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 같은 비밀
슈타지에게는 혼란이 바로 오르막길이다.
...슈타지 본부.
"회의 중"이라 표시된 사무실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
철컥. 아마리스가 떡진 머리카락을 문지르면서 모자를 쓰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미안, 살짝 지각했어.
괜찮다, 회의도 시작 안 했으니.
스털링은 맞은편의 빈자리를 바라봤다, 원래 매주 정기 회의를 주도해야 할 인물이 자리에 없었다.
이거 어떡해? 회의할 거야, 말 거야?
J 요원이 아직 실종 상태인데...
그럼 우리는 어떡해? 다 내버려두는 거야?
......
잘됐네! 직속 상관이 없으니까 대놓고 땡땡이쳐도 되겠어.
아마리스는 좋다고 기지개를 폈다.
앞으로 Q가 우리의 지휘를 맡는다고 들었다.
......
누구? 그 야근광 말하는 거야?
잘됐네! J보다는 Q가 훨씬 믿음직하지!
망했네! 앞으론 24시간 대기 세우겠구나...
철컥. 문이 다시 열리고, Q가 회의실에 들어왔다.
Q는 장난스러운 시선으로 아마리스와 다른 인형들을 훑어봤다.
표정을 보니까, 이제 내가 지휘자란 걸 다들 알고 있나 보네.
그렇다, 내가 전달했다.
그럼 잔말은 생략할게. 다들 나랑 같이 일한 적 있으니까, 내 스타일은 알고 있겠지.
Q는 서류 한 더미를 탁상에 내려놓았다.
아가씨들, 바로 일을 나눠볼까.
다그마르, 이디스, 너희 둘은 엘모호를 계속 수색해서 꼭 쓸모 있는 걸 찾아내.
네!
다그마르와 이디스는 권한 허가 서류를 건네받곤 사무실을 나섰다.
브리짓, 화이트존에 J 대신 일할 요원을 보냈으니까, 가서 인수인계 해줘.
어느 정도 인수인계하면 됩니까? 모든 사항을 맡기면 됩니까?
다 인계할 필요는 없어, 잠깐 땜빵 칠 수 있을 정도면 돼.
알겠습니다.
브리짓도 화이트존 출입 허가 서류를 받아 나갔다.
스털링, 너는 인형 소대 지휘 권한 이양 서류를 가서 제출해 줘, 내용은 다 채워놨으니까, 가면서 검사 좀 해주고.
알겠다.
잠깐 사이에 회의실에는 Q와 아마리스, 단 둘만 남았다
아마리스는 눈을 껌뻑이며, 텅 비어버린 탁상과 맞은편의 Q를 번갈아 봤다.
...나는 뭐해? 비번이야?
꿈 깨셔.
Q는 가져온 종이봉투를 뜯어 커피 두 잔을 꺼내, 그중 한 잔을 아마리스에게 건넸다.
아마리스,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Q가 커피 한 잔을 사줄 정도로 질문이라는 걸 깨달은 아마리스는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았다.
"서광"에 관해서야?
그래, 물론 궁금한 건 "서광"의 설계자인 마사 마이트너에 관해서지만.
...그 질문은 나한테 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나는 그 사람과 접촉이 거의 없었거든.
내가 그 사람에게서 받은 건 아마 내 이름뿐일 거야.
그녀와 직접 접촉한 적이 없다고?
없어, 그 사람을 본 적도 없어.
나뿐만 아니라, 서광의 다른 대원들도 마인드맵 기동 테스트 중에 그 사람과 접촉한 적 없어, 엘리아나만 빼고...
엘리아나가 마사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있어?
...있어, 엘리아나가 그 사람과 가장 많이 접촉했었으니까.
녀석은, 마사 박사가 자기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침착하고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평가했어.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려는 일을 확실하게 알고 있고, 방해되는 것은 미련 없이 다 치워버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과연 인류에게 있어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는 모르겠다고 했어.
엘리아나는 그녀를 제법 후하게 평가했나 보네.
마사 박사는 과거에 미국 유적기구에서 일했는데, 그녀가 유적기구를 떠난 이유는 알고 있어?
...아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어.
그럼, 2051년 서광팀의 작전 목표인 "사형수"가 그녀인 건 알고 있었어?
...아니, 임무 목표의 배경 정보 모두 최고기밀이었어.
"발키리" 프로젝트라고 알아?
...어느 소규모 사이비 종교와 관계 있다는 것 정도만?
의도적으로 성녀의 이미지를 만들어 신도를 현혹해 수금했다던가?
어디 찌라시 잡지에서 본 거야?
대충...
Q가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을 본 아마리스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래서, 마사 마이트너 박사를 조사하는 게 내 임무야?
아마리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네게 간섭할 권한이 없어. 넌 자유의 몸이야.
그 말은 곧 네가 완전히 자율적으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야.
......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당신네들의 말수작은 여전하구나.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 임무는 다 자유행동이라는 거지? 수당은 제대로 쳐줄 거야?
어차피 다 나랏돈인데 뭘, 얼마든지 가져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자 아마리스도 태도가 진지해졌다.
그럼, 요구 사항을 말해봐.
사형수 체포 임무에는 관심 없어,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발키리" 프로젝트가 대체 뭐냐는 거야. 그게 오버슈타인 가문이나 패러데우스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말이야.
...그건 딱 봐도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지.
맞아, 그래서 네가 이 일을 맡을 최고의 인선인 거야.
...알겠어.
어쨌든 이제부터 모든 건 내 개인적인 행동이고, 슈타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동기라면... 엘리아나의 복수? 어이없네, 녀석이 들을 일 없어서 다행이야.
서광의 마지막 남은 아이로서의 지금 감상은?
...내가 MVP를 따도 박수 쳐주는 사람이 없는 기분이야.
……
Q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자, 거기에 슈타지 요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Q 요원님, 화이트존 테러 사건의 모든 감시 녹화 영상을 정리했고, 우리측 손실도 집계 완료했습니다.
Q는 서류를 받아 대충 훑어보았다.
J가 실종된 때의 녹화 영상은 다 살펴봤어? 발견한 건 있어?
J 요원은 혼자 감시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시간대의 영상이 해킹으로 지워져서 지금 복구를 시도하고 있지만, 기술팀에서 이건 기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감시 영상에서 사라진 건 S083 주택 건물의 마린 씨와 그리고 전 보건부 장관의 외손녀 코넬리아 슈펠 씨입니다.
연락은 됐어?
마린 씨와는 연락이 안 됩니다. 슈펠 씨는 무사히 귀가했다고 답변받았습니다.
이 코넬리아 슈펠에 대해서 조사해봐.
이미 베를린에서 프로파일링된 인물입니다, K 요원이 담당했습니다.
그래, 나머지는 내가 할게.
알겠습니다.
요원은 경례하고 사무실에서 나갔다.
Q는 소파에 앉아있는 호프만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태까지 방금 있던 요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국장님이 바라던 상황 그대로네요.
쥐고 흔들고 잘 이용해봐요.
제가 악역인 것처럼 말씀하지 말아주시겠습니까.
이 사태가 발생한 시기 자체가 엄청난 협상 카드잖아요.
승리에 가까워질수록 침착해야 하는 법입니다.
일은 제설 작전처럼 쌓인 걸 다 치우기도 전에 또 한가득 쌓이죠.
그러니,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그럼 지금 우리의 가장 급한 용무가 무엇이죠?
화이트존 테러 사건의 마무리 작업인데, 경비단 쪽에 좀 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장님께선 이 일을 전적으로 당신에게 맡기셨습니다.
...좋아요.
직장에서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가, 요구 사항은 없는데 전권을 맡기는 거죠.
더 끔찍한 일도 있습니다.
......
국장님은 지금 슈타지보다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당분간 당신이 슈타지의 업무 관리를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Q요원.
연봉 인상 없이 일만 늘어난 걸 뭘 축하해요.
국장님이 밀린 밥 다 사주고 나면 그때 와서 축하하세요.
Q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호프만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고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암호화 회의실.
암호화 통신을 연결하고 호프만은 느긋하게 커피를 한 잔 내렸다.
K 요원, 오랜만입니다만 잘 지내고 계십니까?
살아는 있습니다.
여전히 간단명료하시군요.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그냥 한번 안부 확인 차 연락했습니다, 울릭 주석과는 괜찮게 지내고 계십니까?
괜찮으면서 안 괜찮습니다.
무슨 언어유희가 아니길 바라죠.
주석은 자신의 입장이 확고합니다. 이건 흔들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업적을 이루길 바라는 뛰어난 여성으로서, 자신을 틀에 가두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아직 천칭 양쪽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군요.
예.
그럼 우리 뛰어난 슈타지 요원인 K께서는 건의사항이 있으십니까?
주석은 로미 국장을 매우 좋게 보고 있습니다.
오호?
국장님께서 직접 미인계에 나설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는군요.
...호프만 씨. 이 통화, 녹음되고 있습니다.
말씀 계속하시죠.
로미 국장이 당시 재정부와 협력하던 경력을 울릭 주석이 극찬했습니다.
그리고 드물게도 일부 사람의 배경을 언급하더군요. 당시 재정부에서 같이 일하던 이들 모두 확고한 지방 파벌이 아니었다고.
주석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당파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더 신경쓴다.
그 말의 진정한 뜻은 단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중도적인 태도를 보인 가장 큰 이유라면 로미 국장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일 겁니다.
만약 남성이었다면 기꺼이 따랐겠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성으로서 로미 여사는 타인의 의견을 담아듣는 것이 서툽니다.
울릭 주석은 확실히 동료로 두기에 저희 국장보다 좋겠죠.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그들은 울릭 주석에겐 거리낌이 없지만, 로미 국장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있다는 뜻이죠.
그야 로미 국장은 리펜슈탈 장군님의 따님이시니, 그녀를 군대 체계에서 배척하는 것이 모두의 상식이죠.
그러니, 이 사람들이 돌파구다?
주석의 뜻은 그렇습니다.
그럼 울릭 주석은 무엇을 바라죠?
울릭 주석은 지방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으로 진입하면서 실권을 잃는 것도 원치 않고 있습니다.
...그분이 원하는 것은 그로스 서기만이 약속해줄 수 있겠군요.
즉 주석 말의 속뜻은, 로미 국장의 배후가 장군인지 서기인지 묻는 것입니다.
장군이 배후라면 지금의 입장을 고수하겠지만, 서기라면 그 입장이 조금 느슨해질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관련 정보를 바로 보고하죠. 국장님께서 당부한 사항을 계속 주시바랍니다.
신경 쓰겠습니다.
호프만은 통신을 끊고 다시 바삐 걸음을 옮겼다.
...넬레의 렌탈 하우스.
넬레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콘스탄스는 배달 음식을 들고 뒤따라 들어왔다.
아무데나 앉아.
우와, 진짜 좋은 집 구했네. 꽤 넓어서 두세 명 살아도 되겠어.
응... 실험에 필요한 재료가 많을 것 같아서 여기에 잠시 둘 생각으로...
잘했네~
나 집 구경 좀 시켜주라~
그래. 여기가 거실이야, 아직 가구는 많이 들이지 않았어.
저기는 주방이고, 이사한 지 며칠 안 돼서 냉장고는 텅텅 빈 상태고...
다음에 올 때 신선한 과일 채소 사가지고 올게! 대학 근처 슈퍼마켓에서 할인 행사를 자주하거든.
고마워, 코니.
이쪽이 내 침실, 서재, 그리고... 창고.
창고는 잠궈놨어?
응... 물건을 지저분하게 쌓아둬서...
달그락... 콰당!
창고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넬레, 안에 생쥐 있나 봐!
생쥐...?
요즘 프랑크푸르트는 쥐 때문에 난리야! 넬레 너 생쥐 엄청 무서워했잖아, 저거 소리를 들으니까 엄청 큰 놈 같은데...
걱정 마, 내가 처리해줄 테니까!
소매를 걷어올리는 콘스탄스를 넬레가 덥석 붙잡았다.
그... 나 이제 생쥐 안 무서워해, 베를린에서도 자주 봐서 익숙해졌어.
정말로? 예전에 우리가 실험쥐 돌보고 나와서 기숙사로 가다가 길이가 12센치 되는 생쥐가 나타났잖아, 너 그때 얼굴 새파랗게 질린 거 기억 나?
나도 성장했으니까...
넬레는 콘스탄스를 끌고 거실로 돌아왔다.
너 저번에 실험실 등록에 내 증빙서류 필요하다고 했지?
내가 줄 테니까 시간 날 때 같이 등록해줘.
알았어. 맞다, 실험동 출입할 때 지문 인증이 필요하니까, 올 때 입력하는 거 잊지 마.
응, 기억할게.
난 이따 수업 있으니까, 이거 뜨거울 때 먹어. 그럼 난 간다~
이렇게 급하게? 너는 안 먹고 갈거야?
난 먹고 왔어, 네 집 구경하려고 따라왔지. 그러면서 마인츠 대학 근처에서 가장 맛있는 배달음식도 소개해 주려고!
콘스탄스는 넬레가 준 서류를 정리해서 챙겼다.
아 맞다, 넬레. 묻는 걸 깜빡했는데, 왜 갑자기 실험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 거야?
그리고 실험 주제를 바꿨다면서, 어떤건데?
그건... 나중에 실험실에서 자세히 얘기하자.
넬레가 약간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자, 콘스탄스는 뭔가 미심쩍게 느껴졌다.
...그것보다 수업 시간 괜찮아?
아 망했다, 강의 시작까지 15분밖에 안 남았잖아!
그럼 이만 갈게!
응, 조심해서 가...
콘스탄스는 문을 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넬레는 콘스탄스가 가져온 배달 음식을 탁상에 놓고 방금 이상한 소리가 난 창고로 향했다.
문을 열자, 방 안의 답답한 공기는 마치 누군가가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방 안은 아무 소리 없이 조용했다.
...J 씨?
원래 J가 있어야 할 의자 위에는 끊어진 밧줄만 남아있었다.
넬레는 속으로 아차 하고, 침착하게 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아, J 씨가 안 보여.
방금 창문 아래에서 붙잡았어.
5분 뒤에 데리고 돌아갈게.
5분 후, J 요원은 방 안에 돌아와 원래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번엔 밧줄이 쇠사슬로 대체되었다.
......
......
배달 음식 전자레인지에 돌릴 테니까, 둘이서 얘기해.
미아가 자리를 떠났다.
설마 전에 슈타지에서 겁준 것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보복하는 건 아니죠?
......
당신과 지휘관이 짜고 저를 납치한 겁니까?
......
그래서 당신이 저를 감시하는 거고요?
...저는 거짓말을 잘 못하니까 묻지 말아요, 아무 대답도 안 할 거니까.
지휘관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습니까? 미아를 인질로 협박했습니까? 아니면 약물? 세뇌 어플?
...좀 과학적인 얘기를 해보세요.
하지만 지금 상황이 비상식적 아닙니까? 분명 속으신 겁니다, 넬레 씨.
J는 가차없이 넬레의 해명을 끊었다.
전 속은 게 아니에요! 저는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속은 거 맞아요, 당신 같은 장래가 밝은 연구원이, 그것도 명문 가문 자녀가, 어떻게 오늘내일하는 PMC의 지휘관하고 어울리고 있습니까?
...저는 이유가 따로 있어요.
그 이유가 뭔데요?
...이둔.
이둔...? 그건 넬레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건 그레이의 잘못이고, 갈라테아의 잘못입니다! 남의 잘못을 자신에게 지우지 말아요!
...그레이 선생님께는 잘못 없어요!
...아직도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
...봐요, 당신이 지금 그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제가 옳다는 증거예요.
저는 그분이 죽어서 그런 오명을 쓰게 내버려둘 수 없어요!
그레이 선생님은 이용당한 거예요!
...지휘관이 어디까지 알려준 겁니까?
어떻게 일반인을 함부로 이런 위험한 일에 끌어들일 수 있어!?
이봐요, 지휘관은 미쳤어요, 거기에 당신까지 덩달아 미쳐서는 안 돼요!
겨우 그 화재에서 살아남았으면서...
왜 다시 들어가려고 합니까!
......
대답 좀 해봐요!
그레이 선생님의 몸을 봤어요...
그건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선생님은 언제부턴가 이미 인간이 아니었던 거겠죠...
눈물 한 방울이 톡 떨어졌다.
넬레의 눈물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J는 당황스러웠다.
...당신도 알고 있었죠?
그레이 선생님이 한참 전부터 인간이 아니었던 걸...
......
당신은 지금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요, 당신이 맞서려는 것이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요...
알게 되겠죠.
그러지 마요, 넬레 씨.
당신이 슬픈 건 알지만,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요...
당신이 뭔데 제게 이래라 저래라예요?
저도 친구를 잃은 고통을 압니다!
슈타지에도 그런 바보가 있었으니까!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이 아니었으면서도... 그런데도 그 녀석은 굳이 그딴...
그딴 어리석은 것들을 위해서... 스스로 그 괴물들에게 몸을 던졌다고요...
...슈타지는 특수요원 조직이 아닌가요?
...맞아요, 우리 모두 자신이 요원이라는 걸 알고 있죠. 원칙도 없고, 인정사정도 없는 요원이라는 걸요...
그런데 그 멍청이는... 명예 같은 걸 소중하게 생각해서...
슈타지의 책임... 그리고 사명 같은 거에 고집하고... 그 자식도 이상을 품고 있었는데...
웃기지 않아요? 2064년에 슈타지의 이상을 논하다니...
우리들 대다수는 이상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 바보 녀석은...
J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점점 울먹였다.
...정말로 그 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해요?
...이 시대에서 이상주의자는 다 단명하는 바보죠.
J의 눈물을 보자, 넬레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때 미아가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문 앞에 슥 하고 내려놓았다. 넬레는 허겁지겁 집어들었다.
...남의 수명은 아무래도 됐고요.
계속 그렇게 난리 부리다간 당신이 먼저 골로 갈 거에요.
괜한 힘 빼지 말아요, 여기서 빠져나가게 두지 않을 거니까.
그래서 밥이나 먹어라?
밥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죠.
넬레가 작은 테이블을 J 앞에 옮기고는 배달 포장을 뜯었다.
J는 포장 속의 흐물흐물한 음식을 보자 눈을 까뒤집었다.
...이래서 그리폰이랑 어울리면 미래가 어둡다는 겁니다, 배달 음식 꼬라지가 이게 뭡니까?
제가 맨날 슈타지 안 좋다고 투덜거리긴 해도, 적어도 배달 음식이랑 커피는 괜찮거든요!
...이건 제가 먹을 거거든요!
그렇게 반찬 투정하면 건빵만 먹일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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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지 본부.
"회의 중"이라 표시된 사무실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
철컥. 아마리스가 떡진 머리카락을 문지르면서 모자를 쓰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미안, 살짝 지각했어.
괜찮다, 회의도 시작 안 했으니.
스털링은 맞은편의 빈자리를 바라봤다, 원래 매주 정기 회의를 주도해야 할 인물이 자리에 없었다.
이거 어떡해? 회의할 거야, 말 거야?
J 요원이 아직 실종 상태인데...
그럼 우리는 어떡해? 다 내버려두는 거야?
......
잘됐네! 직속 상관이 없으니까 대놓고 땡땡이쳐도 되겠어.
아마리스는 좋다고 기지개를 폈다.
앞으로 Q가 우리의 지휘를 맡는다고 들었다.
......
누구? 그 야근광 말하는 거야?
잘됐네! J보다는 Q가 훨씬 믿음직하지!
망했네! 앞으론 24시간 대기 세우겠구나...
철컥. 문이 다시 열리고, Q가 회의실에 들어왔다.
Q는 장난스러운 시선으로 아마리스와 다른 인형들을 훑어봤다.
표정을 보니까, 이제 내가 지휘자란 걸 다들 알고 있나 보네.
그렇다, 내가 전달했다.
그럼 잔말은 생략할게. 다들 나랑 같이 일한 적 있으니까, 내 스타일은 알고 있겠지.
Q는 서류 한 더미를 탁상에 내려놓았다.
아가씨들, 바로 일을 나눠볼까.
다그마르, 이디스, 너희 둘은 엘모호를 계속 수색해서 꼭 쓸모 있는 걸 찾아내.
네!
다그마르와 이디스는 권한 허가 서류를 건네받곤 사무실을 나섰다.
브리짓, 화이트존에 J 대신 일할 요원을 보냈으니까, 가서 인수인계 해줘.
어느 정도 인수인계하면 됩니까? 모든 사항을 맡기면 됩니까?
다 인계할 필요는 없어, 잠깐 땜빵 칠 수 있을 정도면 돼.
알겠습니다.
브리짓도 화이트존 출입 허가 서류를 받아 나갔다.
스털링, 너는 인형 소대 지휘 권한 이양 서류를 가서 제출해 줘, 내용은 다 채워놨으니까, 가면서 검사 좀 해주고.
알겠다.
잠깐 사이에 회의실에는 Q와 아마리스, 단 둘만 남았다
아마리스는 눈을 껌뻑이며, 텅 비어버린 탁상과 맞은편의 Q를 번갈아 봤다.
...나는 뭐해? 비번이야?
꿈 깨셔.
Q는 가져온 종이봉투를 뜯어 커피 두 잔을 꺼내, 그중 한 잔을 아마리스에게 건넸다.
아마리스,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Q가 커피 한 잔을 사줄 정도로 질문이라는 걸 깨달은 아마리스는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았다.
"서광"에 관해서야?
그래, 물론 궁금한 건 "서광"의 설계자인 마사 마이트너에 관해서지만.
...그 질문은 나한테 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나는 그 사람과 접촉이 거의 없었거든.
내가 그 사람에게서 받은 건 아마 내 이름뿐일 거야.
그녀와 직접 접촉한 적이 없다고?
없어, 그 사람을 본 적도 없어.
나뿐만 아니라, 서광의 다른 대원들도 마인드맵 기동 테스트 중에 그 사람과 접촉한 적 없어, 엘리아나만 빼고...
엘리아나가 마사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있어?
...있어, 엘리아나가 그 사람과 가장 많이 접촉했었으니까.
녀석은, 마사 박사가 자기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침착하고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평가했어.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려는 일을 확실하게 알고 있고, 방해되는 것은 미련 없이 다 치워버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과연 인류에게 있어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는 모르겠다고 했어.
엘리아나는 그녀를 제법 후하게 평가했나 보네.
마사 박사는 과거에 미국 유적기구에서 일했는데, 그녀가 유적기구를 떠난 이유는 알고 있어?
...아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어.
그럼, 2051년 서광팀의 작전 목표인 "사형수"가 그녀인 건 알고 있었어?
...아니, 임무 목표의 배경 정보 모두 최고기밀이었어.
"발키리" 프로젝트라고 알아?
...어느 소규모 사이비 종교와 관계 있다는 것 정도만?
의도적으로 성녀의 이미지를 만들어 신도를 현혹해 수금했다던가?
어디 찌라시 잡지에서 본 거야?
대충...
Q가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을 본 아마리스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래서, 마사 마이트너 박사를 조사하는 게 내 임무야?
아마리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네게 간섭할 권한이 없어. 넌 자유의 몸이야.
그 말은 곧 네가 완전히 자율적으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야.
......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당신네들의 말수작은 여전하구나.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 임무는 다 자유행동이라는 거지? 수당은 제대로 쳐줄 거야?
어차피 다 나랏돈인데 뭘, 얼마든지 가져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자 아마리스도 태도가 진지해졌다.
그럼, 요구 사항을 말해봐.
사형수 체포 임무에는 관심 없어,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발키리" 프로젝트가 대체 뭐냐는 거야. 그게 오버슈타인 가문이나 패러데우스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말이야.
...그건 딱 봐도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지.
맞아, 그래서 네가 이 일을 맡을 최고의 인선인 거야.
...알겠어.
어쨌든 이제부터 모든 건 내 개인적인 행동이고, 슈타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동기라면... 엘리아나의 복수? 어이없네, 녀석이 들을 일 없어서 다행이야.
서광의 마지막 남은 아이로서의 지금 감상은?
...내가 MVP를 따도 박수 쳐주는 사람이 없는 기분이야.
……
Q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자, 거기에 슈타지 요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Q 요원님, 화이트존 테러 사건의 모든 감시 녹화 영상을 정리했고, 우리측 손실도 집계 완료했습니다.
Q는 서류를 받아 대충 훑어보았다.
J가 실종된 때의 녹화 영상은 다 살펴봤어? 발견한 건 있어?
J 요원은 혼자 감시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시간대의 영상이 해킹으로 지워져서 지금 복구를 시도하고 있지만, 기술팀에서 이건 기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감시 영상에서 사라진 건 S083 주택 건물의 마린 씨와 그리고 전 보건부 장관의 외손녀 코넬리아 슈펠 씨입니다.
연락은 됐어?
마린 씨와는 연락이 안 됩니다. 슈펠 씨는 무사히 귀가했다고 답변받았습니다.
이 코넬리아 슈펠에 대해서 조사해봐.
이미 베를린에서 프로파일링된 인물입니다, K 요원이 담당했습니다.
그래, 나머지는 내가 할게.
알겠습니다.
요원은 경례하고 사무실에서 나갔다.
Q는 소파에 앉아있는 호프만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태까지 방금 있던 요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국장님이 바라던 상황 그대로네요.
쥐고 흔들고 잘 이용해봐요.
제가 악역인 것처럼 말씀하지 말아주시겠습니까.
이 사태가 발생한 시기 자체가 엄청난 협상 카드잖아요.
승리에 가까워질수록 침착해야 하는 법입니다.
일은 제설 작전처럼 쌓인 걸 다 치우기도 전에 또 한가득 쌓이죠.
그러니,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그럼 지금 우리의 가장 급한 용무가 무엇이죠?
화이트존 테러 사건의 마무리 작업인데, 경비단 쪽에 좀 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장님께선 이 일을 전적으로 당신에게 맡기셨습니다.
...좋아요.
직장에서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가, 요구 사항은 없는데 전권을 맡기는 거죠.
더 끔찍한 일도 있습니다.
......
국장님은 지금 슈타지보다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당분간 당신이 슈타지의 업무 관리를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Q요원.
연봉 인상 없이 일만 늘어난 걸 뭘 축하해요.
국장님이 밀린 밥 다 사주고 나면 그때 와서 축하하세요.
Q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호프만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고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암호화 회의실.
암호화 통신을 연결하고 호프만은 느긋하게 커피를 한 잔 내렸다.
K 요원, 오랜만입니다만 잘 지내고 계십니까?
<color=#00CCFF>살아는 있습니다.</color>
여전히 간단명료하시군요.
<color=#00CCFF>...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color>
그냥 한번 안부 확인 차 연락했습니다, 울릭 주석과는 괜찮게 지내고 계십니까?
<color=#00CCFF>괜찮으면서 안 괜찮습니다.</color>
무슨 언어유희가 아니길 바라죠.
<color=#00CCFF>주석은 자신의 입장이 확고합니다. 이건 흔들 수 없을 겁니다.</color>
<color=#00CCFF>하지만 업적을 이루길 바라는 뛰어난 여성으로서, 자신을 틀에 가두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color>
아직 천칭 양쪽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군요.
<color=#00CCFF>예.</color>
그럼 우리 뛰어난 슈타지 요원인 K께서는 건의사항이 있으십니까?
<color=#00CCFF>주석은 로미 국장을 매우 좋게 보고 있습니다.</color>
오호?
국장님께서 직접 미인계에 나설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는군요.
<color=#00CCFF>...호프만 씨. 이 통화, 녹음되고 있습니다.</color>
말씀 계속하시죠.
<color=#00CCFF>로미 국장이 당시 재정부와 협력하던 경력을 울릭 주석이 극찬했습니다.</color>
<color=#00CCFF>그리고 드물게도 일부 사람의 배경을 언급하더군요. 당시 재정부에서 같이 일하던 이들 모두 확고한 지방 파벌이 아니었다고.</color>
<color=#00CCFF>주석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당파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더 신경쓴다.</color>
그 말의 진정한 뜻은 단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말입니다.
<color=#00CCFF>그들이 그렇게 중도적인 태도를 보인 가장 큰 이유라면 로미 국장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일 겁니다.</color>
<color=#00CCFF>만약 남성이었다면 기꺼이 따랐겠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성으로서 로미 여사는 타인의 의견을 담아듣는 것이 서툽니다.</color>
울릭 주석은 확실히 동료로 두기에 저희 국장보다 좋겠죠.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그들은 울릭 주석에겐 거리낌이 없지만, 로미 국장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있다는 뜻이죠.
<color=#00CCFF>그야 로미 국장은 리펜슈탈 장군님의 따님이시니, 그녀를 군대 체계에서 배척하는 것이 모두의 상식이죠.</color>
그러니, 이 사람들이 돌파구다?
<color=#00CCFF>주석의 뜻은 그렇습니다.</color>
그럼 울릭 주석은 무엇을 바라죠?
<color=#00CCFF>울릭 주석은 지방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으로 진입하면서 실권을 잃는 것도 원치 않고 있습니다.</color>
...그분이 원하는 것은 그로스 서기만이 약속해줄 수 있겠군요.
<color=#00CCFF>즉 주석 말의 속뜻은, 로미 국장의 배후가 장군인지 서기인지 묻는 것입니다.</color>
<color=#00CCFF>장군이 배후라면 지금의 입장을 고수하겠지만, 서기라면 그 입장이 조금 느슨해질 수 있습니다.</color>
알겠습니다.
관련 정보를 바로 보고하죠. 국장님께서 당부한 사항을 계속 주시바랍니다.
<color=#00CCFF>신경 쓰겠습니다.</color>
호프만은 통신을 끊고 다시 바삐 걸음을 옮겼다.
...넬레의 렌탈 하우스.
넬레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콘스탄스는 배달 음식을 들고 뒤따라 들어왔다.
아무데나 앉아.
우와, 진짜 좋은 집 구했네. 꽤 넓어서 두세 명 살아도 되겠어.
응... 실험에 필요한 재료가 많을 것 같아서 여기에 잠시 둘 생각으로...
잘했네~
나 집 구경 좀 시켜주라~
그래. 여기가 거실이야, 아직 가구는 많이 들이지 않았어.
저기는 주방이고, 이사한 지 며칠 안 돼서 냉장고는 텅텅 빈 상태고...
다음에 올 때 신선한 과일 채소 사가지고 올게! 대학 근처 슈퍼마켓에서 할인 행사를 자주하거든.
고마워, 코니.
이쪽이 내 침실, 서재, 그리고... 창고.
창고는 잠궈놨어?
응... 물건을 지저분하게 쌓아둬서...
달그락... 콰당!
창고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넬레, 안에 생쥐 있나 봐!
생쥐...?
요즘 프랑크푸르트는 쥐 때문에 난리야! 넬레 너 생쥐 엄청 무서워했잖아, 저거 소리를 들으니까 엄청 큰 놈 같은데...
걱정 마, 내가 처리해줄 테니까!
소매를 걷어올리는 콘스탄스를 넬레가 덥석 붙잡았다.
그... 나 이제 생쥐 안 무서워해, 베를린에서도 자주 봐서 익숙해졌어.
정말로? 예전에 우리가 실험쥐 돌보고 나와서 기숙사로 가다가 길이가 12센치 되는 생쥐가 나타났잖아, 너 그때 얼굴 새파랗게 질린 거 기억 나?
나도 성장했으니까...
넬레는 콘스탄스를 끌고 거실로 돌아왔다.
너 저번에 실험실 등록에 내 증빙서류 필요하다고 했지?
내가 줄 테니까 시간 날 때 같이 등록해줘.
알았어. 맞다, 실험동 출입할 때 지문 인증이 필요하니까, 올 때 입력하는 거 잊지 마.
응, 기억할게.
난 이따 수업 있으니까, 이거 뜨거울 때 먹어. 그럼 난 간다~
이렇게 급하게? 너는 안 먹고 갈거야?
난 먹고 왔어, 네 집 구경하려고 따라왔지. 그러면서 마인츠 대학 근처에서 가장 맛있는 배달음식도 소개해 주려고!
콘스탄스는 넬레가 준 서류를 정리해서 챙겼다.
아 맞다, 넬레. 묻는 걸 깜빡했는데, 왜 갑자기 실험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 거야?
그리고 실험 주제를 바꿨다면서, 어떤건데?
그건... 나중에 실험실에서 자세히 얘기하자.
넬레가 약간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자, 콘스탄스는 뭔가 미심쩍게 느껴졌다.
...그것보다 수업 시간 괜찮아?
아 망했다, 강의 시작까지 15분밖에 안 남았잖아!
그럼 이만 갈게!
응, 조심해서 가...
콘스탄스는 문을 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넬레는 콘스탄스가 가져온 배달 음식을 탁상에 놓고 방금 이상한 소리가 난 창고로 향했다.
문을 열자, 방 안의 답답한 공기는 마치 누군가가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방 안은 아무 소리 없이 조용했다.
...J 씨?
원래 J가 있어야 할 의자 위에는 끊어진 밧줄만 남아있었다.
넬레는 속으로 아차 하고, 침착하게 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아, J 씨가 안 보여.
<color=#00CCFF>방금 창문 아래에서 붙잡았어.</color>
<color=#00CCFF>5분 뒤에 데리고 돌아갈게.</color>
5분 후, J 요원은 방 안에 돌아와 원래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번엔 밧줄이 쇠사슬로 대체되었다.
......
......
배달 음식 전자레인지에 돌릴 테니까, 둘이서 얘기해.
미아가 자리를 떠났다.
설마 전에 슈타지에서 겁준 것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보복하는 건 아니죠?
......
당신과 지휘관이 짜고 저를 납치한 겁니까?
......
그래서 당신이 저를 감시하는 거고요?
...저는 거짓말을 잘 못하니까 묻지 말아요, 아무 대답도 안 할 거니까.
지휘관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습니까? 미아를 인질로 협박했습니까? 아니면 약물? 세뇌 어플?
...좀 과학적인 얘기를 해보세요.
하지만 지금 상황이 비상식적 아닙니까? 분명 속으신 겁니다, 넬레 씨.
J는 가차없이 넬레의 해명을 끊었다.
전 속은 게 아니에요! 저는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속은 거 맞아요, 당신 같은 장래가 밝은 연구원이, 그것도 명문 가문 자녀가, 어떻게 오늘내일하는 PMC의 지휘관하고 어울리고 있습니까?
...저는 이유가 따로 있어요.
그 이유가 뭔데요?
...이둔.
이둔...? 그건 넬레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건 그레이의 잘못이고, 갈라테아의 잘못입니다! 남의 잘못을 자신에게 지우지 말아요!
...그레이 선생님께는 잘못 없어요!
...아직도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
...봐요, 당신이 지금 그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제가 옳다는 증거예요.
저는 그분이 죽어서 그런 오명을 쓰게 내버려둘 수 없어요!
그레이 선생님은 이용당한 거예요!
...지휘관이 어디까지 알려준 겁니까?
어떻게 일반인을 함부로 이런 위험한 일에 끌어들일 수 있어!?
이봐요, 지휘관은 미쳤어요, 거기에 당신까지 덩달아 미쳐서는 안 돼요!
겨우 그 화재에서 살아남았으면서...
왜 다시 들어가려고 합니까!
......
<size=50>대답 좀 해봐요!</size>
그레이 선생님의 몸을 봤어요...
그건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선생님은 언제부턴가 이미 인간이 아니었던 거겠죠...
눈물 한 방울이 톡 떨어졌다.
넬레의 눈물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J는 당황스러웠다.
...당신도 알고 있었죠?
그레이 선생님이 한참 전부터 인간이 아니었던 걸...
......
당신은 지금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요, 당신이 맞서려는 것이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요...
알게 되겠죠.
그러지 마요, 넬레 씨.
당신이 슬픈 건 알지만,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요...
당신이 뭔데 제게 이래라 저래라예요?
저도 친구를 잃은 고통을 압니다!
슈타지에도 그런 바보가 있었으니까!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이 아니었으면서도... 그런데도 그 녀석은 굳이 그딴...
그딴 어리석은 것들을 위해서... 스스로 그 괴물들에게 몸을 던졌다고요...
...슈타지는 특수요원 조직이 아닌가요?
...맞아요, 우리 모두 자신이 요원이라는 걸 알고 있죠. 원칙도 없고, 인정사정도 없는 요원이라는 걸요...
그런데 그 멍청이는... 명예 같은 걸 소중하게 생각해서...
슈타지의 책임... 그리고 사명 같은 거에 고집하고... 그 자식도 이상을 품고 있었는데...
웃기지 않아요? 2064년에 슈타지의 이상을 논하다니...
우리들 대다수는 이상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 바보 녀석은...
J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점점 울먹였다.
...정말로 그 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해요?
...이 시대에서 이상주의자는 다 단명하는 바보죠.
J의 눈물을 보자, 넬레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때 미아가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문 앞에 슥 하고 내려놓았다. 넬레는 허겁지겁 집어들었다.
...남의 수명은 아무래도 됐고요.
계속 그렇게 난리 부리다간 당신이 먼저 골로 갈 거에요.
괜한 힘 빼지 말아요, 여기서 빠져나가게 두지 않을 거니까.
그래서 밥이나 먹어라?
밥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죠.
넬레가 작은 테이블을 J 앞에 옮기고는 배달 포장을 뜯었다.
J는 포장 속의 흐물흐물한 음식을 보자 눈을 까뒤집었다.
...이래서 그리폰이랑 어울리면 미래가 어둡다는 겁니다, 배달 음식 꼬라지가 이게 뭡니까?
제가 맨날 슈타지 안 좋다고 투덜거리긴 해도, 적어도 배달 음식이랑 커피는 괜찮거든요!
...이건 제가 먹을 거거든요!
<size=50>그렇게 반찬 투정하면 건빵만 먹일 거예요!</siz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