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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 영전하

난폭한 탱고

프랑크푸르트의 심야, 사람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이익을 위해 타협하고, 어둠속에서 발버둥 친다... 이것들이 서로 뒤얽혀 난폭한 탱고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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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은 프랑크푸르트시 프랑크푸르트구의 대철교.

총성이 향한 방향, 철교 위의 누르스름한 가로등이 박살나 이 음침한 밤에 몇 안 되는 불빛이 또 하나 어둠에 삼켜졌다.

덕분에 튼튼한 철교 위에 선 우람한 덩치의 전술인형이 거의 밤과 일체화될 것만 같았다.

AK-15

질문에 답해라, RPK-16.

고요한 밤에 천천히 흐르는 강 위에서, 언제나 과묵하던 거인이 무기를 꺼내 상대를 겨눴다.

과거에 마인드맵 코어가 있었던 위치를.

이는 위협이자 옛 동료에 대한 마지막 정이었다.

허나 맞은편의 여성은 미소와 함께 언제나처럼 악랄함을 드러냈다.

엠블라

호칭을 바꿔 주겠어요, AK-15? 더는 저를 RPK-16이라 부르지 말아요.

저는 이제 인간의 몸이니, 마땅히 인간의 이름을 가져야 해요.

시리얼 넘버도, 코드네임도 아닌, 성과 명으로 이루어진 이름이요.

고대 귀족 사회에선 성명을 말하면 그 사람의 내력, 가문, 신분, 그리고 누구의 역사를 이어받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이름을 지었어요.

"엠블라 페트로프스카야"라고요.

엠블라

어때요, "안나 빅토르브나 최" 같은 느낌이죠?

그에 대한 대답으로, AK-15의 총구는 인간의 급소, 심장을 겨냥했다.

AK-15

너는 RPK-16이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도.

AK-15

대답해라.

왜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저질렀지?

엠블라

길게 설명하면 지겨울 거예요.

리벨리온의 "알파"가 돌아왔는데, 지시와 뜻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AK-15

네 입으로 말해라!

엠블라는 싱긋 웃었다. 정말 익숙하고, 눈에 거슬리는 미소로.

타타탕!!

밤의 장막 아래서 쇠붙이와 탄두가 부딪히는 소리는 교향악의 합주처럼 경쾌하고 날카로웠다.

엠블라의 MP443에서 발사된 탄환이 철교 위를 휩쓸어, 가로등 3개가 더 파괴됐다.

그리고 AK-15는 그 권총을 본 순간 눈을 부릅 떴다.

AK-15

그건 안젤리아의 총이다!

시뻘건 눈동자가, 칠흑 속에서 분노로 타올랐다.

AK-15의 무기는 다시 엠블라를 향했다.

그러자 엠블라는 일말의 주저 없이 양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힘차게 덤블링하여 아래로 뛰어내렸다.

단 세 손가락으로 철교 아래의 끝자락을 붙잡은 엠블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와중에도 다른 손의 권총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AK-15를 겨누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거리에서 그녀에게 유리한 점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러는 이유는 뻔했다.

그렇기에, AK-15가 분노할수록 그녀의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AK-15

대답해라, RPK-16!

엠블라

어쩔 셈인가요? 그때 말한 것처럼 저를 데려갈 건가요?

하지만 어떡하죠? 지금의 저는 기억을 읽거나 지울 수 없는데.

엠블라

AK-15, 저는 이제 인간이에요.

안젤리아, 쇼와 같은 인간이에요.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동시에 터졌다. AK-15는 당연히 엠블라를 노렸지만, 엠블라가 노린 것은 또 하나의 가로등이었다.

물론, 어둠이 빛을 집어삼켜졌어도 AK-15의 눈은 전혀 문제 없었다. 철교 위가 아무리 칠흑처럼 어두워져도, "RPK-16"이 올라오는 순간 바로 포착했으니까.

찰나의 순간, AK-15는 번개처럼 철교를 가로질러 엠블라에게 달려들었다.

땅을 박차고 가볍게 좌측으로 점프했지만, 인간의 속도는 인형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법. "마스티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냥감을 덮쳐 송곳니를 드러냈다.

엠블라는 양팔로 가드를 세워 자신을 붙잡으려는 팔을 쳐내려 했지만, 들이받히는 충격이 탱크에 치이는 것만 같았다.

엠블라

으윽...!

양팔에서 격통이 밀려오고, AK-15에게 목을 잡히기 직전.

엠블라는 눈을 찡그리고 손을 휘둘러, 무언가를 뿌렸다.

퍼엉!

그러자 자욱한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검은 연기는 퍼지기가 무섭게 철교의 경보기를 울렸다.

AK-15

......!

검은 연기가 흩어지고 난 자리에 엠블라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남쪽에 있던 경찰들이 이제서야 철교 위에서의 싸움을 눈치채고 무전기로 지원을 요청하며 달려왔다.

AK-15도 자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저의 이름이 바로 답이에요."

사라지기 전 그녀가 남긴 말이, AK-15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AK-15

...여기는 AK-15.

마인강 철교에서 RPK-16을 발견.

놓쳤다.

AN-94

<color=#00CCFF>AN-94, 수신.</color>

<color=#00CCFF>목표 조우 후 상황을 설명 바란다.</color>

AK-15

......

목표를 발견하고 바로 교전했다.

AK-15

하지만 그녀가 틈을 만들어 인구 밀집 지대로 도망치고 말았다. 감시 카메라와 순경 인형들이 많아 추격이 불가능하다.

AK-15는 손바닥의 절반 크기의 초록색 옷조각을 꽉 움켜쥐었다.

검은 연기가 터질 때 그 여자에게서 뜯어낸 유일한 수확이었다.

AN-94

<color=#00CCFF>계획상 발견 즉시 나에게 보고했어야 했다.</color>

AK-15

...미안하다.

AN-94

<color=#00CCFF>부상은?</color>

AK-15

없다.

AN-94

<color=#00CCFF>다행이다. 일단 철수해라, 계속 교전한다면 분명 경찰의 이목을 끌고 만다.</color>

AK-15

그래.

AK-15

...아주 많이 변했더군.

AN-94

<color=#00CCFF>...AK-15, 그녀는... 더 이상 "RPK-16"이 아니다.</color>

AK-15

AN-94, RPK-16이 "엠블라 페트로프스카야"가 자신의 대답이라 했다.

무슨 뜻일까?

AN-94

<color=#00CCFF>"페트로프스카야"... 그건 쇼의 성인데...?</color>

AN-94

<color=#00CCFF>"서맨사 쇼"는 사실 코드네임이고, 본명은 "예카테리나 바실리예브나 페트로프스카야"다.</color>

AK-15

......

프랑크푸르트 교외의 세이프하우스.

밤은 이미 깊었는데도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방에서, AN-94는 탁자 앞에 앉아 총기 부품을 손질하며 통신 너머로 AK-15의 드물게 감정이 섞인 목소리를 들었다.

AK-15

<color=#00CCFF>......</color>

<color=#00CCFF>쇼에 대해서... AK-12는 말한 적 없었는데.</color>

AN-94

...아베르누스에서 돌아오고서 그녀도 많이 변했다.

AK-15

<color=#00CCFF>왜 말해 주지 않았지?</color>

AN-94

내 생각에, AK-12는... 안젤리아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AK-15

<color=#00CCFF>......</color>

AN-94

그리고, RPK-16의 배신도.

그 일로 계속 자책하고 있으니...

만약 그때, 대장 권한을 RPK-16이 아닌 나나 너에게 맡겼다면...

어쩌면, 상황이 전혀 달랐을지도 몰라.

AK-15

<color=#00CCFF>...아니.</color>

AK-15

<color=#00CCFF>우리가 그녀를 신뢰했던 이상,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color>

AN-94

그래.

하지만 그런 말로는 AK-12의 자책감을 누그러뜨릴 수 없어.

AK-15

<color=#00CCFF>......</color>

AN-94

그녀는 우리의 "알파"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자.

언젠가는 그녀가 직접 모든 일을 말해 줄 거다.

AK-15

<color=#00CCFF>그게 언제지?</color>

<color=#00CCFF>안젤리아가 죽을 때 그녀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color>

<color=#00CCFF>만약, 나였다면...</color>

AN-94

...AK-15.

AK-15

<color=#00CCFF>내게 다른 지휘관은 필요 없다.</color>

AN-94

......

AK-15

<color=#00CCFF>새로운 대원도 원치 않아.</color>

AN-94

...그 점에 관해선 우리 모두 동일한 의견이다.

나는 오늘 신소련 대사관으로 가 안전국의 사람을 만났다. 우리에게 최대한 얌전이 있으라더군.

여기에서 대기하면서, 안전국의 지시를 기다리라고 했다.

AK-15

<color=#00CCFF>......</color>

<color=#00CCFF>우리는 리벨리온이다.</color>

AN-94

AK-12도 그렇게 말했지.

AK-15

<color=#00CCFF>...쇼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color>

AN-94

쇼는 실종된 지 벌써 2년...

AK-12의 말에 의하면, 이미 죽었다고 한다.

AK-15

<color=#00CCFF>......</color>

통신 종료.

AN-94는 방의 그늘에 숨은 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AN-94

...왜 직접 말하지 않지?

AN-94

AK-12.

AK-12

......

AN-94

그 소체에는 금방 적응할 거야.

AK-12

......

AN-94

...고집 부리는 건가?

AK-12

......

AN-94

AK-12, 너는 대장이다. 리벨리온의 "알파"는 절대 망설이지 않는 존재야.

AK-12

...난 망설이지 않아.

어느 때보다도 맑은 정신이야.

AN-94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AK-12, 너는 지금 도피하고 있다.

AK-12

......

AN-94, 만약 악마가 너의 모든 소원을 이뤄 주겠다 하면, 영혼을 팔 수 있겠어?

AN-94

...만약 안젤리아가 돌아오고 리벨리온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 거다.

그러고 싶다.

AN-94

그것이, 지금 내가 리벨리온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면...

AK-12, 나는 그럴 수 있다.

AK-12

...그때, 그 핼러윈 날, 기억해?

AK-12

우리가 했던 그 놀이.

AN-94

그 도중에 중단된 놀이 말인가?

갑자기 그건 왜?

AK-12

그때 네가 받은 건 뭐였어?

AN-94

..."안젤리아"였다.

어둠 속의 목소리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의 슈타지 본부, 4번 심문실.

때때로 낮은 신음이 들리는 으슥한 심문실에서, 두 손을 구속한 수갑이 계속해서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금발의 남성은 눈을 떴다. 그리고 여전히 바닥에 고정된 금속 의자에 묶인 자신을 보았다.

오랫동안 혼수 상태로 누워만 있었던 탓에 그의 목은 완전히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몸도 어디를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칼에 찔리듯 쑤셔서 비명을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둠 속에서 이미 녹초가 된 뒤피외는, 지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딸깍!

순식간에 방을 채운 눈부신 하얀 빛에 뒤피외는 눈을 찡그렸고, 갑자기 큰 자극을 받은 눈에서 눈물이 새어나왔다.

시야는 흐릿했지만, 맞은편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은 어렴풋이 보였다.

Q

지금 기분이 어때?

신소련 루뱡카 빌딩 전 제1총국 국장, 미래 위원회 의장단 부주석, 뒤피외 대령.

뒤피외

쓰읍...

비꼬는 건가?

Q

아니, 그냥 궁금해서. 승승장구하던 대령님이 왜 그렇게 급하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려고 했는지가 말이야.

뒤피외

...그게 날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죽이려는 핑계였다는 걸 너도 분명히 알면서 그러나?

내가 너네 슈타지가 신소련에 꽂다 둔 스파이인 걸 들켜서지.

나머지를 알고 싶으면 너네 보스를 데려와라.

너 같은 일반 요원은 알 자격 없으니까.

Q

그렇게 여기가 마음에 들면 국장님 시간 날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도 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한 반 년쯤?

뒤피외

이 자식이...!

Q

"흑점" 사건은 어느 선배의 배신으로 슈타지의 정보가 신소련에게 투명하게 드러나서 벌어진 일.

바로 그 일이 일어난 후에 "전도자"가 명령을 받고 너를 회유했어, 맞지?

뒤피외

...내가 모스크바에게 들통난 게 슈타지의 내부 알력 때문이었냐?

나 원 참, 몇 년이 지나도 슈타지의 일처리 수준은 여전히 역겹기 짝이없군.

Q

직장 정돈하기라면 대령님이 더 프로 아니셔?

당신의 형은 명예 훈장까지 받은 KGB잖아, 그리고 당신은 형이 순직하고 나서야 루뱡카에 들어갔고.

그래서 진짜 궁금해서 묻는데, 왜 우리랑 손을 잡았어?

뒤피외

최소한 슈타지는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이니까.

KGB는 아니거든.

루뱡카가 너를 불렀다면 너는 죽어서도 KGB야.

Q

그러니까 일을 억지로 시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를 않는다니까.

모든 분쟁의 근원은 다 계약 문제라는 걸 왜 모르는 건지.

뒤피외

나한테서 뭘 알고 싶은 거지?

Q

"전도자"는 약속을 어겼지만, 우린 안 그래.

뒤피외

"전도자"가 오지 않은 것도 분명 너희와 관계 있겠지.

Q

근데 말이야, 루뱡카에 너를 팔아먹은 게, 너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인간이 아닌 것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Q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에 작게 X자를 두 개 그리자, 뒤피외의 눈꺼풀이 움찔했다.

뒤피외

...네메아란을 안다고?

Q

물론이지. 슈타지가 너에게 붙인 뒷배이자, "벌침" 시스템의 관리자 중 한 명이기도 했는걸.

딱 너한테 일 터졌을 때 녀석도 신소련을 떠나서 자기 진짜 주인한테 돌아갔어.

뒤피외

뭣... 그녀의 주인이 슈타지가 아니라고?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그딴 놈을 나한테 보낸 거야?

Q

어허~ 이거 다 "전도자" 탓이거든?

뒤피외

...나와 뭘 거래하고 싶은 거지?

이미 "벌침"까지 알고 있다면 이렇게 날 잡아 둬 봤자 아무 의미 없을 텐데.

Q

이 프로필, 네가 제공한 거야?

Q가 대뜸 선명한 인물 사진이 첨부된 자료 하나를 펼쳐 보였다.

프로필의 인물명은 "예카테리나 바실리예브나 페트로프스카야"였다.

뒤피외

...맞아.

Q

실종됐다고?

뒤피외

그래.

Q

이상하네, 난 죽었다고 들었는데.

뒤피외

...계속 나를 떠보는군.

Q

뒤피외 대령님의 협조 태도를 확인하려는 거야.

댁도 원래는 에이스 요원이었잖아.

뒤피외

...이 프로필은 안전국이 위조한 거다.

Q

쯧쯧쯧... 그럼 진실을 알려면 어디 가서 찾으면 돼?

뒤피외

...몰라.

Q

응?

뒤피외

아무도 몰라. 그때 이 일을 처리한 사람들은...

뒤피외

전부 실종됐으니까.

Q가 또 다른 보고서를 꺼냈다.

Q

너희 정보는 제2국이 관리하는데, 이 조사 보고서는 거기서 제출한 거야?

뒤피외

이건... 벌침 시스템에서 난 건가?

...이미 "전도자"의 권한까지 접수했군.

Q

글쎄?

뒤피외

...내부 알력도 끝났나.

뒤피외는 한숨을 쉬었다.

뒤피외

그렇다면, 지금 너희에게 신소련은 유리처럼 투명한 상태겠어.

뒤피외

하지만 우쭐대지 마라.

젤린스키가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아?

내가 들켰다는 건 벌침도 들켰단 뜻이야.

내가 노출되기 전부터 루뱡카는 내부를 "청소" 중이었어.

Q

응, 그야 물론이지.

근데, 말 돌리기 전에 내 질문에나 제대로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뒤피외

"서맨사 쇼" 보고서 말이냐?

그래, 그건 확실히 제2국이 제출했다.

뒤피외

당시 그녀에겐 전문 감시역이 붙어 있었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의 감시는 단순히 문자 그대로의 감시만이 아니라 극단적 상황에서 대상을 제거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뭐어, 정말 극단적인 상황일 때 한정이지만.

Q

그리고 그 감시역들도 사라졌다?

뒤피외

그래.

당시 제2국에서 시체를 확인한 부검의가 안전국한테 당한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도 나중에 사라져 버렸지.

그후 이 일은 완전히 봉인되었어.

Q

쇼 박사가 유적기구 사람과 접촉한 적은 있어?

관련 자료를 내가 못 봤는데.

뒤피외

내가 접촉했을 때 이미 프로필은 그 모양이었어.

유적기구 관련 정보라면... 그녀에게 "소피아"라고 언니가 한 명 있는데, 불법 민간 조직에 들어갔다는 것만 알아.

Q

1992년 모스크바와 뉴욕에서 테러를 벌인 유적 반대 조직, "판도라".

뒤피외

...정확해.

Q

협조 고마워.

Q

그럼 지금부터 심문실에서 내보내서, 슈타지의 정보원으로서 마땅한 대우를 받도록 준비해 줄게.

Q가 뒤피외의 구속을 전부 풀었다.

뒤피외

...지금 너네 국장은 누구지?

Q

로미 리펜슈탈.

뒤피외

뭐? 재정부 장관인 줄 알았는데... 군 복무 이력 있는 재정부 장관 정도로만.

내가 그녀를 과소평가했군.

Q

뒤피외 대령께서는 우리 민주 독일에서 새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길 바랄게.

발신자 불명의 통신 요청.

헬리안

...받으시겠습니까?

크루거는 고개를 젓고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어, 헬리안에게 방에 잔뜩인 카메라를 주의시켰다.

아주 조금의 숨기려는 의도도 없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감시 카메라들을.

헬리안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통신을 끊었다.

헬리안

만일 지휘관의 소식이라면...

크루거

자네 심정은 나도 이해하네. 지휘관의 상황이 어떤지는 나도 몹시 궁금해.

헬리안

......

크루거

훈작사에게 연결해 주게.

통신은 꽤 금방 연결되었다.

크루거

나일세.

훈작사

<color=#00CCFF>내 오랜 친구 아니신가, 어쩐 일이지? 내 도움이 필요한가?</color>

크루거

필요한 건 없고, 알아야 할 소식을 알고 싶을 뿐이네.

훈작사

<color=#00CCFF>손수 키운 그 젊은이가 또 걱정되는가 보군.</color>

크루거

이전에는 지휘관의 동향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네.

그가 망설일 때 고민을 들어주거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 나는 여기서 눈 뜬 장님, 귀 뚫린 귀머거리 신세군.

훈작사

<color=#00CCFF>친구여, 자넨 지금 쉬어야 하네.</color>

크루거

이미 실컷 쉬었네만.

훈작사

<color=#00CCFF>...알겠네, 그럼 내가 오후에 몇 가지 일을——</color>

크루거

계속 대답을 피하는군.

훈작사

<color=#00CCFF>지휘관은 아직 안전지대로 돌아오지 않았어.</color>

<color=#00CCFF>때문에 자세한 정황은 나도 모르네.</color>

크루거

그런가. 이거야 원, 걱정이 되서 못 참겠군.

훈작사

<color=#00CCFF>탈린과 팔디스키에서 무사히 생환하고, 블랙존에서 성과를 얻어내기까지 한 인물이잖나.</color>

<color=#00CCFF>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보네만.</color>

크루거

......

열정을 품었지만, 가끔은 충동적이게 되는 것이 흠이지.

신념 있는 젊은이를 좀 더 너그러이 대해 주길 바라네.

훈작사

<color=#00CCFF>이미 충분히 그러고 있네.</color>

<color=#00CCFF>이 "G&K"의 미래를 위해, 계속해서 참고 있지.</color>

크루거

그럼 무얼 기다리는 거지?

훈작사

<color=#00CCFF>자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야 물론 "루련"의 창립 아니겠나.</color>

크루거

...그땐 루련의 창립에 의미가 있었지.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저 말바꾸기에 불과해.

그동안 몸을 담근 자네가 더 잘 알잖는가.

훈작사

<color=#00CCFF>친구여, 어떤 일들은 다 명목상으로만 시작되기도 한다네. 관료의 선발처럼 말이야.</color>

<color=#00CCFF>소위 선발이란 그저 보여 주기식 절차에 불과하고, 그 자리는 여전히 귀족들의 손에 쥐어지는 것처럼.</color>

<color=#00CCFF>하지만 그 절차가 정식으로 정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능력 있는 자가 등용문에 오를 수 있어.</color>

<color=#00CCFF>역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야 하네.</color>

크루거

그렇다고 젊은이들을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게 해서는 안 되지.

훈작사

<color=#00CCFF>차의 좌석에 앉기를 받아들이면, 젊은이는 자연스레 영웅으로 거듭날걸세.</color>

크루거

......

이해했네.

훈작사

<color=#00CCFF>자네의 건강을 기원하네, 친구여.</color>

훈작사 쪽에서 먼저 통신을 종료했다.

통신기를 내려놓고서, 크루거는 소파에 주저앉아 무릎으로 팔꿈치를 받치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헬리안

...크루거 님, 지휘관을 믿으십시오.

크루거

지금 나는 나 자신의 무능함을 뼈저리고 느끼고 있어...

예전엔 내가 지휘관을 불타는 잔해 속에서 꺼내 줄 수 있었건만.

지금은,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니...

헬리안

이미 모든 것을 지휘관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모두 지휘관을 믿으니, 크루거 님도 이 굳은 신뢰를 지켜 주십시오.

크루거

......

헬리안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크루거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사치스럽게 장식된 호텔 방을 둘러봤다. 반짝이는 벨벳 커튼은 마치 부드러운 감옥의 문처럼 느껴졌다.

크루거

지금 이 지경에서, 우리가 지휘관에게 무얼 더 해 줄 수 있을까?

헬리안

저는 지휘관을 믿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아무리 힘겨워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요.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고요.

크루거

...그러길 바라지.

베를린의 날은 밝았지만, 환해진 느낌은 전혀 없고 자욱한 안개만이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