말씀하세요!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안젤리아

운전 면허 다시 따고 와.

LAMG

예?!

안젤리아가 차에서 내려 몸을 반듯하게 세우기도 전에, 웬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

안젤리아 지휘관.

안젤리아

응?

???

함께 가 주십시오. 당신은 노비코프 지휘관 살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안젤리아

뭣... 노비코프가 죽었다고...?!

???

예. 자세한 사항은 취조 중 설명해드릴 테니,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LAMG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휘관님을 놓으세요!

LAMG가 화들짝 놀라 차에서 뛰어내려, 안젤리아의 앞을 막아섰다.

안젤리아

LAMG, 숙소 가서 대기해.

LAMG

하지만——

안젤리아

오늘 술 약속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LAMG

...네.

LAMG는 길을 비켜, 안젤리아가 떠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그녀가 점점 멀어져, 식별 불가능한 1픽셀까지 작아지다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을 때도 눈을 떼지 않았다. 불가능한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