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나라의 불
루니샤는 과거의 기억을 일부 되찾았다. 동시에 어둠 속에 감춰둔 잔혹한 과거도 깨어났다.
...심야, 임시 세이프하우스.
루니샤는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악몽에서 깨어났다. 고요한 밤, 그녀의 가쁜 숨소리만 울려 퍼졌다.
......
시계를 보면서 루니샤는 중얼거렸다.
또 연락할 시간이네...
루니샤는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그녀의 의식은 현실에서 떠나갔다.
...뒤엉킨 무수한 통로를 따라, 루니샤는 적당한 출구를 찾았다.
아버님, 부탁하신——
루니샤의 의식에 붙잡히자 하얀 니토의 눈동자가 빠르게 팽창했고, 하얀 니토의 손에 있던 쟁반이 바닥에 떨어졌다.
......
...빌.
...드디어 왔냐, 마음 정했어?
......
나 또 악몽을 꿨어, 요즘 계속 악몽을 꿔.
그딴 얘기하러 온 거면 그냥 나가.
아직 악몽의 여운에 잠긴 루니샤에게 지배당한 니토는 엉거주춤 쪼그려 앉아 바닥의 깨진 조각을 주웠다.
꿈속에서 다들 나를 "성녀"라고 부르면서 정신 나간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어머니는 항상 그들 편에 서 있었어...
......
빌이라 불린 남자는 전혀 대답할 기분이 아닌 듯 뒤돌아 일에 몰두했다.
빌, 왜 어머니를 니토로 만든 거야?
...루시, 그건 네가 요구한 일이야.
...내가?
기억이 안 나면 알아서 떠올려 봐, 그런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말고.
바닥의 조각을 전부 쟁반에 주워 담고, 하얀 니토가 빌의 등 뒤에 섰다.
...어머니의 기억을 잃어버려서 애매모호한 느낌만 남아있어.
하지만 네메아란에게선 어머니가 남긴 기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지금의 그 모습이 아이들이 원하는 어머니지.
그렇게 성실하게 그놈의 "아버지" 곁을 지키게 놔둬, 죽을 때까지 말이야.
예전의 난... 어머니를 미워했어?
......
눈앞의 남자는 무척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루니샤를 바라봤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항상 그 광신도들 사이에 서 있고 로브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안 보였어.
그리고 나는 항상 멀리 의자에 앉아서 꼼짝도 못 하고, 그들이 새하얀 옷소매에서 비수를 꺼내는 걸 지켜보기만 하고...
그리고 피가... 홍수처럼 나한테 몰려들어서...
하얀 니토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지금도 그 악몽에 빠져 있는 것처럼.
난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증오를 느끼진 않았어...
그저 두려웠어...
남자의 짜증이 한계에 달했다.
다른 일 없으면 그만 입 다물어, 난 지금 해야 할 일이 잔뜩이니까.
...빌, 내 머릿속에는 잡념이 엄청 많아, 내 것이 아닌 감정과 생각들이 너무 많아...
대체 언제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마지막 수술이 끝나면 해결돼.
...그게 언젠데?
조금만 더 기다려...
너를 위해서 그 수술은 내가 직접 집도할 테니까.
그것도 예전의 내가 요구한 거야?
맞아.
...루시, 난 예전에 너에게 약속했어.
네가 죽이고 싶은 사람, 네가 이루고 싶은 소원, 내가 전부 이루어 주겠다고.
지금 너한테 아무런 기억이 없어도, 이미 그때 나와 약속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를 의심하지 마, 나를 떠보지도 마.
안 그러면... 그릇을 새로 바꿀 거니까.
...빌, 넌 예전엔 그러지 않았어...
지금 너는 나를... 많이 귀찮아하는 것 같아...
나는 네가 그러는 게 어색해...
...나도 지금의 루시가 어색해.
남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루니샤는 대화가 끝났음을 알았다.
자신이 지금의 그가 어색하다고 말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쌀쌀해졌다.
마치 지금의 자신은 평범한 실험 도구에 불과한 것처럼, 실험 캡슐에서 아무거나 고른 니토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빌이... 마치 그 여자처럼 변했다...
비록 그 여자는 저렇게 냉혹한 표정을 짓지 않았지만, 몹시 냉혹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
라플라스가 눈을 번쩍 떴다, 눈부신 빛에 그녀는 눈을 비볐다.
그리고 일어나 한쪽 서랍을 열어 오늘 날짜가 적힌 약통을 꺼냈다.
옆의 하얀 니토가 온수 한 잔을 따라 왔고, 라플라스는 컵을 받아 온수로 약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라플라스 님, 지금까지 총 25분간 휴식하셨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배양 캡슐 상태를 보러가자, 상태가 괜찮다면 이틀 지나면 꺼낼 수 있을 거야.
네.
...실험실.
하얀 니토의 보조를 밭아 배양 캡슐의 상태를 빠르게 점검하고, 손에 쥐고 있던 일들을 전부 정리했다.
갑자기 숨을 돌릴 시간이 생겼다... 이게 얼마만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험실에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으니까.
그림자 없이 비추는 조명 아레에서 너무나도 오래 생활했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매우 긴 시간이지만, 해야 할 일에 비하면 너무나도 짦은 시간이었다.
......
라플라스 님, 이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일이 없으니, 물러가거라.
예.
하얀 니토가 물러간 뒤, 라플라스는 배양 캡슐에 다가갔다.
제어 패널을 열어, 캡슐 안의 아직 미완성인 실험체를 강제로 깨웠다.
캡슐 안의 소녀가 잠깐 움찔하더니 눈을 떴다.
...왜 또 여기로 돌아온 거지...
긴장 말아라, 지금 상황을 기록할 뿐이니까.
지금 너는 이 실험체의 눈을 공유했을 뿐이야...
라플라스는 각종 수치를 조정하며 정기 기록을 진행했다.
루니샤는 협조하지 않고 캡슐에 마구 부딪혔다.
하지만 이에 익숙해진 라플라스는 루니샤를 말리지 않았다.
돌려보내줘요! 전 여기에 있기 싫어요!
지금 기분이 어떻지?
인간의 자유와 고등생물의 전지전능함을 가진 느낌은.
......
이건 저주예요.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서, 인간에겐 없을 사고와 수명을 가진 건...
평범한 인간과 똑같아서는 성녀가 될 수 없어, 제물을 받을 자격이 없지.
...복음의 문에서의 그 번제는 당신이 한 거였군요...
이 마귀 할멈...
성녀든 기적이든, 루니샤, 전부 다 네가 선택한 것이야.
제 선택이라고요? 제가 저를 위해 선택한 적이 있었나요?
배양 캡슐 안의 용액에서 하얀 거품이 일었다. 루니샤의 몸부림은 점점 더 격해졌지만, 라플라스는 여전히 무덤덤하게 지켜봤다.
조용히.
네가 협조 안 하면 데이터를 제대로 채취할 수가 없어.
일부 데이터는 각성 상태에서만 얻을 수 있으니까.
그게 왜 하필 저인 건데요!?
네 존재의 의미를 기억해라.
이건 너, 과거의 너, 최초의 네가 직접 선택한 일이니까, 네가 직접 나와 약속한 일이니까.
......
이제 아주 조금만 남았어.
내가 직접 마지막 수술을 마치면 너는 완성될 거야.
......
조금은 기뻐하렴, 애야.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얻었고,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어.
파일럿고래에서 헬라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심혈을 쏟은 일이... 이제 곧 현실이 되는 것이야.
라플라스의 노쇠한 얼굴이 유리에 비쳐, 루니샤의 젊음 넘치는 얼굴과 대비를 이뤘다.
라플라스는 무신경하게 웃었다.
왜 웃는거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너는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나는 늙어버렸구나.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아,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늦지 않았어.
처음 만났을 때... 그때의 당신은...
......
일부러 몇 분 동안 먼 길을 돌아서, 안내인이 마침내 어느 방에 그녀를 어떤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가 안대를 벗겼다.
방 안에는 풋풋한 얼굴의 소녀가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각이야, 마사 박사.
...너는 참으로 재밌는 아이구나.
나는 이번 번제의 신이고, 당신은 나의 종복이야.
당신이 날 기다리게 할 자격은 없어.
네 결정에 성모께선 동의하셨니?
...귀 기울이고 잘 들어, 마사 박사.
당신은 내 허락만 받으면 평생토록 바라던 것을 얻을 수 있어.
이번 번제에 포함한 모든 목숨 중, 내 어머니가 첫번째여야 해.
오호? 다른 요구 사항은 있나?
...없어. 당신은 원하는 물건을 받고 떠나면 돼.
나머지는 빌이 처리할 테니까.
절차를 확인할 필요는 있을까?
필요 없어... 나는 세상에서 가장 굳센 사람이니까.
여자애는 꼭 그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당신은 내가 겪은 일을 경험해본 적 없잖아, 마사 박사.
나는 이 세상을 증오해, 모든 인간을 증오해.
그러니까, 인류의 자아 파멸을 이루기 위해 나는 내 몸을 바치겠어.
일이 꼭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분명 내 뜻대로 될 거야.
내기할까?
...내가 이겨.
내가 이 내기의 결말을 볼 수 있길 바라지.
지각이야, 마사 박사.
...너는 참으로 재밌는 아이구나.
나는 이번 번제의 신이고, 당신은 나의 종복이야.
당신이 날 기다리게 할 자격은 없어.
네 결정에 성모께선 동의하셨니?
...귀 기울이고 잘 들어, 마사 박사.
당신은 내 허락만 받으면 평생토록 바라던 것을 얻을 수 있어.
이번 번제에 포함한 모든 목숨 중, 내 어머니가 첫번째여야 해.
일이 꼭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분명 내 뜻대로 될 거야.
내기할까?
...내가 이겨.
내가 이 내기의 결말을 볼 수 있길 바라지.
이제, 너는 이 결과를 보게 될 것이야, 루니샤.
전 인류의 결말을 보게 될 거야.
......
이제 좀 떠올랐니?
성녀님...
욕조 속에 붉고 걸쭉한 액체가 가득 담겨 있고, 그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깡마른 소녀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루니샤를 바라봤다.
우리는 정말로... 고통 없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루니샤는 자신의 목소리가 상냥하면서도 잔혹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두 손이 소녀의 창백한 얼굴을 받쳐 들었다..
잘 자요.
꼬르륵. 그 창백한 얼굴은 진홍빛에 집어삼켜져 거품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성녀님, 이제 제 차례인가요...
고개를 들자, 붉은 액체가 가득 담긴 용기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네, 다음은 당신 차례예요.
발이 저절로 앞으로 나아갔고, 루니샤의 마음은 괴로움에 찢겨졌다.
멈춰... 멈춰...
꼬르륵.
꼬르륵.
덧없는 거품이 자신의 두 손 사이에서 터져갔다.
루니샤는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고, 몸의 통제를 잃기 직전이었다...
루니샤가 깨어났다. 자신은 세이프하우스 바닥에 누워 있었고, 손 옆에는 깨진 물컵이 놓여있었다.
......
세이프하우스, 지휘관, 자신을 돌보라며 붙여준 인형...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쓴웃음만 지었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진작에 구분할 수가 없었다.
천장의 형광등이 불안하게 깜빡였고, 인형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루니샤 씨, 무슨 일 있어?
...아니요.
또 악몽을 꾼 거야?
XM556는 깨진 컵을 치우고, 다시 온수를 떠왔다.
벌꿀 탄 물이야, 마셔.
......
다른 일 없으면, 쉬는 거 방해 안 할게.
지휘관님은 언제 오나요?
지휘관은 지금 엘모호 일을 처리하고 있어, 일이 다 끝나면 데리러 올 거야.
......
싫어요...
지금 당장 지휘관을 볼 거예요.
방금 지휘관한테 연락해 봤어, 지휘관은——
당장 보겠다고요!
펑! 형광등이 터져서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
지금 당장! 지휘관을 볼 거예요!!!
콰직. 온수를 가득 담은 컵이 그녀의 손에 깨져서 날카로운 조각이 되었다.
루니샤는 그 조각을 자신 목에 댔다.
루니샤 씨, 진정해.
요구 사항 이해했어, 바로 지휘관한테 보고할게.
그 전에 유리 조각 내려놓고...
......
당장 연락해요.
떨리는 손이 유리조각을 살 속으로 밀어 넣자,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천천히 그녀의 하얀 목을 타고 내려와 쇄골에 고였다...
피를 흘리는 이 기분... 고통 속에 쾌감이 섞여 있었다.
꿈속의 그 여자처럼...
루니샤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할게 할게, 당장 지휘관한테 연락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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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임시 세이프하우스.
루니샤는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악몽에서 깨어났다. 고요한 밤, 그녀의 가쁜 숨소리만 울려 퍼졌다.
......
시계를 보면서 루니샤는 중얼거렸다.
또 연락할 시간이네...
루니샤는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그녀의 의식은 현실에서 떠나갔다.
...뒤엉킨 무수한 통로를 따라, 루니샤는 적당한 출구를 찾았다.
<color=#00CCFF>아버님, 부탁하신——</color>
루니샤의 의식에 붙잡히자 하얀 니토의 눈동자가 빠르게 팽창했고, 하얀 니토의 손에 있던 쟁반이 바닥에 떨어졌다.
......
...빌.
...드디어 왔냐, 마음 정했어?
......
나 또 악몽을 꿨어, 요즘 계속 악몽을 꿔.
그딴 얘기하러 온 거면 그냥 나가.
아직 악몽의 여운에 잠긴 루니샤에게 지배당한 니토는 엉거주춤 쪼그려 앉아 바닥의 깨진 조각을 주웠다.
꿈속에서 다들 나를 "성녀"라고 부르면서 정신 나간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어머니는 항상 그들 편에 서 있었어...
......
빌이라 불린 남자는 전혀 대답할 기분이 아닌 듯 뒤돌아 일에 몰두했다.
빌, 왜 어머니를 니토로 만든 거야?
...루시, 그건 네가 요구한 일이야.
...내가?
기억이 안 나면 알아서 떠올려 봐, 그런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말고.
바닥의 조각을 전부 쟁반에 주워 담고, 하얀 니토가 빌의 등 뒤에 섰다.
...어머니의 기억을 잃어버려서 애매모호한 느낌만 남아있어.
하지만 네메아란에게선 어머니가 남긴 기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지금의 그 모습이 아이들이 원하는 어머니지.
그렇게 성실하게 그놈의 "아버지" 곁을 지키게 놔둬, 죽을 때까지 말이야.
예전의 난... 어머니를 미워했어?
......
눈앞의 남자는 무척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루니샤를 바라봤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항상 그 광신도들 사이에 서 있고 로브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안 보였어.
그리고 나는 항상 멀리 의자에 앉아서 꼼짝도 못 하고, 그들이 새하얀 옷소매에서 비수를 꺼내는 걸 지켜보기만 하고...
그리고 피가... 홍수처럼 나한테 몰려들어서...
하얀 니토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지금도 그 악몽에 빠져 있는 것처럼.
난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증오를 느끼진 않았어...
그저 두려웠어...
남자의 짜증이 한계에 달했다.
다른 일 없으면 그만 입 다물어, 난 지금 해야 할 일이 잔뜩이니까.
...빌, 내 머릿속에는 잡념이 엄청 많아, 내 것이 아닌 감정과 생각들이 너무 많아...
대체 언제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마지막 수술이 끝나면 해결돼.
...그게 언젠데?
조금만 더 기다려...
너를 위해서 그 수술은 내가 직접 집도할 테니까.
그것도 예전의 내가 요구한 거야?
맞아.
...루시, 난 예전에 너에게 약속했어.
네가 죽이고 싶은 사람, 네가 이루고 싶은 소원, 내가 전부 이루어 주겠다고.
지금 너한테 아무런 기억이 없어도, 이미 그때 나와 약속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를 의심하지 마, 나를 떠보지도 마.
안 그러면... 그릇을 새로 바꿀 거니까.
...빌, 넌 예전엔 그러지 않았어...
지금 너는 나를... 많이 귀찮아하는 것 같아...
나는 네가 그러는 게 어색해...
...나도 지금의 루시가 어색해.
남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루니샤는 대화가 끝났음을 알았다.
자신이 지금의 그가 어색하다고 말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쌀쌀해졌다.
마치 지금의 자신은 평범한 실험 도구에 불과한 것처럼, 실험 캡슐에서 아무거나 고른 니토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빌이... 마치 그 여자처럼 변했다...
비록 그 여자는 저렇게 냉혹한 표정을 짓지 않았지만, 몹시 냉혹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
라플라스가 눈을 번쩍 떴다, 눈부신 빛에 그녀는 눈을 비볐다.
그리고 일어나 한쪽 서랍을 열어 오늘 날짜가 적힌 약통을 꺼냈다.
옆의 하얀 니토가 온수 한 잔을 따라 왔고, 라플라스는 컵을 받아 온수로 약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라플라스 님, 지금까지 총 25분간 휴식하셨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배양 캡슐 상태를 보러가자, 상태가 괜찮다면 이틀 지나면 꺼낼 수 있을 거야.
네.
...실험실.
하얀 니토의 보조를 밭아 배양 캡슐의 상태를 빠르게 점검하고, 손에 쥐고 있던 일들을 전부 정리했다.
갑자기 숨을 돌릴 시간이 생겼다... 이게 얼마만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험실에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으니까.
그림자 없이 비추는 조명 아레에서 너무나도 오래 생활했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매우 긴 시간이지만, 해야 할 일에 비하면 너무나도 짦은 시간이었다.
......
라플라스 님, 이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일이 없으니, 물러가거라.
예.
하얀 니토가 물러간 뒤, 라플라스는 배양 캡슐에 다가갔다.
제어 패널을 열어, 캡슐 안의 아직 미완성인 실험체를 강제로 깨웠다.
캡슐 안의 소녀가 잠깐 움찔하더니 눈을 떴다.
...왜 또 여기로 돌아온 거지...
긴장 말아라, 지금 상황을 기록할 뿐이니까.
지금 너는 이 실험체의 눈을 공유했을 뿐이야...
라플라스는 각종 수치를 조정하며 정기 기록을 진행했다.
루니샤는 협조하지 않고 캡슐에 마구 부딪혔다.
하지만 이에 익숙해진 라플라스는 루니샤를 말리지 않았다.
돌려보내줘요! 전 여기에 있기 싫어요!
지금 기분이 어떻지?
인간의 자유와 고등생물의 전지전능함을 가진 느낌은.
......
이건 저주예요.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서, 인간에겐 없을 사고와 수명을 가진 건...
평범한 인간과 똑같아서는 성녀가 될 수 없어, 제물을 받을 자격이 없지.
...복음의 문에서의 그 번제는 당신이 한 거였군요...
이 마귀 할멈...
성녀든 기적이든, 루니샤, 전부 다 네가 선택한 것이야.
제 선택이라고요? 제가 저를 위해 선택한 적이 있었나요?
배양 캡슐 안의 용액에서 하얀 거품이 일었다. 루니샤의 몸부림은 점점 더 격해졌지만, 라플라스는 여전히 무덤덤하게 지켜봤다.
조용히.
네가 협조 안 하면 데이터를 제대로 채취할 수가 없어.
일부 데이터는 각성 상태에서만 얻을 수 있으니까.
그게 왜 하필 저인 건데요!?
네 존재의 의미를 기억해라.
이건 너, 과거의 너, 최초의 네가 직접 선택한 일이니까, 네가 직접 나와 약속한 일이니까.
......
이제 아주 조금만 남았어.
내가 직접 마지막 수술을 마치면 너는 완성될 거야.
......
조금은 기뻐하렴, 애야.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얻었고,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어.
파일럿고래에서 헬라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심혈을 쏟은 일이... 이제 곧 현실이 되는 것이야.
라플라스의 노쇠한 얼굴이 유리에 비쳐, 루니샤의 젊음 넘치는 얼굴과 대비를 이뤘다.
라플라스는 무신경하게 웃었다.
왜 웃는거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너는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나는 늙어버렸구나.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아,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늦지 않았어.
처음 만났을 때... 그때의 당신은...
......
일부러 몇 분 동안 먼 길을 돌아서, 안내인이 마침내 어느 방에 그녀를 어떤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가 안대를 벗겼다.
방 안에는 풋풋한 얼굴의 소녀가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각이야, 마사 박사.
...너는 참으로 재밌는 아이구나.
나는 이번 번제의 신이고, 당신은 나의 종복이야.
당신이 날 기다리게 할 자격은 없어.
네 결정에 성모께선 동의하셨니?
...귀 기울이고 잘 들어, 마사 박사.
당신은 내 허락만 받으면 평생토록 바라던 것을 얻을 수 있어.
이번 번제에 포함한 모든 목숨 중, 내 어머니가 첫번째여야 해.
오호? 다른 요구 사항은 있나?
...없어. 당신은 원하는 물건을 받고 떠나면 돼.
나머지는 빌이 처리할 테니까.
절차를 확인할 필요는 있을까?
필요 없어... 나는 세상에서 가장 굳센 사람이니까.
여자애는 꼭 그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당신은 내가 겪은 일을 경험해본 적 없잖아, 마사 박사.
나는 이 세상을 증오해, 모든 인간을 증오해.
그러니까, 인류의 자아 파멸을 이루기 위해 나는 내 몸을 바치겠어.
일이 꼭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분명 내 뜻대로 될 거야.
내기할까?
...내가 이겨.
내가 이 내기의 결말을 볼 수 있길 바라지.
지각이야, 마사 박사.
...너는 참으로 재밌는 아이구나.
나는 이번 번제의 신이고, 당신은 나의 종복이야.
당신이 날 기다리게 할 자격은 없어.
네 결정에 성모께선 동의하셨니?
...귀 기울이고 잘 들어, 마사 박사.
당신은 내 허락만 받으면 평생토록 바라던 것을 얻을 수 있어.
이번 번제에 포함한 모든 목숨 중, 내 어머니가 첫번째여야 해.
일이 꼭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분명 내 뜻대로 될 거야.
내기할까?
...내가 이겨.
내가 이 내기의 결말을 볼 수 있길 바라지.
이제, 너는 이 결과를 보게 될 것이야, 루니샤.
전 인류의 결말을 보게 될 거야.
......
이제 좀 떠올랐니?
성녀님...
욕조 속에 붉고 걸쭉한 액체가 가득 담겨 있고, 그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깡마른 소녀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루니샤를 바라봤다.
우리는 정말로... 고통 없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루니샤는 자신의 목소리가 상냥하면서도 잔혹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두 손이 소녀의 창백한 얼굴을 받쳐 들었다..
잘 자요.
꼬르륵. 그 창백한 얼굴은 진홍빛에 집어삼켜져 거품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성녀님, 이제 제 차례인가요...
고개를 들자, 붉은 액체가 가득 담긴 용기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네, 다음은 당신 차례예요.
발이 저절로 앞으로 나아갔고, 루니샤의 마음은 괴로움에 찢겨졌다.
<color=#A9A9A9>멈춰... 멈춰...</color>
꼬르륵.
꼬르륵.
덧없는 거품이 자신의 두 손 사이에서 터져갔다.
루니샤는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고, 몸의 통제를 잃기 직전이었다...
루니샤가 깨어났다. 자신은 세이프하우스 바닥에 누워 있었고, 손 옆에는 깨진 물컵이 놓여있었다.
......
세이프하우스, 지휘관, 자신을 돌보라며 붙여준 인형...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쓴웃음만 지었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진작에 구분할 수가 없었다.
천장의 형광등이 불안하게 깜빡였고, 인형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루니샤 씨, 무슨 일 있어?
...아니요.
또 악몽을 꾼 거야?
XM556는 깨진 컵을 치우고, 다시 온수를 떠왔다.
벌꿀 탄 물이야, 마셔.
......
다른 일 없으면, 쉬는 거 방해 안 할게.
지휘관님은 언제 오나요?
지휘관은 지금 엘모호 일을 처리하고 있어, 일이 다 끝나면 데리러 올 거야.
......
싫어요...
지금 당장 지휘관을 볼 거예요.
방금 지휘관한테 연락해 봤어, 지휘관은——
당장 보겠다고요!
펑! 형광등이 터져서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
지금 당장! 지휘관을 볼 거예요!!!
콰직. 온수를 가득 담은 컵이 그녀의 손에 깨져서 날카로운 조각이 되었다.
루니샤는 그 조각을 자신 목에 댔다.
루니샤 씨, 진정해.
요구 사항 이해했어, 바로 지휘관한테 보고할게.
그 전에 유리 조각 내려놓고...
......
당장 연락해요.
떨리는 손이 유리조각을 살 속으로 밀어 넣자,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천천히 그녀의 하얀 목을 타고 내려와 쇄골에 고였다...
피를 흘리는 이 기분... 고통 속에 쾌감이 섞여 있었다.
꿈속의 그 여자처럼...
루니샤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할게 할게, 당장 지휘관한테 연락할 테니까!