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초화상
그녀는 마치 빙하에 떨어진 고드름처럼 끝없는 어둠 속으로 향해 갔다.
치열한 총소리가 주택가의 평화를 박살냈다.
지휘관을 태운 차량은 더욱 속력을 높여 인적 없는 길거리를 내달렸다.
하지만 좌표가 특정되면서 점점 많은 증원 병력이 쫓아왔다.
추격병이 너무 많아, 이러다간 이 차 금방 박살나겠어!
넌 운전에 집중해, 쫓아오는 놈들은 내가 처리하지.
M16이 차 루프를 열고 의탁해 끈질기게 쫓아오는 적들을 겨냥했다.
416, 엄호해.
OK. 후방은 내가 맡을게.
퍼억!
경비단 병사 한 명이 차에 치였고, HK416은 제동을 거는 순간 병사가 든 통신기를 낚아채 해킹했다.
이걸로 적들 배치를 알 수 있겠어?
네.
잠시 지나서 HK416이 결과를 말했다.
지휘관, 화이트존의 모든 입구가 봉쇄됐어요.
그리고 10개 소대가 넘는 병력이 간선도로를 따라 수색 중이고요...
이러면 들어왔던 길로 나갈 수는 없겠네.
......
지휘관, 이제 어떡하죠?
혹시 지형도 있어?
어떻게든 뚫고 나가야 해, 여기서 버텨봤자 결국엔 소모전 끝에 당할 뿐이야.
타타탕!
또 총알 세례가 차를 쫓아왔다. UMP45가 딱 맞춰 핸들을 꺾어서 대부분은 피할 수 있었다.
화이트존 지도는 기밀 등급이 아주 높아. 지형도는 특급 기밀 수준이고.
우리만으론 입수할 수가 없을 거야.
......
계속 창밖의 총격전을 지켜보던 넬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제가 지형을 대충 알아요, 교관 씨가 부탁해서 여기 지형을 최대한 외웠거든요.
넬레 씨...
이곳은 구역 분할이 아주 가지런하게 되어있어요. 수행하는 기능에 따라서 구획이 나뉘어 있죠.
중앙은 오피스촌이고 대충 동남-서북 방향으로 뻗어 있어요. 서남쪽과 동북쪽에는 주택가가 있고요.
지금 우리는 서남쪽 주택가에 있어요.
......
지휘관은 넬레가 그리는 이미지를 보면서 다음 계획을 생각했다.
마인강이 화이트존 위를 지나가는 지점이 어딘지 알아?
마인강... 그건 왜요?
비스바덴의 지하철 순환선이 화이트존 바로 위를 지나가. 마인강이 화이트존과 만나는 지점이 바로 그 근처야.
...참 자세히도 조사했네.
하지만 그 지점을 찾는다 해도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M16의 뜻은, 화이트존이라 해도 지하철이 지나가는 곳은 다른 곳보다 벽 두께가 얇을 테니까,
거기를 폭파해서 통로를 열 수 있단 뜻이야.
맞아.
...알겠어요.
넬레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이 그린 지도를 뚫어지게 봤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로 추측한다면, 그 지점은 대강 주택가 북쪽, 경비단 막사와 오피스촌이 만나는 곳일 거예요.
거긴 정수처리장 건물이야, 화이트존의 정상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이 정보들 확실해? 앞으로의 우리 작전 방침에 직결된 문제야.
위장 건물이 없다면 말이죠.
위장이 있어도 큰 문제는 없어.
폭파하기 전에 토질을 검사해보면 되니까.
......
그럼 전 이견 없어요, 지휘관.
감사합니다, 넬레 씨.
지휘관은 넬레가 X 자 표시를 그린 지점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쪽으로 간다면 경비단 막사 근처를 지나가게 될 거야. 발각될 가능성이 있어.
지금 경비단은 전원 출동해서 우리를 쫓고 있어. 막사엔 오히려 최소 병력만 남아있겠지.
내가 걱정하는 건 경비단 내부의 통신 네트워크야. 지원이랑 반응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 이동 경로가 들키면 목적지까지 금세 들통날 거야.
걱정 마세요, 저희가 시간을 최대한 벌어드리죠.
그리고, 폭발이 일어나면 거기로 경비단의 주의력이 분산될 테니까요.
그래. 그럼 우선적인 목표는 정수 처리장에 도달하는 걸로.
라저.
UMP45가 핸들을 돌려 목표 지점을 향해 빠르게 운전했다.
HK416이 접근하는 마지막 경비단 병사를 사살했다.
M16A1의 추측대로 경비단은 전부 출동해서 막사엔 몇 개 소대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HK416는 정수처리장의 꼭대기를 올려다봤다. 계획대로라면 M16이 이미 도착했을 터였다.
M16, 이쪽은 청소 완료.
하지만 경보 울리는 걸 막진 못해서 지금 증원병력이 오는 중이야.
알았다. 지금 최상층에 도착해서 폭발물 설치 중이다.
5분만 더 벌어줘.
알았어.
HK416는 옆의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바라봤다. 지휘관과 넬레, 그리고 J가 거기 숨어 있었다.
UMP45와 UMP9은 미리 매복해서 지휘관을 빈틈없이 보호 중이었다.
이제 자신과 G11에게 남은 일은 추격대를 저지해서 M16A1의 폭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었다.
......
폭풍전야 같은 기다림 속, HK416은 오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이에 호응하듯, 우렁찬 경보가 정수처리장 안에서 들려왔다.
엄호 준비해, 폭발물 설치 끝났어.
양호, 빨리 철수해.
HK416는 뒤에 있는 대원들에게 수신호로 엄폐를 지시한 뒤 자신도 빠르게 걸어갔다.
지휘관이 있는 차까지 겨우 몇 걸음 거리였다.
콰앙!
굉음이 그녀의 등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예상했던 초연의 냄새와 탄내는 느껴지지 않았다.
HK416이 다시 눈을 뜨자, 그녀는 지금 불바다가 되어 있을 정수처리장 근처가 아니라——
자신의 레벨 2 플랫폼 안에 있었다.
뭐야?
45? 네가 한 짓이야?
무슨 일이야? 왜 레벨 2 플랫폼으로 통신했어?
......
내 의지가 아니야. 나도 끌려왔어.
해킹당한 거야?
아직 모르겠어.
지금 네 상황을 설명해줘.
HK416는 새하얀 공간을 둘러보며 평소와 다른 점을 찾으려 했다.
쉬이잇...
뱀이 혀를 낼름거리는 소리.
아주 가까이,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뱀...
뱀 한 마리가 보여.
뱀?
416, 우린 지금 45의 공유 화면을 통해 네 레벨 2 플랫폼을 보고 있어.
네가 말하는 뱀은 안 보여.
......
HK416은 가까이서 하얀 알 모양의 물체들을 감싸고 있는 보아뱀을 주시했다.
녀석은 HK416을 향해 혀를 낼름거리며 위협했다.
하지만 HK416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뱀이 몸으로 지키고 있는 그 알 모양 물체에 꽂혀있었다.
계란형 구조물에 담겨 보호받는 데이터.
HK416은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짐작했다.
"고치"였다.
45, 그쪽은 상황이 어때?
폭발이 예상보다 강력했어, 그래도 통로는 열렸어.
지금 우린 증원 병력을 물리치면서 지휘관의 탈출 경로를 계획 중이야.
네 소체는 지금 지휘관의 차 근처에 있을 거고.
......
뭔가 계획이 있으면 서둘러 말해.
솔직히 말해서 지금 여기 상황이 녹록치 않거든.
45, 만약 네 앞에 대놓고 함정이 있어. 미끼를 물면 죽을 게 뻔하지만, 함정 안에 대단히 중요한 물건이 있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이미 목숨 걸고 싸우는 중인데 도박을 안 해볼 이유가 있나?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HK416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내가 이 함정을 안 밟아도 분명 네가 들어와서 밟겠지.
총구를 들고서, HK416은 보아뱀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지, 이럴 땐 대장이 나서는 법이잖아?
내가 못 돌아오면 일단은 네가 계속 대장 하고 있어.
......
416,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야, 잘 생각하라구.
당연히 잘 생각하고 말하는 거지.
HK416은 통신을 껐다. 눈앞의 보아뱀은 몸을 일으켜세워 튼실한 몸뚱이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휘관... 설마 나도 이렇게 전력을 다할 날이 있을 줄이야.
타타탕!
방아쇠를 당겼지만, HK416의 총알 세례는 보아뱀을 약간 움츠리게 할 뿐이었다.
총알은 놈의 비늘에 불똥을 튕기며 막혔다.
칫, 무슨 놈의 방어력이... 그럼 대신 공격력은...
휘익!
보아뱀의 꼬리가 채찍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번개 같은 속도에 해일 같은 위력이었다.
HK416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튕겨나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
아니, 요즘 적들은 뭐가 이렇게 다 사기야?
탱커인지 딜러인지 하나만 하라고! G11이 보면 밸붕이라고 난리를 치겠네.
HK416은 자조하듯 웃으며, 몸을 일으켜 다시 보아뱀과 대치했다.
놈이 머리를 높이 들어올렸다. 낼름거리는 혀에 도발의 의미가 약간 더해졌다.
HK416은 방금 녀석의 공격을 회상하며 약점 탐색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휘익! 다음 공격이 바로 다가왔다.
...같은 패턴?
HK416는 뱀 꼬리와 지면 사이 틈새로 슬라이딩했다. 그리고 동시에——
타타탕!
보아뱀의 정수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똑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진 않아!
총알이 놈의 머리 비늘에 부딪혀, 흐릿한 불똥만 튀기고 튕겨나갔다.
하지만 애초에 HK416은 피해를 줄 생각이 없었고, 처음부터 "고치"를 노릴 뿐이었다.
보아뱀의 주의력이 흐트러진 순간, HK416은 이미 "고치" 중 하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쉬익...
보아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귓가엔 분명 선명한 소리가 들렸다.
콰직...
단단히 조여지는 고통.
생각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마치 통째로 뱀의 뱃속에 삼켜진 것처럼, 치명적인 독소에 마비되어 조금씩 지옥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HK416은 손에 든 "고치"를 놓지 않았다.
타타탕! 콰앙——!
치열한 총격전 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
......
...이렇게 싱겁게?
416, 응답해!
들려.
지금 빠져나왔어.
너 괜찮아? 놀라 죽는 줄 알았다고...
난 괜찮아, 우선 지휘관과 합류할게.
지휘관에게 전달할 중요한 정보가 있어.
정말 괜찮은 거야? 방금 무슨 뱀을 봤니 뭐니 하더니...
응, 그것도 나중에 얘기할게.
일단 지휘관 쪽 상황이 어떤지 보러 갈 거야.
......
보아뱀의 껍질이 벗겨지고 우아한 여인이 걸어나왔다.
그녀의 눈앞에 HK416이 보고 있는 시야가 똑같이 펼쳐졌다.
...정말 단순하고 고집 센 애로구나.
하이드라의 보물을 가져가고서도 멀쩡히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녀 뒤에는 남은 "고치"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꾸나, 보물을 누구에게 바칠 셈이니?
타타탕!
콰앙——
치열한 총격전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지휘관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지휘관!
......
등과 허벅지 측면이 엄청나게 아팠다. 강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과 루니샤는 구조하러 온 리벨리온을 만났지만, 타고 있던 차가 폭발로 뒤집혔다...
지휘관! 정신 차려요!
차가운 손이 뺨을 두드렸다.
지휘관!!!
아무래도 깨어나야만 할 것 같다.
정신이 드세요!?
...416?
저예요, 빨리 제 손 잡으세요.
어...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지휘관은 몽롱함 속에서 손을 HK416에게 뻗었다.
좋아요, 잡았어요.
이제 몸에 힘을 최대한 빼세요, 끌어당겨서 차에서 빼낼 거예요.
어...
지금 상황이 완전히 파악되진 않았지만, 지휘관은 무의식 중에 HK416을 완전히 믿었다.
이제 당길 거예요.
다칠 수도 있지만 걱정 마세요, 반드시 여기서 무사히 벗어나게 해드릴게요!
응.
쑤욱!
이쪽이에요, 지휘관!
절뚝거리는 지휘관을 끌고서, HK416은 UMP45가 새로 해킹한 차를 향해 달렸다.
...다른 애들은?
...넬레 씨와 옷차림 이상한 댄들라이 모두 안전한 곳에 뒀어요.
리벨리온도 후방에서 미끼 역할을 해서 시간을 벌어주고 있어요.
너희가 있어서 정말 안심이야...
지휘관을 차에 태운 뒤, HK416은 바로 몸을 돌려 경계 태세를 취했다.
지휘관, 밖은 제가 지킬게요.
차 안에 잘 숨어계세요. M16이 앞길을 다 청소하고 나면 데리러 올 거예요.
그래.
45, 지휘관의 철수 경로는 다 정했어?
거의 끝났어, M16이 마지막 장애물을 청소 중이야.
그쪽 상황은 어때?
아직은 안전해.
쉬이잇...
그 끈질긴 소리가 다시 달라붙었다.
HK416의 귓가에 신랄하고도 위험한 입김이 닿았다.
......
45.
들려.
이리로 와. 지휘관은 네가 데려가.
왜 그래? 어디 가려고?
쉬이잇...
차가운 비늘 가죽이 HK416의 몸을 휘감았다. 시각적으로는 아무 이상도 없었지만.
조금씩 조여들어, 조금씩 숨이 막혀왔다.
......
416, 너 괜찮아?
너 눈에 무슨 마크 같은 게 있는데? 살짝 빛나는 것 같기도...
......
전 괜찮아요, 지휘관.
팔에 물린 자리와 오른눈이 달아오르면서 화상 자국처럼 욱신거렸다.
416은 잡고 있던 총을 단단히 쥐면서 억지로 정신을 바로잡았다.
416, 대답해.
......
...416?
이게 도박에 손댄 페널티인가?
엄청난 물건을 훔치고도 마땅한 값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416...
...이거, 벌침 시스템에서 얻어낸 거예요...
지휘관, 당신에게 맡길게요. 우린 이겨요, 반드시.
정적 속에서, HK416의 총이 손에서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마치 빙하에서 떨어진 고드름처럼 끝없는 어둠으로 추락했다.
지휘관은 그녀의 소체를 붙잡았지만, 그녀의 영혼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패러데우스의 임시 공장.
예정에 없던 통신을 애슐리에게서 넘겨받자, 통신 화면엔 헤베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일이냐?
제게 보관을 맡기신 바스케어의 고치 기억해요?
...이미 망가진 그거 말이냐...
안에 든 정보를 해석할 수가 없어서 네게 보관을 맡겼었지...
방금 그걸로 함정을 팠어요.
...그래서?
도둑놈에게 마크를 새겼죠...
그래.
어차피 언젠간 유출될 물건이었으니.
하지만 다음엔 멋대로 결정하지 말거라.
...항상 선공을 내주기만 해서야 어떻게 이기겠어요?
...판세가 이렇다 보니 수 하나도 함부로 둘 수가 없단다.
헤베, 이 임무가 얼마나 힘겨운지 깨달아주면 좋겠구나.
저도 당연히 알죠, 그렇기에 더욱 수세에 몰려선 안 되잖아요?
가끔은 도박수를 내야 이길 가능성이 생기죠.
...이런 생각은 안 해봤니? 우리의 임무 목표가...
이번 판을 이기는 게 아니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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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총소리가 주택가의 평화를 박살냈다.
지휘관을 태운 차량은 더욱 속력을 높여 인적 없는 길거리를 내달렸다.
하지만 좌표가 특정되면서 점점 많은 증원 병력이 쫓아왔다.
추격병이 너무 많아, 이러다간 이 차 금방 박살나겠어!
넌 운전에 집중해, 쫓아오는 놈들은 내가 처리하지.
M16이 차 루프를 열고 의탁해 끈질기게 쫓아오는 적들을 겨냥했다.
416, 엄호해.
OK. 후방은 내가 맡을게.
퍼억!
경비단 병사 한 명이 차에 치였고, HK416은 제동을 거는 순간 병사가 든 통신기를 낚아채 해킹했다.
이걸로 적들 배치를 알 수 있겠어?
네.
잠시 지나서 HK416이 결과를 말했다.
지휘관, 화이트존의 모든 입구가 봉쇄됐어요.
그리고 10개 소대가 넘는 병력이 간선도로를 따라 수색 중이고요...
이러면 들어왔던 길로 나갈 수는 없겠네.
......
지휘관, 이제 어떡하죠?
혹시 지형도 있어?
어떻게든 뚫고 나가야 해, 여기서 버텨봤자 결국엔 소모전 끝에 당할 뿐이야.
타타탕!
또 총알 세례가 차를 쫓아왔다. UMP45가 딱 맞춰 핸들을 꺾어서 대부분은 피할 수 있었다.
화이트존 지도는 기밀 등급이 아주 높아. 지형도는 특급 기밀 수준이고.
우리만으론 입수할 수가 없을 거야.
......
계속 창밖의 총격전을 지켜보던 넬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제가 지형을 대충 알아요, 교관 씨가 부탁해서 여기 지형을 최대한 외웠거든요.
넬레 씨...
이곳은 구역 분할이 아주 가지런하게 되어있어요. 수행하는 기능에 따라서 구획이 나뉘어 있죠.
중앙은 오피스촌이고 대충 동남-서북 방향으로 뻗어 있어요. 서남쪽과 동북쪽에는 주택가가 있고요.
지금 우리는 서남쪽 주택가에 있어요.
......
지휘관은 넬레가 그리는 이미지를 보면서 다음 계획을 생각했다.
마인강이 화이트존 위를 지나가는 지점이 어딘지 알아?
마인강... 그건 왜요?
비스바덴의 지하철 순환선이 화이트존 바로 위를 지나가. 마인강이 화이트존과 만나는 지점이 바로 그 근처야.
...참 자세히도 조사했네.
하지만 그 지점을 찾는다 해도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M16의 뜻은, 화이트존이라 해도 지하철이 지나가는 곳은 다른 곳보다 벽 두께가 얇을 테니까,
거기를 폭파해서 통로를 열 수 있단 뜻이야.
맞아.
...알겠어요.
넬레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이 그린 지도를 뚫어지게 봤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로 추측한다면, 그 지점은 대강 주택가 북쪽, 경비단 막사와 오피스촌이 만나는 곳일 거예요.
거긴 정수처리장 건물이야, 화이트존의 정상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이 정보들 확실해? 앞으로의 우리 작전 방침에 직결된 문제야.
위장 건물이 없다면 말이죠.
위장이 있어도 큰 문제는 없어.
폭파하기 전에 토질을 검사해보면 되니까.
......
그럼 전 이견 없어요, 지휘관.
감사합니다, 넬레 씨.
지휘관은 넬레가 X 자 표시를 그린 지점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쪽으로 간다면 경비단 막사 근처를 지나가게 될 거야. 발각될 가능성이 있어.
지금 경비단은 전원 출동해서 우리를 쫓고 있어. 막사엔 오히려 최소 병력만 남아있겠지.
내가 걱정하는 건 경비단 내부의 통신 네트워크야. 지원이랑 반응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 이동 경로가 들키면 목적지까지 금세 들통날 거야.
걱정 마세요, 저희가 시간을 최대한 벌어드리죠.
그리고, 폭발이 일어나면 거기로 경비단의 주의력이 분산될 테니까요.
그래. 그럼 우선적인 목표는 정수 처리장에 도달하는 걸로.
라저.
UMP45가 핸들을 돌려 목표 지점을 향해 빠르게 운전했다.
HK416이 접근하는 마지막 경비단 병사를 사살했다.
M16A1의 추측대로 경비단은 전부 출동해서 막사엔 몇 개 소대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HK416는 정수처리장의 꼭대기를 올려다봤다. 계획대로라면 M16이 이미 도착했을 터였다.
<color=#00CCFF>M16, 이쪽은 청소 완료.</color>
<color=#00CCFF>하지만 경보 울리는 걸 막진 못해서 지금 증원병력이 오는 중이야.</color>
<color=#00CCFF>알았다. 지금 최상층에 도착해서 폭발물 설치 중이다.</color>
<color=#00CCFF>5분만 더 벌어줘.</color>
<color=#00CCFF>알았어.</color>
HK416는 옆의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바라봤다. 지휘관과 넬레, 그리고 J가 거기 숨어 있었다.
UMP45와 UMP9은 미리 매복해서 지휘관을 빈틈없이 보호 중이었다.
이제 자신과 G11에게 남은 일은 추격대를 저지해서 M16A1의 폭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었다.
......
폭풍전야 같은 기다림 속, HK416은 오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이에 호응하듯, 우렁찬 경보가 정수처리장 안에서 들려왔다.
<color=#00CCFF>엄호 준비해, 폭발물 설치 끝났어.</color>
<color=#00CCFF>양호, 빨리 철수해.</color>
HK416는 뒤에 있는 대원들에게 수신호로 엄폐를 지시한 뒤 자신도 빠르게 걸어갔다.
지휘관이 있는 차까지 겨우 몇 걸음 거리였다.
콰앙!
굉음이 그녀의 등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예상했던 초연의 냄새와 탄내는 느껴지지 않았다.
HK416이 다시 눈을 뜨자, 그녀는 지금 불바다가 되어 있을 정수처리장 근처가 아니라——
자신의 레벨 2 플랫폼 안에 있었다.
뭐야?
45? 네가 한 짓이야?
<color=#00CCFF>무슨 일이야? 왜 레벨 2 플랫폼으로 통신했어?</color>
......
내 의지가 아니야. 나도 끌려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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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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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416는 새하얀 공간을 둘러보며 평소와 다른 점을 찾으려 했다.
쉬이잇...
뱀이 혀를 낼름거리는 소리.
아주 가까이,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뱀...
뱀 한 마리가 보여.
<color=#00CCFF>뱀?</color>
<color=#00CCFF>416, 우린 지금 45의 공유 화면을 통해 네 레벨 2 플랫폼을 보고 있어.</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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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K416은 가까이서 하얀 알 모양의 물체들을 감싸고 있는 보아뱀을 주시했다.
녀석은 HK416을 향해 혀를 낼름거리며 위협했다.
하지만 HK416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뱀이 몸으로 지키고 있는 그 알 모양 물체에 꽂혀있었다.
계란형 구조물에 담겨 보호받는 데이터.
HK416은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짐작했다.
"고치"였다.
45, 그쪽은 상황이 어때?
<color=#00CCFF>폭발이 예상보다 강력했어, 그래도 통로는 열렸어.</color>
<color=#00CCFF>지금 우린 증원 병력을 물리치면서 지휘관의 탈출 경로를 계획 중이야.</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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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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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00CCFF>솔직히 말해서 지금 여기 상황이 녹록치 않거든.</color>
45, 만약 네 앞에 대놓고 함정이 있어. 미끼를 물면 죽을 게 뻔하지만, 함정 안에 대단히 중요한 물건이 있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color=#00CCFF>이미 목숨 걸고 싸우는 중인데 도박을 안 해볼 이유가 있나?</color>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HK416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내가 이 함정을 안 밟아도 분명 네가 들어와서 밟겠지.
총구를 들고서, HK416은 보아뱀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지, 이럴 땐 대장이 나서는 법이잖아?
내가 못 돌아오면 일단은 네가 계속 대장 하고 있어.
<color=#00CCFF>......</color>
<color=#00CCFF>416,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야, 잘 생각하라구.</color>
당연히 잘 생각하고 말하는 거지.
HK416은 통신을 껐다. 눈앞의 보아뱀은 몸을 일으켜세워 튼실한 몸뚱이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휘관... 설마 나도 이렇게 전력을 다할 날이 있을 줄이야.
타타탕!
방아쇠를 당겼지만, HK416의 총알 세례는 보아뱀을 약간 움츠리게 할 뿐이었다.
총알은 놈의 비늘에 불똥을 튕기며 막혔다.
칫, 무슨 놈의 방어력이... 그럼 대신 공격력은...
휘익!
보아뱀의 꼬리가 채찍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번개 같은 속도에 해일 같은 위력이었다.
HK416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튕겨나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
아니, 요즘 적들은 뭐가 이렇게 다 사기야?
탱커인지 딜러인지 하나만 하라고! G11이 보면 밸붕이라고 난리를 치겠네.
HK416은 자조하듯 웃으며, 몸을 일으켜 다시 보아뱀과 대치했다.
놈이 머리를 높이 들어올렸다. 낼름거리는 혀에 도발의 의미가 약간 더해졌다.
HK416은 방금 녀석의 공격을 회상하며 약점 탐색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휘익! 다음 공격이 바로 다가왔다.
...같은 패턴?
HK416는 뱀 꼬리와 지면 사이 틈새로 슬라이딩했다. 그리고 동시에——
타타탕!
보아뱀의 정수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똑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진 않아!
총알이 놈의 머리 비늘에 부딪혀, 흐릿한 불똥만 튀기고 튕겨나갔다.
하지만 애초에 HK416은 피해를 줄 생각이 없었고, 처음부터 "고치"를 노릴 뿐이었다.
보아뱀의 주의력이 흐트러진 순간, HK416은 이미 "고치" 중 하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쉬익...
보아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귓가엔 분명 선명한 소리가 들렸다.
콰직...
단단히 조여지는 고통.
생각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마치 통째로 뱀의 뱃속에 삼켜진 것처럼, 치명적인 독소에 마비되어 조금씩 지옥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HK416은 손에 든 "고치"를 놓지 않았다.
타타탕! 콰앙——!
치열한 총격전 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
......
...이렇게 싱겁게?
<color=#00CCFF>416, 응답해!</color>
들려.
지금 빠져나왔어.
<color=#00CCFF>너 괜찮아? 놀라 죽는 줄 알았다고...</color>
난 괜찮아, 우선 지휘관과 합류할게.
지휘관에게 전달할 중요한 정보가 있어.
<color=#00CCFF>정말 괜찮은 거야? 방금 무슨 뱀을 봤니 뭐니 하더니...</color>
응, 그것도 나중에 얘기할게.
일단 지휘관 쪽 상황이 어떤지 보러 갈 거야.
......
보아뱀의 껍질이 벗겨지고 우아한 여인이 걸어나왔다.
그녀의 눈앞에 HK416이 보고 있는 시야가 똑같이 펼쳐졌다.
...정말 단순하고 고집 센 애로구나.
하이드라의 보물을 가져가고서도 멀쩡히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녀 뒤에는 남은 "고치"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꾸나, 보물을 누구에게 바칠 셈이니?
타타탕!
콰앙——
치열한 총격전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지휘관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지휘관!
......
등과 허벅지 측면이 엄청나게 아팠다. 강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과 루니샤는 구조하러 온 리벨리온을 만났지만, 타고 있던 차가 폭발로 뒤집혔다...
지휘관! 정신 차려요!
차가운 손이 뺨을 두드렸다.
<size=50>지휘관!!!</size>
아무래도 깨어나야만 할 것 같다.
정신이 드세요!?
...416?
저예요, 빨리 제 손 잡으세요.
어...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지휘관은 몽롱함 속에서 손을 HK416에게 뻗었다.
좋아요, 잡았어요.
이제 몸에 힘을 최대한 빼세요, 끌어당겨서 차에서 빼낼 거예요.
어...
지금 상황이 완전히 파악되진 않았지만, 지휘관은 무의식 중에 HK416을 완전히 믿었다.
이제 당길 거예요.
다칠 수도 있지만 걱정 마세요, 반드시 여기서 무사히 벗어나게 해드릴게요!
응.
쑤욱!
이쪽이에요, 지휘관!
절뚝거리는 지휘관을 끌고서, HK416은 UMP45가 새로 해킹한 차를 향해 달렸다.
...다른 애들은?
...넬레 씨와 옷차림 이상한 댄들라이 모두 안전한 곳에 뒀어요.
리벨리온도 후방에서 미끼 역할을 해서 시간을 벌어주고 있어요.
너희가 있어서 정말 안심이야...
지휘관을 차에 태운 뒤, HK416은 바로 몸을 돌려 경계 태세를 취했다.
지휘관, 밖은 제가 지킬게요.
차 안에 잘 숨어계세요. M16이 앞길을 다 청소하고 나면 데리러 올 거예요.
그래.
<color=#00CCFF>45, 지휘관의 철수 경로는 다 정했어?</color>
<color=#00CCFF>거의 끝났어, M16이 마지막 장애물을 청소 중이야.</color>
<color=#00CCFF>그쪽 상황은 어때?</color>
<color=#00CCFF>아직은 안전해.</color>
쉬이잇...
그 끈질긴 소리가 다시 달라붙었다.
HK416의 귓가에 신랄하고도 위험한 입김이 닿았다.
<color=#00CCFF>......</color>
<color=#00CCFF>45.</color>
<color=#00CCFF>들려.</color>
<color=#00CCFF>이리로 와. 지휘관은 네가 데려가.</color>
<color=#00CCFF>왜 그래? 어디 가려고?</color>
쉬이잇...
차가운 비늘 가죽이 HK416의 몸을 휘감았다. 시각적으로는 아무 이상도 없었지만.
조금씩 조여들어, 조금씩 숨이 막혀왔다.
<color=#00CCFF>......</color>
416, 너 괜찮아?
너 눈에 무슨 마크 같은 게 있는데? 살짝 빛나는 것 같기도...
......
전 괜찮아요, 지휘관.
팔에 물린 자리와 오른눈이 달아오르면서 화상 자국처럼 욱신거렸다.
416은 잡고 있던 총을 단단히 쥐면서 억지로 정신을 바로잡았다.
<color=#00CCFF>416, 대답해.</color>
......
...416?
이게 도박에 손댄 페널티인가?
엄청난 물건을 훔치고도 마땅한 값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416...
...이거, 벌침 시스템에서 얻어낸 거예요...
지휘관, 당신에게 맡길게요. 우린 이겨요, 반드시.
정적 속에서, HK416의 총이 손에서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마치 빙하에서 떨어진 고드름처럼 끝없는 어둠으로 추락했다.
지휘관은 그녀의 소체를 붙잡았지만, 그녀의 영혼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패러데우스의 임시 공장.
예정에 없던 통신을 애슐리에게서 넘겨받자, 통신 화면엔 헤베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일이냐?
<color=#00CCFF>제게 보관을 맡기신 바스케어의 고치 기억해요?</color>
...이미 망가진 그거 말이냐...
안에 든 정보를 해석할 수가 없어서 네게 보관을 맡겼었지...
<color=#00CCFF>방금 그걸로 함정을 팠어요.</color>
...그래서?
<color=#00CCFF>도둑놈에게 마크를 새겼죠...</color>
그래.
어차피 언젠간 유출될 물건이었으니.
하지만 다음엔 멋대로 결정하지 말거라.
<color=#00CCFF>...항상 선공을 내주기만 해서야 어떻게 이기겠어요?</color>
...판세가 이렇다 보니 수 하나도 함부로 둘 수가 없단다.
헤베, 이 임무가 얼마나 힘겨운지 깨달아주면 좋겠구나.
<color=#00CCFF>저도 당연히 알죠, 그렇기에 더욱 수세에 몰려선 안 되잖아요?</color>
<color=#00CCFF>가끔은 도박수를 내야 이길 가능성이 생기죠.</color>
...이런 생각은 안 해봤니? 우리의 임무 목표가...
이번 판을 이기는 게 아니라면?
<color=#00CCFF>......</co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