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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4 · 은염색 현상

우리의 전쟁

제1막에서 총이 나타났다면 제3막에서 반드시 총성이 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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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침 시스템의 깊숙한 곳.

데이터 블록이 점점 녹듯이 흘러내려, 빗줄기처럼 도서관으로 시각화된 가상 공간에 쏟아졌다.

UMP9

큰일났어 언니! 벌침이 예정보다 패스워드를 빨리 바꿨어!

데이터 권한 전부 덮어씌워지고 있어!

UMP45

귀찮게 됐네... 그쪽 상황은 어때 416?

예상과 달리, 통신 너머로 미약한 노이즈만 들렸다.

그런 와중 이젠 천장까지 벗겨져 나가, 몸을 숨긴 구석까지 드러나기 직전이었다.

UMP9

빨리 나가야 해!

UMP45

......

UMP45는 코앞에 놓인 프로필 정보를 노려봤다. 이건 해독이 아직 72%밖에 되지 않았다.

UMP45

...20초만 더 벌어 줘.

UMP9

20초오?! 우리 지금 데이터 스트림에 휩쓸리게 생겼는데!?

UMP9의 "권고"를 무시하고, UMP45는 다시 해독에 전념했다.

이렇게 되니 UMP9도 데이터 권한이 덮어씌워지는 속도를 어떻게든 늦추고자 애썼다.

하지만 패스워드가 수정되었기에 손쓸 방도가 없어, 데이터 권한은 빠르게 덮어씌워져 갔다.

UMP9

언니 이번엔 진짜 무리라니까아아!!

UMP45

......

가상 공간의 지평선 끝에서부터 밀려드는 소나기가 모든 것을 순식간에 침식하며 빠르게 다가왔다.

UMP9

<size=50>45 언니이이이!!</size>

UMP45

――됐다.

UMP45는 간신히 해독해낸 정보를 훑어보지도 않고 UMP9과 함께 덥석 집어 들었다.

도서관의 마지막 구석은 홍수에 휘말린 조각배처럼 흔들리다 침몰했다.

UMP45

레벨 2 플랫폼으로 복귀.

폭설의 세례를 받은 것처럼 도서관은 침몰하여 사라졌다.

자신들의 마인드맵 플랫폼으로 돌아온 UMP45는 태연한 반면, UMP9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UMP9

후아아... 0.5초만 늦었어도 정말 큰일났을 거야!

UMP45

하지만 안 늦었잖아? 그럼 됐지.

UMP9

그치만 진짜 식겁했다구... 그나저나 왜 416이 안 쫑알대지? 왜 이렇게 조용......?

투덜대며 현실로 깨어날 준비를 하던 UMP9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UMP9

언니... 여기 어디야? 왜 온통 하얀색이지?

우리의 레벨 2 플랫폼은 안 이렇잖아...?

UMP45

......

UMP9

어... 416이 우리 몰래 시스템 업그레이드라도 했나?

UMP45가 담담히 다시 HK416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HK416

<size=50>빨리 뛰어어어어!!</size>

UMP45

......!

익숙한 목소리는 미친듯이 날아오는 새하얀 빛의 구체들에 쫓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부신 빛은 당연히 UMP45와 UMP9에게도 날아들었다.

콰앙!

UMP9

으엑?! 뭐야 이건!?

구사일생한 둘은 습격이 온 방향을 확인했다.

공중을 부유하는 하얀 옷의 여성에게 쫓겨, HK416이 G11을 끌고 이쪽으로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UMP45와 UMP9은 즉시 총구를 들고 방아쇠를 당겨 둘을 엄호했다.

UMP9

무슨 일이야?! 저 여자는 어디서 왔어!?

HK416

우리 해킹당했어!

UMP45

저 여자, 성가시겠어. 외형 특징이 아베르누스에서 출현했던 "네메아란"에 부합해.

UMP9

질소팀을 전멸시킨 그 강적 말이야?!

G11

으에에...

HK416

우리론 녀석의 상대가 못 돼,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현실에서 소체의 위치는 아직 안 들켰지만 이대로라면 시간 문제야.

HK416은 탄창을 교체했다.

HK416

나랑 G11이 엄호할 테니까 돌파구를 찾아봐.

UMP45

알았어.

HK416

서둘러.

UMP45

416.

HK416

뭐.

UMP45

넌 정말 대장감이야.

HK416

쯧...

지금 그런 소리 할 때냐고!

한마디 툭 쏘고, HK416은 G11을 끌고 네메아란을 유인하러 갔다.

해킹당했음을 깨닫고부터, HK416은 구석마다 도사리고 있는 보아뱀의 존재를 눈치챘다.

녀석은 그들이 도망치는 모든 곳의 구석에서 볼 수 있었지만, 공격은커녕 느긋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구경만 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HK416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절대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꼈다.

전자전에서 생성되는 모든 오브젝트는 연산력을 소모한다. 불필요한 것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저 보아뱀도 분명 뭔가 목적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HK416

......

G11

으아앗 저 여자 막 순간이동도 해!

HK416

여긴 녀석의 영역이니 연산력만 충분하면 뭐든 할 수 있어.

보아뱀에서 시선을 떼고, HK416은 저 하얀 여성을 상대하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적은 속도도, 민첩성도, 살상력도 전부 그들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거리를 벌리고 시간을 끄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HK416

계속 달려! 멈추지 말고!

G11

헥... 헥... 더, 더는 못 달리겠어...!

HK416

타!

HK416이 냉큼 G11을 업었다.

HK416

견제 사격!

G11

으, 응!

HK416

45!! 아직도 못 찾았어?!

UMP45

<color=#00CCFF>37초만 더 버텨.</color>

UMP9

<color=#00CCFF>꼭 버텨!</color>

G11

으으... 빨리이... 이러다 나 죽겠어어어...!

HK416

...알았어.

가루가 하늘하늘 흩뿌려져 내렸다.

또 다시 우레가 쏟아질 징조에, G11을 업은 HK416은 달리는 다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면서 그 보아뱀을 곁눈질했다. 놈은 여전히 한가하게 구석을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깜빡인 찰나의 순간, 놈이 사라졌다.

HK416

......

콰아앙!!

한눈을 판 틈에 유탄의 충격파가 둘을 날려버렸다.

G11

으악!

HK416은 몸을 굴려 착지해, 널브러진 G11을 다시 업고 내달렸다.

그런 그녀를, 우박처럼 쏟아지는 유탄이 바짝 뒤쫓았다.

HK416

<size=50>45!!!</size>

UMP45

<color=#00CCFF>됐어, 로그아웃 시작.</color>

HK416

G11부터 내보내, 얘 한계야.

내가 마지막으로 나갈 테니까.

UMP45

<color=#00CCFF>알았어.</color>

G11

으으...

신음하는 G11이 가상 공간에서 사라졌다.

마침내 HK416은 전력으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HK416

자아, 덤벼!

HK416이 데이터로 만든 엄폐물을 넘어, 견제 사격으로 하얀 여인의 속도를 늦췄다.

쉬이익――

뱀이 입맛을 다시는 소리.

HK416

......!

그 보아뱀이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이서 모습을 드러냈다.

HK416은 곧바로 총구를 돌려 놈에게 총탄을 퍼부었지만, 놈은 가볍게 꿈틀거리는 것만으로 전부 피했다.

UMP45

<color=#00CCFF>416, 로그아웃 준비해.</color>

HK416

칫, 알았――?!

대답하던 중 보아뱀이 공격해, HK416의 팔을 덥석 물었다.

UMP45

괜찮아?

HK416

......

레벨 2 플랫폼에서 빠져나온 HK416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뱀에게 물린 곳을 봤다.

당연히, 아무 흔적도 없었다.

UMP9

왜 그래? 팔 다쳤어?

HK416

...아니. 빨리 철수하자.

UMP45

벌침 시스템에서 찾아낸 정보는 이미 AR-18에게 전송했어, 그쪽에서 좌표 특정 가능하대.

UMP9

아싸~ 임무 완료!

HK416

...이번 건 5배로 받아.

UMP45

히히, 그럴까?

인사불성인 G11을 데리고, 404는 엉망진창이 된 방에서 사라졌다.

"1장에서 총이 등장했다면, 3장에서는 반드시 쏘아야 한다."

화면 속에서 바쁘게 퇴각하는 404 소대를 지켜보며, 네메아란은 가늘어진 눈과 가느다란 손끝으로 화면 속 HK416의 얼굴을 가볍게 찍었다.

네메아란

빵.

애슐리

네메아란 언니, 이대로 놈들을 놓아줘도 됩니까?

네메아란

누가 놓아준댔느냐?

네메아란은 손을 내리고 술잔을 집었다.

네메아란

아직 방아쇠를 당길 때가 아닐 뿐이란다.

쿠웅!

유리 제품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손에 차가운 촉감이 들었다.

루니샤

미안해요, 깼나요?

지휘관

......

무슨 일이야?

이번에도 지휘관은 낯선 방에서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루니샤는 바로 옆에서 다소 허둥지둥 엎지른 물잔을 한손으로 수습하고 있었고, 바닥엔 얼음물이 흥건했다.

루니샤

이 손, 놔 주시겠어요?

지휘관

...어?

그 부탁에 지휘관이 의아해 하며 바라보니, 자신의 손이 루니샤의 손을 단단히 붙잡은 것이 보였다.

지휘관이 손을 놓자, 루니샤는 빨갛게 흔적이 남은 손을 문질렀다.

루니샤

제 손을 꽉 잡고 주무셔서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지휘관

아... 미안.

루니샤

사과하실 것 없어요. 억지로 바닥에 같이 누워 자야 했지만, 썩 괜찮은 기분이었거든요.

좋은 꿈도 꿨고요.

지휘관

무슨 꿈이었는데?

루니샤

비밀이에요~

루니샤는 나른한 고양이처럼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기울이고, 지휘관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루니샤

제 기억상, 이 소체는 잠을 못 잔 지 엄청 오래됐어요.

어쩌면 당신에겐 정말 사람을 안심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걸지도요.

지휘관

그럼 그 보답으로, 너도 날 좀 안심하게 해줄래?

루니샤

뭘 원하세요?

지휘관

진실.

루니샤

네?

지휘관

왜 자꾸 나를 데리고 빙빙 돌기만 하는 거야?

우린 계속 같은 곳에 있었어, 그치?

루니샤

......

루니샤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가볍게 웃었다.

루니샤

어떻게 알았어요?

지휘관

소리.

아주 감쪽같긴 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모든 배경음이 스피커로 재생된 거였어.

성당의 종소리, 아이들의 합창, 공항 비행기의 이륙음... 전부 명백한 루프 지점이 있었어.

루니샤

......

지휘관

그리고 소리가 들려오는 거리로 가늠해보면, 우리는 계속 한 건물 안에서 빙빙 돌고 있었겠지.

루니샤

과연 지휘관님이시네요.

지휘관

......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루니샤

재밌으니까요.

이렇게 당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게 좋으니까요.

지휘관

윌리엄은 날 만날 생각이 전혀 없나 봐?

루니샤

아마도요? 사실, 이제 원하는 것을 다 얻게 돼서 당신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지휘관

......

루니샤

그러니까... 앞으로, 당신의 목숨은 완전히 제 것이에요.

당신은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야 해요.

1주, 1개월, 1년, 10년, 어쩌면... 평생.

지휘관

......

루니샤

10년 뒤의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전히 지금처럼 고집불통일까요?

지휘관

......

루니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겠죠, 10년 후 당신의 인형들은 고철이 됐을 거예요.

어쩌면 중고품 시장에서 그들의 부품을 찾을 수 있을지도요.

지휘관

......

루니샤

왜 말이 없으세요?

루니샤

아하, 배고프신가 보군요.

루니샤는 미소지으며 식탁으로 가, 빵 한 조각을 꺼내 느긋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루니샤

어라? 이 사람들 실수했나 봐요.

분명 빵칼을 달랬는데, 비수를 줬네요?

루니샤는 일부러 비수를 높이 들어 요리조리 살펴봤고, 예리하게 선 날에 반사된 빛에 지휘관은 눈이 부셨다.

루니샤

이걸 수감자한테 뺏기기라도 하면 큰일나겠죠...

지휘관

......

손에 비수를 쥐고서, 루니샤는 지휘관의 곁으로 돌아왔다.

루니샤

제게 달콤한 잠을 주신 보상으로, 이 비수를 선물할게요.

지휘관

......

루니샤

저를 죽이고 도망치세요.

우린 지금 프랑크푸르트의 화이트존 안에 있답니다. 밖은 보안이 꽤 좋아서, 나가면 바로 순찰하는 경비원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겠죠.

지휘관

화이트존?

루니샤

참, 여태까지 줄곧 엘모호의 인형들이 걱정돼서 못 참으셨죠?

루니샤가 깜빡이는 감시 카메라를 가리켰다.

루니샤

그들은 이미 이곳의 위치를 파악했어요. 빠져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지휘관

......

혼자선 안 나가.

루니샤

제 몸에 심어진 폭탄 때문이라면, 당신을 속이려고 한 거짓말이니 걱정 마세요.

지휘관

그것 때문이 아니야.

스윽.

비수가 지휘관의 목에 닿았다.

루니샤의 얼굴에 웃음기는 온데간데 없었고, 눈빛도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루니샤

저를 죽이지 않겠다면 당신을 죽이겠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질렸거든요.

지휘관

그럼 죽여.

루니샤

도발하시는 건가요?

지휘관

맞아.

루니샤의 동공이 수축했고, 차가운 비수가 지휘관의 살갗을 베었다. 하지만 그저 살갗만이었다.

달그락.

루니샤는 비수를 내팽개치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루니샤

가요.

지휘관

......

루니샤

제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가요!

지휘관은 조용히 일어나, 잠시 루니샤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방을 나갔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루니샤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멀어졌던 발소리가 다시 문 앞으로 돌아왔다.

루니샤

......

왜 돌아왔어요?

돌아온 지휘관의 옆구리에는 양탄자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지휘관은 루니샤에게 다가가더니, 그동안 자신을 구속했던 수갑을 루니샤에게 채우곤 양탄자로 그녀를 덮어버렸다.

루니샤

뭐, 뭐하는 거예요?!

갑작스레 닥친 어둠에 당황한 루니샤가 번쩍 들어올려졌다.

지휘관

복수야.

루니샤를 안아 든 지휘관은 문 밖으로 걸어갔다.

루니샤

미쳤어요?! 혼자 나가면 되잖아요!

윌리엄이 제 위치를 추적해서 쫓아올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요!?

지휘관

이미 한 번 붙잡아 본 자식인데 다시 잡으면 그만이지.

하지만 다음번엔 반드시 보자마자 죽이고 말겠어.

루니샤

꿈 깨시고 엘모호로 꺼지세요.

자기가 무슨 구세주라도 되는 줄 알아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도 지키지 못해요.

지휘관

...맞아.

전에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 난 그저 안전하게 있을 곳을 주겠다고 약속했을 뿐인데, 그녀는 나를 전적으로 신뢰했어.

그랬건만, 그녀가 내 눈앞에서 죽을 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루니샤

......

지휘관

그때 맹세했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지 않겠다고.

루니샤

...마흐리안 말이에요?

지휘관

......

루니샤

죽은 지도 한참 된 여자가 아직도 마음에 걸리세요?

지휘관은 루니샤의 조롱기 섞인 웃음소리를 들었다.

루니샤

만약... 제가 마흐리안을 되살릴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제 말을 들으실 거예요?

지휘관은 신경이 곤두섰다.

루니샤가 고개를 지휘관의 귓가에 들이댔다.

루니샤

만약에, 마흐리안은 몰리도의 몸 속에 있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어요? 지금의 저처럼 말예요.

그럼 납득하시겠어요?

지휘관

......

내가 납득하든 말든, 네게 선택권은 없어.

지금부턴 네가 나한테 납치당하는 거야.

루니샤

......

루니샤를 안고서, 지휘관은 바깥의 빛을 향해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