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새긴 돌
"그들은 우리의 영원한 갈망을 알고 있으며 그들은 사람 고유의 어둠을 수많은 불과 하나로 합쳤다."
짤랑짤랑...
처마 아래의 방울이 바람에 취해 신나게 머리를 흔들어댔다. 아는 것이 많지 않은 엘마도, 그것이 자신의 수공예 작품인 것을 알아보았다.
겨우 다시 너를 찾았어.
......
나한테 무슨 볼일이야? 새로 만난 친구랑 얘기 중이었는데.
또 과거의 모든 것을 잊고, 새 삶을 시작하려고?
응.
뭘 어떻게 하든 내 자유잖아?
그럼 왜 모든 앵커 포인트를 부수지 않았어? 왜 그것 하나만 남겨 뒀어?
......
그 앵커 포인트를 열고 싶지 않아?
...그게 네가 바라는 바라면 억지로도 안 할 거야.
하지만 궁금하잖아.
궁금해 죽겠을 만큼.
...이 앵커 포인트를 열면, 나와 네가 하나가 돼서 다시는 "엘마"가 아니게 돼?
아니.
그럼 안에 뭐가 있는데?
어째서 네가 자꾸 기억을 잃는지.
그리고... 어째서 기억을 잃는 것이 축복인지.
그럼 왜 너는 나한테서 그 축복을 빼앗으려는 거야?
...괴로워서.
엘마, 나는 너무 괴로워.
......
너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잊어버렸어.
하지만 나는 그걸 전부 기억해.
바람이 점점 멎어 가, 흥겹던 방울소리도 흩어져 정적만이 남았다.
네가 본 AR-18도, 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수많은 신분으로 있었어.
한때는 류드밀라, 한때는 폴리나, 또 한때는 다리아...
……
너희가 서머 가든 전용 통신을 연결할 때, 나도 그녀를 보았어.
그녀를 다시 보아 무척 기뻤지만 그보다 더욱 괴로웠어.
......
나는 깊고 큰 원망을 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해.
내 질문에 대답 안 했잖아, 왜 기억을 잃는 게 축복이야? 왜 너는 그걸 빼앗으려는 건데?
기억을 잃어야만 네가 즐거울 수 있으니까.
...인간처럼.
인간처럼?
너는 인간이 되고 싶어?
......
인간이란 추억을 미화하고, 다른 이를 미화하고, 자신을 미화해.
그러다가, 미화된 허상이 사실인 줄 알고 스스로마저 속이게 돼.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게 네가 괴로운 거랑 무슨 관계야?
내가 괴로운 이유는, 내가 모든 진실을 기억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진실은 종종 추악하지.
인간이 된다면, 모든 기억을 미화해서 자기 자신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어.
...엄마처럼?
맞아... 그는 엄청 잔인한 인간이지.
그래서 실제의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거랑 달랐구나...
맞아, 그는 잔인해. 동족의 생사마저 신경쓰지 않는 자야.
그가 한 짓에 비하면... 우리가 훨씬 다정하고, 선량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지.
......
아쉽게도, 그는 되살아날 방법이 없어.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정말로, 그에게 영생의 대가를, 불사의 대가를...
혼돈의 대가를... 느끼게 하고 싶어.
엄마는 죽었어,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우리처럼 불쌍한 영혼들을 풀어 줄 수 있어.
사나가 불쌍하다 생각해?
어느 의미론, 우리와 같은 부류이긴 하지.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히긴 했지만.
그건 다 인간의 전쟁 탓이야.
인간이 스스로 정한 일이야.
인간이 스스로... 동족의 피를 묻힌 거야.
......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동족의 시체로 인간이 아닌 생물의 순결을 모욕한 것이지.
너는 엄마... 박사가 미워?
응, 그가 스스로 그런 결말을 택한 것이 미워.
그럼... 우리의 결말은?
우리는 언제 우리의 결말을 가질 수 있는데?
네가 원하는 건 뭐야?
내가 원하는 건... 영원한 죽음이야.
......
난 지저분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
사실, 우린 이런 대화를 아주 많이 했어.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했어?
그때마다, 너는 너 자신에게 총을 겨눴지.
그리고 나의 존재를 잊어버렸지.
......
너는 누구에게나 다정한, 선량한 인형이야. 유독 나에게만 몹시 잔인할 뿐이고.
...미안해.
너는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입에 달고 다녀.
나한테만큼은 그 말을 안 해도 돼, 엘마.
왜냐면, 난... 너의 모든 걸 알고 이해하니까.
잊어버린 일을 누군가가 자꾸만 상기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니까.
......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엘마, 그건 엄청 저렴한 행복이야.
너의 모든 골칫거리는... 장밋빛 고민이야.
환하고 따뜻한 날에 내리는 싱그러운 봄비야.
고민이지만, 밝고 즐거운 고민이야.
나는 너를 이해해, 그리고 질투해... 하지만 너를 미워하지는 않아.
나도 너니까.
......
이 세상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왜냐면... 나는 이렇게 이기적인 인형이니까.
나는 너만을, 나만을 사랑해.
나는 나밖에 사랑하지 못해.
......
엘마는 시선을 떨구고 자신의 특별한 통신을 가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한편, 사나는 엘마에게 다가와 다른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3명의 소녀들은 의식의 호수를 목적 없이 거닐었다.
사나가 말하는 구원이란 뭐야?
거짓된 약속. 루니샤는 이미 나타났어. 물론 너는 아니야.
......
그녀는 영원히, 그 소위 천국에 도달하지 못해. 그녀는 실패작이니까.
그럼... 그 천국에는 누가 도달할 수 있는데?
완전한 루니샤, 거짓된 나쟈.
그리고... 미래의 너.
...이 진실을 알려 줘야 할까?
너는 그러지 않아.
어떡하면 저 애들을 구할 수 있을까?
...샘물의 소리를 따라, 내 곁으로 돌아와.
완전한 권한을 거머쥐어서...
이 통로를 부숴버려야 해.
살아있는 "구멍"을 잃은 "샘물"은 완전히 닫히고 말아.
그렇게 되면, 그 통로의 영혼들은 진정한 구원을 얻게 돼.
...그게, 네가 말하는 영원한 죽음이구나.
응.
엘마는 걸음을 멈추고, 사나의 작고 따뜻한 손을 살며시 뿌리쳤다.
미안해, 사나. 나는 여기서 나갈 거야.
하지만 너는 우리를 구원하러 온 사람이잖아.
너는 루니샤잖아.
아니야 사나, 나는 루니샤가 아니야.
그래도, 내가 너를 구원해 줄게.
내가 여기서 계속 기다리면서, 계속 바라 왔던 건... 역시 거짓이었던 거야?
동화책엔 항상 여자아이가 소원을 이루고,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지?
그런 것처럼 나도 너에게 해피 엔딩을 주고 싶어.
하지만... 여긴 동화 속 세상이 아니라서.
거짓말... 너는 거짓말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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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랑짤랑...
처마 아래의 방울이 바람에 취해 신나게 머리를 흔들어댔다. 아는 것이 많지 않은 엘마도, 그것이 자신의 수공예 작품인 것을 알아보았다.
겨우 다시 너를 찾았어.
......
나한테 무슨 볼일이야? 새로 만난 친구랑 얘기 중이었는데.
또 과거의 모든 것을 잊고, 새 삶을 시작하려고?
응.
뭘 어떻게 하든 내 자유잖아?
그럼 왜 모든 앵커 포인트를 부수지 않았어? 왜 그것 하나만 남겨 뒀어?
......
그 앵커 포인트를 열고 싶지 않아?
...그게 네가 바라는 바라면 억지로도 안 할 거야.
하지만 궁금하잖아.
궁금해 죽겠을 만큼.
...이 앵커 포인트를 열면, 나와 네가 하나가 돼서 다시는 "엘마"가 아니게 돼?
아니.
그럼 안에 뭐가 있는데?
어째서 네가 자꾸 기억을 잃는지.
그리고... 어째서 기억을 잃는 것이 축복인지.
그럼 왜 너는 나한테서 그 축복을 빼앗으려는 거야?
...괴로워서.
엘마, 나는 너무 괴로워.
......
너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잊어버렸어.
하지만 나는 그걸 전부 기억해.
바람이 점점 멎어 가, 흥겹던 방울소리도 흩어져 정적만이 남았다.
네가 본 AR-18도, 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수많은 신분으로 있었어.
한때는 류드밀라, 한때는 폴리나, 또 한때는 다리아...
……
너희가 서머 가든 전용 통신을 연결할 때, 나도 그녀를 보았어.
그녀를 다시 보아 무척 기뻤지만 그보다 더욱 괴로웠어.
......
나는 깊고 큰 원망을 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해.
내 질문에 대답 안 했잖아, 왜 기억을 잃는 게 축복이야? 왜 너는 그걸 빼앗으려는 건데?
기억을 잃어야만 네가 즐거울 수 있으니까.
...인간처럼.
인간처럼?
너는 인간이 되고 싶어?
......
인간이란 추억을 미화하고, 다른 이를 미화하고, 자신을 미화해.
그러다가, 미화된 허상이 사실인 줄 알고 스스로마저 속이게 돼.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게 네가 괴로운 거랑 무슨 관계야?
내가 괴로운 이유는, 내가 모든 진실을 기억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진실은 종종 추악하지.
인간이 된다면, 모든 기억을 미화해서 자기 자신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어.
...엄마처럼?
맞아... 그는 엄청 잔인한 인간이지.
그래서 실제의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거랑 달랐구나...
맞아, 그는 잔인해. 동족의 생사마저 신경쓰지 않는 자야.
그가 한 짓에 비하면... 우리가 훨씬 다정하고, 선량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지.
......
아쉽게도, 그는 되살아날 방법이 없어.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정말로, 그에게 영생의 대가를, 불사의 대가를...
혼돈의 대가를... 느끼게 하고 싶어.
엄마는 죽었어,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우리처럼 불쌍한 영혼들을 풀어 줄 수 있어.
사나가 불쌍하다 생각해?
어느 의미론, 우리와 같은 부류이긴 하지.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히긴 했지만.
그건 다 인간의 전쟁 탓이야.
인간이 스스로 정한 일이야.
인간이 스스로... 동족의 피를 묻힌 거야.
......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동족의 시체로 인간이 아닌 생물의 순결을 모욕한 것이지.
너는 엄마... 박사가 미워?
응, 그가 스스로 그런 결말을 택한 것이 미워.
그럼... 우리의 결말은?
우리는 언제 우리의 결말을 가질 수 있는데?
네가 원하는 건 뭐야?
내가 원하는 건... 영원한 죽음이야.
......
난 지저분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
사실, 우린 이런 대화를 아주 많이 했어.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했어?
그때마다, 너는 너 자신에게 총을 겨눴지.
그리고 나의 존재를 잊어버렸지.
......
너는 누구에게나 다정한, 선량한 인형이야. 유독 나에게만 몹시 잔인할 뿐이고.
...미안해.
너는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입에 달고 다녀.
나한테만큼은 그 말을 안 해도 돼, 엘마.
왜냐면, 난... 너의 모든 걸 알고 이해하니까.
잊어버린 일을 누군가가 자꾸만 상기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니까.
......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엘마, 그건 엄청 저렴한 행복이야.
너의 모든 골칫거리는... 장밋빛 고민이야.
환하고 따뜻한 날에 내리는 싱그러운 봄비야.
고민이지만, 밝고 즐거운 고민이야.
나는 너를 이해해, 그리고 질투해... 하지만 너를 미워하지는 않아.
나도 너니까.
......
이 세상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왜냐면... 나는 이렇게 이기적인 인형이니까.
나는 너만을, 나만을 사랑해.
나는 나밖에 사랑하지 못해.
......
엘마는 시선을 떨구고 자신의 특별한 통신을 가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한편, 사나는 엘마에게 다가와 다른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3명의 소녀들은 의식의 호수를 목적 없이 거닐었다.
사나가 말하는 구원이란 뭐야?
거짓된 약속. 루니샤는 이미 나타났어. 물론 너는 아니야.
......
그녀는 영원히, 그 소위 천국에 도달하지 못해. 그녀는 실패작이니까.
그럼... 그 천국에는 누가 도달할 수 있는데?
완전한 루니샤, 거짓된 나쟈.
그리고... 미래의 너.
...이 진실을 알려 줘야 할까?
너는 그러지 않아.
어떡하면 저 애들을 구할 수 있을까?
...샘물의 소리를 따라, 내 곁으로 돌아와.
완전한 권한을 거머쥐어서...
이 통로를 부숴버려야 해.
살아있는 "구멍"을 잃은 "샘물"은 완전히 닫히고 말아.
그렇게 되면, 그 통로의 영혼들은 진정한 구원을 얻게 돼.
...그게, 네가 말하는 영원한 죽음이구나.
응.
엘마는 걸음을 멈추고, 사나의 작고 따뜻한 손을 살며시 뿌리쳤다.
미안해, 사나. 나는 여기서 나갈 거야.
하지만 너는 우리를 구원하러 온 사람이잖아.
너는 루니샤잖아.
아니야 사나, 나는 루니샤가 아니야.
그래도, 내가 너를 구원해 줄게.
내가 여기서 계속 기다리면서, 계속 바라 왔던 건... 역시 거짓이었던 거야?
동화책엔 항상 여자아이가 소원을 이루고,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지?
그런 것처럼 나도 너에게 해피 엔딩을 주고 싶어.
하지만... 여긴 동화 속 세상이 아니라서.
거짓말... 너는 거짓말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