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잠식
그 가증스러운 모습을 뒤쫓아, AK-15는 페러데우스의 임시거점을 찾아냈다.
...패러데우스 임시 기지.
말끔한 실험실 안에, 이제 막 포장을 뜯은 기구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수 니토들이 지나다니면서 기구들을 묵묵히 조립했다.
네메아란은 리스트를 두 번씩 다시 체크해서 빠뜨린 점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실험실 깊은 곳의 방에 들어섰다.
노크를 했다. 투명한 문이었고 잠겨 있지도 않았지만, 안에 있는 사람에게 내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들어와.
...실례합니다.
네메아란이 문을 열고 들어와 서류 한 뭉치를 라플라스에게 건넸다.
이것이 "원정" 계획의 상세 정보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정보기구 "호각"에 해킹을 성공하였습니다.
그들 배후의 자금원은 선생님께서 판단하신 대로 루련 준비위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계획은 3년에 달하는 내용을 포괄하고 있으며, 중요한 작전에는 모두 고대 영웅에게서 따온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로메츠" 군사작전, 바로 아베르누스를 파괴한 그 작전입니다.
안나가 독일에 온 이유가 이건가?
예, 9월 13일 브레멘에 도착, 9월 17일 베를린에 인계, 10월 16일 아베르누스로 이송.
그럼 "서광"도 이때 다시 깨운 거겠지...
예, 엘리아나의 재기동 날짜는 10월 20일입니다.
우리 예상보다 훨씬 일찍 움직였군.
...죄송합니다, "벌침" 시스템이 그때는 아직 미완성 상태였습니다.
질책하는 건 아니야. 다만 "고치 계획"은 이상적인 흐름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구나.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대부분 이런 식이지. 사소한 기술 발전으로 10년을 아낄 수 있는가 하면, 아주 보잘것없는 오류로 한 세대, 심지어는 몇 세대의 연구가 발목 잡히기도 해.
어쨌든 간에 "열쇠"는 이미 강림했습니다. 선생님의 실험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0.01%의 확률조차 무시해선 안 돼.
...그래도 선생님은 이 시대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지 않습니까.
...그래? 내겐 그만한 자신감은 없단다.
의식의 호수와 연결이 끊어져서 너희도 상당히 영향을 크게 받았겠지?
...그런 문제는 금세 해결될 것입니다.
선생님만 계신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그래, 곧 가장 중요한 실험이 시작될 거야. 이 실험으로 수십 년간의 연구 성과가 검증될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까지 결정되겠지.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네메아란은 또 다른 자료를 건넸다. 최근 일주일 간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이었다.
1면 헤드라인은 "마르노티 여사, 프랑크푸르크 대학 「루크사트 기념 전시회」 방문"이었다.
라플라스는 자료를 받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은 배우와 똑같아.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고 사로잡는 것. 이런 점에서 우리는 많이 서툴지.
우린 심장으로 통하는 길밖에 찾아내지 못하니.
42번 통신을 연결해 드릴까요?
아니, 그 양반한테 그는 아들이 아니라 장기말이야. 쓸데없는 걱정은 필요 없어.
윌리엄이 마지막 실험 때 중요한 재료를 갖고 돌아오기만 하면 돼.
그분께서 제시한 기한까지 이제 2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건 정치인의 시간표지.
우리의 반응로에는 시간이 필요해. 어떤 시대든 과학의 진척은 정치 요소로 좌우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과학은 정치를 벗어날 수가 없죠.
그분께선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이 불꽃놀이를 놓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그건 네 문제고.
...알겠습니다.
"판도라"의 상황은 계속해서 추적합니까?
"그녀"는 대조군으로선 이미 가치를 잃었어. 나머지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실험에 집중할 거야. 아무도 방해 못하게 해.
분부대로.
실험 조수 중에 몇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데리고 가.
나머지 일은 너한테 맡기마.
영광입니다.
프랑크푸르트, 마인강가.
프랑크푸르트에 첫눈이 내렸다.
눈송이는 아직 크게 자라지 못하고 그저 가벼운 깃털처럼 떨어져내려, 썰렁한 나뭇가지와 행인들의 모자를 장식했다.
환경미화 인형들이 약간 쌓인 눈을 도로 중앙에서 길가로 쓸어냈고, 녹아내린 눈이 도로를 축축하게 적셨다.
후우...
엠블라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뿜어져나왔다.
마인강의 풍경을 감상하며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를 거닐며 몸과 몸 사이의 압력을 느꼈다.
분명 시간은 바이올린 줄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해서, 물처럼 악장을 흘러 지나가, 살짝 한눈 파는 사이에 인생은 흘러가고 마는데.
나는 문득 시간을 쏟아부어 즐기고 싶어지네.
안젤리아, 당신은 이런 나날을 전혀 소중히 한 적이 없었죠.
물론 쇼도 마찬가지고요.
당신들은 프로그래밍된 인형보다도 자신의 일에 열중했어요.
그만큼 저도 더 노력해야 하는데...
엠블라의 걸음이 멈췄다. 바쁜 행인들은 마치 강물처럼 그녀 곁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녀는 조용히 거리 맞은편의 레스토랑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등불은 신비로운 소환 주문 같았다.
...그런데 저는 지금 슬쩍 아침 식사를 즐기는 시간을 가지고 싶을 뿐이네요.
그녀는 그 부름에 응하여, 길을 건너 영업 중인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의자를 당기고 천천히 앉아서, 초콜릿 아몬드 버터 롤케이크와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삐삐삐.
몰리도의 통신이 연거푸 울렸다.
엠블라는 대체 어디서 난 배짱인지, 느긋하게 롤케익을 꼭꼭 씹었다.
롤케익을 목으로 넘기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에야 그녀는 통신을 받았다.
...엠블라 씨, 패러데우스가 당신을 너무 풀어드린 모양이네요.
그런가요?
저는 오히려 업무가 제 개인 시간을 너무 차지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고집부리는 점까지 그대로군요.
역시 인간의 글러먹은 점까지 함께 물려받은 모양이에요.
에이, 그럴 리가요.
그냥 약간 농땡이 치는 법을 배웠을 뿐이에요.
당신도 울릭의 사무실에 있어봤으니까, 출근하기 싫은 이 심정 이해하실 거 아니에요.
미안하네요, 엠블라 씨.
거기 있을 때 제 업무는 모든 사람에게 데드라인을 정해주고,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매일 전화를 열 통씩 걸어서 진도를 확인하는 거였어요.
안젤리아가 마음에 들어할 법 하네요.
안젤리아 씨는 데드라인이 필요 없으니까요. 언제나 미리 끝내버리는 편이었으니.
그렇죠, 게다가 스스로 업무를 늘리기까지 하고요.
어떤 상사가 그런 부하를 싫어하겠어요.
그건 모르죠.
임무에다 멋대로 다른 요구사항을 추가하곤 했으니까요. 단체의 목적에 위배되는 그런 거.
인간은 참 재밌는 생물이네요.
잡담은 이만 하고요.
집으로 돌아와요, 네메아란이 기다려요.
최종 계획을 확인할 거예요.
가장 안심되는 부하와 가장 극혐인 상사란 게 이런 거겠죠.
...명을 받들죠, 데드라인 아가씨.
프랑크푸르트, 세이프하우스.
눈에 잘 띄지 않는 세이프하우스. 얼핏 보면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늘 속에서 살짝 번뜩이는 반사광이 보였다.
몸을 감추고 숨어 있는 AK-12였다.
하지만 누군가 억지로 이 고요함을 깨뜨렸다.
삐이...
AR-18 쪽은 지금 잠시 시내에 들어올 수 없어. 네가 가서 스티븐스 520을 마중해줘, 여기 통신 코드.
리벨리온은 남하고 같이 안 움직여.
...네게 필요한 것이 그 애한테 있어.
...나한테 미리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대기하라고 시켰던 그 이유?
맞아, 굳이 다른 말은 필요없겠지.
하지만 AK-12, 타조처럼 땅에 머리를 파묻는 건 너답지 않아. 내가 아는 리벨리온이 아니야.
리벨리온은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
그래? 그럼 AK-12, 너는 뭐가 무서운 거지?
......
너 나름대로 계획이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RPK 건은 너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이건 리벨리온 내부의 일이야.
외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것 없어.
아무도 끼어들 생각 없어, 그저 무서워할 필요 없다는 뜻이야. 그것 때문에 AR-18과 소통하는 걸 피하지 말라고.
내 설정에 '무섭다'란 단어는 없어.
그럼 대체 왜 도피하고 있는 거야?
......
RPK의 배신에 뭔가 다른 사정이 있을까봐 무서운 거야?
아니면 일부러 안젤리아의 죽음을 외면하는 거야?
......
그 녀석을 보는 게 무섭고, 그 시체를 보는 게 무섭고, 그놈을 죽이고 싶으면서도 자신이 상대를 봐줄까봐 무서운 거야?
너네 AR팀 같은 복잡한 감정을 나한테 투영하지 마.
...나한테 그런 가식적인 감정은 생기지 않아.
정말로?
난 단순히 역겨울 뿐이야.
정신 차려, 그건 안젤리아가 아니야. RPK-16도 아니고.
그건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죄악 덩어리야.
...잘못 짚었어, M16.
내가 RPK를 봐줄 가능성은 제로야. 내가 녀석을 다시 만날 때가 바로 녀석이 죽을 때야.
그리고 안젤리아...
안젤리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아!
나보다 똑똑히 본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저게 그저 시체일 뿐이란 건 진작에 알고 있다고!
진짜 안젤리아는 죽었어!
"무로메츠 작전" 날 밤에! 지휘관이 안젤리아를 구하려 한 그때 말이야!
분명 탈출할 기회가 잔뜩 있었어. 하지만 안젤리아는 거절했지.
그 실험을 진행하는 데 동의했다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단 말이야!
...그럼 더더욱 안젤리아의 유지를 이어받아야지.
AK-12, 안젤리아가 저지하려 했던 것을 실제로 막아낼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
그런데 대체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어째서 도피하고 있는 건데?
...난 나 자신이 역겨운 거야.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이 역겨워.
과거의 무능함, 지금의 추함, 그리고 미래의... 실망스러움이.
뭐야, 쇼가 준 소체를 잃어버려서 리벨리온의 "알파"를 맡을 자신이 없어진 거야?
......
넌 진짜 겁쟁이야.
여태까지 그저 쇼의 기술을 등에 업고 으스댄 것뿐이지.
그런 마인드맵으론 리벨리온의 "알파"가 되기엔 글렀어.
삐이——
AK-12가 대답하기 전에 M16이 통신을 끊었다.
......
AK-12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것은 이미 인형의 범용 구조가 아니었다.
패러데우스에서 만든, 출처 불명의, 무엇을 뒤섞은 건지 모를 생산품이었다.
아베르누스, 고층 실험실.
AK-12, 당신을 위해 고른 소체예요.
복수하고 싶다면, 아베르누스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게 유일한 선택지예요.
이제 여기는 박살날 거고, 저는 안젤리아를 데리고 떠나야 하니까요.
이 추한 몰골을 감추려고 그녀는 붕대를 칭칭 감았었다.
하지만 지금 AK-12는 팔의 붕대를 뜯어냈다.
꼭두각시가 자신의 등에 매달린 실을 뜯어내는 것처럼.
...나는 당연히 리벨리온의 "알파"야.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가 아니야.
설령 꼭두각시라 해도, 스스로 등 뒤에 묶인 실을 끊어내 보이겠어.
패러데우스 임시 기지.
네메아란이 로비에 들어서서, 앞에 모인 하얀 이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지금부터 "고치 계획"은 내가 전적으로 통제한다.
우선 너희 수하의 모든 유닛을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하거라.
브라메드는 짧게 코웃음을 치고, 다듬은 손톱을 과장스럽게 살펴보았다.
...흥.
몰리도, 네가 베를린에서 멋지게 활약해준 덕분에 "고치 계획"이 이렇게까지 질질 끌리고 말았구나.
시대가 달라요, 네메아란 언니. 베를린에서 부하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착오가 생겼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선 어련하겠어요?
머리란 게 있다면 양보다는 질이라는 것을 알 텐데?
몰리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에 비웃음을 띄웠다.
브라메드는 싱글벙글 이 기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이미 아베르누스에서 확실하게 말씀하셨을 거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작전에서는 내가 전권을 잡는다. 다른 질문이 있느냐?
아버님을 위해서, 저야 당연~히, 네메아란 언니의 지휘에 따르죠.
다만...
앞으로의 계획에 의문이 있느냐?
네메아란 언니, 먼저 지금 상황을 정리해 드릴게요——
먼저, 지금 단독 작전 능력이 있는 건 언니, 저, 그리고 브라메드뿐이에요, 본거지가 추락하면서 그레이, 나르시스, 틸, 사나 말고도 고급 작전 유닛을 잔뜩 잃어버렸다고요.
둘째, "의식의 호수"의 그릇이 파괴된 탓에 당분간은 작전 유닛을 대규모로 생산할 수가 없어요.
그런 정황은 이미 파악한 바다.
셋째, 이런 조건에서 아베르누스에서의 임무를 속행하면서도 "고치 계획"까지 재기동한다니.
물리적으로 가능한 건가요?
너는 임무를 확인만 하면 된다. 실행 가능성을 따질 필요는 없어.
네메아란 언니... 한 가지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파괴보다 재건이 훨씬 어렵다는 걸요,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특히 이런 상황에선——
일손 문제는 내가 해결해보마.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이대로 내버려둘 순 없다.
독일 경내에 아직 거점이 많이 있으니까, 공장을 가동할 모든 자원을 즉시 동원하렴.
여기서 살짝 끼어들자면요, 언니들 둘 다 이제 취미 생활은 자제하셔야 해요~
이젠 툭하면 흑백 니토를 죽여도 되는 형편이 아니라고요.
일손 하나하나가 소중하답니다~
지금 나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냐?
그냥 권고드린 것뿐이에요.
나르시스와 틸은 이제 회수 못 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레이 시체라도 챙겨놓을걸 그랬네. "고치 계획"에 대해선 그레이가 저보다 훨씬 잘 알잖아요? 이럴 때 좀 쓸모가 있었을 텐데.
그래서 네메아란 언니, 일손 문제를 해결해 본다고 했죠? 그게 언제쯤일까요?
일단 지시한 대로 아베르누스에 남은 물자와 프랑크푸르트의 비축물자를 집계하거라.
운영 현황을 파악하면 얼마나 보충해야 하는지는 바로 가늠할 수 있어.
내 기억상 베를린과 브레멘에 있는 "고치 계획" 예비 공장이 전부 박살나진 않았을 거야.
백업도 좀 있긴 하죠.
그런데 제가 베를린에서 아베르누스로 돌아올 때 많이 급해서, 그레이 쪽에 두고 온 것들이 좀 있어요.
공장 기자재랑 연구 자료, 우리 정보원들의 연락 방식 등이요. 권한을 재가동해서 살펴봐야 해요.
프랑크푸르트에 왔으니 권한은 내가 당연히 새로 조정할 거란다.
모스크바에서 철수할 때 일부 인원을 여기에 남겼으니까.
지금 가장 우선인 건 정리와 실셈이다. 이틀 안에 처리하렴.
할 수 있겠니?
엠블라는요?
"핼러윈의 밤"만 잘 실행하면 된다.
알겠어요, 베를린과 브레멘의 자산 현황은 제가 확인하죠.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전 버전 "고치 계획"에선 몰리도 언니가 제1책임자였나요?
...네메아란 언니, 이건 말해도 되는 건가요?
브라메드,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단다.
맡은 일이나 잘하렴.
...그냥 프랑크푸르트에 담당 고위 니토가 없다는 게 의아해서요.
이런 건 네메아란 언니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여기는 아베르누스가 아니야, 모두 그런 하찮은 생각은 접어두길 바란다.
아버님께서 맡기신 일만 처리하려 해도 잡담할 여유가 없으니까.
아버님의 요구라면 당연히 따를 뿐이죠.
몰리도와 브라메드가 이만 물러나려 할 때...
부우웅——
날카로운 노이즈가 파도처럼 두 사람을 휩쓸어 넘어뜨렸다. 네메아란조차 몇 걸음 휘청거릴 정도였다.
이 심상치 않은 거대한 노이즈 속에서, 그들 모두 무언가가 영원히 변하고 말았다는 것을 인식했다.
......
무슨 일이야? 해킹당한 거야?
아니...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야...
몰리도는 무어라 덧붙이려 했지만, 말이 떨리는 입술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
의식의 호수가 사라졌다.
아베르누스가 추락할 때 같이 없어진 거 아니었어요?
복음 중추가 사라진 것은 그저 우리와 의식의 호수의 연결을 끊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식의 호수가 완전히 소멸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느냐?
......
누가 이런 짓을... 이건 아버님조차도...
모른다, 지금 의식의 호수의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야.
앞으로의 계획도 모두 다시 짜야만 해.
이 부분은 내가 생각하마.
네메아란은 마음을 진정시킨 뒤, 안색이 창백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실험실의 이전과 보호를 우선시해라.
네.
네메아란은 말을 더 할 여유도 없이 로비에서 서둘러 떠났다.
...30분 후.
다른 실험실의 기자재는 모두 이전 완료했습니다. 인원들은 지금 이동 중입니다. 10분 후 철수 완료 예정이에요.
이제 남은 건 마지막 그 실험실뿐인데, 전 들어갈 권한이 없어요.
알고 있다, 그 실험실은... 내가 맡으마.
너희는 현장을 잘 꾸며두거라, 우리의 흔적은 하나도 남겨선 안 된다.
네.
그리고, 엠블라가 예정 위치에 도착했어요.
네메아란 언니가 진입 허가를 내줘야 해요.
네메아란은 스크린 앞으로 걸어가 기지 밖의 감시 영상을 켰다.
화면 속에는 지루하게 기다리던 엠블라가 눈웃음을 지으며 감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존경하는 네메아란 언니, 문 좀 열어주세요.
네메아란은 기지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시선을 스크린에서 떼려는 찰나, 무언가를 눈치챘다.
...뒤에!
퍼엉——!
네메아란이 문을 닫으려는 순간, AK-15가 먼저 처마 밑의 감시 카메라를 박살내고 엠블라를 문 안으로 밀쳐넣었다.
쿠웅!
엠블라는 먼지 구름 속에서 가볍게 몸을 굴러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아차, 꼬리를 밟혔네요.
......
멈추지 말고 계속 이동해라.
다른 니토들은 요격 준비.
전체 대사 보기 (166줄)
...패러데우스 임시 기지.
말끔한 실험실 안에, 이제 막 포장을 뜯은 기구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수 니토들이 지나다니면서 기구들을 묵묵히 조립했다.
네메아란은 리스트를 두 번씩 다시 체크해서 빠뜨린 점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실험실 깊은 곳의 방에 들어섰다.
노크를 했다. 투명한 문이었고 잠겨 있지도 않았지만, 안에 있는 사람에게 내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들어와.
...실례합니다.
네메아란이 문을 열고 들어와 서류 한 뭉치를 라플라스에게 건넸다.
이것이 "원정" 계획의 상세 정보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정보기구 "호각"에 해킹을 성공하였습니다.
그들 배후의 자금원은 선생님께서 판단하신 대로 루련 준비위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계획은 3년에 달하는 내용을 포괄하고 있으며, 중요한 작전에는 모두 고대 영웅에게서 따온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로메츠" 군사작전, 바로 아베르누스를 파괴한 그 작전입니다.
안나가 독일에 온 이유가 이건가?
예, 9월 13일 브레멘에 도착, 9월 17일 베를린에 인계, 10월 16일 아베르누스로 이송.
그럼 "서광"도 이때 다시 깨운 거겠지...
예, 엘리아나의 재기동 날짜는 10월 20일입니다.
우리 예상보다 훨씬 일찍 움직였군.
...죄송합니다, "벌침" 시스템이 그때는 아직 미완성 상태였습니다.
질책하는 건 아니야. 다만 "고치 계획"은 이상적인 흐름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구나.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대부분 이런 식이지. 사소한 기술 발전으로 10년을 아낄 수 있는가 하면, 아주 보잘것없는 오류로 한 세대, 심지어는 몇 세대의 연구가 발목 잡히기도 해.
어쨌든 간에 "열쇠"는 이미 강림했습니다. 선생님의 실험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0.01%의 확률조차 무시해선 안 돼.
...그래도 선생님은 이 시대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지 않습니까.
...그래? 내겐 그만한 자신감은 없단다.
의식의 호수와 연결이 끊어져서 너희도 상당히 영향을 크게 받았겠지?
...그런 문제는 금세 해결될 것입니다.
선생님만 계신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그래, 곧 가장 중요한 실험이 시작될 거야. 이 실험으로 수십 년간의 연구 성과가 검증될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까지 결정되겠지.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네메아란은 또 다른 자료를 건넸다. 최근 일주일 간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이었다.
1면 헤드라인은 "마르노티 여사, 프랑크푸르크 대학 「루크사트 기념 전시회」 방문"이었다.
라플라스는 자료를 받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은 배우와 똑같아.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고 사로잡는 것. 이런 점에서 우리는 많이 서툴지.
우린 심장으로 통하는 길밖에 찾아내지 못하니.
42번 통신을 연결해 드릴까요?
아니, 그 양반한테 그는 아들이 아니라 장기말이야. 쓸데없는 걱정은 필요 없어.
윌리엄이 마지막 실험 때 중요한 재료를 갖고 돌아오기만 하면 돼.
그분께서 제시한 기한까지 이제 2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건 정치인의 시간표지.
우리의 반응로에는 시간이 필요해. 어떤 시대든 과학의 진척은 정치 요소로 좌우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과학은 정치를 벗어날 수가 없죠.
그분께선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이 불꽃놀이를 놓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그건 네 문제고.
...알겠습니다.
"판도라"의 상황은 계속해서 추적합니까?
"그녀"는 대조군으로선 이미 가치를 잃었어. 나머지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실험에 집중할 거야. 아무도 방해 못하게 해.
분부대로.
실험 조수 중에 몇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데리고 가.
나머지 일은 너한테 맡기마.
영광입니다.
프랑크푸르트, 마인강가.
프랑크푸르트에 첫눈이 내렸다.
눈송이는 아직 크게 자라지 못하고 그저 가벼운 깃털처럼 떨어져내려, 썰렁한 나뭇가지와 행인들의 모자를 장식했다.
환경미화 인형들이 약간 쌓인 눈을 도로 중앙에서 길가로 쓸어냈고, 녹아내린 눈이 도로를 축축하게 적셨다.
후우...
엠블라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뿜어져나왔다.
마인강의 풍경을 감상하며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를 거닐며 몸과 몸 사이의 압력을 느꼈다.
분명 시간은 바이올린 줄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해서, 물처럼 악장을 흘러 지나가, 살짝 한눈 파는 사이에 인생은 흘러가고 마는데.
나는 문득 시간을 쏟아부어 즐기고 싶어지네.
안젤리아, 당신은 이런 나날을 전혀 소중히 한 적이 없었죠.
물론 쇼도 마찬가지고요.
당신들은 프로그래밍된 인형보다도 자신의 일에 열중했어요.
그만큼 저도 더 노력해야 하는데...
엠블라의 걸음이 멈췄다. 바쁜 행인들은 마치 강물처럼 그녀 곁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녀는 조용히 거리 맞은편의 레스토랑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등불은 신비로운 소환 주문 같았다.
...그런데 저는 지금 슬쩍 아침 식사를 즐기는 시간을 가지고 싶을 뿐이네요.
그녀는 그 부름에 응하여, 길을 건너 영업 중인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의자를 당기고 천천히 앉아서, 초콜릿 아몬드 버터 롤케이크와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삐삐삐.
몰리도의 통신이 연거푸 울렸다.
엠블라는 대체 어디서 난 배짱인지, 느긋하게 롤케익을 꼭꼭 씹었다.
롤케익을 목으로 넘기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에야 그녀는 통신을 받았다.
<color=#00CCFF>...엠블라 씨, 패러데우스가 당신을 너무 풀어드린 모양이네요.</color>
그런가요?
저는 오히려 업무가 제 개인 시간을 너무 차지한다고 생각하는데요.
<color=#00CCFF>...고집부리는 점까지 그대로군요.</color>
<color=#00CCFF>역시 인간의 글러먹은 점까지 함께 물려받은 모양이에요.</color>
에이, 그럴 리가요.
그냥 약간 농땡이 치는 법을 배웠을 뿐이에요.
당신도 울릭의 사무실에 있어봤으니까, 출근하기 싫은 이 심정 이해하실 거 아니에요.
<color=#00CCFF>미안하네요, 엠블라 씨.</color>
<color=#00CCFF>거기 있을 때 제 업무는 모든 사람에게 데드라인을 정해주고,</color>
<color=#00CCFF>데드라인이 다가오면 매일 전화를 열 통씩 걸어서 진도를 확인하는 거였어요.</color>
안젤리아가 마음에 들어할 법 하네요.
<color=#00CCFF>안젤리아 씨는 데드라인이 필요 없으니까요. 언제나 미리 끝내버리는 편이었으니.</color>
그렇죠, 게다가 스스로 업무를 늘리기까지 하고요.
어떤 상사가 그런 부하를 싫어하겠어요.
<color=#00CCFF>그건 모르죠.</color>
<color=#00CCFF>임무에다 멋대로 다른 요구사항을 추가하곤 했으니까요. 단체의 목적에 위배되는 그런 거.</color>
인간은 참 재밌는 생물이네요.
<color=#00CCFF>잡담은 이만 하고요.</color>
<color=#00CCFF>집으로 돌아와요, 네메아란이 기다려요.</color>
<color=#00CCFF>최종 계획을 확인할 거예요.</color>
<color=#00CCFF>가장 안심되는 부하와 가장 극혐인 상사란 게 이런 거겠죠.</color>
...명을 받들죠, 데드라인 아가씨.
프랑크푸르트, 세이프하우스.
눈에 잘 띄지 않는 세이프하우스. 얼핏 보면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늘 속에서 살짝 번뜩이는 반사광이 보였다.
몸을 감추고 숨어 있는 AK-12였다.
하지만 누군가 억지로 이 고요함을 깨뜨렸다.
삐이...
<color=#00CCFF>AR-18 쪽은 지금 잠시 시내에 들어올 수 없어. 네가 가서 스티븐스 520을 마중해줘, 여기 통신 코드.</color>
리벨리온은 남하고 같이 안 움직여.
<color=#00CCFF>...네게 필요한 것이 그 애한테 있어.</color>
...나한테 미리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대기하라고 시켰던 그 이유?
<color=#00CCFF>맞아, 굳이 다른 말은 필요없겠지.</color>
<color=#00CCFF>하지만 AK-12, 타조처럼 땅에 머리를 파묻는 건 너답지 않아. 내가 아는 리벨리온이 아니야.</color>
리벨리온은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
<color=#00CCFF>그래? 그럼 AK-12, 너는 뭐가 무서운 거지?</color>
......
<color=#00CCFF>너 나름대로 계획이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RPK 건은 너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color>
이건 리벨리온 내부의 일이야.
외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것 없어.
<color=#00CCFF>아무도 끼어들 생각 없어, 그저 무서워할 필요 없다는 뜻이야. 그것 때문에 AR-18과 소통하는 걸 피하지 말라고.</color>
내 설정에 '무섭다'란 단어는 없어.
<color=#00CCFF>그럼 대체 왜 도피하고 있는 거야?</color>
......
<color=#00CCFF>RPK의 배신에 뭔가 다른 사정이 있을까봐 무서운 거야?</color>
<color=#00CCFF>아니면 일부러 안젤리아의 죽음을 외면하는 거야?</color>
......
<color=#00CCFF>그 녀석을 보는 게 무섭고, 그 시체를 보는 게 무섭고, 그놈을 죽이고 싶으면서도 자신이 상대를 봐줄까봐 무서운 거야?</color>
너네 AR팀 같은 복잡한 감정을 나한테 투영하지 마.
...나한테 그런 가식적인 감정은 생기지 않아.
<color=#00CCFF>정말로?</color>
난 단순히 역겨울 뿐이야.
<color=#00CCFF>정신 차려, 그건 안젤리아가 아니야. RPK-16도 아니고.</color>
<color=#00CCFF>그건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죄악 덩어리야.</color>
...잘못 짚었어, M16.
내가 RPK를 봐줄 가능성은 제로야. 내가 녀석을 다시 만날 때가 바로 녀석이 죽을 때야.
그리고 안젤리아...
안젤리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아!
나보다 똑똑히 본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저게 그저 시체일 뿐이란 건 진작에 알고 있다고!
진짜 안젤리아는 죽었어!
"무로메츠 작전" 날 밤에! 지휘관이 안젤리아를 구하려 한 그때 말이야!
분명 탈출할 기회가 잔뜩 있었어. 하지만 안젤리아는 거절했지.
그 실험을 진행하는 데 동의했다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단 말이야!
<color=#00CCFF>...그럼 더더욱 안젤리아의 유지를 이어받아야지.</color>
<color=#00CCFF>AK-12, 안젤리아가 저지하려 했던 것을 실제로 막아낼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color>
<color=#00CCFF>그런데 대체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어째서 도피하고 있는 건데?</color>
...난 나 자신이 역겨운 거야.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이 역겨워.
과거의 무능함, 지금의 추함, 그리고 미래의... 실망스러움이.
<color=#00CCFF>뭐야, 쇼가 준 소체를 잃어버려서 리벨리온의 "알파"를 맡을 자신이 없어진 거야?</color>
......
<color=#00CCFF>넌 진짜 겁쟁이야.</color>
<color=#00CCFF>여태까지 그저 쇼의 기술을 등에 업고 으스댄 것뿐이지.</color>
<color=#00CCFF>그런 마인드맵으론 리벨리온의 "알파"가 되기엔 글렀어.</color>
삐이——
AK-12가 대답하기 전에 M16이 통신을 끊었다.
......
AK-12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것은 이미 인형의 범용 구조가 아니었다.
패러데우스에서 만든, 출처 불명의, 무엇을 뒤섞은 건지 모를 생산품이었다.
아베르누스, 고층 실험실.
AK-12, 당신을 위해 고른 소체예요.
복수하고 싶다면, 아베르누스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게 유일한 선택지예요.
이제 여기는 박살날 거고, 저는 안젤리아를 데리고 떠나야 하니까요.
이 추한 몰골을 감추려고 그녀는 붕대를 칭칭 감았었다.
하지만 지금 AK-12는 팔의 붕대를 뜯어냈다.
꼭두각시가 자신의 등에 매달린 실을 뜯어내는 것처럼.
...나는 당연히 리벨리온의 "알파"야.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가 아니야.
설령 꼭두각시라 해도, 스스로 등 뒤에 묶인 실을 끊어내 보이겠어.
패러데우스 임시 기지.
네메아란이 로비에 들어서서, 앞에 모인 하얀 이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지금부터 "고치 계획"은 내가 전적으로 통제한다.
우선 너희 수하의 모든 유닛을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하거라.
브라메드는 짧게 코웃음을 치고, 다듬은 손톱을 과장스럽게 살펴보았다.
...흥.
몰리도, 네가 베를린에서 멋지게 활약해준 덕분에 "고치 계획"이 이렇게까지 질질 끌리고 말았구나.
시대가 달라요, 네메아란 언니. 베를린에서 부하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착오가 생겼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선 어련하겠어요?
머리란 게 있다면 양보다는 질이라는 것을 알 텐데?
몰리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에 비웃음을 띄웠다.
브라메드는 싱글벙글 이 기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이미 아베르누스에서 확실하게 말씀하셨을 거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작전에서는 내가 전권을 잡는다. 다른 질문이 있느냐?
아버님을 위해서, 저야 당연~히, 네메아란 언니의 지휘에 따르죠.
다만...
앞으로의 계획에 의문이 있느냐?
네메아란 언니, 먼저 지금 상황을 정리해 드릴게요——
먼저, 지금 단독 작전 능력이 있는 건 언니, 저, 그리고 브라메드뿐이에요, 본거지가 추락하면서 그레이, 나르시스, 틸, 사나 말고도 고급 작전 유닛을 잔뜩 잃어버렸다고요.
둘째, "의식의 호수"의 그릇이 파괴된 탓에 당분간은 작전 유닛을 대규모로 생산할 수가 없어요.
그런 정황은 이미 파악한 바다.
셋째, 이런 조건에서 아베르누스에서의 임무를 속행하면서도 "고치 계획"까지 재기동한다니.
물리적으로 가능한 건가요?
너는 임무를 확인만 하면 된다. 실행 가능성을 따질 필요는 없어.
네메아란 언니... 한 가지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파괴보다 재건이 훨씬 어렵다는 걸요,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특히 이런 상황에선——
일손 문제는 내가 해결해보마.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이대로 내버려둘 순 없다.
독일 경내에 아직 거점이 많이 있으니까, 공장을 가동할 모든 자원을 즉시 동원하렴.
여기서 살짝 끼어들자면요, 언니들 둘 다 이제 취미 생활은 자제하셔야 해요~
이젠 툭하면 흑백 니토를 죽여도 되는 형편이 아니라고요.
일손 하나하나가 소중하답니다~
지금 나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냐?
그냥 권고드린 것뿐이에요.
나르시스와 틸은 이제 회수 못 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레이 시체라도 챙겨놓을걸 그랬네. "고치 계획"에 대해선 그레이가 저보다 훨씬 잘 알잖아요? 이럴 때 좀 쓸모가 있었을 텐데.
그래서 네메아란 언니, 일손 문제를 해결해 본다고 했죠? 그게 언제쯤일까요?
일단 지시한 대로 아베르누스에 남은 물자와 프랑크푸르트의 비축물자를 집계하거라.
운영 현황을 파악하면 얼마나 보충해야 하는지는 바로 가늠할 수 있어.
내 기억상 베를린과 브레멘에 있는 "고치 계획" 예비 공장이 전부 박살나진 않았을 거야.
백업도 좀 있긴 하죠.
그런데 제가 베를린에서 아베르누스로 돌아올 때 많이 급해서, 그레이 쪽에 두고 온 것들이 좀 있어요.
공장 기자재랑 연구 자료, 우리 정보원들의 연락 방식 등이요. 권한을 재가동해서 살펴봐야 해요.
프랑크푸르트에 왔으니 권한은 내가 당연히 새로 조정할 거란다.
모스크바에서 철수할 때 일부 인원을 여기에 남겼으니까.
지금 가장 우선인 건 정리와 실셈이다. 이틀 안에 처리하렴.
할 수 있겠니?
엠블라는요?
"핼러윈의 밤"만 잘 실행하면 된다.
알겠어요, 베를린과 브레멘의 자산 현황은 제가 확인하죠.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전 버전 "고치 계획"에선 몰리도 언니가 제1책임자였나요?
...네메아란 언니, 이건 말해도 되는 건가요?
브라메드,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단다.
맡은 일이나 잘하렴.
...그냥 프랑크푸르트에 담당 고위 니토가 없다는 게 의아해서요.
이런 건 네메아란 언니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여기는 아베르누스가 아니야, 모두 그런 하찮은 생각은 접어두길 바란다.
아버님께서 맡기신 일만 처리하려 해도 잡담할 여유가 없으니까.
아버님의 요구라면 당연히 따를 뿐이죠.
몰리도와 브라메드가 이만 물러나려 할 때...
부우웅——
날카로운 노이즈가 파도처럼 두 사람을 휩쓸어 넘어뜨렸다. 네메아란조차 몇 걸음 휘청거릴 정도였다.
이 심상치 않은 거대한 노이즈 속에서, 그들 모두 무언가가 영원히 변하고 말았다는 것을 인식했다.
......
무슨 일이야? 해킹당한 거야?
아니...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야...
몰리도는 무어라 덧붙이려 했지만, 말이 떨리는 입술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
의식의 호수가 사라졌다.
아베르누스가 추락할 때 같이 없어진 거 아니었어요?
복음 중추가 사라진 것은 그저 우리와 의식의 호수의 연결을 끊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식의 호수가 완전히 소멸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느냐?
......
누가 이런 짓을... 이건 아버님조차도...
모른다, 지금 의식의 호수의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야.
앞으로의 계획도 모두 다시 짜야만 해.
이 부분은 내가 생각하마.
네메아란은 마음을 진정시킨 뒤, 안색이 창백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실험실의 이전과 보호를 우선시해라.
네.
네메아란은 말을 더 할 여유도 없이 로비에서 서둘러 떠났다.
...30분 후.
<color=#00CCFF>다른 실험실의 기자재는 모두 이전 완료했습니다. 인원들은 지금 이동 중입니다. 10분 후 철수 완료 예정이에요.</color>
<color=#00CCFF>이제 남은 건 마지막 그 실험실뿐인데, 전 들어갈 권한이 없어요.</color>
알고 있다, 그 실험실은... 내가 맡으마.
너희는 현장을 잘 꾸며두거라, 우리의 흔적은 하나도 남겨선 안 된다.
<color=#00CCFF>네.</color>
<color=#00CCFF>그리고, 엠블라가 예정 위치에 도착했어요.</color>
<color=#00CCFF>네메아란 언니가 진입 허가를 내줘야 해요.</color>
네메아란은 스크린 앞으로 걸어가 기지 밖의 감시 영상을 켰다.
화면 속에는 지루하게 기다리던 엠블라가 눈웃음을 지으며 감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color=#00CCFF>존경하는 네메아란 언니, 문 좀 열어주세요.</color>
네메아란은 기지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시선을 스크린에서 떼려는 찰나, 무언가를 눈치챘다.
...뒤에!
퍼엉——!
네메아란이 문을 닫으려는 순간, AK-15가 먼저 처마 밑의 감시 카메라를 박살내고 엠블라를 문 안으로 밀쳐넣었다.
쿠웅!
엠블라는 먼지 구름 속에서 가볍게 몸을 굴러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아차, 꼬리를 밟혔네요.
......
멈추지 말고 계속 이동해라.
다른 니토들은 요격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